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백종옥 지음 / 반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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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도시사적으로 특이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하나가 수십 년 동안 분단되었던 역사를 간직한 곳은 세계의 도시들 중에서도 드물다. 또한 과거 세계대전의 중심에 있었던 나라의 수도로서 그들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또한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 히틀러의 나라.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라로써 그들은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과 추모를 통해 반성하려고 한다. 물론 가끔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독일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러한 것들을 염려해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자신의 생활 곳곳에 심어놓은 것같다. 이 책은 미술을 전공한 저자가 베를린에서부터 관심있게 보아 왔던 베를린의 역사적 조형물에 대한 이야기다. 읽어보니 전공자의 눈으로 바라본 단순한 조형 감상물이 아니라 그 역사적 배경과 건축적 혹은 미학적 이야기가 드러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크게 두 가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기념 조형물을 대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베를린에 산재한 그들의 기념 조형물을 감상하는 재미다.


저자는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기념공간이라고 할 만큼 곳곳에 다양한 기념조형물들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처럼 무조건 조형물이라고 하면 천편일률적인 동상이나 탑 등이 아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이러한 현실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부당한 지배 권력에 저항했던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방식이 권위적인 형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기념 조형물들만 관찰해도 그 사회가 보수적인지 개방적인지 추측해볼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는 예술 역시 권위주의 시대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현실임을 이야기한다. 예술단체의 횡포나 그것을 지휘 감독하는 관료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기념물들이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을 통해 우리는 그 사회의 건강함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위정자들이나 관료들이 예술가들의 새로운 표현방법을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말고 그들의 창작성을 돕는 사고가 절실해 보인다.


공동체에 깊이 각인된 역사의 기억이라면 그것이 좋든 싫든 전부 되새겨야 한다.


우리의 근대 역시 오욕이 점철된 역사였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기간 동안 우리 사회에 많은 일본의 건축과 조형물들이 생겨났다. 한 때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이유로 국민의 분노를 이용하여 많은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부수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후대를 위해 옳은 행동일까? 그 자리에 놓지 않고 이전하여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의 글을 보면 베를린은 비교적 이런 부분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들의 부끄러웠던 과거를 반성하려는 자세가 보인다.


복잡하고 고층건물이 많은 도심의 공공장소에는 기념조형물을 높이 세우는 것보다, 땅을 깊이 파거나 텅 빈 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이 오히려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소란하고 현란한 도시일수록 명상적인 공백과 여백이 사람들에게 감성적인 울림을 줄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된 10개의 기념물들을 살펴보자. 위병소를 추모공간으로 바꾼 싱켈의 노이에바헤, 베벨광장 밑에 설치된 지하 비블리오텍,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피터 아이젠만의 추모비들, 비극의 시작이었던 그루네발트역에 새겨진 강철판들, 베를린 전역에서 고개를 내려 바라보면 볼 수 있는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 히틀러 암살시도를 통해 국가의 양심을 지켜낸 영웅을 기리는 슈타우펜베르크거리 13~14,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고한 실슈트라세 정류장, 아픔과 분단의 상징인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을 기억하는 여러 장치들, 벽화를 통해 아픔을 승화시킨 이스트사이드갤러리가 각각의 주인공이다. 각각의 기념물들은 우리가 흔히 보았던 그런 권위적인 기념물들이 아니다. 시민들의 합의에 의한 도시에 스며들기를 통해 시민들뿐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기념물들이 되었다. 때로는 일상적인 정류장을 통해 때로는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장벽을 가지고 그리고 때로는 역사적인 장소를 통해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을 발견해냈다. 권위를 버리고 도시의 자연스런 흔적으로 남기를 원하면서.


이 책은 베를린의 추모공간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기념물들이 어떻게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건네는 책이다. 우리가 기념물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시 베를린에 가면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해 10개의 기념물을 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 



공동체에 깊이 각인된 역사의 기억이라면 그것이 좋든 싫든 전부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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