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13
헨리크 입센 지음, 신승미 옮김 / 별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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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을 이제야 제대로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 입시 공부를 하느라 일부분만 보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용보다는 내용외적인 것이 더 중요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19세기의 유럽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여성의 인권은 거의 없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기 시작한 것이 50년 남짓하니 이 시대의 작품으로는 대단히 파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결혼전에는 부모(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에 종속된 삶을 살았고 결혼후에는 남편의 장식으로 살았던 그 당시의 여성의 삶을 이야기에서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사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결코 사랑이 아닌 구속과 사회와 단절된 삶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이 희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노라의 자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집이라는 하나의 새장속에서 남편인 헬메르의 어여쁨(?)을 받으며 세 자녀를 낳고 자신과 집을 꾸미고 무도회를 즐기는 인형같은 삶에서 스스로 새장을 나갈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 희극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는 비록 개인의 삶의 자각이지만 개인의 자각이 결국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임은 명확하기 때문에 이 시대의 기득권층인 남성에게는 매우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을 보면 남자인 내가 봐도 조금은 낯뜨거운 단어들이 나온다. 종달새, 다람쥐 등 어찌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존경이나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하대나 비하하는 의미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 역시 이러한 것에 대해 부정적이기보다는 순응하고 잘 따르는 쪽이기에 이러한 개인적 합의는 사회적 합의로 묵시적으로 통용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노라의 과거의 일로 인해 스스로의 깨우침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더불어 남편- 나아가서는 남성이라는 사회의 기득권 - 과의 관계에 대한 깨우침이 이루어지는 극적인 요소를 이야기하고 있다. 극 자체로는 그리 재미있지는 않고 짧은 이야기라서 어떤 작품성을 이야기하기는 그렇지만 주제와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결방안은 19세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파격이라고 생각이 든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직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일수도 있다. 이 책이 가지는 상징적 가치는 그래서 더 빛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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