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인문학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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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어렵다. 골목 인문학이라... 골목은 사람 냄새나는 단어인데 인문학은 요즘 유행하는 고상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단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나같이 쓸데없는 데 딴지를 거는 사람들을 염두해서였을까? 머리말에 인문학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정의했다.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사람의 이야기며 사람의 자취라고 보면...”


그래도 나는 끝까지 제목에 아주 긍정적이지는 못했다.


건축가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영화처럼 보다.”가 건축 인문학 책이라는 이름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로 많은 아류작들이 나왔다. 보통 신문에 주간 단위 연재를 하고 그것을 편집 보충해서 한권의 책으로 나오는 형식을 따르는 책을 말한다. 거기에 그림 한 점씩 넣어서 스스로가 건축가임을 다시 한 번 자랑(?)하는 책들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도 그런 책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소위 말해 요즘 같지 않은 곳들에 대한 단상이다. 서울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많이 삽입하고 있다. 그의 어릴 적 기억에 자신의 살았던 곳이 참 강렬했나보다. 여하튼 그는 서울 이곳저곳 그리고 우리 나라의 이곳 저곳에 대한 많은 지식을 전달해준다. 책을 읽으면 술술 잘 넘어간다. 그의 이야기가 그리 딱딱하지 않고 글감 또한 우리가 많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40대 이후의 사람이라면 우리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 많이 드는 시기라 더욱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다. 그 이전의 사람이라면 요즘 들어 뜨는 서촌, 부산 초량동, 속초, 삼청동 등의 옛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책을 읽고 나면 주제가 골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수근이후로 건축가들에게 골목은 단골 소재였다. 그만큼 흥미로운 주제였고 건축적으로 충분히 변용이 가능한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과거의 흔적에 대한 오마주를 많이 하는 주제다. 그래서 나 역시 이런 골목길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몹시 기대했다. 문화해설사가 아닌 건축가로서의 골목에 대한 분석 혹은 건축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건축적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지극히 내 개인적 관점에서는 골목이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전락해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마치 왔다 장보리에서 장보리가 아닌 연민정이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버린 느낌을 받았다. 골목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골목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네를 소개하는 것인지 말이다. 교토의 철학의 길 편을 읽을 때도 나오시마섬의 혼무라 편을 읽을 때도 난 제목인 골목길과 연관을 찾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두 군데를 갔다온 적이 있었기에 특히 더 관심이 갔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저자 역시 골목길 보다는 그곳에 대한 스케치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오래된 책이지만 저자의 “사람을 살리는 집”이라는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 책이지만 거기에 드러난 건축가로서의 관점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았기에 이번 책도 많은 기대를 했지만 이 책에서는 건축가로서의 골목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한 중간 중간 한 컷씩 들어간 스케치 역시 개별 개별로 보면 참 좋은 그림이지만 한 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는 아쉬움이 많은 그림들이 있었다. 이 역시 골목이라는 것에 한정을 했더라면 골목의 풍경들을 모아보는 재미가 있었을텐데 이야기는 골목이 아닌 동네로 가버렸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의 건축에는 많이 못 미치는 그냥 소소한 오래된 동네 소개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고 나서 표지에 있는 “골목은 도시의 맨 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다.”라는 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싶다. 그냥 소소한 동네 답사기라는 심심한 제목이 더 어울렸을법한 책이다.



p.s 그런데 임형남 건축가가 쓴 글은 어떤 것이고 노은주 건축가가 쓴 글은 어떤 것일까? 통 구분이 안간다.



인위적으로 무엇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장소의 가치가 굳이 예산을 들여 시행한 불필요한 덧칠로 훼손될까봐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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