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
마쓰무라 게이치로 지음, 최재혁 옮김 / 한권의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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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전에 인류학의 정의가 무언지 찾아보았습니다. anthropology- 생물로서의 인류와 그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문화란 의식주를 비롯하여 사회구조 ·관습 ·종교 ·예술 ·과학 등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을 통틀어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류 특유의 생활방식과 그 소산(所産) 일체) 참 어렵기도 하고 애매한 정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접하지 못하는 생소한 학문이어서 그럴까요? 인류학의 분야에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여기에 나보다 겨우 1살 많은 이 저자가 어떻게 인류학을 접하고 그 당시 아주 낯설고 위험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로 떠날 수 있었을까 하는 그 용기도 부러웠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에티오피아로 떠나 느꼈던 여러 문화적 차이, 관점, 국가, 경제, 원조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류학적 관점(더 정확히 말하면 구축인류학)에서 한 쪽(일본 및 서방 선진국)과 다른 한 쪽(에티오피아 및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우리의 문화적 균형추를 잡아주고자 합니다.

 

 

경제

 

우리가 경제적 후진국에 여행을 가면 낯설지 않게 보이는 풍경이 아이들의 구걸입니다. 저자는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우리도 겪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저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 계속 습관이 된다.” 라고 말하며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에디오피아의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동전을 주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교환이라는 무언가를 주고 받는 형식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선뜻 주는 것을 꺼려왔습니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이 상황에 공감하면 끝인데도 그 공감의 코드를 잊고 살아온 자본주의사회의 사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결국 그는 구걸에 대한 보답이 ‘선의’의 개념도 아니며 단순하게 말해 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그들보다 더 잘살게 된 것에 대한 떳떳치못함에서 비롯된 자책감에 의해 그들에게 동전을 주게 됩니다. 저자는 이것을 증여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합니다. 개념은 무엇을 주고 받아야 하는 교환이 아닌 선물의 개념으로 치환하여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사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감정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치 않는 일을 대부분 하며 일생을 보냅니다. 생활 유지를 위한 소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데 대부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교육 속에서 소비되어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 직장에서 자신의 많은 삶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렇다보니 자신의 감정이 왜곡됨을 알지 못하고 본능과는 무관하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숨기고 살고 있죠. 업무 때문에 지어야 할 억지 웃음, 매스미디어에 주는 감정들에 대한 무방비적 노출 그리고 수용 등.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 저자는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함을 느낍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자신도 화나면 화를 내고 소소한 행복에 눈물 짓습니다. 결국 감정이라는 것이 공감과 깊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느끼게 되는 자신의 위치 및 유대감 그리고 공감등의 표출이 감정인데 익명성의 현대국가에서는 그런 것들을 느낄 수가 없기에 점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결국은 삭막한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관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관계란 있는 것일까요? 익명성의 사회라고 불릴만큼 나와 너 혹은 우리의 사이가 거의 없을 만큼 사회는 관계가 없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 세워 권함을 유대감을 나타냅니다. 너와 나의 관계 행위를 만듭니다. 이방인에게도 관계 행위를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 안으로 귀속시키려는 ‘관계로서의 사회’를 지향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타인과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 형성을 위해 말을 건네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를 움직이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국가

 

한편 국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또한 국가는 우리를 대표하고 우리를 보호하는 한편 우리를 통제합니다. 저자는 에티오피아와 일본의 비교를 통해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묻습니다. 어떤 것이 국가의 형태이며 존재이유일까? 저자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며 국가에 대해 질문합니다. “누군가 왕으로 군림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그의 신하로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국가의 어떤 기능에 대해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여러 제도에 대해) 국가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가치일까요? 내가 국가에 대해 어떤 제스쳐를 하니 국가 역시 나에게 다른 행동을 해서 결국은 국가와 내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와 나라는 일체성을 극복할 수 있다면 좀 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것들에 대한 사고의 유연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시장과 원조

 

에티오피아는 많은 구호물자를 원조 받아 그것으로 사회의 경제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조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단순히 선진국의 선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선물일까요? 물론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것입니다. 선진국의 외교전략 및 국내에서 발생하는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로 원조의 현실입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선물과 상품사이를 오가는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던지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또다른 가치를 창출합니다. 원조물품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여러 정치적 행위를 목격하기도 하고 구호물품을 시장에 팔수 없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상품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정치와 경제는 분리가 될 수 없으며 서로 의존적으로 유동적으로 때로는 의도한바와는 다르게도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공평함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세상에 대한 공평함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불평등에 대한 떳떳치 못한 마음이 바로 공평함을 지향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것, 자원봉사를 하는 것 모두 그 떳떳지못함에 대한 발로입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세상의 당연함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합니다. 비틀어보기도 하고 현실인식에 대한 회의를 통해 이 세상의 당연함을 깨고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축인류학이란 바로 그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학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서평을 마치며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으나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용어에 대해 다시 한 번 회의를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인류학이라는 다소 낯설은 학문에 대해 입문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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