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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 속 파랑
노희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을 보고 깊은 바다 속에서 파랑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깊은 바다 속이라고 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저 암흑만이 존재하는 장소가 아닐까? 그렇기에 암흑 속에서 파랑이라는 색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인류가 사라지고 오로지 이 세상에 단 세 명만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아주 깊은 바다 속 같다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그렇지 않을까? 핵폭발로 지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지도 모르고 잠수함 내의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만 남기고 모두 죽은 상태라면? 게다가 살아남은 자들도 서로를 핵폭발의 원인일지도 모르는 ‘앨리스’의 일원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면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제목을 <깊은 바다 속 파랑>이라고 했다. 환하게 빛나는 하얀색이나 노랑이나 빨강색은 아니지만 암흑과는 다른 파랑색. 그것은 분명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피셔, 셀린, 이삭. 이들에게도 파랑처럼 서서히 빛나는 희망이 있는 걸까?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분명 무언가 희망이 싹틀 여지가 있다. 그 희망이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절망과 두려움, 죄책감과 질투 속에서도 이들은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그런 중에 사랑이 싹튼다. 결국 모든 절망 뒤에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희망의 싹도 자랄 수 없다.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장은 바로 이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인간이었다. 하나의 자궁일 뿐인 존재가 아니었다.... 여자는 셀린이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 결코 셀린을 대변할 수 없었다.(p.316)
그래 어떤 순간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존재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깊이 사랑해야 한다. 잊어버리기 쉬운 이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는지. 깊은 바다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파랑의 의미가 결국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제 여자라는 것이 나 자신보다 앞설 수 없다는 이 말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