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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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은 연인의 몸을 먹는 여자. 이 문장만 보면 무슨 엽기적 살인 사건이나 사이코패스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구의 증명>에 나오는 담의 행동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에 공포나 두려움이나 꺼려짐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애처로움과 먹먹함이 우리의 가슴을 휩쓸고 지나간다.

 

담과 구는 여덟 살 때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현실은 이들을 떨어뜨려 놓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를 잊지 않는다. 아니 떨어져 있으면서도 늘 그리워하고 서로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p.112)

 

이처럼 애절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기에 결국 다시 만나게 되지만 부모님의 빚을 떠안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구는 담을 멀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담은 이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구의 곁에 머문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p.151)

 

이런 마음을 가진 이들의 사랑은 구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와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하는 담은 죽은 구의 몸을 조금씩 먹고 구의 영혼은 자신을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담의 주변을 끝없이 맴돈다.

 

이 둘의 사랑이 너무나 슬프다. 한참 해맑게 사랑을 나눠야 할 그 때, 부모가 남긴 빚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결국 삶을 끝낼 수밖에 없는 구. 그런 구와 영원히 함께 싶어 하는 담의 사랑.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구라는 이름처럼 돌고 돌아 결국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 담이라는 이름처럼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채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은 저 세상에서 서로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구의 증명>이라는 제목에서 말하는 구의 증명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구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현실의 벽을 증명한 걸까? 아니면 그런 현실을 벗어나 영혼이 되어서도 상대방을 느끼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증명한 걸까? 그 무엇이든 한 동안 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 지낼 것 같다. 끝없는 아픔과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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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없다
한수경 지음 / 문이당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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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없다>는 한수경 작가가 그려낸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세계대 학생회장을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과 생각을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의 진보와 보수의 모습을 그려낸다. 보수를 대표하는 주몽과 진보를 대표하는 나영웅. 이들은 과연 우리 시대를 이끌어 갈만한 영웅인 걸까?

 

국어사전에서 영웅이라는 말을 찾아보니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란다. 이 정도라면 우리 주변에 많지는 않지만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영웅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왜 영웅은 없다고 생각한 걸까?

 

녹사의 말을 잠깐 살펴보자.

 

영웅이 나와 유정민의 합작품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지금 시대는 영웅을 만들 수도 없고, 설사 만든다고 해도 유효 기간이 짧아서 안 돼. 요즘 대중들의 욕구가 얼마나 다양한지 아냐?[하략]” (p.13)

 

세계대 학생후보였던 나영웅을 녹사는 자신과 유정민이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영웅을 만든 인물에는 그들과 함께 데일리스팟을 이끌었던 화자인 공탁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소설에 그려진 영웅이라는 인물은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가 영웅이라고 믿었던 인물이 결코 영웅일 수 없음을, 녹사의 말처럼 그저 만들어낸 환상일 뿐임을 알게 된다.

 

소설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실체를 숨긴 채 사실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확인 없이 그저 군중 심리에 휩쓸려 다니는 대중들의 모습. 그런 그들을 유도하는 소수의 인물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웅, 또한 그들에 의해 추락해버린 영웅.

 

이 소설은 그래서 아프다. 머나먼 별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오늘도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에. 이런 시대에 진정한 영웅은 어떤 존재일까? 저자의 말처럼 이제는 정말 영웅은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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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메이드
아이린 크로닌 지음, 김성희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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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살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 뒤편에 실린 이 문장을 보면서 장애를 갖고 태어나 어렵게 살았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네 살 때 다리가 없는 자신과 다리가 있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었다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았을지 그려지지 않는가?


만약에 나라면? 어느 순간 내 처지를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아파하고 힘들어 했을 것이다. 어쩌면 내 방에서 결코 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린 크로닌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을 보면 오히려 그녀는 유머가 넘치고 즐거움이 넘친다. 물론 곳곳에서 보이는 모습에는 어린 소녀가 느끼는 슬픔과 고통과 절망이 엿보인다. 뿐만 아니라 비밀을 감춤 어머니를 향한 마음에서는 원망도 느껴진다. “탈리도마이드이 한 단어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녀가 글을 풀어나가는 흐름을 보면 밝고 유쾌한 그녀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지쳐있던 내게 힘을 준다. 그녀의 삶도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겪는 힘듦과 고통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나를 꼭 안아준다. 이 책은 그렇게 내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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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서양고전 -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서양고전 독법
윤은주 지음 / 소울메이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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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이 딱 맞다. 내가 생각하는 고전이 바로 그렇다. 읽어야 하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것, 내용이 어려워서 누군가의 설명 없이는 읽기가 힘든 것, 읽지 않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도 있지만 그만큼의 변명도 허용되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고전이다.

 

대세가 인문, 고전 읽기이다보니 고전을 읽어보려고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더 쉽게 고전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렇게 고민하는 내게 친구가 좋은 정보를 주었다. 수많은 고전 중에서도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고전을 추려 쉽게 풀어준 책이 있다면서 추천해준 책이 바로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서양고전>이다.

 

이 책 또한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않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읽은 저자의 이야기가 힘을 실어주었다. 고전에 대한 생각이 나와 비슷했던 저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걱정을 덜어주었다.

 

이 책은 삶에 대한 가르침, 정치에 대한 가르침, 앎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분류에 따라 총 15편의 고전을 소개한다. 15편의 고전 중에서 읽은 책이 있나 살펴보았는데, 이럴 수가, 딱 한 권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그 책이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읽어보려고 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으니 안 읽은 것과 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 읽은 책이 딱 한 권인데 어렵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다시 몰려왔다. 그런데 재미있다. 아주 간단하게 작품과 저자를 소개한 후 작품에서 다루는 중요한 내용을 평범한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와 연결하면서 독자에게 들려준다. 부담스럽지도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15편의 작품들이 내용을 중심이기에 작품이 쓰인 시대적 이야기도 있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해서 설명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들로 설명하기 때문에 저자의 해설을 듣고 나면 원문에 대한 궁금증이 모락모락 커져간다. 원문이라면 당연히 어렵겠지만 이 책을 보고나서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특히 누구나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행복을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참 된 교육의 모습을 알려주는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는 바로 책 주문을 신청할 정도였다.

 

책을 주문할 때도 이 책의 도움을 받았다. 수많은 번역본 중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던 사람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원본을 다룬 책 중에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 적당한(혹은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번역본을 독자에게 추천해준다. 이래저래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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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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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젤이라는 상표가 붙은 술병과 술잔(?)으로 들어가려는 붉은 색 악마의 모습이 담긴 표지가 눈길을 끈다. 술잔보다 크지 않은 악마의 모습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악마의 이미지가 아니라서 그런가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은 성경에 나오는 타락 천사 아자젤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2센티 크기의 악마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살아생전 480여 권의 책을 낸 SF 소설계의 거장으로, <아자젤>은 그가 1980년부터 잡지에 연재한 단편 18편을 모아 발행한 책이다.

 

소설은 작가를 대변하는 와 아자젤을 불러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조지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조지가 들려주는 아자젤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액자 형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18편의 작품들에는 다양한 소원들을 가진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조지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자젤의 능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처음 의도한 바와는 달리 아자젤의 능력은 소원을 빈 사람들을 도와주기보다는 역으로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단 한 번의 노래에 나오는 앤드루 모텐슨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꼬집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게 드러난 작품이다(물론 다른 작품들에서도 인간의 행태를 꼬집는 작가의 능력은 수시로 드러난다). 모텐슨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차인 후 그녀에게 완벽한 목소리를 선물해달라고 조지에게 부탁한다. 모텐슨의 바람대로 그 여자는 완벽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려고 한 마음씨 착한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그 이면에는 모텐슨의 다른 의도가 숨어있었다. 모텐슨은 완벽함을 경험한 뒤에 다시는 그 완벽함을 재현할 수 없다는, 그 완벽함을 경험할 수 없다는 비극을 그녀에게 선물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기를 비참하게 만든 사람에 대한 인간의 복수심.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그녀의 노래를 가장 열심히 집중해서 들은 모텐슨이다.

 

<아이작>에는 이처럼 사람들의 본성, 어쩌면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인간의 본성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가볍게 웃으며 넘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 마음을 꼬집는 듯한 이야기에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지기도 하였다. 한 바탕 웃음 속에 담은 작가의 뼈아픈 이야기에 한 동안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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