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란 무엇인가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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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 저술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이 책으로 도올에 입문했다.

제목으로만 보자면 ‘여성학 강의’ 정도에 해당하는 듯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에 녹아있는 방대한 정보는 도올의 저서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특징, 즉 동서고금을 왕래하는 스케일이 잘 드러나 있다.

도올이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에서 밝힌 에피소드를 보면, 어느 엄마가 자기 딸내미 자랑을 하면서 “우리 딸이 《여자란 무엇인가》를 보고 엄청난 인스피레이션을 받아요”했단다. 그런데 그 딸이 “중3”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단다. 《여자란 무엇인가》에서는 동양학과 역사학, 인류학, 신화학 등등 방대한 학문적 내용을 바탕으로 주제를 풀어가고 있어, 최소한 이들 제반 학문의 구조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이 책의 논리를 이해하거나 비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중3 어린 아해에게서 그런 선이해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겉멋 든 아해에 대한 황당함과 씁쓸한 소회를 말하고 있다.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이 책을 접하긴 했지만,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사전에 공부를 했던 터라 당시에 재미있게 읽어가면서도, 부족한 지식으로 도올의 방대한 논리를 따라가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도올의 숱한 저서 중에는 함량미달이라 할 만한 것도 있는게 사실이지만, 재미와 아울러 쏠쏠한 학문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 《여자란 무엇인가》는 후한 점수를 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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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유혹 넥스트 4
김용운 / 한길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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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비교문화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집필한 바 있는데, 그 책에서 '원형사관'이란 분석틀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간 김용운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사용한 분석틀 '원형사관(原型史觀)으로 민족과 문화의 심층을 읽는다'는 주제의식으로 저자의 원형사관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는 책이다. '원형의 정의'에서부터 '원형의 형성과정', '원형과 종교와의 관계, '원형과 문화와의 관계'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각 민족의 특성을 예로 들면서 한국문화의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각 민족의 원형(原型)'이란 개념을 설정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하는 논란은 이미 학계에서 여러차례 제기된 바 있으나, 타당성 여부를 차치하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본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이어령 교수나 이규태 조선일보 고문의 한국/일본 문화관련 서적과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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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성공하는 나라 - 동양의 지혜 시리즈 1
이기동 지음 / 동인서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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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성공하는 나라》는 머리말에서 한국이 고유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상황을 개탄하면서, 이는 마치 '소가 자기 밥을 놔누고 개밥을 먹다 광우병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유를 들고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책은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인간문화의 특성을 知와 仁으로 대비시킨 후, 한국문화의 특징을 仁에 배정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둘째, 仁에 바탕을 둔 한국문화 정서의 장단점을 논하고, 셋째 단군신화 분석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논하고, 넷째 한국인이 잃어버렸던 仁을 회복하기 위한 수양의 필요성을 논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오늘날 맹목적으로 서구를 추종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며, 남이 아닌 나의 본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이기동 교수의 절절한 목소리가 글 전편에 흐르고 있음을 느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이 전혀 새롭게 와닿는다기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이야기를 또 다시 재방송하는 것 같은 인상이 짙었다.

아울러 이 책의 내용에서 시종일관 느꼈던 점은 이기동 교수의 논의가 소박한 민족주의의 틀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한국문화만이 가진 고유의 특징'을 끄집어 내고자 하는 분석틀이나, 단군신화에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도출해내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한국학계에서 오래 전에 거론된 적이 있던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한국 고유의 문화전통’이라는 주제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애국계몽운동을 벌였던 이른바 민족사학자들의 논의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일제의 한국사 왜곡에 맞서 한국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학문활동을 벌였고, 분명 그 나름의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칫 국수주의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는 한계가 있었는데, 《곰이 성공하는 나라》에서 ‘한국 고유의 주체성’을 논하는 대목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단군신화 해석에서 이른바 재야사학자들의 논의를 수용하고 있는 대목(昔有桓國의 일제 변조설 등)을 보면서 그러한 심증을 굳히게 되었다.

이기동 교수는 책의 곳곳에서 스승인 류승국 교수의 학설을 근거로 자주 제시하고 있는데, 《곰이 성공하는 나라》의 결론부분에서 한국인의 나아갈 길로 제시한 항목들 - 수양을 통한 마음 가꾸기, 효(孝)와 예(禮)의 실천, 역리(易理)에 따르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삶을 통해 실현하는 이상적 한마음의 세계 등 - 이것 역시 스승 류승국 교수의 논의를 거의 그대로 전재(轉載)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로 류승국 교수는 최근 2005년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역학상으로 본 동북아시아의 세계사적 위상>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머지않아 인류가 갈등과 대립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화합과 평화의 시대가 옵니다. 한국은 그 변화의 출발지점이 될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구한말 학자인 일부(一夫) 김항(1825~1898)의 정역(正易)을 제시하고 있다. (김일부의 정역은 이른바 후천시대 우주 질서의 근본 원리(개벽)를 논하고 있는데, 강증산, 박중빈 등은 김일부의 정역에서 영향을 받아 각기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는 증산교와 원불교를 창시하기도 했다.)

또 “나와 남이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한몸이란 걸 깨달아야 해요. 결국 하늘의 진리가 자기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양의 조화를 조정하는 것은 인간이요, 새로운 질서의 징조는 간방(艮方)에서 나타나니 그곳이 바로 옛 조선입니다.”라고도 했는데, 류 교수는 음양사상의 연원이 동이족으로부터 비롯했고 우리 민족의 철학 사상이 일찍부터 역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2005년9월3일 <한겨레신문> 기사 참조)

동양(한중일)은 19세기 개항(開港) 이래 서구 문명을 발전 모델로 삼아 열심히 배워왔고, 그 결과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었다. 이렇듯 한 세기 이상 정신없이 서구의 뒤꽁무니를 쫓아왔건만,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자 이번엔 ‘글로벌 스탠더드’ ‘세계화’라는 화두가 등장했고 하릴없이 또 그 코드에 맞춰 뛰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화는 한순간의 추세나 유행이 아니라, 나름의 규칙과 논리를 지니고 정치, 경제, 지정학 등 모든 부문에 관철되고 있으며, 싫든 좋든 간에 이미 세계화의 흐름이 전 지구적 영역으로 확산된 지 오래고, 무한경쟁 시대의 냉혹한 약육강식 세태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기동 교수가 《곰이 성공하는 나라》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처방이 과연 얼마나 유효적절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이기동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고 했지만,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의 수준의 민족주의적 패러다임은 이미 시효가 지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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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사상사연구
마루야마마사오 / 통나무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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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텐노오(天皇)!

일본에 대해 피상적으로 (예: 일본이 있니 없니, 혹은 배낭여행기 등등) 떠드는 것이 아니라, 학술적으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이라면 마루야먀 마사오(丸山眞男)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사실 국내에 일본사상사(日本思想史)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환기시킨 사람으로 도올 선생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일본정치사상사연구(日本政治思想史硏究)》의 해제에서 도올이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존재를 알고난 이후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도록 치열하게 대결해온 역정을 기술한 것만 보더라도, 일본학계에서 마루야마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도올의 고백에서도 나타나듯 아직도 일본학계에서 ‘마루야마 텐노오(天皇)’의 권위를 뛰어넘는 자를 찾기 힘든게 사실인 듯 하다. 물론 마루야마 생전이나 사후에 마루야마의 방법론을 비판한 학자나 서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근원적으로 마루야마를 부정하고 뛰어넘는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싶으니.. 오죽하면 도올의 데미안 쿠로즈미 마코토 교수가 마루야마의《켄큐(硏究)》를 "거대한 거짓말"이라 했을까.

일본에 유학을 간 학자들을 크게 분류하자면 대개 두가지 타입으로 볼 수 있을 듯 싶다. 일본 학계의 우월성에 심취해 매몰되는 사람과 그 속에서 허점을 발견하려 애쓰는 사람.

도올은 마루야마가 서구라파 근대사상이나 서구라파의 역사전개방식에 대해 하등의 의심을 품지 않고 종교적 신념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을 비판하고 나름대로 일본학계의 문제점을 넘어서려 애써왔으니,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려나..

이 책의 번역자 김석근 교수는 마루야마의 여러 저서를 한글로 번역해 내면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음을 볼때, 우리학계의 신진학자들이 마루야마의 저주를 풀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며..

나 역시 수박 겉핥기만 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 거대한 책에 서평이 적은 것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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