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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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ㅣ


p316

누구나 다 정당화하는 기술을 익혔다.

나 또한 유럽 지역의 2차 대전(여기선 독소전)을 다루는 일본 소설이 외면하게 되는 태평양 전선에 대한 우려 없이 읽기 시작한 건 아니다.

이 책 전면에 등장하는 반전, 여성주의는 명확하다. 또한 세세하게 짚어가는 전황의 다변과 급변에 따라 아시아 전선을 통해 당대 소련이 일본을 상대하는 대목 또한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배경 사실을 이해하는 정도가 일본 독자와 내가 같을 것이냐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가 전쟁이라는 산을 넘는 소설을 썼다는 건 분명하다.

퇴근 후 몇 년 동안 차근차근 썼다는데, 이야기 또한 차근차근 미시적인 시선으로 전쟁과는 전혀 무관할 것만 같은 소녀가 전쟁에 투입되고, 중심에 진입하고, 흥분하고 정당화하고 전쟁의 프로파간다로 뽑히기도 멸시 당하기도 하다가 결정적인 전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생존해내는 과정을 쫓아간다.

소설은 엄마를 따라 마을의 엽사로 자란 세라피마의 마을에 독일군이 무차별 살상을 하며 시작한다. 세라피마는 절명의 순간 구원군으로 온 이리나에 의해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로, 저격병으로 지원 당한다(!?).

p188

두 마리의 개가 각각 적 전차 아래로 뛰어든 순간, 개들이 입은 조끼가 폭발했다. 전차에서 가장 취약한 바닥이 파괴되어 적 전차 두 량이 동시에 날아갔다.

훈련학교에서 동료들과 저격병으로 탈바꿈하고, 전선에 투입되어 전쟁의 얼굴을 직면한다. 때로는 전훈에 흥분하기도, 아이와 동물까지 이용하는 현실에 환면을 느끼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저격병의 시선은 전쟁물(?)에서 접하기 어려운 소재인 동시에 전면으로 바라보는 진상과의 거리감은 머나먼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와 공유되는 지점이 있다.

이 독특한 시선이 이 소설이 독창적인 장소로 독자를 데려간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칸스나이퍼 라는 영화가 전쟁은소 망가져가는 저격병을 다뤘다면, 이 소설은 망가져가는 세계에서 휩쓸리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를 쫓아간다.

허구의 소설이 그렇듯이 허구적이더라도 다소 희망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이야기이지만, 폐허가 펼쳐지는 데서 세라피마에게 겨우 허락되는 생존이 마낭 허황되지만은 않다.

나는 종종 2차 대전을 미시적으로 기록하며 반복 출판되는 듯 보이는 전쟁사 서적을 지적 사치로 느끼기도 했지만, 그 서적들을 통해 반전과 여성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 나왔다는 걸 마주하니 지금은 어떤 거대한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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