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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 엄마와 세상에 상처 입은 나를 일으켜줄 자존감 심리학
선안남 지음 / 글담출판 / 2018년 7월
평점 :
어릴적, 연하의 아버지는 철 없게도 자주 바람을 피웠다. 연상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던 할머니가 한 번, 어딘가에서 일하던 술집 아가씨와 한 번,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아버지가 외도를 한 흔적들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6살이나 연상이던 어머니는 어린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그저 묵묵히 그런 상황들을 감내했다. 그랬던 그녀가 나이를 먹어가며 그 강한 다짐들이 조금씩 닳아 없어진 것인지 굳건하게만 보이던 어깨가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를 위한다'던 명목 상의 결혼 유지는 '나 때문에' 싫어도 해나간다는 이유들로 바뀌었다. 난 그 되먹지 않은 이유들에 지치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나 역시 어머니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대는 날선 말들로 그녀를 상처입혔다. 나는 괜찮으니 그냥 제발 이혼하라고 말이다. 나 때문이라고 제발 핑계 좀 그만 대라고. 솔직해지라고.
분명 그것이 어머니가 바란 답이 아닐지언정, 나는 무너져 가는 그녀로부터, 그리고 나를 밀어부치는 상황으로부터 멀어져 홀로 독립하고 싶었다.
"홀로서기가 두렵고 외로운 누군가는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타인을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관계맺기를 한다
아마도 그런 나와 달리 어머니는 홀로선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긴 긴 세월 함께 웃고 울며 지내고자 20년 전 맹세했던 님과도, 장성하여 앞으로 자신을 떠나갈 아들도 곁에 없는 삶의 긴 긴 시간들을 홀로보내기에, 어머니는 너무 작고 여렸으며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결국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 대신 끝을 알 수 없는 우울에 나는 잠식되어 갔다. 하루에 하루가 더해갈수록 슬픔과 고통의 상처는 더해 갈 뿐, 딱지를 만들고 아물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들이 닥친 어머니의 갱년기 역시 내 우울을 더 깊고 짙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차가운 바닥 아래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룬다는 어머니의 편지는, 어두운 방에서 오도카니 몸을 동글게 말고 있던 나를 더욱 둥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엄마가 자기 삶의 빛이 아닌 빚일 수 있으며, 자신이 엄마의 덕을 본 것만이 아니라 덫에 걸린 것일 수도 있다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에 눈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대로 멈춰 우울을 감내하며 내 삶이 망가져가는 모습만을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울로 둥글게 말려있던 몸을 펴, 기지개를 켜고 앞을 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어머니와 다른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며 내 것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쯤, 철 없어 보이던 아버지도 정신을 차리고 마침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약간의 울음과 조금의 투닥거림으로 두 분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들-정확히 말하면 나의 어머니-로 부터 독립을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로부터 상처 받은 줄 모르고 어른이 된 나는 이제 그 상처들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도약하려 하는 것이다.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바로 그 점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동안 혼자 고민해오던 문제. 즉, 바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상처들. 상처인 줄도 모르고 곪게 되는 생채기들의 면면들을 잘 정리하고 그런 것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쉽게 잘 정리하여 제시해돈 것이다.
아마 나와 같은 고민들로, 혹은 상처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였다. 또한 자신이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르고 있는 우리의 수 많은 어머니들에게도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책 같아 보였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끝)
+ 덧 :-) 엄마로부터의 심리적 대물림을 끊기 위해 기억해야 할 5가지
첫째, 내 삶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둘째, 각자가 풀어야 할 삶의 과제는 따로 있다.
셋째, 타인의 감정을 차단할 마음의 반사판이 필요하다.
넷째, 상처가 아닌 자신의 소망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