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 엄마와 세상에 상처 입은 나를 일으켜줄 자존감 심리학
선안남 지음 / 글담출판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적, 연하의 아버지는 철 없게도 자주 바람을 피웠다. 연상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던 할머니가 한 번, 어딘가에서 일하던 술집 아가씨와 한 번,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아버지가 외도를 한 흔적들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6살이나 연상이던 어머니는 어린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그저 묵묵히 그런 상황들을 감내했다. 그랬던 그녀가 나이를 먹어가며 그 강한 다짐들이 조금씩 닳아 없어진 것인지 굳건하게만 보이던 어깨가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를 위한다'던 명목 상의 결혼 유지는 '나 때문에' 싫어도 해나간다는 이유들로 바뀌었다. 난 그 되먹지 않은 이유들에 지치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나 역시 어머니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대는 날선 말들로 그녀를 상처입혔다. 나는 괜찮으니 그냥 제발 이혼하라고 말이다. 나 때문이라고 제발 핑계 좀 그만 대라고. 솔직해지라고.

 

분명 그것이 어머니가 바란 답이 아닐지언정, 나는 무너져 가는 그녀로부터, 그리고 나를 밀어부치는 상황으로부터 멀어져 홀로 독립하고 싶었다.

 

"홀로서기가 두렵고 외로운 누군가는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타인을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관계맺기를 한다

 

아마도 그런 나와 달리 어머니는 홀로선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긴 긴 세월 함께 웃고 울며 지내고자 20년 전 맹세했던 님과도, 장성하여 앞으로 자신을 떠나갈 아들도 곁에 없는 삶의 긴 긴 시간들을 홀로보내기에, 어머니는 너무 작고 여렸으며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결국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 대신 끝을 알 수 없는 우울에 나는 잠식되어 갔다. 하루에 하루가 더해갈수록 슬픔과 고통의 상처는 더해 갈 뿐, 딱지를 만들고 아물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들이 닥친  어머니의 갱년기 역시 내 우울을 더 깊고 짙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차가운 바닥 아래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룬다는 어머니의 편지는, 어두운 방에서 오도카니 몸을 동글게 말고 있던 나를 더욱 둥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엄마가 자기 삶의 빛이 아닌 빚일 수 있으며, 자신이 엄마의 덕을 본 것만이 아니라 덫에 걸린 것일 수도 있다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에 눈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대로 멈춰 우울을 감내하며 내 삶이 망가져가는 모습만을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울로 둥글게 말려있던 몸을 펴, 기지개를 켜고 앞을 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어머니와 다른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며 내 것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쯤, 철 없어 보이던 아버지도 정신을 차리고 마침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약간의 울음과 조금의 투닥거림으로 두 분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들-정확히 말하면 나의 어머니-로 부터 독립을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로부터 상처 받은 줄 모르고 어른이 된 나는 이제 그 상처들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도약하려 하는 것이다.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바로 그 점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동안 혼자 고민해오던 문제. 즉, 바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상처들. 상처인 줄도 모르고 곪게 되는 생채기들의 면면들을 잘 정리하고 그런 것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쉽게 잘 정리하여 제시해돈 것이다.

 

아마 나와 같은 고민들로, 혹은 상처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였다. 또한 자신이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르고 있는 우리의 수 많은 어머니들에게도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책 같아 보였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끝)

 

+ 덧 :-) 엄마로부터의 심리적 대물림을 끊기 위해 기억해야 할 5가지

 

첫째, 내 삶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둘째, 각자가 풀어야 할 삶의 과제는 따로 있다.
셋째, 타인의 감정을 차단할 마음의 반사판이 필요하다.
넷째, 상처가 아닌 자신의 소망에 집중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 가객 김창완.주객 명욱과 함께 떠나는 우리 술 이야기
명욱 지음 / 박하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 명욱님을 처음 뵌 건 13년도에 ‘찾아가는 양조장’ SNS 기자단으로 뽑혔을 때였다.


오랜 시간 명성을 이어가는 유명 양조장들과 그 근방에 있는 문화 유적 및 여행지를 결부시켜 새로운 문화사업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이를 알리자는 기획이었다.


그 다음으로 명욱님과 인연이 닿은 것은 ‘팔도 막걸리 기행단’ 활동을 할 때였다.


전국 팔도에 있는 숨은 양조장을 서포터즈가 직접 발굴하고 연락을 해서 인터뷰를 따오는 활동이었다. 사전조사를 하고 연락을 드려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는 등, 주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숨은 양조장을 찾고 알린다는 재미와 기쁨이 남달랐던 활동이다. 특히 이 활동 덕분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강진’에도 가보고 땅 끝 ‘해남’까지 차를 몰아 보았으며 ‘완도’에가 그간 경험하지 못한 한상 가득한 해산물을 맛 볼 수 있었다. 또한 숨어있는 동네 어귀의 각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맛깔난 막걸리를 사장님들께 얻어 마시며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서 지금도 너무 좋은 기억이 있다.


그 인연들이 쌓여 현재도 명욱님이 주관하시는 전통주 콘텐츠 기획단이 되어 시간이 될 때마다 참여 중에 있다.


이렇듯 우리 술과 관련된 어떤 사업에는 항상 명욱님이 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 좋은 얼굴로 어제 만난 듯 반갑게 인사해주며 해박한 지식으로 모르는 부분들을 채워 넣어주어, 보다 우리 술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는 그.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듯,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말술은 거뜬히 들이킬 거 같은 얼굴과 몸을 가지고서는, 사실 저는 술을 잘 못 마십니다라며 허허하고 웃던 모습이. 그런 명욱님이 어떻게 저렇게 술에 대해 해박할까 하는 기저의 의문들도 생기기도 했지만 그가 가진 순수한 생각들이 너무 좋아 그런 의문이나 기문들도 사라지게 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금융업계에서 일을 하던 중,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없어져 허망한 꿈이 되던 그때의 기억이 그의 생각을 달리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전통주가, 우리  나라에서는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낡은 것의 느낌이지만 일본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마시는 유행주(酒)로써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분위기로 만들어 보자는 그 열의가 참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환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건. 


그래서인지 이 책은 우리 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무턱대고 기행단에 들어가 활동하던 내게, 일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며 우리 술에 관심과 흥미를 유발 시켰던 그의 마음의 그대로 드러난다. 술을 나누는 기준부터,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따른 명칭의 분류는 물론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양조장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책을 읽으며 참 명욱님답다는 생각이 들어 슬쩍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이런 우리 술에 대한 애정과 노력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어 행복으로 돌아오길 빌어본다. 


비도 오고 하니 오늘은 우리 전통주에 전이나 먹어야겠다. 둥둥 띄운 쌀알이 올라간 놈으로.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지만… 이마주 창작동화
안느 방탈 지음, 유경화 그림, 이정주 옮김, 서울초등국어교과교육연구회 도움글 / 이마주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이와 다름의 이야기 : 발랑탱 넌 특별해

-

사실 아직도 장애인을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들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안 해도 될 '지나친' 배려를 한다던지, 혹은 '지속적으로 의식'한 채 힐끔 힐끔 바라본다던지 하는 색안경을 낀 행동들 말이다.

 

하지만 장애인과 조우하게 되었을 때, 이런 의식 과잉의 행동을 하는 것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그런 경험을 한번 쯤은 해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그런 행동들 있지 않는가? 

 

지하철 안에서 내 딴에는 그들을 위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간격을 넓히고 벌려주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들을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던지, 횡단보도에서 조심한답시고 피해준다는 것이 평소보다 더 오버해서 그들이 가는 길을 터주는 바람에 상대가 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더 티나게 하는 행동들을 한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렇듯 나는, 나와 조금 '다른'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여전히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

사실 안느 방탈의 '하지만...'을 처음 읽어 내려갈 때만해도, 주인공 발라탱이 장애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현관문에서 대문을 이어 학교까지 가는 걸음 수를 세고 학교 교문이 열리는 시간과 닫히는 시간을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두는 아이를 어떻게 장애아라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단지 그 나이 때 아이들보다 훨씬 더 특별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구나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또한 초중반 부분까지 책 어디에서도 이 아이의 장애에 대한 구절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말미에 들어서야 이 아이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것도 작가가 부러 완강하게 표현한 부분들을 통해서 말이다.

 

이전까지 나는 발랑탱이 나와 다르지 않으며 외려 나보다 훨씬 비범한 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장애아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내게 색안경이 덧입혀지고 내용이 편견으로 둘러 쌓여버린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놀랐다. 어떤 불편한 사실을 인지하자 마자 내게 어떤 편견이 덧입혀져 버림을, 그리고 그 의식적 과잉의 불온전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내 자신에게 말이다.

 

 

-

이 책을 통해 난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나의 편견이 이미 시작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그것이 그다지 옳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는, 실은 나와 별반 '다를게 없는' 그들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더 노력할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던 내 편견어린 시선을, 그 의식 과잉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말이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모든 나에게 - 핸디캡 때문에 망설이는 너에게
정종민 지음 / 토트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핸디캡은, 다른 사람들이 핸디캡이라고 지정해서 핸디캡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불편을 느끼고 쉽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그것이 핸디캡일 수 있다.

-

책 '세상의 모든 나에게'는 우리가 하나쯤 가지고 있는 핸디캡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자는 희망의 찬가이다.

정종민 작가는 생후 9개월에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일으킨 뇌진탕으로 인해 병원에 간 후, 결국 별다른 진전이 없어 어머니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축 늘어진 아이가 결국 죽을 것이라 어머니는 생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삶을 영위해나가게 되지만 목발로도 자신을 지탱할 수 없어, 결국 휠체어에 몸을 맡기게 된다.

 

두 다리로 오롯이 서지 못하게 됨-핸디캡-으로 인해 맞이하게 된 좌절감과 무력감은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친구였고 그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였다. 그래도 그는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매순간 하였고, 그런 시간들을 통해  다시 일어서게 되었으며, 그 배움을 기회 삼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순간들의 기록이자, 기억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핸디캡은 극복하는 것이고, 핸디캡이 있음에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배웠다. 이것이 장애인복지현장에서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개인에게 핸디캡은 배워나가는 것이다. 개인도 가족도, 더 나아가 지역사회도 배워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배워가고 있다. 핸디캡은 알아가고 이해하며 때로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다.

-

흔히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실패를 하게 되면 그 원인을 자신의 약점에서 찾게 된다.

 

하지만 어떤 한 영역에서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이 그런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결코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스스로가 가진 핸디캡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약점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고 계속 뒤로 숨기려하고 감추려하면 그것은 더 부정적인 색채를 가지고 나에게 작용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핸디캡이 타인과 자신이 가진 벽을 허물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저자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를 어려워하지만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그 핸디캡에 익숙해지며 경쟁의 관계와 편견의 시선을 허문다고 한다. 인간 관계에서는 이처럼 비밀의 공유를 통해 서로가 더 친해졌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생긴다. 또한 핸디캡과 약점을 함께 나누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가진 핸디캡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그것을 더이상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며, 그것의 공유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벽을 허물고 한 발자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이 책은 비단 장애인이 가진 신체적 핸디캡에 한정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핸디캡이 단지 '신체적 장애'일 뿐인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로, 그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그를 통해 배우고 자신에게 알맞는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멋진 드라마였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핸디캡을 하나쯤 가진 세상 모든 내가 보아야 할 멋진 드라마 말이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왜 저 인간에게 휘둘릴까? - 이 세상 모든 민폐 인간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
가타다 다마미 지음, 정선미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가치를 부정하면 자신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가치 부정이 자신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음에도 그렇게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생각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망상에 빠질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

-

재 일하는 부서로 들어오기 전, 같이 일하던 팀장님은 지나치리만큼 깊은 열패감에 사로잡힌 분이었다. 자신의 작은 키를, 명석하지 못한 자신의 두뇌를, 그리고 부유하지 못한 자신의 부모를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그런 열패감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크고 부모가 부유한 나에게 독처럼 다가왔다. 그는 끊임없이 나를 모략하고 곤경에 빠드렸으며 결국 내가 일하던 곳을 뛰쳐나가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내가 없는 틈을 타서......

그와 함께 일을 하던 어느 여름, 이런 일이 있었다.

- X팀장 : 야,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일하자. 좀 사와.
- 나 :  (당연히 그가 지불할 것이라 생각하고) 네. 어떤 걸로 사올까요?
- X팀장 : 니 돈으로 사올 건데 니가 알아서 사 와. 그리고 너 여기저기서 예쁨 받으니 저기 같이 일하는 다른 팀들 것도 좀 사오고.
- 나 : (그의 성격을 알기에 군 말없이 지갑을 챙겨들며) 아, 네.
- X팀장 : 근데 나 콘 좋아하는 거 알지? 월드O 사와.

인사고가 시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 X팀장 : 간만에 둘이서 회식이나 하자. 1차는 내가 쏠께. 대신 2차는 니가 쏴라. 
- 나 : (딱히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지만) 아, 그러시죠 뭐.
- 둘이 합해서 3만원 밖에 나오지 않은 1차를 법인카드로 계산하며 그가 나에게 말했다.
- X팀장 : 오랜만에 (도우미들 나오는) 노래방이나 갈까?
- 나 : (그의 성격을 알지만).....아, 노래방이요? 그건 좀.
- X팀장 : 뭐야. 1차만 먹고 째냐? 새끼, 존나 쫌살스럽네, 시바.

이런 날도 있었다. 타 사업소 정기점검을 위해 지방 출장차 들렀다가 접대를 받을 때였다. 
- X팀장 : 나 술 잘 못마시니 오늘은 니가 내 술상무하며 다 마셔. 한잔이라도 뺐다면 봐라.
- 나 : (어른들이 주시는 술을 연거푸 마시며) 네, 알겠습니다.
- 그렇게 그는 술자리 중간에 들어가 잠이 들었고, 나는 본사에서 왔다며 대접을 계속 해주시는 어른들 큼에 끼여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다 숙소로 들어가, 그의 코 고는 소리를 이불로 막아가며 겨우 잠에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자는 걸 두고 보지 않았다. 그는 4시반에 일어나 스포츠 채널을 틀고 축구를 보기 시작했고, 겨우 잠이 든 나를 위해 소리를 줄이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나를 깨우더니 콩나물 국밥으로 해장하고 다른 지역 사업소로 가자고 했다.
- X팀장 : 젊은 놈의 새끼가 빠져가지고는. 그거 좀 마셨다고 뭐 죽는 얼굴을 해.
- 나 : ......
- 하지만 해장국을 먹어도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에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고 결국 팀장에게 운전을 부탁하게 되었다. 비도 오고, 잠도 제대로 못 잤던 탓에 나는 그의 앞에서 저지르면 안 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2년 여의 출장 생활에서 처음으로 잠이 들었고, 중간에 깨서는 차를 세워달라고 하고 토악질을 했다. 천신만고 끝에 다른 지역에 위치한 사업소에 도착해서 사업소장님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가 말했다.
- X팀장 : 요즘 애들은 어떻게 된건지, 술을 절주도 안하고. 제가 임마, 운전기사 노릇 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내가 혼자 출장 간 사이, 그는 나를 다른 사업소로 보내버렸다. 더욱이 본인이 그렇게 인사 발령을 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2박 3일의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수고 많았지? 집 도착하면 9시 반이나 되겠네. 얼른 들어가 쉬고 내일 보자.'라고 했다.


기뻐해야할 일을 갖게 된 이에게 축하한다 해놓고서, 속으로 질투하고..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격려하지만 그사람이 진짜 잘된다면 배아파 한다.

-

그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게만 굴면 모든 이들과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만 나쁜 마음 먹지 않고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행동하면 다 좋은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나의 물러터진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나를 휘두룰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을 말이다. 착하다고 능사가 아니고 자신의 목소리를 현명하게 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았다. 그래서 현재 옮겨진 부서에서는 다행히 그런 일이 적어졌다.

이 책 '나는 왜 저 인간에게 휘둘릴까?'에는 전 X-팀장에게 휘둘리던 이전의 내 모습들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어 읽는 내내 조금 힘들기도 했다.  그때는 사실 내가 그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여전히 내가 잘못을 하기에 그 좋은 팀장이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해대며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다고만 생각을 했다. 이렇듯 사실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문제를 알면 답이라도 생각해볼 텐데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이전의 나와 같이 자신이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이 땅의 많은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끝)

+ 덧 : 남에게 휘둘릴 때 나타나는 사인


1)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
2) 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3) 그 사람이 자증 나거나 화가 난다.
4) 그 사람에게 당한 일이나 들은 말이 머리에 맴돌아서 혼자 끙끙댄다.
5)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말하기 창피하다.
6) 머릿 속에서는 '싫어'라고 생각해도 나도 모르게 '응'이라고 대답한다.
7) 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 사람 앞에 서면 머리로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말을 한다.
8) 그 사람 앞에서 나 답지 않은 말, 태도, 행동이 나온다.
9)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일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10)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꼼짝 못 한다.
11) 그 사람에게 나의 주장을 이해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12) 그 사람의 대화 전개에 가끔 놀랄 때가 있다.
13) 그 사람과 평범한 논의는 불가능하다.
14) 그 사람은 본인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어서, 가령 그 사람이 틀렸어도 지적하기 어렵다.
15) 그 사람이 타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6) 내가 하지 않은 일로 그 사람이 나를 탓한다고 느낀다.
17) 그 사람이 한 일로 그가 나를 탓한다고 느낀다.
18) 그 사람이 나를 얕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19) 그 사람이 나를 비웃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20) 그 사람은 나에게 호의를 보이지만 사실은 적의를 품고 있다고 느낀다.
21) 그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22) 그 사람은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23) 주변에서 내가 그 사람에게 속고 있다고 말한다.
24) 그 사람은 평소에는 웃고 있지만 때로는 표정이 급변해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한다.
25) 그 사람은 원래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했던 선물을 나에게 준 적이 있다.
26) 그 사람을 믿지 못할 때가 있다.
27) 나의 의심이 심해졌다고 느낀다.
28) 그 사람이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다.
29) 그 사람이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30) 나는 그 사람과 멀어지고 싶으나 그가 나를 멀어지게 두지 않는다.

- 5개 이상 : 그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을 가능성 존재
- 10개 이상 : 그 사람에게 확실히 휘둘리고 있음
- 20개 이상 : 지금까지 상다히 휘둘렸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