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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는 건축 - 한국의 레거시 플레이스
황두진 지음 / 시티폴리오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아파트와 재건축이 되었습니다. 어떤 지역에 어떤 아파트가 몇 억원 올랐다거나 재건축을 해야하는데 규제 때문에 어렵다거나 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아파트에는 안전진단통과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플래카드가 걸려있는데 안전해서 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재건축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뜻이네요. 다른 나라에는 수십년이나 수백년된 건물도 멀쩡하게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 아파트는 20여년만 되어도 재건축을 준비해서 30년이 되면 재건축을 시작하는게 공식처럼 된 것 같아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많은 건축물들이 있습니다. '은퇴 없는 건축' 의 저자는 나름 '레거시 플레이스' 라는 기준을 정해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있는 소중한 유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뭐니뭐니해도 63빌딩일 것입니다. 고층 건물이 별로 없던 시절에 한강 옆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빌딩은 그야말로 자부심이었네요. 특히 황금색이어서 해가 질때 더 반짝이는 데다가 직육면체 건물이 아니라 우아한 곡선으로 아래로 내려올수록 치마처럼 펼쳐져 마치 아름다운 귀부인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울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63빌딩을 필수 코스처럼 방문했었네요.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가장 높은 건축물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그래도 63빌딩은 단연 레거스 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 영도에는 조선소들이 자리잡으면서 한때 활기찬 섬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쇠락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영도에 크고 작은 카페들이 생기면서 다시 영도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바다가 보이는 카페 사진을 보면 정말 아름답네요. 영도는 섬이지만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차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최초에 영도 다리는 배가 지날때 다리가 들리는 도개교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되면 거대한 다리의 상판이 들려져 90도에 가깝게 세워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새롭게 다리를 개보수하면서 과거처럼 움직이지 않아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되면 영도에 가서 다리도 보고 카페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면서 쉬고 싶네요.
어릴때라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TV 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박물관이었을때 가봤었는데 처음에는 저렇게 웅장한 건물을 왜 부수는지 몰랐었네요. 현재 조선총독부 건물은 철거된 이후 첨탑만 독립기념관에 남아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많은 고통을 받았고 조선총독부는 이를 상징하는 건물인 데다가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어서 철거를 하는게 당연했을 것입니다. 반면 타이완이나 중국에는 당시의 총독부 건물이나 철도회사 건물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식민지 시절을 겪었지만 이를 떠나서 건물 자체가 튼튼하고 효용이 높았기 때문에 그대로 쓰고 있는데 서로 가치 판단은 다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없어졌지만 구 서울역은 오랫동안 기차역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이제는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통일이 되어 북한을 지나 유럽까지 연결된다면 다시 한번 구 서울역에서 기차가 출발하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갔을때 보이는 건축물에는 역사적인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레거시 플레이스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네요. 근처에 있지만 잘 몰랐던 건축물도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