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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 식민지 경성은 얼마나 음악적이었나
조윤영 지음 / 소명출판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는 1945년까지 30여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이렇게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한편으로는 독립국의 국민이 아닌 식민지인으로서의 사람들의 일상도 이어졌습니다. 조선은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중국과 일본 등을 제외하고는 나라의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는데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었던 일본의 영향을 받아 미국이나 유럽의 문화가 급격하게 유입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음악적 경성' 은 당시 경성으로 불렸던 서울을 중심으로 음악적 관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료를 곁들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때 모던보이, 모던걸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이 단어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암울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서양과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따라하면서 멋을 부렸다고 합니다. 해외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민지가 된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나타난 변화로 볼 수 있네요.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서양 악기를 파는 악기 전문점도 생겨났고, 독일의 악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우리나라로 가지고 와서 가르치면서 점점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도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악기 전문점이 있던 거리의 모습이나 연주회 홀을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당시 우리나라가 맞는지 잘 상상이 되지 않네요.
처음에는 아마추어 연주자 위주였지만 악기가 보급되고 연주자들의 수준도 올라가면서 1년에도 수십 차례의 전문 음악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종로에 있던 기독교청년회관과 일본인들의 거주지 근처에 세워진 경성공회당이 대표적인 연주회 홀이었으며 이외에도 미쓰코시 백화점, 화신 백화점 등 백화점에도 다목적 홀을 갖추면서 서양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네요. 이 홀에서 오른 연주자 중에는 크라이슬러나 하이페츠도 있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으로 연주 여행을 왔다가 식민지였던 경성도 끼워넣기로 들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떤 이유로든 당시 세계적인 유명 연주자들의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니 신기합니다.
하지만 서양 음악은 아직 사람들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태도에서도 현재와 차이를 보입니다. 요즘은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가보면 연주를 하는 동안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다가 악장이 끝나고 새로운 악장이 시작할때 잠깐 사이에 관객석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리고 다시 연주를 시작하면 조용하다가 모든 악장이 끝나면 박수를 칩니다. 과거에는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주 중에도 수시로 야유를 퍼부었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홍난파와 듀엣으로 활동하였던 피아니스트 김영환은 한 연주회에서 관객이 보인 반응 때문에 연주도 하지 않고 나갔고 이후 연주회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짐작이 되네요.
서양 음악이 대접을 받으면서 집집마다 비싼 피아노를 들여놓으려는 세태를 꼬집는 만평이나 흑백 사진이지만 화려해 보이는 연주회 홀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서양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읽어볼 수 있었네요.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는데 새로운 시각으로 경성을 바라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