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 하이쿠 전집 : 방랑 시인, 17자를 물들이다
마쓰오 바쇼 지음, 경찬수 옮김 / 어문학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학교 다닐때 문학 시간에 시조를 배웠었는데 지금도 몇 개 정도는 기억이 납니다. 시조는 정형화된 틀에 맞춰서 써야하는데 길이가 길지 않으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나 있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에 이방원이 지은 '하여가',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정몽주가 지은 '단심가' 는 어떤 긴 글보다 더 명확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표현하고 있네요.

우리나라에 시조가 있는 것처럼 일본에는 하이쿠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조보다 더 짧아서 5글자/7글자/5글자로 써야하는 데다가 지켜야할 규칙도 있네요. 하이쿠 시인으로 에도 시대에 살았던 바쇼가 유명한데 '바쇼 하이쿠 전집' 에서는 바쇼의 시와 함께 시에 얽힌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이쿠에서는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삭아 엎디네 / 세상이 뒤집어진 / 눈 인 대나무' 에는 '눈' 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많은 눈이 내려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대나무가 쓰러진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정적인 시로 볼 수 있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리대로라면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그 다음에 자식이 떠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정말 이 시처럼 세상이 뒤집어져 보일 것입니다. 시에 얽힌 내용을 알고 나니 부모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면서 숙연해지네요.

'고요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는 / 퐁당 소리' 는 바쇼가 쓴 하이쿠의 백미 중 하나입니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연못에 갑자기 개구리 한 마리가 몸을 곧게 펴서 뛰더니 이내 연못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구리가 연못에 뛰어든 뒤에는 표면에 잔잔한 물결만 남네요.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들면서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물에 뛰어들때 나는 퐁당 소리까지 마치 옆에서 들리는것 같네요. 멍하니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정적을 깨트리는 개구리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질것 같아요.

바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한 이후인 에도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쇼군이 일본 전역을 통치하고 있었지만 각 지역은 실질적으로 그 지역의 영주들의 지배하에 있어서 크고 작은 나라들의 연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은 요즘 다른 나라로 가는 것과 유사하게 많은 제약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쇼는 이러한 시대에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기록을 남기고 하이쿠를 지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하이쿠를 통해 바쇼의 행적에 대해서도 읽어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일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네요.

하이쿠는 적은 글자 개수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나 정서 등을 알고 있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하이쿠도 있지만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하이쿠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지 않고 절제된 단어로 틀에 맞추는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바쇼의 하이쿠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