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추리소설을 참
좋아했다.
요즘은
추리소설보다는 다른 종류를 책을 접하다 보니 아무래도 기억 속에 많이 생각나는 게 영화다.
<공모자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장기밀매가 인간을 저렇게도 만드는 구나!
돈을
위해서 별짓을 다하는 사람들 거기에 살아남기 위해 이 영화를 본 이후로 왠지 어딘가로 간다는 자체가 무섭고 공포 스러웠다.
물론
그 전에 본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특히나 밤에 돌아다니는 자체를 거부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이 생각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
책 『살인마
잭의 고백 』은
이런 생각들을 들게 만드는 책이다.
살인사건?
거기다
장기밀매?
그리고...공포...누굴까?
“소화기간에는
위,
장,
소장,
대장,
췌장,
간이
있습니다.
순환기관에는
심장,
비장,
신장이
있고요.
호흡기관이라
하면 폐,
비뇨기관에는
요관에서 방광까지 있을 테고요.
생식기관은
난소와 자궁이 있습니다만,
장기란
장기는 죄다 적출된 상태입니다.
잘
아실 테지만 사망 추정 시각이라는 게 직장直腸내
온도를 측정해야 알 수 있는 것인데,
이건
뭐 직장 자체가 없으니 ….
음식이
소화된 상태라도 알아보고 싶은데,
위가
있어야 말이죠.” P21
『살인마
잭의 고백 』은
책을 읽는 순간 어떻게 저럴 수가 범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공원에서 그것도 경찰서 근처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냥
죽음을 당한 것도 억울하고 무서운데 거기에 장기가 모두 적출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타살된
시체가 이렇게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린당한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범행은 이루어 졌고 범인은 혹 식인? 아니면 범인은 수법이 대단하고 아무나 할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 같은 업계종사자? 아니면 칼을 잘 다루는
사람? 그리고 범인을 수사하려는 경찰,
거기에
범인은 한두 곳의 매체에 편지를 보내왔다.
‘그녀의
장기는 가벼웠다.’
나는 시공을 넘어 다시 이 세상에
환생했다.
기바공원
사건은 내가 한 일이다.
솜씨가
굉장히 훌륭했다.
그녀에게는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이 일을 즐기고 있다.
-잭
P48
살인마 잭으로부터 이런 편지가
도착하고 당황한 경찰,
경찰은
시민이 무서움이 떨까 걱정되어 살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상태인데 이 편지를 받은 곳에서 방송에 내보내게 되면서 시민들은 공포에
떨게 만든다.
이런
것을 보면서 경찰들은 스스로 각본을 쓰고 스스로 연출하는 ‘극장형
범죄’가
아닐지?
그리고
이 범행이 들어나면 앞으로 모방형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이
태산인 가운데.
살인은
또 일어난다.
책을 받아서 읽으면서 이런 상상을
해본 건 아니다.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경찰들이 서서히 범인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나도 경찰들과 함께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아니면
이사람?
이것이
추리소설을 읽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은
내용을 알면 재미가 없다.
내용을
모르는 상태로 추리해 가면서 때로는 형사가 되었다가,
범인,
작가,
시민,
아니면
거기서 갈등하는 그 누간가가 되어 읽어 내려가는 게 스릴 넘치고 재미나다.
책속에
범인이 좁혀가는 가운데 등장하는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장기기증?
이것은
또 범인을 좁혀가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지?
솔직히
장기기증은 살아있는 상태인지?
아니면
죽은 상태인지?
내
생각으로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이의 몸속에 들어가 살아가는 것이니 산 것이다.
아니면
눈을 감고 숨이 끊어졌으니 죽은 것이다.
갈등이
전개가 된다.
그런데
나도 그 갈등 속에 빠져서 갈등하게 된다.
그냥
내 생각으로 어떤 사고로 인해 사람을 여럿 구할 수 있다는데 하면서 장기 기증,
이식
추진파에 한사람이 된 것 같다.
“당신은
무슨 근거로 뇌가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죽었다고 말하는 거죠?
어떤
단계에서 사람의 죽음을 선고 할 수 있는 건가요?
그것을
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에요.” P311
살인을 좁혀가는 가운데 등장하는
장기기증을 할 때 기증자들을 연결하는 사람,
그리고
기증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수술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병 의사,
그리고
아픈 딸을 둔 형사,
거기에
죽은 아들의 몸을 기증한 엄마,
기증받은
사람,
여러
사람들의 갈등 속에 이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더해 간다.
그
반전을 보고 시시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저렇게 범인이 등장하는 구나!
하는
사람도 나올 수가 있다.
장기기증을
받은 사람이 살아가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무조건
받는다고 다 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기
몸에 맞아야하고 합병증이 없어야하고 그리고 기증을 받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고 흥청망청 더 안 좋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이들을 죽음,
살인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살인마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기에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그리고
기증을 한 부모의 생각에 기증자에게 자기 가족의 일부가 전해져서 살아가니 자기 가족이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들이 눈에 그려지고 보여
진다.
“나
혼자만의 목숨이 아니에요.
그런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심장을 준 분 몫까지 ...
두
사람 몫으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해요.” P349
범인은 누군지
밝혀진다.
그런데
그 범인을 잡는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많은 깨달음
중에 하나가 자신의 오만함이 결국엔 가까운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며 후회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은
나 혼자서 내 맘대로 사는 세상이 아니다.
주변인들의
잘못을 많이 머라고 하지 말고 한번쯤은 잘 말해주고 대화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말이다.
잘못한
사람에게 더욱더 머라고 하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잘못이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느낀다.
보이는
인연과 보이지 않는 인연이 모두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내
앞에 있으면서 내 인연이 아닐 수도 있고 내 앞에 없어도 내 인연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인연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은 내 자신이 생각하고 내 자신의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나의 몫이라고
말이다.
불행이
아닌 행복의 인연들이 이어지는 세상이 되길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은 절대
일어나지 말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