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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 코펜하겐 삼부작 제1권 ㅣ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평점 :
토베 디틀레우센을 만나다~
며칠 아름다운 문장들에 빠져서 나의 밤과 새벽을 몽땅 그 문장들에 투자한다.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글을 쓰는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코펜하겐 삼부작 Ⅰ'어린 시절'은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중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책을 통해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함께 따라가 보는 여정은 중독에 가까운 몰입의 시간이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의 이야기와 '시'의 세계를 향해 간절한 감정들을 숨기고 살아가야 했던 그녀의 애환이 글 전체를 압도한다.
독자는 글 속에서 매혹 되고 그녀의 삶에 스며든다.
'어린 시절은 관처럼 좁고 길어서,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거기서 나갈 수 없다.'
글 문장들을 음미해 보는 시간은 독자들에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선사한다.
그녀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삶 속에서 태어난 '시'는 그녀를 시인으로 소설가로 인정받게 하는 모태가 되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아름다운 작업이다. 한 문장의 글로 전 세계 독자들을 감동 시키는
위대한 일을 한다.
디틀레우센의 글은 독보적인 아름다움 속에 그녀만의 바르고 냉정한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벌써 내 마음을 아찔하게 흔들어 된다.
'아침이면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내가 감히 만져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부드럽고 검은 머리칼 속에, 금세 사라질 듯 반짝이는 빛처럼 어려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던 소녀는 삶의 비뚤어진 사고의 길을 인내로 견디고
아름다운 여정으로 떠나는 의지를 선택한다.
어린 시절 사회주의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보던 책을 통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글을 깨우쳤지만 그 시대 여자들의 삶에서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다.
여자가 글을 쓰거나 시인이 된다는 말은 세속의 세상에서는 '금기어'로 자리 잡았지만
그녀는 불행 속에서 언젠가 자신이 시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나쁜 냄새처럼 몸에 달라붙는다.......
각각의 유년기는 특유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디틀레우센의 어린 시절을 따라가 보는 시간은 암담함 이란 단어로 표현해 볼 수 있다.
공장에서 해고를 당한 아버지로 인해 가족은 실업수당으로 겨우 하루를 살아가고 어린 그녀의 감정들을 이해해 줄 사람은 가족들 중에 아무도 없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어린 시절 삶에서 그녀는 항상 '시인'을 꿈 꾸고
습작 노트를 통해 결과물을 채워간다.
아버지가 없는 시간 집안에 다른 남자를 불러들여 갑자기 들이닥친 아버지를 피해 외간 남자를 옷장 속에 숨게 했다는 이야기를 이모와 서슴없이 나누는 어머니의 삶을 들으며 그녀의 어린 시절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은행의 도산으로 평생 저축한 500크로네 전재산을 잃은 그녀의 외할머니는 그 돈이 자신의 죽음 후 묘지로 세상에 다시 남겨지는데 쓰여지길 원했지만 그 꿈은 죽어서 한 줌의 가루로 항아리 안에 봉안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물려받은 재산은 살아 생전 할머니가 덮었던 이불 한 조각이다.
그 이불은 어린 외손녀에게 물려지고 그녀는 어두운 밤 그 이불에서 할머니의 냄새를 맡고 장례식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결국 쏟아내게 하며 그제서야 그녀로 하여금 무슨 일이(할머니의 죽음) 일어났는지 받아들이게 한다.
'초월적인 행복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헛된 노력을 한다.
나는 부풀어 오른 가슴 속에 달콤하고 갈망에 찬 샘 하나를 지니고 다니네!'
그녀의 어린 시절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종결된다.
'나는 진실을 드러나게 하려면 이따금씩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걸 안다.'
견지성사를 받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가정 형편과 그녀의 부모는 앞으로의 삶에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그녀는 10대의 나이에 가정부로 들어간다.
'내 어린 시절의 마지막 봄은 춥고 바람이 세계 분다. 먼지 같은 맛이 나고, 고통스러운 출발과 변화의 냄새가 난다.'
그녀의 어린 시절 삶은 이러했다.
'이 세상 속의 나는 이방인 같다.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짓누르는 문제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출간 후 50여 년이 지나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10 선에 선정된 그녀의 이 회고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그녀의 아름답고 냉정한 문장들 속에서 한참이나 길을 헤맬 것이다.
코펜하겐 삼부작 2권이 벌써 내 눈 알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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