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부드러운 볼>을 읽으면서 카스미와 함께 고통받았던 지난 20일간의 추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부끄럽게도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처음 대면하는 나로서는 애시당초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 대한 기대도가 무척이나 컸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것도 일본 미스테리계의 대표적인 작가인 만큼 얼마나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소설이 전개되고 사건이 해결될까에 100% 촛점을 맞추고 들어갔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그런 자세로 책 읽기를 시작했으니 초반부터 나의 요상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책은 보통 미스테리 대하듯 가볍게 대할 만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미스테리의 범주에서 벗어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생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또한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헤매는 과정의 기록이란 생각이 들었다. 카스미가 찾아헤매는 잃어버린 딸 유카는 단순히 실종된 아이가 아니라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존재이다. 카스미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유카는 언제나 투영되어 있다. 그녀의 과거의 거울이고 그녀가 행한 일들에 대한 인과관계가 무섭게 이어져가는 존재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카스미는 동정이 가기보다는 잔인한 여자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카스미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의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딸을 잃은 죄책감에 몸부림치지만 본인 스스로도 이미 그와 똑같은 고통을 부모에게 안겨준 여자. 그렇게 유카는 그녀에게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갚을 수 없는 업보가 된다. 여기에 우쓰미의 존재가 또한 재미있다. 우쓰미는 어떤 의미에서 카스미가 유카를 찾는 열쇠가 된다. 물론 살아있는 유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쓰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카스미는 결국 유카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게 된다. 그러나 천상 미스테리 소설만 좋아하는 나에게 '도대체 유카는 어떻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소설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백인과 흑인이 달라도 모두가 사람이듯이 이 소설 역시 미스테리 소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미스테리 요소는 도대체 무엇일까? 작가는 유카의 실종의 실마리를 우쓰미와 카스미의 꿈, 그리고 마지막 유카의 독백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과연 이 중에 답이 무엇일까?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흥미가 간다. 답이 없기에 내가 내린 결론이 답이라면 좀 우습지만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사건이 용의자가 누가 되냐에 따라 사건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범인의 사고가 무척이나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종이라는 결과는 같지만 그 사건이후로 수없이 달라져 가는 사람들의 인생...모두가 용의자이고 모두가 그에 따른 변화의 값을 치루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방정식이 아닐까 고민해 본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들의 하나같은 마음, 바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주는 것이겠죠? 아빠나 엄마나 노심초사 우리 아이가 다치지 않을지 혹여 감기나 들지 않을지 하루같이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신종 인플루엔자 같은 아빠로서 입에 담기도 싫은 질병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선 아이들이 조그마한 재채기 한번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곤 하죠. 병원! 솔직히 어른인 저도 가기싫은 곳입니다. 하물며 애들은 얼마나 낯설고 무섭겠어요? 제가 어렸을 때 골목길 약국에 붙은 간호사 포스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이라고나 할까요? 말도 채 떼지 못한 아이들도 이러한 두려움이 있나 봅니다. 하나같이 병원에 가면 본능적으로 울고 싫어합니다. 이럴 땐 방법이 없죠.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과자를 사주던지 장난감을 사주던지(그래서인지 큰 개인병원엔 항상 수퍼에서 장난감을 팔더군요^^) 말이 통하면 열심히 괜찮다고 설명하고, 심지어는 도리어 더 화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생기기전에 교육으로 애들의 병원에 대한 공포를 없애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 참 많이 해보셨죠? 제가 이 책을 신청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둘째왕자(3살)도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병원만 가면 아빠를 힘들게 하기에 내가 먼저 나서서 아이와 교감을 이루어보자는 기대를 이 책에 많이 걸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책이 도착하고 아이에게 책을 쥐어주자 왕자는 흥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참고로 저희 아이는 이제 막 말을 떼서 대화가 되고 있는 단계입니다). 다리에 앉히고 책을 펴며 저도 책 안의 내용이 어떤 것일가 무척이나 궁금해지더군요. 애 둘을 키우다보니 그림책을 수도 없이 봐 온터라 식상하지 않을 까 걱정도 많았는데 일단 그림체가 무척이나 깔끔하고 질리지 않았습니다. 글씨체도 깔끔하고 종이질도 좋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책을 감상하고 있는데 왕자는 책 속표지의 마스크니 주사기니 청진기 등을 연신 가리키며 바람빠지는 소리로 '마시키,쥬샤기,천진키...' 등등 불러댑니다. 적당히 '그래, 잘한다' 추임새를 넣어주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바로 다음 장으로 손이 가더군요. 일단 시작은 성공입니다. 책의 줄거리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간단합니다. 아이가 병원가기 싫어서 꾀를 부리다가(아이는 여러가지 상황에 맞는 동물로 변신해서 더욱 교육적인 효과가 높아집니다) 결국 생각만큼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용기를 갖는다는 내용^^ 어른들이 보면 정말 아이같은 얘기이지만 저는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이런 내용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많이 느꼈기 때문에 매우 좋은 시도라고 느꼈습니다. 동물들의 특성도 잘 살린 것도 좋았습니다. 이 책이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름을 우리 아이 이름으로 바꾸어서 읽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이입이 참 잘되더군요. 애들은 자기 이름을 꽤 빨리 알기 때문에 이름을 불러주면서 다소 우스꽝스럽게 거북이나 사자 등 동물의 흉내를 내며 글을 읽어 내려가니 일단 내용을 떠나 깔깔 거리고 난리가 납니다. 그리고 병원부분이 나오자 '병워언, 의샤...'해대는 데 갑자기 왕자의 얼굴이 다소 긴장되 보입니다. 이런 부분이 특히 부모로서 중요한 대목이죠. 최대한 목소리를 굴려서 애를 재미있게 해주고 주사기로 주사를 맞는 순간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콕 찌르며 '어? 하나도 안 아프네'하고 얼러주니까 웃으며 '안 아퍼 헤헤헤' 합니다. 책을 2~3번 읽고는 바로 병원놀이에 돌입해 다시한번 학습을 시켜주었습니다. 가짜 주사기도 처음에 안 맞으려 하던 왕자가 이번에는 엉덩이를 허락해 주더군요. 가볍게 주사한방 놓으니 하는 말 '어? 안 아푸녜' 연습상으로는 일단 성공입니다. 책 읽는 보람이 느껴지더군요. 앞으로 병원에 가면 과연 울지 않을까요? 병원갈때 이 책을 한번 들고가볼 작정입니다^^ 오늘도 집에가면 다시한번 같이 읽어봐야 겠습니다. 울고 안 울고를 떠나 책을 통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