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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ㅣ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평점 :
점점 독서에 흥미를 잃어가는 딸 아이가 책의 표지를 보더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체야"라며 나보다도 먼저 덥석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그림도 중요하지만 일단 아이들의 눈에 띄어야 읽힐 수 있으니 이번 개정판은 보다 더 많은 아이들의 선택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리즈의 시작인 <너도 하늘말나리야>
『 각자의 이유로 마음의 문을 닫은 미르, 소희, 바우.
우연히 서로의 상처를 본 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볼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갑자기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 미르는 모든 상황이 낯설고 화가 난다.
미르는 여기 오기까지 모든 걸 마음대로 했던 엄마가 침대랑 책상 놓을 자리를 보라고 하는 게 어이없었다. 자기 인생인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런 것뿐이라는 사실도 억울했다.(12쪽)
'난 절대로 행복해지지 않을 거야. 날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엄마도 나만큼 힘들어야 돼.'(32쪽)
"와 진짜 어이없다. 엄마도 내가 싫어하는 거 다 하잖아!"(43쪽)
미르의 마음을 들으며 우리 딸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스마트폰 그만하고 책 좀 읽어~
입고 갈 데도 없는데 무슨 옷을 또 사니?
뭐 이렇게 사달라는 게 많니!
방 정리 좀 하고 깨끗이 씻고 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 나의 잔소리에 아이는 종종 "엄마는 맨날 엄마 맘대로야!"라고 억울해 한다. 내가 보기엔 지 맘대로 하는 게 훨씬 많구만! 뭐, 나도 어릴 때 늘 빨리 어른이 되는 게 소원이었으니까 이해는 한다.
하지만, 미르 엄마가 미르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그저 '네가 엄마를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이해해 줄 때가 오길 기다' (185쪽)리기 보다 먼저 상황 설명을 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중학교 때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예민한 그 때), 1층엔 가게가 있고 2-3층에 살림집이 딸린 시장 한복판으로 이사를 했다. 다른 것 보다 화장실이 너무 안 좋았던 그곳.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엄마가 집에 계신 것은 좋았으나 씻기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쪼그려 앉아 용변을 봐야하는 그 집이 난 너무 싫었다.
게다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이사간 그 곳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 IMF가 터졌고 가게는 점점 텅 비는 날이 많아졌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기 좋아했던 나는 엄마에게 툭하면 만원만, 이만원만~ 하며 용돈을 타기 일쑤였는데 아무말 없이 주던 엄마의 표정에 시름이 점점 깊어져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엄마의 장부를 보게 되었는데, 하루 매출이 몇 만원이 고작인 날이 허다했다. 그 때의 충격이란...
결국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가게를 접고 빚만 떠안은채 20평이 채 안되는 빌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자라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이 때였다.
'그 때 나에게 우리집 경제 상황을 좀 알려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은 부분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서툴렀던 가족이기에 지금 얼마를 벌고 있고, 얼마의 빚이 있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나 역시 경제상황을 이해하는데 무지했고, 그저 엄마 아빠의 뜻대로 마음에 안 드는 집,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싫기만 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한 번씩 "엄마 아빠는 얼마를 벌어?" "우리 집은 얼마야?" 라고 물을 때가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 줘도 되나?'라는 고민을 하게 한다. 특히 아들이 "부자 형이야." "걔네 집 부자야~ 용돈을 많이 받아"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 때문에 엄마의 월급에 실망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 해 준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판단을 믿으면서. 그리고 덧붙인다. "너희는 더더 좋은 방법을 찾아서 더 많이 벌고 자유롭게 살아"라고.
'오백 살이라고?'
이제 열세 살인 미르는 얼마큼 오래 살아야 오백 살이란 나이를 먹을 수 있는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 세월 동안 한 자리에 붙박인 채 서 있었을 걸 생각하자 가지 하나하나가 나무가 겪은 일 같아 보였다. 그러자 지금 벌어진 일이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얼핏 스쳐 갔다. - 28쪽
나도 마음이 힘들 때 넓디 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위안을 받곤 한다. 우리 아이들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자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날 바라보고, 감싸주고 있으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일찍 철이 든 소희.
나는 아빠의 죽음이 할머니에게 남긴 상처를 지켜보며 자랐다. 그리고 엄마와도 헤어졌다. 죽는다는 건 그 사람만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함께 잃는 일이다. -81쪽
'상처 입은 조개만이 진주를 키울 수 있다.'
할머니가 인생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고 했다. 비 오는 날도 있고 눈보라 치는 날도 있다고 했다. 그런 길을 지나가 봐야 평평하고 넓은 길을 고마워할 줄 알게 된다는 거다. -89쪽
소희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사고로 아들을 잃고 숨이 멎을 것 같이 괴로웠지만, 며느리 마저 떠나고 아들이 남긴 소희를 키우기 위해 살았다는 할머니. 지혜롭고 따스한 할머니 덕분에 소희는 '혼자만의 얼굴을 본 사람이 가져야 하는 아주 작은 예의'(75쪽)를 챙길 만큼 사려깊고, '아무래도 내가 미르보다 더 마음 부자인 것 같다.'(94쪽)라고 말할 만큼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자랐다.
소희가 작가가 되어 쓴 글에는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은 통찰이 있을까. 그녀의 앞날이 매우 궁금하다. 얼른 <소희의 방>을 읽어야 한다!
엄마가 죽고 마음을 닫아 선택적 함구증에 걸린 바우.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미르를 보며 점점 상처를 치유해 간다. 그토록 소중한 엄마를 아빠가 잊어가는 것 같아 화가 나고 슬프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엄마와 다를 뿐 아빠 역시 자신을 사랑'(140쪽)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며 마음을 열고 말도 하게 된다.
"엄마 요즘 머릿속에서 생각이 땅속의 감자나 고구마처럼 줄기를 뻗으며 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생각들을 엄마에게 이야기하듯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어요."(150쪽)
미술을 통해서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바우는 더 깊은 눈을 가진 아이가 되었을까. <숨은 길 찾기>에 담긴 바우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바우가 서울로 떠나는 소희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 이라며 하늘말나리 꽃그림을 선물해 준다. 소희는 "너희들도 하늘말나리야!" 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동네의 진료소와 느티나무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지었다는 작가님. 그저 놀라움 따름이다.
청소년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 때의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며 다독여 줄 수 있어서 위로 받고 지금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이렇게 좋은 책이 아이들에게 더더 많이 읽혀서 자기를 믿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 기억하고 싶은 글귀
미르는 활기차게 움직이는 그 아이가 어쩐지 신나거나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내 마음 때문일까. 이 세상 무엇이든 눈이 먼저 보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눈이 먼저 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마음이다. -39쪽
"나는 나랑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아.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난 내게 물어보곤 해."
자기가 밉고 싫거나, 자신에게 믿음이 없으면 그러기 힘들겠지요. -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