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일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전혜진 지음 / 구픽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가 뉴스화 되는 한국에서 임신한 여성들이 어떤 수난에 처해 있는지 실제 두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의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슈를 여성들의 경쾌한 현실적 수다로 풀어가며 재미와 문제의식을 함께 전달하는 작가의 역량이 뛰어난 작품. 』

엄방에 서평 이벤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위의 소개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그간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기대가 됐다. 엄방을 통해 이 책을 먼저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

출생부터 성인까지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풀어내어 많은 공감을 얻은 책이 <82년생 김지영> 이라면, 이 책은 임신 - 출산의 과정에서 ('시월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음에도)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감정에 휩싸이고 사회적으로 폭력을 당하는지, 좌절을 반복하는지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이 아니다. 여성이 엄마가 되어가는 극한 체험 르포다.


줄거리는 20년지기인 35~40세의 네 명의 친구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며 건강과 커리어 등의 고난과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22년지기 38세 나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하는 이유로 다음 구절을 말하고 싶다.

배워야 아는 고통, 배워야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 세상에는 더 많다.

그래야 최소한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123p

난임의 고통

나는 결혼하자마자 (예상치 못하게) 아이가 바로 생겼고 임신 과정도 비교적 수월했다. 첫 아이 출산 3년 후에 자연스레 둘째가 생겼고 역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이를 낳았다. 27살과 30살에, 요즘 시대에서는 굉장히 빠른 출산이었기에 주변 친구들 중에는 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런 임신-출산 과정이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커리어를 위해 임신을 미루고 싶다는 친구에게는 덜컥 아이가 생겨 버리고, 애타게 아이를 기다리는 친구들에게는 오랜 기간 아이가 생기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어렵게 아이를 가졌는데 조산을 해서 미숙아를 낳아 마음 고생을 하고 아기들도 갖가지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기를 낳으라고만 하지 왜 어느 누구도 이런 것들은 알려주지 않는거야. 누가 임신-출산을 아름답다 했어. 란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여전히 아이를 갖지 못하고 애태우는 친구가 있다. 우리 아이들을 너무나도 예뻐하던 그 친구. 몇 년 전 우리집에 놀러왔던 날, 그 친구는 아이를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었다. 회사 출근 전에 2시간 거리의 병원을 오가는 일, 매일 부부가 직접 자신의 배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 상황, 어마어마한 주사 비용 등... 그 때 나는 위로를 한답시고 여러 말을 해 주었던 것 같은데 짐작만으로 건넨 나의 말들이 혹여나 상처가 되진 않았는지 걱정이 됐었다.

소설 속 선경을 통해 난임으로 힘들어했던 친구들의 일상과 심정이 고스란히 읽혀지며 마음이 아팠다. 지나온 날들에 무지함속에 뱉어진 나의 말들이 어쩌면 그녀들에게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너무나도 미안했다. 내가 감히 상상도 못한 난임의 고통이었다.

같은 여자여도 겪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모르는데 남자들은 오죽할까. 지금보다 훨씬 어렵게 살던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밭일하며 아이를 기본 다섯명씩 낳아가며 살아내신 윗세대의 어르신들은 또 어떠할까.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서 다수가 알았으면 좋겠다. 쉽게 '남들 다하는 거'라고 말하기 전에 개개인의 고통과 상황이 다를 수 있음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임신기간의 고통

가장 잘 알려진 힘듦은 입덧이다. 그런데 TV에서 임신을 확인하며 "욱-" 한 번 하는 것은 정말 일도 아니었다.

냉장고 근처만 가도 속이 울렁거려 좁은 신혼집을 떠나 넓은 친정에 가서 지냈던 친구.

8달 입덧으로 고생했는데 살만해 지니 소양증이 찾아와서 온몸이 가려워 잠도 제대로 못잤다는 친구.

10달 내내 입덧이 너무 심했어서 둘째 생각은 꿈도 못 꾸겠다는 언니.

만삭까지 출근을 하며 지옥철 안에서 울렁거려서 중간에 여러 차례 내려서 쉬었다가 회사에 갔다는 친구.

입덧이 너무 심해서 먹지를 못하니 입원해서 수액을 맞았다는 지인들...

배가 점점 불러와서 숙이는 게 힘드니까 씻는 것도 힘들고 불편하다.

쌍둥이를 임신했던 형님은 막달은 거의 소파에 앉아서 겨우 잠을 잤다고 했다.

만삭 때는 똑바로 누우면 숨이 차고, 옆으로 누우면 아기가 쏠리니 도 아프고 불편했다.

자다가 몇번씩 소변이 마렵고, 다리에 쥐가 나서 수시로 잠을 깬다.

몸이 무거우니 무릎이 아프고 계단을 오를 때도 다리가 후덜거렸다.

임신기간 동안 진행되는 갖가지 검사들은 얼마나 사람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지.

"그럼 만약에, 심각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성인이 되어도 자력으로 생존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낳으라는 거네요? 그럴거면 왜 혈액 검사며 양수 검사를 하는 건지." (183p)

경제적 고통

임신 중에 받아야 하는 검사들은 어찌나 많은지.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고운맘 카드로는 택도 없다. 게다가 노산인 산모들은 더욱 정밀한 검사와 추가 검사를 요구하니 비용은 더 올라간다. 출산할 때 드는 마취, 주사 비용이나 입원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여기에 난임 시술까지 더해지면 수십 배는 더 올라간다. 돈 없으면 애도 못 낳는 지금의 현실은 난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어쩌면 두 번 죽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출산율만 높이자고 갖가지 탁상공론만 펼치지 말고 진정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해 주었으면 좋겠다.

뿐만아니라 출산의 고통과 출산 도중에 죽거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는 사람도 많다.

출산 후에 겪는 신체 변화와 정신적 혼란은 또 어떠한가.

모유 수유가 당연시 되지만 그 과정도 정말 쉽지 않다. 아기를 안고 내 가슴에 밀착시켜 젖을 물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힘들게 쌓아올린 나의 경력이 단절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기분, 저절로 정리되는 인간관계, 육아 스트레스 등등...

여자들이 이 많은 걸 감내하는 동안 우리 사회나 남자들은 얼마나 많은 이해와 공감을 해 주었던가. 공감은 학습이라고 했다.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묻고 또 묻고 들어야 한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길 바란다. 여성들의 (책에서는 특히 일하는 여자)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자신의 삶을 얼마나 많이 포기하고 선택해 온 일인지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미리 알기는 알고 시작해야 맞는게 아니었을까요?" (414p)

+ 그런데 왜.

신은 여자의 몸을 통해서만 인간을 낳을 수 있게 했을까.

인간의 몸은 노화할 수밖에 없고, 호르몬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 정자는 계속 만들어지는데, 난자는 태어날 때 미성숙한 난포를, 아예 일정량을 딱 갖고 태어났다가 호르몬의 자극을 받아서 하나씩 성장해서 배란되고요. 노화가 진행되면 이 난자의 개수도 줄어드는데, ... ..."

(54 ~ 55p)

+ 마지막으로 책에서 언급된 "가족의 형태"에 관한 고민이 공감되어 덧붙인다.

만약 여건이 된다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엄마와 아빠와 아이라는 3인, 또는 4인가족 모델이 아니라,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태어나 자랄 수 있을 텐데.

결혼하지 않고도 원한다면 아이을 낳을 수 있고,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느겼을 때 좀 더 자신과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고.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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