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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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정황이라면, 처절함은 차마 손댈 수 없는 정황이며, 처연함은 눈뜨고 볼 수도 있고, 손을 댈 수도 있지만, 눈길도 손길도 효력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있는 상태다. - P63

그래서 슬픔은 무방비 상태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을 때에 슬픔은 깨달음처럼 찾아온다. - P79

마지노선을 한없이 낮추거나 한없이 높이는 사람을 관전하는 일은, 내가 어느 쪽으로도 나의 마지노선을 옮기지 못하는 쩨쩨함과 근근함에 환기를 준다. - P85

이제는 다가갈까 기다릴까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게 됐다. 이것은 살아온 날들이 만든 현명한 태도이지만은 않다. 정념의 불꽃을 다스렸다는 절제 또한 아니다. 소중한 것들이 내 품에 들어왔던 기억, 그 기억에 대해 좋은 추억만을 갖고 있진 않기에,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종의 비애인 셈이다. ... 지켜보고 있음이 꽤 오랫동안 변치 않는 은은한 기쁨을 선사해줄 거라는 패배 비슷한 믿음도 또한 있다. 그러므로 바라던 것이 나에게 도래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바라던 것들이 줄 허망함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 ‘외면‘이란 감정의 부축을 받으며. - P111

오지 않을지도 모를 그때를 위해서 혹은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기에, 마음에 들어온 사람을 이토록 지켜만 본다. 이 사업은 많이 적적한 일이지만, 이 적적함의 속살에는 견딜 만한 통증을 수반하는 훈훈함이 있다. - P112

엄살을 안으로만 삼켜온 자는 엄살하는 자의 엄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며 무의식중에 내뱉곤 하는 ‘으차!‘ 하는 기합과도 같은 그 엄살을, 오랜 숙고 끝에 내미는 구조의 요청으로 해석해버리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 P149

솔직한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과 미워한다는 말을 번복과 반복으로 발설한다. 반면, 정직한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을 정리하여, 사랑하지만 미워한다거나, 밉기도 하지만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줄 안다. ... 믿음을 주겠다는 신념 아래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정직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더 믿게 되는 것은 정직함이지만, 진실로 더 믿게 되는 것은 솔직함이다. - P200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는 않아서, 헛일했다는 공허함으로 뱃속이 허하게 채워진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지름길을 알려주던 "술, 너마저....." 하는 배신감. 이 기분은 최후까지 믿었던 자에게 당하는 배신과도 같이 내 자신을 오롯하게 만든다. - P259

봄날의 경이에 예민해지는 자. ‘그는 사랑을 아는 자다‘ 라고 조심스레 적어본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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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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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곤의 나무를 쏘아보다, 위스키를 꿀꺽 삼켰다. - P13

"다녀왔어."
돌아보며, 어서 와, 라고 말할 때의 쇼코의 웃는 얼굴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쇼코는 절대로 반갑다는 듯 달려나오지 않는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다니 꿈도 꾸지 않았다는 듯이, 놀란 얼굴로 천천히 미소짓는 것이다. 아아, 생각났다, 는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나는 내심 안도한다. 내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아내는 나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 P32

이런 결혼 생활도 괜찮다, 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 불현듯, 물을 안는다는 시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 P56

환자가 죽으면, 무츠키는 한동안 멍하게 지낸다. 식욕도 없어진다. 무츠키 자신은, 전문의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반대로 그 환자를 나무라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선량한 무츠키를 슬프게 만들다니.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나는 그 옛날의 불량 소녀들처럼, 그 사람(의 혼)을 체육관 뒤로 불러내어, 슬쩍 쏘아붙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죽고 싶으면 너 혼자서 죽어, 무츠키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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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팝업북)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 제라르 로 모나코 만듦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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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B612호 소행성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이토록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 번호까지 일러주게 된 것은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이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은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묻지를 않는다. 그들은 "그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앤 무슨 놀이를 제일 좋아하지? 나비를 수집하니?" 하고 묻는 법이 절대로 없다. "나이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지?" 하고 물어대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그 친구에 대하여 안다고 생각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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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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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슬랭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그의 친구처럼 기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했다. 그리고 르네 역시 햇볕을 몹시 쬔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가끔씩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에 아주 행복해 한 적이 있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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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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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원래 이나리 신은 섬기기도 쉬워서, 소원한 일을 소원대로 들어 주면 약속한 만큼 보답을 하면 된다고 하므로, 그 신이 정말로 영험이 있는지 어떤지는 젖혀 두고 이상한 교리가 없는 만큼 헤이시로도 흔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방방곡곡 없는 곳이 없는 사당이므로 절을 하는 데 큰 수고가 들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 P140

오쿠메는 요란하게 웃더니 두 손으로 헤이시로를 쳤다.
"나리도 엉큼하시긴. 세상 사람이 다 저 같은 년이면 아무 일도 안 돼요. 쇼군님 계시는 성도 무너져 버릴걸요. 저 같은 건 드물게 있으니까 좋은 거죠. 뭘 모르신다, 나으리."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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