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61쪽까지만 읽고 꽂아두었던 책을 부랴부랴 꺼냈다. 김소연의 신간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새 책이 오기 전에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느껴져서, 하루가 바빴다.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말았기 때문에 더더욱 숙제 같았다.가끔 한 문장씩 북플에 밑줄긋기를 하고 책에서 본 책들을 찾아 ‘읽고 싶어요’ 하며 읽으니, 독서 중계를 하는 것 같다. 용감하게도, 독서 중계라는 장르를 개척할 수 있을 것만 같다.<사랑과 희망의 거리> 때문에 김소연을 좋아하게 됐고, 이모를 맞이하러 현관 앞으로 나와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선 채 “나무 같았지요?”라고 말했다던 작가의 조카 때문에 충성을 맹세했다. 작가를 뺀 세상의 전부는 지루했지만, 읽고 나니 후련하다. 김소연은 지루할 때조차 좋구나.
오래 책을 읽고 있으면, 서서히 어둠이 깃들어와도 그래서 온전히 깜깜해져도 글자가 보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일어나 형광등을 켜고 무슨 일이 일어난 듯한 얼굴로 방안에 오래 앉아 있었다. - P177
한 번도 내 방은 반짝거리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손수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사물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때마다 지니가 떠오른다. 이 수고로움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남아 있다. - P119
언제나 불의는 홀로 완성되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고,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구성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자기 정당화,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 각자의 선의에 입각한 타협이 각자의 침묵을 만들었다. 이것들이 결합하고 서로 도와야 불의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나는 결코 아니었다고 단언하기에는 내가 속한 준거집단에 나는 긴밀하게 연결된 채 살아왔다. - P81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끝까지 묻는 일. 이 질문은 존재에 대한 사색이 아니다. 생존 가능성에 대한 타진이다.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왜 요구하면 안 되는지를 따지는 사회적인 질문이다.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차원에서 던지는 질문. -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