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 - 나답게 헤어지고 나답게 다시 사랑하면 돼
조니워커 지음 / 허밍버드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다시 피어난 사랑이 있다.

어쩌면 일어설 수 없는 실패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을지 모르는 이혼 후에 새로운 문을 열고 나가기를, 또 들어가기를 선택한
조니워커의 에세이, 『다시, 사랑』.

정신 없이 빠져들었던 두 시간,
그만큼이나 얇아진 나의 인덱스 플래그,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마음에 남았다.



📖
자신의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소비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작가, 조니워커. 그런 그가 솔직하게 풀어낸 이혼 후의 이야기들.

고향을 떠나 이 지역, 저 지역 타지 생활을 10년 째 하고 있는 나도 종종 고향 친구들을 만날 때면 '이 친구들과 그냥 여기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그들이 종종 따로 시간을 보낸다는 걸 알고 난 후로는.

물론 지리적으로 멀기에, 불가능하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친구, 그냥 하루의 끝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 한잔할 친구가 없다는 게 더욱 아쉬운 요즘이다.

작가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문을 두드린다.

똑똑.

어디엔가 있을, 인생의 친구를 찾아서.



🥃
— "전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상대방을 좋아해서 연애한 적은 있지만, 그게 사랑은 아니었다 싶거든요. (...) 나중에 알게 된 거죠, 아, 내가 사랑을 느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느끼기 힘든 사람이겠구나 하고요." _p.34, K의 말

모임에서 만난 K, 또 다른 모임의 D,
처음부터 직진만 하던 T.

마치 연애 프로그램의 한 주인공처럼 여러 인연들이 작가의 곁을 맴돌고, 스치고, 붙잡는다.

그리고 다시, 사랑.
더 이상 영원한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인간관계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사랑. 그걸 시작한다.

"사랑은 날 지옥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내 삶을 빛나게 해 줬으니까." _p.107



📘
새로운 도전을, 시작을, 사랑을 망설이는 이들이
꼭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책, 『다시, 사랑』.

나도 언젠가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그럴 마음이 든다면 다시금 꺼내 읽어보리라 다짐하며 책에 플래그를 잔뜩 붙인 채 책장에 고이 꽂아본다.

"나 자신에게도 다짐해 본다. 다시 시작해 보자고. 그 끝이 결국 또 이별이더라도 사랑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자고."_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미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 붙은 '검은과부거미섬'의 최남단에 위치한 터널, 그 깊숙한 바다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무피귀'라는 괴물들을 피해 해저 터널에서 41년간 살아온 거미줄 마을 사람들. 그러나 그 봉쇄가 완벽하지 않았기에, 바닷물이 터널로 유입되어 식수가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에 밖으로 나가 거미줄 마을 사람들을 아예 '섬 밖으로' 탈출시키려는 다형. 열여섯 다형의 손에 거미줄 마을 사람들의 미래가 달려있었다.

거미줄 마을 사람들은 밖은 무조건 위험하고,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며 그 어두운 지하에서 41년을 살았다. 하지만 다형이 만난 육지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
거미줄 마을의 모습에서 디스토피아 SF가,
무피귀와의 추격전에서 액션 영화가,
그리고 '생존'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수많은 현실이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도 거미줄 마을의 작은 설정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자전거를 돌려서 유지하는 전력 공급, 대소변으로 유지하는 밭, 고양이 사냥꾼과 조련사,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보급원들(육지로의 유일한 통로인 환기팬 사이로 나가기 위해), 단백질 보급원으로 쓰이는 구더기를 키우는 장의사까지.

개인적으로는 무피귀를 묘사한 부분에서
<진격의 거인>의 그 거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생동감 넘치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
"현실에 눈 감은 이에게 입혀질 수의일 뿐이라고요." _p.9

겨우 열여섯. 다형에게 떠넘겨진 짐은 너무 무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선택을 하고, 모험을 떠나는 다형.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세상. 다형의 모험은 검은 과거를 닫고 또 다른 곳으로 뻗어나간다.

우리 모두가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하듯.

영상화, 혹은 웹툰화되어도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시간 순삭의 생생한 작품, 『터널 103』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이야기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단지 어렵기만 했던가요? 또한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당신은 혹시 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고 있었던가요? (...)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떠한 꿈이든 새로운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우리는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_p.198, 에바 부인


📖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영원한 고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문예춘추사 세계문학으로 새로운 번역의 옷을 입고 출간되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고 번역의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만족스러운 번역본을 찾기 위해 출판사 별로 4권을 읽은 적도 있어서,
문예춘추사의 데미안 소식이 더욱 기뻤다 :)


🍃
데미안에서 유독 좋아하는 몇 구절은 소장하고 있는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읽었는데, 이『데미안』은 보다 감성적·서술적으로 극을 전개하고 있었다.

특히 싱클레어의 떠나간 지도자, 피스토리우스를
두 번역가가 전혀 다르게 해석한 점이 흥미로웠다.
첫 데미안을 읽으며 상상했던 피스토리우스와
180도 다른 인물이 되었기에.

그의 대사 한 구절을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다.

-
"대다수의 사람이 가는 길은 가기 쉽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힘든 것이지. 그렇지만 한번 가보기로 하세." _p.158, 문예춘추사

"대다수가 가는 길은 편하지만 우리들의 길은 힘든 거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시다." _p.166, 더스토리
-

개인적으로는 피스토리우스가 싱클레어보다 나이가 많고, '지도자'라는 역할을 맡고 있기에 문예춘추사의 번역처럼 평어를 사용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기에 비교하며,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


🪺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이고, 하나의 길을 가는 시도이며, 하나의 작은 여정을 암시하는 것이다. 일찍이 어느 인간도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각기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려고 어떤 사람은 우둔하게, 어떤 사람은 명료하게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한다." _p.8

데미안에 대한 각종 해석이 존재하지만, 내가 생각한『데미안』은 결국 자아에 관한 이야기다.

불안정했던 꼬마 싱클레어는 유독 어른스러워 보이는 데미안이 되고 싶었고, 이윽고 그 자아는 에바 부인의 얼굴을 하게 되었으며, 끝내 싱클레어 본인의 모습을 찾아간다.

알을 깨고 나와 새 세상을 맞이하고자 한다면 응당 그 정도의 노력과 고통, 방황은 감수해야 하는 거겠지.

그러니 오늘도 길을 걷는다. 뚜벅뚜벅.
이러나저러나 뚜벅이 신세는 벗어나지 못하여 한없이 느리지만, 돌이켜보면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운 길이 될 테니 :)

나의 세상을 깨고 날아갈 그날까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
디터 람스 지음, 최다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깥에서 우리 세상을 관찰하며 우리가 세상에 해놓은 짓을 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틀림없이 인류와 삶에 대해 이와 똑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겁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_p.151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무려 1955년부터 1995년까지 40년간
독일의 가전 브랜드 브라운(Braun)에서 근속한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책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

그가 한 강의에서 소수의 제자와 동료들을 대상으로 했던
이 이야기를 동료 디자이너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책으로까지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디자인'이라는 말도 정착되지 않아서
'조형 설계(Formgestaltung, 당시에 디자인을 칭하던 용어)'라 부르던 시대부터 시작한 그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이야기가 무려 A4 판형의 154페이지 가득 담겨있다.


🟧
"특정 물건의 미적 가치는 튀는 형태와 색상이 주는 자극이 아니라 조화에서 우러나는 평온함에서 비롯된다." _.p.141

1950년대부터 시작된 브라운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현대 생활 곳곳에도 녹아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애플, 드롱기 가전들, 오늘의 집만 열어도 나오는 수많은 미니멀 제품들, 심지어 네이버 쇼핑에 '디터 람스'라고 검색만 해도 수많은 미니멀 제품들이 등장한다.

'디터 람스' 그 이름 네 글자는 몰랐을지언정,
우리는 그가 정립한 미니멀리즘 세계에 살고 있다.


🕯
"기나긴 디자인 역사 속에서 내게 영감을 주거나 내 신념이 강해지도록 도와준 무언가가 전혀 없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일 터다. 요즘 많은 디자이너가 역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내게는 결점으로 보인다."_p.147

학교에서 디자인의 역사를 자꾸만 가르쳤던 이유가 이걸까? 아쉽게도 그때는 그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시키니까, 과제를 해야 하니까, 시험을 봐야 하니까 했고, 그렇게 잊었다.

디터 람스가 정한 디자인의 열 가지 법칙 또한 그렇다. 1부터 10까지 한 줄씩으로만 배웠던 그 원칙이 이 책 154페이지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


✅️
삶에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생각하는 디자인,
'지속 가능한 가치'를 고민하는 디자인.

A4 양장본인 이 책, 대체 어디에 꽂아놔야 하지?
읽기도 전에 고민부터 했던 나인데,
다 읽은 지금은 고민 없이 책장 한 가운데 액자처럼 놓아놨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기에.

세상을 보다 더 조화롭게 만드는
디터 람스만의 생각과 가치가 담긴 책,
위즈덤하우스의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 5
강영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알고 있는,
시인 '백석'의 이야기가 소설로 담긴 강영준 작가님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함께하게 되었다 :)
 
개인적으로 백석의 시를 배울 중·고등학생들,
혹은 그 부모님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
이 책의 작가, 강영준님은 상산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으로, 문학과 역사를 엮어 이야기를 쓴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렸을 때
'이해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줄줄이 외우라고 시키는
조선시대 관료들 이름, 정확한 연도와 날짜, 시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 같은 것들을 외우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책을 읽었다면, 더 국어나 역사에 재미를 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에게, 혹은 그 부모님들에게
다시 한번 더 추천하는 작품😌


📖
<조선일보> 교정부에서 일하며
다른 동료들이 삶에 지쳐 초췌한 몰골로 출퇴근할 때,
항상 말끔하게 넘긴 머리에 반듯한 양복을 입고 다녔던 당대의 '모던 보이' 백석.
 
그가 절친 허준과 신현중, 첫사랑 박경련, 연인 자야, 그리고 가족을 일구고 전쟁의 포화를 지나 '북'에서 생활하기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
백석은 우리나라가 둘로 분열할 때, 사회주의를 선택하고 북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백석이 생각했던 그런 '이상적인 사회주의'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고, 그는 글을 쓰지 못한 채
러시아어로 된 이론서만을 번역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한설야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애수에 찬 표현을 조선에서 가장 잘 쓰는 사람을 알지요. 아무리 사회주의 소설을 번역한다 해도 어딘가에는 감정을 앞세운 부분이 있을 테고, 아마 그 사람은 그 장면을 물 만난 고기인 양, 진짜 고독하고, 슬프고, 안타깝게 조선말로 바꿔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릴 텐데, 그런데 누군가는 그 감동을 나약한 부르주아의 퇴폐적인 감상으로 비난할 거란 말이오. (...)

내가 왜 이런 이론서를 주는지 알겠어요? 이론에 감정은 없잖소." _p.253


"한설야는 문득 백석의 시구를 떠올렸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한설야도 생각했다. 천생 시인에게 시를 쓰지 말라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를." _p.255


✒️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동시를 쓰기 시작한
백석은 북에서도 꽤 인정받고, 작품집을 내지만
결국 절친 허준은 탄광으로, 그는 개마고원의 농장으로 돌아오지 못할 유배 생활을 떠난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렇다. 아무리 외롭고 쓸쓸해도 나무는 중력을 거슬러 오른다. (...) 지금 당장 비와 바람이 거세서 마치 금방이라도 가지가 휘고 꺾일 듯하지만 높은 곳을 향해 뻗는 힘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지 않는가.

아, 어쩌면 그 힘을, 중력을 이겨 내는 나무의 힘을 긍정한다면, 결코 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중력을 이겨 내고 바로 설 수 있겠지." _p.276


🔅
그가 남쪽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1970년, 80년, 90년까지 쭉 이 대단했던 시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덧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그만큼 따뜻한 문장들이 좋았던 책,
강영준 작가님의 『흰 바람벽이 있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