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여름을 떠올리면 푸름이 잇따른다. 멀리 있는 산, 거리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늘과 바다, 그 너머의 수평선과 지평선에 펼쳐져 있다가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나서 투명하게 사라지는 푸름, 손안에 쥘 수 없는 푸름에서 작가는 청춘, 성장, 상실, 슬픔, 우울, 비밀, 고독을 읽고 어루만진다.

작가는 우연히 보게 된 그림이나 책 속 문장이 곧바로 뿌리내리지는 않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순간을 언급한다. 몇백 년 전, 수십 년 전 작품이 나에게 닿고, 그 작품이 만든 파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언젠가 생길 변화를 품고 있다. 예술 작품은 당장에 마음을 반짝반짝 비추지 않더라도 가만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의 눈길이 머무는 방향을 바꾼다. 예술이 주는 이런 은은함과 은근함이 좋다.

책을 읽고 나니, 제사(題詞, epigraph)로 쓴 폴 발레리의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우리 신체의 일부인 피부는 내면과 외부 세계의 경계이면서 다양한 경험과 감성을 연결한다. 내면이 외부로 드러난 모습, 타인이 그것을 인식하는 시선과 방식을 통해 본질을 찾아간다. 이 책에 실린 예술가와 작품(내면이 외부로 드러난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변화한다. 작품에 담긴 인생 이야기, 그 작품과 관련한 작가의 경험담을 읽으며, 예술가와 그들의 남긴 피부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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