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라진 소녀들의 숲』(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미디어창비)은 1400년대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다. 작가 허주은은 '공녀(貢女)'로 살던 여성들에 대해 쓰고 싶었으며, 1337년에 고려시대 이곡이 원나라 황제에게 보낸 편지의 인상적인 대목에서 이 책의 핵심 미스터리가 태어났다.

우선 표지와 엽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살펴보면, 미국 출판사와 한국어 번역본이 서로 다른 분위기다. 미국 출판사의 표지는 꽃에 둘러싸인 두 여성을 표현했고, 한국어 번역본에는 숲에서 어디론가 바라보거나 향하는 조선 여성 두 명을 그렸다. 초가집과 구절초가 보이고 둥근 보름달이 환하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원서 표지에 비해 번역본 표지가 조금 더 선명하게 내용을 담았다. 표지가 상징하는 메시지가 어떻게 스토리로 풀어질지, 책을 읽고 나면 어떤 표지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지 궁금해진다.


   여성은 인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지만, 이들에 관한 기록은 적다. 기껏해야 역사의 조연으로 대하던 여성의 역사, 특히 아픈 역사로 기억하는 '공녀'를 소재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기대하며 책을 펼친다. 허주은 작가는 역사의 기본 사료(史料) 중에서 역사의 조연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설에는 다양한 계급과 장소가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주축은 '여성'과 '제주'이다. 조선시대 역사의 약자로 대우받던 여성이라는 젠더성, 제주라는 장소성을 중심으로 공녀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소설은 육지에서 제주로, 외곽에서 마을 속으로, 깊은 숲속으로 점차 공간적 범위를 좁히고, 여자아이들의 실종과 살인 사건에 서서히 돋보기를 갖다 댄다. 전반부는 조금 느린 속도이지만, 독자도 그 속도에 맞추어 주변을 파악하고 장소와 인물에 몰입해간다.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나기 전에 단서가 될 만한 세부 사항과 인물의 성격에 집중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를 의심하게 하는 구성이 매력적이다. 책장을 넘기며 숲으로 한 발짝 내딛고 진실과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이 고조되고 숨어 있는 위험에 오스스 소름 돋는 두려움과 맞닥뜨린다.

제주라는 장소성도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 독자는 여러 등장인물의 시선과 입장을 따라 제주의 땅을 밟고 집을 방문하고 숲으로 들어가고 제주 사람을 만나며 그곳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문화와 단서 사이를 넘나든다. 작가는 제주를 직접 찾아서 조선 시대 제주에 유배된 사람들의 서신을 발견하여 소설의 자료로 썼다. 

   주인공 환이의 의심과 추리가 항상 옳지만은 않다. 하지만, 작은 단서로 이리저리 추리하는 과정이 더 복잡한 미스터리 요인이 되어 흥미진진하다. 독자는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보면서,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며, 가장 확실해 보이는 용의자가 늘 가해자인 것은 아니고 절대적인 가해자는 없다는 사실, 사랑의 의도와 결과의 경계가 어긋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등장인물의 관계와 경계에서 이런 발견을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이 역사 추리를 넘어 가족—자매지간, 부녀지간—의 갈등, 유대감과 사랑을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의 또 다른 주요 축은 여성의 젠더성이다. 공녀라는 실제 사건에 기반하는 이 소설은 국가의 힘, 성별과 계급 차이, 경제력 차이 등에 따라 당시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두려움, 치욕을 담았다.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차별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는 호기심과 의지가 가득한 환이, 고집 세고 자립적인 매월이는 고군분투하면서도 서로 하나가 되어 영리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독자는 소설 속 댕기 머리 탐정이 되어, 민환이와 민매월 자매의 여정을 따라가며 함께 저항하고, 변화를 꿈꾼다.


#사라진소녀들의숲, #허주은, #미디어창비, #역사소설, #소설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