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해운대
오선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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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ㅡ장소

   『호텔 해운대』에 실린 단편 일곱 편은 대부분 부산이 배경이다.

   인서울, 인부산이라는 고민으로(「호텔 해운대」와 「바람벽」), 화려한 호텔과 잔가지처럼 난 골목 사이로 즐비한 모텔과 여관, 시장이 공존하는 곳으로(「호텔 해운대」), 예전 추억 어린 장소가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으로 가치가 변화하는 곳으로(「우리들의 낙원」), 지진주의보와 함께 흔들리는 지역으로(「지진주의보」), 저택이 즐비한 길을 지나 만나는 공공도서관이 있는 곳(「도서관 적응기」)으로 부산의 이모저모를 그렸다.

   익숙한 도시와 지역 이름, 언어가 책에 등장하면 독자는 글에 몰입하기 쉽다. 문장으로 표기된 공간은 독자의 기억을 소환하며, 독자의 경험이 보태어져서 생생한 실재로 탈바꿈한다.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여러 단편은 부산을 배경 삼았지만, 굳이 그 틀에 가두지 않고 타지역에 대입하여도 독자가 공감할 만한, 이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 부산ㅡ사람들

   『호텔 해운대』에는 중앙과 주변부를 서성이는 사람들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화려하고 닿기 어려운 ‘호텔’이나 ‘저택’과 그곳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호텔 해운대」와 「도서관 적응기」), 나고 자란 ‘부산’이라는 중심부에 머물고 싶어 하는 공시생(「호텔 해운대」), 시대마다 마주치는 각종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다시 만난 세계」), 서울과 지역에서 글 쓰는 작가(「바람벽」)의 이야기가 있다.

한편, 「다시 만난 세계」와 「후원명세서」, 「바람벽」에서는 이 사회의 다수자와 소수자, 주류와 비주류, 시혜자와 수혜자라는 장치를 통해서 혐오와 차별 문제를 다룬다.


3. 부산ㅡ감각과 이미지

" 부산, 해운대, 회, 밀면, 돼지국밥, 롯데.

친구와 헤어지고 수정은 두 사람이 나누었던 단어들을 다시 불러내보았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의 추억처럼, 부산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낱말들을 별 하나마다 짝을 지어보았다. 그것들은 제게 무척 익숙하고 낯익은 것이면서, 낯설고 먼 것이었다." 『호텔 해운대』 중 단편 「호텔 해운대」, 21쪽


   오선영 작가는 다양한 감각과 이미지로 부산이라는 장소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묘사했다.

   ‘부산, 해운대, 회, 밀면, 돼지국밥, 롯데’의 이미지를 가진 곳, '초콜릿에 박힌 알사탕’ 같은 호텔의 달콤함, ‘염전 위의 소금’ 같은 실망감, 식욕을 자극하면서도 입맛이 떨어지게 만드는 ‘오묘하게 섞인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 골목(「호텔 해운대」),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나 ‘물기를 먹은 감정’, ‘스위스 밀크 초콜릿을 먹었을 때처럼 쓴맛’, ‘시큼하고, 씁쓸하고, 불쾌한 맛’을 느끼는 곳(「우리들의 낙원」), ‘담뱃재처럼 파스스 부서질 것 같’거나, ‘시원하고 달콤하고 차갑고 부드러운 무언가’, ‘목구멍이 얼얼할 정도로 냉랭한 물성’이 뒤섞인 혐오의 시대(「다시 만난 세계」), ‘양파 껍질처럼 끝없이’ 나타나는 결핍과 ‘차가운 오렌지주스 캔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일으킨 욕구의 꼬리물기(「후원명세서」), ‘휴대폰 액정의 밝음과 어둠’으로 묘사한 세찬 불안과 흔들림(「지진주의보」), 로트와일러의 씹고 짖는 소리가 주는 두려움(「도서관 적응기」), ‘사방이 뚫린 바람벽’ 앞에 선, ‘작고 여린, 부서지기 직전의 창백한 인간’으로 묘사한 보통사람들(「바람벽」)을 글에 담아냈다.


독자들의 삶과 경험에 따라 이 책의 일곱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색채와 감정으로 다가올 것이다. 오선영 작가의 문장처럼, 독자들이 마음속에 품은 부산은 ‘익숙하고 낯익은 것이면서, 낯설고 먼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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