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1 - S Novel+
쥬몬지 아오 지음, 다쿠로 그림, 주승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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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마리아, 재와 환상의 그림갈로 유명한 '주몬지 아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이세계 전생을 다루고 있고, 재와 환상의 그림갈에서 작가 특유의 찌끄레기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일행)의 이야기가 성공을 거두자 이 작품에도 기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말은 그냥 자기만족만이 존재하는 이세계 치트물에 식상한 분들이라면 권하고 싶을 정도로 작품 내 캐릭터 취급이 좋지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재와 환상의 그림갈처럼 이 작품 또한 캐릭터들을 한계까지 시궁창에서 굴리는 게 특징이라 할 수 있죠. 거기에 주변 인물에 대한 과감 없는 리타이어는 때론 충격에 빠트리기도 하고요. 여느 이세계물과 다르게 주몬지 작가의 이세계물은 암울하고 어딘가 잿빛투성이로서 읽고 있으면 덩달아 같이 음울해지는 묘한 매력을 안고 있죠.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 하는 일은 죽는 것입니다. 29살 SE(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사축의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 날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를 구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죠. 오늘도 트럭이 열 일하나 했는데, 트럭 다음으로 많이 이세계로 보내는 스포츠카에 치여 죽는 불운이란. 그나마 똥차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디겠습니까만 은. 그리고 눈을 뜬 곳은 예상대로 이세계, 신(神)을 통해 치트를 부여받고 이제부터 무쌍을 찍는 인생이라든지, 방대한 현대의 지식으로 우매한 이세계인들을 구원한다든지, 그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었으면 동정인 채로 비명횡사한 일은 억울하지는 않았겠죠. 작가가 재와 환상의 그림갈을 집필 중인 주몬지 아오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마을 사람 A도 못된 상황을 살아간다는 소리죠.


자, 지금부터 주인공은 4번의 환생을 거칩니다. 아니 29살 동정까지 합치면 5번인가요. 그때마다 주인공 앞에 어떤 인물이 나타나죠. 에버라스티아 제국의 황녀 '린제리카', 통칭 해체 공주, 그녀는 주인공이 18살 될 때마다 나타나요. 그리고 가차 없이 열등종이라며 베어버리죠. 그 어떤 종족으로 태어나도 반드시 나타나면서 뭔가의 끈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죠. 하지만 아쉽게도, 견우와 직녀처럼 애타는 사랑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인공은 죽임 당하는 쪽, 해체 공주는 죽이는 쪽. 이유를 물을 사이도 없이 댕강댕강 썰려나가니 주인공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죠. 그런 윤회 사이에 주인공은 있을 장소와 좋아하는 사람을 잃어 가야만 했습니다. 여느 이세계 치트물처럼 먼치킨이라는 능력이라도 있으면 해체 공주와 맞서기라도 할 텐데 그런 건 일절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5번째 윤회를 마치고 18살이 된 어느 날, 여전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뚱이로 용병 일을 하던 주인공 앞에 어떤 소녀가 찾아오면서 그는 해체 공주에 대한 반격의 서막을 올리게 되죠. 그러나 그 과정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마왕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윤회를 거치며 어쩌다 왕의 서자라는 포지션을 운 좋게 차지하게 되었지만 졸지에 정략결혼이라는 도구가 되어 머나먼 타국으로 데릴사위로 떠나야 되는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날려갈 뿐인 낙엽처럼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못 쓰는 아주 지독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죠. 하지만 그는 만납니다. 비로써 5번의 환생을 거치고 총합 119년이라는 인생을 살아오며 반드시 지켜야 될 여자를 만나죠. 첫 번째 생에서 그토록 지키고 싶었건만 지킬 수 없었던 미샤와는 다르게, 이번엔 반드시...


주인공이 맞서야 될 적, 해체 공주가 속한 나라, 에버라스티아 제국은 대군을 이끌고 동부 대륙을 집어삼키기 위해 출정합니다. 파죽지세로 쳐들어오는 제국군을 맞아 손쓸 사이도 없이 동부 대륙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종이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전장으로 향하죠. 충분한 전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인공이 먼치킨인 것도 아닌 상황에서 주인공이 내려야 할 결단은 무엇일까. 무엇을 내치고, 무엇을 끌어안아야만 할까. 모두를 지킬 수 없다면 이용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모습으로 그는 악인을 자처하며 제국과 처절히 맞서 갑니다. 4번의 인생(29살 동정 빼고) 모두 개입하여 18살을 넘기지 못하게 했던 해체 공주와 에버라스티아 제국, 흡사 개미와 코끼리의 대결에서 주인공에게 승산은 있을 것인가.


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려 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해체 공주라는 복선과, 주인공이 윤회하는 이유 등에 집중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요. 그리고 주인공은 119년이라는 슈퍼 동정을 뗄 수 있을까. 또한 허접 종이 몸뚱이로 제국의 대군을 맞아, 해체 공주라는 시련을 맞아, 이번에야말로 19세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그가 노력할수록, 사람의 가치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가치란 용맹함에서 찾는 것이 아닌 얼마나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을 감수하는지, 찌끄레기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면서 주변인들이 차츰 모이는, 사람의 가치,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맺으며, 역시 주몬지 아오답다 할 정도로 필력이 좋습니다. 작가의 특유의 잿빛투성이 음울함은 여전히 혀를 내두르게 하는데요. 거기에 박차를 가하듯,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 같은 시리어스한 장면들도 꽤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가족 되는 사람들의 종말은 꽤나 안타깝게 하죠. 그렇기에 더욱 주인공을 몰아넣음으로써 흥미도를 높이는 재주가 있다고 할까요. 어쨌건 의문을 의문으로 자문자답하듯하는 비굴한 진행방식이라든지 제국군이 쳐들어오면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 등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군요. 아무튼 내용적으로 언급해보자면, 기승전결이 꽤 좋습니다. 하나를 놓고 고민하며 질질 끄는 것이 아닌, 가령 제국의 침공을 과감 없이 보여주고, 주인공이 각 나라를 돌며 협력을 요청하는 장면 장면들에서도 시간을 빼앗지 않습니다. 어쭙잖은 러브라인을 삭제하고(작가의 전매특허), 대신에 올곧은 사랑과 시선을 주인공과 히로인(여러명 나오지만 여기선 정략결혼 당사자)에만 집중 시킴으로서 질척거림이 없다는 게 뭣보다 좋았군요. 다만 등장인물이 많아서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데 실패한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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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라운드 아서스 1 - 쓰레기 아서와 악당 멀린, L Novel
히츠지 타로 지음, 하이무라 키요타카 그림, 최승원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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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하세요.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을 집필한 '히츠지 타로'의 차기작이 되겠습니다. 일러스트는 어마금과 던만추(소드 오라토리아)를 그렸던 '하이무라 키요타카'이고요. 일단 작가의 전작인 변마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올 1월 기준 300만 권이 팔렸다고 하니) 이 작품(아서스)도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이죠. 거기에 '하이무라 키요타카'가 보여주는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일러스트는 작품의 내용과 상당히 어울리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아서 왕 계승전]에 참가한 11명의 아서왕 후보자들이 각축을 벌인다는 이야기인데요. 요컨대 왕의 자리를 놓고 사생결단을 낸다는, 성배가 왕으로 바뀐 것뿐 Fate(이하 페이트) 시리즈와 아주 유사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왕이 되면 세계를 주무를 수 있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인데요.


위에서 페이트 시리즈와 유사하다는 이유가, 우선 서번트에 해당하는 '짹'이라는 영령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페이트 시리즈와 차별을 둘려는지 이 작품의 영령은 시대의 영웅이 아닌, 아서 왕과 관련이 있는 인물에 한정 시켜 놓았다는 것뿐이지만요. 그 이외에 스킬이라든지 엑스칼리버라든지, 페이트를 먼저 접하신 분이라면 적응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페이트를 접해보지 못하신 분이라면, 음... 상당히 중2병스러워서 읽는 내가 이불 킥하고 싶을 정도로 오글 거린다고 할까요. 가령 남주 '린타로 등장씬이라든지, 스킬 명 쓸 때라든지, 세계관 소개를 읽다 보면 영웅물이나 모험물을 좋아하는 10대 소년들이 매우 좋아할 만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중2병이라는 느낌을 매우 많이 받죠(필자 주관적). 


아무튼, 히로인 '루나 아르투르'도 [아서 왕 계승전] 참가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계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스파르타 교육을 받은 영재이지만(가정 교육이 편중됨)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떠맡다 보니 의욕은 개뿔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실력은 아래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로 꼴찌를 달리고 있죠. 이쯤에서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꼴찌의 반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보다 창창한 실력자들이 즐비한 계승전에서 질게 뻔한데도 나가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게 또 다른 포인트이기도 하죠. 문득, 이세계 치트물을 많이 보신 분은 그녀가 힘을 숨겨놓은 실력자라거나, 무능이라고 해놓고 무능의 대표적인 스킬로 먼치킨이 되어 간다는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실 텐데요.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하겠습니다.


루나의 등장은 매우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계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왕 후보자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무기 '엑스칼리버'를 군자금 모은답시고 팔아 버립니다. 주객이 전도된다는 건 이런 건가 싶은, 칼이 없으면 싸우질 못하는데, 싸우겠다고 팔아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주죠. 자신의 '짹'인 '케이 경'을 소환해서 코스프레를 시켜 아이돌화한 후 돈벌이에 동원합니다. 학생회장에 당선되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건 예사고(이때 남주 '린타로'가 휘둘리는 장면은 압권이죠), 돈을 벌기 위해 빵을 도매점에서 떼와 파는 등 이제까지 못 봤던 히로인의 기행이란 기행은 모두 루나에게 갖다 붙여놓은 것마냥 생각의 틀을 벗어낫게 함으로써 매우 황당함을 선사하는데요. 남주 '린타로'와의 만남에서도 그에게 내 발을 핥아라며 의기양양하는 모습에서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싶은 게요.


그리고 남주 '린타로', 전생의 기억을 가진 자칭 '치트용사'인 그는 계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후보자로써 참가하는 게 아닌 조커로서 여주 루나의 진영에 가세하게 되는데요. 최약의 루나에 붙으면 뭔가 재미있을 거 같았는데 실상은 그녀에게 휘둘리게 되면서 후회막급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죠. 가령 수업 시간에 루나를 저격해 악의적인 문제를 낸 선생에게 대항하고자 그녀는 린타로를 재물로 바쳐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에 적응 못하는 린타로를 도와주려는 루나의 배려가 느껴지는데, 알고 보면 이게 질이 매우 나빠요. 뭔지는 직접 보고 느끼시길 바라고요. 학생회장이라는 사리사욕을 위해 주변 모든 걸 이용하면서 악의 독재자, 쓰레기라는 소리를 달고 사는 게 루나의 지금 포지션이죠. 읽다 보면 부제목인 '쓰레기 아서와 악당 멀린'은 진짜 잘 지었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근데 문제는 그녀의 사리사욕이 학생들에겐 긍정적으로 다가간다는 괴리감을 선사한 다는 것입니다. 쓰레기 선생을 퇴출시키기도 하고, 식당 메뉴를 개선하기도 하고, 학교 온 곳을 돌아다니며 말썽을 일으키는데 태어났으니까 인생을 산다기 보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활약은 매우 눈부시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전염이 되어 학생들도 밝은 모습이라는 괴리감. 항상 긍정적이 되어 어려움이 닥쳐도 어떻게 되겠지, 린타로 같이 고리타분한 사람에겐 지옥이지만 별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밝은 사람은 없다는 모습들을 보이죠. 사실 이런 부분들은 90년대에나 먹힐만한 개그 일색이랄지, 가령 실수했네? 혓바닥 내밀며 자기 손으로 머리 콩 하는 장면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장면들을 자주 보여주는 가벼움이 좀 있습니다. 진지한 면이 없다고 해야겠죠.


하지만 그녀가 계승전에 참가한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되면서 왜 그녀가 쓰레기 짓을 할 수밖에 없는지 하는 안타까움이 슬금슬금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고 했던가요. 린타로 마저 그녀의 쓰레기 짓을 참지 못하고 결별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솔직히 발암 그 이상은 아닌 상황까지 가게 돼요. 하지만 다른 계승전 참가자들과 전투를 벌여 가면서 엑스칼리버를 팔아버린 이유, 학생회장이 되려는 이유, 루나는 분명 최약이지만, 그녀를 통해 왕으로서 진정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조금식 서술하면서 초반 분위기를 날려 버리게 되죠. 그녀가 쓰레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랄지, 미소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졸지에 그녀를 욕했던 사람들만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데요. 작가가 뒤통수치는 실력이 대단하다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마음을 숨기고 밝은척하는 히로인이라는 클리셰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긴 합니다만.

결국 소년물의 클리셰를 보여주며 끝을 맺는데...


맺으며, 일단 이야기 구성 자체는 매우 탄탄합니다. 작가가 아서 왕에 대해 조사를 많이 했는지 방대한 자료를 풀어 놓더군요. 문제는 중2병스럽다는 것이지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0대나 20대에게 먹힐만한 이야기고 나이 좀 들은, 필자 같은 고령(?)의 독자와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이상보다는 현실이 많이 보이게 되더군요. 하지만 남의 공을 가로채고 불법을 저지르면서 태연하고, '짹'을 코스프레 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 돈벌이 시키는 극악 무도함, 루나의 제기 발랄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모습은 요즘같이 희망이 필요한 시대에 웃음을 선사하기엔 충분했습니다... 만은, 진지하게 살아가지 않는 모습에서 조금은 짜증을 불러오기도 했군요. 이게 다 복선이었다고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혀를 차게 만들기도 하는, 그래서 이번 리뷰도 쓰는데 고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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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티아 이담 2 - 열사의 레퀴엠, V Novel
타케오카 하즈키 지음, 루나 그림, 김정규 옮김 / 길찾기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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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하시고, 글이 매우 깁니다. 





딱히 보답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환되었으니 도와주기로 했을 뿐, 11살의 나이에 이세계로 떨어져 대뜸 마신을 쓰러트리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슈안'이 걸핏하면 놀려댔던 것도 사실 모르는 땅에 떨어진 '리히토'의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도록 분명 신경을 쓴 것이겠지.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검술 스승 '라나'의 가르침과 백발 노승의 지혜의 주머니는 그(리히토)의 마음을 이끌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무서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마신의 성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며 '이슈안'이 돌아오지 못하는 구멍에 떨어지기 전까진. '살려줘'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은 '리히토'에게 PTSD'를 안겨주기엔 충분하였으리라.


그리고 6년 후, 주인공 리히토는 어째서인지 또다시 6년 전 그 땅에 다시 불려 와 있었습니다. 마신의 부활, 또다시 동료를 모아 마신을 봉인하기 위해 길을 떠나나 6년 전 동료는 더 이상 없습니다. 어째서인지 돌아오지 못하는 구멍에 빠졌을 '이슈안'만이 그와 여행을 함께 하였죠. 그리고 6년 전의 마음을 이어 그녀에게 연심을 품어가는 리히토에게 들이밀어진 진실, 부활한 마신을 쓰러트리는 장소에서 운명의 여신은 리히토에게 가혹한 시련을 내렸습니다. 6년간 줄곧 그녀(이슈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살아왔던 그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는. 가짜 '이슈안'을 내 손으로 성불 시키는 것, 여행을 하며 현실을 부정해봤고, 가짜의 달콤한 말에 기댈 뻔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만 떠나보내야 할 시간.


이로써 부활한 마신을 다시 봉인하게 되었습니다. 공허한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요.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운명의 여신은 시련을 뛰어넘은 자에게 보답을 내리기로 합니다. 이제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나 자신의 마음을 죽이며 살아갈 일만 남았던 그에게 내려지는 단 하나의 보답. 6년 전 구하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던 그녀(이슈안)의 생환, 개선하여 민중의 열열한 환영이 무엇이더냐, 공주와 맺어지는 미래 따윈 없어도 된다. 금은보화 따위 없어도 된다. 그저 그녀가 옆에만 있어준다면, 6년이나 마음속에 맺혀져 있었던 응어리를 풀게 된 리히토는 이 상황이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정신이 11세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진. 이슈안에게 6년이라는 공백은 리히토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게 될까.


마신을 무찔렀으니 왕이 치하하겠다며 부릅니다. 왕은 용사의 활약을 칭송의 말로 바꾸어 만인에게 퍼트리고 두둑한 보상을 내리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제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준 용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원래라면 그래야 정상적인 사회일 겁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는 말은 기본이죠. 하지만 바라지 않은 도움은 민폐일 뿐이라는 것마냥 주인공 리히토에게 들이밀어진 현실은? 어디서 굴러먹던 야만인일까라는 시선 일색이라는 것에서 이세계는 제대로 된 세계는 아니라고 역설하기 시작하죠. 아니 그전에 용사 일행의 생활상을 보여줬던 1권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겪지 않은 일에서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지 알지 못합니다.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깡촌에서 벌어진 싸움 따위 내 알 바는 아니죠.


그래서 '제멋대로인 세상'인 것입니다.

마신은 용사만이 무찌를 수 있음에도...


하지만 주인공 리히토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습니다. 왜? 눈앞에 놓인 진상품의 물품 속에서 게임기를 발견해버렸거든요. 이것은 원래의 세계에 있던 물건, 그리고 이 게임기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미치바 쿄코'의 것이기에. 그녀가 이세계에 와 있나? 원래의 세계에서 도서위원으로 함께 활동하며 리히토의 마음을 붙잡아줬던 유일한 존재인 그녀가 어째서 이세계에? 얄궂게도 운명의 여신은 또다시 그에게 시련을 던집니다. 리히토처럼 용사의 힘을 가지지 못한 그녀가 이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찾지 않으면,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물리게 되죠. 그래서 길을 떠납니다. 뜬금없지만 이슈안의 애절한 마음을 모른 채 말이죠. 가짜와 사랑의 속삭임까지 주고받은 주제에 진짜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리히토 덕분에 대환장 파티가 시작됩니다. 


괴리감일까요. 가짜와의 사랑을 진짜에게 대입 시키려니 괴리감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조금 멀리하게 되고,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이슈안과의 대립. 심약한 주인공 리히토 때문에 고구마가 트럭째 몰려 오기도 하죠. 결단을 내리는데 우유부단한 모습, 그리고 당초 이 여행의 목적은 미치바 쿄코를 수색하는 것이었으면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녀를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갈피를 못 잡는다고 할까요. 가짜와 지냈던 시간과 진짜와 지내는 시간 사이에서 소실한 감정, 가짜에게 속삭였던 마음을 진짜는 알리가 없기에 오는 괴리감, 이것만 해도 벅찬데 새로운 히로인 '우르스라'의 등장으로 리히토의 마음을 더욱 갈피를 못 잡게 합니다. 어찌 보면 참 현실적인 용사라고도 할 수 있죠. 용사라고 마냥 마음이 강한 존재가 아니라는 메시지랄까요.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1권에서 끝내야 했습니다. 1권에서는 그나마 주인공 성격에 문제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2권에 들어서서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더라고요. 야만인이라든지 공을 가로챈 나쁜 놈 등 온갖 비아냥을 들어도 헤실헤실 웃기나 하고, 이슈안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아 이야기를 난잡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히로인 우르스라를 만나 그녀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움직이면서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우르스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미덥지 못한 모습이라던지, 마신을 쓰러트려 더 이상 세상의 혼돈은 없다고 기개 있게 말을 전달하면 좋으면만 우물우물하니 누가 믿어주나. 


제일 황당한 건 우르스라를 책임질 거 같은 행동을 보였으면서 이슈안과 다시 만났을 때 저뇬은 아무것도 아니고 자기가 멋대로 따르는 거라는 뉘앙스를 보였다는 것, 끝까지 미치바 쿄코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 뭐 이런 주인공이 다 있나 싶더군요. 아무튼 이런 주인공도 목숨이 노려지는 복선이 투하되었군요. 제발 판타지의 틀을 깨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PS: 1권 리뷰를 잘못 쓰는 바람에 이번 2권 리뷰는 망해버렸군요. 1권에서 주인공 리히토와 이슈안의 관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번 2권 리뷰 중반부까지를 1권 리뷰에 썼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2권 히로인 우르스라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언급하지 못했군요. 꽤나 애절하게 하는데... 이걸 다 말아먹는 주인공도 주인공이고... 그러고 보면 아닌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 작품도 은근히 주인공 하나에 히로인이 꽤 들러붙는군요. 이슈안과 우르스라, 그리고 3권에서 나올 미치바 쿄코, 덤으로 이번에 통역으로 등장한 토토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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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하세요.





이번 표지는 꽤 화려하게 나왔군요. 지금까지 나온 표지 중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만큼 '마인'에게 있어서 이보다 어울리는 옷과 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우중충한 회색빛 세계관과 반대되는 색이랄까요. 그러나 그와 대조적으로 언니 투리의 외모적 성장과 조금은 나이 들어버린 엄마를 보여주며 세월 참 빠르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신식과 2년간 잠들어버린 영향 때문에 마인은 거의 키가 크지 않아서 여전히 외모만은 귀여운 모습을 보입니다만. 하는 행동은 악마가 따로 없지요.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는 명언을 새겨들으라는 것마냥 앞뒤 생각 없이 일을 저질러 놓고는 뒤치다꺼리를 아랫사람에게 다 떠맡겨서 위가 빵구나게 만들어버리는 건 세월이 흘러도 여전합니다. 그렇게 책을 위해 코뿔소처럼 저돌적으로 직진만 했던 나날을 뒤로하고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됩니다. 


종이 만들기와 인쇄가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독에 당해서 2년간 잠에 들었다 깨어났을 때,, 나만 놔두고 모두가 저만치 앞서가버린 세상에 굴하지 않고 더욱 독하게 마음먹은 마인은 영지 곳곳에 공방을 세워 갔었습니다. 참 마음고생이 심했었죠. 무지한 이세계인들을 교육하려니, 그것도 이제 끝입니다. 종이 만들기는 순탄하게 진행되어 실물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인쇄도 책이 유통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까요. 마인이 이세계로 떨어지고 오로지 책이 보고 싶다는 일렴 하에 6년(아마도, 대충)이라는 시간을 들였고, 이웃 소꿉친구(루츠)를 꼬드겨 시작한 나무껍질을 물에 불리기부터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결실을 맺었는데요. 눈물 한 바가지 뽑아내도 좋으련만 덩실덩실 춤을 추다 기절할 판(체력 고갈)입니다.


자, 이제 책과 인쇄는 본궤도에 올랐고 이야기는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마인 덕분에 에렌페스트는 마력이 충만해지고 벌이도 좋아져서 이제 사람들이 굶을 일이 적어졌습니다. 귀족원(우리로 치면 사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결과 성적도 올라 영지의 순위도 껑충 뛰었고, 파벌에 신경 쓰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는 정신 등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업적에 감동한 무리들에게서 시작된 성녀 전설도 본궤도에 올라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악마(필자 각색)라는 소문도 함께 퍼져서 왕자(프린스)가 쫄아버리는 사태도 벌어지는 등 참 유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마인이 이런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영주 '질베스터'가 그녀를 양녀로 들이지 않았다면 어쩔뻔했을까. 그건 진짜 가족과 이별이라는 것에서 해답은 잘 나타나 있죠.


마인이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전엔 별 볼 일 없는 시골 영지에 불과했던 '에렌페스트'가 갑자기 훅 치고 나옵니다. 그러니 뭔 일이 있었는지, 누가 개발하고 있는지, 우리도 떡고물 좀 받아먹을 수 있는지 기웃거리는 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겠죠.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영지를 가진 영주의 입장에서 에렌페스트의 기행을 보고 있자면 쪼렙주제에 고렙존에 들어왔다고 배알이 꼬이기도 하고, 추월당한 영지 입장에서는 약이 오르겠죠. 그 결과가 마인의 납치였고, 친부모는 마인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다 목숨을 잃을뻔하였습니다(이 에피소드가 진짜 감동이었죠). 자신이 해온 일들에 대한 반동이 이렇게 나타나면 좀 반성하고 자중하면 좋으련만, 친부모와 생이별을 하면서도 저돌적으로 돌진만 해대는 그녀(마인)의 성격은 참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녀의 업적 덕분에 나날이 발전하는 에렌페스트를 집어삼키기 위한 불온한 움직임이 활발해집니다. 마인과 샤를로테의 납치가 실패로 돌아가고 좀 잠잠해지나 했더니 이번엔 겉이 안 된다면 속에서 무너트려주마라는 일들이 일어나죠. 마인의 이복 오빠 '램프레히트'가 결혼하면서 들이는 신부가 하필이면 에렌페스트와 앙숙 중에 앙숙인 '아렌스바흐' 출신이라는 것, 이전에 아렌스바흐에서 '페르디난드'를 노리는 듯한 복선이 투하되는 것과 맞물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게 하죠. 더욱이 이 결혼을 기점으로 활발해진 구 베로니카 파의 움직임과 더불어 5부에서 일어날 전쟁의 기운은 착실히 진행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아렌스바흐에서 온 신부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착한 신부였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게도 하죠.


마인과 죽이 척척 맞고, 시어머니(엘비라)와의 관계도 개선하면서 더욱 시가에 대한 애착을 넓혀가는 신부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데요. 그도 그럴게 이복동생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복선이 투하되는 것도 그렇고, 방구석 폐인을 자처하면서 그녀가 에렌스바흐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은 꽤 심각하게 다가오죠. 이래서 미래에 다가올 전쟁으로 인해 그녀가 받을 상처와 주변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 등, 아렌스바흐가 에렌페스트를 집어삼키기 위해 어떤 짓이든 저지르겠다는 밑밥 같은 존재가 그녀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인과 시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고 있고, 남편도 그녀를 매우 소중히 하고 있어서 불안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의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맺으며, 문제는 책에 미쳐있는 마인이 올케(새언니) 되는 신부가 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군요. 그 벌로 4부 7권에서던가에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 거 같습니다만. 이건 그때 가봐야 알겠죠. 아무튼 이번 이야기도 과반수 이상이 여전히 책과 인쇄에 관련된 이야기 뿐인지라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다가오는 검은 세력이라는 복선으로 그녀와 에렌페스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꽤 흥미롭게 하죠. 부제목을 저리 지은 건, 마인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잃은 게 많은지라 본문 쓰다가 문득 생각난 김에 써봤습니다. 친부모와의 이별이라든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략혼인이라든지, 그리고 앞으로 잃을 것들. 이번 에피소드를 점수 주라면 10점 만점에 8점 주겠습니다. 이제야 조금 이야기가 앞으로 진행되는 거 같아 점수를 후하게 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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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6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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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꽤 심하게 들어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이번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네. 마법 학원에서 몬스터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도, 흑룡을 만났을 때도 어떻게 해결은 하였지만 보자 보자 하니까 좀비대군은 너무한 거 아닌가? 게다가 나는 죽자 살자 때려잡고 있는데 나를 도와줘야 될, 진(眞)주인공 '슈야'라는 시키는 온 동네를 쏘다니며 고구마를 뿌려대는 통에 의욕이 생기지가 않는다. 미친늠의 시키가 도움이 안 되면 어디 찌그러져 있던가. 그나마 슈야가 가지고 있던 불의 대정령의 힘을 이끌어내 좀비대군을 쓸어버린 건 좋은데 산 넘어 산이라더니 왜 여기에 어둠의 대정령(표지 모델)이 와 있는 거냐고요. 제국 도스톨을 이끌며 북방 영토를 제패한 로리 대마왕 '나나트리쥬'의 데뷔를 목격한 데닝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건 못 이겨. 하지만 나나트리쥬는 싸울 마음이 없군요. 그녀의 등장은 뭔가의 플래그였나?


미궁도시 제네라우스에 닥친 미증유의 사태를 해결하고 복귀했더니 데닝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여왕 폐하의 권유. 말이 권유지 명령이나 다름없잖아. 그 권유란 내 딸의 가디언이 되어 줘, 요컨대 24시간 왕녀의 곁을 지키는 수호기사입니다. 왕권 국가에서 이보다 출세는 없을 테죠. 그래서 dog망나니 아들(데닝)을 눈에 가시로 여겼던 공작가는 냉큼 받들지 않고 뭐 하냐고 으름장을 놓아요. 집안 분위기는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딱 그렇네? 형이라는 놈은 공작가 가주 자리를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 이걸 가족이라고. 데닝은 억울해 죽습니다. 그야 말이 왕녀를 수호하는 가디언이지 평생 결혼도 못하고, 집에서 확실하게 쫓겨나고, 그 왕녀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도 누군가와 결혼하는 왕녀를 지켜봐야 하는 심정, 이걸 견디라고? 뚫린 입을 더 넓혀주랴? 


내가 말이죠. 마법학교에서 학생들을 구하고, 기사들이 떼로 덤벼야 하는 흑룡을 나 혼자 무찔렀거든요? 옆 나라의 왕녀가 잡혀갈뻔한 걸 두 번이나 구해줬고요. 미궁도시 제네라우스에서 세계대전이 일어날뻔한 것도 막았어요. 잘 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칭찬 한마디는 해줘도 되잖아!! 나, 지금 눈물 나려고 하거든요? 근데(발 동동) 이런 공적의 말로가 집안에서 제적이고, 평생을 독수공방하며 살라고? 마왕이 이 세계를 멸망 시키지 않는다면 내가 멸망시켜주마. 뭐,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슬림 돼지에서 드럼통이 되어 칠흑 돼지로 돌아가는 것 외엔 마땅한 복수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질이 더 나쁘다. 게다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였는데 하나도 알아주지 않는 망국의 공주 '샬롯'은 데닝이 가디언으로 추천받았다는 것에 매우 기뻐합니다.


절망은 나라가, 세계가 멸망해야 비로소 강림하는 게 아닙니다. 절망은 말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보답받지 못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에 의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이 고생을 누구 때문에 한 것인데, 다 샬롯과 평화로운 세상에서 맺어져 살기 위해 노력한 것인데 정작 당사자는 꿈속 꽃밭에서 머리에 꽃을 꼽고 거닐고 있으니 이걸 두고 소귀에 경 읽기라고 하는 건가 싶은. 가디언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데닝에게 꼭 되라고 으름장을 놓으니 생각 같아서는 양 볼을 쭈욱 잡아당기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리오. 그래서 다시 마법학교도 도망가다시피 틀어박혔는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소문은 왜 이리 빠른지 모르는 놈이 없다. 다들 가디언 된다는 소문을 무기로 삼아 데닝을 공격해대는데 이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다.


난 그저, 평범하게 샬롯과 살고 싶은 것일 뿐인데. 정작 당사자에게도 구원받지 못하고, 마침 새로 온 교사에게도 내가 가디언 되려고 했는데 하는 질투를 받아 사면초가가 있다면 바로 여기가 사면초가요, 열받아 초가지붕에 불을 질렀으면 좋겠는데 입장상 그러지도 못하는 이 현실은 스트레스로 대머리가 되지 않는 게 용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나날이 샬롯은 그를 위한답시고 가디언 되세요?라며 데닝을 자꾸 개미지옥으로 몰아넣는데, 자신을 생각해주는 순수한 그녀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하는 악순환이란. 이럴 때 치고 나오는 게 서브 히로인이라 했던가. 평소 그의 어드바이스를 받아 마법에 눈을 뜬 평민 '티나'가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에서 이 세상 유일하게 아군을 만난 듯한 데닝. 19금 동인지였다면, 바로 그 장면으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자, 데닝은 미궁도시 제네라우스에서 도스톨 제국이 자랑하는 3총사 중 하나를 격퇴하였습니다. 물론 이것 때문은 아닌데 '나나트리쥬'는 더이상 남방으로의 진격은 포기하게 되죠. '다리스 왕국'과 국경에서 마주했던 병력들도 철수하며 다리스를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등 전쟁의 기운은 조금식 줄어 갑니다. 하지만 언제나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나오게 마련이죠. 혹시 그놈(데닝)에게 쫄았냐?라며 감히 나나트리쥬를 경멸하는 '꿈팔이 마녀'의 등장은 또다시 데닝에게 있어서 처절한 싸움을 예고합니다. 사상 최강을 자랑하는 어둠의 대정령 나나트리쥬도 제어하기 힘든 '꿈팔이 마녀'는 기어이 데닝과 미팅하기 위해 다리스를 찾아오죠. 그리고 그녀의 전법은 전면전보다 사람 이면에 숨겨진 마음을 파고들어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전법이었고 차츰 데닝은 궁지에 몰려갑니다.


아무튼 망국의 공주 '샬롯'의 고구마 행진은 최고 정점에 치닫는군요. 데닝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자신(샬롯)을 위해 노력하는지, 얼마나 자신(샬롯)을 좋아하는지 전혀 눈치 못 채고 알아주지도 않는 모습에서 언제까지고 성장하지 않는 히로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었군요. 나름대로 데닝을 위해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전혀 눈치 못 챈다는 것, 가디언으로 들어간다는 건 속세와의 작별이고, 혼자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것인데, 이걸 축복하고 자빠졌으니 데닝 입장에서는 상어떼가 우굴거리는 바다에 빠지라고 뒤에서 칼로 찌르는 거나 다름없었겠죠. 샬롯은 이 모든 걸 적(에너미)에게서 듣고 겨우 알아채나 했는데 과거는 잊고 하는 장면에서 이건 글렀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세상 천지에 이런 히로인은 없을 것이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결단코.


맺으며, 사실 5권에서 하차하려 했습니다. 근데 인터넷 서점 회원 등급은 유지해야겠고, 구매는 할 게 없고 어쩔 수 없이 구매하게 되었군요. 결국 회원 등급 한 단계 떨어졌지만. 아무튼 발암을 좋아하신다면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특히 히로인 계열들, 아무리 신용 할 수 있는 사람이라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따라가서 인질이 되어 구해주세요 포지션은 대체 뭘까 싶어요. 한둘이 아니죠. 자기 기분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일쑤고, 생각도 없고, 세상 물정 모르고, 사탕 준다고 하면 졸졸 따라갈, 이쯤 되면 주인공도 뭐라 성질낼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모습에서 위선자 같은 느낌도 받고요. 여자에게 약한 듯, 그래서 그런지 따끔하게 혼이라도 내면 그나마 시원하기라도 할 텐데 그딴 거 내 사전엔 없고. 사람은 실수에서 배운다는데 실수를 저질러도 같은 실수를 반복을 해대는 모습에서 이게 발암이 아니면 뭔가 싶죠.


하지만 그나마 참고 볼 수 있었던 건 귀여운 캐릭터 일러스트 때문이었군요. 이번에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 로리 대마왕 나나트리쥬와 자기 나라 버리고 남자 찾아 다시 다리스로 온 알레시아의 일러스트도 이번엔 귀엽게 뽑혔습니다. 그리고 '티나'도, 그러고 보면 서브 히로인 포지션도 못 딴 '티나'가 이번에 꽤 치고 나옵니다.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 정상인이랄까요. 마법을 못쓰는 평민이라는 인식하에서 마법을 두 종류나 쓸 정도로 노력하는 거하며 이번에 우울증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데닝을 위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진히로인 포지션. 얼른 샬롯을 버리고 티나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더군요. 그리고 로리 대마왕 나나트리쥬도 앞으로 계속 나올려나 봅니다. 꿈팔이 마녀에 대항해 공동전선을 펼칠 거 같은데... 가만 보면 주인공 곁에 여자는 많은데 여자복이 없다고 할까요. 티나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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