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5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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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마족간의 전쟁에 끼여 죽다가 살아난 주인공은 드디어 학원 도시 '롯츠갈드'에 도착한다. 역시 이세계물에서 학원 라이프는 빠질 수가 없나 보다. 이런 시추에이션 뒤에는 젊은이의 요람에서 풋풋한 만남도 있고, 능력 배틀에서 무능력자인 주인공이 사실은 능력자인데 뭔가 문제라도?라듯이 두각을 나타내 귀족이나 왕족 영애의 눈에 띄어 우리 사귀어요 같은 클리셰가 시작된다고 할까. 그러나 주인공은 평범하게 살아고 싶어 하는 게 본심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무능력자가 능력자라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무능력이라는 괴롭힘 당하는 포지션을 보이면서 사실은 능력자라는 소문을 다 퍼트려 놓아 화제의 중심에 스스로 놓아놓고 들어오는 골은 다 쳐내듯 다른 사람에겐 눈길도 안 주는 어쩌면 가장 질 나쁜 주인공 축에 속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얼추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원래 정착하기로 했던 도시에서 상점을 열려고 했으나 나라의 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개설 조건 때문에 학원도시로 이주하기로 한 주인공은 꿈에도 염원하던 상점을 열게 된다. 그리고 학원에 학생으로 잠입해서 이세계에 대해 그리고 부모님에 대해 조사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래서 이전에 신세를 졌던 대상인의 추천으로 입학에 성공은 하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학생이 아닌 선생님 코스를 밟게 된다. 알고 봤더니 추천장 오류로 발생한 해프닝이다. 여기서 이 작품이 다른 이세계물과 차별을 두는 게 이 대목이다. 학생으로서 학원 라이프를 즐기며 청춘을 구가하는 게 아닌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뭐 돼봐라라는 작가의 심술이 느껴진다고 할까. 궁극의 마법을 추구하다 '리치'가 되어 버린 어느 마법사를 두들겨 팬 끝에 3번째 시종으로 거둬들인 '시키'를 종자로 삼아 학원에 입성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여느 이세계물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이세계인들의 지적 능력은 뒤떨어져 있다. 여신은 외모지상주의만 추구할 뿐 이세계인들 안에 든 지식과 능력은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은 이세계 끝 황야에 떨어져 노력이라고 부르는 개고생한 끝에 능력자로서 개화를 이뤘다. 그러니 주인공과 이세계인들 능력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인공은 날로 먹으며 강해진 것이 아닌 몸을 밑천 삼아 노력한 끝에 능력을 일궜다는 소위 성장형 캐릭터라는 것이다. 여느 이세계물처럼 별다른 노력도 없이 스킬을 뻥튀기해가며 강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독특한 노력 법이 생기기 마련이고 주인공은 이런 점을 바탕으로 해서 제자들을 가르쳐 간다는 거다. 제자들은 당연히 처음은 못생긴 데다 인간 언어도 못하고 쭉정이 같은 주인공이 반가울 리가 없다. 이런 점(못마땅)들이 이런 작품들의 클리셰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새로운 관점과 기존 클리셰가 짬뽕이 되어 있다고 할까. 남은 건 실력을 보여줘서 스승의 미덥지 못한 겉모습이 아니라 가르치는 실력을 겸비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러면 걸러지는 애들도 있고,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선생의 겉모습이 아니라 능력을 보고 주인공을 선택하는, 즉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흐름이 된다. 이렇게 주인공은 제자들을 받아 교사로서 학원 라이프를 이어가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얽히게 된다. 가령 교사들 간 알력 다툼에 휘말려 암살이라는 흉악한 일도 당하지만 애초에 살아온 경험치가 틀리다. '소피아'라는 인간족 최대 실력자하고도 무승부를 이룬 주인공을 이겨낼 인간은 이세계엔 없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다. 주인공은 이세계 기준으로 정말로 못생겼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여신이 마물하고만 번식하며 살아가라고 매도할 정도다. 한때는 가면을 쓰고 다녔다(지금은 벗었다). 그럼에도 못생김 아우라는 숨기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이성 다운 이성은 그의 곁엔 없다. 토모에, 미오는 마물이다. 정말로 마물하고 번식할 판이지만 애써 가족(토모에,미오)과 그러는 거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다. 그런 주인공에게 드디어 햇빛이 든다. 학원 도시에서 오픈한 상점은 높은 매출을 자랑하며 순풍에 돛 단 듯 잘 나간다. 교사로서의 실력도 인정받아 몇 명뿐이지만 콧대가 높던 귀족 애들도 제자로서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니 팔자 피고 싶어 하는 여학생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얼굴보단 돈이라는 마인드로 똘똘 뭉친 여학생들의 닥돌이 시작된다.


보통 이세계물에서 포인트라면 하렘의 완성을 꼽는다. 근데 이 하렘이라는 게 주인공이 뭘 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호감도 게이지가 상승해서 멋대로 하렘이 완성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는 거다. 이 작품은 그 정도의 길을 비튼다고 할까. 이 작품에서 하렘의 본질은 '돈'이다. 상점의 성공으로 부를 이룬 주인공을 호구 잡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의 미친듯한 돌격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결국은 여느 하렘들은 허구라는 현실미를 들이민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굴이 전부는 아니다. 여자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얼굴만으로 이런 현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에게 돌진하는 여학생들이 유쾌하게만 비춰진다.


어쨌거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신에게서 버림받았지만 운 하나는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토모에(드래곤)와 미오(검은 거미)를 주워 최강의 패를 손에 넣었고(이 둘을 이길 자는 이세계에서 주인공 외엔 없다), 현실의 비닐하우스 격인 아공을 만들어 각종 과일과 무기류를 만들어 내다 팔면서 떼돈을 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여신이 악담으로 던진 마물하고만 살아라고 했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토모에와 미오만이 아니라 드워프나 리저드맨등 여러 아인들을 아공에 이주 시켜 노예로 부려 먹고 있기도 하니까. 상점에서도 인간족보단 아인들을 부려먹고 어떻게 보면 주인공도 좀 악랄한 기질이 있다. 은근히 노동법 위반도 보이고. 하지만 주인공과 같이 있으면 아인들도 꽤 강해지니까 서로 윈윈하는 구석도 있다. 애초에 아인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있지만.


맺으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조금 독특한 면을 보인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건 좋아하면서 그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가령 처음 도시에서 대상인의 딸들이 저주를 받아 오늘내일하는 걸 고쳐주게 되었는데, 이번 학원에서 그 딸들이 제자로 들어오게 된다. 근데 그 딸들 이 학원에서 평판이 좋지가 않다. 또한 주인공은 이전에 모험가들을 도와주고 아공에 들였다가 그 모험가들이 일으킨 폭력으로 인해 아공의 주민이 죽게 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건 어느 정도 반성을 했긴 한데 그렇다면 자신의 길라잡이로서 이후의 행동에 지침이 되어야 하건만 그새 잊어버린다는 거다. 이번에도 학원에 잠입한 마족을 잡아내지만 풀어주게 되면서 또 뼈아픈 일을 겪게 된다. 이렇듯 주인공의 선행으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게 된다면 그 도움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곤란을 겪게 된다는 거다. 역시 완벽한 주인공은 없다.


아무튼 작은 복선은 바로 푸는 반면에 긴 복선은 몇 권에 걸쳐 풀어가다 보니 기억력이 붕어 머리인 필자로서는 복선 풀이가 쉽지 않다. 이번에도 복선이 제법 깔리고 있다. 주로 주인공을 노리는 복선이고, 때론 여신과 싸우는 마족과의 복선도 제법 투하되고 있다. 작가가 잊어먹지 않고 이후에 잘만 풀어준다면 매우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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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자격을 박탈당한 아저씨지만, 사랑하는 딸이 생겨서 느긋이 인생을 즐긴다 3 - L Books
오노나타 마니마니 지음, 후지 초코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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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라비를 맡길 곳을 찾아 쫓겨나듯 도망치듯 떠난 도시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저씨는 뜻밖의 상황과 마주한다. 언제는 모험가 자격이 되지 않는다며 비아냥 일색이었던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서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쇠약해져 오늘내일하는데도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구명줄마저 잘라버린 인간들이 손바닥 뒤집듯 아저씨는 환영하고 있다. 아마 1권에서 드래곤인가 뭔가 쓰러트려서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임팩트 깊은 인상이 남아 있지 않는 거 보면 드래곤 퇴치가 결정적이었지 않나 싶다. 천둥 벼락으로 엘프 마을이 불타는 걸 진화해주기도 하고, 쫓겨난 뒤 뭔가 선행을 많이 한 거 같다. 근데 그동안 용사 파티와 같이 다니면서 선행은 하지 않은 건가. 아저씨가 37살이 될 동안 용사 파티원 중 한 명으로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을 텐데 이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고작 드래곤 퇴치와 선행 좀 했다고 갑자기 영웅 취급? 이렇듯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자기들 편한 데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도시로 돌아온 아저씨가 그동안 용사와 매듭짓지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고, 딸 라비에게 모든 걸 쏟는 걸 그리고 있다. 아저씨는 용사 파티에서 쫓겨나고 라비 덕분에 알게 된 자신이 저주받은 이유가 뭘까 늘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도시에서 쫓겨나고 멀지 않은 미래에 HP(생명력)가 소진되어 객사할 운명이었다. 근데 마침 저주받아 펜릴로 변해 있었던 라비를 구해주면서 비로소 자신도 저주받았다는 사실, 그 저주를 건 장본인이 용사라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면 용사에게 있어서 아저씨는 스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저주를 받으면 복수해주는 게 순리건만 아저씨는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이렇듯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저씨의 성품은 보통 착한 게 아니다. 그저 아들과도 같았던 용사를 만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고 이유나 들어보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용사를 찾던 중 누군가에 의해 라비가 납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라비를 거둬들일 때부터 이미 딸바보가 되어 있었던 아저씨다. 역린을 건드린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줄 차례다.

근데 납치범에게서 뜻하지 않게 용사의 상태를 듣게 된다. 보통 저주란 되돌려지면 그 파괴력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아저씨는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었다. 그리고 그 저주는 시행자에게 되돌아갔다. 보통 이러면 쌤통이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죽으라고 자신에게 저주를 걸었던 용사의 상태를 걱정하게 된다. 사실 이런 부분이 여간 찌증이 아니다. 목숨이 달려있는 악행을 당하고도 분해하지 않는 성격을 어떻게 봐줘야 하는가. 딸 라비의 교육상 어른들의 지저분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딸 또한 선량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라며 애써 선한 마음을 포장하는 모습은 위선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읽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라비를 납치하고, 다시 아저씨로 하여금 저주를 받으라며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 납치범마저 용서해주는 모습에서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할 정도였다. 죽어가는 용사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장면에서는 이 정도면 착한 마음이 아니라 그저 호구에 병sin같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용사와의 관계는 일단락되긴 하는데 여전히 용사가 아저씨에게 저주를 건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기승전결까지 무시하게 되면서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아무튼 라비가 납치되면서 머물던 여관이 박살 나버려 책임감을 느끼고 자기가 수리비를 내겠단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는 시한폭탄 같은 아저씨를 내쫓는 게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저씨가 이 도시로 돌아올 마음을 먹은 이유가 도시 모든 사람이 아저씨를 깔보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중 한 사람이 여관 주인이었고, 이렇게 상처 입히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역설하기도 한다.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여관 재건에 돌입하고, 아저씨는 라비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것만 보여주고, 상처 입히는 사람도 있다면 그 상처를 치료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가게 해준다. 문제는 너무 딸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 모든 게 라비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흐뭇하고 사랑스럽다고도 할 수 있는데 사실 지리멸렬하고 따분할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무엇보다 와닿는다. 더 이상 모험가의 길은 걷지 않게 되고 그저 품에 들어온 딸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받치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라비를 통해 세상을 달리 보게 되고 그렇게 해서 모험가로써가 아닌 인간으로서 아저씨는 성장을 해간다. 라비는 그런 아저씨의 가르침으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배워가는 그런 이야기다. 아무튼 이런 생활 속에서 무지렁이 같은 아저씨의 성품이 짜증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교훈을 던지기도 한다. 마치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준 흥부처럼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좋은 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부서진 여관을 재건하면서 빠듯한 예산 때문에 고심이 많던 아저씨에게 엘프들이 내미는 손은 박 씨를 물어다 준 제비와 같다. 이렇듯 교훈적인 이야기가 상당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카타르시스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바란다면 이 작품은 맞지 않을 것이다. 또한 폭력엔 폭력으로 맞서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 죄가 돌아온다는 메시지도 들어 있다.   

맺으며, 그냥 육아 프로그램이다. 아저씨가 라비를 키우기 위해 뭣이 중한디를 실천해가는 그런 이야기다. 그렇게 선한 마음으로 똘똘 뭉친 아저씨의 가르침을 받고 라비는 성장을 한다. 호기심이 많아 이거저거 물어보고 새로운 것에 신기해하고 사물의 원리를 알아간다. 얼핏 귀엽고 아기자기한 장면들이 연상될 테지만 사실 그런 거 없다. 작가의 필력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복선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접하게 되는 일들엔 감정적(부정적인 삼정은 아님)이 되는 일이 많다. 주변이나 자연에 대한 사물 표현에 있어서 1차원적이다. 분명 판타지이고 중세 시대를 표방하고 있건만 은행이니 병원이니 현대적 언어 등을 보자면 어휘력에서도 좀 빈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 그리고 중심을 라비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애 숨통을 조이는 듯한, 딸바보는 사실 아이의 자주성에 제약을 걸게 되고 그걸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느낌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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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티처 13 - S Novel+
네코 코이치 지음, Nardack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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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아이덴티티는 '가르침'이다. 제자들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타인을 돌보는 희생정신을 가르친다. 불의를 못 본 척하지 않고, 약한 자를 돕는다. 제자들이 언젠가 독립했을 때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그날까지 주인공 '시리우스'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그런데 언젠가 독립할지도 모를 제자들을 부인으로 들이는 건 뭔가 아닌 거 같단 말이지. 현실 같으면 파렴치로 매도당할 일을 잘도 저질러 주신다. 그동안 일선만큼은 넘지 않고 보살펴 줬던 리스와 피아까지 부인으로 들이면서 명실상부 하렘이 완성되었다(4P도 거뜬하다). 에밀리아는 여행을 떠나기 전 어릴 때부터 주인공을 사모하고 있었고 일찌감치 수청을 들면서 제1부인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주인공이 고자인 것만큼 짜증 나는 것도 없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진행 시키는 것도 어딘가 짜증을 불러온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명의 제자가 들어온다. '카렌(표지)'은 인간과 유익종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안 계신다. 선천적으로 기형인 날개 때문에 마을에선 따돌림당하며 늘 혼자였고, 엄마와 마을에서 근근이 생활하다 모험가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는 처지에 놓였었다. 세상 참 이보다 불행한 아이가 또 있을까 싶다. 엄마와는 생이별하고, 마물에 쫓기던 노예상에 의해 마물 먹이로 던져지고, 카렌의 나이는 6살쯤이라고 한다. 작가가 애를 얼마나 굴리려고 이럴까 싶을 정도로 애잔한 삶을 살아간다. 절체절명의 순간 지나가던 주인공 시리우스 패거리에 의해 구출된 후 엄마와 극적인 상봉을 이뤘긴 한데, 어차피 마을에 있어봐야 좋은 꼴 못 볼 테니 엄마는 딸을 시리우스에게 맡기기로 한다. 손버릇이 나쁜 주인공에게 맡겨도 되나 싶었지만 보다 넓은 곳에서 보다 많은 것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가 들어가 있다. 새로운 가족이 된 카렌의 귀여움과 리스의 언니와 아빠를 만나기 위해 생도르라는 나라로 향하는 것, 그리고 소동에 휘말려 고생하는 것이다. 카렌의 귀여움은 13권이나 진행이 되면서 무미건조해진 이야기에 단비 같은 효과를 부여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끝에 링거 꼽고 사경을 헤매던 예능 프로그램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 기사회생하는 그런 분위기를 선사한다. 벌꿀을 너무 좋아해서 식단 관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카렌의 먹성을 조절하느라 진땀을 뺀다. 걸핏하면 훔쳐먹기도 하고, 걸리면 귀여운 변명을 하는 게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낯은 엄청 가리면서 벌꿀로 유혹하면 졸졸 따라가가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벌꿀 있어? 하며 스스럼없이 말을 걸기도 한다. 집중력은 얼마나 좋은지 한번 뭔가에 빠지면 주변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마법 소질도 있어서 한번 본건 따라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지만 이제 6살인 아이에겐 너무 위험하기도 해서 그걸 조절해줘야 하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보람이 있나 보다. 하지만 엄하게 가르치는 건 좋지만 이제 6살인 아이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카렌은 은근히 시리우스를 멀리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아무튼 세상 풍파를 가르치겠다며 6살짜리에게 빨래를 시키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아이를 다뤄본 적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미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씹는 게 서투른 아이가 질긴 고기를 먹으며 딱딱하다고 하면 보통 다른 걸로 바꿔주지 않나. 그런데 난 괜찮은데? 라니 공감능력이라곤 찾을 수 없는, 조금은 비정한 모습도 보인다. 이건 뭐 작가의 문제겠지. 애를 다독이는 것보다 기 죽이는 게 종종 보여서 조금은 불편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생도르에 도착해서 리스의 언니와 아빠를 만나려고 했는데 늘 그렇듯 소동이 일어난다. 생도르의 왕은 자리에 누워 오늘 내일 중이고, 두 명의 왕자와 한 명의 왕녀는 왕권을 놓고 대립 중이다. 겉으로는 분명 그렇게 보인다. 왕자와 왕녀는 당연히 실력 있는 사람 한 명이라도 수하에 두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주인공 일행은 눈도장 찍히며 말려 들어가는 그런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자기들끼리 치고받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리스의 언니 리펠 왕녀가 휘말려 고초를 겪고 있어서 리스를 제2부인으로 두고 있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모른 채 할 수도 없다. 벌써 시리우스 일행을 영입하기 위해 제1왕자가 움직이는 등 본격적으로 왕권을 둘러싼 소동에 휘말려 들어가는데, 일이 요상하게 흘러간다. 서로 죽이고 죽고 철천지 원수 같아야 할 왕자들과 왕녀는 사이가 좋아 보인다.


이렇듯 이 작품도 은근히 기믹을 설치해두고 있다. 문제가 되는 건 표면적인 등장인물들이 아닌 이들의 주변과 모습을 보이지 않은 흑막이라고 넌지시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진짜 적은 누구냐를 놓고 조사를 진행하게 되고 그럴수록 수렁에 빠지는, 발을 빼려고 해도 뺄 수 없는 마치 의도에 휘말린 듯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모처럼 작가가 힘을 좀 낸다고 할까. 뭐 사실 크게 놓고 보면 어디에나 있는 왕 좀 해보겠다는 설치는 귀족들이나 자기 입맛에 맞는 왕을 앉히려는 무리들의 좌중지란 같은 거긴 한데 작가는 여기에 한가지 더 뭔가를 가미해두고 있다. 뭐랄까 코난 같은 주인공이랄까. 가는 곳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 여관에 들렸더니 여관 딸이 유괴된다든지, 주인공을 어디에 가둬두면 세상 평화로울 수 있지 않을까.


맺으며: 이번 리뷰는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키고(고칠 수가 없어 언제 꺼질지 몰라 저장을 따로 해두느라 더 지친다), 잠도 쏟아지는 새벽에 쓰다 보니 최악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이 작품은 리뷰 쓰기가 곤란할 정도로 복선도 별로 없고 딴 길로 안 새는 정도의 길을 가고 있는지라 복선을 풀어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언급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가르침'을 아이덴티티로 삼고 있다 보니 주인공이 넘지 못할 적은 없고, 여행만 할 뿐인 그런 이야기다. 사실 제자들이 성장해서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복선이라도 있었으면 가르침이라는 것이 조금 더 빛나 보였을 텐데 왜 하필 부인으로 다 들여버려서 미래를 고정시켜버리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호쿠토(개과 늑대)가 미래에 피아(엘프)와 어쩌면 둘이서 여행할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아련하게 만드는 장면(라고 해봐야 두어줄 뿐이다)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작가가 주어진 환경을 잘 살리지 못하는 듯하다. 엘프 종족인 피아에게 있어서 주인공 시리우스는 말할 것도 없고 리스와 에밀리아등 주변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게 될 텐데 이거에 대한 아련함을 조금 더 부각 시켰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서 빨리 아이를 낳고 싶다는 본심을 내비치기는 하는데 그렇게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또는 히로인 세 명 중에 한 명과 맺어지고 두 명은 떠나보낸다는 이야기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면 가르침이라는 본질이 완성되었을 텐데 아쉽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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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4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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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와 긴글 주의






이 작품은 참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태어날 때부터 사생결단을 하는 환경 속이었다면 사람을 죽이는데 주저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무법지대가 아닌 평화에 찌든 세상에서 자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다. 법률이 존재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법치국가에서 나름대로 법을 지켜오며 살았고, 윤리를 통해 사람 목숨의 가치를 새겨들은 보통의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윤리와 생명의 가치는 개나 줘버린 세상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자 했다. 그런 주인공을 비웃듯,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때가 온다면 과연 주인공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3권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참으로 리얼리티 한 장면들을 보여 주었다.


누나와 여동생을 대신해 이세계로 전이당한 주인공이다. 사실은 학교에서 궁도나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주인공이다. 때론 이성으로부터 고백도 받고, 여느 작품들의 고자들처럼 고백을 거부하기도 하는 등,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인생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세계에서 미친 여신 덕분에 인간과 대화 불가능, 못생김으로 아인급 차별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입에 풀칠해보겠다고 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운이 좋아 토모에와 미오라는 마물을 종자로 손에 넣었고, 아공이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기도 했다. 미친 여신에게 소환 당하고 버려지고 황야에 떨어져 삶이 막막하던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얼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픈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을 이뤘고, 소중한 걸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알아간다. 


누나와 여동생 대신 이세계로 온 것에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 원래 여신이 바랐던 것처럼 누나와 여동생이 이세계로 전이되었다면 주인공은 아마 자신은 죄책감에 폐인이 되어 버렸을 거라고. 이세계를 근 1년 가까이 경험한 주인공이 내린 결론이다. 이세계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외모지상주의만을 추구한 미친 여신은 이세계 인간들의 내면과 정서와 성격 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누나와 여동생이 주인공 대신 이세계에 소환되었다면 그녀들은 과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또한 소환한 용사들이 제대로 된 인간일 리 없다는 복선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이번 4권부터 세계관이 넓어진다. 상인으로서 상점을 열기 위해 학원도시로 향하던 주인공을 여신은 가타부타 없이 납치해버린다. 그리고 한창 인간과 마족들이 벌이는 전쟁터 한복판에 던져 버린다.


오로지 미형 인간만의 세상을 추구하는 미친 여신 덕분에 아인과 마족은 천대받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들고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한때 인간들을 밀어붙이며 이길 거 같았던 전황은 용사들이 소환되고 여신이 다시 인간들에게만 축복을 내리면서 아인과 마족은 궁지에 몰려간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다시 대규모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 거린다고 했던가. 그동안 여신의 만행에 마족과 아인은 대항책을 마련했고 이번 전쟁에서 다시 인간들을 밀어붙이는데 성공한다. 이에 여신은 자신이 소환한 용사들이 죽는 걸 염려하여 주인공을 납치해 고기 방패로 던진 것이다. 주인공에겐 설명도 뭣도 없었다. 갑자기 전장에 던져져 커다란 칼을 휘두르는 여전사 앞에서 주인공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큰 부조리도, 불합리도 없을 것이다.


여느 먼치킨이라면 이 국면에서 각성한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장면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력만 높을 뿐 실전 경험도 미천하고 스킬도 별다른 게 없다.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교섭을 하는, 이세계에 떨어진다고 다 먼치킨이 되는 건 아니라는 듯 참으로 리얼리티 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마력과 더불어 자랑이었던 방어력은 쓸모가 없다. 그야 상대는 이세계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드래곤슬레이어] '소피아'였으니까. 사실 소피아에 대해선 그동안 꾸준히 복선으로 나왔다.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이번 전쟁에서 마족편에 서서 자신이 쓰러트린 드래곤과 같이 출연한다. 생각해보면 소피아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미친 여신이라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수긍하며 살아가는 반면에 소피아는 미친 여신에 대항하며 살아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 소피아가 여신이 소환한 주인공을 좋게 볼 리가 없다. 사실 이렇게 끝까지 대척점으로 흘러가면 좋겠는데 설정을 찾아보니 꼭 그렇지마는 않은. 아무튼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인간계 최강인 소피아를 상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주인공이 성장 가능성을 보인다는 거다. 필자가 이 작품을 좋게 보는 부분이 이것인데, 실전을 치르며 보완해야 될 점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알아가는, 즉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지 않다. 실패를 거울삼고, 두들겨 맞음으로써 아픔을 알아가고, 패배라는 경험이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거다.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여신의 간섭에 대해 대항책을 만들어 가게 된다. 다시 전장 한복판에 던져진다면 배겨날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명의 용사들, 마족과의 전쟁에 맞서라고 여신이 소환했으니 당연히 이번 전쟁에 출전하게 된다. 미친 여신의 입맛대로 내면과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 외모만을 보고 소환된 용사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한쪽은 전형적인 살신성인 용사고, 한쪽은 자기중심적 용사다. 살신성인 용사는 병사들을 살리겠다고 적군을 향해 닥돌 하다가 되레 병사들의 발을 붙잡아서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중심적 용사는 자기만 살자고 자신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몰살 시켜간다. 사람 살리는 용사들에게 싸우라고 전장에 투입했더니 되레 아군이 죽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 작가가 표현에 있어서 거침이 없다고 할까. 인간이 가진 내면을 이리도 훌륭하게 표현하는 이세계물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필자 주관적이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 수준급이다.


꼭 보면 이런 용사들은 죽지도 않고 목숨이 왜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 그나마 살신성인 용사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참다운 기사의 기질을 보인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다 보니 주변의 발을 붙잡게 된다. 나는 하려고 하는데 그러나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는, 그러다 보니 뭔가를 잃게 되는 아픔을 얻게 되는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을 용사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자기중심적 용사는 그딴 거 없다. 세계는 나를 위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 된다는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다. 온갖 버프는 다 받아서 기고만장하다가 찌질하게 져놓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거 하며 이쯤 되면 작가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필자 주관적이다. 미친 여신에 이런 용사들이 어우러져 이번 4권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그지없다.


맺으며: 드래곤 상위종 루토의 언급과 드래곤 슬레이어 소피아의 등장으로 복선 몇 개가 투하되고, 마족과 인간들의 전쟁으로 세계관이 제법 넓어지는 4권이다. 그동안 어딘가 동떨어진 세계를 걷고 있었던 주인공은 소피아와의 접촉으로 성장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할까. 여기에 살신성인 용사와 자기중심적 용사를 투입함으로써 긴장감과 몰입도는 한층 더 높아진다. 물론 이런 게 이세계물의 클리셰에 들어가겠지만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작가는 제법 괜찮게 풀어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필자 주관적이지만. 아무튼 성장형 주인공을 원한다면 이 작품도 나름 괜찮다. 실패와 좌절을 겪고 그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성장하려는 주인공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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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교실 1 - L Book
타케마치 지음, 토마리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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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에 있어서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정보'를 손에 쥐는 것이다. 


이 작품은 픽션이다.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그래서 10대 여자애들을 스파이로 교육해 다른 나라에 잠입 시키는 것이 허용된다. 간혹 영화라든가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스파이는 동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죽어도 없는 사람 취급받거나 영웅으로 추앙받지도 못할뿐더러 사람들에게 기억되지도 못한다. 불가능한 미션을 부여받아 사지로 떠나고, 그렇게 해마다 죽는 요원이 현실에서도 생긴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스파이전을 다루고 있다. 비록 10대 여자애들을 동원해 서브컬처로서의 흥미 위주로 그려가고 있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것은 픽션이나 현실이나 똑같다는 설정이다.


근데 사실 이 작품은 스파이라는 첩보물이라기 보다 이능력 배틀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이세계 전생 치트와 무능력 치트를 결합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 우선 이 작품의 히로인이자 주인공인 '릴리'는 스파이 양성 기관에서 낙오자다. 머리도 좋고 인물도 훤한데 어째서인지 실기에선 괴멸적인 평가를 얻어 아슬아슬하게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숨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독 면역이라는 '특이 체질'이다. 아마 이것 덕분에 쫓겨나지 않은 듯한데, 요점은 이미 시작부터 그녀에겐 '어드벤티지'가 있었던 샘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요소요소에 기믹을 숨겨둔다. 등장인물들을 능력이 없는 것처럼 꾸며놓고 실상은 능력자라는 거다.


어느날 릴리는 어떤 임무를 부여받는다. 양성 기관에서 퇴출되다시피 임시 졸업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등불]이라는 급조된 팀에 배속되는데, 이 팀은 불가능한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그녀가 이곳에 도착하니 '6명'​의 소녀가 이미 와 있다. 앞으로 릴리는 이 소녀들과 한 달 뒤 사망률 90%에 달하는 불가능 미션에 도전해야만 한다. 팀의 보스는 '클라우스', 클라우스의 지도를 받아 정예 스파이들도 이루지 못한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데 알고 봤더니 여기에 모인 릴리를 포함 '7명' ​모두가 낙오자들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들은 버림말로서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그런 처지다.


이런 낙오자 애들을 한 달 만에 교육해 불가능 미션에 도전 하라니 미친 거냐고 소리 질러도 이상하지 않다. 더욱이 그녀들을 교육해야 될 클라우스에게 지도력은 없다. 여러분은 밥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행동을 말로 설명할 수 있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행동이 아니라 원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과연 몇이나 답할 수 있을까. 클라우스는 원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고로 그에겐 스파이로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행동은 가르쳐도 원리는 가르치지 못한다. 즉, 이 [등불]이라는 팀은 전부 낙오자만 모인 집단이다. 릴리는 이런 팀에서 도망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클라우스를 납치해서 팀을 해체하라며 협박하는 등 애가 정신 나간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이 흥미요소다. 스파이로서 능력을 보이며 적을 농락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게 아닌 현실적으로 불안해하는 인간 심리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릴리는 죽는 것보다 사는 쫓을 택한다. 능력을 펼치기도 전에 죽어버리면 뭔 소용이냐며 아득바득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도망갈 구멍은 없다. 클라우스를 협박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 한 달 뒤 찾아오는 클리어 불가능 미션에 도전해 성공 시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클라우스의 지도 방법을 바꿔 어떻게든 실력을 쌓아야만 한다. 그래서 클라우스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정신으로 7명의 소녀들을 교육하기로 하는데.


여기까지 오면 뭐 정말로 영화처럼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서 비장한 각오로 적지에 뛰어들어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반전을 이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7명의 소녀들도 클라우스의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가긴 간다. 이렇게 이 작품은 사망률 90% 미션이라는 요소에 중점을 맞추며 진행이 된다. 하지만 초반에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엔 기믹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사실 픽션이라고 해도 한 달 만에 낙오자들을 교육한다고 손오공이 초사이언 되듯 될 리는 없다. 손오공은 순간이동 하나 배우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하더라. 그렇게 한 달간 교육 끝에 7명의 소녀와 클라우스는 적지에 잠입하게 된다.


스파이를 하려면 모두를 속여라라는 말이 있다. 영화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 영화에서 가족들을 속이기도 했잖은가. 이런 점이 기믹이라는 것이다. 실력이 되지 않으면 기교를 부릴 수밖에 없고 적이 이 기교에 속아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부터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기믹에 빠져들게끔 설정이 잡혀 있다.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은 기교를 부린다. 그녀들이 왜 불가능 미션에서 도망가지 않고 도전하게 되었는지 조금식 풀어간다. 졸지에 추리물이 되고 괜찮은 흐름을 보여주긴 한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을 속이려 든다. 사망률 90%라는 요소를 넣어 적국은 상당히 강할 거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그래서 그 사망률 90%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왜 이리 허망한지 필자 자신도 모르겠다.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 적지에 도착한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을 맞이한 건 사망률 90%라는 진실이다. 사실 필자는 중반까진 제법 괜찮은 흐름이라고 봤다. 하지만 적지에 침투하고 사망률 90%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뭐 이딴 게 있나 싶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임무가 힘들어서 사망률 90%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은 처음부터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격언을 그대로 실천했다는 전형적인 능력자 클리셰를 보여준다. 결론은 연극이었고, 독자는 연극에 놀아난 꼴이다.


정말 한숨이 제대로 나왔다. 죽음을 각고하고 임무에 종사하는 엘리트 스파이들을 우롱하듯 자기중심적 성격을 보여주는 릴리부터 답이 없다. 쌀 배달하는 사람도, 택시 운전하는 사람도, 비행기 조종하는 사람도 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일에 매진한다. 하물며 스파이라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 죽기 싫다는 어리광은 어떻게 받아줘야 할까. 포부라도 당차면 모르겠는데 그저 나라를 구하고 싶다는 두리뭉실한 이상을 보여줄 뿐이다. 자신이 개화하지 못한 건 양성 기관과 교관이 실력이 없다는 마인드. 여기에 쇄기로 능력이 없다면서 독 면역이라는 특이 체질과 독 만들기는 수준급에 엘리트 못지않은 움직임은 어떻게 봐줘야 할까. 이런 릴리가 낙오자라면 엘리트는 대체 어떤 능력을 보이는가.


필자는 위에서 이 작품은 이능력 배틀물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무술을 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듯이 이 작품도 그에 못지않은, 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라는 건 대체 뭘까 싶다. 와이어 액션신은 이세계 전생물처럼 이능력이 없다면 표현 불가능한 영역 수준이다. 어떤 소녀는 [불행]이라는 체질로 주변의 불행을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연이 아니라 미래 예측하듯 이능력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스파이물이 아니라 이능력 배틀에 가깝다. 낙오자라면서 능력은 있는, 이세계 전생에서 흔히 보는 무능력자가 치트를 써서 능력자가 되는 그런 요소가 잔뜩 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스파이를 가장한 이세계 먼치킨이다.


맺으며: 온통 기믹 밖에 없다. 릴리를 낙오자들만 모인 [등불]이라는 팀에 합류를 지시하는 시점부터 이미 기믹이 시작된다. 스파이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면 이 작품은 대성공이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라는 격언도 성공적이다. 적은 결국 속아 넘어갔으니까. 하지만 이능력을 넣기 시작하고 사망률 90%라는 진실이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고꾸라진다. 이러려고 애들을 교육한 것인가. 이쯤 되면 왜 낙오자들로 이 미션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결론은 엘리트들을 쓸 필요도 없었다. 엔딩을 접하면 작중에 언급되는 소녀들의 성장 '가능성'의 의미는 이걸 두고 하는 말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은 낙오자들의 갱생 프로그램이라랄까. 스파이로서 전통적인 첩보물을 바라고 이 작품을 찾는다면 분명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배틀물로서 성장물로서 찾는다면 어느 정도 맞을 것이다. 현실을 대입하고 읽었던 필자는 괴리감에 몇 번이고 책을 덮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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