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의 팔라딘 2 - 짐승의 숲에서 만난 사수
야나기노 카나타 지음, 린 쿠스사가 그림, 신우섭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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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세상을 어지렵혔던 데몬의 왕 [상왕]을 봉인한 3영웅, 죽어서도 언데드가 되어 200년 넘게 [상왕]이 봉인된 땅을 지키던 3영웅에게 다가온 아이. 버릴 수도 있었고, 못 본 채 할 수도 있었건만 언데드로 변한 3영웅은 멸망한 나라의 폐허에서 아이를 무사히 키웠습니다. 자신들의 능력과 경험 모두를 아이에게 전수해 주었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 15세 되던 날, 언데드들은 아이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부모가 되었고, 언데드들에게 있어서 아이는 둘도 없는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고 하죠. 성인이 된 아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떠나려는 아이를 보며 이제 세상에 미련이 없어진 언데드들에게 과거 3영웅을 언데들로 만들었던 불사의 신(神)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불사의 신은 부모와 자식에게 마치 마지막 시련이라는 듯 가혹한 운명을 던집니다.

이번 이야기는 '변경의 팔라딘'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부모를 윤회의 고리로 되돌려 보내고 폐허의 유적을 나와 인간의 마을을 찾아 여행을 떠나죠. 이 작품은 신(神)화가 존재하며, 그 신중에는 악(惡)신도 존재하여 그 악신의 영향을 받는 어둠의 세력 또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정점이 '데몬'이고 데몬의 왕 [상왕]의 시대 때 전 세계가 업화에 휘말려 인간(포함 여러 종족)은 절멸의 기로에 서 있었죠. 그런 암흑의 시대에 한줄기 빛과 같이 3영웅이 등장하였고, [상왕]은 봉인되기에 이릅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어딘가 몽환적이고 유럽 신화 같은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작품과 분위기가 비슷한 작품을 꼽으라면 '재와 환상의 그림갈'이 있고, 신과 신앙에 대해서는 '늑대와 양피지'와 유사한 느낌을 보여줍니다. 각종 데몬과 마물들의 등장으로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상황에서 신앙의 힘은 절대적이라는 것등이 비슷하죠.

주인공은 여행 중에 숲속에서 '하프엘프 메넬도르(이하 메넬)'를 만납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될게 이 작품은 주인공이 여행을 하다가 히로인이 물가에서 목욕하는 걸 발견하고, 그냥 가면 될 것을 필연적인 이벤트마냥 어이쿠 발이 미끄러졌네 하며 뛰어드는 그런 훌륭한 이벤트는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작품의 하프엘프는 '남자'라는 것이고, 그래서 김이 빠지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뻔한 클리셰가 아니어서 안도하기도 하였군요. 목욕씬? 그런 건 없고 웬 멧돼지를 잡아 사이좋게 구워 먹습니다(먼산). 약간의 에피소드를 거치며 주인공의 동료이자 친구로 영입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약간의 트러블이 발생하고 주인공이 해결하면서 '메넬'은 깊은 인상을 받아 가죠. 보통 이런 씬은 히로인과 해야 하는데, 히로인과의 썸 못지않은 브로맨스를 찍으려는지 히로인과의 이벤트였다면 만나자마자 호감도 맥스를 찍을만한 이벤트를 보여준다는 것에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군요.

어디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용사가 중간 마을에서 동료 한 명을 영입한 것 같이 그렇게 메넬을 대리고 길을 떠나는데 이번엔 진짜로 히로인을 만납니다. 한 권에 너무 많은 만남이 이뤄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마물에게 쫓기는 하플링(소인족) 소녀 음유시인 '로비나'와 상인 '토니오(참고로 남자)'를 만나 동료로 영입, 다시 길을 떠나 항구도시 '화이트 세일즈'에 도착합니다. 사실 중간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걸 다 언급했다간 리뷰가 한없이 길어질 테니 생략하고 여행 중 주인공에 대해 조금만 언급해 보자면 부모(언데드)에게서 교육을 참 올바르게 받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데몬과 마물이 날뛰는 무법의 지대 광활한 '짐승의 숲'에서 처절하리만치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보면서 마치 늑대와 양피지의 '콜'과 같이 깊은 신앙심으로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가자는 결의를 하는 모습들이 상당히 인상 깊죠. 거기에 내 이익은 없으며, 불행하게 죽은 사람들을 윤회의 고리로 돌려보내는 일을 덤덤히 해나갑니다.

주인공은 항구 도시에서 영주를 만나 팔라딘이라는 기사직을 받고 일행들과 변경 '짐승의 숲'으로 돌아와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변경의 팔라딘이란 이런 뜻입니다. 개척의 시대라면 필수적으로 1세대가 겪는 궁핍한 삶과 처절한 생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대가 없이, 내 이익을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보살피는 주인공의 모습은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성녀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비 온 뒤 땅이 더 굳는다는 말처럼 부모에게서 이론만 배웠던 애송이가 실전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이죠. 차별의 뜻은 없다는 걸 미리 밝혀놓고 언급해 보자면 작가는 왜 주인공의 성별을 남자로 했을까 하고 끊임없이 묻기도 하였군요. 하다못해 메넬이라도 히로인으로 해두었다면 조금은 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음유시인 소녀 '로비나'는 너무 활달해서 역할을 대신 맡기기엔 부적합해 보였고요.

맺으며: 좋았던 점을 몇 개 언급해 보자면, 기반이 이세계 전생물이다보니 약간의 치트 같은 설정도 있지만 크게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사물과 자연의 표현에서 시(詩)적인 장면도 있고, 몽환적인 장면도 있는 등 여느 판타지와는 조금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렘이 없습니다. 단점을 몇 개 언급해 보자면, 주인공 혼자 다 짊어지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타인의 능력을 자신의 기준으로 맞추는 버릇이 있습니다(메넬이 골로 갈 뻔한 이후 고치긴 합니다). 마음이 망가진 거 같진 않은데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면서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메넬'이 다치자 눈 돌아가는 모습은 좀 그랬습니다. 그리고 허를 찔러 주었던 장면으로는 항구 도시에서 돼지 성직자를 만났을 때군요. 보통 판타지물에서 돼지 성직자는 부패의 표본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했군요. 거기다 물심양면으로 주인공을 지원해 주기까지. 선입견은 좋지 않다는 메시지가 아닌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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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내 세계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6 - 천마의 꿈, Novel Engine
사자네 케이 지음, neco 그림, 이경인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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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이 똑똑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원래 세계에서 5대 종족 대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가 덮어쓰기 되어 이쪽 세계로 넘어왔을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죠. 그래서 주인공은 원래 세계에서 인간족을 승리로 이끌었던 '시드'라는 사람을 찾아 진상을 듣고 싶어 하지만 그 진상은 다름 아닌 환수족(수인)의 영웅 '라스이에'가 가르쳐 주었었습니다. 물론 환수족은 인간족과 적대하는 적으로서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문제였긴 합니다만. 결국 이번 6권에서 그녀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걸 알게 되죠. 그래서 주인공은 이번 6권에서 절망을 맛보게 됩니다. 악마족 영웅 '바네사'를 처음 만나 사생결단을 낼 때 그녀가 전력을 내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 이유가 뭘까(물론 절제기관의 개입 때문이라고는 해도), 엘프의 숲에 갔을 때도 거만하고 오만했던 엘프가 순순해졌던 연유가 무얼까, '슬라임 소녀'가 친구처럼 인간들 사이에 녹아들 때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주인공은 자기가 잘 생기고, 배려심 많은 하렘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이종족 하렘을 꾸릴 수 있었다고 착각했을까? 사실 이것조차 독자는 모릅니다.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급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게 있죠. 서로 적대하지만 만나고 보니 친구처럼 잘 지내더라는 겁니다. 악마족 영웅 '바네사'의 오른팔 '하인마릴', 엘프의 '레이렌', 그리고 '슬라임 소녀'가 인간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점을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에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곤 하지만, 이들이 인간과 섞여 지내고 있다는 것에 포인트가 있죠. 그렇다면 원래 5대 종족은 서로 사이좋게 지냈던 거 아닐까? 환수족 영웅 '라스이에'가 말했던 흑막 때문에 세계가 덮어쓰기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은, 나아가 인간족에 붙어 예언해 주고 있는 '신(神)'에 대해서도 의심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 제6종족 기강족 본거지에서 주인공은 원래 세계의 '시드'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줍습니다.

그리고 '시드'가 남긴 메시지에서 이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죠. 5대 종족 대전을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이 있고, 사실 5대 종족은 다투지 않고 살아가는 미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은 환수족 영웅 '라스이에'에게서 들은 진실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내용이지만, 주인공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을 해봤다면? 메시지를 듣고서야 '라스이에'의 말이 맞았다는 걸 깨닫는 주인공을 어떻게 봐야 할지 참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쯤 '라스이에'는 악마족 영웅 '바네사'와 '슬라임 소녀'와 3파전을 치르며 사생결단을 내는 중이었죠. 그제서야 '라스이에'를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 주인공이 서둘러 싸우고 있는 3명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보게 되죠. 느닷없는 흑막의 출현을요. 주인공에게 그리고 인간족을 뺀 4대 종족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주인공이 의심을 하고 대비를 했다면, 후에 기강족 영웅이 이런 말을 하죠. 흑막을 만났을 때 4대 종족(바네사, 슬라임 소녀, 라스이에, 엘프녀)을 끌어들여 흑막과 맞섰다면 결코 절망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맺으며: 예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필자의 리뷰로 인해 출간작 판매량에 영향이 가면 어쩌나 하는 주제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요. 사실 신랄하게 비판한 몇몇 작품 중에 후속이 발매 안 될 때마다 이런 마음이 커져만 갔었군요. 그래서 웬만하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본 작품은 어떠한가를 논해본다면, 사실 5권까지 참고 봐왔었습니다만, 이번 6권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아마 출판사도 검수 때문에 읽어는 보셨을 테고, 그렇다면 얼마나 심각한지 인지하셨을 거라 봅니다(그래서 7권이 안 나오는 건가?). 일단 최대한 중립적인 측면에서 쓰고자 했지만, 역시 비판 좀 해야겠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무능한 놈은 없을 것입니다. 생각이라곤 전혀 하지 않으며, 하는 것도 별로 없고, 결국 주변이 알아서 온순해지고, 알아서 해주니까 해결된 것이지 주인공이 생각이 깊고 카리스마가 있어서 해결이 되었나? 전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결정판이 이번 6권이죠. 이쪽 세계에서 '시드'라 자처하는 용병왕이 존재하고, 이전부터 그의 의지(인간 외에 절멸)를 알고 있다면 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결국 흑막과 용병왕이 노리는 건 인간 외의 4대 종족이고, 지금 그 3대 종족이 만나 싸우고 있다면 이후 일어날 일은 뻔하죠. 3종족 영웅들이 싸우다 지치게 되면 어떤 결말을 맞을지를요. 결국 흑막에 의해 주인공을 뺀 4대 종족 영웅(엘프녀도 휘말림)과 '린네(히로인)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도 주인공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못하는 게 아님)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더욱 문제는 갑자기 등장한 흑막의 능력인데, 그냥 내가 말하면 법이라는 것처럼 인과관계는 개나 줘버리고는 식의 게임으로 치면 '쿠소게'에 버금간다는 것입니다. 게임 좀 해본 분들이라면 '쿠소게'의 의미를 아실걸요. 이건 나무야 미안해를 넘어서는 것이죠. 주인공은 모든 걸 잃고 모든 게 끝나고 나서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반격의 기회를 엿보며 끝나긴 하는데, 결국 요점은 절망을 뒤로하고 일어선 주인공이 5대 종족을 이끌고 흑막과 싸워 이겨 영웅이 된다 뭐 그런 결말일까요? 메인 히로인 '린네'의 정체와 세계 덮어쓰기에 대한 복선도 나왔는데 7권을 필자가 읽을지는 회의적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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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사냥개 1 - Novel Engine
카미츠키 레이니 지음, LAM 그림, 한신남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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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대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격변의 시대에서 중소 약소국(國)이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기당천으로 일컬어지는 마법사를 독점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아멜리아 왕국'에 맞서 '캠퍼스펠로우'의 영주 '버드'는 대륙 곳곳에 있는 일곱(7) 마녀를 모아 대항하기로 합니다. 이 작품에서 마녀란, 꼬깔콘을 쓰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도우는 착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녀란, 재해를 불러오는 만악의 근원이자 이야기 시작점에서 사람들을 살해하며 재산을 빼앗는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위험천만한 마녀를 불러 모아 '아멜이라 왕국' 마법사에 대항한다는 포부를 밝힌 젊은(아마도) 영주 '버드'는 이웃 나라 '뢰베'에서 '거울의 마녀'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마녀를 양도받기 위해 '뢰베'로 떠나게 되죠. 그리고 이 발걸음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대사서시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주인공 '롤로(이하 주인공)'는 자신의 상관인 '버드'를 따라 '뢰베'로 향합니다.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암살자로 키워졌고, '검둥개'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둥개'는 반세기 전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여 적국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죠. 적군에겐 두려움의 대상인 '검둥개'와 극악무도한 마녀와의 만남,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마녀와 사냥개'의 의미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런데 세상사가 다 그렇듯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잖아요? 이 작품엔 키워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발암(發癌)', 두 번째는 '불살(不殺)', 세 번째는 영주 버드의 친딸 '델리리움', 영주 '버드'는 마녀를 양도받기 위해 뢰베로 왔습니다. 그의 딸 '델리리움'도 같이요. 작중엔 14살쯤인 거 같은데(판타지에서 14세면 이미 성인 취급), 일단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설정(발암)입니다. 그래서 델리리움은 이 여행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성장하는 캐릭터가 되어야만 하죠.

그리고 주인공은 반푼이 암살자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다는 주제에 불살을 외치며 적을 죽이려 하지 않는 통에 사태를 키워 간다는 설정입니다(두 번째 발암). 그가 어렸을 때 암살자로서 장부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선 어떤 세례식을 치러야만 했고, 주인공은 그때의 트라우마로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을 보입니다. 보통 이런 작품을 보면 주인공은 꽤 강하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돌파구를 찾아내 위기를 벗어난다는 설정을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반푼이에 지나지 않으며, 암살자로 키워졌다고 어느 작품처럼 혼자서 무쌍을 찍는 그런 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연명하며 히로인(델리리움 말고 또 있음)은 고사하고 주인(영주 버드)도 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죠. 사실 이런 게 발암일까?라는 논란의 여지는 있겠는데 어떻게 보면 참 현실적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주인공도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참혹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마녀는 왜 '뢰베'에 붙잡혀야 했는가를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내는데요. 마녀 또한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휴머니즘을 보여주죠. 마녀란, 그저 선천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을 뿐이고, 나보다 우월한 인간을 보면 질투를 느끼는 사람의 심리에 따라 현실 중세 시대 마녀사냥이 그러했듯, 그녀는 아멜리아 왕국에 의해(마법 독점 중) 마녀로 몰려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만 했죠. 그래서 이야기 초반 마녀의 악행은 블러프로서 이야기를 읽어가며 톱니바퀴를 맞춰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니었나 합니다. 마녀는 있을 자리를 원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져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 그러나 그걸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누명을 뒤집어쓴 마녀는 화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영주 버드와 주인공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들이 찾아온 걸 기회로 본 '뢰베'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되고, 영주 버드와 그의 딸 델리리움 그리고 주인공은 휘말려 갑니다.

마녀의 이름은 '테레사리사'입니다. 아마 '델리리움'과 메인 히로인 자리 놓고 다투지 않을까 싶군요. 주인공은 '델리리움'을 필두로 해서 세상과 맞서 싸워간다는 설정이겠고요. 마녀는 이들을 도와주겠죠.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는 아포칼립스 같은 작품입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이 작품과 유사한 작품을 찾으라면 '마탄의 왕과 바나디스'를 들 수가 있겠군요. 마탄의 왕은 주인공이고 마녀는 바나디스에 해당되겠습니다. 마녀는 7명이라고 했으니 얼추 숫자도 맞군요. 델리리움은 '레긴' 왕녀쯤 될 테고요. 주인공이 힘은 있지만 전술에서 구멍을 많이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신화 전설이 된 영웅의 이세계담'과 비슷했습니다. 이 두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히로인들과 분골쇄신하는 것이죠. 사실 이거 하나만으로는 높은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의 결과를 내려 한다는 것, 하지만 녹록지 않다는 걸 보여주죠.

맺으며: 종합적으로 보면 중세 시대를 모티브 한 마녀사냥이라는 우리에겐 다소 익숙한 내용을 보여줘서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마녀 또한 현실 중세 시대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죠. 다만 마녀의 임팩트가 강해서 주인공의 인상을 다 잡아먹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왜 불살로 만들었는지 모르겠군요. 할 땐 하지만 이야기를 질질 끌게 되어서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요. 영주 버드는 자신이 가진 전술의 취약점을 개선하지 못해 결국 딸(델리리움)과 주인공에게 커다란 짐을 떠 맡겨 버리죠. 세상 물정 모르는 델리리움의 성격 개조도 꽤 힘들어 보이고요(사태가 일촉즉발이 되어 가는데 시장에 놀러 가지 못해 삐진다거나). 그리고 아멜리아의 마법사들은 원피스의 능력자들을 보는 듯한, 결국 판타지를 끼얹은 드래곤 볼 같다고 할까요. 이성 문제에서는 마녀를 끼얹은 하렘 같았고요.

아무튼 필자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 작품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안 그럼 단점이 너무나 많이 보여 욕을 하며 읽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다 밝히면 지면이 길어지고 재미없을 테니 일일이 열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주인공과 델리리움과 마녀의 행동에서 클리셰적인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발암적인 요소도 의도하고 넣어놔서 뒷일이 예상 가능하고요. 가령 결국 세상 물정을 몰랐던 델리리움은 정신을 차리고 여왕이 되어 나라를 되찾으려 하고 주인공과 마녀는 그녀를 보좌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녀와 주인공은 이번 1권에서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되거든요. 마녀는 있을 곳을 찾고 있었으니 이들을 도와 궁극적으로 주인공과 같이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될 테고요. 이렇게 이 작품은 뒷일이 예상 가능하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오히려 이게 머리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장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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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묵시록 마이노그라 3 - ~ 파멸의 문명으로 시작하는 세계 정복 ~, S Novel+
카즈노 페후 지음, 준 그림, 손종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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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전 2권에서 느낌으론 이세계에 주인공만이 아닌 다른 유저들도 전생했고 그로 인해 '즉사 치트'라는 작품처럼 서로 골육상쟁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해서 참 두근거리게 했는데요. 그야 현실 법체계가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고 마법이나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배틀 로얄'을 찍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될 테니까요. 사실 필자는 이런 걸 바랐기도 한데요. 그래서 3권을 매우 기다렸습니다만, 결론부터 언급해 보자면 반은 맞습니다. 그게 전생한 사람들이 게임 유저나 현실 방구석 폐인이라는 실제 인간이 아니라 게임 내 'NPC'들이었다는 것에서요. 여기에 그 게임 고유의 시스템이 적용되어 시스템적으로 절대 방어 불가라든지 절대 피할 수 없는 무적기가 고스란히 적용이 되어서 주인공급이라도 이 기술에 걸리면 여지없이 당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보여주는데요. 그것도 그냥이 아니고 다크 호러 분위기를 풍기는, 뭔가 2권까지는 심시티 같은 도시 만들기였던 것이 3권부터는 사이버 테크노 바탕에 판타지 속성의 그로테스크와 시리어스를 동반한 세상 멸망급이 되어 버립니다.

주인공이 이세계로 전생해서 사악 속성 제국을 건설하고, 인육 나무라는 식량조달 체제와 주변을 지옥도로 변모 시키는 것에서 그로테스크와 시리어스라는 밑밥을 깔려 있긴 했습니다만, 분위기와 다르게 주인공은 그럴 마음이 없는 착한 속성이어서 다소 방심하고 있었군요. 그러던 것이 본격적으로 다른 게임 NPC들이 등장하면서 호러가 무엇인지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해도 뭐 이번 3권에서는 '이슬라(히로인?)'가 사람(마족) 잡아먹는 장면을 좀 리얼하게 표현했다든가 다크엘프 자매의 저주로 녹아내리는 적(에너미)들을 표현한 장면이라든가 밖에 없지만요. 인육 나무 열매의 맛이 진짜 인육의 맛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이러하듯 주인공의 진영은 파스텔톤이 난무하고 정의로운 진영이 아니라 파멸의 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엄연한 이 세계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이고 주인공이 소환하는 영웅 유닛은 세계의 위협으로 용사가 있다면 제거해야 될 존재가 되죠. 즉, 이세계 사람들에겐 재앙이라는 것인데, 주인공은 그럴 마음이 없으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착한 사람? 속성이라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뭐 그런 설정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명제가 생깁니다. 소환이든 전생이든 간에 이세계에 주인공만 오나? 답은 반 만 예스. 이 작품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온갖 게임들에 속한 NPC들이 전생해옵니다. 여기서 NPC들이란 데이터 쪼가리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게임 유저들을 적대했던 가령 마왕이라든지 서큐버스라든지 마족이라든지 이런 잡다한 것들이 전생하여 자신이 속했던 게임에서의 속성 그대로 행동 원리 그대로 이세계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죠. 주인공이 만들고 속해있던 '마이노그라'라는 제국에도 마왕의 군세가 쳐들어오는데 당연히 주인공은 대응에 나섭니다. 이때까지 주인공은 중요한 하나를 간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뼈아픈 이별을 겪어야 되는 일이 벌어지죠. 이 작품은 주인공 만능설을 조금은 부정하고 있는 게 흥미로운데요. 이때까지 자신이 전생(현실)에서 했던 게임의 시스템이 이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쳐들어온 적들도 그런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RPG 게임에서 절대 피하지 못하는 궁극기가 존재하고 이세계는 게임 시스템에 영향을 받는다면?

맺으며: 이번 3권은 그런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세계 전생은 주인공만의 전유물은 아니며, 주인공을 중심으로 설정이 잡혀있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주인공도 결국 작품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시각일 뿐 전체적인 시스템을 돌리는 톱니바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죠. 그 게임 내에서 세상의 이치나 다름없는 소프트웨어적 구동 시스템은 절대적이고, 그래서 주인공은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영웅 유닛 하나를, 다크엘프 자매에게는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를 시스템에 의해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그려갑니다. 이번 3권에서는 고전 RPG 게임에서 등장했던 마왕이 이세계로 전생해옵니다. 옛 시절 게임의 마왕은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죠. 정석대로 4천왕이 오른팔로 등장하고 주인공 부하들과 전투를 벌여갑니다. 그제야 비로소 주인공은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고 절대적이라는 걸 알게 되죠. 이미 때는 늦었지만요. 이 괴정이 좀 많이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이런 거죠. RPG 게임에서 용사가 동료를 모아 마왕을 무찌르러 가지만 소중한 동료 또한 잃게 된다.

마왕이 읊조렸던 '자유', 정형화된 데이터 세상(게임)에서 뛰쳐나가 내 의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여서 이거 하나는 좋았습니다만,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듯 뜬금없이 이세계 먼치킨 전생물에 등장하는 라노벨의 주인공까지 집어넣어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저의는 뭔가 싶군요. 결국 게임 NPC만이 아니라 현실 방구석 폐인도 소환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한데, 다크엘프 자매가 소중한 존재를 잃어 슬픔에 빠져있는 장면에서 굳이 경박스러운 먼치킨 전생자를 집어넣어 산통 다 깨는 바람에 바로 직전까지 묵직했던 분위기를 진짜 썰렁하게 만들어 버리는데요. 더욱이 신(神)? 진짜 일본 작가들은 이야기를 꾸리면서 신(神)을 집어넣지 않으면 집필을 아예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요? 설마설마했는데, 이세계에 소환되는 적대세력 이면에는 마치 흔직세의 신(神)처럼 유희를 즐기려는 신(神)이라는 흑막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꼭 넣어야만 했나요. 이것 때문에 사악 속성을 가진 주인공은 세계의 위협이라는 다소 신선한 소재였던 것이 클리셰 범벅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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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5부 : 여신의 화신 2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봄 옮김 / 길찾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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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주의

여전히 귀족원(귀족들만 가는 학원)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최우수를 따내며 종횡무진을 펼쳐가는 '마인(이하 여주)'은 다른 영지(領地)를 끌어들여 의식(儀式)에 관한 연구와 그에 따른 가호(加護)의 실험을 하며 바쁘게 지냅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 버프로 여주는 엄청난 가호를 받는 건 덤이고요. 하루라도 얌전히 지내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지 그토록 멀리 하라 했던 왕족들과 어울리고, 어떤 의식을 치르면서 마력이 폭주해 반짝반짝 온몸에서 네온사인이 뿜어져 나오는 무녀가 되어 사방팔방 성녀 전설을 더욱 퍼트리는 통에 보호자인 페르난디드의 이마에 핏대는 가실 날이 없고, 양부모의 위는 더욱 쪼그라들기만 합니다. 거기에 여주는 정변으로 소실된 왕(王)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증표가 있는 곳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인물이기도 해서 페르디난드는 전전긍긍, 페르디난드가 왕의 서자가 아닐까 하는 복선까지 합쳐져서 만일 여주가 증표를 손에 넣는 날에는 피바람이 불게 되겠죠(페르디난드가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정변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왕은 정통 후계자가 아니라는 의심을 받고 있어서 왕의 증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든요.

이번 이야기는 페르디난드는 왕의 증표(전문 용어 있지만 어려워서 패스)에 다가가지 못하게 여주를 단단히 단속하려 하지만 그게 통할 리 없다는 것과 길베르타 상회 '벤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현장을 그립니다. 페르디난드가 왕족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 건 그와 그녀(여주)가 속한 영지 에렌페스트는 왕족이 기침만 해도 훌렁 날아가 버리는 약소 영지라서 고삐 풀린 망아지(여주)처럼 미쳐 날뛰다 왕족의 심기라도 건드리면 여주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죠. 거기에 왕족은 사라진 왕의 증표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지금은 하나라도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하고, 마침 도서관 지하 숨겨진 서고에 그 증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요. 그 서고의 열쇠 관리인이 하필 여주. 페르디난드는 죽어도 지하 서고엔 가지 말라고 해두었지만 왕족의 명령은 신(神) 다음으로 지엄해서 훅 불면 날아가는 영지의 영주 후보생(여주)에게 거부할 권리 따윈 애초에 없었죠. 웃긴 게 이미 여주는 여주의 마력으로 왕의 증표 일부분을 구현 시킬 수 있다는 것, 왕족이 이걸 알면? 이게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여느 판타지 작품처럼 친구 같은 왕족, 친구 같은 귀족(여주는 친구같이 지내지만) 아니라 실제 중세 시대나 조선시대같이 왕족과 귀족의 권력은 절대적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가족이라도 서로 호위 기사를 두며, 먹을 것도 독이 없다는 증거로 내가 먹어보고 상대에게 권하는 세상이죠. 귀족은 평민을 사람으로 안 보고, 영주의 자리를 놓고 친자식들 간 경쟁을 하며, 왕족은 정변을 일으켜 왕좌를 찬탈하는 실로 판타지 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중에 필자가 가장 큰 점수를 주는 부분은 위생 상태와 영아 사망률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부분이군요. 여주는 이세계에 전생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똥과 그에 따른 냄새, 길거리에 파는 식재료의 위생 문제, 집돼지를 잡는 모습 등에서 졸도를 하기도 했죠. 옷은 누더기를 기워 입고, 7살이 넘으면 자신의 앞가림을 해야 하며, 문맹률은 매우 높습니다. 그나마 한 3부 넘어오면서 이런 점은 다소 누그러들었긴 합니다만, 여전히 암살과 납치가 횡행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선 남을 끌어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이죠.

아무튼 이번 5부 2권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를 언급해 보자면요. 초창기 1부 때 길베르타 상화 '벤노'가 처음 여주의 가치를 알았을 때 필사의 각오로 여주의 정체를 숨겼었죠. 벤노를 떠나 페르디난드에 거둬진 후에도 그(페르디난드)가 정보 규제를 해주었고, 이후 영주의 양녀가 되면서 영주도 어느 정도 정보를 숨겼기도 하였는데요. 그 이유는 권력자들로부터 여주를 지키기 위함이었죠. 영주의 양녀가 되기 직전 납치될 뻔하였고, 그로 인해 친가족과 헤어지게 되었으면 자신의 가치라 얼마나 큰지 알아야 되지 않을까. 이 부분이 이 작품에서 유일한 옥에 티로 다가옵니다. 이 작품의 여주는 배움이 없는 거죠. 그만큼 책(모든 사건의 발단)에 환장하고 있다는 아이덴티티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이번 5부 2권에서 여주의 가치는 약소 영지에 놔둘 인물이 아니라는 상위 영지의 영주 후보생이 여주를 빼앗으러 오면서 결국 우려한 일이 터지고 맙니다. 문제는 왕족까지 연루되는 이런 큰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여주는 사과나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그랬죠.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사과와 반성은 뒷전으로 밀려나서 좀 거식하더라고요.

맺으며: 하얀 가루를 이 작품에 비유하자면 책입니다. 여주는 책을 무척 사랑하죠. 그래서 쩝쩝 맛을 봅니다. 그리고 중독되어 끊지도 못하고 사방팔방 하얀 가루를 뿌려대죠. 뒷일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꽃(책)을 피우면 보기 좋잖아? 그래서 미친 듯이 다른 영지에 인쇄 기술을 퍼트리고 다 같이 길동무로 삼아 가죠. 책이 퍼지면 문맹률도 낮아지고 모두가 책(꽃)을 보면 얼마나 좋아? 뒷감당은 남에게 다 떠넘기면서. 그로 인해 자신이 속한 영지가 얼마나 위험해지는지(약소 영지 따위 밟아 버리고 기술을 빼앗자), 자신의 행동(고삐 풀린 망아지)으로 인해 다 같이 사이좋게 단두대에 올라설 수 있다는 자각도 없이, 이번에 왕(王)을 알현하면서 평소대로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걸 알게 되죠. 현실 지구에서 20살쯤까지 살았으니 왕이나 이웃집 아저씨나 다 똑같은 사람인걸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삼족이 멸족 당하고도 남았겠지만 그녀의 가치(신문물, 인쇄, 마력, 성녀) 때문에 살아 있다는 걸 여주만 모르고 있다 할 수 있는데요. 이래서 기술을 배워야 하나 봅니다.

상위 영지가 여주 빼앗으려는 장면들은 좀 갑작스러웠지만 꽤 흥미진진합니다. 권력은 이런 거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오징어 게임의 줄다리기처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장면들이 흥미롭죠. 다만 이런 흐름까지 오게 된 원인이 여주에게 있음에도(주변의 통제를 듣는 둥 마는 둥)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다소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왕의 증표는 아직 떡밥만 흐르고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건 한참 지나야 되지 않을까 싶군요. 이번 5부 전체의 주된 이야기가 되는 만악의 근원 아렌스바흐의 실질적 권력자가 된 '게오르기네(여주에겐 고모쯤 되려나요)' 관련해서는 골방에 틀어박혀 뭔가 꿍꿍이를 펼치는 복선이 투하되고 중앙 기사단이 애들 노는데 들이닥쳐서 여주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게 슬슬 뭔가 터질 거 같은 분위기를 뿌려댑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있었던 여주 납치 미수 사건 이면엔 고모가 자리 잡고 있기도 했죠. 아무튼 이제 여주는 어느 정도 자라게 되어 귀여움은 거의 없어져 버렸군요. 페르디난드가 데릴사위로 떠나면서 둘이 보여줬던 캐미도 많이 줄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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