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세계 묵시록 마이노그라 3 - ~ 파멸의 문명으로 시작하는 세계 정복 ~, S Novel+
카즈노 페후 지음, 준 그림, 손종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전 2권에서 느낌으론 이세계에 주인공만이 아닌 다른 유저들도 전생했고 그로 인해 '즉사 치트'라는 작품처럼 서로 골육상쟁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해서 참 두근거리게 했는데요. 그야 현실 법체계가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고 마법이나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배틀 로얄'을 찍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될 테니까요. 사실 필자는 이런 걸 바랐기도 한데요. 그래서 3권을 매우 기다렸습니다만, 결론부터 언급해 보자면 반은 맞습니다. 그게 전생한 사람들이 게임 유저나 현실 방구석 폐인이라는 실제 인간이 아니라 게임 내 'NPC'들이었다는 것에서요. 여기에 그 게임 고유의 시스템이 적용되어 시스템적으로 절대 방어 불가라든지 절대 피할 수 없는 무적기가 고스란히 적용이 되어서 주인공급이라도 이 기술에 걸리면 여지없이 당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보여주는데요. 그것도 그냥이 아니고 다크 호러 분위기를 풍기는, 뭔가 2권까지는 심시티 같은 도시 만들기였던 것이 3권부터는 사이버 테크노 바탕에 판타지 속성의 그로테스크와 시리어스를 동반한 세상 멸망급이 되어 버립니다.
주인공이 이세계로 전생해서 사악 속성 제국을 건설하고, 인육 나무라는 식량조달 체제와 주변을 지옥도로 변모 시키는 것에서 그로테스크와 시리어스라는 밑밥을 깔려 있긴 했습니다만, 분위기와 다르게 주인공은 그럴 마음이 없는 착한 속성이어서 다소 방심하고 있었군요. 그러던 것이 본격적으로 다른 게임 NPC들이 등장하면서 호러가 무엇인지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해도 뭐 이번 3권에서는 '이슬라(히로인?)'가 사람(마족) 잡아먹는 장면을 좀 리얼하게 표현했다든가 다크엘프 자매의 저주로 녹아내리는 적(에너미)들을 표현한 장면이라든가 밖에 없지만요. 인육 나무 열매의 맛이 진짜 인육의 맛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이러하듯 주인공의 진영은 파스텔톤이 난무하고 정의로운 진영이 아니라 파멸의 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엄연한 이 세계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이고 주인공이 소환하는 영웅 유닛은 세계의 위협으로 용사가 있다면 제거해야 될 존재가 되죠. 즉, 이세계 사람들에겐 재앙이라는 것인데, 주인공은 그럴 마음이 없으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착한 사람? 속성이라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뭐 그런 설정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명제가 생깁니다. 소환이든 전생이든 간에 이세계에 주인공만 오나? 답은 반 만 예스. 이 작품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온갖 게임들에 속한 NPC들이 전생해옵니다. 여기서 NPC들이란 데이터 쪼가리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게임 유저들을 적대했던 가령 마왕이라든지 서큐버스라든지 마족이라든지 이런 잡다한 것들이 전생하여 자신이 속했던 게임에서의 속성 그대로 행동 원리 그대로 이세계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죠. 주인공이 만들고 속해있던 '마이노그라'라는 제국에도 마왕의 군세가 쳐들어오는데 당연히 주인공은 대응에 나섭니다. 이때까지 주인공은 중요한 하나를 간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뼈아픈 이별을 겪어야 되는 일이 벌어지죠. 이 작품은 주인공 만능설을 조금은 부정하고 있는 게 흥미로운데요. 이때까지 자신이 전생(현실)에서 했던 게임의 시스템이 이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쳐들어온 적들도 그런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RPG 게임에서 절대 피하지 못하는 궁극기가 존재하고 이세계는 게임 시스템에 영향을 받는다면?
맺으며: 이번 3권은 그런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세계 전생은 주인공만의 전유물은 아니며, 주인공을 중심으로 설정이 잡혀있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주인공도 결국 작품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시각일 뿐 전체적인 시스템을 돌리는 톱니바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죠. 그 게임 내에서 세상의 이치나 다름없는 소프트웨어적 구동 시스템은 절대적이고, 그래서 주인공은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영웅 유닛 하나를, 다크엘프 자매에게는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를 시스템에 의해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그려갑니다. 이번 3권에서는 고전 RPG 게임에서 등장했던 마왕이 이세계로 전생해옵니다. 옛 시절 게임의 마왕은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죠. 정석대로 4천왕이 오른팔로 등장하고 주인공 부하들과 전투를 벌여갑니다. 그제야 비로소 주인공은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고 절대적이라는 걸 알게 되죠. 이미 때는 늦었지만요. 이 괴정이 좀 많이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이런 거죠. RPG 게임에서 용사가 동료를 모아 마왕을 무찌르러 가지만 소중한 동료 또한 잃게 된다.
마왕이 읊조렸던 '자유', 정형화된 데이터 세상(게임)에서 뛰쳐나가 내 의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여서 이거 하나는 좋았습니다만,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듯 뜬금없이 이세계 먼치킨 전생물에 등장하는 라노벨의 주인공까지 집어넣어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저의는 뭔가 싶군요. 결국 게임 NPC만이 아니라 현실 방구석 폐인도 소환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한데, 다크엘프 자매가 소중한 존재를 잃어 슬픔에 빠져있는 장면에서 굳이 경박스러운 먼치킨 전생자를 집어넣어 산통 다 깨는 바람에 바로 직전까지 묵직했던 분위기를 진짜 썰렁하게 만들어 버리는데요. 더욱이 신(神)? 진짜 일본 작가들은 이야기를 꾸리면서 신(神)을 집어넣지 않으면 집필을 아예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요? 설마설마했는데, 이세계에 소환되는 적대세력 이면에는 마치 흔직세의 신(神)처럼 유희를 즐기려는 신(神)이라는 흑막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꼭 넣어야만 했나요. 이것 때문에 사악 속성을 가진 주인공은 세계의 위협이라는 다소 신선한 소재였던 것이 클리셰 범벅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