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의 혼잣말 3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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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마오마오가 시달림 받은 건 아니지만요. 보통 신세 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붙잡고 보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후궁이 왕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비(妃)가 되는 것을 꿈꾸듯, 딱히 남자든 여자든 간에 시궁창의 생활을 벗어나 조금은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장소를 만들 수 있다면 내밀어진 손을 잡을까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도 하겠죠. 하지만 우리의 히로인 '마오마오'는 그런 욕심은 일절 없습니다. 그저 비(雨)를 피할 수 있고 약초를 걸어둘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창고라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그걸 곁에서 보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요. 동성도 보다 못해 낑낑거리며 방으로 돌려보내는 판인데 이성이 본다면?

 

자, 사실 남녀가 출연하는 엔터테인먼트에서 연애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서 조금식 알아가고 부대끼는 와중에 끌리게 되는, 그러다 콩깍지가 껴서 안 보면 괴롭고 보고 있으면 끌어안고 싶고 다른 이성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를 느끼게 되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콩깍지가 낄 정도로 좋아하기 시작하는데 다른 한쪽이 관심 없어 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오마오는 남자에게 나아가 연애에 일절 관심이 없어요. 동성애자는 아닌데 살아가면서 연애는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 중이죠. 이렇게 되면 마오마오를 바라보는 이성(진시)의 기분과 감정은 어떻게 될까요.

 

1권부터는 아닌 거 같고 2권부터지 싶은데 '진시'를 둘러싼 주변에서 별것 아닌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었습니다. 식중독같이 소소하고 중하게는 미각을 잃어버린 고관의 죽음 등 별개의 사건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조합되면서 어느 한 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는데요. 이런 사건들은 마오마오에 의해 대부분 해결이 되었음에도 뒷맛이 찜찜하고 이물질이 끼인 듯한, 그렇게 퍼즐 맞추듯 사건을 다시 쫓아가던 마오마오는 사건의 종착점에서 누가 희생되는지 파악하게 되고 그게 '진시'였다는 걸 알아버린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던져 그를 구하게 되죠. 보통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구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작품은 역하렘이다 보니 히로인이 엄청 구른다고 할까요.

 

그런데 진시를 노리는 사건은 끝이 나지 않았으니, 더욱 강도 높게 치밀한 전략으로 이번엔 아예 후궁 전체를 말살하려는 음모가 시작됩니다. 악랄하게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평범함을 가장한 독의 살포로 후궁들이 전멸될 수 있는 위기를 맞이해 가죠(1). 마오마오는 하녀의 입장에서 뒤로 물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않았다면 마오마오 또한 희생되었지 않나 하는, 하지만 마오마오야 워낙 독 오타쿠다 보니 어떤 독이든 오히려 땡큐라는 입장이지만 자신이 모시고 있는 코쿠요 비가 임신 중이고, 코쿠요 비와 경쟁관계지만 마오마오하고는 양호한 관계인 리화 비까지 임신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되는데요.

 

하지만 범인은 오리무중, 그럼에도 뭔가가 일어날 거 같은 사건의 기운은 날로 커져만 가죠. 그런데 작가가 쫄깃함을 느껴보란 듯 자잘한 사건은 금방금방 해결하면서도 대하드라마식 후궁 전체를 끌어들이는 음모는 몇 권에 걸쳐 조금식 진행하고 있다는 건데요. 읽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애간장 타는 게 또 있을까 싶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왕건'같이 대하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이 작품에도 기용하고 있다고 할까요. 뒷이야이가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실력이 아주 좋아요. 아무튼 사건의 중심에 있는 '진시'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고 밝혀지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이미 마오마오는 어렴풋이 그이 정체를 간파하고 있지만 애써 외면 중이었죠.

 

아무튼 2권부터 시작된 사건은 윤곽을 잡아갑니다. 이야기는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지 슬슬 밝히기 시작하죠.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내놓지 않습니다. 조금식 올가미를 조여간다고 할까요. 그런 상황에서 시녀 '시스이'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데요. 사건이 진행 중인 지금 시점에서 그녀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마오마오는 벌레를 아주 좋아하는 '시스이'의 호방한 성격에 휩쓸려 매번 벌레 잡기라든지 그녀의 행동에 놀아나게 되죠. 하지만 천재는 아니어도 수재는 된다는 마오마오의 평가를 긍정하듯 '시스이'가 누굴 닮았는지 조금식 알아가면서 사건은 변화를 맞이해갑니다.

 

사실 마노마오는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높으신 분의 첩이 되어 팔자를 고치고 싶지도 않고, 비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죠. 지금의 못난이 화장은 뭣 때문인데, 그런데 매번 부려먹히기만 하고 돌아오는 건 없군요. 그런 상황에서 질척질척 앵겨오는진시는 짜증이 나요. 이 비러머글 고자 환관은 2천 명이나 되는 후궁을 관리하면서 여자라면 이골이 났을 텐데도 왜 자꾸 마오마오에게 들러붙는지 마오마오도 참 모를 일. 그렇게 뿔이 난 마오마오를 달래준다고 하면 말이 좋은 거고, 우는 애 사탕 주듯 영약을 구해다 바치니, 좋은 것만 골라 먹고 껍질은 버리듯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며 진시를 훅 차버리는 마오마오의 흉악함은 혀를 내두르게 하죠.

 

아무튼 왠지 그렇지 않을까 했던 인물이 진짜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밝혀지게 되고, 그것 때문에 왕궁에서 사건이 끊이질 않는 정치권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 되어 버린 마오마오. 이번에도 총 맞을뻔한 상황까지 몰렸으면서도 사람이 좋은지 아니면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는 꼴을 당하기 싫은지, 진시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마오마오가 참 불쌍해지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평소엔 막 대하면서 말이죠.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른 채 이런 기분 처음이야~를 외치며 닥돌하기 시작하는 진시에게 기겁을 하는 마오마오가 되겠습니다. 사실 진시와 맺어지면 호의호식하고 좋은 환경에서 약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당장 그녀의 머릿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진시는 또다시 격침되어 버리죠.

 

맺으며, 정말 만화 포함 500권 넘게 리뷰 하였지만 이렇게 잡아당기는 작품은 정말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보통 한 권 읽는데 수일이 걸림에도 이 작품은 하루도 걸리지 않는군요. 이번 3권도 450여 페이지 되는데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읽어 버린.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왕궁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천민 여자가 신데렐라로 올라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신분상승, 누구나 꿈꾸는 것이기에 이 작품이 호응 받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천민인 히로인(당사자)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에서 신선하죠. 거기에 주변 인물들이 애가 타는 것에서 흥미가 전해지고요. 예능에서 에드립처럼 돌팔이라든지 똥개라든지 씨받이라든지 벌레 보는 듯한 눈매 등 글 읽는데 지치지 않게 하는 작가의 센스가 무엇보다 좋습니다.


 

  1. 1, 이런 거까지 주석으로 달아야 되나 자괴감이 드는데 정확하게는 임신한 비(妃)를 찾기 위한 행위 전체를 말함, 찾아서 뭐하나면 당연히 권력의 중심이 되는 왕의 아이를 없애기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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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먹는 비스코 1 - L Novel
코부쿠보 신지 지음, 아카기시 K 외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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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이라는 로봇의 폭주(아마도)로 인해 전국토가 녹(철을 부식 시키는 그것)에 점령당한 일본, 문명은 몰락하다시피 했고 각 현(縣)은 자치구로써 연명하며 오늘내일하는 시대에 버섯지기 '비스코'는 오늘도 온 사방에 버섯을 뿌리고 있습니다. 화살을 뿡뿡 쏘기만 해도 커다란 버섯이 뿅뿅하고 자라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식인버섯 아카보시 비스코', 그런데 버섯으로 인해 녹의 전파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관계기간의 판단은 그를 지명수배하기에 이르죠. 하지만 비스코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자식 만들기처럼 버섯을 만들어댑니다. 그리고 지금은 녹에 먹혀가는 친부(父)나 다름없는 스승을 살리기 위해 영약이라 일컬어지는 '녹식'을 찾아 여행 중에 있는데요. 녹은 사람에게도 침식하여 살을 갉아먹고 종국엔 부스러지게 하는 아주 무서운 독입니다.

 

'천원돌파 그렌라간'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이 되는 작품이 아닐까 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비스코는 카미나, 미로는 시몬, 티롤은 요코에 해당된다 할 수 있겠군요. 사실 내용은 그렌라간과 전혀 다르고 캐릭터 성격도 다르지만 열혈 쪽으로 대입하자면 딱 그런 분위기이죠. 천덕꾸러기 카미나처럼 황량한 세계에서 천덕꾸러기로 모든 현(縣)에서 현상수배범이 되어 있는 비스코는 사람들을 위해 버섯 포자를 열심히 뿌리며 다니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녹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고 있던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 보면 비스코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지만 비스코는 그에 지지 않고 자신의 친부나 다름없는 스승을 구하기 위해 영약 '녹식'을 찾아 '미로'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카미나와 시몬의 여행과 비견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렌라간 세대인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는 정말 오랜만에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합니다. 사실 부제목을 '생명 연장의 꿈'으로 하려다 천벌을 받을까 관뒀군요. 그렌라간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그렇게 가볍지가 않거든요. 표지의 주인공 모습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열혈물이고, 본 내용은 인류멸망 아포칼립스를 그리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지켜야 할 관계 기관은 녹의 침식을 멈추게 하는 약을 팔며 재원을 마련 중이었고, 이런 녹에 대항하는 비스코는 악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버섯은 아무리 녹이 심한 곳이라도 싹을 틔우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요. 버섯은 저물어가는 인류사에서 그 근간을 지키는 유일한 존재이자 구원책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죠.

 

스승을 치료하기 위해 녹식을 구하러 가던 길에 들린 이미하마 현(縣)에서 얼굴 반점 때문에 판다로 더 알려진 '미로'라는 오토코를 주워 동료로 삼고 그는 또다시 여행을 시작합니다. 뜬금없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요. 세세하게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넘어가고요. 미로는 시몬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오토코는 연약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시몬처럼 강인한 남자를 지향하고 성장해가죠. 그 과정에서 비스코와의 우정은 카미나와 시몬의 관계에 비견될 정도로 끈끈해져 갑니다. 그리고 이들을 뒤쫓는 이미마하 현(縣) 지사 '쿠로카와'와의 대립은 의레 이런 아포칼립스적인 세계에서 사람들을 지켜줘야 될 정부기관이 더 썩었다는 진실을 보여주죠. 비스코와 미로는 악당 쿠로카와의 마수에서 벗어나 무사히 녹식을 구할 수 있는가가 이번 1권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이 작품처럼 캐릭터 각각의 개성이 넘치는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 했는데요. 보통 서브 캐릭터는 조미료로서 간만 맞추다 끝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들을 어필하는 게 또 다른 묘미로 다가옵니다. 가령 이미하마에서 쿠로카와 수하로 처음 등장했던 '티롤'의 경우는 목숨을 구해준 미로에게 꼽혀서 밤 일을 정상가 반액에 해준다고 하면서도 비스코는 다 받겠다고 그러지 않나, 눈 밭에서 표범에게 쫓겼던 자신을 구해준 비스코에게 달라붙어서 세상 안심하면서도 츤데레처럼 구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죠. 비스코의 스승 '자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스코를 어릴 적부터 가르친 버섯지기로써 실력은 최상급, 그런 그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들 같은 비스코에게 지지 않겠다는 것마냥 죽어 가면서도 현역 못지않게 활약하는 모습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조금은 헷갈리게도 합니다.

 

미로의 누나 '파우'의 경우는 교육을 편파적으로 받으면 이런 사람이 된다는 교과서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요. 세상이 저 사람은 악인이라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는, 악인 비스코를 처단하기 위해 철곤(봉)을 마구 휘두르는 고릴라 같은 면모를 보여 주며 직진만 해댑니다. 하지만 내 사람이 되면 한없이 열정적이 되는 용암 같은 모습을 보여 비스코를 아주 난감하게 만들어 버리죠. 미로는 일찌감치 비스코를 형부로 낙점, 시아버지택인 '자비'의 마음에도 쏘옥 들어서 비스코 보다 더 많이 시아버지와 같이 활약하는 게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에게서 나온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녹에 먹혀가는 병에 걸려서 오늘내일중이었고 미로는 그런 누나를 치료하기 위해 비스코와 동행하게 되는데 누나를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비스코에게 반해서 누나보다 더 찾는, 누가 오토코가 아니랄까 봐라는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슬프게도 합니다.

 

예,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영약 녹식을 둘러싸고 쿠로카와 악당에 맞서는 비스코와 미로를 그리고 있죠. 그 과정은 참 처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던만추의 벨이 사선을 넘나들며 성장해가듯 이들 또한 그런 길을 걷습니다. 몸을 한계까지 혹사하고 그래도 뛰어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 그리고 서로의 등에 기대어 서로를 받쳐주고 서로의 온기를 느껴가며 우정을 쌓는다. 한가지 아쉬웠던 건 미로가 여자였다면 드라마가 되었을 텐데 하는, 하지만 그런 뻔한 것보다 같이 여행을 하며 같은 꿈을 좇는 남자들만의 우정도 괜찮지 않을까 했군요. 하지만 불만은 일본 지명이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지 않는 이상 여기가 어디여?라는 혼란을 격게 되요.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으니 그냥 넘겨도 되지 싶군요.

 

맺으며, 도박사는 기도하지 않아 다음으로 무슨 상 받을 만큼 완성도는 높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도박사 2권은 좀 아니었지). 스포 하지 않으려고 두리뭉실하게 리뷰를 썼습니다만. 한 장 한 장 긴장하며 본 몇 안 되는 작품이었군요. 다만 비스코와 미로의 관계가 조금 빠른 성장을 보여 어리둥절할 수 있기도 한데요. 만난 지 며칠 만에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다니 미로의 끓는 점은 매우 낮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죽어가는 누나보다 비스코를 더 찾다니 누나도 업이 깊구나 하는, 티롤은 감초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어서 드문드문 출연해서는 입이 풀어지게 만드는 게 작가가 뭘 좀 안다고 할까요.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9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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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2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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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알고 있었다. 내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친엄마가 누구인지. 하지만 축복받은 탄생은 분명히 아니었기에 모른척하고 있었을 뿐.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기녀가 사랑하는 남자와 맺어져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는 마치 아이가 태어나 더 이상 즐길 가치가 없다는 것마냥 기녀의 곁을 떠나고 마는 흔한 시대라고 아이는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철이 들 때부터 유곽에서 양아버지와 약을 제조하며 근근이 생활했던 아이. 결코 유곽은 아이에게 보여줄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거긴 양아버지와 더불어 아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이었고, 소중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여기며 아이는 소녀로 성장한다.

 

마오마오, 방년 18세. 양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약에 미쳐사는 괴짜 중 괴짜로 자랐습니다. 그녀는 독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고 독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시음을 하다가 죽을 고비도 넘기는 등 오직 약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자 애입니다. 그러다 인신매매 당해서 후궁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하녀로 일하게 되는 비운을 맞이하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슬럼가에서 못다 핀 꽃봉오리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꽃을 피우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처음엔 다른 하녀들의 등쌀에 들볶이는 나날도 있었지만 운 좋게 상급 비(후궁 중에 서열 1위)의 하녀가 되면서 그녀의 숨겨진 두뇌가 맹위를 떨치게 되죠.

 

큰길에서 조금 벗어난 뒷골목에서조차 강x이 서슴지 않게 일어나는 시대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주근깨를 심고 못난이 화장을 하고 일부러 살을 안 찌우는 등 참 그녀의 인생은 참 기구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후궁에 들어오면서 자신이 가진 약에 대한 지식과 독창적인 코난급 추리력을 내세워 자신의 자리를 굳혀가는 게 참 인상적인데요. 여기에 왕족이라고 의심이 드는 '진시'라는 환관(우리로 치면 내시)을 만나면서 그녀의 등에는 날개가 장착이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의 묘미이자 백미는 이거죠. 진시라는 환관과 마오마오의 관계, 남자 주제에 진시가 가진 미모 때문에 모두가 우러러보는 상황에서 마오마오는 그를 벌레보듯 하게 되는데요.

 

처음엔 누구나 우러러보는 자신을 벌레보듯 하니까 심술이 나서 자신이 가진 미남계로 함락 시키려다 보기 좋게 격침되는 장면은 정말 유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뒤로 마오마오의 마음을 끌기 위해 자신의 위치도 생각 안 하고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은 매번 볼 때마다 흐뭇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 마오마오의 벌레 보는 시선 앞에서 무력화되어 버리죠. 처음엔 재미있는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마음이 끌려 다른 남자가 마오마오 곁에만 있어도 불같은 질투를 폭발 시키는 모습은 여간 귀여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마오마오는 귀찮기만 하죠. 진시가 그럴수록 벌레 등급 시선은 자꾸만 내려가서 나중엔 말라비틀어진 지렁이급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작가가 독자들의 개그 코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군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그런 웃긴 이야기도 듬뿍 들어가 있지만, 마오마오의 친부모에 대해서 언급이 됩니다. 분명 부모가 있기에 아이는 태어나는 것이죠. 아이의 탄생은 축복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축복받을 수 없는 탄생도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마오마오가 딱 그랬습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끼리 만나 맺어져 아이를 낳은 게 아닌, 마오마오가 태어났을 땐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충격과 기녀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병을 얻어 버리죠. 사생아와 고아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버림받은 모녀의 이야기는 흔합니다. 그저 아이는 무언가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게 양아버지의 손이었다는 게 소녀에게 있어서 얼마나 축복이었을까.

 

그래서 마오마오는 친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활달한 진시가 정말로 겁을 먹을 정도로 귀기 서린 모습을 보일 정도였으니 마오마오가 친아버지에게 보내는 증오는 정말 깊다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요. 이야기는 왜 아버지가 모녀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통한 마음을 품고 살아왔는지 조금식 서술하기 시작합니다. 딸을 위서라면 권력을 얼마든지 휘두르겠다는 것마냥 그녀의 뒤를 받쳐주기 시작하죠. 궁중과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조금식 해결하는 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알게 모르게 힘을 써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츤데레에 가깝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마오마오는 용서할 수 있을까. 병세가 위중한 엄마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마오마오는 아버지와 단판을 벌여갑니다. 사실 이제 와 과거의 일은 딱히 어떻게 되는 상관은 없었습니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보다 양아버지의 곁에서 약을 조제하고 아픈 엄마를 돌보고, 궁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미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기에. 그럼에도 그녀는 매듭을 지어가죠. 증오와 갈등이 아닌 화해를 위해 마오마오가 선택한 길은 수백 년을 걸쳐 환생을 거듭한 끝에 만난 연인에 견주듯 가슴 한켠에 뭉클함을 선사합니다.

 

맺으며, 진시가 등장하는 장면은 매번 배꼽을 잡게 되는데요. 이번에도 저 남자는 괜찮지만 너 님은 안 돼 하는 장면에서 진시가 좌절하는 부분은 배꼽을 빼죠. 환관(진시)은 아랫도리가 없는 반푼이라고 불경스러운 생각을 대놓고 하지 않나(이번에 복선이 나오길 잘 붙어 있다고), 처음엔 뭐 이런 남자 주인공이 다 있나 했는데 갈수록 둘이 캐미가 폭발하는데 정말 보고만 있어서 흐뭇해집니다. 특히 '우황 줘요!'하는 부분은 이번 에피소드의 최대 백미라 할 수 있었군요. 그리고 이번엔 큰 이벤트도 터트려 주죠. 이거 둘이 사귈 수밖에 없네 하는 수준의. 게다가 마오는 평민이 아니었다고 밝혀졌으니 뭐, 이 작품은 역하렘이다보니 진시 말고도 남정네 몇이 나와서 마오마오 주변을 맴도는데 은근히 진시의 신경을 건드리는 장면들도 상당히 웃겨줬습니다.

 

마오마오의 친부모에 대한 장면에서는 울고 웃고 하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더군요. 처음엔 뭐 이런 쓰레기가 다 있나 하는 최악의 설정에서 갈수록 사정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결국 누구보다 딸과 부인(기녀)을 사랑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훈훈한 가족물이 되어 버립니다. 근데 여기서도 마오마오식 개그가 폭발하는데요. 가령 친아버지를 씨받이로 비유한다던지, 약과 상급 비들과 일부 지인을 빼곤 뭘 만나도 그녀의 평가는 절대 0도를 가리키는 현실에서 친아버지도 거기에서 비켜가지 못하는 게 유쾌하죠. 보니까 마오마오의 머리가 비상한 건 친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듯, 거기다 영재였던 양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범과 사자가 합쳐 유니콘이 된 듯한? 아무튼 양아버지의 과거도 밝혀지고 친부모도 밝혀지고 그녀의 주변이 꽤 빠르게 변해가는 에피소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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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용사는 복수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4 - L Books
키즈카 네로 지음, Sinsora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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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평할 거면 안 보면 되잖아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같은 레퍼토리도 한두 번이지 매번 비슷한 복수 장면이 나오니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복수 대상자를 찾아내고, 그놈이 첫 번째 세계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서술하고, 두 번째 세계에선 아직 아무 짓도 안 한 놈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내뱉으며 죽어라!! 하니까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나마 유미스 때는 동생 슈리아의 처우나 자신(유미스)의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죽인 결과 응당 벌을 받는 느낌이긴 했습니다만. 그 외의 인간들, 사실 임팩트가 없다 보니 누구누구가 복수 당했는지 일일이 기억을 못하겠지만 유미스 이외엔 사실 억울하기 짝이 없어요. 일명 악당으로 나오는 복수 대상자들은 본성이 추악하고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성격이긴 한데 그렇다고 주인공에게 복수 당할만한 짓을 주인공에게 '아직' 하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느닷없이 찾아와서 복수랍시고 뚜뚤겨 패는데 자다가 봉창 뚜디린다는 이런 건가 싶었을 겁니다. 물론 놔두면 똑같은 짓을 하겠죠. 하지만 첫 번째 기억을 가졌다면 그 길을 회피할 수 있잖아요. 요점은 잘못이 없는 사람을 왜 괴롭히는가입니다. 물론 복수 대상자들이 깨끗한 사람이라는 건 아닙니다. 아무튼 복수 과정도 참 악랄하기 그지없어요. 고문이라는 단계를 넘어섭니다. 사실 고문이야 무고하게 죽임을 당해서 울분이 엄청 쌓였을 테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상관없는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는, 화풀이만 할 뿐인 살인귀가 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 놓고 복수 대상자 주변인들까지 죄다 같은 말로를 걷게 하는 건 연좌제 그 이상은 아니었군요. 자기가 정한 룰도 지키지 않는 주인공, 그래놓고 뻔뻔하게 뭐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최악의 주인공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복수 대상자는 어느 도시에서 대상회를 꾸려가고 있는 '그론드'라는 사내입니다. 첫 번째 세계에서 주인공의 지식을 빌려 마도구를 만들어 떼부자가 된 인물이죠. 주인공은 그 돈이 불우이웃에 쓰인다면 딱히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악당이 다 그렇듯 나쁜 짓을 하고 있었고 주인공이 왕녀에 의해 마왕으로 몰렸을 때 그를 죽이는데 동조하게 됩니다. 여기서 용사(주인공)가 돌보던 고아원 아이들이 희생되는데요. 이것만으로도 주인공에게 복수의 근거가 되긴 충분했습니다만. 두 번째 세계에선 주인공은 지식을 빌려주지도 않았고, 아직 고아원의 아이들이 희생되지도 않았죠. 그런데 쳐들어가서 이놈 잘 만났다 뒈져라~ 이러니까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물론 지금의 그론드도 떳떳하지 않은 일들을 벌이고 있었고 막 고아원 아이들을 희생 시키려고도 했지만요.

 

문제는 이게 아직은 주인공에게 직접적인 위해로 다가가진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그론드는 황망할 따름입니다. 물론 착한 놈도 아니고 미래에 나쁜 짓을 벌이려던 계획은 있어서 어느 정도 개연성은 확보했습니다만. 죄를 짓지 않았는데 처벌부터 하는 부조리가 생기죠. 게다가 히로인 미나리스와 슈리아에게 인생에 관련해서 괜한 참견했다가 죽임 당하는 그론드 측근 페그너는 정말 부조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생의 연장자에게 쓴말을 조금 들었다고 살의를 품다니 제정신인가 싶죠. 그래서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분간이 안 됩니다. 일단 복수 대상자를 악의 축이라고 정의는 하였지만 애초에 이런 복수극에서 선과 악을 찾는 것도 난센스이긴 하죠. 게다가 아무리 주인공의 복수를 공유하고 있다지만 히로인 미나리스와 슈리아가 저지르는 만행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누가 많이 죽이나, 누가 제일 끔찍하게 죽이나, 누가 제일 고통스럽게 죽이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낄낄 웃고, 태연하게 차를 마십니다. 그만큼 그녀들은 정신이 망가질 정도로 배신의 고통이 컸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런 걸 보면 첫 번째 세계에서 주인공에게 위해를 가했던 악의 축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론드를 찾아가기 전에 마약을 만드는 범죄 집단을 습격해서 도륙하는 장면은 악귀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죽어 마땅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만큼 죄를 지었는가. 아니면 살인을 즐기는 건가? 웃으면서 그런 짓을 하는 거 보면 분명 줄기기 위한 목적도 있을 거라는, 물론 주인공이든 히로인 입장에서 보면 상대는 죽어 마땅하겠지만 사회엔 통념이라는 게 있어요. 말이 복수지 이쯤 되면 그냥 살인이 하고 싶어서 나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죠.

 

아무튼 정석적인 소설가가 되자 출신 라노벨답게 주인공 보정은 끝판을 달리는데, 매번 힘내는 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적을 무찔러가는 가식덩어리랄까요. 적이 아무리 강해도 어렵지 않게 이기는 것. 이번 노노릭이라는 낭자애와의 싸움도 딱 그렇습니다. 실력은 노노릭에게 한참을 못 미친다면서 전생의 경험으로 엇차! 서걱 끝. 그렇다고 노노릭의 실력이 형편없지도 않아요. 본 실력이라면 주인공보다 월등히 높다고 서술하고 있죠. 히로인 미나리스와 슈리아도 주인공에게 힘을 받았다지만 매번 아무렇지 않게 서걱서걱 썰어가는 모습은 무미건조하고 고문하는 장면은 악랄함을 선사합니다. 상대는 그냥 비명만 질러대고요. 어디에서 흥미 포인트를 잡아내고, 어디서 의의를 찾아야 하고, 어디서 시사하는 바를 찾아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맺으며, 망가졌다.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한 게 이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고 죽임 당한 충격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겠죠. 그래서 주인공 일행이 복수극을 펼치는 건 얼추 정당성은 있습니다.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죠. 이게 흥미 포인트이긴 한데 일방적으로 살육할 뿐이고 고문 교과서를 보는 듯한 장면에서 뭔 흥미를 찾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에선 자잘한 개연성은 찾을 수 있어도 결정적인 개연성이 없어요. 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직 두 번째 세계에선 악당은 주인공에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죽임을 당해야만 합니다. 첫 번째 세계 때의 기억을 억지로 보면서요. 같은 인물이라도 내가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죽임을 당하다니 이보다 억울한 게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기만족을 위해 복수를 펼친다 할 수 있죠. 이미 작중에서 비슷하게 긍정도 하였고요. 이게 뭐가 재미있을까 하는 고찰을 시간 나면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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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전생 3 - 숲의 수호신이 된 전설, Novel Engine
미시마 치히로 지음, 쿠루리 그림, 김민준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 지붕에서 다 큰 여자와 살면서도 손가락 하나 안 대는 그대는 진정 고자인가 하는 고찰을 해봅시다. 10살 아르티나와 13살 리리티나는 아직 어리니까 그렇다 치지만 16살 루루티나가 너 없으면 죽고 못 사는 형식으로 들이대는데 주인공인 백곰은 이 女 왜 이래? 이러고 있다. 참고로 백곰은 현실에서 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건장한 청년이었고 이세계에 백곰(수컷)으로 환생하였다. 루루티나는 1권에서 인간족에게 붙잡혀 능욕을 당하고 이대로 인생이 끝나나 했는데 그때 백마 탄 왕자님처럼 자신을 구해준 백곰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얼어 죽을뻔한 자신과 동생들을 위해 집까지 지어준걸.

 

먹을 것을 잡아다 주고, 인간들에게서 지켜주고, 집까지 지어주고, 참 이렇게 헌신적인 백곰이 또 있으랴. 근데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으니 이보다 짜증 나는 것도 없을 거다. 백곰 왈: 번식기가 아닌데 어떡하라고. 근데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점이 떠오른다. 과연 백곰과 웨어울프는 종족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맺어질 수 있을까이다. 같은 부류라도 까마귀와 까치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절대 맺어질 수 없을 테지. 맺어져도 2세가 태어나지 않는다거나. 하지만 말과 당나귀는 노세를 낳으니까 실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작가는 그런 걱정은 접어두라는 듯 이종족간에도 아이가 태어난다는 걸 보여주기로 하려는가 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에서 낚시를 하던 백곰과 주변인은 떠내려오는 곰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뚜둘겨 깨우니 강 상류에 사는 엘름족이라는 곰 수인 마을에서 떠내려 왔단다. 이름은 로미스케라고 한다. 수컷이다. 근데 그냥 떠내려온 게 아니라 치정 싸움에 휘말려 강물에 처박힌 꼴이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마을 남정네들이 기싸움을 벌였고 그중 하나에게 떠밀렸다나. 루루티나 이하 웨어울프 소녀들은 한창때의 여자애들이다. 가십거리가 없는 숲에서 이런 좋은 이야깃거리를 놓칠 루루티나 이하 웨어울프 소녀들이 아니었으니. 로미스케를 도와주자고 일치단결하여 콧김을 훅훅 내쉬니 천하의 백곰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도착한 게 엘름족이 산다는 마을. 근데 오긴 했는데 로미스케가 좋아한다는 여자 곰은 왈가닥(이름은 줄리키치라고 한다.)에 노리는 수곰이 많았으니 백곰으로써는 두통 거리다. 그런데 백곰에겐 엘름족 인상이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같은 인상이라며 당췌 미(美)의 기준이 무얼까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아무튼 로미스케의 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왔긴 한데 정작 로미스케와 쥴리키치의 분량이 너무 적다. 갑자기 성웅제라는 축제가 있을 예정이고 백곰도 거기 나가서 싸우란다. 뭐, 축제니까 즐기면 되는 거고. 근데 백곰전설이라는 이상 야릇한 구전이 내려오고 있었으니. 백곰은 재앙을 불러온다나.

 

근데 다 좋다 이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종족간 아이 즉, 하프의 출연은 백곰과 루루티나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까. 사실 백곰은 루루티나를 의식하고 있지만 이성으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번식기가 아닌 것도 있지만, 무직 전생의 주인공 루데우스가 했던 말처럼 한번 그 길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니까가 이유가 아닐까. 루루티나의 대시를 애써 외면하며 아닌 척, 정말 노력하는 곰이라 하겠다. 후각은 개보다 월등히 좋다고 자기가 말했으니까 각방 쓰는 것도 아닌 한 방에서 지내는데 감정을 다스린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거다. 그러니 고자 곰이라고 욕 하진 말자.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좋게 생각하자.

 

아무튼 하프 곰 나온다(참고로 18세 여자다). 인간과 곰의 아이, 루루티나는 웨어울프족이지만 사실상 인간과 똑같은 생김새니까 별반 다르지 않겠지. 그런데 우리의 백곰은 그런 가능성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생각도 안 한다. 루루티나만 불쌍하지. 게다가 하프 곰은 인간으로 변했을 때 루루티나보다 더 낫다고 백곰이 평가해버렸다. 이성이 백곰에게 조금만 가까이 있어도 불같은 질투를 내뿜는 루루티나가 백곰이 하프 곰을 만났다고 아는 날에는 백곰을 초상 치러버리지 않을까. 이성이 그냥 곁에 있어도 질투를 하는데 하필 백곰이 찾아간 날에 하프 곰이 인간형 전라의 모습이었으니 초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만나는 여자는 많고 하나같이 호감도를 쫙쫙 올리는데 성과가 없다. 2권에서 나왔던 엘프 모녀는 그새 잊혀져 버렸다. 엘름족 마을에서 쥴리키치는 많은 남정네에게서 대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줘패면서도 은근슬쩍 백곰을 의식한다. 죄많은 남자. 하프 곰은 오늘 만나 놓고 그가 싫지만은 않다. 몇 시간 만에 전라를 보였는데도 동요조차 안 한다. 아니 남자로 봐주지 않는 건지도 모르지. 그렇게 주변에서 대쉬를 해대는데 정작 고자 백곰은 얘들이 왜 이래 하고 있다. 아마 외면하느라 일부러 모른척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떨 때는 진짜 무골충 같기도 하다. 사실 치근덕 거리지 않으니까 오히려 안심하고 이성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맺으며, 일단 웨어을프 소녀들이 귀여워서 보고는 있지만 이야기 구성이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계속 보기엔 무리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령 두꺼비 대마왕 에피소드는 왜 넣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유치했고, 틀에 박힌 시비조 담당 엑스트라의 등장하며... 차라리 숲에서의 생활을 파스텔 형식으로 꾸몄더라면 훈훈함이라도 있었을 텐데 괜히 악역을 등장시켜서 극중 긴장도를 높인다고 하는 게 허접하기 그지없습니다. 2권까지는 그나마 나았는데 3권은 앞에서 퀄리티를 높여 놓은 바람에 이야기가 다 죽어 버렸다고 할까요. 거기에 하프 곰은 흥미 위주의 눈요깃거리 밖에 되지 않고요. 1~2권에서 그랬던 것처럼 경쟁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이 없으니 질 낮은 동화책을 읽는 건지 신문을 보는 건지 모르겠더군요. 일단 이야기가 4권으로 이어지니까 4권까지만 보고 계속 볼지 결정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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