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철의 마법사 2 - 두 명의 발키리
마요이 도후 지음, 뉴무 그림, 이승원 옮김 / 라루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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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다. 모럴해저드와 사이코패스에 혹해서 2권을 덥석 구입했던 필자는 좌절을 맛봐야 했군요. 1권의 분위기는 엇따 팔아먹고 육아물이 되어 버렸는가. 아니 뭐, 히로인 '하루나'가 클래스 메이트들에게 버림받고 성장을 위해 사부를 찾아가 칼을 간다는 건 1권에서도 나온 내용이긴 한데, 그렇다면 칼을 가는 내용이라도 넣던가. 그냥 팔만 내질러도 쑥쑥 성장하는 애를 두고 어디가 무능아이고, 어디서 감정을 이입하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작가 당신이라면 알겠나요? 아니, 모럴해저드와 사이코패스를 버리고 성장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이어가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진행을 보여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근데 모럴해저드? 나오거든요. 그게요. 몬스터 주인님이라는 작품에서도 언급한 저속한 짓을 하루나 클래스 메이트들이 저질러요(1권에서). 법이 있어도 비웃듯 범죄가 일어나는 현실에서 법이라는 족쇄가 사라진 이세계라면 인간은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듯, 능욕을 펼치다가 사이코 패스 하루나에게 끔살을 당해 버렸죠. 시종일관 이런 분위기였던 1권에 비해 2권은 그냥 이세계에 간 주인공이 깽판을 친다의 전형적인 모습만 보입니다. 그냥 막 두들기고 그에 따라 능력치는 마구 올라가고, 그러면서 무능아라고 폄하 당하고, 사부에게 선동 당해서 우리 좀 더 강해지자? 우주 정복이라도 할 기세랄까요.

 

물론 사람에 따라 노력은 다 달라요. 그 사람만의 노하우로 강해지는 거라면 딱히 상관은 없어요. 그런데 하루나는 노력이랄 것도 없어요. 그냥 휘두르면 강해지고, 스크롤 구입해서 스킬 습득 후 좀 날리다 보면 능력치는 빠방하게 올라가고, 이게 재미있나? 흥미 있나? 이런 물음이 끊이질 않아요. 옛날 어느 작품에서 초고수가 있었는데 적과 싸우다 한 방 맞고 죽어버린 게 있었어요. 초고수가 한 방 맞았다고 왜 죽었을까? 맞는 수련을 안 해서 맷집이 없었다나요. 수련과 노력이란 실패와 좌절을 격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입니다. 그런데 하루나는 그게 없죠. 수련은 하는데 좌절을 겪을 만한 일이 없어요.

 

왜? 한 방에 다 죽여 버리니까요. 이것은 즉사치트라는 작품과 일맥상통합니다. 한 방에 골로 보내는 거나 '죽어'한마디로 골로 보내는 거나 뭐가 다를까. 그래도 즉사치트는 주인공이 가진 복선이라도 있었지. 이 작품의 하루나는 뭐가 있나? 안 보여요. 아무리 찾아도. 그냥 때려죽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밖에 느낄 수가 없어요. 이번에 고블린 용사가 수하 고블린과 오크와 오거로 구성된 군단을 이끌고 쳐들어와요. 고블린 용사라니 아직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작품에서조차 등장하지 않았는데, 능력치로 보면 하루나의 두 배나 되는 고블린 용사를 맞이하여 그녀가 보여준 분투? 먹는 건가요?

 

치나츠라는 하루나 클래스 메이트와 페어를 짜고 고블린 용사와 아무리 조무래기라지만 1천이라는 숫자를 맞이해 처절한 싸움이 아니라 소풍 개념으로 바베큐 파티를 열고 잠깐 다녀올게라는 느낌으로 때려잡는데... 한때 인터넷에서 엄청나게 까데기 당했던 모 작품의 포위 섬멸전 기억하시나요? 차라리 이게 더 나을 지경입니다. 고기 다지듯이 고블린들을 유린하고 자신보다 두 배나 강한 상대를 만나 아이 팔 비틀듯 몇수만에 잡아 버리고, 고블린 슬레이어가 봤다면 울면서 뛰쳐뛰쳐나갔을 일이 엄청 벌어지죠. 대체 이거 무슨 의미가 있나. 필자는 읽는 내내 의미를 찾아내려고 머리를 풀가동했지만 찾지 못했군요.

 

그렇게 쓸어 버리고 바베큐장으로 와서 한다는 말이 배고파, 고블린 피로 칠갑을 했을 텐데, 아무리 승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현대를 살아갔던 여고생이 할 말은 아니라고 봐요. 고뇌 정도는 해도 되잖아요? 뇌수와 내장이 난자했을 텐데 멘탈 괜찮나? 냄새는? 물론 작품 자체가 가볍게 가자는 성향이니까 따지고 들어봐야 소용이 없긴 합니다만. 반대로 말하면 이런 의미도 없는 작품을 돈 받고 팔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가 아닐까도 싶군요. 한마디로 흥미를 끌만한 게 없어요. 게다가 하루나의 사부의 아랫도리 상황은 왜 자꾸 실황중계를 하나요. 궁금하지도 않은 거, 치나츠의 사부 넬이라는 기사단장과의 염문을 뿌리는데 이 작품의 내용과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겠군요.

 

이제 대적할 놈도 없는데 뭐 하러 수련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전형적인 소설가가 되자 식 스킬 설명은 사람을 고리타분하게 만들고, 사실 늘 이런 작품을 읽다 보면 스킬 설명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물음이 떠나질 않아요. 그래봐야 굵다라는 생각만 들 뿐이죠. 300여 페이지 절반을 이렇게 허비합니다. 그래도 개그라도 넣어서 승부수를 띄울려는지 착각물로 만들어 버릴려는지 등장인물마다 상황을 착각하게 해서 북 치고 장구치고, 총체적 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요. 대체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나무야 미안해?

 

맺으며,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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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의 주인님 2 - S Novel
히구레 민토 지음, 팀에스비 옮김, 나포 그림 / ㈜소미미디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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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철 조각처럼 숲속을 걸었을 뿐인데 '내가 니놈의 권속이다'라고 들러붙어 오니 이거 참 편리하군요. 보통 테이밍이라고 하면 몬스터를 죽도록 때리고 나서 약해지면 꼬셔서 내 편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아니면 조교를 하던지요. 내가 너보다(몬스터) 우위에 있다는 걸 자각 시키고 복종 시키기도 하고요. 아니면 요즘 감성 특집으로 서로가 마음이 통해서 쭈인님!이라고 대뜸 테이밍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숲속을 걸었을 뿐인데 쭈인님! 하고 들러붙어오니 힘들이지 않고도 내 편을 늘릴 수 있으니 얼마나 유용한 스킬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100이면 100 다 테이밍이 되는 건 아니고 어쩌다 마음이 맞는 몬스터만이 테이밍이 되는 것에서 주인공이 가진 스킬은 아주 고약하다는 것이군요. 더욱 문제인 것은 보통 테이밍 하면 절대적으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주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괜히 반푼이 스킬이 아니라는 것마냥 '주인은 주인인데 주인이면 다야?'라는 상황이 벌어져요. 모든 걸 몸으로 때워야 되는 현실에서 그나마 릴리는 매우 양호한 편이었고, 로즈는 엄한 놈 붙들고 쇼하는 중에 난입해줘서 주인공은 그녀 덕분에 목숨을 건졌더랬죠. 그리고 세 번째 권속인 '거베라'를 들이게 되는데요. 신화 속(?)에 나오는 상반신은 여성이고 하반신은 거미인 '아라크네'를 맞이하면서 주인공이 치러야 할 고통은 너무나 컸어요.

 

메가데레 저리 가라 할 만큼 큰 독점욕을 발휘했던 거베라를 맞이하여 주인공은 반죽음 상태가 되어 버리고(주인을 줘패다니), 그의 권속인 릴리와 로즈 또한 중파와 중상을 입어 버렸죠.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보다 더 힘없는 '카토'가 나서서 겨우 그녀(거베라)를 진정시킴으로서 사태는 일단락되었습니다만(까지가 1권 스토리). 그로 인해 이번 2권은 치료를 위한 휴식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까지 제어하는 테이밍이 아니다 보니 권속들 저마다 자아가 싹터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번민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이게 주인공 마음에 직접 연결되어 테이밍 되다 보니 몬스터들이 인간의 마음을 얻어 버렸다고 할까요.

 

당연히 거기에 따른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게 되죠. 주인을 상처 입힌 거베라를 용서 못하는 로즈와, 정신 차리고 보니 밥상을 엎어버린 거베라가 받은 마음의 충격, 그리고 주인공을 할짝할짝 거리며 한시도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릴리와 그녀를 바라보던 주인공은 그녀에게서 마음의 안식처를 얻어 버립니다. 슬라임의 체액(침샘)은 어떤 맛이더냐라는 일도 있었죠. <- 엄청 순화해서 쓴거랍니다. 절대적인 연정을 품어버린 릴리와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져버린 로즈, 그리고 독점욕에 사로잡혀 다리를 깔짝깔짝 거리는 거베라는 오늘도 주인공을 자빠트리고 싶어 하지만 그보다 할 일이 태산이군요.

 

그건 그렇고 여기에 불쌍한 캐릭터가 하나가 있습니다. 이름은 '카토', 주인공보다 한 살 어린 여학생입니다. 릴리가 의태하고 있는 미즈시마 미호와 아는 사이로 콜로니 붕괴 때 도망쳐 나오긴 했지만 몸을 숨긴 곳에서 질 나쁜 남학생들에게 능욕을 당하여만 하였죠. 마침 지나가던 주인공이 구해주었긴 한데 보통 여느 작품이라면 행위 직전에 구출되곤 하지만 이 작품은 모럴해저드를 아이덴티티로 정해 놓은지라 우리가 바라는 일에는 응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녀는 구출된 이후 계속 주인공 일행과 같이 다니고는 있지만 주인공이 워낙 인간 불신에 빠져 있다 보니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를 못해요.

 

상처받은 몸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듯이 더러운 시트를 몸에 둘둘 말고 다니는 그녀(카토), 그런 그녀가 거베라에게 잡혀간 주인공을 구출하기 위해 악역을 자처하면서 꽤나 안쓰럽게 다가왔죠. 발광하던 릴리에게 찬물을 덮어씌워 냉정하게 만들고 거베라와의 일전에서도 큰 빛을 발휘하며 주인공을 탈환하는데 공을 세웠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저 주인공 일행이 가는 데로 따라가고 유대가 좋아진 주인공 일행을 바라보며, 빛을 내는 그들을 부러워할 뿐. 그래서 뭔가 자신도 끼여보고 싶었겠죠.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다못해 힐(치유마법)이라도 배워 도움이 되고 싶다고... 그러나 현실을 냉혹합니다.

 

주인공은 인간을 믿지 못합니다. 신뢰를 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 그녀에게 뭔가 보답은 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심한 구역질을 해대는 주인공, 그녀가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주인공이 가진 내면의 갈등은 정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그녀를 상처 입히고 마는, 그럼에도 그녀는 실망하기 보다 자기 발로 걸어가려고 하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가슴 한켠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받았던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내일을 맞이하고 말죠. 후반 그녀가 얼마나 큰 상처를 안고 있었는지 밝혀지면서 정말 모럴해저드를 아이덴티티로 삼은 작품답다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주인공과 권속들 간 알콩달콩 하고 인생 이야기만 그릴뿐.

 

맺으며, 형만 한 아우 없다고 영화도 1편이 재미있으면 2편은 재미없다는 혹은 쉬어간다는 공식처럼 라노벨도 더러 그런 경향을 보이죠. 1권에서 모럴해저드를 보여주면서 이목을 끌었던 반면에 2권은 주인공과 그의 권속들 간 서로가 다른 내면의 충돌과 얽힘 그리고 풀어내는 걸 그리고 있습니다. 이게 재미없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흥미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군요.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주종 관계에서 오는 그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를 그리고 있어요. 그래서 갭이라던지 위화감이 좀 생깁니다. 1권에서 권속들이 왜 그런 마음을 품는지 설명은 해놓았습니다만.

 

아무튼 부제목과 리뷰에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의문이시겠군요. 사실 낯간지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위에서 언뜻언뜻 언급은 하였지만 주인공과 권속들 간 유대가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고 있죠. 이번 2권은 권속들 간 서로 단점을 보안해주고, 상대에게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을 발견하고 충돌을 일으키고 해결하면서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권속들에게서 받아 가는 사랑은 정말 인간들 것보다 더 따스하게 다가오니 이들에게서 온기를 찾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그런데 어째서인지 임재범의 '너를 위해'라는 노래가 떠오르더군요. 너무 유대가 돈독해서 주인공이 마음에 일말의 불안을 품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추측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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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환수조사원 1
호시노 코이치로 지음, lack 그림, 아야사토 케이시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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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

 

이 작품은 '페리'라는 소녀가 박쥐 '토로'와 어둠의 왕 '크슈나'와 함께 세상을 떠돌며 환수로 인한 분쟁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여타 라노벨이나 판타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니콘이나 인어같이 환상 속의 생물 혹은 사람보다 격이 높은 존재를 이 작품에서는 환수라고 하는데요. 페리는 조사원이라는 신분을 부여받아 환수와 인간 사이를 조정하고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환수를 잡아다 가두는 일을 하고 있죠. 그런데 원작인 라노벨을 읽으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건 그녀(페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어디선가 꺼내는 환수를 기록한 책, 아무런 힘이 없는 그녀가 어째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가.

 

이 작품의 원작가 '아야사토 케이시'의 특징이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이고,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걸 특징으로 하고 있죠. 가령 피가 낭자하고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막히고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널 살리면 어떤 의미가 부여되나 하는 것, 이건 이세계 고문 공주라는 작품에서 잘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페리는 힘이 없습니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어둠의 왕 '크슈나'가 그녀를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목숨을 잃을 판이죠. 그럼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습니다. 왜? 그것이 그녀의 사명이니까요. 환수와 인간 사이를 조정하고, 때론 상처받은 환수를 보살펴 주는 것.

 

아무튼 이 작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나.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 세계는 환수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환수는 때론 인간과 같이 살기도 하고, 때론 인간을 공격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서로가 부딪혀 살아가는 이상 트러블이 일어 날 수밖에 없죠. 페리는 와이번의 습격을 받고 있는 어떤 마을에 들립니다. 사람들은 와이번 퇴치를 의뢰하지만 페리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알아가죠.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인간이란 왜 이리 추잡한 생물인가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다친 와이번과 자기들만 살겠다고 죄를 저질러 놓고 오히려 큰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없어져야 될 건 환수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역설하죠.

 

사실 라노벨을 원작으로 하는 만화 중에 작화는 물론이고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 위화감 없이 풀어내는 작품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필자가 누차 언급하는 늑향이라던가, SAO 프로그레시브, 던만추등 주관적이지만 원작보다 더 나은 작품이 더러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어떠한가. 출판사에겐 죄송하지만 라노벨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겠습니다. 위화감이 전혀 없어요. 보통은 스킵으로 인한 갭은 생기기 마련인데 눈에, 뇌리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코믹을 그리는 작가의 표현력이 좋습니다. 사실 라노벨과 달리 만화는 리뷰할 때 본문을 인용하며 해야 읽는 쪽에서 좀 더 와닿겠는데 저작권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군요. 

 

그래도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페리와 토로 그리고 크슈나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잘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페리를 지키려는 크슈나의 살가운 정도를 넘어 밥맛인 모습이라던지 그런 크슈나가 못마땅해서 머리로 들이박는 게 일인 토로라든지, 페리가 크슈나의 머리를 쓰담쓰담 하자 뭘 잘못 먹었냐느식으로 흥분하는 모습은 원작에서는 느끼기 힘들 정도죠. 하지만 천진난만하고 살가운 장면 이면엔 어두운 진실도 숨어 있습니다. 원작을 보신 분이라면 첫 장 크슈나가 욾조렸던 '설마 농치는 것이겠지?' 다음 장에 이어지는 대사에서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을 거라 봅니다. 필자가 원작을 설렁설렁 읽다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장면과 연결이 되어 엄청 씁쓸했군요.

 

이게 원작가의 또 다른 특징이죠. 허를 찌르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 그렇기에 덧없는 아름다움이랄까요. 이세계 고문공주도 그렇고, 이 작품의 페리의 귀여운 겉모습은 그걸 감추기 위한 연극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질이 나쁜 게 중간중간 복선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몇 번을 되풀이 하더라도' 원작을 보신 분이라면 이 대사에서 소름이 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군요. 그래서 원작보다 만화에 더 큰 점수를 주고자 합니다.

 

맺으며, 필자는 원작가(정확히는 작가가 집필하는 작품)와 상성이 맞지 않나 봅니다. B.A.D는 그나마 나았는데 이세게 고문공주는 상성이 최악이었고, 이 작품의 원작도 사실 잘 읽긴 했는데 리뷰 쓸려니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었군요. 그나마 만화는 원작보다 뛰어나서 이만큼을 썼습니다만. 내용과는 하등 관계없는 말만 주절주절 늘어놓기나 하고... 역시 어쩔 수 없는 상성의 문제인 듯합니다. 그래도 만화만큼은 계속 구매할 거지만요. 노파심에서 쓰지만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필자와의 상성 문제입니다. 아무튼 원작은 몰라도 만화만큼은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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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님의 스승님 1 - L Novel
미츠오카 요 지음, 김보미 옮김, 코즈믹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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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좀 있습니다. 글도 좀 깁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판타지에서 단골로 쓰이는 주제가 마왕과 용사의 이야기죠. 마왕이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을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용사가 나타납니다. 시작의 마을에서 출발한 용사가 동료들을 모으고 갖은 고생 끝에 마왕을 무찌르고 개선을 하는 이야기. 그리고 용사는 공주 혹은 동료 마법사(혹은 성녀)와 결혼해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이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입니까. 요즘은 안 먹히는 것이지만요. 그래서 이 작품이 전 7권으로 완결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참담한 기분이었군요. 아무튼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에선 용사와 동료들에 초점을 맞출 뿐 그 이면에 있는 사람, 가령 용사를 가르친 스승도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은 왜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 걸까 항상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고블린 슬레이어처럼 그의 스승이 간혹 등장하기도 하고, 너에게 더 이상 가르칠게 없으니 하산하라는 정통 판타지도 있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은 파격적인데요. 이 작품은 용사의 스승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윈 버드(이하 윈)'의 시작은 보잘 것 없어요. 그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부모의 지인 여관에서 식모살이를 하였죠. 이 시대의 고아가 식모살이라고 해도 비를 피하고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으면 그나마 나은 신세라고, 5살 어린아이는 벌써부터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일찍이 어른으로 올라설 수밖에 없었던 꼬맹이는 지식을 탐닉했고 모험가들을 흉내 내 기술을 연마하고 그러다 지나가던 '기사'들을 보고 동경의 마음을 품게 돼요. 사람들을, 약자들을 위해 살아가는 기사들은 어린 꼬맹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낼 만큼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이후 윈은 오로지 기사를 목표로 저돌맹진을 해대죠. 그러다 꼬맹이가 소년으로 올라가던 어느 날 운명 같은 만남을 가집니다. 히로인 '레티', 윈보다 두 살 어린 여자애가 수련 중인 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을 계기로 둘은 의기투합하여 열심히 수련을 해대죠. 윈의 뒤를 오빠라 부르며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레티의 모습이 꽤나 귀엽습니다.

 

하늘이 둘을 갈라놓을지라도...

 

용사를 들먹거려 놓고 언제 용사가 나오냐고 하실 텐데, 여기서 정석적인 흐름이라면 소년 윈이 당연히 용사가 되어야겠죠.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가 아닌 그녀를 선택합니다. 세상에 남겨져 홀로서기중이었던 소년과 집안의 무관심으로 세상에 버려졌던 소녀가 같이 지냈던 5년이라는 시간. 꿈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고, 둘이 같이 있었기에 세상에 맞설 수 있었던 시간. 마왕은 이 둘을 시샘이라고 하듯이 세상을 어지럽혔고, 신(神)은 용사가 태어난다는 계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그 용사는 '레티', 집안에서 시종들도 무시로 일관했던 천덕꾸러기 소녀 레티가 용사로 선택되어 머나먼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일이 요상하게 흘러갑니다. 레티는 떠나면서 그와 재회를 기대하지만 윈은 그녀가 시집을 가는 걸로 착각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죠. 이 시대엔 어리다고 해도 여자는 여자라는 듯 정치의 일환으로 시집을 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윈은 그런 줄 알았습니다. 멍청한, 레티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기분으로 마왕과 싸우며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재회했을 때 '소박맞았냐?'라는 망발을 뱉어 낼 땐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더군요. 레티는 그와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구원을 받았어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세상, 부모조차 친자식임에도 홀대하는 그런 집구석에서 정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런데 윈은 매일 찾아오는 자신을 귀찮아하지 않고, 수련도 열심히 같이 하고, 책도 읽어 주고, 응석도 받아주고, 놀아주니 어린 그녀가 나이는 무슨 상관이랴는 듯 사랑에 눈 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죠. 공작(왕 다음 신분)의 계급인 그녀가 평민인 그와 이어질 수 없다는 걸 모른 채. 그리고 용사는 개선합니다. 이때 윈의 나이 16살, 레티가 14살, 참고로 마왕과의 싸움이 주가 아니라 이 작품은 마왕을 쓰러트린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타 작품에서는 전면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용사의 스승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요. 이쯤에서 눈치챘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스승이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 찬밥 신세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죠.

 

윈은 레티를 그렇게 보내고 난후(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시집 간 줄로 알고 있음), 꿈에도 그리던 기사 학교에 입학해 학업에 매진 중이었지만 평민의 신분으로 귀족과 부잣집만 간다는 그런 학교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리 없어요. 당연하게 이지메가 일어나고 그는 태풍에 날려가는 나뭇잎처럼 휩쓸릴 뿐이죠. 그리고 개선한 레티와의 재회, 여기서 그 흔한 양판소로 갈 것이냐 아니면 정통 드라마로 갈 것이냐의 분기점이 아닐까 했군요. 무슨 말이냐면 스승이자 사랑해 마지않는 서방님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그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얀데레가 될 것이냐 순애보가 될 것이냐. 정말 읽으면서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군요.

 

레티는 어떤 길을 선택하였을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나를 적으로 만들게 될 테니까.' ​정말 전기가 통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했습니다. 신(神)에게 선택받은 인간을 누가 말리고 누가 적대할 것이냐.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했던 마왕을 무찌른 용사라는 것은 황제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용사란 말이죠. 그런 용사의 스승이자 사랑해 마지않는 남자를 괴롭혔다는 건 뭐 세계 종말이라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얀데레가 되어 미쳐 날뛴다면 싸구려 작품이 되었겠죠. 조용한 분노라고 할까요. 글로 전해지는 공포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온통 썩은 것만 있는 주변에서 때묻지 않은 주인공을 부각 시키는 연출력이군요. 넓게 보면 권선징악 계열이라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당연히 악역도 나옵니다. '제이드'라는 후작 작위를 가진 윈의 동급생인 남학생의 등장은 윈과 레티의 앞 날에 먹구름을 끼게 하는데요.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악역 귀족 포지션으로 레티를 차지하기 위해 윈을 어떻게 해보려고 그러지만 정작 레티의 성격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불쌍하기 그지없다고 할까요. 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세상이 멸망할 텐데...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그런 성격 때문에 일이 꼬여만 가니 용사라도 무적은 아니라고 역설하기도 합니다. 사실 황제도 어찌하지 못하는 용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윈을 신격화해도 아무 문제없음에도 그러지 않는 모습에서 얀데레와는 차이를 두고 있기도 하죠.

 

맺으며, 사람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비판을 하는데요.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살아야 한다고 현대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주제를 알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죠. 계급사회인 주인공과 히로인이 사는 세계에서 평민인 윈과 용사라는 간판을 빼더라도 공작이라는 지위를 가진 레티가 과연 맺어질 수 있을까? 혹자는 사랑이 있으면 그깟 계급 따위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눈치 없는 놈은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도를 높이죠. 초반엔 눈치가 좀 없긴 했습니다만. 그래서 분수에 맞게 살아라는 주변에서의 무언의 압력에서 그가 느껴가는 갈등은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부질없는 몸부림이지만요.

 

아무튼 순수함이랄까요. 어릴 적 둘이 쏘다니며 그리는 장면은 하나의 동화를 보는 듯했군요. 숲속에서 레티가 흥얼거리고 윈은 곁에서 듣는 장면이라든지. 어떤 일을 휘말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뒷일을 부탁한다'라는 윈의 독백에 응하듯 레티가 '나에게 맡겨'라며 마치 옆에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서로의 의식을 교차 시키는 연출력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했군요. 그리고 악역을 등장시켜 둘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것에선 사실 클리셰이긴한데 원래 사랑이란 장애를 뛰어넘음으로써 비로소 빛을 보게 되죠. 하지만 옥에 티까지는 아닌데 또 다른 히로인 '코넬리아'를 기용하면서 여느 하렘물과 비슷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기도 하였군요. 착한 주인공에 이끌리는 히로인이라는 진부적인 이야기는 흥미도에서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이러면 레티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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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용사는 복수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5 - L Books
키즈카 네로 지음, Sinsora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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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해코지 해놓고 복수 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라고 이번 5권은 이야기합니다. 자신과 다른 모습이라는 이유 하나로 배척하고 괴롭히고 돌을 던지는 행위, 연못에 살던 개구리는 날아온 돌에 생사의 기로에 서고,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의 가족은 복수를 꿈꿉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어찌할 방도도 없이 기나긴 고통의 나날을 겪어야만 했고, 개구리는 개구리일 뿐 인간에게 복수를 꿈꾼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마냥 개구리의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만 남겨 갔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있었으니,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의 마음에 동조하여 보다 높은 곳으로 뛰어올라 개구리는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복수할 기회와 능력을...

 

히로인 '미나리스'가 나고 자란 마을에서 미나리스의 존재란 개구리만도 못했습니다. 수인(토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머니와 그녀는 배척과 돌을 맞아야 했고, 자신들을 보호해주어야할 아버지는 그녀들을 배신하였죠. 소꿉친구 루샤는 같은 남자친구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와 어머니를 마을에 꼰질러서 수인이라고 들통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어머니와 자신, 그때 그녀는 마을과 아버지와 루샤와 그 남자친구를 보며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리고 힘겨운 노예의 생활에서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많았던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하고 그녀는 세상에 혼자 남겨져 버립니다.

 

자, 그녀가 품었을 증오는 범인(凡人)은 헤아릴 수 없겠죠. 필자는 언제쯤 돼야 그녀가 복수극을 펼칠까 정말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야 복수에 대한 정당성은 주인공보다 월등히 높으니까요. 일어나지도 않은 배신을 단죄하고 복수 대상자에게는 뜻 모를 말만 내뱉으니 그 대상자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당사자로서는 부조리의 극치였죠. 물론 미래에 배신이나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잖아요. 단죄란 당사자가 얼마나 속죄를 하느냐에 의의를 둬야 함에도 정작 당사자는 아직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뼈 때려 대니 어리둥절할 뿐이었죠. 그런 반면에 미나리스는 주인공처럼 두 번째 생이 아닌 첫 번째 생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보다 개연성은 충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주인공 일행은 복수에 속도를 내기 위해 마법 국가 '카번헤임'에 찾아옵니다. 던전에서 뭔가를 찾고 렙업을 위해, 그리고 미나리스와 슈리아의 마법 기초를 닦기 위해,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만납니다. 미나리스의 복수 대상자들을, 그리고 찾았습니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마을을. 그녀가 증오를 어떤 말로 어떤 능력으로 풀어낼지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군요. 카번헤임 도시를 들러보던 중 작은 절박함을 무시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겪었던 절박함을, 어릴적 좋아했던 과일을 접하며 향수에 빠져 자칫 마음이 망가질 뻔 일들... 감성적으로 몰입시키는 극중 분위기는 정말 이 작품이 원래 이런 작품이었나 싶을 정도로 애절함이 넘쳐 흐릅니다.

 

좀 더 쓰고 싶지만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미나리스가 어떤 복수를 펼쳐 가는지는 직접 보시기 바라고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서 새로운 '전생자'가 등장합니다. 이건 도서 뒤쪽 시놉시스에서도 언급하고 있으니 중대한 스포일러는 아니겠죠. 이름은 레오네라고 하는군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타임리프를 거치면서 첫 번째 기억을 가지고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그녀, 그래서 만나지도 않은 주인공 카이토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는 있지만 하필 왕녀가 떠벌린 주인공은 악당이라는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1차원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까요. 그래서 발암적인 요소를 대거 보여줍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면서도 정작 그 사람이 안고 있는 아픔과 슬픔은 헤아리지 않아 주인공 대척점에 서게 되는 인물이군요.

 

복수는 아무것도 낳는 게 없다는 둥, 그딴 거 잊고 새로 시작하는 게 건설적이지 않아? 하는 둥, 결정적으로 바보짓 그만하라는 망발을 내뱉음으로써 타 출판사 작품인 회복술사였다면 진작에 주인공(회복술사)에 의해 약에 취해 범해졌을 그런 망발을 마구 내뱉는 장면은 정말 찌릿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화를 낼지언정 레오네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는데요. 사실 이런 장면을 넣는 이유는 주인공이 아무나 막 죽이는 복수귀가 아닌 그래도 인간일 적 마음은 남아 있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복수극을 펼칠 때마다 주변 애꿎은 사람들도 희생 시켰다는 점에서 코미디 같은 느낌도 받았군요. 

 

맺으며, 3권부터였나요. 머리에 꽃 꽂은 성녀가 등장했던 때가요. 이 작품은 정말 제정신이 박힌 인간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요. 성녀도 괜히 머리에 꽃 꽂은 게 아니라는 것마냥 진정 미친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모습에서 이 또한 찌릿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좀 순화해서 언급해보자면 '얀데레'랄까요. 아니 '메가데레'라고 해야겠죠. 이건 뭐 주인공의 여난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아랫도리 사정이니 아무렴 어때요. 결국 주인공은 1회차 인생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2회차에서도 저지르게 되면서 업보를 짊어지게 되었군요.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 6권 리뷰 때 다시 언급해보도록 하죠.

 

아무튼 개연성 없는 주인공 복수극보다 미나리스의 복수극이 매우 와닿는 에피소드였군요. 레오네의 '저 밝은 미래를 향해 우리 뛰어가자'는 스파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줬고요. 사실 레오네는 발암적인 요소이긴 한데 이런 우중충한 작품에서 한줄기 밝은 빛과도 같은지라 욕은 못하겠더라고요. 사실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주인공의 대척점으로 복수보단 삶을 선택하라는 레오네를 기용함으로써 작품의 균형을 잡는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은 방해꾼일 뿐인 그녀를 이용은 해도 어떻게 하지 않는 모습에서 주인공의 미래에 일말의 희망의 끈을 부여해놓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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