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16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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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생처음 이성과 해보는 데이트(헤스티아는 인간이 아니니 무효.)


다가오는 여신제(축제)에서 데이트 하자는 편지가 벨에게 도착한다. 상대는 주점 풍요의 여주인에서 서빙하는 '시르'가 되겠다. 여기까지만 언급해도 드디어 '시르' 복선이 회수되는 건가?라고 하실 텐데 맞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필자는 이제까지 리뷰를 쓰면서 몇 번의 위기를 맞곤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왜냐면, 이미 '시르'의 정체는 99% 밝혀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데다 이걸 밝히지 않으면 리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밝히자니 저어되는 게 밝혔다간 특대 스포일러라고 마구 까일 것은 자명하고, 은근 독자층이 두꺼운 상황에서 스포일러를 했다간 대차게 까이면 필자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 


아무튼 시르의 데이트 공격을 받은 벨은 평소 그녀에게서 호의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응하게 된다. 근데 이것만으론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뿐더러 이것만 가지고 돈 받고 도서로 낸다는 건 날로 먹는 것이기에 작가도 큰 마음먹고 스토리 하나를 끝내려나 했나 보다.


근데 그냥 끝내진 않는다. 이런 이야기에 누군가가 난입하지 않는다면 팥 없는 찐빵이라는 듯 초장부터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두 가지 시선을 넣어서 독자로 하여금 혼란하게 만든다고 할까. 그렇게 벨과 시르의 데이트 이야기는 진행이 된다. 하지만 쑥맥인 벨이 여성을 리드하면서 데이트를 이끌어 가기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마스터'라고 불리는 1급 모험자(말해두지만 '아이즈'는 아니다)의 도움이라 쓰고 스파르타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게 또 가관이다. 마스터는 츤데레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마치 사자가 새끼를 낭떠러지에 떨어트려 올라오는 새끼마저도 다시 떨어트리는 냉혈한이다. 근데 정은 또 있어서 미워할 수 없는 부분이 포인트다. 이렇게 정신 개조를 받고 당일 시르와 데이트를 즐기는데 내가 즐기는 게 즐기는 것이 아니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도시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인이 데이트를 한다는데 주변인들은 그걸 두고 볼 위인들이 아니기에 파란을 불러오는 건 자명한 것이다. 헤스티아는 마치 집 나간 아들 찾는 것마냥 정신줄을 놓고, 릴리는 얼굴이 파래지고, 류는 못난이가 되고, 아이즈는 갈팡질팡한다.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건 시르의 정체다. 이쯤 오면 작가는 이제 숨길 마음도 없다. 대놓고 뉘 집 자식인지 99% 까발려 버린다. 그러해서 마치 귀족 규슈를 호위하는 마냥 호위꾼들이 달라붙는데 데이트가 제대로 될 리 있나. 거기에 시르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자고 부추기지. 여자 면역이 없는 벨군은 그녀의 살결에 심장이 콩닥콩닥. 여기까지라면 여느 데이트물 처럼 풋풋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르의 정체에 대해 거의 다 밝혀져 있는 상황에서 시르가 정말로 벨을 좋아하는가?라는 문제점이 떠오른다.


'외전 '프레이야'를 읽은 독자라면 시작부터 시르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16권 읽기 전에 외전 '프레이야'를 먼저 읽으면 벨이 왜 노림 받는지 대한 이유와 시르의 정체도 거의 명확하게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이 말은 16권을 읽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어서 필자 나름대로의 어드바이스다. 어쨌거나 그러해서 핑크빛으로 끝나야 될 데이트가 핏빛 장미로 끝이 나니 작가가 얼마나 마음 독하게 먹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일방적인 마음은 파탄만 불러올 뿐...


이번 16권에서 눈여겨봐야 될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벨의 마음이다. 사실 주변에 여성이 많아도 이제까지 벨이 여성에게 먼저 좋아한다며 엉겨 붙은 경우는 전혀 없다. 그러던 것이 던전에서 어떤 여성을 만나게 되면서 이후 그 여성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번에 일편단심이라는 눈물 나는 모습도 보인다. 다만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성에 대한 갈망이라기 보다 동경에서 우러나는 갈망이고 그것이 호감이라는 것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해서 벨은 시르의 대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즉, 벨이 의식하는 여성은 시르가 아니라는 뜻이다. 고자라면 고자 일 수 있으나, 벨도 이성과의 관계(성 지식)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사실 벨은은 주변과의 파탄을 피하려고 관계를 가지지 않는 거라 할수 있는데 주변과의 단절을 벨은 뭣보다 두려워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두 번째: 시르의 마음이다. 어느 날부터 벨이 신경 쓰이면서 마음을 키워 왔는데 그녀 시르의 겉모습만 본다면 정말로 애틋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정체의 시각에서 본다면 벨을 이성으로서가 아닌, 이 부분도 외전 '프레이야'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집착이 낳은 아집이다. 즉, 시르는 일방통행식으로 벨에게 대시 중이고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다기보다 벨은 주변과의 파탄을 우려해 그녀를 멀리하게 되지만 이게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일방통행식 마음은 파탄만 불러올 뿐이라는 거다. 시르는 끝까지 이런 점들을 깨닫지 못한다. 결국 남은 건 무력뿐이고 17권에서 파란으로 끝나지 않을 누군가가 죽을 만큼 심각한 이야기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이야기를 이번에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부턴 다른 이야기. 데이트 중인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웅 이야기를 왜 가미한지는 모르겠으나 영웅 이야기가 꽤 나온다. 아이즈의 조상부터 해서 어쩌면 시르와도 안면이 있을 영웅까지 들추던데 아무튼 여봐란 듯이 복선을 투하한다. 그야 이 작품은 영웅으로 시작해서 영웅으로 귀결되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벨이 그 영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복선을 별책부록에 대놓고 실어 놨다. 재판 구매하는 사람은 어쩌라고, 어이 상실.


맺으며: 휴... 시르 정체 밝히지 않고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먼산). 아무튼 데이트로 시작해서 데이트로 끝나는 이야기다. 다만 끝맺음은 100년 묵은 식초를 먹는 듯했다. 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17권부터는 대파란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복선을 투하하면서 기승전결은 개나 줘버린다. 벨의 입장에서는 원만한 해결로 끝을 맺으나 상대방은 누구 마음대로 끝내하는 분위기다. 주인공으로서는 완벽한 대응이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광녀(狂女)라는 점에서 다음에도 또 벨은 [파밀리아] 브레이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류가 제대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데이트하는 시르와 벨을 보고 못난이 구닥다리 엘프가 되어 짐짝 취급 당하는 게 여간 웃긴 게 아니다. 아무튼 간에 벨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할까. 이 작품도 끝이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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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피크닉 1 - S코믹스 S코믹스
미즈노 에이타 지음, shirakaba 그림, 심희정 옮김, 미야자와 이오리 원작 / ㈜소미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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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애니메이션으로 방영 중인 작품으로 원작은 동명의 라노벨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권(만화는 다음 달에 2권 발매)이 발매되어 있고요. 제목 때문에 많이 오해를 받고 있는데, 이세계에 피크닉 즉 놀러 가는 이야기인가 싶을 테지만 실상은 정 반대로 인지를 초월한 무언가에 쫓기며 생사를 오가는 공포물이 되겠습니다. 도시전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를 주제로 삼아 이세계에 우연히 발을 들인 사람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접촉자 그 사람의 이상적이고 근본적인 환영을 보여주며 매료 시켜 잡아먹는 마치 파리지옥과도 같은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이런 표현력에 있어서 리얼리티가 상당히 높아 공포물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한 장면들을 연출한다고 할까요. 거기에 세기말적인 일러스트는 공포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손색이 없었죠.


원작을 인상 깊게 읽어서 만화는 또 어떤 느낌을 받게 해줄까 하는 궁금증에 구입은 하였는데요. 필자가 그동안 코미컬라이즈를 리뷰 하면서 늘 하던 말이 있는데, 보통 라노벨을 원작으로 해서 코미컬라이즈화 될 때는 열에 아홉은 원작의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원작까지 욕먹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 점에서 본 작품은 원작에 비해 약 80%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우선 완성도 높은 점을 들어보자면,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소라오'의 사람들을 멀리하고 혼자만의 세계를 원하는 소심한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고요. 인싸의 표본으로서 상대의 기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들이밀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토리코'의 자유분방한 모습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세계에서 만나 친해지게 되죠.


하지만 물과 기름 같은 이들이 친해진다고 스스럼없이 지내는 건 아니라는 듯 곧바로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갈등을 빚는 장면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라오는 늘 돈에 쪼들리는 궁핍한 삶을 살고 있고, 토리코는 이세계에서 실종된 '사츠키'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요. 여기서도 서로의 목적이 다르다 보니 갈등의 요소로 자리 잡습니다. 소라오 토리코에 끌려가듯 같이 행동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챙겨주는 토리코를 미워하지는 않죠. 그러다 보니 그녀는 토리코에게 의존을 시작하고, 토리코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이세계에서 실종된 사츠키를 찾기 위해 혼자보다 둘이 낫다는 식으로 행동하면서 소라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됩니다. 인싸가 다 그렇듯 상대의 기분을 일일이 살피지 않다 보니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그런 갈등 속에서 상대를 어린애 취급하면서 불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연속이 되어 가죠.


그럼에도 생사가 오가는 이세계에서 서로의 등을 맡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다 보니 갈등보단 상호의존을 선택해서 위기를 극복해가게 되는데요. 일단 1권에서는 갈등으로 치닫다가 끝나긴 하는데, 그럼에도 '쿠네쿠네' 사냥을 통해 둘이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일들을 이미 거쳐 왔기에 싫어도 둘은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되죠. 소라오가 인지를 초월한 무언가(쿠네쿠네)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토리코가 붙잡아 없앤다의 공식을 완성해버렸으니까요. 하지만 같이 행동하는 소라오보다 사츠키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토리코의 우선순위 때문에 둘의 관계는 당분간은 좁혀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서로 성격 차이라던가 목적까지 다르다 보니 쉽게 좁혀지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죠.


아무튼 그 외의 부분에서 아쉬웠던 20%의 부분을 언급해보자면, 작화가 원작의 세기말 분위기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군요. 원작의 일러스트는 공포를 극대화하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역시나 코미컬라이즈에선 이런 거까지 기대하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또한 '토자쿠라'의 뜨거운 콜라도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아 아쉬웠고요(이 부분은 뒷장에 소설로 실어서 보충은 합니다만). 하지만 심리묘사에 있어서 라노벨에선 느끼지 못했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이건 좋았군요. 토자쿠라에게 돈을 받았을 때 눈에 튀어나오는 부분이라던지, 소라오의 토라지는 부분이라던지, 이런 부분은 코미컬라이즈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튼 간략하게 쿠네쿠네의 정체를 설명하는 부분이라던가 이세계에 관련된 설명은 이해하기 쉽게 요약을 해줘서 이점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습니다.


맺으며: 6,5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이지만 그에 걸맞은 퀄리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원작을 읽지 않아도 이해가 되도록 쉽게 요약을 해줘서 전혀 이질감이 없었군요. 캐릭터들의 갈등 같은 심리묘사도 제법 원작에 충실하게 표현되어 있고요.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원작에서 느꼈던 세기말적 공포는 거의 찾을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가준다면 계속해서 구매해볼 생각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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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10 - L Novel
시라코메 료 지음, 타카야Ki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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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주의, 중급 스포일러 주의 





-포기하지 마! 반드시 돌아올 것!-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단어를 고르라면 저것이다. 사실 필자는 9권에서 하차를 하였으나 외전인 '제로'에서 작가가 보여준 필력(이라 쓰고 중증 중2병)에 반하여 다시 본편을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유치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마치 고기쌈에 벌칙 재료만이 든 게 아닌 고기도 들어 있어서 먹을 수 있었다고 할까. 이번 에피소드는 그런 느낌이다. 아무튼 저 단어는 이 작품의 주인공 '나구모 하지메'의 부모가 아들에게 남긴 문자로, '하지메'는 이세계에 떨어지고 나서야 휴대폰에 부모가 남긴 이세계에 간다면 7가지 수칙을 보게 된다. 이 단어는 하지메가 나락으로 떨어져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계기가 된다.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 후 이 문자를 회상하며 일어서는 장면은 이번 에피소드의 백미라 하겠다.


길고 길었던 이세계 여행에 드디어 종착역이 가까워진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7대 미궁을 돌아 그 미궁의 고유 신대 마법을 손에 넣어 개념 마법을 구사해 시공에 구멍을 내는 마법을... 필자도 뭔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마지막 미궁인 [빙설 동굴]에 도전한 하지메 일행이 각각 분단되어 미궁이 내리는 시련을 돌파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다(완결이라는 소리 아니다). 아담과 이브의 동산에서 사과를 따먹은 뱀처럼,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7대 죄악이라고 해야 하나 비슷한 어둠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궁은 그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어둠을 끄집어 내어 받아들이던지 거부하던지 눈을 돌리던지 아니면 어둠에 잡아먹혀 인간을 그만두던지하는 시련을 내린다. 그러니까 자기와의 싸움이다.


여기서 유독 눈을 끄는 건 하지메의 연인 '유에'라 할 수 있다. 흡혈귀 종족의 왕족으로서 태어나 본분을 다하고 인간과의 전쟁에서 최일선에 서는 등 노블레스를 충실히 수행하던 과거의 그녀가 숙부의 배신으로 나락에 봉인되는 과정에서 숙부는 그녀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왜 봉인으로 그쳤는지에 대한 단서가 흘러나온다. 유에는 300년간 나락에 봉인되어 있으면서 배신당한 충격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왔으니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러나 미궁의 시련은 그녀가 과거에 있었던 본질을 끄집어 낸다. 숙부는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봉인에 그친 건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교회가 자주 부각된다. 이 부분은 외전인 '제로'를 읽어야 제대로 이해가 될 것이다. 대충 요약하면 막강한 교회의 힘과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마치 매트릭스의 가상공간에 잡힌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즉, 숙부는 유에를 교회로부터 지키기 위해 봉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러나 아직 진실엔 접근하지 못한다.


'시아'의 시련은, 읽지 않아도 예측이 되는 그런 것이다. 자식이 마력 조작이라는 선조 회귀로 태어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일족은 핍박받으면서도 그녀를 버리지 않았고 그녀는 그것이 안타까워 늘 마음속에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었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너만 아니었으면' 현실에서도 가끔 있을 일이다. 부모가 너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아이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버리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조금은 서글픈 이야기라고 할까. 누군가가 찾아오면 어린 그녀는 놀다가도 숨을 수밖에 없는, 모두가 그녀를 버리라고 하지만 일족은 그러지 않는 가족애는 심금을 울린다. 시련은 반드시 클리어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잘못과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절해도 시련은 실패만 할 뿐 미궁은 그녀를 어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지켜줬고, 죽은 엄마의 상냥한 말을 떠올린 그녀는 미래로 가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품의 최대의 관심사가 등장한다. 바로 용사 '코우키'가 되겠다. 현실에서 엄친아로 인생 최고가를 구가하던 그가 이세계로 굴러 들어와 현실의 엄친아 생활 그대로 생활하려다 쪽박 차고 망해가는 클라이맥스라 하겠다. 사실 하지메에게 있어서 용사는 고기 방패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조금 성장시켜서 노인트(신의 졸개)와 상대할 때 앞에 세운다던가 같은 음흉한 생각뿐. 그래서 이번 시련에도 데려와 돌파하라고 했는데... 당연히 잘 될 리가 없다. 정의만 있으면 모든 게 관철되고 내 생각이 곧 정의라 믿는 일방통행 용사가 과연 현실의 벽이라는 '네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면 경찰은 필요 없다'라는 현실이 들이밀어진다면 용사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게 두 번째 백미라 하겠다. 


이번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가 이것이다. "잘 봐, 현실이 찾아올 거야" 힘을 날로 먹었다고 착각해서는 강한 하지메를 질투하고, 하지메가 여자들을 다 차지해서 내 건 없다고 질투하고, 여자를 마치 물건 대하듯 니꺼 내꺼로 구분하고, 그러다 마침내 짝사랑하던 여자까지 하지메가 빼앗아 갔다는, 내 생각이 정의고 여자들은 날 좋아하는 게 당연한 용사에게 있어서 짝사랑하던 여자까지 주인공의 등에 업힌 모습을 보게 된다면, 처음으로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동안 누구 하나 현실의 벽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아 이 벽이 무엇인지 몰랐던 용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는 뻔하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메시지로 이만한 게 있나 싶다. 아무튼 누군가가 현실을 알려줄 필요도 있고, 이런 놈은 맞아야 정신 차리는 건 세상의 이치라는 듯 불쌍할 정도로 엄청 두들겨 맞는다.


근데 웃긴 게 사실 용사가 폭주한 주된 원인은 정의보다도 짝사랑하던 여자를 주인공에게 빼앗겼다는데 있다(용사가 빼앗겼다고 멋대로 착각 중).. 하지메가 나락으로 떨어진 원인인 '카오리'는 물론이고 소꿉친구인 '시즈쿠'까지 하지메에게 가버리게 되는데, 시즈쿠의 경우 용사가 폭주한 원인(하지메에게 업혀 있었던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걸 눈앞에서 보고도 바로 하지메에게 가버린다는 것. 나중에 하지메에게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그에게 아직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데도 대놓고 하지메를 좋아한다고 해버리니 이 작품의 히로인들은 참 못됐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하기야 꼴통 용사를 누가 좋아하겠냐마는. 애초에 소꿉친구고 용사가 어릴 때부터 꼴통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하지 않아 용사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원인은 그녀와 친구들에게 있다. 결국 용사가 꼴통이 된 건 그녀와 친구들임에도 그런 반성은 없다는 게 서글플 따름이다.


맺으며: 주인공 하지메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이야기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개념 마법을 구축하면서 흘러나온 과거의 영상은 다시 한번 1권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게 한다. 나락에 떨어져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부모가 휴대폰에 남겨준 -포기하지 마! 반드시 돌아올 것!-을 떠올리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과 마지막에 이세계에서의 하지메와 현실에서의 하지메를 겹치듯 그려놓은 일러스트는 정말 가슴을 짠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시아가 엄마를 그리며 상냥한 괴물이 되겠다는 구절 또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는데 한 발짝만 남겨둔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를 도와준 주변 인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에서는 이렇게 진지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면 이후 계속 구매할 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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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 1 - V+
파르나르 지음, 아야미 그림 / 길찾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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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본 작품은 국산 라노벨이다. 딱히 국산이라고 해서 재미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 건 아니다. 읽다 보니 주인공 이름으로 '강한수'가 나오길래 정보를 찾아보니 국산이더라. 이 말은 그만큼 일본 작품들과 견주어 이질감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간에 본 작품의 주된 내용은 마왕이 상주하는 판타지에 소환되어 마왕을 무찔러 달라는 신탁을 받고 동료들과 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 '강한수'의 지구 귀환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인공이 으레 마왕을 무찌르고 공주와 맺어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마왕은 서브이고 본 내용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눈물 나는 여정이라 하겠다.


여기서 현실적인 게 일본 작품에서는 거의 표현되지 않는 위생 관련이라는 거다. 특히 화장실 문화에서 수세식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이 푸세식조차 변변치 않은 이세계로 소환되어 개고생 하는, 이와 관련된 웃픈 내용이 있는데 " 잘난 황제도, 예쁜 공주도, 대마법사와 소드 마스터도, 요강이나 수풀 위에 쭈그려 앉아서 힘주는 인생인 건 똑같거늘"​​라는 게 있다. 오죽하면 장래의 꿈이 이세계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개발하는 거라고 할 정도이니 현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주인공 성격이 매우 현실적이다 보니 당연히 이세계 소환 당한 걸 기꺼워 할리가 없다. 그의 주장은 이와 같다. "내가 왜 무료 봉사를 해야 하는가"


​당장 자신을 소환한 무녀(여기선 고고학자)는 죽도록 밉고, 자신을 수련 시켜준답시고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는 후에 검왕이 되는 기사단장은 철천지 원수가 된다. 그리고 재료를 들여서 우리가 소환했으니 너(강한수)는 우리의 소유물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국왕은 지금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존재가 된다. 기타 동료들은 여행 내내 부려먹기만 하고 마치 인종차별하듯 왕따를 해대는 데다 그렇지 않아도 끌려와 의무를 다하라고 하니 열불 나 죽겠는데 당연히 위에 열거한 인간들을 좋게 볼 리가 없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마왕을 무찌르러 간다. 그리고 거기서 사달이 일어난다. 


이 작품은 '회귀'물이다. 리뷰 초장에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눈물 나는 여정이라고 쓴 바 있다. 마왕을 무찔렀으면 냉큼 돌려보내 주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근데 쉽게 지구로 돌아갔다면 여정이라고 언급하지는 않겠지. 이세계에는 무려 채점이 존재한다. 마왕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얼마나 용사 다운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F등급부터 SSS등급까지 매겨진다. 여기서 눈치채셨겠지만, 본 작품 제목이 괜히 FFF급이 아니다. 주인공 '강한수'가 1회차에서 마왕을 무찌르기 전에 저질렀던 어떤 짓은 그의 인성을 F등급으로 만들고 만다. 고로 이세계 시스템은 회귀를 선택하고 주인공을 2회차로 넘겨 버린다. 참고로 F등급은 낙제다.


주제는 '반성', 1회차에서 내가 뭔 짓을 했는지 곰곰이 살펴보고 반성해서 다시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교훈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근데 이렇게 반성하며 1회차 때 잘못을 바로잡는 등, 주인공이 올바르게 살아간다면 이 작품은 나오지도 않았겠지. 이미 '내가 왜 무료 봉사를 해야 하는가'라는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는 이상 잘 될 리가 없다. 게다가 이세계인들을 수세식 화장실도 없는 야만인 취급하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세계 주민의 목숨과 생명과 삶은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러해서 대륙이 초토화되든, 경험치를 얻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도륙하는, 마왕을 무찌르고 이세계를 구해달라고 소환했더니 되레 이세계를 멸망 시킬 기세로 용사의 탈을 쓴 마왕이 재림하게 된다. 


이세계 시스템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선동과 날조로 '평판과 인성' 작업(어쨌거나 F등급을 넘어야 지구로 귀한)을 해대는 꼼수 하며 자기가 위기로 몰아넣고 구해주는 마치 놀부가 제비 다리 부러트리고 나중에 박 씨 물고 온나 같은 일을 해대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100날이 가도 이세계 졸업은 힘들겠구나 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 동료가 될 거 같은 히로인들은 독자들의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인공의 그날 기분에 따라 목이 부러져 주인공의 경험치가 되는 엑스트라만도 못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한 명 빼고). 일본 작품에서는 금기시나 다름없는, 혹은 악당들만 하는 짓을 저지른다고 할까.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경험치로 보고 있는 게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당연히 인성은 갈수록 개차반이 되어 가는지라 졸업은 요원하기만 하고 3회차로 넘어가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주인공이 왜 삐뚤어졌는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주인공은 현실주의자다. 그래서 이세계에 소환된 것 자체를 싫어하며,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게 그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고, 소환했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실상은 노예에서 약간 윗등급 취급을 당한다. 동료란 놈들은 왕따나 시키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륙을 돌아다니며 개고생 했으니 나라도 삐뚤어질 것이다. 그래서 2회차 때는 이런 면상들이 좋게 보일 리 없고 내가 왜 고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울분만 있으니 성격이 삐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무튼 간에 개그도 적당히 섞여 있고, 뭣보다 한글의 우수함이랄지 표현에서 거침이 없는 게 굉장히 흥미롭다. 시놉시스에서 언급된 클리셰를 뒤튼다 답게 용사물의 정도를 걷지 않는 것도 흥미롭고. 다만 회귀물에서 조심해야 될게 앞에서의 잘못을 바로 잡아가면서 똑같은 진행을 보여줄 때 식상함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1권에서는 이와 관련된 식상함은 찾을 수 없긴 하다. 근데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벌이는 악당 짓은 좀 인위적인 느낌도 없잖아 있다. 마치 내 경험치나 되라는 듯, 잘 닦여진 길 위를 걷기만 하고 고생은 전혀 없는, 회귀하면서 기억이 리셋되지 않다 보니 그에 따른 회귀전의 경험을 기반으로 어디에 가면 뭐가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하는 통에 후반으로 갈수록 흥미는 조금식 하락하는 그런 면이 좀 없잖아 있다.


맺으며: 그래도 일본 라노벨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자부한다. 필자가 국산 라노벨을 거의 접하지 않아 평은 못하겠는데 이 정도면 일본에서도 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사실 이런 언급 자체가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거나 일본 작품에서는 거의 못 봤던 '불효 자식'이라느니  한 명의 용사가 용사 다운 모습을 보이자 그럼 '니가 선두에 서'라는 둥 유쾌한 표현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좀 보수적인 사람에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히로인(엑스트라 등등) 브레이커와 경험치를 위해 몰살 등도 있다. 마지막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8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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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따위가 마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며 용사 파티에서 추방되었으니 왕도에서 멋대로 살고 싶다 3 - S Novel+
kiki 지음, 킨타 그림, 조민경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리뷰는 뭔가 멋있게 써보려다 망한 케이스다. 그냥저냥 설명에 가까우니 굳이 읽어 보시라고 권하진 않는다.

단, 이 작품은 제목과 다르게 상당히 시리어스해서 시리어스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필자가 추천하는 작품이다.



스포일러 주의 




이번 3권을 읽는 분들은 다 읽고 표지를 다시 보면 뭔가 보이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바닥의 꽃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이고 꽃잎이 흩날리는 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 먹구름이 흩어지는 건 올라가는 영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 남자는 각오를 다지고, 여자는 미련이 없어 보인다. 이번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다. 이들은 주인공도 여주인공도 아닌 서브 캐릭터로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플럼의 동료와 동료의 옛 부인이다. 이번 3권 에피소드의 주제는 이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살아 돌아온다면". 정말로 사랑했고, 무기력하게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지난 과거. 지키지 못했다는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온 남자가 살아 돌아온 와이프의 해맑은 웃음을 보았을 때, 이번 이야기는 거짓된 삶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절함과 거짓을 끝낼 수밖에 없는 아픔이 공존하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불량품이라고 버려졌던 '잉크'를 거둬들여 심장을 이식함으로써 잉크는 더 이상 인간병기로서 불안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다. 이로써 '에타나'와 더블어 '잉크'까지 눌러 앉는 통에 집은 제법 북적이기 시작한다. 플럼의 한때는 노예로 전락해 어떻게 되나 싶었던 삶은 의외로 잘 풀려가고 있다. '밀키트'와의 관계는 날로 발전해서 이젠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가 되었고. 그러나 교회의 마수는 플럼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또다시 그녀를 사지로 내몰게 된다. 마족 타도라는 명분으로 인체실험을 공공연하게 했던 교회의 산하기관 중 하나인 '네크로맨시'가 접촉해오면서 플럼은 본격적으로 교회와의 싸움에 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플럼이 가진 '반전'이라는 스킬은 교회의 인간병기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비책이다. 그러니 교회로서는 플럼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고, 플럼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 시키려는 교회를 용납 못하게 된다. 참고로 교회의 희생자 중 하나가 '잉크'라는 소녀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 가족이나 사랑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면 이것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플럼의 옛 동료 '가디오'(표지의 남자)는 6년 전 부인(표지의 여자)과 잃었다. 부인이 눈앞에서 몸이 꿰뚫려 죽는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까지도 후회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 남자에게 부인이 해맑은 얼굴로 나타난다면, 죽기 전의 완전한 그대로 나타난다면, 온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지금 눈앞의 여자가 살아돌아온 부인이라는 걸 의심할 건덕지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교회는 이런 악행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교회의 산하기관 '내크로맨시'는 죽은 자에 대한 모독을 추억과 재회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산 사람을 농락하기에 이른다. '네크로맨시'가 주창하는 살아 돌아온 사람과의 재회와 행복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가디오'는 이성은 이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몸이 이성을 짓눌러 버린다.


하지만 덧없는 행복과 죽은 자들의 도시는 언젠가 파탄이 나게 마련이다. 신(神)의 변덕으로 온전히 소생한 것이 아닌 실험으로 소생한 몸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기 마련이고, 영혼이 없는 몸은 거짓된 삶이라는 듯 조금식 파탄을 향해 달려간다. 플럼을 손에 넣기 위해 주변인들부터 공략에 나섰던 교회는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는 명명백백 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줘버리는 게 이번 하이라이트다. 아무리 똑같이 만들었다고 해도 '사소한 차이'는 쌓이고 쌓이다 보면 산이 된다. 비로소 남자는 알게 된다. 눈앞의 여자는 내 부인이 아니라는걸, 그렇다면 더 이상 모독이 되지 않게 보내주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대목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여자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거짓된 삶은 끝내야 한다는 걸 남자도 여자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옛날의 행복을 조금만 더 느껴보고 싶었을 뿐. 작가나 편집부에서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표지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먹먹하게 만든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이야기


이 작품은 왕도에서 그냥저냥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우려가 있어서 대놓고 언급하지는 못하겠지만, 한마디로 표현 하라면 세기말적 시리어스라 하겠다. 대표적으로 플럼이 밀키트를 납치한 이전 주인을 살해하는 장면은 여과가 되었을 텐데도 끔찍함을 선사한다. 이번 '네크로맨시' 본거지에 쳐들어 갔을 때 실험실의 관계자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표현한 대목은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백합


대놓고 백합이라 광고한다. 이번 3권에서만 플럼과 밀키트를 제외하더라도 세 커플이 나왔다. 이것들 사망 플래그 뿌리나 싶을 정도로 농익은 모습들을 보인다. 그에 따라 이성 커플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이번 3권에서만 두 커플이 산화해 갔다. 플럼과 밀키트는 이번 네크로맨시 사건을 해결하고 더욱 농익게 되어 둘의 분위기가 장난 아니다. 그래서 그럴까 둘의 의존증은 더욱 심해져만 간다. 조금만 더 진행되면 한쪽이 안 보일 때 울면서 찾아대는 파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할까.


플럼과 교회의 관계


1권부터 플럼이 교회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복선은 나왔지만, 이번엔 더욱 노골적으로 마치 어마금의 '라스트 오더'와 비슷한 느낌을 마구 풍겨된다. 결국 교회가 만드는 인간병기를 조종할 수 있는 혹은 그 중추에 플럼이 위치하지 않을까 하는 복선을 투하하기에 이른다. 교회가 플럼을 집착하는 이유랄지. 그녀가 가진 반전은 교회의 수장 격인 '오리진'을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서 경계하는 그런 상투적인 게 아닌 보다 근본적으로 플럼은 교회와 깊숙한 관계가 아닐까 하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이야기


용사 패거리를 왜 마왕성에 보내는지 드러난다. 교회는 거기서 뭔가를 탈환할 목적이고 용사 패거리는 이용당하고 있다는 게 밝혀지지만 그렇다고 용사는 아무것도 모른다. 알아도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마족 타도를 제1로 내세웠던 교회는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마치 네르프의 신인류 프로젝트처럼 뭔가를 하려나 본데 사실 플럼의 활약에 묻혀 분명 시리어스의 주인공이건만 크게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다음에 잉크처럼 또 한 명의 인간병기가 플럼에게 합류하지 싶은데, 이번에 온갖 사망 플래그를 뿌려놓은 통에 힘들어 보인다.


맺으며: 원서가 그런지 몰라도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 여자이면서 "~xxx군요." 대사 끝맺음이 남자가 말하는 것처럼 끝나다 보니 마치 딴 이야기하는 듯한 이질감이 상당하다. 선입견일 수 있으나 "~xxx네요."라고 했으면 다소 부드러워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너무 질질 끈다. 이번 3권은 450페이지나 되는데 그중 한 50페이지는 줄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다 보니 긴장감이 끊겨서 몰입도에 약간 지장을 준다. 다만 싸울 때나 현장 상황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공포를 조성하는 능력은 수준급이다. 등장인물들 간 감정 표현도 풍부한데, 가령 플럼이 밀키트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대목은 그야말로 그 나이대의 풋풋한 느낌을 들게 하여 흐뭇하게 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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