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했더니 검이었습니다 9 - S Novel+
타나카 유 지음, Llo 그림, 신동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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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말에 가까운 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멍청한 조상 덕분에 후손이 고생하는 전형적인 예다. 좀 사이좋게 지내면 어디가 덧나는지 인간은 인간대로, 수인족은 수인족대로 서로가 우월하다고 지껄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싸움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눈과 귀를 막고 주변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으니 꼰대 소리나 듣는 것이다. 그래도 서로 으르렁거리는 게 안타까워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9권에서는 인간과 수인족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가교 역할을 하려 했던 어떤 흑묘족 왕녀의 기구한 삶이 드러난다. 근데 사실 사서 고생이다. 어차피 눈과 귀를 다 막은 꼰대들에게는 뭘 말해도 통하지 않는다. 말을 해서 바뀐다면 세상살이가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왕녀가 간과한 건 어른들을 너무 물로 봤다는 것이고, 장밋빛 그림을 그린 머릿속 꽃밭이 문제였던 거다. 그래서 그런가 작가는 포인트를 엄한 곳으로 돌린다.


프란은 자신의 진화에 계기를 준 '키아라'를 찾아 수인국으로 넘어온다. 키아라는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화를 프란이 이뤘다는 것에서 흑묘족의 미래를 보게 된다. 장장 500년이나 청묘족에 의해 탄압을 받아왔던 흑묘족에게 있어서 프란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사실 신(神)은 흑묘족을 벌하면서 진화의 조건을 내놓았긴 한데 세월이 흐르면서 소실이 되어버렸다. 그 조건이라는 게 매우 단순함에도, 이세계의 신(神)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다.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지만. 키아라는 이번 이야기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이다. 프란에게 있어서 키아라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부모가 객사하고, 노예로 붙잡혀 마물의 먹이로 전락할뻔했던 프란이 스승을 만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별을 하면서 조금식 마음의 성장을 이뤘다곤 해도 아직은 12살 어린 애다.


하지만 응석 부릴 시간은 없다. 500년 전 망령이 자신의 어리숙함을 망각한 채 모든 수인족들을 말살하겠다고 마물을 이끌고 대규모 침공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야기는 청묘족을 피해 간신히 터를 잡아 숨어살던 흑묘족 마을이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 흑묘족 마을을 지키기 위해 프란이 나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난다. 프란이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지만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프란으로서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친구라고 불러주는 '메아'라는 소녀가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흑묘족 마을을 위협하는 마물 무리에 맞서 친구와 싸워가는 프란, 여느 이세계물이면 우정 파워로 쉽사리 정리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을 험하게 굴리기로 이 작품만큼 심한 게 있을까 싶다.


아무튼 마물떼를 물리치면서 500년 전 흑묘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이 드러난다. 어쭙잖은 생각으로 인간과 수인족간 가교를 놓으려 했던 흑묘족 왕녀가 죽은 지 500년 만에 부활해서 자기 후손들을 말살하겠다고 한다. 어차피 인간과 수인족이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건만, 자신의 생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뿔이 제대로 난 왕녀가 되시겠다. 그러다 인간 남자와 눈이 맞아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순애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왕녀가 남자 보는 눈도 없다. 결국 차였고, 집안에서는 인간 남자를 끌어들였다고 극딜을 놓는다. 이처럼 불쌍한 왕녀도 없을 것이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그래서 손댄 게 사신(死神)이다. 신(神)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사신이라고 없을 리 없다. 사신의 힘을 손에 넣어 뭐 좀 어떻게 해보려고 하니까 이번엔 아빠가 그녀를 사신에게 받쳐 버린다.


보다 힘을!! 외치던 흑묘족들이 사신의 힘에 손대자 분노한 착한 신(神)에 의해 신벌이 내려졌고 그렇게 흑묘족은 몰락했습니다.


방아쇠는 왕녀가 당긴 것이지만 이유 있는 방아쇠라 할 수 있다. 사실 꽉 막힌 흑묘족 일족들에게 화가 났긴 할 것이다. 남친은 도망가 버렸지, 거기다 다른 여자랑 애까지 낳았으니 꼭지가 안 돈다면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왕녀는 힘을 얻기 위해 사신에게 힘 좀 받았는데 그게 또 탐난다고 아빠가 딸내미를 사신에게 받쳐버렸다. 결과는 착한 신의 분노였고, 흑묘족은 탄압받게 된다. 즉, 선조(왕녀 및 왕족들)의 잘못을 후손이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뭐 청묘족의 음해가 끼여 있다곤 해도 신벌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걸 납득하느냐는 별개다. 그래서 500년 후 누군가에 의해 소환된 왕녀는 잘 되었다는 듯이 사신의 힘으로 중무장하고 수인국을 유린하려 든다. 알고 보면 자신이 미숙해서 욕먹어 놓고, 자신을 욕했다고 죽이겠단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작가는 포인트를 엄한 곳으로 돌린다.


신파극을 원했나. 악당으로 가고자 했다면 철저히 악당으로 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것이 기승전결이라는 것이고 깔끔한 진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왜, 피도 이어지지 않은 어린애를 출연 시켜서 왕녀가 이러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면죄부를 주는지 모르겠다. 프란의 고생과 나아가 흑묘족이 전원 노예로 추락할 정도로 많은 탄압과 괄시를 받게 한 원흉이 왕녀다. 꽉 막힌 흑묘족 위정자들도 한몫했다고는 해도 방아쇠를 당긴 건 왕녀다. 500년 후 이 땅에 다시 재림한 왕녀는 프란이 흑묘족 마을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장소에 나타나 압도적인 힘으로 프란 일행을 유린하게 된다. 일러스트는 쓸데없이 고퀄이다. 흑묘족을 향한 왕녀의 증오는 매우 크다. 그렇게 비춰진다. 늘 그랬듯, 프란은 이번에도 궁지에 몰려간다. 여느 이세계물처럼 주인공빨은 없다. 이 작품은 주인공을 험하게 굴리기로 유명하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을 꼽으라면 '키아라'라는 존재다. 평생을 종족의 비원인 진화의 단서를 찾아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수인국에 붙잡혀 노예로 전락하고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그녀는 프란을 처음 만날 때부터 친손녀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못했던 일을 프란이 해주었다. 그래서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늘 내일 하던 노인이 벌떡 일어나 자신도 진화를 외치며 마지막 불꽃을 피우듯, 만약 키아라가 노예로 잡히지 않고 수인국에 붙잡혀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살아오면서 프란의 성인 버전으로서 활약을 했을 것이다. 프란의 평행세계에 있는 인물이라고 하면 그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왕녀와의 싸움은 녹록지가 않다. 증오로만 살아갔고, 죽어서도 증오에 얽매어 있는 왕녀다. 그런 왕녀를 맞이해 프란을 살릴 수 있는 일은 무얼까. 키아라는 뒤늦게 핀 꽃이다. 작가가 분위기를 다 말아 먹어서 그렇지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키아라의 모습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프란은 또 한번 정신적 성장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넓은 의미로 보면 프란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해야 되나 싶은 게 필자의 본심이다. 뭔 말이냐면, 기승전결을 8권부터 내다 버리는 만행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해치울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도 무슨 드래곤 볼의 셀도 아니고 적(에너미)은 걸핏하면 잘린 신체가 회복되고 그러다 보니 싸움이 지리멸렬해진다. 왕녀를 잘 구슬리면 우리 편으로 넘어올 것도 같은데 그렇게 분위기 잡아놓고 왜 또 싸움질인데 싶은 어이없는 부분도 있다. 사실 왕녀가 흑묘족은 물론이고 수인국을 멸망 시키겠다고는 했지만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왕녀가 개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작가도 그렇게 표현을 했고.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입 싸악 닦고 '너 죽을래?'라며 처음으로 돌아가 또 싸움질하는 건 뭔데 싶다.


맺으며: 용두사미가 따로 없다. 왕녀라는 최악의 적을 맞이해서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정작 그 왕녀의 최후는 작가가 독자들과 어지간히도 싸우고 싶은가 보다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 또한 위의 신파극을 언급한 부분으로 돌아가서 왕녀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한다는 거다. 이건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든데(10권 리뷰에서 언급 가능할 듯) 철저히 악당으로 설정 해놓았다면 그렇게 흘러가던가. 왕녀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도 감정 이입도 되지 않는다. 작가는 정말로 이게 먹힐 거라 생각한 것일까. 분명 기승전결을 낼 수 있었음에도 질질 끌다가 엄한 사람을 사망케해서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싸구려 각본은 최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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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7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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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모험가 길드에 토모에와 미오를 등록시키면서 드러난 그녀들의 레벨은 이세계 주민 '휴만'들의 인지를 까마득히 초월하는 것이다. 이는 이세계 주민들로서는 대단히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이렇게 등장할 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키는데 소문이 안 날 리가 없다. 여기에 주인공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돈을 쓸어 담으니 더욱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게 되었고. 여담이지만 현실 지구에서 성인도 장사하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고작 10대가 이세계에서 장사로 성공하다니 역시나 픽션답다 싶은 부분이긴 하다. 아무튼 주인공이 판매하는 포션류는 가격도 저렴하면서 성능은 발군, 너도나도 몰리다 보니 오전 중에 품절되는 건 예사다. 이렇게 놓고 보면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상인으로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처음엔 그저 저주받아 구울이 되어버린 대상인의 딸들을 구해주고자 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구해주고 보니 뭔가 뿌듯함이 생기잖은가?


실패를 모르고 성공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스텟치만 열거해서 주인공의 능력을 수치화하는 데만 급급한 여타 이세계 먼치킨 작품들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렇담 이 작품은 어떠한가.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법적인 능​만은 여느 이세계물 못지않다. 무능력이면서 마력 하나에만 의지해 현실 지구인 특유의 발상으로 대단한 능력자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상인으로서도 성공이라고? 사실 이세계 여신은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라고 모든 걸 가진다는 건 불공평하다는 듯이 그에게 물리적인 능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아인과 마물 하고만 살아가라는 저주의 말까지 퍼부어 주었다. 그럼으로 상인으로서 성공은 있을 수 없다는 건 아주 당연하게 된다. 게임에서 초보가 운이 좋아 득템을 한 것에 기고만장하여 난 운이 좋아라고 거들먹 거렸다간 순식간에 파멸하는 거와 같다. 주인공은 장사가 잘 나갈 때 알아서 눈치껏 물건을 팔아치워야 했다. 왜냐면, 동종업자들은 주인공이 잘 나갈수록 배가 아파질 테니까.


초짜 신입이 선배들에게 인사도 없고,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협회에 얼굴 도장 찍지도 않은 채, 떼돈을 벌고 있다. 그것도 자기들이 판매하는 것보다 매우 저렴하게 말이다. 현실적으로 대입해보자면 '덤핑'이라는 거다. 무역 불균형이 일어나고, 그러면 나라는 반덤핑 관세를 매긴다. 주인공은 이런 상도를 무시한데다 신입이 선배에게 인사도 안 하는 무례한 놈으로 찍혀 버린다. 당연히 견제가 들어오고 온갖 음해성 공작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한마디로 주변 상인들은 배가 아프다는 건데 솔직히 주인공 입장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경쟁체재의 시장원리라는 개념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긴 이세계고, 주인공의 생각은 이세계를 물로 보고 있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협회장에 불려가 생각도 없이 내뱉은 말은 주인공 스스로가 발목에 올가미를 채워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정적으로 초짜 신입이 선배에 대놓고 '얼마면 되?'라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좋게 비칠 리가 더욱 없다. 경쟁자들에 의해 지금 당장 제거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 건만, 주인공은 꽤나 억울해하는 것에서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일면을 보이기도 한다. 즉, 신입이 콧대만 높아서 기고만장한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협회장에게서 아주 매서운 매도가 쏟아진다. 주인공으로서는 자존심은 물론이고 자존감이 무너질 정도다. 


물론 주인공은 경쟁 상인들의 베타적인 관습과 협회의 관료주의에 휘말린 희생자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은 늑대와 향신료라는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 있으니 기회가 되면 여러분도 읽어 보시기 바란다. 신입이 그저 잘 나간다는 이유로 밟아주겠다는 건 학교에서 눈에 띄는 아이를 이지메하는 거와 같다. 참으로 치졸하고 옹졸한 게 이세계 상인 시스템이다. 주인공은 이렇게 궁지에 몰린다. 벌이의 대부분은 죽을 때까지 배상금으로 토해내라는 협회의 선고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상인을 그만두라는 거와 같다. 이는 사실 주인공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선배들에게 인사는 차지하더라도 물건값의 선정과 동종업자들의 매출 감소 등 헤아려야 될 부분을 간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해성으로 마족과 연관된 게 아니냐는 모함까지 듣게 되니 주인공으로서는 버틸 수가 없다. 보통은 우수한 부하들을 이용해 쓸어버리는 힘의 논리를 보여줄 만도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부분에서는 꽤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렇듯 주인공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주인공도 이세계 사람들을 깔보기도 하고, 방심도 한다. 보기 좋게 역전해서 모함하는 사람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는 일도 없다. 무능력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어느 정도 이어간다고 할까. 그저 운이 좋아 토모에와 미오등 아인들을 손에 넣었고, 이렇게 큰 힘을 얻게 되자 발밑을 못 보게 되어 엎어지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제 당장 있는 재산을 다 빼앗기고 이세계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건 접아야 될 판이다. 그동안 잘 나간다고 우쭐한 것도 있었고, 이제 그 벌을 받는다고 해도 되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을 주인공이 알았다면. 여신이 저주로 퍼부었던 아인과 마물을 상대로 장사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주인공을 버리지 않는듯하다. 학원에서 무투제가 열리고 거기에 출전한 제자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각 나라에서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스승은 누구인가? 경우에 따라 접어야 했던 장사를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누가 보면 장사에 수완이 좋아 떼돈을 버는 것처럼 비치다 보니 주인공으로써는 자존감이 엄청 올라갔었다. 제자들도 훌륭이 키워냈다. 이게 다 자기 능력으로 일궈 냈다고 자화자찬해도 될 테지. 그런데 사상누각처럼 이번에 한순간에 박살 나버리는 부분은 여타 이세계물에서 느끼지 못하는 짜릿함이 있다. 주인공은 만능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된다. 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던지. 이제 남은 건 이렇게 박살 난 자존감을 어떻게 다시 일으키냐다. 그나마 제자들이 선방해줘서 위안은 받지만 어차피 학원 도시에서 장사 못하게 되면 제자들과도 이별이다. 그 제자들도 사실은 주인공 업보 때문에 무투제에서 불합리한 처사를 받고 있다. 상대는 진검인데 제자는 목검으로 싸워야 되는 불합리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부주의한 행동에 기인하게 된다. 요점은 생각 없이 나댄 주인공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 피해라는 게 가해자들의 불합리한 요구 때문이지만.


이제 세계가 움직인다. 경우야 어쨌든 상인으로써 떼돈을 벌었고, 무투제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주는 제자들 덕분에 여러 나라들이 주인공을 눈독 들인다. 거기엔 주인공 자체를 구속하려는 나라도 있고, 이용하려는 왕녀도 나타나는 등 주인공을 둘러싼 물밑 경쟁이 치열해진다. 문제는 떡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 국물을 마신다고. 주인공의 의향은 안중에도 없이 모두가 설레발을 친다는 거다. 주인공의 진짜 능력은 알지도 못한 채, 주인공이 드래곤 슬레이어 소피아와 전투에서 왕도 근처에 엄청난 크기의 호수를 만들어버렸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것에서 오는 무지는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요컨대 주인공의 힘을 이용하려고 하다가 그가 휘두르는 힘에 모두가 망할 수도 있는데도 인지를 못한다는 거다. 사실은 협회의 관료주의나 선배 상인들의 농간은 주인공이 대리고 있는 많은 종자들을 풀어 버리면 해결된다. 이세계는 암살도 횡행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는 리얼리티가 있다.


맺으며: 주인공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싸움에서 기교를 모르는 무지한 멍청이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여타 이세계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정형화된 틀을 깨고 새로운 전술을 도입함으로써 실력이 상승하는, 그런 전술을 보여줌으로써 위정자들의 눈에 띄게 되고 노림 받게 되는 클리셰를 보여주긴 한다. 그 예로 제자들은 이세계 멍청이들을 발라버리기도 하니까. 다만 이 작품은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닌, 실패에서 얻는 교훈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는 거다. 상인으로서의 실패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와 같은 고뇌를 가지게 한다. 물리적으로 힘이 있다고 만사는 아니라는 메시지도 있다고 할까. 아무튼 그렇게 눈에 띄게 되면서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마족까지 주인공을 관심하에 두게 되면서 앞으로 매우 흥미진진해지지 않을까 한다. 개중엔 주인공을 얕보는 무리도 있어서 주인공의 진실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흥미의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또 다른 흥미 포인트는 여러 등장인물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종자들은 물론이고 주인공 대신 소환된 용사들의 시각 등을 비추며 저마다 가진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것인데, 그중에 매료를 쓰는 토모키라는 용사와 그를 이용하는 왕녀의 행보가 심상찮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칼부터 나가고 그걸 합리화하는 용사와 그를 이용해 어머니의 복수를 다짐하는 왕녀의 시커먼 속내는 주인공의 행보와 더불어 이 작품의 최대 포인트가 되겠다. 권력의 망자가 되어버린 귀족들의 방해라든지, 여자에게 말 걸었다가 주인공에게 깨진 것에 원한을 품고 주인공에게 대드는 귀족 차남 등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사실 더 큰 포인트는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그 결과가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치한 당하는 걸로 보이는 여자를 구해줬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에서 오는 반동이라던지. 이번 상인 건도 사실 주인공의 행동에 따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깨달아가고 고쳐 가려는 주인공이긴 한데 문제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어쨌건 이런 흥미 포인트 때문에 필자는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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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인간 같아, 루시 - S Novel+
제로마니 지음, 유키사메 그림, 고나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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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들어주는 알라딘의 마법 램프가 있다. 치면, 무엇부터 소원을 빌까. 젊음을 되찾고, 부자가 되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사람마다 소원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어느 날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가 툭 떨어진다. 선량한 사람이라면 정의로운데 쓸 것이고, 불량한 사람이라면 사리사욕이나 범죄에 쓸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부모님의 목숨을 구하는데 소원을 빈다.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쫓기던 부모님은 아들을 숨겨놓고 미끼 역할을 하였으나 아무래도 부모님은 능력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주인공은 눈앞에 나타난 '엑센트리 박스'에게 소원을 빌어 부모님을 쫓던 사람들을 물리친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원하는 게 있으면 대가가 따른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부모님을 구한 대가는 인간으로서 구성해야 될 무언가 중 하나였다.


마치 강철의 연금술사처럼 등가교환을 연상시킨다. 소원을 빌 때마다 인간이 가진 구성요소, 가령 희로애락이라던지 슬픔 등 감정과 사고 패턴, 습관을 하나식 빼앗긴다. 이렇게 하나식 빼앗기다 보면 나중엔 껍질만 남은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으로 직결된다. 그렇다면 이런 중요한 구성요소를 빼앗겨가면서 주인공은 무슨 소원을 빌까. 사람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악에 맞서 싸우는 등 정의를 위해 소원을 빌까? 주인공 하기 나름으로 미국 영화 어벤저스처럼 그런 활약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장면들은 보여주지 않는다. 히어로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닌, 내 주위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도 히어로는 될 수 있다. 가령 치한에 쫓기는 여자를 구해준다던지, 담뱃불이 떨어져 발등에 화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해준다던지...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는데, 사람의 정의(正義)란 누군가의 잣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의(定義) 되지도 않는다. 자신의 구성 요소를 잃어가면서 타인을 도와주는 것에 동정은 보낼 수 있어도 비난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최소한 나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 작품은 그런 거창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 소원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이유를 그냥 구구절절 풀어놓을 뿐이다. 소원을 빈다는 건 등가교환이다. 내가 나로서 있기 필요한 구성요소가 빠지는 동시에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서 내 기억이 지워진다. 주인공은 부모님을 구해준 대가로 부모님의 기억에서 나의 기억은 사라졌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자기 집에 있는 게 못마땅하여 죽도록 팬다. 그리고 아들을 남겨둔 채 이사 가버린다.


​그러니까 하나의 소원에 두 가지를 잃게 된다. 주인공은 부모님을 구하면서 기억 말고도 '타산'을 빼앗겼다. 남을 구하는데 있어서 타산이 빠지게 되고 그렇다 보니 도와주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은 없다. 그럴수록 주인공이 가진 구성요소는 하나식 없어진다. 주인공은 그렇게 사람을 도와주고 구하면서 미각을 잃고, 공복감을 잃고, 사고 패턴을 잃어간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것, 그렇다면 주인공의 구성요소를 누가 빼앗아 가는 것일 것이다.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엑센트리 박스'에서 튀어나온 12살짜리 소녀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스크램블'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스크램블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에 보유자의 인간이 가진 구성요소 중 하나를 가져간다. 이렇게 주인공이 구성요소를 잃어갈수록 스크램블은 인간에 가까워진다.


주인공은 뭣 때문에 구성요소를 잃어가면서까지 타인을 도우는 것일까. 작품은 소원보다 주인공의 행동에 많은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은 살아가는 의미이자 이유를 사람을 도우는 데서 찾는다. 맹목적이고 집착에 가깝다. 그 끝에 기다리는 건 빈 껍질이라는 종말임에도 개의치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한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까.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거창한 건 들어있지 않다. 그저 읽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무언가만 있을 뿐이다. 소원을 빌지 않으면 구성요소가 빠질 일은 없다. 소원이 없어도 사람은 충분히 도울 수 있는 레벨의 일만 일어난다. 그렇잖은가. 발등에 떨어진 담뱃불을 치료하는데 화상 치료제만 있으면 될 테니까 말이다. 치한에 쫓기는 여자가 있다면 경찰을 부르던가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소원을 남발해 자가 지신을 죽여가는 주인공에게 도통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이미 부모님을 구할 때 타산을 빼앗기고, 그렇게 망가지기 시작하여 결국 부팅 프로그램이 소실된 컴퓨터처럼 바탕화면엔 들어오지 못하는 무한 부팅만 해대는 주인공만 남았다 뭐 그런 이야기 같다. 모순덩어리다. 소원을 빌 때마다 구성요소가 빼앗겨 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원이 없으면 해결 못한 사건들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죽여가며 남을 도우고, 그렇게 망가져 가면서도 뭔가 바뀌려 하지 않는 주인공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모순을 발견했지만 이번엔 모순을 없애기 위해 죽어 버리겠다고 나선다. 자신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기억을 지우려 하고, 그것으로 인해 타인이 받을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미 그런 감정은 잃은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맺으며: 이 작품처럼 짜증을 불러온 작품도 없겠다. 글을 풀어 놓는 것에 독자들의 독해력은 안중에도 없다. 마치 덜 익은 현미밥을 먹는 듯 밥알이 따로 논다. 뭔가 온갖 미사여구는 다 갖다 붙여 놨는데 뭔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필자가 600권이 넘어가는 라노벨을 읽어오면서 이렇게 자기 멋대로인 작품은 처음이다. 결국 요점을 찾아보면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하나?이고, 그로 인해 내가 뭘 잃든 상관하지 말아 줘라는 게 포인트다(아마도). 뭔가 큰일을 하면서 구성요소를 빼앗겨 간다면 개연성이라도 있을 텐데, 고작 발등에 떨어진 담뱃불을 치료해주고 구성요소를 빼앗긴다. 정말로 개연성이 하나도 없다. 주변에서 잊혀 간다는 것, 내가 나로 있지 못한다는 두려움도 없다. 그저 잊히기 위해, 남을 도주는 것에 삶의 이유를 찾는, 그저 자///살 지망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필자가 이 작품이 전하는 의미를 전혀 이해 못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풀어내봐야 이해는 해도 공감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의 루시는 누구냐. 1권에선 나오지도 않는다. 1권이라는 걸 보면 2권도 나온다는 소리인데 솔직히 이런 작품은 정발 안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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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소녀의 살아가는 길 2 - S Novel+
사토 마토 지음, 니리츠 그림, 김정규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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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이것은 이세계 소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마왕을 무찔러 달라고 소환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세계에는 별과 지맥의 영향으로 이세계에 흘러드는 다른 별의 사람이 있다. 사리사욕을 위해 소환되는 사람도 있다. 결과 지구인은 이세계인들로 인해 언제나 고통을 받는다. 미완성인 인격의 학생들이, 평범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 동떨어진 세계에 떨어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세계로 불려와 흘러가야 한다면.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커져가는 고향의 그리움과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애틋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세계는 지구가 아니다. 모습은 비슷해도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든 세계에서 그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게 죄인가를 물었을 때, 그것이 죄라고 한다면 이세계가 어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게 된다. 1천 년 전 그렇게 4대 재앙이 탄생했고, 이세계는 전멸이라는 수순을 밟게 된다.


메노우는 아카리를 죽이기 위해 들렀던 고도 가름을 떠나 다시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아카리는 죽지 않는다. 그녀의 능력은 [회귀], 목숨이 끊어진 순간 그녀의 시간은 역행하여 가장 안전한 곳에서 재시작하게 된다. 이세계는 1천 년 전의 교훈을 받아들여 교회를 필두로 이세계로 넘어오는 지구인을 철저히 수색하여 배척하는 일을 하고 있다. 메노우는 처형인으로서 그 선봉에 서 있다. 아카리는 교회에 대항하여 어느 왕족이 저지른 소환에 의해 이세계로 소환된다. 소환은 금지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왕족이나 되는 사람이 소환식을 거행했던 이유는, 지금에서야 생각났는데 1권에서 이미 복선이 투하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이세계 체재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걸. 너무나 힘이 커져버린 교회와 문답 무용으로 지구인을 배척하는 시스템이 옳은가를 묻기 시작한다. 아카리는 그 대답의 하나로 소환되었다. 왜냐면, 지구인은 이세계로 넘어오면서 강대한 힘을 소유하게 되고, 그걸 이용하면 정체된 세상을 타파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불합리가 존재한다. 지구인은 이세계로 넘어올 때 능력을 받게 되고, 이 능력은 쓰면 쓸수록 사수의 영혼과 기억을 소모시킨다. 영혼과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내가 나로 있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능력은 지구인의 의식과 상관없이 존재하게 되고, 영혼이 갈려 나가고 기억을 모두 잃게 된 사수는 능력에 따른 행동만 되풀이하게 된다. 요컨대 사수가 죽어버린 기관총이 총알을 무한대로 공급받으면서 제멋대로 갈겨된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 부분은 작중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설명으로 이뤄져 있으나 상세한 설명은 귀찮으니 생략하도록 하자. 그래서 이세계는 지구인을 보는 족족 처형해 나가고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사상자는 끝도 없이 나올 테니까. 그 발로가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이끌었던 1천 년 전 4대 재앙이다. 하지만 능력을 쓰지 않으면 영혼과 기억은 소모되지 않는다. 즉, 지구인을 교육해서 능력을 안 쓰게 하면 재앙은 오지 않는다는 아주 심플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이세계는 그러지 않는다. 반대로, 지구인을 이용하면 이세계는 멸망한다. 그럼에도 소환에 주저하지 않는 것에서 알마나 이세계가 부조리로 정체되어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아카리는 지구인이다. 그녀의 능력은 [회귀]다. 그녀가 능력을 행사해서 기억과 영혼 모두 소모되었을 경우 이세계에 미칠 파장은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메노우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항구도시 '리벨'이다. 4대 재앙 중 하나인 '무마전'이 존재하는 곳이다. 1천 년 전 기억과 영혼을 모두 소진해서 순수한 능력 마(魔)가 되어 버린 '지구인 소녀'가 봉인된 곳이다. 보통 여느 라노벨이라면 魔가 되어버린 소녀를 구출해서 동료로 받아들여 여행을 떠나는 클리셰를 보여줬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거 없다. 어디까지나 순수 능력만 남아버린 지구인이 어떤 짓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순수한 능력은 그 능력만으로 움직이기에 컨트롤은 불가능하다. 메노우는 아카리를 魔가 봉인되어 있는 무마전에 같이 봉인 시키려 한다. 하지만 한가지 그녀(매노우)의 마음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 '죄악감'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아이를 죽이는 것에 오는 반발, 원래 처형자의 일을 하도록 철저히 훈련받은 그녀가 이런 마음을 가질 리가 없다.


이렇듯 메노우는 처형인으로써 본분을 다하고자 아카리를 죽이려 애쓴다. 개그나 코믹풍이 아닌 정말로 시종일관 사람이 예사로 죽어나가는 시리어스하고 진지한 장면을 그려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리는 매우 밝은 모습으로 메노우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정신 사납게 한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듯, 지금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듯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게 상당히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런 아카리를 보며 메노우의 마음은 점차 처형인으로서의 존재 의문과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죄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원래는 처형인에게 있어서 불필요한 감정들이다. 이러한 감정에서 이 작품의 또 다른 포인트 억압이 대두된다. 세계를 위해서라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 그것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야 하는 본말전도 같은 행위가 정당하고 올바른 세계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거기에 대항하는 조직도 생겨난다. 뭉개지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마논 리벨'이라는 서브 히로인의 어머니다. 지구인으로서 정식 소환이 아닌 흘러들어와 이세계에 정착했고, 교회의 눈을 피해 리벨 항구를 지배하는 귀족에게 거둬들여져 딸 마논을 낳게 된다. 어머니 또한 능력을 받았지만 힘을 철저히 숨긴 덕분에 어머니는 기억과 영혼을 잃지 않게 된다(이게 포인트다). 마논을 낳은 후 행복하게 이세계에서 살아갔다면 아마 이번 2권의 이야기는 성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꿈과 희망이 없다. 몸은 이세계에 있어도 마음은 지구에 가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애틋한 감정을 들게 한다. 이렇듯 감정에 관련해서 제법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까. 그래서 이번 이야기의 중추로 딸 마논 리벨이 메노우와 아카리를 막아서며 위에서 물었던 답을 요구하게 된다. 교회만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죽지 않아도 되었고, 지구인을 어머니로 둔 자신도 기대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망가져버린 마논의 자유를 그리는 게 상당히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마전에서 삐져나온 만마전(魔가된 소녀)과의 싸움은 지구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부각시켜간다. 악은 지구인?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지구인들을 죽여가는 교회가 악? 사실 4대 재앙도 처음엔 평범한 지구인이었다. 그저 이들은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아카리는 무사히 죽을 수 있을까. 이미 그녀도 기억과 영혼의 소모가 극심하다. 아카리의 소원은 메노우를 살리는 것. 그럴수록 메노우의 목을 죄는 아이러니가 어우러져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게 흘러간다. 그러고 보니 1권 표지에서 메노우가 시계를 들고 있던 의미를 새삼 알게 된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 리뷰 쓰기가 어려운 작품에 속한다. 아카리의 목적을 알아야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할까. 사실은 메노우가 아카리를 죽이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닌, 아카리가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여행을 하는 거라는 조금은 복잡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거기에 싫든 좋든 계속 넘어오는 지구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세계가 멸망해버릴 거라는, 그래서 교회의 지구인 사냥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데 알고 보면 그게 또 아니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그런 의문을 느껴가는 메노우의 목숨이 풍전등화가 되고, 아카리는 그런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여행과 회귀를 하는데 기억이 자꾸만 소모되어서 내가 나로 있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것의 안타까움도 있는 등 이야기가 좋은 뜻으로는 알차게 구성되어 있고, 나쁘게 말하면 난잡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메노우와 아카리 말고도 모모등 여러 히로인들이 나오는데도 언급할 여유가 없다. 다른 히로인들에 대해선 차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필자가 추천하는 작품이다. 여느 이세계물이 정도의 길을 걷는다면 이 작품은 사도의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다. 나쁜 의미가 아닌, 지구인이 이세계를 구하는 게 아닌 이세계를 파멸로 이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세계 사람들은 지구인과 어떻게든 공존을 모색하는 것도 아니다. 보는 족족 다 죽여버리니까. 그런 와중에 지구인 소녀를 주운 처형인이 같이 여행을 하며 이세계의 의문을 깨달아가고 반기를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다. 요 부분은 조금 클리셰적이긴 하지만. 이번 2권에서는 그 전조가 조금 드러난다. 무마전에 봉인되어 있는 순수 魔의 소녀에 의해 누군가의 의지 아닌 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할까. 그리고 아카리가 회귀하면서도 아직 자기가 실아 있는 것에 의문을 느껴가고 조금식 그 의문에 접근하면서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다만 독해력을 꽤 많이 요구한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필자는 절반도 이해 못했다. 그러니 리뷰가 두서없어도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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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13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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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주의





이 업계도 인재난인가 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험가에 갓 입문한 초보들의 사망률이 굉장히 높다. 혹은 망가져서 수녀원에 보호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영애 검사처럼 떨치고 일어나는 경우는 극소수다. 그래서 은등급 정도 되면 경외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 보니 만성적인 인재난이다. 살던 마을을 뛰쳐 나와 기껏 고블린 한두 마리 쫓아 보냈다고 기고만장해서 던전에 들어갔다가 못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피해를 보는 건 누구일까. 죽어버린 당사자일까. 일손이 부족해진 모험가 길드일까. 아니면 솟아나는 마물떼에 시름하는 마을 사람들일까. 어쩌다 첫 모험에 성공해서 그 길로 용기를 얻어 승승장구하는 경우는 축복받은 거겠지.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가 그런 경우고. 바위를 먹는 괴물에 파티가 전멸해버린 신참 전사는 운이 매우 좋은 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점을 찾으라고 한다. 그것은 신중함과 기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이라는 말이 있다. 병사가 전쟁에 화살을 들고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적을 과소평가했을 때의 비참함은 말할 것도 없다. 준비는 자신의 목숨과도 직결된다. 전쟁에 눈에 띄는 화려한 옷을 입고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몸을 보호해주는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눈먼 화살은 반드시 나를 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신중함과 기본을 조롱한다. 멋진 활약을 보여줄 거라며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준비에 게을리한다. 그 대가는 목숨이다. 다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여신관은 그런 점을 첫 모험에서 뼈아프게 배우게 된다.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는 기본에 충실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승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모험가가 등장한다. 시골 마을에서 엄마가 누구인지 모른 채, 쓰레기 아빠와 살다 모험가가 되기 위해 소녀는 도시로 찾아온다. 그녀도 흔하디흔하고 화려한 성공을 꿈꾸다 눈 밑에 보이지 않는 모험가 A, B, C 중 하나일까. 접수원 누님은 모험가 모집을 위해 한가지 꾀를 낸다. 미궁을 만들어 초보들의 훈련을 겸한 경기를 해보자고. 그러면 조금은 생환율이 올라갈까. 고블린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잡몹이지만, 초보들의 생환율을 극단적으로 떨어트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던전에 도사리는 각종 함정들. 이걸 인위적으로 만들어 초보들로 하여금 답파하게 하면 그들도 모험가 나부랭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그러니까 잘 부탁합니다. 고블린 슬레이어 씨. 사실 뭐 미궁 경기는 접수원 누님이 고블린 슬레이어와 좀 더 같은 시간을 보내려는 목적도 있다. 언급은 없지만.


시골 소녀도 미궁 경기에 참여한다. 그녀는 잡몹에 쓸려나가는 흔한 A, B, C일까. 아니면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처럼 자신의 발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게 될까. 이야기는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다. 흔한 모험가 지망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에피소드는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들라면 그녀는 모험가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초보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인 장비의 효용성을 무시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보인다. 던전에서 두 손의 자유는 생사를 가른다는 걸 그녀는 감각적으로 알아간다. 그래서 고블린 슬레이어는 감탄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싸움 실력은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다. 미궁 경기가 아닌 실전의 던전이었다면 그녀의 운명은 여느 A, B, C처럼 되지 않았을까. 신의 변덕이 작용한다는 운명의 주사위는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


사실 그녀의 백치미가 이번 13권의 핵심이다. 소꿉친구의 괴롭힘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미궁 경기에서 길을 잘못 들어 그녀로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마신(魔神)을 만났을 때도 경기 감독관으로 착각해서 함부로 말을 거는 등 누가 봐도 상황적으로 이상함에도 그 상황에 이상함을 못 느끼는 백치미는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장면들은 사실 이 작품에서 흔한 장면이 아니다. 걸핏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세계에서 그녀 또한 특별시 되지는 않을 터였을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혼자 다닌다. 이 말은 100% 사망 코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신중함과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반드시 살리는 경향이 있다. 이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그녀는 벌벌 떨면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조롱 당했다고 물러나지 않는다. 그녀에게서 미궁 경기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여전히 히로인들의 고블린 슬레이어 앓이는 계속된다. 여신관은 미묘하지만. 그중에서 접수원 누님은 이번 13권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낸다고 할까. 미궁 경기를 준비하면서 고블린 슬레이어를 끌어들이고, 그것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고, 이걸 계기로 살짝 데이트를 신청하며 부뚜막 올라가는 고양이가 되는 그녀의 모습은 순수하면서도 약간은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다만 그 고블린 슬레이어의 관심은 고블린뿐이라는게 함정이다. 아무튼 시골 소녀를 인도하는 고블린 슬레이어도 흥미롭다. 미궁 경기에서 길을 벗어난 시골 소녀에게 한 마디쯤 해줄 만하겠건만, 그녀는 길을 벗어나도 길을 벗어났다는 자각도 없고, 마신을 동네 아저씨 취급하며 성격 나쁜 감독관이라고 투덜거리는 그녀에게 그동안의 노력의 대가로 칭찬의 한마디는 정말 흐뭇하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시골 소녀에게 있어서 미궁 경기는 첫 모험이었고, 첫 모험을 무사히 마친 모험가는 죽지 않은 불문율에 따라 그녀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첫 모험을 무사히 마쳤다고 무조건 죽지 않는 건 아니다. 몇 권인지 까먹었는데 고블린 성체에 잠입했던 여성 3인조는 운명을 달리했으니까. 아마 기준은 엑스트라인가 아닌 가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시골 소녀의 임팩트는 있었다. 고블린 슬레이어가 거둬들이면 좋겠는데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처럼 언젠가 새로운 이야기의 주연이 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시골 소녀는 자신을 괴롭혔던 소꿉친구를 뛰어넘어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 이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맺으며: 딱히 쓸 건 없다. 일러스트는 여전히 입체적인 게, 특히 시골 소녀의 일러스트는 상당히 수준급이다. 여신관과 왕매(왕의 여동생)의 자매 같은 일러스트도 좋았고. 그리고 시골 소녀를 통해 순한 고블린 슬레이어의 탄생을 보는 듯했는데 이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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