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위의 서브캐릭터 육성 일기 3 - ~폐인 플레이어, 이세계를 공략 중!~, L Books
사와무라 하루타로 지음, 마로 그림, 이승원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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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이세계에 떨어지면 가지고 싶은 것. 


1, 귀여운 동물 귀 소녀


2, 무뚝뚝한 다크 엘프 노예


3, 인간형(소녀 혹은 성인 여성) 마물(사역마) 늑대


4, 머리를 구성하는 것 중 뭔가가 빠져 있는 금발 여기사


5, 메이드 & 노예들(이왕이면 미남 미녀). 


그리고 부수적으로 근육 여장남자.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은 뭐 하는 놈인가. 현실에서 온라인 게임 랭킹 1위를 달리다 이를 시기한 어떤 유저가 서버를 폭파하는 바람에 랭킹이 리셋되자 실의에 빠져 자//살 한 놈이다. 방구석 폐인질로 1위를 달성해놓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고, 이런 점을 지적하면 딴에 상처받는다. 변변찮았던 삶은 그에게 있어서 게임 인생은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로 소중했다고 한다. 누가 곁에서 등짝 스매시라도 날려줬다면 그의 인생은 바뀌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세상 모든 엄마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작품이 아닐까도 싶다. 그래도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삶이 있고, 그걸 타인이 지적할 일은 아니지만 뭐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주인공은 눈을 떠보니 자신이 하던 온라인 게임 속이었고, 만들어놓고 방치한 부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환생한 세계는 현실 게임 설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세계관이었고, 이를 알아챈 주인공은 여기서도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게 된다. 이 말은 게임적인 요소가 상당히 들어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옛날에 성행했던 게임 해설집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 그러해서 캐릭 성장이라던가 스킬 입수와 성장치를 매우 많이 보여준다. 솔직히 이런 건 나중에 가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게 되는데 뭐 하러 이렇게 공들여 설명하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한 지표로 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따분할 뿐이다.


아무튼 주인공은 기사이면서 검을 못 쓰는 금발 여기사 '실비아'와 마법학교를 다니면서 마법은 전혀 못 쓰는 고양이 수인 '에코'를 동료로 들였다. 그리고 대장장이 역할로 노예 다크엘프 '유카리'도 들이게 된다. 전부 여자다. 이시키(주인공) 현실에서 방구석 폐인질 하면서 언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익혔는지 여느 청춘 드라마 인싸들보다 더 잘 나간다. 이들과 파티로 엮여서 세계 1위를 향해 매진하게 된다. 여기서 세계 1위란, 토너먼트 뭔가의 대회가 있고 여기에 출전해서 1등이 되면 세계 1위가 된다나. 참 편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일단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깡통 부캐를 키워야 하는데, 고생이랄 것도 없이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보인다.


솔직히 반칙이 아닐까 싶다. 이세계 사람들은 정보도 없이 노력하여 대회에 도전할 텐데 주인공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어디 가면 뭐가 있고, 스킬을 입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 꿰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별 어려움 없이 차곡차곡 다 해낸다. 실패란 없고, 어려움도 없다. 아니 정보를 가지고 있고, 노하우도 있는데 오히려 못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요소들이 재미있나?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되뇌게 된다. 미리 답을 알고 시험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게 흥미진진할 리가 없잖은가. 돈 버는 것도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의도만 한 대저택을 구입할 정도로 마구 벌어들인다. 작가는 현실에서 못하는 것을 글로서 만족감을 느끼려는 것일까.


이번 이야기는 대회를 주최하는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주인공은 나라가 멸망하면 대회도 없고 세계 1위도 없어지는지라 이걸 막기 위해 움직이게 된다. 그러기 위해 또 다른 동료를 영입하기로 하는데, 글쎄 무려 늑대 귀.. 소녀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은 여성형 마물 '앙코'를 사역하기 위해 길을 떠나서 몇 개월간 고군분투를 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현실 게임에서 거의 사역 불가 판정을 받고 있는 앙코는 주인공이 46,000번이라는 테이밍을 걸어서 성공한 아주 극악 확률의 마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세계에선 어떨까. 현실 게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사역에 성공하는지 알고 있다. 더더욱 반칙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 아무튼 이렇게 이세계에 떨어지면 가지고 싶은 구성요소가 많이 충족되었다. 치트 먼치킨은 기본 패시브, 금발 여기사 & 고양이 귀 수인 여자애 & 밤 일하는 다크 엘프 노예 & 그리고 이세계물하면 빠질 수 없는 늑대(귀 소녀)가 첨가된다. 스파이스는 다 갖춰진 샘이다. 근데 이것만 가지고 마치 주인공이 축복받은 것마냥 너무 들떠 있는 거 아니냐고 하실 텐데, 진짜는 이제부터다. 단순히 하렘만 구성한다고 해서 흥미가 동할까? 이 작품의 하렘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건 마치 집단으로 최음 된 것처럼 주인공을 바라보는 눈빛이라 하겠다. 개연성이고 뭐고 없다. 집단으로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인공을 향한 광기를 보여준다는 거다.


대저택을 관리하기 위해 뽑은 메이드들과 노예들은 주인공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왜 눈에서 하트가 발사 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기억 조작이나 마법으로 매료를 걸은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들을 사줬고,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좋아합니다!!! 다크엘프 '유카리'가 교육이랍시고 세뇌에 가까운 주인공 만만세를 주입 시켰다곤 해도 절조가 없어도 너무 없다.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여학생들이 하트를 발사해대는 모습에서는 학을 떼게 된다. 주인공을 그렇게 우상화하고 싶었나. 근데 여 캐릭터들만이 아닌 남자 캐릭터들도 단체로 뽕 맞았는지 눈에서 하트를 켤 때는 기겁을 하게 된다. 미x거 아냐? 아니 '앙코'는 싸우다 말고 대뜸 주인님! 이러는 건 뭔데. 무성별 정령은 소환되자마자 여성형이 되겠습니다라고 한다. 모두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


아무튼 이렇게 세계 1위를 향한 발걸음은 빨라진다. 하지만 대회를 주최하는 나라가 위기에 빠지는 바람에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뻔할 뻔자겠지만 주인공이 알아서 다 해줄 것이고 흥미진진해지겠다는 느낌은 없다. 이를 위해 메이드와 노예들을 마치 특수부대 양성소 마냥 훈련 시키는데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노예로 고생한 애들인데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필자가 늙어서 젊은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다 읽고 난 소감은 한창 사춘기를 겪는 꿈 많은 청소년들이 보면 꽤나 열광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은 들었다. 나도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는 대리 만족감 같은 걸 보여준다고 할까.


맺으며: 사실 구성요소를 치밀하다. 스킬이나 캐릭 육성에 있어서 준비를 많이 한 티가 난다. 매우 강한 주인공과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동물 귀 소녀들이나 밤 일의 대가 다크엘프를 등장시키고, 현실 방구석 폐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힘든 하렘의 클리셰도 잘 준비되어 있다. 사실 이번 3권 표지가 이런 요소를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것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중적인 흥미요소를 넣어 이야기 자체로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에 딱 맞지만, 이러니까 라노벨의 한계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개그 요소도 제법 있고,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답게 가볍게 읽기엔 더없이 좋은 작품이다. 필자는 하차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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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의 까마귀 4 - J Novel Purple
시라카와 코우코 지음, 아유코 그림 / 서울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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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중세 중국풍을 기반으로 한 호러 & 추리 판타지다. 주술을 이용하여 사람을 저주할 수 있고, 혼백(유령)을 정화해서 낙토(저승)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일도 하고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며 억울한 사람의 원혼을 달래주기도 한다.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오비 '수설'은 궁궐에서 황제가 거느리는 수많은 비(妃)중 하나다. '오비'란 까마귀 '오'자에 왕비'비'를 지칭한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타인과의 접점을 멀리한다. 황제의 수청을 거부할 수 있으며, 건국 때부터 내려온 관습에 따라 황제조차도 그녀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황제를 들먹이며 '이놈, 저놈, 그놈'이라고 할 때마다 유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게 그녀의 매력 포인트다. 먹는 건 또 얼마나 밝히는지 황제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항상 간식거리를 들고 와 풀어 놓게 되고, 수설은 그게 못마땅하면서도 다람쥐가 도토리 갉아먹듯 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귀여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얼핏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리는가 싶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만의 고유 신화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옛날 '오의 신'과 '오련낭랑'이라는 두 신(神)은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무승부로 끝난 이 싸움은 두 신을 깊은 바다에 봉인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오의 신'은 부활의 징조를 띄게 되고, '오련낭랑'은 갈수록 쇠퇴하게 되는데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수설'은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이자 오련낭랑을 품고 있는 당사자다. 그래서 건국 이래 아무리 폭군 황제라도 '오비'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오련낭랑은 겨울의 왕으로서 여름의 왕인 황제와 쌍(페어)이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여름의 왕이 존재하려면 겨울의 왕인 오련낭랑이 필요하다. 오련낭랑이 없어지면 황제도 없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상당히 난해한 게 이 작품이 가진 특성이다. 얼핏 주술로 사람들을 저주하고, 구원하고, 없어진 물건을 찾는 호러틱한 판타지를 보여주지만 실상은 신화(픽션)를 기반으로 한 매우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오의 신'을 따르는 신도들의 암약으로 '수설'은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오련낭랑'은 1천 년이라는 시간 속에 차츰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그 신이 가진 힘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이 말은 수설이 약해지고 있다는 말과 상통하게 된다. 수설은 몸에 오련낭랑을 품고 있다. 그 옛날 초대 오비가 인간의 몸에 오련낭랑을 봉인한 게 유래되어 대대로 오비를 맡는 소녀의 몸에 오련낭랑이 깃들게 된다. 그런데 오련낭랑은 완전한 게 아닌 절반만이 오비의 몸에 깃들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바다에 봉인되어 있다. 이게 오비 '수설'이 가진 비밀이고, 이걸 풀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런 비밀에 더해 그녀는 전(前) 왕조의 피도 잇고 있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머리 터지게 할 요량인지 설정을 너무 과하게 잡아서 매번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보통 왕권이 바뀌면 전(前) 왕조의 피를 말살하는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진다. 수설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도망의 나날을 보내나 뒤쫓아온 관군에 의해 어머니는 수설이 보는 앞에서 참수되고 만다. 이게 수설에게 있어서 커다란 트라우마가 된다. 오비로서 거둬지고 전(前) 왕조의 피의 증거를 숨긴 채 살아가는 수설에게 있어서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왜냐면,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게 밝혀지만 전(前) 왕조파들이 그녀를 주축으로 해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황제 고준은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호해준다. 이것이 이번 4권에서 발목이 잡히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수설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수설은 왕족의 피를 잇고 있어서인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주술로 사람을 구하고,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 구천을 떠돌 일 없이 낙토(저승)로 보내면서 많은 이들을 구원하게 된다. 이에 따라 그녀를 추종하는 세력이 늘게 되는 건 필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곧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를 못마땅히 여기는 부류가 생겨나고, 수설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는 자가 생기는 것 또한 필연이 되고 만다. 정작 황제 '고준'은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수설을 어떻게 하면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의 자리에서, 그녀의 몸에서 오련낭랑을 빼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련낭랑이 가진 본질에 접근하게 되면서 황제와 대립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서 선대 오비는 수설로 하여금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수설을 추앙하는 이들을 역으로 이용해 수설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비단 수설만이 아닌 '오비'의 직함을 가진 자는 황제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여기에 수설은 전(前) 왕조의 피를 잇기도 했으니 보기에 따라 매우 위험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이 작품은 주술이 횡행한다. 주술엔 저주도 포함된다. 주술은 수설만이 가진 전매특허가 아니다. 수설보다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주술사가 수설이 아끼는 사람을 이용해 그녀(수설)의 목을 죈다면, 수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선대 오비가 입이 닳도록 충고했던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말라는 의미,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 도우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던 수설은 댓가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눈앞에서 보내야만 했던 지난 과거, 다시 그런 과거를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굴레와 같았던 오련낭랑을 몸에서 빼낼 수 있다는 단서를 잡게 되면서 수설이 가진 운명을 벗어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오비를 버리면 그녀는 평온하게 지낼 수 있게 될까. 황제 고준은 그녀를 구원하고 싶어 한다. 오비는 새장이나 다름없는 궁에 갇혀 평생을 보내야 하고, 오련낭랑을 품고 있는 괴로움은 필설로도 형용하기 힘들다(오비를 맡은 자는 대부분 단명한다). '오의 신'이 대두되고 그 신자들이 준동하고, 오비를 견제하려는 자들이 나오면서 수설은 궁지에 몰려간다. 오련낭랑의 힘은 날로 쇠약해지고, 적은 강대해지면서 수설은 주술 하나 튕겨내는데도 벅차게 된다. 결국 그녀가 전(前) 왕조의 피를 잇고 있다는 것까지 들통나게 되면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황제가 그 권위를 이용해 그녀를 지켜줄만도 하겠지만 이런 부분은 현실 고증을 잘 따르고 있다. 정치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기승전결이 없어 안타깝기도 하다.


황제 고준이 보내준 종이를 버리기엔 아깝고, 있으니까 편지를 보내는 것뿐이라며 애써 자기 합리화하는 츤데레 같은 모습도 보인다. 그동안 마음을 닫고 살아왔던 그녀에게 작은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이번 4권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녀올게'라는 말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을까. 자연스럽게 하게 된 그녀의 변화. 쓸쓸했던 궁에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활기를 띤다. 이제 이런 활기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선대 오비가 충고했던 사람들과 연을 맺지 말라는 것을 거부한 변화, 그 변화에 맞춰 마치 등가교환하듯 찾아오는 위기. 그 위기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그 죽음을 보면서 수설은 무슨 마음을 먹게 되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세상 풍파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15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감당하기엔 힘이 많이 부칠 것이다. 그런 그녀를 지탱하려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그럴수록 수설의 목을 죄는 악순환. 이 모든 것이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자 흥미요소들이다. 


맺으며: 귀여움과 시리어스가 공존하는 참 특이한 작품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세상 밖으로 나올수록 위험해지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아픔을 겪듯, 수설 또한 그런 아픔을 견디려는 모습은 참으로 애틋하기 짝이 없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가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일, 누군가가 웃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 감정에 일희일비하고 소중한 것이 늘어나고, 세상의 넓어진다는 것.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수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독해력을 제법 요구하면서도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작가의 능력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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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전생 4 - 숲의 수호신이 된 전설, Novel Engine
미시마 치히로 지음, 쿠루리 그림, 김민준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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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강줄기를 따라 웬 남정네 곰 한 마리가 떠내려온다. 건져서 꺼내보니 상류에 곰(베어) 부락이 있단다. 뗏목을 타고 있는데 누가 밀어서 빠졌고, 그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하니 범인도 찾고,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어떻게 좀 도와 달라는 말에 주인공은 웨어울프 자매들을 이끌고 곰 부락으로 향한다. 이 작품은 전생에서 산을 오르다 삐끗하는 바람에 비명횡사했더니 백곰으로 환생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북극의 콜라 곰처럼 새하얀 게 특징이다. 말도 할 줄 알고 전생의 지식을 이용해 웨어울프 자매들의 집도 지어주었다. 엘프 모녀를 만나 그녀들을 도와줬고, 자매와 엘프 모녀를 노리는 악당들을 퇴치하는 등 이세계에 떨어지고 참 바쁜 나날을 보낸 게 주인공이다. 어째서 거의 다 여자들 밖에 안 만나게 되는지는 미스터리지만 뭐 그러려니 하자.


아무튼 간에 곰 부락에 도착했긴 한데, 부락 이름 그대로 온통 곰 밖에 없다. 곰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문명을 만끽하고 있다. 모습만 곰일 뿐이고 감정이나 행동은 인간이랑 똑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자 하나 두고 피 튀기는 싸움도 일어나고, 강한 수컷에 반해서 쫓아다니는 곰들도 있다.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똑같은가보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아무튼 여차여차 무서운 사건을 하나 해결했는데 글쎄 주인공이 저주를 받아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백곰에서 흑곰이 되어 버린다. 이게 무슨 복선이 될 줄 알고 필자는 다른 건 다 잊어도 이건 잊지 않았다. 왜냐면 3권은 상권이고 4권이 하권이라서, 이번 4권에서 뭔가 큰 비밀이 밝혀지지 않을까 해서다. 또한 모습이 바뀌어도 이전까지 날 좋아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날 좋아해 줄까, 떠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기우에 그친다.


사실 그딴 거보다 지금 곰 부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정 싸움을 좀 어떻게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현실에서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고, 이야기도 하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건 똑같을 것이다. 곰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근데 필자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문득 의문을 느끼게 된다. 솔직히 리뷰 쓰는 필자는 이런 이야기까지 써야 되는 자괴감이 무척 몰려오는데 대충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1권에서 보여줬던 도망자 신세의 여유 없던 생활은 극박한 상황을 연출해서 몰입도가 좋았는데 3권부터는 뭔가 동화적인 이야기들뿐이다. 그래서 심각한 것도 없고, 있어도 주인공이 별 어려움 없이 다 해결한다. 사실 곰을 주제로 했으면 아기자기한 면을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치정 싸움으로 번지고 급기야 UFC, 로드 FC를 찍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곰이 되었다고 해도, 어떤 작품에서는 자판기로 환생해도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반드시 히로인이 붙는다는 것이다. 웨어울프 자매들 중 특히 루루티나는 거의 본처 확정이고, 이번엔 하프 곰이 대열에 끼고 싶어 루루티나와 피 튀기는 설전을 펼치는 게 이 작품의 주된 포인트다. 남들이 치정 싸움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다만 주인공의 오지랖이 넓어 도움을 청하는데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UFC에 나가서 죽도록 얻어 맞고 뒹군다. 1등 해서 떠내려온 곰 소원을 들어줘야 하는 처지에 놓은 것이다. 웨어울프 자매들은 뭐가 좋은지 응원에 열을 올리고, 주인공이 되었다고 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이 작품은 역설한다. 뭐 사실 주인공의 이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에서 호감을 얻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맺으며: 그냥 곰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을 놓고 하프 곰과 루루티나 간 서로의 눈에서 빔을 쏘는 질투심이라던지, 쌍둥이 세 자매의 귀여움이라던지 소소한 볼거리는 있다. 부락에 위기도 찾아오지만 주인공이 잘 처리해준다. 치정 싸움도 결국 제자리 찾을 건 다 찾아간다. 그래서 1권에서 보여 주었던 시리어스 한 상황 같은 건 일절 없다 보니 맥빠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작품도 라이트 노벨 특성답게 히로인이 엄청 늘어난다. 번식기가 아니면 반응도 없다는데 왜 자꾸 늘리는지 모르겠다. 거기다 주인공은 둔해 빠져서 히로인들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모습만 곰이고 상황은 판타지지만 흘러가는 건 학원 청춘 로맨스다. 5권이 나온다면 읽어보고 하차하던지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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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급【상태 이상 스킬】로 최강이 된 내가 모든 것을 유린하기까지 2 - Novel Engine
시노자키 카오루 지음, KWKM 그림, 오토로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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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이 적을 무찌르는 모습은 보기에 따라 매우 비열하게 보이기도 한다. 상대보다 약하다고 인식을 심어주면서 방심하게 만든 후 마비 스킬을 쏘아서 무력화 시킨다. 그리곤 바로 죽지 않는 독을 주입해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게 만든다. 그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따라 이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주인공이라고 소리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배신 당하고, 죽임을 당할뻔하여 악밖에 남지 않은 주인공이라도 자기가 쓰는 스킬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주인공으로서는 달리 살아갈 방법이 없다. 독 스킬도 지속형 밖에 없고. 이세계는 약육강식이다. 먼저 선수를 치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하는 세상이다. 주인공이 가진 스킬이 마비와 독(포이즌) 같이 저주 계열 같은 스킬들뿐이다. 레벨업을 통해 스테이터스는 올랐으나 여전히 스치는 칼에도 죽을 수 있는 수수깡 같은 신체로서는 남을 속이고 선빵을 치는 방법 외엔 몸을 지킬 수단이 없다. 그래서 전위를 맞아줄 전사가 필요하다.


'세라스 애슐린'은 살던 나라에서 쫓겨나 인간들의 나라에서 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었다. 그녀의 검 솜씨는 단장을 맡을 정도로 출중하다. 하지만 몸담고 있던 나라는 침공을 당하고 그대로 폐망하고 만다. 그녀를 아끼던 왕녀는 침공한 적들 몰래 도주하게 도와준다. 이후 그녀에게 많은 현상금이 걸렸고, 그녀는 길고 긴 도망의 시간에서 지칠 대로 지쳐간 끝에 어느 숲에서 추적자들에 의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때 마침 폐기 유적에서 생환하여 지상으로 올라온 주인공은 그녀를 만난다. 보통 이런 시추에이션에서는 운명의 만남이라는 둥 눈물겨운 순애 드라마가 펼쳐질 만도 하겠다. 그녀는 엘프다. 이 작품에서 엘프는 미(美)에 있어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는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녀를 소 닭 보듯이 한다. 여기엔 그녀가 변신 마법으로 모습을 바꿨다고는 하나 원판의 미모는 불변이다. 주인공은 그녀를 쫓던 추적자를 골로 보내고 그녀를 놔둔 채 시크하게 떠난다.


'피기마루'는 슬라임이다. 뭐가 못 났는지 동족들에게서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지메는 이세계에서 얻은 트라우마다. 망할 클래스 메이트들과 망할 여신은 씹어 먹어도 시원찮다. 그래서 이지메 당하는 피기마루를 주인공은 못 본 채 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주인공과 같이 다니는 동물 클리셰로 개(도그)가 있다면, 이세계에서는 늑대 혹은 슬라임이 대세다. 손가락만 튕겨도 나자빠져 죽을 것만 같은 피기마루는 주인공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약한 놈 둘이 모여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귀여움이라고는 일절 없는 이 작품에 있어서 피기마루는 귀여움의 대명사로 자리 잡는다는 거다. 메인 히로인이 될 거 같은 '애슐린'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일방통행식 직진만 하는 히로인이다 보니 귀여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고 꽉 막혀서 고구마를 수여하는 그런 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자. 말귀도 잘 알아듣고 시키는 것도 고지식하게 잘 한다. 이것도 귀엽다면 귀여운가.


그리고 주인공(+피기마루)과 애슐린은 다시 만난다. 


주인공은 피기마루 업그레이드를 위해, 애슐린은 여행에 필요한 노잣돈을 벌기 위해 어느 지방 도시에 들리게 된다. 보통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 나누고 구해줘서 고맙다는 둥 밥이나 한 끼 하자며 친한 척하겠지만 서로가 소 닭 보듯이 한다. 이게 참 신선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쫓기는 몸인 애슐리에게 있어서 혼자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참으로 야박하고 척박하기만 하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왕녀가 구해준 목숨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그녀지만 한계에 다가온다. 주인공은 여행에 있어서 전위를 맡아줄 전사가 필요하다. 둘은 던전에 내려간다. 애슐리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던전을 공략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데 주인공이 먼저 고부가 가치 템을 선점해버린다. 여기서 주인공이 보인 행동은 무얼까. 주인공은 이미 도적질(?)로 돈은 충분한 상태고 던전에 들어온 목적도 피기마루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어떤 아이템뿐이다. 애슐리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어떤 사람이 될까.


애슐리는 쫓기는 몸이다. 천상의 미(美)가 있다면 그녀일 것이라고 작가는 엄청나게 주워섬긴다. 주인공은 애슐리 알게 모르게 구해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거기에 그녀의 미모에도 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녀가 쫓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녀가 몸담고 있던 나라를 침략한 나라가 겨우 어디에나 있는 기사단의 단장을 맡던 일개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고 정예군까지 동원해서 쫓을 이유는 없다. 그 나라의 왕족이라면 몰라도. 그 이유가 이번에 밝혀진다. 1권에서도 줄곧 그녀는 쫓겨 다녔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아무튼 그녀의 이런 내막을 알고 나서도 주인공은 그녀를 또다시 도와주게 될까. 주인공은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래서 소 닭 보듯이 그녀를 대했던 것이고.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알고 만다. 겉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그녀라지만 누구보다 다정하다고, 지구에서 자신을 돌봐줬던 숙모와 겹쳐보게 되는 주인공은 그녀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자, 운명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애슐리를 붙잡기 위해 인간계 최강이라는 용(龍)기사가 주인공 앞을 가로막는다. 이쯤 되면 용기사가 쫓아올 정도로 그녀가 왜 쫓기게 되는지 의문이 들지만 스포일러라서 설명은 생략하겠다. 아무튼 주인공은 폐기 유적에서조차 느끼지 못했던 위기를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후위직 마법사 같은 포지션이다. 레벨은 올랐다곤 해도 스쳐도 사망인 수수깡 같은 게 주인공이다. 그러니 용기사 같은 전위직을 만나면 쥐와 고양이 같은 관계가 된다. 여기서 애슐리를 버리면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작중에는 표현 안 되어 있지만, 주인공이 여기서 그녀를 버렸다면 그가 그토록 중오하는 클래스 메이트들이나 여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비열해지기로 한다. 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이 하는 짓을 보면 여신이랑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위기에 빠진 사람을 버리느냐 안 버리느냐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목격하게 된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 마음을 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전히 비열하기 짝이 없는 여신은 내가 악당이라고 그 존재감을 뿜어댄다. 이쯤 클래스 메이트들은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친 무리와 음습한 놈, 떨거지들의 모임으로 정립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주인공과 합류할지 모르는 어떤 히로인은 떨거지들 뒷바라지하느라 죽을 맛이다. 그녀는 주인공을 떠나보낸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착한 히로인에 모든 것을 떠안으려는, 어쩌면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죽을 둥 살 둥 노력은 하는데 레벨업이 신통찮다. 인싸들은 이제 숨길 의향도 없이 자기들 잘 난 맛에 남을 깎아내리고, 비아냥대기 일 수다. 제법 강해 보이는데 레벨에 있어서 주인공 레벨이 비해 1/80도 되지 않는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온갖 잘난 척은 다 한다. 나중에 주인공과 만났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이고, 어떻게 찌부러질지 내심 기대되는 인싸들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착한 사람은 착하지만, 쓰레기 같은 놈들을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모자를 정도로 타락 시켜 간다. 솔직히 쓰레기들을 보여주며 착한 주인공을 띄워주는 약간 그런 게 있다. 이게 이 작품의 약간의 옥에 티.


맺으며: 상냥함과 다정함은 여타 작품 공통으로 주인공이 가져야 할 기본 패시브인가 보다. 다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가진 다정함은 그를 길러주었던 숙모에게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부모에게 학대받고, 버림받은 끝에 다다른 삼촌과 숙모의 보살핌은 그를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게 된다. 그래서 그럴까, 주인공의 제의를 받아들여 전위로서 계약하게 되는 애슐리가 우직하게 자신을 지켜주려는 모습에서 주인공은 숙모를 겹쳐보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신뢰하고 지켜준다는 것, 마비되고 독에 걸려 다 죽어가는 적을 앞에 두고도 자신이 맡은 바를 충실히 하려는 그녀에게 주인공은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애슐리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어디서 굴러다니던 말 뼈다귀인지 모르는 자신을 구해주었고, 일자리를 주고, 노잣돈도 넉넉히 챙겨주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만남과 운명이라는 클리셰라면 클리셰일 수는 있으나 그 바탕엔 신뢰라는 전재를 깔아둠으로써 흥미를 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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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티처 14 - S Novel+
네코 코이치 지음, Nardack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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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꼬꼬마 '카렌'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 주인공 '시리우스' 일행은 대륙 간 왕족들이 집합해서 화합을 다지고 있다는 '생도르'라는 나라에 도착한다. 두 번째 부인인 '리스'의 가족과 처남 '레우스'의 여친(마리나)의 가족도 와 있다길래 인사차 들린 것이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생도르는 현재 왕좌의 게임을 찍고 있다. 그놈의 권력이 뭔지 후계자를 놓고 귀족들이 서로 다투고 있고, 리스의 언니 '리펠'이 연루되어 고초를 겪고 있다 보니 주인공으로서는 처형이 고생하고 있는데 못 본 채 할 수가 없다. 이번 이야기는 완결로 가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만났던 여러 사람들이 대거 나오고, 그들과 유대를 쌓아 인연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 빛을 발하여 대규모 마물의 침공이라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 주인공이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사실 무능력이다. 속성을 타고나지 않아 어릴 적 많은 괴롭힘을 당해야 했고, 이에 주인공은 굴하지 않고 보란 듯이 기초적인 마법을 승화 시켜 능력을 얻게 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것인데 솔직히 기만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런 작품의 주인공 특징이 마법은 못 쓰지만 마력은 많아서 응용하면 감자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듯이 그런 흐름이다. 좋게 말하면 생각과 발상의 차이라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이렇게 응용도 못하는 이세계 주민은 똥멍청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아무튼 응용의 대가인 주인공은 제자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생도르'는 현재 왕위를 놓고 암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에 제자들이 큰 활약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 처남 레우스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진다. 활약도 활약이지만 그동안 레우스의 고생을 보답하듯이 그에게도 꽃 피는 시절이 도래하게 된다. 


왕좌의 난에 리스의 언니 리펠이 연루된 시점에서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지라 주인공은 정보를 모아가게 되는데, 나라(생도르)를 어지럽히는 흑막이 있다는 걸 알아낸다. 교묘하게 사람들 틈새에 숨어 뒤에서 공작을 하는 통에 생도르는 쥐약 먹은 쥐처럼 날로 쇠약해져만 가고 있다. 위정자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며 국정은 나 몰라라 하기 일쑤고, 흑막이 꽂아 넣은 배 튀어나온 돼지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나라는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역사인데. 아무튼 이런 불의는 못참지하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주인공이었다면 오지랖이 엄청난 주인공이라고 폄하해버리려고 했는데 글쎄 흑막이 주인공 세 번째 부인인 '피아'를 인질로 잡아버린다. 역린을 건드리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피아는 주인공의 아이를 임신 중이다.


피아는 엘프다. 이 작품에서도 엘프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간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인간인 주인공과 맺어지길 바랐다. 주인공이 수명이 다해 죽어도 그의 아이를 기르며 살아가겠다는 당찬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 주인공으로서는 3명의 부인을 평등하게 대한다지만 피아를 더욱 각별히 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피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에 모두들 제 일처럼 기뻐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만능이 아니다. 지킨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펴도 빈틈은 있기 마련이다. 흑막은 피아를 인질로 잡고 주인공에게 어떤 요구를 한다. 이렇듯 이전에는 이런 스릴러 같은 이야기는 거의 없었는데 작가가 이번에 마음 단단히 먹은 거 같다. 이야기는 웃음기를 빼고 시종일관 진지하게 흘러간다. 위엄을 보여야 할 왕이 보여주는 딸 바보 같은, 체면을 버리고 볼썽사나운 이야기가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번 이야기에서 특징을 틀라면 생도르 왕족 '줄리아'를 들 수가 있다. 왕녀로서 길을 걷는 것보단 기사로서의 길을 걸으며 올곧은 품성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칼을 매우 좋아하고 다소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라 강자를 만나면 싸워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거리게 되고 마침 눈에 띄었던 '레우스'가 그녀의 표적이 된다. 사람은 싸우며 크고 정이 든다고 했던가. 레우스는 수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올곧은 마음으로 칼을 부딪혀오는 그녀가 싫지만은 않다. 그동안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했던 그에게도 봄날이 찾아온다. 아닌 게 아니라 매형(주인공)은 부인 3명이나 대리고 다니면서 밤마다 알콩달콩 해댄다. 레우스는 바로 곁에서 지켜봐야 했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슬슬 레우스도 부인을 들여도 될 나이다. 다만 레우스는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이고.


그리고 일이 터진다. 생도르라는 나라를 붕괴 시키려는 흑막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줄리아의 목숨까지 위협받게 된다. 사나이는 좋아하는 여자든, 우정으로 다진 관계든, 뭐든 상관없이 눈앞에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구해주는 게 도리다. 레우스는 그녀를 구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어떤 것을 같이 구해주게 되는데 남들은 비웃는 그것을 레우스는 비웃지 않는다. 공감능력은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게 참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인성적이다. 이 일로 비로소 줄리아는 함락되어 버린다. 이 부분은 매우 흥미로운데 이 작품에서는 좀처럼 없는 러브 시추에이션을 레우스와 줄리아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주인공과 그의 부인 간 관계는 양방향 통행이면서도 한쪽이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딘가 일방통행식 느낌이라면, 레우스와 줄리아는 확실한 양방향 통행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래서 두 번째 부인인 '마리나'는 어떡하려고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고, 마리나와 조우하게 된 레우스는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도 주인공과 그의 부인들 간 보여주지 못했던 살벌한 관계를 이들(레우스와 마리나와 줄리아)을 통해 보여주는데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지지고 볶고 할 시간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작가가 이야기 배분에 실패했다고 해야 할지. 흑막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생도르는 전장이 되어 간다. 주인공은 자신의 역린을 건드린 흑막을 때려잡기 위해, 레우스는 졸지에 지킬 사람이 둘이나 되었지만 이 작품은 양성평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라 여자라고 후방에서 보호받고 그런 건 없다. 이것도 사실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저마다의 인물들은 보호받기보단 힘을 길러 어깨를 나란히 해 같이 싸우는 걸 지향한다.


맺으며: 이야기는 15권으로 이어지는데 일본에서 아직 15권이 나오지 않은 듯하다. 이 작품은 사실 뒷 권이 그렇게 기다려지지 않는 편인데 이번 14권에서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이 궁금해지도록 연구한 끝에 발매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법 충격적인 전개를 엔딩에 깔아놨다. 웃음기를 빼고 전장의 리얼리티를 제법 충실히 재현하고 있으며, 압도적인 적들을 맞이한 사람들의 심리도 잘 표현하고 있다. 저마다 분투를 하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 일행, 그중에 레우스의 활약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작가가 주인공의 허를 찌르는 전개를 엔딩에 심어놔서 독자들로 하여금 제법 충격을 받도록 한 시추에이션은 제법 큰 점수를 줄만 하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주인공이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은 후방에 있다는 것이고, 지금은 적들을 맞아 전방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14권은 제법 무게감 있게 그려놔서 몰입도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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