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18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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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권은 시간적으로 보면 늑대와 양피지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콜이 변화해가는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그 흐름에 몸을 담그고 자 십수 년이나 인연을 맺어온 로렌스와 호로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호로의 딸 뮤리는 콜을 뒤따라 가출해버렸고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파슬로에에서의 여행이 어느덧 끝을 맺고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아이가 태어나나 했더니 훌쩍 성장해서 이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호로가 결혼해서 뇨히라에서 머문지도 벌써 십수 년이 흘렀습니다. 영원과도 같았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가버리고 어느덧 로렌스는 중년의 길에 접어들었군요. 호로는 여전히 어린 소녀 모습 그대로고요.

 

이번 이야기는 머무는 자와 떠나가는 자를 그리고 있습니다. 머무는 자는 당연히 로렌스고 떠나가는 자는 호로입니다. 이젠 이런 단어를 입력하는 것도 손가락이 아플 지경인데,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같이 갈 수 없듯이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또한 같이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전에도 숱하게 필자가 언급했던 것이기에 굳이 여기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좀 더 명확하고 빠르게 서술되고 있어서 많이 애잔하게 한다는 것이군요.

 

늙어서 기력이 없는 자신을 부축하는 호로를 상상하는 로렌스, 촛불이 그 생명을 다 할 때 가장 밝게 빛나는 것처럼, 물고기가 알을 낳고 그 생명이 다해 쓸쓸히 죽어가는 것처럼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한 그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많이 먹먹해져옵니다. 그래도 아직은 조금 더 갈 수 있다는 느낌으로 아직은 이 손을 놓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호로의 손을 부여잡고 느려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끝이 저만치 다가왔다는 실감을 하면서... 호로는 일찌감치 그 너머를 이미 준비하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로렌스는 예전 같으면 자신의 반려가 다른 남자와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질투심에 사로잡히겠지만 지금은 호로 곁에 누군가가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그 바램에 응답하듯이 남방에서 찾아온 호로와 같은 계열의 늑대 권속 무리, 그리고 로렌스는 그 늑대 무리에게 호로를 맡기려고 합니다. 당연히 호로는 반발하고, 이제 그만 이들을 쉬게 해줘도 좋으련만 작가는 또다시 시련을 내립니다. 이별은 언젠가가 아니라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그렇기에 준비에 들어가는 로렌스는 위기에 빠진 늑대 무리를 돕고자 발 벗고 나섭니다. 그것이 뇨히라, 나아가서 자신의 온천장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도요.

 

이 작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품도 참 드물 겁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끼리 만나 서로에게 이끌리고 이별을 두려워하기보다 정면으로 돌파하며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궁극적으로 서로가 웃으며 이별을 선택하는 것, 운명에 발버둥 치기 보다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행복했지라며 그때를 추억하는 것, 이런 건 참 가슴을 아려오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이어지기란 참으로 어렵죠. 중간에 끼어들어 분탕질 해대거나 초 치기를 예사로 하는 작금의 라이트노벨들에 비하면...

 

"아직 여행은 계속 되는 거지?"

 

가속화된다는 것은 이런 걸까요. 이전에는 어딘가 명료하지 않았던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조금 더 명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쇠약해져가는 로렌스와 아직도 10대 소녀 모습인 호로, 지금 로렌스와 보내는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필사적인 호로는 애틋하게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서 비참하거나 안타까움보단 사랑을 한다면 이들처럼 같이 불꽃같이 화려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가슴 한켠에 뭉클함이 서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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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양피지 1 - 늑대와 향신료의 새로운 이야기,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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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인 로렌스와 호로가 만나 예정된 이별을 감수하면서도 행복한 결말을 보여줬던 늑대와 향신료,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습니다. 원래 임산부는 술을 피해야 하건만 임신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진창 퍼마시는 호로 때문에 이거 2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이는 무사히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너무 건강해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온 산을 뛰어다니고 짓궂은 장난을 치는 통에 로렌스는 늘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는 것에서 웃음을, 하지만 서열이 강하게 작용하는 늑대 사회에 걸맞게 엄마인 호로에겐 꼼짝을 못한다고 해서 또 한 번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였습니다.

 

뮤리, 수백 년 전 동료의 이름을 딸에게 지어준 호로는 이 작품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군요. 하지만 작중 간간이 뮤리를 통해서 아직도 쌩쌩하게 로렌스와 깨가 쏟아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니 그리 섭섭하게는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온다고 해도 이젠 다 늙어가는 로렌스와 아직도 10대 소녀의 모습인 호로의 관계 때문에 괜스레 더 마음만 안 좋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시작하는 콜을 배웅하는 건 로렌스뿐이라는 것에서 음울한 마음이 서리기도 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작품은 과중한 세금에 나날이 돈만 밝혀대고 타락해가는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콜과 그의 곁에서 마치 호로가 그랬던 것처럼 지혜를 빌려주는 뮤리의 여행담입니다. 하지만 세상 물정 어두워 눈뜨고 코베인 격으로 사기를 당해 오도 가도 못했던 10대 시절을 지나 나이를 먹고 로렌스와 호로 덕분에 조금은 성장했나 싶었는데 늘어난 건 책 속의 지식뿐이고 세상에 관련된 지식은 여전히 전무해서 사탕발림에 냉큼 넘어가버릴 순진한 청년으로 자라난 콜, 그의 곁에서 한숨을 짓는 건 뮤리의 몫이 되었고요.

 

그런데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교회를 바로 세우겠다고 뛰쳐 나오긴 했지만, 뭐랄까 원래 얘(콜)가 이런 성격입니다. 한 눈 팔 줄 모르고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옆을 안 봅니다. 그래서 약간 외골수 같은 면을 보여주죠. 교회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신의 가르침은 경건히 받아들여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게 뇨히라에서 온천장을 물려받아 일생을 보내도 되건만 고행이 미덕 인양 고생을 사서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으로 움직인다기보다 윈필국의 왕자(라고 처음에 그렇게 믿었지)인 '하이랜드'에 휘둘리는 꼴이 마치 혁명을 꿈꾸는 새파란 학생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주인공으로 콜을 세운건 미스가 아닐까 했군요. 얘가 머리는 좋은데 어리바리하고 세상을 덜 살아봐서 사람 무서운 줄을 몰라요. 그래서 사기도 당하고 하였는데 여전히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그고 자 합니다. 세금 문제로 교회와 전쟁 직전에 직면한 윈필국의 왕자 하이랜드를 도와 세금을 낮추고 전쟁을 피하려 노력하던 콜은 교황에 의해 이단이라는 법정 최고형이 내려지고... 그렇다고 이대로 끝낼 순 없고 이전작에서 로렌스가 위기에 빠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호로가 도와줬다면 이번엔 뮤리가 발 벗고 나섭니다. 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콜은 더하죠. 이렇게 순진한 애를 악의로 가득 찬 세상에 던져 놨으니...

 

맺으며, 뮤리의 귀여움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현명하다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활약은 하는데 그 정력을 엉뚱한 곳에 쏟아붓는 통에 현명함보다 영악함이 더 어울릴 지경입니다. 가령 늑대로 변신은 하는데 하프라서 한번 변신하면 풀 수가 없다며 세상 무너지는 듯 행동하다가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키스해주면 풀 수 있다.'라고 구라치고 콜의 키스를 받으려는 모습에선 이마를 탁 치게 하죠.

 

어쨌건 이 작품이 의미하는 건 결코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죠. 영원을 살아가는 엄마보다 일찍 죽을 것이고 찰나를 살아가는 아빠보단 오래 살지만 아빠는 딸이 다 큰 걸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겠죠. 작가는 이런 암시를 작중에 심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불행한 삶을 살다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콜이 무던히도 뮤리를 신경 쓰는 대목은 애잔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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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17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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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에 우리나라에 이런 만화가 있었습니다. 불로장생하는 남자가 싼 똥을 먹은 개를 잡아먹은 여자가 불로장생을 얻어 죽지도 못하고 수백 년을 살면서 남편만 십수 명이고 그들이 죽을 때마다 무덤 만드느라 개고생을 했다는 일화를 이번 17권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이 났군요. 오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위의 구절은 개그 만화에서 풍자식으로 표현한 것뿐이지만 사실 필자가 이 작품의 리뷰를 써 오면서 누차 언급했듯이 불로장생은 할 것이 못됩니다. 물론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필자 같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 불로장생을 얻어볼 만은 합니다만, 대부분은 미쳐버리겠죠.

 

호로도 한때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하도 떠나보내는 사람이 많아서 불로장생의 영약이라는 일각 고래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죠. 이걸 남자에게 먹이고 자기와 같은 시간대에 살게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허황된 짓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누구보다도 똑똑한 현랑이라고 자부하는 그녀가 이걸 모를 리는 없었을 텐데도 그럼에도 이걸 찾아 여행을 하였으니 그녀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것은 떠나가는 자를 붙잡지 않고 배웅하며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리고 남자가 그렇게 떠나가면 다시 여행길에 오르고...

 

로렌스와의 관계에서도 잘 닦인 레일 위를 달리는 것처럼 종착지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녀는 로렌스가 죽은 뒤의 예정을 이미 세워두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다시 여행길에 오를지 종착지로 정한 뇨히라라는 온천 마을에서 그가 세운 온천장을 물려받아 언제까지고 그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지난날을 곱씹을지는 아직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요. 아마 18권이 나오기 전 광고 카피처럼 그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지내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로렌스가 호로와 평생을 지내기로 하고 행상로를 정리한 끝에 뇨히라에 자리 잡은지 어언 6년이 흘렀습니다. 중세 시대를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 30줄에 들어선 그는 이제 중년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호로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고요.

 

이번 17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반드시 헤어짐은 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대비하며 지금에 충실히 하고자 합니다. '헤어질 땐 웃으며'라고 했던 지난 여행길에서의 말을 잊지 않으려는 두 사람, 그것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어렴풋이 느껴가는 로렌스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해도 뭐 그렇게 우중충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발버둥 처봐야 소용없다는 것이기에 이번 17권은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호로는 여행길에 만난 여자들을 죄다 초청해서 내가 인생의 승리자라며 대놓고 염장질을 해대고, 로렌스는 호로가 여행길에 만난 여자들을 초청하자 뭔 일 터지는 거 아닌지 노심초사하면서 좌불안석이 되어 갑니다. 그러다 피날레로 초청한 만인 앞에서 호로가 자신(호로)의 배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본 그는...

 

이런 사랑도 좋겠죠. 시간과 시대를 뛰어넘어 맺어지는 순애보는 언제 봐도 가슴 설레게 합니다. 다만 그녀같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성격까지 드센 여자라면 좀 곤란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선의의 거짓말도 하기 마련인데 호로에겐 잘 통하지가 않으니... 살다 보면 좀 피곤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되려 이걸 빌미로 놀려대는 통에 부아가 치밀지만 로렌스야 워낙 호로에게 콩깍지가 씌워져 있어서 완전 상전 모시듯, 로렌스를 어디 지나가는 개 보 듯하는 주제에 외로움은 얼마나 타는지 잠시라도 그(로렌스)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데다 입만 열었다 하면 독설이고 돌아서면 외롭다고 팔짱을 끼워 오는 통에 그녀의 비위를 맞춰줄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뭐, 이번 17권 외전 에피소드에서 그녀 나름대로 로렌스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랬다고는 하는데 진실은 모르죠.

 

맺으며, 사실 필자는 두 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장르가 이런 작품입니다. 상추쌈에 고기는 한 점만 넣고 고추와 마늘로 탑을 쌓아서 먹는 기분이랄까요. 마늘과 고추의 알싸하고 매운맛 때문에 비위 상해 뱉고는 싶은데 고기 맛이 나서 뱉지도 못하는 그런 기분 알려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부분을 빼고 좀 더 시간이라는 이야기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로는 갯과이지만 고고한 고양이처럼 홀로 앞을 향해 걸어가면서 괜찮아라고 하지만 옆에 같이 걸어가 줄 사람을 절실히 바라는, 하지만 그건 죽어도 내색하기 싫어 독설을 내뱉고 그러다 상대가 그런 자신에게 질려서 떠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치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의 유키노를 보는 듯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늑향이 먼저 나왔으니 반대가 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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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16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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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뇌리에 잊히지 않는 영화 한편이 있습니다. 제목은 이제 와 생각 안 나지만 인간의 남자와 사이보그 여자가 만나 역경을 이겨내고 맺어졌지만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여자는 그의 곁을 언제까지고 지키면서 끝이 납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까지 끝없이 자문하는 게 하나 있는데요. 과연 여자는 행복했을까? 남자는 행복한 마음으로 떠났을까? 불꽃같이 모든 걸 태워 한순간 정열적으로 모든 걸 바쳐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하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 웃으면서 이별을 하고 남겨진 자는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걸 두고 과연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호로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숱한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한때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일각 고래라는 불로의 영약을 찾아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 찰나의 시간을 살고 언제나 배웅하는 입장의 슬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콜을 서적상에 맡겨 떠나보낼 때 호로의 표정을 본 로렌스는 그 슬픔의 무게를 여실히 느껴야만 했고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있어서 과연 이게 행복한 결말일까?

 

이번 이야기는 그 어떤 결말이 기다린다 해도, 그래도 우리는 손을 잡고 걸어간다. 분명 나는(로렌스), 그녀(호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녀(호로)는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별이 확정된 미래라도 지금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가겠다고, 한번 잡은 손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그동안 상인의 길과 그녀라는 선택지에서 갈팡질팡했던 로렌스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녀를 선택합니다. 아무리 괴로운 미래가 기다린다고 해도 지금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치겠노라고, 그녀에겐 또다시 씁쓸한 미래가 기다릴지언정 지금을 소중히 하겠다고...

 

그런데 데바우 상회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또다시 이들의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레스코에서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그녀가 곁에서 같이 가게를 운영해줄 거라는 기대감에 이것이 성공한 인생이지 했던 로렌스를 시기하듯 찾아온 반란은 그를 사지로 내몰고 호로와 뜻하지 않는 이별을 강요합니다.라고 해도 언제나 기승전결인 이 작품에서 그리 심각한 건 없었습니다. 호로는 자신(호로)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언젠가 그랬던 슬프게 이별할 바엔 웃으며 지금 헤어지자고 했던 자신을 버리고 로렌스를 반려로 인정하면서 설사 이별이 확정된 미래라도 지금은 힘껏 그의 곁에서 살아가기로 합니다.

 

어떻게 보면 풋풋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별이 두려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 울면서 이 마음을 전하며 이별을 읊어야만 했던 슬픔, 그러나 이것을 뛰어넘어 결국 손을 잡고 걸어가기로 했을 때의 잔잔한 여운, 사실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상업계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요는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라도 지금은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언젠가 이별을 하고 남겨진다고 해도 지금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때가 찾아왔을 때 미련을 두지 않고 행복했지라며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거지요.

 

정작 본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별거 없습니다. 데바우 상회 내분으로 북방 지역이 전란에 휩싸일 위기에 빠지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로렌스와 호로는 각기 행동하며 동분서주하지만 녹록지가 않고 남편의 위기를 본 호로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고, 이교의 신중 하나인 토끼의 화신 힐데의 귀여움의 이면에 감춰진 중년 수염 아저씨의 괴리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렌스는 상인의 입장과 용병의 입장 그리고 호로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얽혀 양판소 판타지물이었다면 정신이 붕괴되어 최종 보스가 될 처지에 놓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재미? 그런 거 없어요. 그저 상인으로 살아가야 될 마음가짐의 표본 같은 작품이다 보니 솔직히 잘 읽히지가 않죠. 거기다 호로는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아 모든 걸 꿰뚫어 보면서 능글맞게 구는지라 귀여운 구석도 없고요. 뭐 후반부에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씌면서 조금은 귀여워졌지만요. 필자는 이 작품을 표현 하라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만나 시간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맺어지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사실 이것만 눈에 들어온지라 이 작품의 본질을 20%도 이해 못했지 싶군요. 하지만 크게 보면 이걸(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끼리의 맺어짐)로 귀결되어서 다른 건 어떻게 돼도 사실 상관은 없었습니다. 해피엔딩이면 만사 OK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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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환상의 그림갈 10 - 러브 송은 전해지지 않아,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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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식(GOSICK) 애니메이션 후반부에 보면 '코델리아'가 이런 대사를 합니다. '불꽃이여 타오르고 타 올라 그 아이의 미래를 비추어 다오' 이 대사는 필자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대사 중 하나인데요. 자신의 딸이 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때 자신은 불꽃에 사그라지며 했던 말입니다. 필자는 불꽃같은 인생이란 코델리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했군요. 이 작품에서도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스포 당해서 좌절하게 했던 바로 '메리'인데요.

 

파티 브레이커인 자신을 주워 거둬주며 미래로 나아가게 해줬던 하루히로를 바라보던 그녀는 어느새 그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결코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마음이 폐가 되지 않기를, 그로 인해 파티에 균열이 가지 않기를, 찌끄레기들로 모인 파티가 찌부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의 덕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의 덕분, 그가 사라지면 어디로 가야 될지 그것이 무서워 생사를 넘나드는 나날에서 연애는 사치라는 듯 이 마음을 가슴에 묻어둔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그를 돕고 싶었던 그녀...

 

기간 한정이라고는 해도 그의 연인을 자처하는 '세토라'를 의식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며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며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부분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녀(메리)가 하루히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냐면 궈렐라라는 고릴라 비스름한 무리에게 쫓기다 들어간 '제시랜드'라는 마을에서 그 마을을 통솔하고 있던 남자 '제시'에게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고, 이에 그 남자는 '뭐든지? 그것도?'라고 하자 메리는 '바란다면'라는 대사에서 하루히로를 얼마나 소중히 하는지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죠. 이때 하루히로는 제시에게 제압되어 얼굴이 뭉개지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메리가 하루히로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죠. 그럼에도 파티에 누가 될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럼으로 해서 사망 플래그를 완성 시켜버리고 플래그는 회수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던 시절 자신의 미래를 비추어주는 등불이 되어줬던 그에게 제대로 된 이별의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쥐어 짜낸 말 '나.. 당신이..'하는 대목에서는 칠칠치 못하게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마지막까지 어설프고 어설픈,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떠나는 그녀의 이 대사는 또 하나 잊지 못할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웃는 장면은 거의 없었던 거 같습니다. 도서 제목의 재는 잿빛의 재, 그에 어울린다는 듯 온통 회색빛 일색인 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라는 것처럼 줄곧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마나토와 모구조가 그렇게 떠나고 메리마저 떠난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사실 이런 판에 웃음 포인트가 있을 리 없죠. 이 작품을 읽고 있다 보면 우중충하기 짝이 없고 없던 우울증까지 생길 판입니다. 인생이 그렇게 꼬이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풀리지도 않는, 아무리 애써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비참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에서 웃고 있는 메리는 더욱 가슴을 죄어 왔습니다.

 

맺으며, 이번 에피소드는 메리 편이라서 그녀에게 맞춰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하루히로 시각에서 메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대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 거 보니 크게 언급이 되지 않는 듯한데 예전 쿠자크와 썸씽이 있는 거 아닐까 하는 헛다리 짚은 이후 이렇다 할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고 있는 듯한, 그저 등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료? 그보다 파티를 꾸려 가느라 정신을 딴 데 팔 겨를이 없다고도 해야겠죠. 그러해서 더욱 호감을 얻고 있는 거지만요. 사실 하루히로는 찌끄레기 같은 파티 버리고 좀 더 제대로 된 파티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테죠.

 

그건 그렇고, 섹드립이 조금 위험한 수준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메리는 하루히로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칠 뻔도 하였고, 시호루는 란타의 희롱이 애들 수준으로 느껴질 만큼 거의 겁탈 수준으로 희롱을 당하지 않나, 잿빛이라는 분위기에 맞춰 내용도 상당히 시리어스 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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