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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의 모독자 3 - L Novel
사카키 이치로 지음, 아카이 테라 그림, 원성민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소한의 제물을 바치고 세상 편안 해진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삶일 겁니다. 언제가 내가 제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뭄과 흉작 걱정 없이 배불리 살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자고, 제물을 바치자고, 그게 당연한 삶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는 삶, 제물이 받는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인간들, 그러나 이것도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기에 이게 잘못되었다고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욕을 하는 건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을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욕은 지탄받아 마땅하죠. 그래서 교회가 이런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교화 시키는 것을 두고 과연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집니다.
왜,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미래를 개척하지 않으려 할까. 분명 토지신에 목매어 풍작을 기원하는 풍습은 언젠가 파탄을 불러오리라는걸, 미래를 개척하지 않은 나태의 죄를 교회를 통해 몸소 치르게 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다면 그것대로 하나의 배움이었을 터. 하지만 각자 살아온 방식이 있고, 자기들만의 풍습이 있는데 그것을 누구의 잣대로 정의라 논하는가. 사실 이 작품은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어요. 자신들이 믿는 유일 신의 신조에 반하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회와 자신들만의 풍습(신조)을 지켜가려는 변방의 부족들은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죠.
결국은 전자(교회)가 요컨대 사람마다 다른 개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악무도한 존재로 갈무리됩니다. '신'만이 정의이고 질서이라는 믿음, 그것을 어긴 자는 사교이고, 악마라는 믿음, 그래서 주인공 '유키나리'를 이세계로 불러온 연금술사를 교회는 용서하지 못했던 것. 제거되는 건 필연, 당한 쪽은 틀림없는 부조리, 필연의 연쇄로 주인공은 날뛰게 되고 악으로 낙인찍혀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 또한 부조리의 연쇄. 그리고 지금 프린트랜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토지신이 되어버린 유키나리와 다샤는 교회를 맞아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합니다.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이딴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남아 있는 마을 따위 내버려 둬도 그만이었던 것을...
아무리 제물을 바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 마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을 뿐, 그냥 지나쳐도 되었던 것을, 제물인 베르타를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치지 못하는 여린 마음 때문이었을까. 토지신을 뭉개버린 그는 책임을 지려 하죠. 새로운 토지신이 되어 대지를 풍요롭게 하고 주변은 안정화 시키는 것, 하지만 호문쿨루스의 몸으로는 토지신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참담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래서 토지 개량이나 비료 등 현대의 지식을 설파하며 농사 치터가 되어 어느 정도 기틀은 잡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무지몽매한 원주민을 개화 시킨다는 선민사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해서 조금 꺼림칙한 것도 사실인데요.
아무튼 새로운 동료 베로니카(여자)가 합류하게 됩니다. 교회에 쫓기다 프리트랜트로 흘러 들어온 용병, 과거 나라를 잃고,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그녀는 교회에 붙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유키나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죠. 그녀가 찾아오면서 유키나리의 마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옵니다. 유키나리에게 있어서 전환기랄까요. 평화를 바라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그녀의 가르침, 나와는 상관없다고 방관하고 있다간 큰 코 다친다는 가르침, 인생의 스승이 있다면 바로 그녀가 아닐까 하는 대목이죠. 또한 만년 소심쟁이 베르타(유키나리 시종)를 어엿한 하나의 인간으로 키워내는 대목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언제까지고 평화로운 거 같았던 프리트랜트, 하지만 찻잔 속의 고요였을까요. 그쯤 교회 후속 기사단이 프리트랜트로 찾아오면서 새로운 전운이 감돕니다. 프리트랜트이라는 마을은 나날이 더해가는 교회의 치세라는 시대에 먹힐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내 손으로 붙잡기 위해 몸부림 칠것인가. 이것은 영화 아바타를 연상시킵니다. 힘이 있고, 자신들의 정의만을 내세워 타인을 굴복 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리고 그 부조리를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고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조리는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듯 마을과 유키나리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베르타는 정말 눈부시죠.
맺으며, 유키나리의 누나 혹은 엄마의 복선이 나와 버렸습니다. 작가가 그분이라고 한 걸 보면 누나보단 엄마에 가깝지 않을까 싶군요. 현실에서 종교에 미쳐 유키나리 남매를 방임했던, 종교가 득세 중인 이세계라면 엄마가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유키나리에게 있어서 철천지원수 같은 인물이죠. 결과적으로 남매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 엄마와 아들의 대결이라... 3권까지만 읽고 하차하려 했는데 이거 4권도 읽어봐야겠군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의 키워드는 성장이라 하겠습니다. 유키나리가 베로니카를 만나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고 만년 소심쟁이였던 베르타가 과거라는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모습은 꽤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