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의 모독자 3 - L Novel
사카키 이치로 지음, 아카이 테라 그림, 원성민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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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소한의 제물을 바치고 세상 편안 해진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삶일 겁니다. 언제가 내가 제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뭄과 흉작 걱정 없이 배불리 살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자고, 제물을 바치자고, 그게 당연한 삶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는 삶, 제물이 받는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인간들, 그러나 이것도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기에 이게 잘못되었다고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욕을 하는 건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을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욕은 지탄받아 마땅하죠. 그래서 교회가 이런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교화 시키는 것을 두고 과연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집니다.

 

왜,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미래를 개척하지 않으려 할까. 분명 토지신에 목매어 풍작을 기원하는 풍습은 언젠가 파탄을 불러오리라는걸, 미래를 개척하지 않은 나태의 죄를 교회를 통해 몸소 치르게 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다면 그것대로 하나의 배움이었을 터. 하지만 각자 살아온 방식이 있고, 자기들만의 풍습이 있는데 그것을 누구의 잣대로 정의라 논하는가. 사실 이 작품은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어요. 자신들이 믿는 유일 신의 신조에 반하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회와 자신들만의 풍습(신조)을 지켜가려는 변방의 부족들은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죠.

 

결국은 전자(교회)가 요컨대 사람마다 다른 개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악무도한 존재로 갈무리됩니다. '신'만이 정의이고 질서이라는 믿음, 그것을 어긴 자는 사교이고, 악마라는 믿음, 그래서 주인공 '유키나리'를 이세계로 불러온 연금술사를 교회는 용서하지 못했던 것. 제거되는 건 필연, 당한 쪽은 틀림없는 부조리, 필연의 연쇄로 주인공은 날뛰게 되고 악으로 낙인찍혀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 또한 부조리의 연쇄. 그리고 지금 프린트랜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토지신이 되어버린 유키나리와 다샤는 교회를 맞아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합니다.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이딴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남아 있는 마을 따위 내버려 둬도 그만이었던 것을...

 

아무리 제물을 바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 마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을 뿐, 그냥 지나쳐도 되었던 것을, 제물인 베르타를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치지 못하는 여린 마음 때문이었을까. 토지신을 뭉개버린 그는 책임을 지려 하죠. 새로운 토지신이 되어 대지를 풍요롭게 하고 주변은 안정화 시키는 것, 하지만 호문쿨루스의 몸으로는 토지신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참담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래서 토지 개량이나 비료 등 현대의 지식을 설파하며 농사 치터가 되어 어느 정도 기틀은 잡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무지몽매한 원주민을 개화 시킨다는 선민사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해서 조금 꺼림칙한 것도 사실인데요.

 

아무튼 새로운 동료 베로니카(여자)가 합류하게 됩니다. 교회에 쫓기다 프리트랜트로 흘러 들어온 용병, 과거 나라를 잃고,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그녀는 교회에 붙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유키나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죠. 그녀가 찾아오면서 유키나리의 마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옵니다. 유키나리에게 있어서 전환기랄까요. 평화를 바라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그녀의 가르침, 나와는 상관없다고 방관하고 있다간 큰 코 다친다는 가르침, 인생의 스승이 있다면 바로 그녀가 아닐까 하는 대목이죠. 또한 만년 소심쟁이 베르타(유키나리 시종)를 어엿한 하나의 인간으로 키워내는 대목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언제까지고 평화로운 거 같았던 프리트랜트, 하지만 찻잔 속의 고요였을까요. 그쯤 교회 후속 기사단이 프리트랜트로 찾아오면서 새로운 전운이 감돕니다. 프리트랜트이라는 마을은 나날이 더해가는 교회의 치세라는 시대에 먹힐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내 손으로 붙잡기 위해 몸부림 칠것인가. 이것은 영화 아바타를 연상시킵니다. 힘이 있고, 자신들의 정의만을 내세워 타인을 굴복 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리고 그 부조리를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고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조리는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듯 마을과 유키나리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베르타는 정말 눈부시죠.

 

맺으며, 유키나리의 누나 혹은 엄마의 복선이 나와 버렸습니다. 작가가 그분이라고 한 걸 보면 누나보단 엄마에 가깝지 않을까 싶군요. 현실에서 종교에 미쳐 유키나리 남매를 방임했던, 종교가 득세 중인 이세계라면 엄마가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유키나리에게 있어서 철천지원수 같은 인물이죠. 결과적으로 남매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 엄마와 아들의 대결이라... 3권까지만 읽고 하차하려 했는데 이거 4권도 읽어봐야겠군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의 키워드는 성장이라 하겠습니다. 유키나리가 베로니카를 만나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고 만년 소심쟁이였던 베르타가 과거라는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모습은 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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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녀전기 10 - Viribus Unitis, Novel Engine
카를로 젠 지음, 한신남 옮김, 시노츠키 시노부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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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의 인구가 약 2천만에서 2500만이 줄어 버렸다죠. 그 피해는 지금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인적 소모는 대단했는데요. 독일은 소련과 상호 불가침 조약인지 뭔지를 맺었음에도 괜한 의심병이 도져선, 그들을 믿지 못했던 독일은 광활한 동부전선(소련으로 치면 서부전선)에서 전격전을 시작했고 그들을 맞아 소련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변변한 총도 없이 그냥 병력을 밀어 넣는 수밖에 없었죠. 근데 이 방법은 효과를 봐서 독일을 폐퇴 시키기에 충분하였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합니다. 네, 지금 타냐가 속한 제국이 딱 그런 상황인데요. 대전 말기 독일 장교를 취재했던 어떤 다큐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소련을 상대로 하나의 사단을 없앴더니 몇 개의 사단이 충원 되었다. 그동안 수백 개의 사단을 무찔렀지만 자고 일어나니 그보다 많은 사단이 만들어져 전선으로 오고 있다.

 

총력전을 펼치는 제국엔 더 이상 인적 자원이 남아 있질 않습니다. 타냐가 제도(수도)에서 본 제국의 상황은 처절함 그 자체였는데요. 그동안 전선에서만 생활하며 간간이 제국의 상황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을 몰랐던, 인적자원도 인적자원이지만 물자 부족은 더욱 심각하여 연방(소련)의 진지에 쳐들어가 그들의 장비를 노획해 그 장비로 연방을 두들기는 장면을 보자면 제국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죠. 사실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적의 장비를 노획해 운용하는 건 그리 우습고 이상한 건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면 우두머리 즉 정치권과 군 상층부 나아가 통수권을 가진 놈들까지 이 상황에서조차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는 것. 그걸 알게 된 타냐의 기분은 어떨까요. 배가 가라앉고 있는 거죠. 국가라는 화이트 기업이 언제부터인지 블랙 기업이 되어 버렸어요.

 

인력도 없고, 돈도 없고, 그런데도 승리에 미련 정도가 아니라 확신에 차서 꽃밭을 헤매고 있는 자칭 위정자들을 보고 있자면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군요. 사실 패배는 곧 국가 붕괴라는 현실을 애써 감추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얼마 안 남은 머리 좋은 참모장교들은 그 점을 깨닫고 뭔가를 하려고는 하는데 가망이 있을는지요. 그래서 타냐는 이직을 결심하죠. 가라앉는 배에 난간을 붙잡고 있어봐야 같이 수장되는 꼴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를 붙잡는 심정으로 다른 나라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줄 만한 재료를 찾기 시작하죠. 이대로 종전을 맞이했다간 전범으로 처분될 뿐이니, 일단 그동안 자소서에 쓸만한 활약을 해왔다고 자부는 하는데 그래도 뭔가 크게 터트릴만한 게 없나 하고 쏘다니지만 녹록하지가 않군요.

 

늘그막에 좀 편히 살겠다고 모난 돌이 되어 열심히 분골쇄신했던 것이 지금에 발목을 잡아 댑니다. 상관은 너밖에 믿을 놈 없다며 편지 셔틀을 시키지 않나, 편지 셔틀 하러 갔더니 머리에 꽃 꽂은 포격 소녀(수 중위)가 반겨주질 않나, 완료하고 돌아오니 이번엔 V 로켓(1)이 되어 연합왕국(영국) 좀 두들겨 줘라는 상관의 명령에는 이런 미친놈을 봤나 싶었을 겁니다. 타냐가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은 정말 희귀한 장면이라 할 수 있군요. 그야 고작 대대 병력(48명)으로 적군 본진을 때리라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잘하면 이직에 필요한 적이 알아주는 커리어를 달성할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 장면은 일본의 진주만 습격을 연상케 하는데 결국은 뭐 과거 일본 제국이 저질렀던 짓을 우회로 비꼬는 게 아닐까도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배도 없고, 카르네아데스 판자가 될만한 것도 없고, 그래서 열심히 물을 퍼내고는 있지만 퍼내는 양보다 들어오는 양이 더 많군요. 대대를 이끌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소방수 역할은 하는데 그때뿐이고, 이놈의 위정자들은 관심병인지 의심병인지가 만연해서 종전보다는 전선 확대를 꾀하는 통에 유능한 병사만 죽어 나갑니다. 이직을 결심했지만 섣불리 나갔다가는 총살 부대가 쫓아올 거 같고, 상관이라는 놈은 불가능을 타진해도 네가 무능해서 그런 거 아님? 하고 자존심을 긁어대니 이거 쏴 죽일 수도 없는 노릇. 무능한 부하보다 부하를 무능으로 모는 상관이 100배는 더 무섭다고 서술해대는군요. 그래도 어쩌겠나요. 까라면 까야 되는 게 군이라는 조직이고, 죽고 싶지 않다면 해내는 수밖에요.

 

맺으며, 이번 10권의 최대 백미는 한때 타냐의 대척점이라고 인정받았던 수 중위가 머리에 꽃 꼽고 나와 미친 짓을 하는 장면이군요. 이전에도 그랬지만, 피아 식별 따윈 개나 줘버리고 마치 포격 마법 소녀처럼 폭주하는 장면은 하나의 희극이었습니다. 다만 타냐의 활약에선 너무 띄워주는 경향이 있더군요. 적들도 수년간 치러지는 전쟁으로 인해 인적자원이 갈려 나가고 남은 거라곤 겁쟁이들(전쟁은 우수하고 용맹한 사람부터 소진 시킨다죠.)뿐이라지만 대대 병력(타냐의 부대)으로 여단 병력에 뛰어들어 헤집고 다니는 장면은 코미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 어떤 행사에서 유녀전기 코스프레가 금지되었다고 하더군요. 이유야 말해서 무얼 할까 싶습니다만. 사실 이 작품을 비판하고자 하면 양파 껍질처럼 계속 나오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래도 알고 보면 한쪽으로 치우처진 게 아닌 평형을 유지하려는 모습도 보인다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데요. 가령 이번에 등장하는 공격도 방어라는 상관의 궤변(일본 전수방위를 재해석, 자칫 우익물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대목)을 타냐가 반론한다던지, 승리할 수 있다는 정신론을 펼치는 위정자들에게 반기를 드는 장면 등...


  1. 1, 2차대전 중 독일이 영국 본토에 날린 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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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3 - 마오마오의 후궁 수수께끼 풀이수첩
쿠라타 미노지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유유리 옮김, 휴우가 나츠 원작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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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비해 작화 퀄리티가 장족의 발전을 했군요. 마오마오의 표정이 많이 풍부해졌는데요. 특히 진시를 상대할 때 싫어하는 표정이 원작에 많이 근접했다 할 수 있습니다. 코믹이 정발 되면서 모 불법 사이트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든 일본에서든 대박(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을 터트린 빅 간간의 네코쿠라게 작가의 작품을 놔두고 그보다 작화력이 떨어지는(주관적) 선데이 GX의 작품을 정발하였을까 의아했었습니다만. 이번 3권을 접하고 보니 정발할만했다는 느낌을 받았군요.

 

사실 비단 작화만이 아니라 그동안(1~2권) 개연성 부족과 스킵으로 인한 부실한 내용이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었는데요. 이번 3권은 그것을 만회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는 것에서 만족감은 매우 높았군요. 물론 스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로 사건의 구성을 잘 이어가고 있기도 한데요. 개중엔 원작을 안 보면 그냥 지나칠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필자는 작화보다 내용과 개연성을 중요시하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작화만 따지게 된 걸 이번의 기회로 다시금 반성을 하기도 하였군요.

 

이번 이야기는 연유회 때 있었던 리슈 비의 독살 미수 사건을 해결하고 이 사건을 통해 십수 년 전에 있었던 아둬 비가 낳은 왕자가 죽은 이유까지 밝혀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마오마오의 양아버지 뤄먼의 과거가 밝혀지기도 하죠. 그로 인한 예전 마오마오의 양아버지가 읊조렸던 인과에 관련된 씁쓸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역설하기 시작하죠.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처럼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어머니의 슬픈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코믹의 특성인 빠른 진행 때문에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번 아둬 비의 에피소드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죠. 십수 년 전, 황후와 출산이 겹치게 되면서 겪었던 불합리. 그로 인해 자신의 아이가 살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되는지, 그 결정 때문에 어머니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참 구구절절합니다. 거기에 불똥이 튀어버린 마오마오의 양아버지의 기구한 삶, 그 인과 덕분에 양아버지를 만나 약사의 길을 걷게 된 마오마오. 그리고 지금 후궁에 발을 들이고 있는 그녀, 인연이란 무엇인가 고찰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스포일러 안 하면서 글 쓰려니 두리뭉실해졌군요. 결과적으로 보면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건 생존의 법칙에서 오는 본능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가 커주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긴 합니다만. 후궁이라는 겉모습은 화사한 화원일지언정 속은 검은 소용돌이가 치는 환경에서 아이가 무사히 커주길 바란다면, 그게 그 검은 소용돌이를 직접 격은 당사자라면 더욱 간절하겠죠.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아이는 어떤 심정일까...

 

맺으며, 더 이상 마오마오를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는 진시의 심경 변화가 볼만합니다. 누구나 다 자신을 우러러보는 환경에서 유일하게 대드는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겨 찝쩍 거렸더니 벌레 보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짜릿할까요. 네, 진시는 변태가 맞습니다. 그런 하찮은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다 어느 순간 마음을 터놓게 되어 버렸고, 마치 어미새를 갈구하듯 그녀에게 기대는 모습이 참 안쓰럽게 다가오죠.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보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런 것에 약한 마오마오, 아마 그의 출생을 알아버렸기에, 자신도 비슷한 처지이기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3권 한정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9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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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9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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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론보다는 실전인가 봅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쓸모없는 경우가 허다하죠. 바로 경험이라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여신관'은 이론보다는 실전을 겪으며 성장하는  타입이라 할 수 있군요. 그녀는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히로인 중에 제일 많이 구르는 존재이죠. 첫 번째 모험에서 실패를 겪고 그대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최후를 맞이할뻔하였던 것이, 고블린 슬레이어를 만난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경험이 되었을까. 이후 고블린 슬레이어를 따라다니며 실전을 통한 경험은 양식이 되어 그가 없는 실전에서 빛을 보게 되는,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 히로인 중에 제일 축복받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고블린 슬레이어는 소치기 소녀와 옆 마을에 배달을 나갑니다. 그래서 여신관을 위시한 나머지 동료들은 개점휴업 상태, 전위가 부족한 게 이럴 때 발목을 잡는군요. 그가 빠졌다는 이유로 단숨에 전위 부족으로 모험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다니요. 눈보라가 치는 겨울 막바지, 봄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계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뜨거운 수프를 할짝할짝 하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자기들도 끼워 달라는 듯 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가 기웃기웃 하고, 그들을 내치지 않고 수프가 담긴 그릇을 내미는 드워프 도사에게서 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조금은 그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진 여신관, 어찌할까 하던 중 수습 성녀가 지고신의 신탁을 받아 북방 눈 오는 산으로 가서 이 겨울이 끝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하게 되었다며 같이 가자고 하는데...

 

두 가지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소치기 소녀가 매일 도시로 납품하듯이 이번에도 별다른 의심 없이 옆 마을로 배달을 가게 된 고블린 슬레이어와 소치기 소녀가 맞닥트린 오우거와 고블린 떼, 그리고 고블린 슬레이어가 빠진 채로 파티(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 포함)를 꾸려 북방으로 향하게 된 여신관 파티가 맞닥트린 얼음 마녀와 거인들 그리고 내청코의 토츠카 같은 토끼 소년과의 만남. 과연 둘이 있어 하나가 되고 셋이 있어 파티가 되는 이들에게 서로가 빠진 채로 파티를 꾸려 기도하지 않는 자를 만났을 때. 고난과 역경을 넘을 수 있을까. 그동안의 배움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여신관은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동료가 없는 고블린 슬레이어는 예전 파티가 있어서 대응할 수 있었던 오우거를 상대로 소치기 소녀를 지키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눈부신 점은 여신관이 되겠습니다. 그동안 그의 곁을 지키며 봐왔던, 그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고찰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가며 파티를 이끌고 최적의 방법으로 적을 소탕해가는 모습이 참 흥미롭습니다. 더 이상 움찔 거리지 않고, 더 이상 겁먹지 않고 나아가는 것. 주변의 따듯한 시선에 볼이 뜨거워져도 수줍음이 몰려와도, 예전 같으면 주저앉았을 상황에서도 허세를 부릴 줄 아는 진정한 모험가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참 멋있다고 할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그를 향한 연심은 갈수록 커져서 속앓이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다름 아닌 고블린 슬레이어니까요. 오면 오고, 가면 가는 대로 놔두는 게 그의 성격에다 여신관이 없다고 해서 모험을 그만둘 그가 아니기에...

 

이번 테마는 모두의 성장입니다. 그중 가장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 게 여신관인데요. 병아리에서 어미닭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죠. 다른 이들도 조금식 더 강해진 모습을 보이고요. 그리고 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의 경우도 쥐잡이라는 기초를 열심히 한 덕분에 어엿한 모험가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툭하면, 조금만 벗어나면 죽음의 골짜기가 자리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 잘 없거든요. 그리고 고블린 슬레이어를 연모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져가는 여신관의 모습은 훈훈하면서도 안타깝게도 합니다. 이런 건 사망 플래그 밖에 되지 않는데... 하기야 매번 해당 히로인 에피소드를 보면 그를 향한 연심이 높지 않은 히로인은 없었긴 합니다만.

 

맺으며, 고블린 슬레이어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후반 목장에 나타난 레아 영감의 등장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오로지 고블린만을 죽이기 위해, 고블린에 대한 증오만을 가슴속에 꽉 채우고 있었던 그에게 지킬 것이 있고 같이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아버린 레아 영감의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하는 삶의 표현에서 히로인들의 앞 날이 밝아지는 게 아닐까도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부제목을 '토끼 소년의 정체를 밝혀라'라고 하고 싶었는데요. 이번 9권 일러스트는 1~8권에서의 일러스트보다 질적인 면에서 많은 하향을 보여주더군요. 그래서 토끼 소년의 등장은 선입견을 심어주기에 딱 좋았고, 후반 반전이 있었을 땐 뭐야라는 심정이었다랄까요. 1회성 캐릭터가 아닌 신참 전사와 수습 성녀의 파티에 끼이는 걸 보니 앞으로도 종종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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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13 - L Novel
와타리 와타루 지음, 박정원 옮김, 퐁칸 ⑧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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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좀 깁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홀로서기 최종장입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무관심 속에 언니의 등을 바라보며 커왔고, 커서는 하치만의 등으로 갈아탄 이후에도 겉으론 도도한 척, 껍질 안쪽은 언제나 급류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삶만을 살아왔던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를 쫓아가고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에서 벗어나 자기 발로 홀로서기 하고자 합니다. 그녀가 바라는 이상향은 그렇게 홀로서기에 성공한 자신을 하치만과 유이가 바라봐 주면 그것으로 족한, 이 시점(명확하게는 12권부터인 듯)에서 유키노는 둘과의 관계를 청산하고자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 했군요.

 

공동의존에서 언급되는 심약한 마음을 떠나 유키노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말하지 않는 아픔'이랄까요. 놀이공원에서 하치만과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지 못하는 아픔, 홀로서기 과정에서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자신을 도와주러 온 하치만을 바라보며 들뜨고 기쁜 표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픔, 좋아한다는 감정을 알아 버렸음에도 유이도 같은 생각일 거라는 마음에 결코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 아픔. 프롬(1)을 준비하면서 유이가 하치만을 돕는다고 알아 버렸을 때 유키노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굳히지 않았을까. 정말 이런 타입의 히로인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죠.

 

저들과 같이 있으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또 의존해버릴 테니까. 유키노는 그래서 '승부에서 이기면 이긴 쪽이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리라. 유키노의 홀로서기에 맞서 자신도 프롬을 개최하겠다고 나서는 하치만, 또다시 그만의 리그가 시작됩니다.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는 무사히 프롬을 개최할 수 있을까. 여기서 승리한다면 분명 그녀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성격에서 벗어나 격류를 거슬러 올라간 연어가 무사히 산란지에 안착하는 것처럼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을 극복하고 무사히 창공을 날아오를 것이라고.  하지만 그럴 때 바라봐 주는 이는 있어도 곁에 아무도 없다면?

 

그리고 여기 공동의존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또 한 사람. 유이가하마 유이, 그녀는 차에 치일뻔한 애완견을 구해준 것에 빌미 삼아 그(하치만)에게 접근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작중에서는 부정한 거 같긴 합니다만. 이것은 궁중 속의 고독이었던 그녀가 외톨이인 하치만과 친해지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있었고(필자의 유추), 마침 봉사부를 찾았던 그녀가 거기에 있던 하치만과 조우했던 것이 그녀로써는 행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근데 얘(하치만)가 은근히 의지(의존) 해오니 문제였던 것입니다. 의지(의존)라고 해봐야 의견을 듣거나 선택지에서 도움을 받는 정도였지만 그게 참 기뻤다는 게 유이의 속마음.

 

마치 포용하는 어머니처럼 포근한 인상을 풍겨주니 하치만(얘도 은근히 집에서 따 당하는 일 많았음)은 기대지 않을 수 없었죠. 마치 유키노가 부모의 정을 하치만에게서 찾듯이요. 근데 유이는 그걸 이성으로서 호감으로 승격해버리니, 이야기는 상당히 시리어스하게 흘러갑니다. 청춘 드라마에서 무슨 시리어스라고 하실 텐데, 유이는 봉사부가 이대로 유지되는 걸 원하죠. 그럼에도 하치만을 유키노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interlude에서 자신은 나쁜 아이라고 독백하기도 하죠. 참고로 빼앗긴다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이번에 프롬 관련으로 대화중이던 유키노와 하치만의 사이에 느닷없이 난입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군요.

 

셋이서 같이 있다가 난입이 아닌, 분명 온다 간다는 내레이션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프롬 관련으로 하치만을 도우기로 했다며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데요. 이 장면은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하치만과 유키노의 분위기는 꽤 좋았어요. 하치만이 늘 먹던 커피를 어쩐 일인지 유키노가 자판기에서 구입해서 품속에 보관한다던지. 그런 일이 있은 직후 유이의 난입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럼에도 다시 일하러 가는 유키노의 등을 감싸 안으며 '앞으로도 같이 지내자'라고 하는 유이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필자는 소름이군요.

 

유키노가 감추는 아픔이라면 유이는 들어내는 아픔이라고 할 수 있군요. 12권 때 유키노가 감춰놓은 사진을 찾아낸 이후, 하치만을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모습은 더욱 구구절절해지는데요. 그 엄격한 하루노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온몸이 아프다고 할 정도니까요. 분명 유키노도 같은 마음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전진은 멈출 생각이 없죠. 그럼에도 '셋이서 앞으로도 같이 지내자.'라고 하는 그녀. 요컨대 그녀는 하치만과 이어지고 유키노와는 친구로 지낼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정말 매우 나쁜 애(순화하는 단어 찾느라 고생)라 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이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마음 아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그렇담 논란의 당사자인 하치만은? 14권에서 보자?

 

맺으며, 소원이란 무엇인가. 각자가 바라는 영원, 갑자기 '그대가 바라는 영원'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나버렸습니다. 청춘 드라마의 한 획을 그어버린 작품이죠.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지(농담 아님). 아무튼 한쪽은 알을 깨는 아픔을 딛고 창공을 날아오르려는 새가 되고자 하고, 한쪽은 날지 않아도 되니 같이 지내자고 하면서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듯 하치만의 소매를 붙잡는 유이의 모습에서 가증을 느끼기도 했군요. 그래서 후반부에 언급되는 각자(유키노와 유이)의 소원은 무엇인가는 이미 답은 나와 버렸다 할 수 있습니다. 필자도 리뷰에서 언급하기도 했고, 다만 이런 작품은 독자의 유추를 배신하기도 하니까 일단 14권이 나와봐야 알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1. 1, 미국 고등학교, 대학에서 매년 개최하는 학생들에겐 매우 중요한 사교파티, 자세한건 검색 해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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