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환수조사원 1
호시노 코이치로 지음, lack 그림, 아야사토 케이시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상의 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

 

이 작품은 '페리'라는 소녀가 박쥐 '토로'와 어둠의 왕 '크슈나'와 함께 세상을 떠돌며 환수로 인한 분쟁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여타 라노벨이나 판타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니콘이나 인어같이 환상 속의 생물 혹은 사람보다 격이 높은 존재를 이 작품에서는 환수라고 하는데요. 페리는 조사원이라는 신분을 부여받아 환수와 인간 사이를 조정하고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환수를 잡아다 가두는 일을 하고 있죠. 그런데 원작인 라노벨을 읽으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건 그녀(페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어디선가 꺼내는 환수를 기록한 책, 아무런 힘이 없는 그녀가 어째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가.

 

이 작품의 원작가 '아야사토 케이시'의 특징이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이고,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걸 특징으로 하고 있죠. 가령 피가 낭자하고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막히고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널 살리면 어떤 의미가 부여되나 하는 것, 이건 이세계 고문 공주라는 작품에서 잘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페리는 힘이 없습니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어둠의 왕 '크슈나'가 그녀를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목숨을 잃을 판이죠. 그럼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습니다. 왜? 그것이 그녀의 사명이니까요. 환수와 인간 사이를 조정하고, 때론 상처받은 환수를 보살펴 주는 것.

 

아무튼 이 작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나.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 세계는 환수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환수는 때론 인간과 같이 살기도 하고, 때론 인간을 공격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서로가 부딪혀 살아가는 이상 트러블이 일어 날 수밖에 없죠. 페리는 와이번의 습격을 받고 있는 어떤 마을에 들립니다. 사람들은 와이번 퇴치를 의뢰하지만 페리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알아가죠.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인간이란 왜 이리 추잡한 생물인가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다친 와이번과 자기들만 살겠다고 죄를 저질러 놓고 오히려 큰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없어져야 될 건 환수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역설하죠.

 

사실 라노벨을 원작으로 하는 만화 중에 작화는 물론이고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 위화감 없이 풀어내는 작품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필자가 누차 언급하는 늑향이라던가, SAO 프로그레시브, 던만추등 주관적이지만 원작보다 더 나은 작품이 더러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어떠한가. 출판사에겐 죄송하지만 라노벨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겠습니다. 위화감이 전혀 없어요. 보통은 스킵으로 인한 갭은 생기기 마련인데 눈에, 뇌리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코믹을 그리는 작가의 표현력이 좋습니다. 사실 라노벨과 달리 만화는 리뷰할 때 본문을 인용하며 해야 읽는 쪽에서 좀 더 와닿겠는데 저작권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군요. 

 

그래도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페리와 토로 그리고 크슈나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잘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페리를 지키려는 크슈나의 살가운 정도를 넘어 밥맛인 모습이라던지 그런 크슈나가 못마땅해서 머리로 들이박는 게 일인 토로라든지, 페리가 크슈나의 머리를 쓰담쓰담 하자 뭘 잘못 먹었냐느식으로 흥분하는 모습은 원작에서는 느끼기 힘들 정도죠. 하지만 천진난만하고 살가운 장면 이면엔 어두운 진실도 숨어 있습니다. 원작을 보신 분이라면 첫 장 크슈나가 욾조렸던 '설마 농치는 것이겠지?' 다음 장에 이어지는 대사에서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을 거라 봅니다. 필자가 원작을 설렁설렁 읽다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장면과 연결이 되어 엄청 씁쓸했군요.

 

이게 원작가의 또 다른 특징이죠. 허를 찌르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 그렇기에 덧없는 아름다움이랄까요. 이세계 고문공주도 그렇고, 이 작품의 페리의 귀여운 겉모습은 그걸 감추기 위한 연극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질이 나쁜 게 중간중간 복선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몇 번을 되풀이 하더라도' 원작을 보신 분이라면 이 대사에서 소름이 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군요. 그래서 원작보다 만화에 더 큰 점수를 주고자 합니다.

 

맺으며, 필자는 원작가(정확히는 작가가 집필하는 작품)와 상성이 맞지 않나 봅니다. B.A.D는 그나마 나았는데 이세게 고문공주는 상성이 최악이었고, 이 작품의 원작도 사실 잘 읽긴 했는데 리뷰 쓸려니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었군요. 그나마 만화는 원작보다 뛰어나서 이만큼을 썼습니다만. 내용과는 하등 관계없는 말만 주절주절 늘어놓기나 하고... 역시 어쩔 수 없는 상성의 문제인 듯합니다. 그래도 만화만큼은 계속 구매할 거지만요. 노파심에서 쓰지만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필자와의 상성 문제입니다. 아무튼 원작은 몰라도 만화만큼은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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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님의 스승님 1 - L Novel
미츠오카 요 지음, 김보미 옮김, 코즈믹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좀 있습니다. 글도 좀 깁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판타지에서 단골로 쓰이는 주제가 마왕과 용사의 이야기죠. 마왕이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을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용사가 나타납니다. 시작의 마을에서 출발한 용사가 동료들을 모으고 갖은 고생 끝에 마왕을 무찌르고 개선을 하는 이야기. 그리고 용사는 공주 혹은 동료 마법사(혹은 성녀)와 결혼해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이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입니까. 요즘은 안 먹히는 것이지만요. 그래서 이 작품이 전 7권으로 완결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참담한 기분이었군요. 아무튼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에선 용사와 동료들에 초점을 맞출 뿐 그 이면에 있는 사람, 가령 용사를 가르친 스승도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은 왜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 걸까 항상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고블린 슬레이어처럼 그의 스승이 간혹 등장하기도 하고, 너에게 더 이상 가르칠게 없으니 하산하라는 정통 판타지도 있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은 파격적인데요. 이 작품은 용사의 스승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윈 버드(이하 윈)'의 시작은 보잘 것 없어요. 그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부모의 지인 여관에서 식모살이를 하였죠. 이 시대의 고아가 식모살이라고 해도 비를 피하고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으면 그나마 나은 신세라고, 5살 어린아이는 벌써부터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일찍이 어른으로 올라설 수밖에 없었던 꼬맹이는 지식을 탐닉했고 모험가들을 흉내 내 기술을 연마하고 그러다 지나가던 '기사'들을 보고 동경의 마음을 품게 돼요. 사람들을, 약자들을 위해 살아가는 기사들은 어린 꼬맹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낼 만큼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이후 윈은 오로지 기사를 목표로 저돌맹진을 해대죠. 그러다 꼬맹이가 소년으로 올라가던 어느 날 운명 같은 만남을 가집니다. 히로인 '레티', 윈보다 두 살 어린 여자애가 수련 중인 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을 계기로 둘은 의기투합하여 열심히 수련을 해대죠. 윈의 뒤를 오빠라 부르며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레티의 모습이 꽤나 귀엽습니다.

 

하늘이 둘을 갈라놓을지라도...

 

용사를 들먹거려 놓고 언제 용사가 나오냐고 하실 텐데, 여기서 정석적인 흐름이라면 소년 윈이 당연히 용사가 되어야겠죠.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가 아닌 그녀를 선택합니다. 세상에 남겨져 홀로서기중이었던 소년과 집안의 무관심으로 세상에 버려졌던 소녀가 같이 지냈던 5년이라는 시간. 꿈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고, 둘이 같이 있었기에 세상에 맞설 수 있었던 시간. 마왕은 이 둘을 시샘이라고 하듯이 세상을 어지럽혔고, 신(神)은 용사가 태어난다는 계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그 용사는 '레티', 집안에서 시종들도 무시로 일관했던 천덕꾸러기 소녀 레티가 용사로 선택되어 머나먼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일이 요상하게 흘러갑니다. 레티는 떠나면서 그와 재회를 기대하지만 윈은 그녀가 시집을 가는 걸로 착각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죠. 이 시대엔 어리다고 해도 여자는 여자라는 듯 정치의 일환으로 시집을 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윈은 그런 줄 알았습니다. 멍청한, 레티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기분으로 마왕과 싸우며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재회했을 때 '소박맞았냐?'라는 망발을 뱉어 낼 땐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더군요. 레티는 그와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구원을 받았어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세상, 부모조차 친자식임에도 홀대하는 그런 집구석에서 정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런데 윈은 매일 찾아오는 자신을 귀찮아하지 않고, 수련도 열심히 같이 하고, 책도 읽어 주고, 응석도 받아주고, 놀아주니 어린 그녀가 나이는 무슨 상관이랴는 듯 사랑에 눈 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죠. 공작(왕 다음 신분)의 계급인 그녀가 평민인 그와 이어질 수 없다는 걸 모른 채. 그리고 용사는 개선합니다. 이때 윈의 나이 16살, 레티가 14살, 참고로 마왕과의 싸움이 주가 아니라 이 작품은 마왕을 쓰러트린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타 작품에서는 전면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용사의 스승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요. 이쯤에서 눈치챘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스승이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 찬밥 신세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죠.

 

윈은 레티를 그렇게 보내고 난후(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시집 간 줄로 알고 있음), 꿈에도 그리던 기사 학교에 입학해 학업에 매진 중이었지만 평민의 신분으로 귀족과 부잣집만 간다는 그런 학교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리 없어요. 당연하게 이지메가 일어나고 그는 태풍에 날려가는 나뭇잎처럼 휩쓸릴 뿐이죠. 그리고 개선한 레티와의 재회, 여기서 그 흔한 양판소로 갈 것이냐 아니면 정통 드라마로 갈 것이냐의 분기점이 아닐까 했군요. 무슨 말이냐면 스승이자 사랑해 마지않는 서방님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그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얀데레가 될 것이냐 순애보가 될 것이냐. 정말 읽으면서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군요.

 

레티는 어떤 길을 선택하였을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나를 적으로 만들게 될 테니까.' ​정말 전기가 통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했습니다. 신(神)에게 선택받은 인간을 누가 말리고 누가 적대할 것이냐.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했던 마왕을 무찌른 용사라는 것은 황제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용사란 말이죠. 그런 용사의 스승이자 사랑해 마지않는 남자를 괴롭혔다는 건 뭐 세계 종말이라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얀데레가 되어 미쳐 날뛴다면 싸구려 작품이 되었겠죠. 조용한 분노라고 할까요. 글로 전해지는 공포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온통 썩은 것만 있는 주변에서 때묻지 않은 주인공을 부각 시키는 연출력이군요. 넓게 보면 권선징악 계열이라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당연히 악역도 나옵니다. '제이드'라는 후작 작위를 가진 윈의 동급생인 남학생의 등장은 윈과 레티의 앞 날에 먹구름을 끼게 하는데요.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악역 귀족 포지션으로 레티를 차지하기 위해 윈을 어떻게 해보려고 그러지만 정작 레티의 성격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불쌍하기 그지없다고 할까요. 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세상이 멸망할 텐데...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그런 성격 때문에 일이 꼬여만 가니 용사라도 무적은 아니라고 역설하기도 합니다. 사실 황제도 어찌하지 못하는 용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윈을 신격화해도 아무 문제없음에도 그러지 않는 모습에서 얀데레와는 차이를 두고 있기도 하죠.

 

맺으며, 사람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비판을 하는데요.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살아야 한다고 현대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주제를 알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죠. 계급사회인 주인공과 히로인이 사는 세계에서 평민인 윈과 용사라는 간판을 빼더라도 공작이라는 지위를 가진 레티가 과연 맺어질 수 있을까? 혹자는 사랑이 있으면 그깟 계급 따위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눈치 없는 놈은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도를 높이죠. 초반엔 눈치가 좀 없긴 했습니다만. 그래서 분수에 맞게 살아라는 주변에서의 무언의 압력에서 그가 느껴가는 갈등은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부질없는 몸부림이지만요.

 

아무튼 순수함이랄까요. 어릴 적 둘이 쏘다니며 그리는 장면은 하나의 동화를 보는 듯했군요. 숲속에서 레티가 흥얼거리고 윈은 곁에서 듣는 장면이라든지. 어떤 일을 휘말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뒷일을 부탁한다'라는 윈의 독백에 응하듯 레티가 '나에게 맡겨'라며 마치 옆에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서로의 의식을 교차 시키는 연출력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했군요. 그리고 악역을 등장시켜 둘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것에선 사실 클리셰이긴한데 원래 사랑이란 장애를 뛰어넘음으로써 비로소 빛을 보게 되죠. 하지만 옥에 티까지는 아닌데 또 다른 히로인 '코넬리아'를 기용하면서 여느 하렘물과 비슷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기도 하였군요. 착한 주인공에 이끌리는 히로인이라는 진부적인 이야기는 흥미도에서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이러면 레티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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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용사는 복수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5 - L Books
키즈카 네로 지음, Sinsora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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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해코지 해놓고 복수 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라고 이번 5권은 이야기합니다. 자신과 다른 모습이라는 이유 하나로 배척하고 괴롭히고 돌을 던지는 행위, 연못에 살던 개구리는 날아온 돌에 생사의 기로에 서고,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의 가족은 복수를 꿈꿉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어찌할 방도도 없이 기나긴 고통의 나날을 겪어야만 했고, 개구리는 개구리일 뿐 인간에게 복수를 꿈꾼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마냥 개구리의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만 남겨 갔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있었으니,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의 마음에 동조하여 보다 높은 곳으로 뛰어올라 개구리는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복수할 기회와 능력을...

 

히로인 '미나리스'가 나고 자란 마을에서 미나리스의 존재란 개구리만도 못했습니다. 수인(토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머니와 그녀는 배척과 돌을 맞아야 했고, 자신들을 보호해주어야할 아버지는 그녀들을 배신하였죠. 소꿉친구 루샤는 같은 남자친구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와 어머니를 마을에 꼰질러서 수인이라고 들통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어머니와 자신, 그때 그녀는 마을과 아버지와 루샤와 그 남자친구를 보며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리고 힘겨운 노예의 생활에서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많았던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하고 그녀는 세상에 혼자 남겨져 버립니다.

 

자, 그녀가 품었을 증오는 범인(凡人)은 헤아릴 수 없겠죠. 필자는 언제쯤 돼야 그녀가 복수극을 펼칠까 정말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야 복수에 대한 정당성은 주인공보다 월등히 높으니까요. 일어나지도 않은 배신을 단죄하고 복수 대상자에게는 뜻 모를 말만 내뱉으니 그 대상자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당사자로서는 부조리의 극치였죠. 물론 미래에 배신이나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잖아요. 단죄란 당사자가 얼마나 속죄를 하느냐에 의의를 둬야 함에도 정작 당사자는 아직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뼈 때려 대니 어리둥절할 뿐이었죠. 그런 반면에 미나리스는 주인공처럼 두 번째 생이 아닌 첫 번째 생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보다 개연성은 충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주인공 일행은 복수에 속도를 내기 위해 마법 국가 '카번헤임'에 찾아옵니다. 던전에서 뭔가를 찾고 렙업을 위해, 그리고 미나리스와 슈리아의 마법 기초를 닦기 위해,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만납니다. 미나리스의 복수 대상자들을, 그리고 찾았습니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마을을. 그녀가 증오를 어떤 말로 어떤 능력으로 풀어낼지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군요. 카번헤임 도시를 들러보던 중 작은 절박함을 무시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겪었던 절박함을, 어릴적 좋아했던 과일을 접하며 향수에 빠져 자칫 마음이 망가질 뻔 일들... 감성적으로 몰입시키는 극중 분위기는 정말 이 작품이 원래 이런 작품이었나 싶을 정도로 애절함이 넘쳐 흐릅니다.

 

좀 더 쓰고 싶지만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미나리스가 어떤 복수를 펼쳐 가는지는 직접 보시기 바라고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서 새로운 '전생자'가 등장합니다. 이건 도서 뒤쪽 시놉시스에서도 언급하고 있으니 중대한 스포일러는 아니겠죠. 이름은 레오네라고 하는군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타임리프를 거치면서 첫 번째 기억을 가지고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그녀, 그래서 만나지도 않은 주인공 카이토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는 있지만 하필 왕녀가 떠벌린 주인공은 악당이라는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1차원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까요. 그래서 발암적인 요소를 대거 보여줍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면서도 정작 그 사람이 안고 있는 아픔과 슬픔은 헤아리지 않아 주인공 대척점에 서게 되는 인물이군요.

 

복수는 아무것도 낳는 게 없다는 둥, 그딴 거 잊고 새로 시작하는 게 건설적이지 않아? 하는 둥, 결정적으로 바보짓 그만하라는 망발을 내뱉음으로써 타 출판사 작품인 회복술사였다면 진작에 주인공(회복술사)에 의해 약에 취해 범해졌을 그런 망발을 마구 내뱉는 장면은 정말 찌릿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화를 낼지언정 레오네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는데요. 사실 이런 장면을 넣는 이유는 주인공이 아무나 막 죽이는 복수귀가 아닌 그래도 인간일 적 마음은 남아 있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복수극을 펼칠 때마다 주변 애꿎은 사람들도 희생 시켰다는 점에서 코미디 같은 느낌도 받았군요. 

 

맺으며, 3권부터였나요. 머리에 꽃 꽂은 성녀가 등장했던 때가요. 이 작품은 정말 제정신이 박힌 인간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요. 성녀도 괜히 머리에 꽃 꽂은 게 아니라는 것마냥 진정 미친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모습에서 이 또한 찌릿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좀 순화해서 언급해보자면 '얀데레'랄까요. 아니 '메가데레'라고 해야겠죠. 이건 뭐 주인공의 여난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아랫도리 사정이니 아무렴 어때요. 결국 주인공은 1회차 인생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2회차에서도 저지르게 되면서 업보를 짊어지게 되었군요.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 6권 리뷰 때 다시 언급해보도록 하죠.

 

아무튼 개연성 없는 주인공 복수극보다 미나리스의 복수극이 매우 와닿는 에피소드였군요. 레오네의 '저 밝은 미래를 향해 우리 뛰어가자'는 스파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줬고요. 사실 레오네는 발암적인 요소이긴 한데 이런 우중충한 작품에서 한줄기 밝은 빛과도 같은지라 욕은 못하겠더라고요. 사실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주인공의 대척점으로 복수보단 삶을 선택하라는 레오네를 기용함으로써 작품의 균형을 잡는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은 방해꾼일 뿐인 그녀를 이용은 해도 어떻게 하지 않는 모습에서 주인공의 미래에 일말의 희망의 끈을 부여해놓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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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의 주인님 1 - S Novel
히구레 민토 지음, 팀에스비 옮김, 나포 그림 / ㈜소미미디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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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에서도 경고 했듯이 스포일러가 강합니다. 알아서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이 작품은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되고 있는 흔한 이세계물입니다.이세계물이야?라고 하셔도 이 작품이 나오던 시기가 그런 시기였으니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아닐까도 싶군요. 하지만 흔한 이세계물 클리셰를 표방하고 있다고 해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성향은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작품의 작가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려고 했는지 이세계하면 치트 킹왕짱 주인공을 벗어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기력한 아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주인공이 아싸인 경우는 참 드물죠. 무늬만 아싸인 경우도 있고, 아무리 비주류 주인공이라도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쁜 히로인이 몇 명이나 붙는 현실과 동떨어진 부조리한 면도 보여 주기도 하였고요. 아직 1권뿐이긴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게 없습니다.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나만 집에 가는 학급 전이, 클래스 통째로 인외전생'이라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한 학급 전체가 이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인데요. 이 작품 또한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여기서 더 진화하여 학교 한 개(대략 1천 명)가 이세계로 넘어가는 황당한 이야기로 이뤄져 있어요. 거기서 주인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서 최하 카스트에 포진하죠. 다른 학생들은 치트를 얻어 조금식 강해져 가고, 개중엔 범상치 않는 두뇌 회전으로 일명 인싸들이 주도해서 콜로니라는 마을을 건설하는 등 학생들을 규합해 나가고요. 이런 부분은 '나만 집에 가는 학급전이'와 '통째로 인외전생'에서 보여준 대목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여기서 집이나 짓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죠. 여기까지 보면 뭐 그 흔한 콩쥐 취급이라는 클리셰라 보셔도 무방할 겁니다.

 

하지만 괜히 나만 집에 가는 학급전이와 통째로 인외전생이라는 작품을 들먹인 게 아닙니다. 이 작품의 공통점은 도덕적 해이, 그러니까 모럴해저드를 들 수가 있죠. 현실 법률이, 자신들을 질서라는 명목으로 구속하던 법률이 없어졌을 때 인간들은 얼마나 추악해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까요. 질서와 무질서가 충돌하고 애꿎은 선량한 사람들만 죽어나가는, 혹은 무질서에 기대어 내  몸 하나 간수하려고 몸도 마음도 다 퍼주는 추잡한 본성이라던지. 아직 사회라는 개념과 법률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그것도 1천 명이나 되는 거대 집단이 자기들이 살던 곳을 벗어나 밀림 한복판에 떨어진다면?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죠. 거기에 힘을 가진, 일명 치트라는 능력에 눈을 떠 힘(권력)을 손에 넣었을 때. 미국에서 이런 걸 실험한 영화가 있었죠? 제목은 생각 안 나지만...

 

주인공 '타카히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폭도로 변한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해야 했고, 얻어맞고 있는 자신을 외면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그만 인간 혐오에 걸리고 말죠. 그렇게 흠씬 두들겨 맞다가 어찌어찌 어떤 동굴까지 기어 오긴 했는데... 죽어가며 다잉 메시지 남기듯 자신을 구타하고 외면한 학생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죽어가던 그때 그는 만납니다. 흔직세의 주인공 나구모에게 유에가 있다면, 방패 용사에게는 라프타리아가 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 타카히로에겐 '슬라임'이 있습니다. 예, 그 롤플레잉 게임에서 최약체로 평가받고 있는 그 몬스터요. 다른 놈들은 그럴싸한 치트를 얻어 가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그냥 필자의 비유적), 눈물이 찔끔 쏟아졌건만 이제야 내게도 치트가 왔구나!!!!!!!

 

주인공 타카히로의 능력은 몬스터 테임, 쉽게 풀이하면 사역마라고 할까요. 근데 아무 몬스터나 사역이 되는 건 아니고, 꼴에 상성이 맞아야 테임이 되는 황당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지죠. 그렇지 않아도 아싸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으로 뭘 어떻게 몬스터를 테임 하라고, 이세계는 조그마한 마물 쥐가 거대 곰을 때려잡는다는 먹이사슬이라는 근본 패러다임을 뒤집고 있는 세계인데. 그러니까 주인공은 마물 쥐도 못 잡는 허약한 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에게 한 가지의 치트를 부여하죠. '상성'이 맞으면 테임이 된다는, 그러니까 밀림을 싸돌아다니다 보면 알아서 테임이 되니 요령껏 해보라는 무책임한 발상을 던져 놓습니다. 그 첫 번째가 운 좋게도 거대 슬라임이라 하겠습니다. 이름은 '릴리', 죽어가는 주인공을 잡아먹으려다 그에게 테임이 되어 버리죠.

 

자, 릴리를 얻었으니 용기백배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찌질한 아싸는 서툰 용기 밖에 내질 못해요. 자신을 두들겨 패던 학생들 때문에 인간들은 믿을 수 없게 된 불쌍한 몸을 이끌고 주변을 정찰하다 뜻하지 않게도 어떤 여학생과 조우하게 됩니다. 이미 숨을 거둔, '미즈시마 미호' 그녀를 릴리에흡수시키는 주인공, 그리고 그녀(미즈시마)로 의태 한 릴리, 표지모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릴리의 몸을 빌려 기억만 되살아난 미즈시마(릴리)에 의해 참담한 현실이 주인공에게 들이대집니다. 모럴해저드, 법률이 없어진 이세계에서 약자들이 처할 현실이란 글로 언급해서 무얼 할까요. 그리고 근처 산장에서 '카토'라는 만신창이가 된 여학생을 구출해냅니다. 현실은 더욱더 주인공에게 인간들은 믿을게 못된다고 역설하기 시작하죠.

 

주인공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을 뺀 나머지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읽으면 읽을수록 찌질한 주인공을 욕하다가 어느새 주인공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했군요. 아무튼 릴리에 이어 '로즈'라는 목제 인형까지 테임에 성공하며 조금식 전력을 늘여갑니다. 그리고 테임에 의한 주종 관계에서 시작되는 맹목적인 관계라고 해도 절대 배신하지 않는 사역마(릴리와 로즈)들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하는 주인공, 얼마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었으면 그들(릴리와 로즈)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내비치니 이 정도면 다른 의미로 불쌍해지기 시작하죠. 그야 몬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형국이니까요. 근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가의 필력인데요. 분명 인간과 몬스터간의 이질적인 사랑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몰입도가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표현력이 딸려서 어떻게 써야 될지 감을 못 잡겠습니다만. 55페이지 미즈시마 미호의 시신을 릴리에흡수시킬 때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지키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참으로 절절하다는 것과 71페이지 릴리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장면은 참으로 드라마틱 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몬스터 주제에 행동력에 있어서 인간에 매우 가깝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너무 심하게 한다는 모순을 후반에 풀어 내면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게 뭣보다 좋았군요. 하지만 이런 점은 매우 불안한 미래를 비추기도 하죠. 그야 얘들 몬스터니까요. 그것도 말을 하게 된 레어를 넘어 유니크한 존재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들켰을 때 어떤 처우를 받을까. 얘들보다 더 강한 치트를 가진 학생들이 널린 이세계에서... 

 

맺으며, 사실 모럴해저드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고 주인공에게 시각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모럴해저드의 희생자들을 만나고, 가해자들을 만나 응징하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본래의 마음, 사람이 사람으로 있기 위한 마음이 망가져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게 하죠. 그 망가진 마음을 릴리와 로즈가 치료해가는 모습도 참으로 인상 깊고요. 단순히 테임으로인한 주종 관계가 아닌 주인공 마음에서 비롯된 참된 만남을 강조하면서 읽는 이에게 감정이입 시키는 재주가 참으로 좋습니다. 정말 몬스터 맞나 싶을 정도로 저마다 특색 있는 성격하며, 산장에서 구출한 '카토'와의 의견 충돌에선 더 이상 인간과 몬스터의 경계는 찾을 수 없었군요. 이건 나쁘기도 하고 좋은 점이기도 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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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에이티식스 4 - Under Pressure, Novel Engine
아사토 아사토 지음, 시라비 그림, 한신남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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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기온]이란 무엇인가. 그동안 리뷰 쓰면서 이것에 대한 설명을 안 했었군요. [레기온]은 지금 신과 그의 동료들이 있는 연방의 전신인 기아데 제국(이하 제국)이 만든 세계 침략 병기입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도 알아서 다 하는 100% 자율 신경(AI)을 탑재 하였죠. 제국은 이걸 바탕으로 해서 마치 자크를 만든 지온이 지구에 선전포고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국의 수뇌부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시민 군'은 궐기를 일으켜 연방을 세워 버리죠. 그런데 이게 말도 못할 병크였으니, 구 수뇌부에 의해 제국 이외엔 싹 쓸어버리라는 명령만 입력되어 있었던 [레기온]은 그 명령에 충실했고, 당연히 제국이 아니게 된 연방까지도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지죠.

 

사실은 제국도 이런 일이 있을까 제어 책으로 [레기온]의 수명을 2년으로 해뒀습니다. 즉, 2년만 참거나 방어하면 인간들의 승리로 끝이 날 예정이었죠. 하지만 궁하면 해답을 찾아낸다고 괜히 AI를 탑재해서는, 이(빨)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수명을 늘릴 방법을 찾았던 [레기온]은 그 해답을 인간에게서 찾았습니다. 2년이 지나면 죽어버리는 자율 신경을 인간의 그것으로 대체하는 것, 이 작품이 시리어스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뇌를 쉽게 말해서 CPU 대용으로 쓰는, 그 뇌를 가진 인간이 우수하면 할수록 더욱 막강해지는 [레기온]이 탄생하죠. 주인공 '신'은 그런 [레기온]에 쓰인 뇌가 내지르는 비명을 듣는 이능력을 가졌습니다. 1권에서 허를 찔렀던 '엄마'라는 대사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아닐 수 없어요.

 

아무튼 신은 2년 전 자신들을 걱정해주고 마음 아파해주었고 마지막엔 길을 떠나는 자신들을 배웅해주었던 '레나'와 다시 재회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던가, 하지만 어떤 언동으로 인해 현실은 비참했고 '신'에게는 평생 따라다닐 흑역사로 남아 버렸죠. 그래도 2년 전 마음을 주고받았던 사이 아니던가요. 그동안 마음을 키워왔던 것을 여기서 다 풀겠다는 것마냥 고양이가 살갑게 장난치듯 신을 대하는 레나의 몸짓과 마음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군요. 공화국은 [레기온]의 대공세를 막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레나는 살아남은 에이티식스들을 규합해 조금 남은 땅을 지키며 버티고 있었죠. 그들이 떠나고 1년하고 6개월 뒤, 연방에 의해 공화국이 탈환되면서 레나는 에이티식스 지휘관으로 연방으로 오게 됩니다.

 

이번 이야기는 레나를 지휘관으로 해서 아직 탈환하지 못한 공화국 일부를 공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단순하게만 흘러가지 않는군요. 우선은 레나가 에이티식스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라 하겠는데요. 그녀는 자신의 나라 공화국이 에이티식스들에게 저지른 죄에 무척이나 가슴 아파하고 있죠. 마치 일본에 우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온통 차별주의자 뿐인 자신의 나라에서 그녀만큼은 그들의 인권과 처우에 불합리를 느끼고 있었는데요. 누구보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점에 너무 과몰입해서 차별하는 공화국에 화를 내도 된다면서도 그들을 하얀 돼지라고 부르는 에이티식스들을 보고 공화국과 똑같은 놈이라고 독설을 날린다는 것이군요.

 

부모 세대가, 형과 누나와 언니 세대가, 이유도 없이 전장에 강제로 불려 나가 죽어 버렸고 자신의 세대에조차 전장에 떠밀려 나가 죽어야 되는 불합리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는 현실을 인격이 형성되는 어린 나이 때부터 격은 이들에게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지금도 국토 일부만 남기고 멸망해버린 공화국 잔존 국민들은 지금 자기들이 이 꼬락서니 인건 에이티식스 무능함 때문이고 여전히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으며 연방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변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에이티식스들이 십수 년이나 받았을 앙금이 해소되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에이티식스)을 바라보는 레나는 그들(공화국)에게 화를 내도 된다면서도 화를 내는 그들을 공화국과 똑같이 취급하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앙금은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슬프다는 레나, 신의 부대에 관제관으로 착임했을 때 보여준 쉽게 생각하는 버릇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할까요. 남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헤집고, 그것을 인지 못해 한소리 듣고서야 겨우 그들이 처한 현실을 자각했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이 안고 있는 진짜 마음과 아픔은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과 모순이 발생하고 말아요. 이 점 때문에 공화국에 있을 때 강등 당하고 그랬으면서, 결국 이 모순된 점은 끝에 가서야 풀립니다. 그들, 에이티식스들이 공화국 나아가 인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그녀가 얼마나 이상론자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이제 어찌할 수 없는 인간 측 [레기온]이 아닐까 하는, 감정이 깎여 나가버린 아이들...

 

그리고 레나 대항마(연적)로 아네트라는 공화국 기술 사관이 연방으로 찾아오면서 결국은 주인공 신의 적은 [레기온]이 아니라 인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아 버립니다. 아네트는 신과 소꿉친구 관계로 공화국이 유색종 차별을 공식화했을 때 그를 배신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가 하던 실험을 이어받아 수많은 에이티식스들을 기술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생체실험을 하였죠. 신에게 있어서 그녀는 [레기온]과 마찬가지로 적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게 특기인지 생체 실험을 뻔뻔스럽게 하면서도 나도 괴롭다느니 신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는 둥, 조금 더 일찍 내 손에 들어왔으면 좋은 실험 재료가 되었을 텐데(이건 자조적으로 한 말)라는 둥 하면서도 어릴 적 그에게 했던 짓(배신)을 사과하고 싶다며 생떼를 부릴 땐 뭐 이런 미친X이 다 있나 싶더라고요.

 

아무튼 그런 자기들만 생각하는 인간 군상들에 끼여 신과 그의 동료들은 아무렴 어때하는 기분으로 [레기온] 지배 영역 공략에 나섭니다. 그리고 신종 [레기온]과 진화하는 [레기온]을 만나면서 신과 동료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죠. 갈려 나간다는 건 이런 건가 싶은 게요. 더욱 막강해지는 [레기온]들을 만나 백전노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에이티식스들도 아무런 힘을 못쓰는 상황에서 인간에게 미래는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죠. 거기에 자신들을 구하러 와준 에이티식스들을 여전히 배척하고 차별하는 데만 급급한 공화국 사람들에게서 사람의 가치관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던지기도 하고요. 그걸 보고 안타까워하는 레나를 보면서 그렇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면 보다 위쪽으로 올라가서 발언력을 높인다는 개념은 없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하죠.

 

맺으며, 레나가 감정이입을 너무하고 있습니다. 여느 라노벨 히로인처럼 주인공이 베푸는 조그마한 호의에 무척이나 감동하는 타입이랄까요. 사실 돌이켜보면 2년 전에 랜선으로만 대화를 했을 뿐 얼굴을 본건 1년 6개월 전이 처음이고 그 뒤 연방에 파견되면서 만나게 다죠. 그런데도 과한 감정이입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정이입이란, 연애의 그것입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뭣보다 자기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주입 시키려는 모습은 조금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상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서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촉구하는 모습은 좋게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아네트는 멸망한 공화국을 버리고 그래도 어릴 적 소꿉친구였는데 하며 버스 갈아타듯 신에게 기대려 하는 모습은 정말...

 

마지막으로 위에서 부정적으로 쓰긴 했지만 사실 레나는 에이티식스를 순수하게 걱정하는 마음에 그들이 인간들과 동화 되도록 이거저거 시도를 해본다고 할까요. 하지만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두 번이나 신에게 지적을 당했으면서도 의욕만 앞서서 조금은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고 말죠. 사실 전투 신이든 신종 [레기온]이든 딱히 상관없어요. 원래 이런 작품에서 등장하는 적은 진화하기 마련이니까요. 중요한 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 묘사이고 이 작품은 비교적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마모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에서 이들에게 미래는 과연 올바르게 풀릴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기도 하죠. 결국은 마왕을 무찌른 용사가 어떤 대우를 받나 하는 물음과도 같습니다. 해피엔딩은 있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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