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의 주인님 5 - S Novel
히구레 민토 지음, 팀에스비 옮김, 나포 그림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 될, 사회적으로도 미숙한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보호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목숨이 위협받는 곳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될 규범이라든지 속박(법률)에서 벗어났다고 했을 때, 이성은 그러지 말아야 된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아담과 이브에서 사과를 따먹으면서 원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식 원죄가 쌓이고 쌓이게 된다면?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아담과 이브에 빗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원죄는 악이 되어 파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죠.

 

주인공을 위시한 1천여 명의 학생이 이세게로 전이한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습니다. 학생들이 처음 도착한 곳에 지었던 마을(콜로니)은 반란으로 인해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학생들을 통솔해야 될 선생님들은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주인공 '타카히로' 또한 사람들을 찾아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죠. 그의 동료이자 권속들인 미믹 슬라임 '릴리'에 이어 나무인형 '로즈', 아라크네 '거베라'와 여우 몬스터 '아야메', 그리고 씨앗 몬스터 '아사리나'와 함께요. 또한 도덕적 해이에 희생당한 여학생 '카토 마나'도 주인공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기나긴 여행 끝에 도착한 틸리아 성체, 이세계는 수해라는, 세계를 잠식하는 숲과 거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과 생존을 건 전쟁 중이었는데요.틸리아 성체는, 집 아궁이에 고구마라도 묻어두고 나왔는지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학생 A와 4권에서 언급했던 세상을 멸망 시키고자 획책하는 학생 B(둘 다 이름 자체가 스포일러이다 보니)가 저지른 광란으로 인해 성체는 시산혈해가 되어 버렸죠. 처음으로 이세계에 와서 비록 종족은 다를지언정 주인공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인간으로 대접해주었던 엘프 '시란' 또한 희생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죽고, 성체는 기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자, 어떡하나. 적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성체가 기능을 상실했으니 더 이상 있어봐야 무의미하고 본진(제도)로 후퇴가 결정되었습니다. 주인공은 동맹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의 고향에 가기로 합니다. 이세계는 마물과 전쟁 중이고 마물이라면 치를 떠는 걸 넘어 증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인공과 그의 권속들은 종교로 치면 이단, 비록 틸리아 성체 공방전에서 인간들 편에 서서 싸워준 주인공이라지만 본질이 마물을 부리는 인간인 이상 인간 세계에 발을 붙인다는 건 있을 수가 없어요. 살아남은 학생들을 용사로 치켜세우며 다 제도(본진)로 모아가면서도 주인공은 따돌림당하는 현실, 아니 그가 거부합니다.

 

인간들보다 권속들과 살아가길 희망하는 주인공, 그리고 거기에 껴보고 싶어 하는 '카토 마나',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를 맞이한 인물이 있다면 '카토 마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녀는 주인공 보다 더한 인간 불신에 빠져 남자 앞에만 서면 혼절을 해버릴 정도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죠. 주인공에게 구출된 뒤 그와 함께하면서 어딘가 공허한, 낡은 모포에 집착하고, 아라크네 '거베라'와 싸울 땐 용기로서가 아닌 거의 자포자기로 몸을 던지는 등 불안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안전한 곳에 대려다 주려는 주인공에게서 밝은 빛을 보게 된 것인지 조금식 마음을 열게 되었죠.

 

거기에 더해 나무인형 '로즈'와 백합 분위기를 낼만큼 사이도 좋아지기도 했고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로즈는 마물이지만)에게 치유받으면서, 언제까지고 상처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가 조금식이지만 앞으로 걸어 나가려 하는 모습은 이번 5권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아니었나 합니다. 공허함을 버리게 된 그녀가 보여주는 여러 감정들 그리고 환한 미소, 하지만 그 미소가 자신(주인공)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주인공의 둔함은 정말 치를 떨게 합니다. 이런 둔한 감정으로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을까 할 정도로 둔한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사실 이런 게 청춘의 한 페이지일 수는 있습니다. 좋아하게 된 이성을 바라보는 두근거림이 있다고 할까요. 근데 개연성이 조금 부족한 건 어쩔 수 없군요. 사실 주인공이 한 일은 그저 카토 마나라는 소녀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는 처음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죠. 카토 마나는 주인공 보다 나무인형 로즈와 친구 먹으면서 오히려 로즈에게서 치유받은 게 더 큼에도 그 마음은 주인공에게 향하는, 그저 작은 호의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작은 배려에서 호감이 쌓이고 쌓인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틸리아 성체를 나서며 다른 길을 가려는 주인공에게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그녀의 말에서 사실 필자는 호감이라기보다 의존증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군요.

 

어쨌거나 치트 능력자 중 최강자 '이노 유나'가 주인공 뒤를 쫓아옵니다. 주인공은 틸리아 성체를 부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혐의를 받게 되었군요. 여기서 말입니다. 자신들이 믿어왔던 용사가 사실은 나쁜 놈이었다면? 멸망의 기로에 서게 된 작금의 시대에 한줄기 빛과도 같은 용사가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수백 년간 일정 주기로 찾아와 자신들을 구원해주었던 용사가 말입니다. 용사는 곧 절대 선이라는 공식에서 용사의 부정은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겠죠. 그래서 정보를 숨깁니다. 그리고 그 혐의는 주인공에게 덮어 씌워졌습니다. 마물을 부리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정령을 부리는 엘프조차 마물 편이라도 매도하는 이세계에서 마물을 부리는 주인공의 입지 따위야. 주인공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부조리한 건 없겠죠.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주인공 뒤를 쫓아온 원정대 탑클래스 '이노 유나'는 주인공에게 적의를 드러내는데...

 

맺으며, 이 작품처럼 주인공을 못살게 구는 작품도 없을 겁니다. 같은 학생들에게 반죽음 당한 끝에 그래도 그런 놈들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는 일념이 마물을 권속으로 부리는 능력을 얻게 해줘버렸고, 그 능력 때문에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는 아이러니, 진실은 사람을 구한 용사 다운 모습을 보였건만 죄인이 되어 쫓기게 되는 옛날 어떤 미드처럼 도망자 신세에 처해지고요. 그나마 힘이라도 있으면 헤쳐 나가기라도 할 텐데 권속은 부려도 정작 본체는 구멍투성이이니 세상 참 공평하지가 않아요. 원래는 주인공이 가져야 될 힘이 한쪽 말만 듣는 편중된 생각으로 똘똘 뭉친 여자(이노 유나)에게 올인 되는 바람에 어떻게 해볼 사이도 없이 뒤지게 얻어맞아야만 하는 부조리는 정신이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겠건만 워낙 둔하다 보니 그럴 생각도 안 드는 듯....

 

이번 5권 리뷰는 카토 마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만. 그도 그럴게 등장인물 중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줘서 임팩트가 강했던 게 이유가 아닐까 싶군요. 얼굴을 붉히는 등 표정 변화에 미소까지 어우러지니 읽는 내내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상처에 주저앉아 있기보다 일어서서 조금식이라도 걸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눈부셨군요. 하지만 그 호감이 향한 주인공의 둔함은 정말 치를 떨게 합니다. 권속에게서 그녀(카토 마나)의 본심에 가까운 말을 들었음에도 그녀의 진심을 알아채지 못할 때는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군요. 주인공은 그녀를 어디까지나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면 끝이고, 그런 약속을 했을 뿐 그 이상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고는 해도 빤히 보이는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건 정말... 그나저나 6권은 발매 출판사 담당자의 말을 빌리자면 언제인지 기약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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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님의 스승님 5 - L Novel
미츠오카 요 지음, 김보미 옮김, 코즈믹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십 년간 마물과의 전쟁,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고통받는 전란의 시대, 일진 일퇴를 거듭하는 전장, 똟려버리는 전선, 후퇴전을 치르면서 솔선수범하여 최후미에 남아 병사들이 무사히 후퇴할 수 있도록 전선을 지휘했던 장군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 장군의 희생은 숭고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희생은 많은 병사들이 살아남아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하였고, 용사의 등장으로 역습에 성공하여 인간들의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뚫려버린 전선의 책임이 상층부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었다고 밝혀지면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요(실상은 아니지만). 전선의 한 축을 담당했던 다른 장군을 빼내어 후방으로 돌리는 바람에 지휘 계통에 혼란이 생기고 그 틈을 노린 마물들이 치고 들어온 결과 많은 땅을 빼앗기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희생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전란의 시대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부조리한 죽음이었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이드후드루프 후작'의 아들 '제이드'는 부조리한 어머니의 죽음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래가 촉망받는 장군으로서 전쟁이 끝나면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반짝반짝 빛을 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머니의 죽음, 그는 아들로서 어머니를 부조리하게 사지로 내몬 자신의 나라 렘르실 제국을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여기까지 보면 그가 복수심에 불타는 것도 응당 정당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어머니의 부조리한 죽음은 구실일 뿐 그의 진짜 목적은 국가를 전복하고 자신이 왕이 되고 싶다는 그릇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읽다 보면 어떻게 숭고한 정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런 못난 아들이 태어났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 가죠.

 

그래서 이 작품의 교훈은 이것이 아닐까 했는데요. 가정교육의 필요성, 아비 되는 후작놈도 부모에게서 뭘 배웠는지 죽은 와이프의 전공을 등에 업고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 되어 나라를 주무르다시피 하고,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아들놈에게 용사 레티를 와이프로 맞아들이라는 둥, 아들놈이 국가 전복을 시도하고 있는데 말릴 생각보다 편승하고 자빠졌으니 죽은 부인(엄마)만 불쌍한 지경이죠. 제이드는 처음부터 이 작품의 악역을 자처했더랬죠. 전형적인 귀족 사상에 찌들어서는 용사 레티의 스승 주인공 '윈'이 기사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창피를 주고, 나라를 바로잡고자 일어났던 기사들의 반란에 편승해서 정적을 없애고, 왕녀 '코넬리아'를 납치하는 등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후작이라는 권력은 그의 나쁜 버릇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가 썩었다지만 왕족도 마냥 손놓고 있지만은 않는데요. 이에 대항해 왕자 '알프레드'와 왕녀 '코넬리아' 그리고 윈과 용사 레티는 제이드의 야욕에 맞서서 하나하나 증거를 모으고 아지트를 급습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을 해나갑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마왕을 무찌른 용사 레티가 나서면 모든 게 끝나버릴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죠. 용사란 인물은 세상 그 어떤 나라에도, 황제 앞에서도 무릎은 꿇지 않습니다. 용사는 신(神)탁에 의해 결정이 되고, 그것은 곧 신이 선택한 그야말로 신의 대리인이라는 뜻으로 용사의 말을 거역하는 건 곧 신의 말을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사 레티는 사실 좀 발암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녀가 진심을 다하면 나라 하나는 우습게 멸망 시키고도 남죠.

 

그녀가 본진에 쳐들어가 수괴의 목을 처 버리면 아무리 난다 긴다는 귀족이라도 신의 대행자인 그녀를 막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하지 않는 이유는 윈이 바라지 않으니까. 용사가 인간을 향해 힘을 쓰면 또 다른 마왕이 탄생하는 거라고, 이것으로 모든 걸 설명해버리죠. 그래서 모든 증거가 모였음에도 제이드의 반란을 눈앞에서 보고도 진압을 못합니다. 그 약점을 비집고 들어와 윈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해도. 오로지 윈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 세상에 버려져 단 하나 의지가 되었던 사람, 이젠 세상 누구보다 사모하는 사람, 근데 정작 용사의 모든 호감을 받고 있는 '윈'은 그녀의 바람을 애써 모른척할 수밖에 없어요. 나란히 어깨를 같이할 그릇이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각을 하고 있죠. 하지만 용사는 그걸 바라는 게 아닌 이성으로써의 호감을 내비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둔함이라는 것이군요.

 

아무튼 반란의 수괴들을 끌어 내기 위해 왕자 '알프레드'는 결단을 내려 갑니다. 그는 용사 레티와 그녀의 스승 '윈'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있죠. 용사 레티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윈을 보호하기 위해 평민인 그를 동생 전속 종사로 발탁하는 등 깨어있는 지식인이라고 도 할 수 있군요.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고, 보통 아무리 한 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왕좌를 놓고 정적이 될 수밖에 없음에도 동생 '코넬리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자상한 오빠이기도 합니다. 그 오빠의 영향 때문일까요. 제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유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윈 일행을 따라다니며 누구나 다 꺼리는 빈민가에 들어가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선군이 되기 위해 다짐해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자, 전란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맺으며, 왕녀 코넬리아가 치고 들어오면서 레티의 연애전선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왕자 알프레드는 동생(코넬리아)을 기꺼이 윈에게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입장을 명확히 해야 될 주인공 윈은 둔함으로 무장해서 '난닷데?(뭐라고?)'의 성향을 보이는 것에서 답답함을 선사합니다. 동료의 지적에 겨우 둘(레티와 코넬리아)이 자신을 어떤 감정으로 쳐다보는지 알게 되었지만 정작 그럴 그릇이 되지 않는다고 또 자기 비하하는 통에 참 거식한 전개라랄까요. 사실 제이드의 반란은 어딘가 동떨어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같이 느껴지고 실제의 이야기는 이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라와 이페리나의 이야기라던가, 윈이 구해준 하프엘프 세실이 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라든지... 그리고 윈을 바라보는 레티와 코넬리아의 애틋한 마음이라던지, 그리고 진가는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물 마시는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이군요. 이 작품은 이런 걸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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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2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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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좀 심각한 스포일러가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글도 좀 길고요.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자, 여러분이 만약 약혼을 하였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은 채 파기해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이 작품의 히로인 '알리시아(표지)'는 서키스타라는 나라의 둘째 공주로 자라나 어릴 때부터 주인공 데닝의 약혼자 포지션으로 지내 왔었죠. 그러나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한 유아시절 때 그 데닝에게 전속 종자 샬롯(메인 히로인)이 붙으면서 일이 틀어지게 됩니다. 이 미친X이 글쎄 느닷없이 파혼을 선언해버린 것인데요. 그리고 온갖 망나니 짓을 저지르는 통에 그렇지 않아도 파혼이라는 굴욕을 겪었건만 알리시아는 이런 인간과 약혼이라는 이력까지 붙어 버렸으니 그녀의 미래는 참담하기 그지없었겠죠. 그렇지 않아도 왕녀라는 프라이드가 있는데 그녀가 느꼈을 분노는 꽤 컸지 않을까요. 자신을 버린 남자, 그런데 집안끼리 정략결혼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그녀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가 다니는 마법학교에 입학을 하게 돼요.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에게 눈길 하나 안 주고 있지 뭡니까. 부아가 치미는건 어쩔 수 없었겠죠. 그래서 여보란 듯 '슈야'라는 남자를 옆에 끼고 데닝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댑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돼지 돼지라고 놀리는 수준이 아니라 비하를 해대고, 인간 취급도 안 해줘요. 여기서 문제는 돼지 데닝이 왜 자기와 파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받은 충격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일단 주인공이 이유를 입 밖에 내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된 거긴 한데, 시종일관 주인공 주위를 맴돌면서 창피를 주는 모습은 참으로 발암 그 자체로 다가옵니다. 주인공 데닝도 지은 죄가 있어서 줄곧 저자세로 나가는데 니 모습은 줏대 없고 배알도 없고 발암적인 게 아주 쌍으로 보는 이를 미치게 만들어요. 이번 2권은 줄곧 이런 발암적 전개가 펼쳐지는데요. 사실 돌이켜보면 다 주인공 때문이라 할 수 있어요. 

 

샬롯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정보를 주며 알리시아를 달랬으면 돼지라 비하 당하는 것에서 최소한 인간으로 승격을 해줬을 거란 말이죠. 모르니까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니까 부아가 치미고, 그런데도 일말의 희망 때문에 버리지는 못하겠고, 알리시아의 폭주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합니다. 이번 왕녀를 수호하는 '가디언 세리온 - 수호기사 선정시련'이라는 시험에 '로열 나이츠(왕실 기사단)'의 기사 두 명이 마법학교 근처 도시에 찾아와요. 그 기사 중 한 명이 알리시아의 알현을 요청하게 되죠. 주인공 데닝은 이미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는지라 기사의 알현 요청에 뭔가 안 좋은 일을 예감합니다. 그래서 말리죠. 가지 말라고, 근데 그 도시에 알리시아가 속한 왕족을 죽인 범인들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면서 애가 눈이 돌아가요. 정말로요. 주인공의 말리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매도당할 뿐입니다.

 

그래도 한때 약혼자였던지라 모른 채는 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자신도 선정시련에 뽑힌 것도 있고 해서 같이는 갑니다. 그게 또 못마땅한 알리시아, 이래저래 지켜주려는 그의 마음을 정말 눈곱만큼도 알아주려 하지도 않죠. 아무튼 도시에 도착해보니 주인공의 안 좋은 예감은 조금식 맞아 들어가고, 그에 따라 알리시아에게 경고를 하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나아가 알현을 신청한 훈남 기사에게 빠져서는 조사하러 나간다는 미명 아래 그 기사와 데이트를 즐기는데 이건 주인공의 질투심을 끌어내려는 걸까. 얼굴까지 붉히며 여보란 듯이 데이트를 즐기는 게 보는 이에겐 그저 발암 그 이상은 아닌 시추에이션이라는 것이군요. 주인공이 무슨 말을 건네면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더욱 심한 매도를 퍼부을 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질 않아요. 근데 여기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 하며 뭔가 하나를 유추하게 만드는데요.

 

이거 분명 알리시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주인공이 구해주면서 마음을 연다.

 

필자는 이걸 유추하고 머릿속에 딱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앙?' 이거 언제 적 시나리오인가. 이젠 개도 물어가지 않을 이야기를 여기서 하겠다고? 읽어가면서 필자의 불안은 점차 현실이 되어 가더군요. 주인공에게 버림받은 과거에 대한 짜증과 일말의 마음을 품고 그를 찾아왔더니 눈길 하나 안 주는 것에서 치미는 부아, 그리고 왕족이라는 입장에서 모범을 보여야 되는 그녀에게 있어서 왕족을 죽인 범인을 눈앞에 놔두고 모른 채 할 수 없다는 프라이드, 근데 이건 알고 있는가? 1권에서 용병에게 붙잡혀 힘 하나 못 썼던 것을, 마법에 뛰어난 왕족을 죽인 범인이 1권에서 나온 용병보다 약할 리가 없잖아요. 그녀에게서 느끼는 발암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가 품고 있는 짜증과 부아는 순정만화에서 흔히 보는 러브 코미디라 치부할 수 있어요. 서투른 연애를 하는 소녀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실제 그렇기도 하고요.

 

근데 이 꽉 막힌 왕녀(알리시아)는 자신의 실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속어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운데요. 아무튼 이미 주인공 데닝이 그녀에게 알현을 신청한 기사가 의심스럽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데닝은 그 기사가 미래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미래의 일을 밝힐 수는 없었고, 그래서 말렸건만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질투하냐는 빈정거림이 돌아오니 이거 참 주인공이 뿌린 씨앗이라지만 참 보살이라는 느낌을 받았군요. 이쯤 되면 난 몰라 하고 가버릴만 하건만, 저자세로 나오는 주인공도 참 발암적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나버리고 위에서 필자가 유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집니다. 발암의 완성이랄까요. 궁극적인 발암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자신(알리시아) 때문에 애꿎은 사람이 죽을뻔하였는데도 반성의 기미는 없고, 그렇게 말렸건만 안중에도 없더니 납치된 자신을 구하러 와준 주인공에게 '구해줘'라니 이건 아니잖아요. 작가님?

 

발암의 완성판에 총체적 난국도 가미되어 있어요. 알리시아가 주인공 데닝에게 쌀쌀맞게 구는 차원을 넘어 인간 취급을해준 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함이었으니 그렇다 쳐요. 아닌 게 아니라 샬롯과 같이 먹고자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에게 얼마나 질투를 해대는지 서투르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애달프게도 하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앞 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우둔함, 아무리 싫어한다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조언하는 것까지 매도하며 거부하는 것에서 서툴다 와 애달픈 연애 감정과는 다른, 글자 그대로의 발암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언을 하고 말리고 했는데도 반발심에 나섰다가 주인공이 예고한 것처럼 된통 당해놓고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데다 '구해줘'라는 정말 최악의 쓰X기 히로인으로 선정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군요. 근데 이것만해도 벅찬데 여기에 메인 히로인 샬롯도 이 발암 전개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발암적 전개에서 주인공도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주인공도 주변에 말하지 않은 것이 있고, 그저 상대가 싫어할 테니 말하지 말아야겠다 행동하지 말아야겠다라며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샬롯과 연관되면 더욱 말을 아껴버리죠. 그래서 샬롯 위주로 생활하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가 보내오는 신호를 수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리시아는 나 좀 봐줘라 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던 것이죠. 그게 돼지라는 비하와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것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관심을 끌기 위한 아이 같은 행동이었음에도 인지를 못하는, 그래서 알리사아는 더욱 나대기 시작했고 사고가 경직되어 일을 저지르고 말아요. 그래서 발암적 전개라고는 했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히로인이랄까요. 그래도 필자는 납득이 되지 않고 있지만요. 샬롯도 주인공 데닝의 곁을 지키려면 지금보다 성장해야 된다며 전장이 될 어느 장소에 가는 주인공을 기어이 따라가려는 모습도 알리사아에 버금가는 발암 캐릭터랄까요.

 

맺으며, 모두가 발암입니다. 서로가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로 인해 짜증을 내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랄까요. 사람은 이유 없이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고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니 시비를 거는 것이고, 그걸 알아내 고쳐야 되는데 이 작품엔 그게 없어요. 그래서 발암이 되어 버리죠. 알리시아가 왜 시비를 거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는 주인공, 주인공이 왜 자기를 버리고 샬롯과 살아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알리시아, 그런 게 부딪히고 감정이 격해지고 그러다 내 마음을 몰라 주니까 짜증이 나네? 현실에서도 간혹 그런 경우 접하잖아요. 내 마음을 몰라 준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 거기에 동참하겠다는 듯이 자신을 지켜 주려는 주인공에 반발하는 식으로 실력은 개뿔도 없으면서 전장이 될 장소에 따라가려는 샬롯,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서 3명(알리시아, 주인공 데닝, 샬롯)이 만나 약속된 전개라는 것마냥 발암은 완성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말이죠.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2권은 프롤로그이고 3권이 본편이 아닐까 하는 왕녀(알리시아 말고)의 등장은 주인공 앞 날에 또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 정말 발암으로 책을 집어던질뻔하다가도 이렇게 흥미를 끄는 통에 하차를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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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7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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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엔 꽤 심각한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글도 좀 길고요.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스포일러에 관해서는 경고 했습니다.

 

 

 

 

꼴보기 싫으면 그냥 도망가 버리면 될 것을, 사실 마오마오의 친아버지는 정식 혼례를 올린 건 아니었지만 와이프와 자식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는 나라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파견 나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가야 되는 입장이었죠. 근데 금방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던 파견은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돌아왔지만 모든 게 파탄이나 있었습니다. 와이프는 버림받았다는 충격과 직업적(기녀)으로 돌림 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 병에 걸려 망가져 있었고, 딸은 약과 독에 미처사는 괴짜가 되어 있었었습니다. 게다가 어미는 남편을 저주한답시고 딸의 새끼손가락까지 잘라 버렸는데다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않았으니 마오마오가 부모를 곱게 볼 수가 없었죠. 뭐 그래도 정은 있어서 병저 누워있는 엄마를 보살피기는 했습니다만.

 

마오마오는 서도와 도성에서 리슈 비를 노린 암살을 막고, 무녀가 곳곳에 뿌리고 다녔던 사건들을 겨우 끝내놓은 지금 이제야 본연의 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궁에서 가오슌이 찾아오면서 평온한 나날은 물 건너 가버리고 맙니다. '진시'가 찾아올 줄 알았더니만 몇 달 전 쿠데타의 여파로 인해 그도 이젠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없게 되었죠. 환관이 아닌 왕의 동생으로써 집무를 보아야 되는 그는 서류에 파묻혀 사는 통에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얼굴을 그리 내비치지 못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짤막한 등장에서 그는 대형 이벤트를 터트려 버리는데요. 이건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고, 아무튼 가오슌에게서 뜻밖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관녀' 시험을 보지 않겠냐고, 예전에 한번 시험 쳤다가 낙방했던 그 시험을 다시 응시해보라고 합니다.

 

갈등, 약과 독이라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미처사는 그녀에게 있어서 궁은 보물고나 다름없어요. 의국에 가면 널린 게 약초이고 거기에 사는 돌팔이 의관은 진즉에 마오마오 편인데다 환자들에게 마음 놓고 임상실험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하지만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덥석 문다면 인생이 파탄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씰룩씰룩, 좋아서 입꼬리는 올라가는데 역시나 미끼가 근사한 이유가 있었다는 듯 가오슌이 꺼낸 다른 말에서 관녀 시험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되어 버립니다. 유능한 것도 이럴 때는 참 고달파요. 그동안 도성에서 많은 일들을 해결했고, 신분을 감췄다고는 하나 황제의 동생(진시)을 구해준데다 황후 마마의 뒷바라지, 황제의 총애를 받던 상급 비(리화 비)를 살려주고, 궁극적으로 왕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쿠데타도 얘가 납치되는 바람에 해결할 수 있기도 했고요. 리슈 비 암살 미수 사건을 해결하고 나라를 어지렵혔던 무녀를 잡아들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죠. 자, 어째서 이런 애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가. 요직에 앉혀 국정을 돌보게 한다면 나라에 얼마나 이익이 될까. 이건 황금을 낳는 오리보다 귀중한 인재이 건만, 왜 기루(창관)에 살도록 내버려 두는가. 그건 그녀의 친아버지 때문, 뭐 진시도 그녀가 새장 속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적극적으로 등용하지 않고 있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샤오'라는 멀고 먼 서쪽의 나라에서 '아이린'이라는 이국의 여성이 중급 비로 궁에 들어오게 되면서 관녀 시험의 진짜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마오마오는 이전부터 '아이린'과 접점이 있었죠. 아이린이 특사로 리국(마오마오가 사는 나라)에 찾아올 때부터, 그리고 서도에서의 여러 사건 등에서...

 

요컨대 그동안 네가 해왔던 것처럼 탐정이 되어 사건의 냄새가 나지 않는지 알아봐 달라 뭐 그런 것입니다. 이전 쿠데타에서도 샤오라는 나라와 연관이 있었고, 서도와 도성에서 리슈 비 암살 미수 사건도 연관이 있었고, 종합적으로 보면 내 나라를 어지럽힌 옆 나라에서 고위직 여성이 중급 비로 궁에 들어왔다. 뭔가 냄새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거죠. 마오마오 입장에서는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황후+황제+진시 3인의 추천장이 도착해 있습니다.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로부터 시험 준비라는 지옥의 행군, 약과 독 밖에 모르는 편향적 돌머리에 교양을 심어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평소엔 먹을 거 하나 제대로 안 주던 녹청관(창관, 마오마오가 살고 있는 곳) 도깨비 할멈까지 나긋나긋한 게 대체 이 할멈에게 뇌물을 얼마나 먹인 거냐고 자조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렇게 궁에 다시 입궐하니. 애초에 시험 볼 필요가 있었나. 친아버지는 궁에서 누구도 터치 못하는 심지어 황제도 손 놔버린 괴짜, 진시(황제 동생)라는 뒷배, 양아버지도 비록 환관이지만 의관으로써 높은 지위, 황후 마마는 열혈한 마오마오 신도, 황제도 그녀를 좋게 보고 있지, 황후 마마와 정적 관계여야 할 상급 비(리화 비)까지 아군이고, 그 외 기타 등등, 연줄로서 이보다 좋은 건 없지만 그래도 그럴수록 시험은 제대로 보고 들어와야겠죠. 뭣보다 마오마오가 그런 걸 싫어하니. 그리고 보물고나 다름없는 궁이긴 한데 어딘가 답답하고, 꼴보기 싫은 친아버지와 그 친아버지와 쌍벽으로 싫은 '진시'가 있는 곳, 하지만 그런 인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오만방자할 수는 없죠. 까라면 까야 되는 천민의 신분이다 보니 시험 치고 들어오라는데 가야죠.

 

그렇게 시험 치고 들어오니 이번엔 관녀들 사이 괴롭힘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오마오는 참 고달풉니다. 관녀라고 해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귀족이나 대상인의 자녀가 들어오는 곳에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가 들어왔나 싶었을 테죠. 아무튼 말이 관녀 시험이지 본직은 의관 보조, 결국 '아이린'의 동향을 캐기 위해 마오마오를 입궐 시키기 위한 임시 편성으로 만든 관직에 지나지 않다는 것, 여기까지는 좋아요. 관녀가 되어 허드렛 일하는 것보다 의국에서 약초를 만진다면 다른 건 다 잊을 수 있으니. 근데 돌팔이 의관이 있는 후궁 쪽이 아니라 무관들이 있는 의국에 배정되면서 마오마오는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입니다. 뭣보다 매일 찾아오는 친아버지의 기행은 정말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이고 급기야 식중독에 걸리면서 마오마오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릅니다.

 

 

마오마오 나이 19세, 이 시대 평균 혼인 나이 20세, 슬슬 나도 결혼해야 될까 하는 생각에 잠기면서 나도 아이를 낳는 것일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쯤은 낳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근데 누가 괴짜의 딸이 아니랄까 봐. 애 낳는 고통과 현실보다 태반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에서 그녀의 성격이 얼마나 편향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했군요. 환자에게 줄 약 바꿔치기하려 하지 않나, 친아버지의 발목에 줄을 매달아 통제를 하고, 코를 킁킁대는 거 보고 개 같다(욕 아님, 비유적)라느니, 여전히 괴짜스러운 면은 아비나 딸이나 씁쓸하면서도 배꼽을 잡게 해줍니다. 그래도 식중독에 걸려 다 죽어가는 친아버지를 보살피는 등 아주 냉혈한은 아닌 것에서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린'과 샤오에서 온 무녀(이때까지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무녀와 다른 무녀)에 관련된 이야기도 짬짬이 들어가 있지만 이건 사실 여느 탐정물처럼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이 되고 하니 일부로 언급은 하지 않았군요. 몇 권에 걸쳐 있어왔던 연속된 사건들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할까요. 사실 그것보다 이 작품의 최대 흥미 포인트는 마오마오를 중심으로 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얽히면서 웃고 떠들고, 알게 모르게 친구들도 늘려가고, 실력을 인정받고, 간간이 약과 독에 미친 괴짜의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섬뜩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시와의 관계, 처음엔 그저 호기심에 시작된 진시의 찝쩍거림은 어느새 호감으로 변했지만 정작 마오마오는 도망가기에 바쁜 것에서 흥미를 돋아 줍니다.

 

맺으며, 진시가 드디어 한 발짝 더 다가섰습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듭니다만. 안 보이면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 안 고 싶고, 그렇게 감정을 키워갔던 진시가 드디어 한 발짝 내디뎠습니다. 보통 이런 분위기면 여자든 남자든 흥분하며 기뻐해야 되잖아요. 아니면 거절하던가. 근데 정작 마오마오는 기쁨보다는 일냈다는 생각뿐, 정말 진시가 불쌍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마오마오가 왜 이런 내색을 보일까. 그건 속박되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들꽃 같은 아이' 이번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딱 이런 느낌입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진시의 대시에도, 황후 마마의 시녀 자리에서도, 관녀 시험도 내 의지가 아닌 타의에서 시작된 것, 그동안 줄곧 이런 성격이었죠.

 

싫은데도 명령이라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 자식을 지켜줘야 될 친아버지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노망나기 일보 직전, 진시는 자꾸만 들이대고,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사건이 일어나고, 개중엔 목숨이 왔다 갔다, 오죽하면 죽을 때 새로운 독을 먹고 죽고 싶다고 할까요. 자위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번엔 양아버지와도 의견이 갈리는 등 마음고생을 참 많이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맥 차원에서 마오마오만큼 좋은 히로인은 없지만, 불행으로 따지면 이보다 더 참혹한 히로인은 없을 테죠. 누구나 기대기만 하고 그녀를 받쳐주는 이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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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탄의 왕과 바나디스 17 - Extreme Novel
카와구치 츠카사 지음, 카타기리 히나타 외 그림, 한신남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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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쪼매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그리고 자세한 설정은 나무위키에서 찾아보면 나옵니다. 초반도 아니고 17권인 시점에서 뭔 소리인지 모를지도 몰라요.

 

 

 

 

꿈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거지. 누군가가 너는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것입니다. 나라를 세우고 싶다 같은 거창한 꿈, 건강하게 오래 살 고 있다는 꿈,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 그리고 수줍게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져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꿈, 여기 그 소소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도 전에 꽃잎을 다 떨어트려버린 친구의 부탁이 있습니다. 병에 몸져 누워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물과 싸우며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불살랐던 친구의 마지막 부탁, 5년 전 양아버지에게서 입이 닳도록 들었던 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라는 말과 친구가 하지 못했던 일의 부탁을 가슴에 품고 '에렌'은 과거의 망령과 마주합니다.

 

아, 표지는 한때 로리라고 말을 들었던 '올가'입니다. 지스터트에서 왕 이외에는 명령을 듣지 않는, 7명 밖에 없다는 '공녀'죠. 공녀의 무력은 일기당천쯤 되고요. 올가도 자기보다 더 큰 도끼를 들고 무표정하게 전장에서 마구 날뛰는 전형적인 피치컬 걸이 되겠습니다. 어쩌다 만난 주인공 티글과 여행하며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티글의 아이를 갖겠다고 공언하면서 주변을 아연실색케 했죠. 지금은 15살이 되어 로리를 졸업해버렸습니다. 이번에 이 작품에서 줄곧 티글을 괴롭혀온 최대 흑막이자 만악의 근원 중 하나인 마물 '가늘롱'을 만나 다른 공녀와 힘을 합쳐 싸웁니다. 그녀의 피치컬이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어째서인지 뜸을 덜 들인 보리밥처럼 입안에서 조금 헛도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잘 싸워줘서 티글에게 도움은 되었군요.

 

에렌은 5년 전 악몽이자 망령 '피그네리아'와 마주합니다. 양아버지를 죽인 원흉, 어째서인지 피그네리아는 사샤의 뒤를 이어 용기 발그렌의 선택을 받아 '공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필연적으로 에렌과 마주치게 되었고, 에렌은 양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그녀를 용서할 수가 없었죠. 거기에 피그네리아가 품고 있는 이념과 사상의 차이로 인해 에렌과는 물과 기름, 사실 양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아니어도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둘은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게다가 피그네리아는 지스터트의 내란에 협조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터라 에렌으로써는 어떻게든 그녀를 막아 세울 수밖에 없게 돼요. 하지만 몇 년을 더 살았고, 용병으로서도 선배인 그녀(피그네리아)의 실력은 압도적이었으니 단숨에 에렌은 궁지에 몰려갈 뿐입니다.

 

사실 부제목으로 조용필 선생님의 노래 '킬리만 자로'에 나오는 가사 중 '불꽃으로 타올라야지'를 쓸려고 했습니다.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이 딱 그래요. 지금은 공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떠받들어주고는 있지만 그 이전엔 들개처럼 온 곳을 돌아다니며 하이에나처럼 전장의 개가 되어 살아왔던 두 공녀(에렌과 피그네리아), 그런 두 공녀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싶다는 열망, 용병으로서 이곳저곳을 떠돌지 않아도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 꿈을 위해서 높은 곳을 오르는 걸 마다하지 않으려는 에렌과 피그네리아, 하지만 둘이 품었던 같은 꿈에서 결정적인 어떤 차이를 드러내며 싸움의 향방이 결정되어 갑니다. 모든 것을 불사른다. 목숨을 걸고 이상을 위해 걷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에렌이든 피그네리아든, 사실은 누가 악이고 정의라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정의란 사람의 수만큼이나 있으니까. 용병으로서 전장에 만나 이기고 졌을 뿐, 그리고 내 이상을 상대가 이해해줄리 없을 터, 그러니까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에렌과 피그네리아를 옳아맵니다. 그런데 용기 발그렌은'피그네리아'를 차기 공녀로 선택하였는가. 이 싸움에서 에렌은 양아버지가 평소에 해왔던 말을 간신히 떠올립니다. 양아버지가 그녀와 그녀의 부관 리무에게 했던 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라는 말, 그리고 죽은 친구 사샤가 했던 말, 용기 발그렌은 어쩌면 전(前) 주인 사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피그네리아를 새로운 주인으로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렌에게 과거의 망령과 마주해서 뛰어넘어 지금 어딘가에 있는 티글을 찾아가라는, 내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슴이 좀 먹먹해진다고 할까요.

 

그런 티글은 어디에 있냐면, 마물 '가늘롱'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브륀을 내란으로 빠트린 장본인, 그리고 예전에 티타의 몸에 현현하여 티글에게 검은 활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했던(아마도) 밤과 어둠과 죽음의 여신 '티르 나 파'를 지상에 현현 시켜 세상을 혼돈으로 물들이려는 장본인, 두 개의 싸움이 종지부를 찍으려 합니다.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 그리고 가늘롱과 세상의 명운을 걸고 싸우려는 티글, 여기서 여신 '티르 나 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면 글이 길어지니까 자세한 건 나무위키 같은 데서 검색해보시기 바라고요. 요점정리를 하자면 주인공 티글은 그동안 흑막이었던 보스를 만나 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티글의 조상도 밝혀지지만 결국은 조상이 숲에서 주워온 활 때문에 후손인 티글이 고생하게 되었다는 것이군요.

 

아무튼 한고비 넘기니까 새로운 고비가 찾아온다고 했던가요.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듯, 공녀 '발렌티나'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세상에 잘 나오지 않았던 부뚜막 고양이 발렌티나가 물밑에서 꾸며왔던 음모가 피폐해진 티글과 에렌을 위시한 다른 공녀에게 들이밀어지는데... 어서 빨리 18권을 보고 싶은데 언제 나올지...

 

맺으며, 뭐랄까 다음 18권이 마지막이다 보니 작가가 서두르는 감이 있군요. 결말을 빨리 내려다보니 감정 표현에 있어서 답답한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에서 모든 걸 불사른다가 무엇인지 보여주긴 하는데 감정이입이 될만한 대사가 거의 없어요. 그저 유추해서 음미하라는 불친절만이 있습니다. 다만 에렌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대목은 사샤와의 인연을 생각나게 해서 좀 먹먹하게는 했습니다만. 그리고 가늘롱과의 전투에서도 '티타'를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음에도 작가가 밀어주고 있다는 말을 무색게 할 정도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은 참... 그건 그렇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에렌의 부관 리무가 되겠군요.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에서 주군인 에렌을 지키기 위해 분전을 하며 그녀 또한 온몸을 불사르는데... 스포일러라서 더 이상 언급은 힘들고 18권에서 기회가 되면 또 언급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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