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낙원 - JM 노벨
미즈시로 미즈키 지음, 김하연 옮김, 나마니에 일러스트 / 제우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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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레일란트 대미굴' 이름 그대로 광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던전을 의미한다. 강력한 마수가 서식하고, 각종 약초가 자생하며, 빈곤한 모험가들에게 일확천금을 선사하는 곳이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 동반하고, 언제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 주인공 '윌'은 동료들과 심층에 내려간다. 돈을 벌기보단 모험의 호기심으로 남들은 가지 않은 심층 영역에서 새로운 발견을 꿈꿔 봤을 것이다. 자만이나 오만은 없다. 다들 그만큼 실력이 있기에.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불합리하고 갑작스럽다. 심층에서 맞닥트린 강력한 마수에 의해 하나둘씩 동료들은 유명을 달리하고 주인공 또한 삶의 의지가 꺾인다. 실력이 있는 동료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마수를 맞이해 주인공은 그저 무력하다. 이렇게 한낱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을 거 같던 주인공이 피웅덩이에서 죽어가던 그때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있었으니, 이 작품은 이렇게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이 술에 빠져 지내다 다시 던전에 들어가 과거를 청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재난 영화의 주인공처럼 옛 동료를 그리워하고, 주인공만 살아온 것에 주변의 지탄을 받다가 과거 주인공이 겪었던 것처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게 되는 구국의 영웅을 그리는 거 같다. 근데 사실 아니다. 물론 죽어버린 옛 동료들을 그리워하긴 한다. 하지만 죽어버린 건 죽어버린 것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나 싶다. 이야기는 2년 전 던전에서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준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술집에서 들려오는 탐굴가(모험가 부류)들의 노가리성 이야기에 언뜻 들리는 소문, "상반신은 소녀이고 하반신은 거미"의 목격담이 탐굴가 사이에 회자되면서 주인공 귀에도 들어오게 되는데. 2년 전 죽어가던 자신을 살려준 인물은 누굴까. 사실 이 작품은 인트로부터 그게 누구인지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던전에 다시 내려가고자 했을 때 이미 눈치를 채게 된다. 이 작품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마수 소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냥 내려가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의 앞길을 막고자 교도소에서 탈주한 죄수들이라는 스파이스를 가미한다. 흉악범들의 탈주는 많은 현상범 사냥꾼들을 불러들이고, 현상금에 눈이 멀어버린 탐굴가들의 자만들이 한데 어우러져 피의 바다를 연출하게 된다. 죄수들은 대미굴(던전)에 잠입하게 된다. 대미굴은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다. 그래서 추격자들을 뿌리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많은 죄수들이 대미굴로 잠입하게 되고 주인공의 앞 길을 막게 된다. "마수 소녀, 아라네아" 다시 만나고 싶었던 주인공은 이런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미굴은 강력한 마수로 인해 만만한 곳이 아니다. 거기에 흉악범들까지 득실 거리게 되었으니 난이도는 더욱 높아져만 간다. 결국 누군가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착해빠진 주인공은 그걸 돕겠다고 나섰다가 바짓가랑이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또다시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 '윌'은 교도소의 '개'이자 탈주한 죄인들을 잡아 죽이는 [처형인] '미저리(히로인중 하나)'의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미저리와 그녀를 관리 감독하는 간수 '시스카'와 같이 심층을 향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처형인으로서 죄인을 말살하는 미저리를 안내하는 대미굴 가이드로서. 여기에 등장하는 죄수들은 하나같이 살인에 있어서 국보급 실력을 자랑하는 흉악범들이다. 강력한 마수만해도 벅찬데 죄수까지 득시글 거리는 대미굴에서 주인공은 사실 혼자 행동하기엔 제약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미저리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교도소를 탈주한 죄수들의 구구절절한 과거가 드러나며 누가 죄인이고 누가 선인지 헷갈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애초에 이렇게 강력한 죄수들을 가둬놓은 감옥은 대체 뭐 하는 곳일까.


그리고 죄수들과 주인공이 가고자 하는 길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질문도 생겨난다. 어쩌다 주인공이 대미굴로 내려가는 시기와 죄수들이 탈주한 시기가 겹친 것뿐일까? 미저리와 죄수들을 처리하며 조금식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교도소와 국가가 저질렀던 추악한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죄수들이 왜 탈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하는 현실이 들이밀어지면서 결국 악의 관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 윌은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하고, 이 둘(교도소와 아라네아)의 관계는 이어졌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내포하기 시작한다. 심층 영역에 발을 들인 주인공과 미저리에게 들이닥치는 위기. 그리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1년 전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라네아가 등장한다. 대미굴에서 이들은 1년이나 같이 지냈고, 1년 동안 애달프게 연심을 키워갔던 이들의 만남. 인간과 마수의 애틋한 만남. 그러나 세상은 이들을 시기하고, 미저리의 진실이 들이밀어진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살아왔던 '미저리'와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지키려 애쓰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구해주고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의 만남. 일그러진 이 만남의 결과는 파국뿐이다. 미저리는 교도소의 '개'다. 교도소는 마수 소녀 아라네아를 원한다. 심층에서 홀로 지내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아라네아. 하지만 아라네아는 누구보다도 여리고 순수한 감정을 가졌다. 주인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순진무구한 소녀. 그녀에게 홀딱 빠지게 된 소년은 그녀를 구하기로 한다 한다. 1년 전에는 못했던 일그의 앞을 가로막는 미저리는 누구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그녀 또한 순수한 감정을 타고났다. 주인공 윌과 짧은 시간이나마 대미굴을 탐험하며 유대를 쌓았다. 하지만 교도소의 명령을 들어야만 하는 그녀는 주인공 윌에게 칼을 들이밀 수밖에 없다. 과연 주인공은 교도소의 개 미저리를 상대로 마수 소녀 아라네아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에서 포인트는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 주인공 윌의 관계다. 2년 전 심층에서 동료들을 잃고 빈사에 빠진 주인공을 구해준 아라네아와 그로부터 1년간 같이 지내며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삶을 같이 했던 이들이 1년 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 그리고 다시 만나는 애틋한 이야기.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을 깨부수려는 미저리의 난입은 흥미진진하기에 이를 데 없다. 아라네아보다 더 강한 미저리를 상대로 주인공 윌이 아라네아를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미저리와 윌의 관계는 그저 고용인과 피고용인일 뿐이라고 이야기 내내 표현이 된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지고 태어나서도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미저리의 과거는 또 한 명의 '마수 소녀'를 만들게 된다. 즉, 순수함은 아라네아 못지않다. 그런 사람을 죽이는 삶 밖에 없는 길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한 주인공의 또 다른 몸부림은 아라네아와의 관계와 더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맺으며: 작가가 후기에서 다음 권에서 만나요 하는 걸 보면 2권도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표지에 1권이라는 글이 없는 걸로 보아 단권으로 끝 날 거 같다. 아무튼 이 작품은 뼈와 살이 분리되는 호러물이다. 사람 몸이 잘리고 내장이 흩날리는 고어라고 할까. 그런 세계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고 친구가 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의 아라네아를 잊지 못해 다시 대미굴로 발을 들이는 로맨스이기도 하다아라네아의 임팩트는 좀 약하지만 작가의 표현력이 좋아 흉악한 마수로서와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어서 기억에 잘 남는 편이다. 주인공은 힘은 없으면서 정의감은 강해 언제나 고생하는 타입이랄까. 하지만 여느 하렘 작품과 다르게 아라네아 일편단심이라는 모습을 보인다. 죄수들과 마수들은 견우와 직녀처럼 이들을 갈라놓은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뛰어넘어 좋아하는 소녀에게 달려가는 주인공이라는 이야기. 감수성이 뛰어난 분들이라면 감정이입하기에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뿐인 조금은 식상하고 클리셰적인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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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환상의 그림갈 15 - 강하고 덧없는 뉴 게임,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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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강한 스포일러 주의







하루히로등 여러 아이들이 그림갈에 떨어진지도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느 이세계물과 다르게 이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가혹했던 세계. 기억을 잃은 채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이 살아가기엔 그림갈이라는 세계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끼리끼리 모여 어떻게든 발버둥을 처봤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블린 한 마리를 대여섯 명이 모여 때려잡아도 힘에 부쳐 실패하는 날이 많았다. 갈아입을 속옷이 없어 매일 저녁에 하나뿐인 속옷을 빨아 널어 놓고 지푸라기 침대에 몸을 맡겨 잠들기를, 대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그땐 기약조차 하질 못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동료 하나둘씩 잃어가고, 슬픔을 채 털어내기도 전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묻어났다.


레슬리 캠프를 통해 '파라노'로 들어가게 된 '하루히로' 일행은 많은 고초를 격은 끝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이제 꿈에도 그리던 오르타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딜 던져 놓아도 정들면 고향이고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가 있다면 거길 그리워하는 습성이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는 이들의 고향은 따로 있건만 기억에는 없다. 그렇게 알에서 깨어난 생물이 처음 본 생물을 어미로 기억하듯 오르타나를 그리워하며 파라노를 탈출했건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어떻게든 발버둥 처봐야 시궁창뿐이라는 현실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그림갈로 던져질 때마다 기억이 소실되는 이유는 뭘까. 이번 15권에서 그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하루히로 일행은 파라노에서 다시 그림갈로 넘어왔다. 처음 보는 탑, 그러나 낯설지가 않음에도 어째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소실되었다?꿈에도 그리던 도시, 헤어진 유메와 다시 만나기로 했던 도시,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줬던 도시,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이 있는 도시. 그런 기억이 모두 소실되어 버렸다.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하루히로 일행에게 던져진다. 그림갈에 던져지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축했던 싸움의 기술과 지식은 한순간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토록 처절했던 삶은 대체 무엇이었나. 하지만 어째서인지 '메리' 만큼은 기억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녀는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거나 오르타나로 돌아왔고, 돌아왔다면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메리의 기억에 의존하면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유메와 란타는 외전에서 이미 오르타나로 돌아와 있다. 하지만 기억이 날아가 버린 하루히로 머리엔 이들은 없다. 눈물 나는 상봉을 기대했건만 약간은 쓸쓸한. 그리고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건 오르타라의  현재 상황이다. 이세계엔 '제왕 연합'이라는 게 있다. 불사족 노 라이프 킹을 주축으로 한 마물 군세다. 언데드, 오크, 고블린등 온갖 마물이 군세를 이뤄 인간을 공격한다. 그래서 아라바키아 왕국은 저 멀리 남쪽으로 터를 옮기게 되었고, 인간은 원래의 땅을 되찾기 위해 오르타나를 세웠다. 더불어 데드 캠프, 적야의 기지, 리버사이드 요새도 오르타나와 더불어 인간들이 제왕 연합에 맞서기 위해 세운 요새다. 


즉, 오르타나는 전초기지다.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포격을 맞고 갈려나가는 포지션이다. 다른 요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인간은 약하다는 것이다. 덧없이 약하다. 고블린 한 마리 잡는데 대여섯이 붙어도 못 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크는 사신이다. 몇 년 전 데드 캠프를 탈환하기 위해 많은 의용병(하루히로 같은 애들)을 갈아 넣어 간신히 되찾은 데드 캠프는 다시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작야의 기지는 황무지로, 리버사이드는 코볼트에게, 그리고 오르타나는 고블린에게 점령 당하고 만다. 의용병 및 주둔군은 맞서 싸웠다. 하지만 끝끝내 점령 당하고 만다. 그렇담 그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바램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루히로 일행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또다시 떠도는 신세가 된다. 기억을 잃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 온곳이 마물로 가득하다. 편히 지낼만한 곳은 없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또 고생을 강요 당한다. 그래도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루히로는 이들을 이끌고 또다시 여정에 나선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환경이다. 고블린의 추적과 불사자들의 습격, 먹을 것은 변변찮고 구출될 거라는 기약은 없다. 그럼에도 살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이들 앞에 드디어 아라바키아에서 파견한 원군이 도착하는데...


이번 이야기는 적의 수중에 떨어진 오르타나 탈환을 그리고 있다. 기억이 없어도 몸에 밴 습관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는 찌끄레기들이 고기 방패가 되어 또다시 사지로 내몰리는 불합리를 그리고 있다. 오르타나는 궤멸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다. 하루히로는 척후병으로서 오르타나로 보내진다. 사람들은 없다. 도망간 게 아니라 모두 죽임을 당했다. 어딘가 몽환적이고 죽음은 나와는 거리가 있을 거 같았던 분위기는 단숨에 한치 앞도 모르는 사선을 그리게 된다. 고블린은 약하지 않다. 모 작품에서 등장하는 고블린들처럼 이 작품에 나오는 고블린들도 약하지 않다.


하루히로 일행에게는 오르타나 탈환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치고 졸도할 일이지만 힘이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 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을 리 없다. 과연 하루히로는 기억을 잃은 채 오르타나를 탈환할 수 있을까. 비록 고블린이라고는 하나 수천의 군세가 운집해 있다. 오르타나 주둔군은 이들에게 궤멸되어 버렸다. 즉, 훈련을 받은 군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하루히로 일행이 해내야만 한다. 아라바키아에서 파견된 원군은 오합지졸이다. 한마디로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오르타나로 잠입한 하루히로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강해질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동료를 잃을 때마다 하루히로는 강해져 왔다. 하루히로라는 그가 가진 근본적이고 본질을 깨우쳐준 '스승'의 만남은 어둠 속에서 광명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슬픈 이별을 예고하는 거라는 복선이었다는 것을 하루히로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바램은 이뤄지지 않는다. 스승은 오르타나가 점령되었어도 도망가지 않았다. 4년 만의 스승과 제자의 해후. 이것은 슬픈 결말을 향해가는 전주곡이다. 그래서 스승은 졸업한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었나 보다. 정작 그 제자는 스승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짧은 만남이 있은 후 오르타나 탈환 계획 시기가 확정된다. 스승은 척후로서 다시 오르타나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루히로가 스승을 다시 만났을 때는... 스승의 가르침은 헛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참 먹먹하게 만든다.


14권에서 등장했던 '히요코(혹은 히요무)'라는 소녀의 탈을 쓴 아줌마의 복선이 어느 정도 풀린다. 이제 와 생각났는데 1권에서 하루히로등 그림갈로 넘어온 아이들을 인도했던 여자가 히요코였나 보다. 그 히요코가 파라노에서 그림갈로 넘어올 때 하루히로 일행과 같이 온다. 이로서 현실에서 그림갈로 넘어오는 구조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그림갈로 던져진 아이들이 기억을 잃게 되는 원인도 대충 밝혀진다. 파라노는 사람의 기억을 풍화 시킨다. 그리고 그 기억을 없애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밝혀진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하루히로 일행에겐 힘이 없으니까 그저 던져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맺으며: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거라는 영화 명언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이세계는 강한자부터 갈려 나간다. 일부는 그걸 극복하고 잘 나가고 있지만 자주 언급이 되지 않으니 일단 논외로 치고. 아무튼 이번 이야기도 어쨌거나 알게 모르게 강해졌지만, 강한 것은 이 작품과 맞지 않다는 듯 애들 기억을 또다시 말소 시켜 버린다. 하지만 기억을 잃음으로써 얻는 것도 있다. 하루히로는 잡생각을 많이 줄었다. 그럼으로써 강해진다는, 굼벵이가 구르고 굴러 결국 나비가 되는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히로인들이 하루히로에게 기대는 빈도가 높아졌다. 마치 어미새를 기다리는 새끼 새들처럼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는 듯 하루히로를 바라보는 대목에서는 조금은 섬뜩하다고 해야 할지. 계속해서 이야기는 16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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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3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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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취향으로 인해 이세계의 주민은 미남, 미녀만이 존재한다. 주인공 '마코토'는 이세계 여신 기준으로 추남이다. 부모가 미남, 미녀다 보니 여신은 선입견을 가진 게 틀림이 없다. 그래서 마코토의 부모와 한 약속으로 자식 중 하나를 넘겨받았는데 첫 대면에서 하필이면 추남일게 뭐냐는 반응을 보인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지만 알게 무냐는 식이다. 여신은 그를 꼴 보기 싫다며 이세계 끄트머리에 던져 버린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인간에 대한 외모와 마음에 선입견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세계 전이물의 공통점인 이세계 언어(이 작품에서는 공통어)를 주인공은 받지 못한다. 그로 인해 세계 끄트머리에서 말도 통하지 않아 길을 물어볼 수가 없었고, 이세계 기준으로 추남인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오크급으로 차별을 받아 간신히 찾은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인간이면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 떨어진다면, 이런 주제로 이 작품은 초반부터 굉장히 난이도 높은 세계관을 주인공에게 들이민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어종 중 하나, 가시가 많아 먹기 힘들지만 맛은 있다)라고 마물과 아인(수인?)과의 소통은 가능하다. 이 말은 결국 주인공은 인간에게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거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여신에게서 변변찮은 치트 하나 못 받은 그에겐 마력 하나는 무궁무진하다. 이 마력 덕분에 신(神)급으로 추앙받는 드래곤(토모에)과 걸어 다니는 재앙으로 신화급 취급을 받는 검은 거미(미오, 글자 그대로 거미다.)를 종자로 들이게 되면서 개똥밖에 없는 세계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게 된다.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 여신에게 팔려가 이세계 끄트머리에 떨어진 주인공, 이 정도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살아는 보겠다고 추남을 거부하면 가면을 써서 정체를 숨기고, 말이 안 통하면 마력으로 공중에 글자를 쓰면 되지 같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금은 어느 도시에 정착했다. 중간에 위기에 빠진 '토아'라는 모험가 파티를 구해줘서 친구로 들이고,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상인으로 위장해 지금은 도시 귀퉁이에 상점 터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이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도시에서 제일 가는 유력 상인을 도와 뒷배로 뒀고, 토모에의 능력 중 하나인 아공(이공간)을 개선해 살 곳을 마련했다. 사막 한복판에 떨어진 씨앗이 말라죽지 않고 싹을 틔워 언젠가 오아시스를 만들듯 주인공이 뿌린 씨앗은 이렇게 조금식 발아하여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미남, 미녀만이 있는 이세계에서 추남인 주인공으로서는 언제나 이물질이다. 공중에 대사를 띄워 소통은 한다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함, 지나가는 거지도 미남, 미녀인 세계에 섞여 들어가지 못한다는 조급증은 마음에 틈을 만들어간다. 도시에서 부쩍 두각을 나타내는 그와 그의 종자 둘을 이용하기 위한 주변의 음흉한 시선들. 토모에와 미오라는 힘이 있으니 당연히 자신들을 도와 야 된다는 쓰레기 같은 가치관. 날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사실 주인공 마코토는 살아가는 데만도 벅차다. 그래도 바보는 아니기에 조심은 한다지만 작정하고 덤벼오는 놈들을 당해낼 수는 없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주인공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기 위해 자신의 뒤를 밟는 모험가 파티를 처음부터 내쳤더라면, 그러지 않은 우유부단함과 무신경은 주인공 마코토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겪게 한다.


인간은 잃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안다고 했던가. 이번 에피소드는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세계는 인간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 이미 여신이 미남, 미녀만으로 구성한 세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이세계는 제대로 된 세계가 아님을 반증하는 거와 같았다. 그런 세계에서 마물과 아인(드워프와 엘프등등)들은 중세 시대 노예만도 못한 차별을 받는다. 주인공은 인간들과 소통은 불가능해도 이런 마물과 아인들과는 소통이 가능하다. 이 말은 그의 주변엔 마물과 아인들이 주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소리다. 토모에가 만든 아공(이공간)에 터를 잡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어디서든 차별을 받는 그들과 주인공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마물과 아인은 가족과도 같다. 그런 가족이 모험가들에 의해 유린 당한다면, 그것도 주인공이 이세계 질서를 간과한 것에서 시작된 비극이라면? 


본질적으로 인간과 어울리지 못하는 주인공이 본질적으로 마물과 아인과 어울린다는 의미는 매우 깊다. 보통 이세계 전이물이 현실성이 없는 것 중 하나가, 현실에서 사람은 고사하고 벌레 하나 못 죽일 거 같던 주인공이 이세계에 오자마자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간혹 수사 드라마를 볼 때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을 검시하면서 주저흔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뜻은 글자 그대로 찌를 때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는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주인공 마코토는 처음으로 사람을 헤치게 된다. 죽을 위기에서 구해줘 아공(이공간)에 피난 시켜놨던 모험가 파티들이 벌인 잔혹한 짓. 이세계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외에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주인공을 대해줬던 하이랜드 오크의 희생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마음의 브레이크를 망가트리게 한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을 죽였다곤 해도 살인은 살인이다. 여느 이세계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게 현실성이라는 것이다. 살인으로 인한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무서움과 타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두려움. 그런 고뇌와 번민을 보여주는 대목은 소름이 다 돋는다. 인간으로서 있기 위한 최저의 조건, 그 길을 벗어나게 된다면 나는 인간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주인공은 현실에 두고 온 친구들에게 묻는다. 필자가 살면서 이렇게 마음을 움켜지는 묵직한 라노벨은 처음 본다. 사실 가볍게 보고 가볍게 구입한 작품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접할 때의 기분은, 이런 느낌 때문에 필자는 라노벨을 끊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새로운 3번째 종자인 '리치'를 들이면서 아공(이공간)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주인공의 마력에 반응해 아공이 더욱 확장하면서 세계를 창조하는 클래스로 발전하는 등 한편으로는 이세계 먼치킨이라는 클리셰도 동반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에서 눈여겨볼 것은 위의 경우도 있지만 주인공이 거느리고 있는 종자들이다. 토모에와 미오, 인간의 개념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마물로서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는 통에 주인공 머리를 대머리로 만들뻔했던 이들이 이번엔 주인공을 도와 아공을 조사하고, 상점을 내는데 발품을 팔고, 아인들을 돌보는 등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배움에 적극적이고, 주인공에게 모든 걸 받치는 모습에서 섬뜩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세계 사람들이 배척하는 마물에게 사랑받는다는 아이러니.


맺으며: 여러 가지 복선이 나왔지만 이건 차차 앞으로 언급하기로 하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포인트는 주인공의 마음이다. 이세계에서 붕 떠있는 감각 때문에 일에 집중을 못하면서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면서 겪는 고뇌는 정말 애절하기 짝이 없다. 이로써 주인공은 인간을 차별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그래도 뭐 기본적으로 개그를 깔고 가다 보니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여전히 자신의 욕망대로 사무라이와 쌀을 획득하기 위해 움직이는 토모에와 어째서인지 얀데레가 되어 가는 미오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아무튼 인간과 마물로 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고 할까. 필자에게 있어서 빨리 다음 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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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여행 7 - S Novel+
시라이시 죠우기 지음, 아즈루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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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게 돈이다. 한자리에 머물러 살아도 들어가는 게 돈인데 하물며 여행 중일 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애초에 마녀니까 모험가처럼 의뢰를 받아 처리해주면 어느 정도 돈벌이는 될 테지만 돈이라는 게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거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동화 한 개짜리 조화(가짜 꽃)를 도매점에서 떼와 금화 1개에 내다 파는 사기꾼 같은 짓을 저질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밥은 먹어야 하고, 잠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야 건강을 챙기는 것이기에.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일레이나'는 마녀가 된 이후 줄곧 세상을 여행하며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자선 사업으로는 살아가지 못한다. 일을 했으면 돈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기에 공짜 노동은 누구보다 싫어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돈을 가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마녀를 보면 도와 달라고 한다. 하지만 돈에 깐깐한 일레이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하고, 끈질긴 사람은 척추를 접어 버릴까 보다 하며 흉흉한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이전 이야기에서 그녀의 어록 중 하나가 "반으로 접히고 싶으세요?"다. 그런 그녀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자선 사업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래도 뒤에서 칼 맞기는 싫었겠지. 짝퉁 마녀를 만나 도적들을 소통하러 가서 짝퉁에게 엄청 휘둘리는 모습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보통 같으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일을 왜 도와주는 걸까. 마녀를 동경하는 어떤 소녀의 우쭐한 모습에 그만 흥미가 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만하게 조수로 써주겠다느니 날 도와줄 수 있게 기회를 준다느니 허무맹랑한 소녀의 행동에 일레이나는 늪에 빠지듯 휘둘려 가는데, 일레이나는 마녀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소녀가 안타까웠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녀를 동경하는 소녀는 마법에 소질이 없다. 그럼에도 마녀를 동경해서 코스프레로 치장하고 세계를 여행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자기 주제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 소녀는 도적을 퇴치하면서 자기 주제가 뭔지 알아간다.


때론 돈을 위해 아무렇게나 의뢰를 받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세상의 진실 따윈 알고 싶지 않은 일도 알아가게 된다. 사람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아 폐촌으로 향했던 일레이나는 의뢰주의 추악한 이면을 보게 된다. 평화적으로 이용하겠다며 마법사들을 속여 전쟁에 이용했던 의뢰주는 전쟁이 끝나자 마법사들을 내쫓아 버린다. 토사구팽이라는 거다. 그래놓고서는 다시 전쟁이 발발하자 이 마법사들을 불러들이려고 하는, 이 작품은 동화 같으면서도 때때로 잔혹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마법사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의뢰주는 강경책까지 준비하던 차에 일레이나에게 이들의 소환을 의뢰한다.


여기서 시사하는 건 일레이나는 의뢰주를 배신할 것인가 아니면 눈 감고 의뢰주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냐다. 이것은 업계의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레이나는 마법사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의뢰주의 추악한 이면을 듣게 된다. 마법사들은 선량한 사람들로 자기들의 능력이 전쟁이 이용될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없애면 의뢰주는 다시는 자신들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이다. 일레이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신뢰를 해치지 않고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일레이나는 이런 번거로운 일은 싫어한다.


그리고 이번 7권의 최대 하이라이트, 잠에서 깨어난 고룡(古龍)의 이야기다. 400년간 봉인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고룡이 자신이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무리에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다 있을 곳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겁에 질린 사람들로 인해 배척 당하고 마녀에 의해 쓸쓸히 봉인되어가는 이야기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렇게 400년간 봉인의 끝에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있을 곳은 없다. 일레이나는 고룡과 마주한다. 고룡은 배가 고파 쓰러진다. 그렇게 일레이나는 고룡에 휘둘리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일레이나는 이번 이야기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 그냥 언제나처럼 내버려 두고 가면 될 일을 마지못해 손을 내민다. 수전노 일레이나가 어쩐 일인지 고룡이 입을 옷을 사주고 밥을 먹여 준다. 아마도 혼자라는 쓸쓸함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활달한 고룡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봉인한 마녀를 찾는다. 하지만 마녀는 400년이나 살지 못한다. 마녀의 흔적을 쫓으며 여전히 자신이 있을 곳은 없다는 걸 고룡은 깨달아 간다. 그저 나는 있을 곳이 필요했을 뿐인데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족에게서도 인간들에게서도 배척을 당하는 모습이 여간 짠한 게 아니다.


고룡은 왜 마녀를 찾고자 했고, 마녀는 왜 400년 전에 고룡을 봉인할 수밖에 없었는가. 인연은 4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잔잔하고 개그스럽게 엮어간다. 모습이 다르다고, 나와 다르다고 배척 당한 건 고룡만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저 곁에 있고 싶었을 뿐인데 모두에게서 배척 당하고 있던 건 고룡만이 아니었다. 마녀와 고룡은 서로의 본질을 본 것일까 하는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진다. 400년 후 인간의 모습이 된 고룡은 인간의 틈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 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몰라서 일레이나에게 기대기만 했던 고룡. 그런 고룡을 이끌고 일레이나는 어떤 도시의 고서점에 들린다. 그 고서점의 주인은...


이렇게 이 작품은 옴니버스식으로 진행이 된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이야기를 여러 개 엮여 있다. 동화 같은 이야기와 기묘한 이야기도 있고, 때론 가슴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머리와 정신이 사차원인 사람이 등장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일레이나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엮이고 엮여 일레이나와도 인연이 닿는 그런 이야기다. 자기애가 강하고 돈이 안 되는 일은 못 본척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들어 있지만 어쨌거나 결국 도와주고 마는 심성 착한 마녀의 이야기다. 


맺으며: 백합이 횡행하는 작품이다. 이전부터 그냥 대놓고 백합의 길로 가는 작가의 능력이 좋다고 할까. 아무튼 권선징악형이라기보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가는 그런 이야기다. 잔잔하면서도 때론 섬뜩한 시리어스가 있다. 이번에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일레이나는 당분간 고기를 못 먹는 거 같았고. 은근히 패러디도 있다. 명탐정 코x 같은 거라든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라든지. 돈만 되면 뭐든지 파는 일본 엔터테인먼트를 교묘히 비꼬는 듯한 그런 이야기도 들어 있는 게 입에 착착 맞다. 아무튼 개그물에 어울리지 않게 고룡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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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 2 - V+
파르나르 지음, 아야미 그림 / 길찾기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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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10년이라는 시간을 이세계에서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보냈다. 이세계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유유자적 혹은 신이 나서 살아갔을 시간이지만 이세계에 소환되는 멍청이는 사회 부적응자들 뿐이라고 여기는 이 작품의 주인공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생사람 잡아와서 고생 시키는데 지원이라던지 우대를 해줬다면 덜 억울할 테지. 그딴 거 없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고, 위생이라곤 땅바닥에 널린 게 똥 천지인 이세계에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료들에게 휘둘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다녔으니 그 원한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일부러 어렵게 가서 개고생 시키지, 정의롭게 나서서 사건을 해결해줘놓고 뒤처리는 나 몰라라 하는 통에 가령 범죄자에게서 사람 구해줬으면 보복 안 당하게 범죄자를 격리 시키거나 없애거나 해야 함에도 하지 않아 보복 당하는 걸 주인공이 다 해결해줘야 하는 그런 세계라면 부처라도 수라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마왕을 무찌르면 세계가 평화로워지나? 주인공은 2회차에서 이세계의 시스템을 알게 된다. 정상적인 세계가 아닌 인위적인 설계로 자칭 교육위원회의 교사들에 의해 입맛대로 세계가 재편된다는걸. 요컨대 이거다. "실미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교사(교관)의 마음에 들어야 졸업(제대)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세계는 똥으로 가득 차 있다. 이세계 소환되는 사람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여기고(이게 참 현실적임) 이세계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주인공으로서는 시키는 데로 곱게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삐뚤어질 테다. 그래서 1회차 때 마왕 목전에서 동료들을 도륙하고 마왕을 혼자 무찔렀더니 인성 F 떠서 유급된다. 교사(교관)들이 바라는 건 하나다. 우리(교사)들이 시키는 데로 해라. 교사들이 바라는 건 하나다. "사랑과 우정을 그대에게" 마지못해 2회차 때부터 시키는 대로 했다? 인성이 최소 A등급 뜨게 나름대로 날조도 하고 선동도 하고 해서 왕국을 내 편으로 만들었고, 제비 다리 부러트려 치료해주고 박 씨까지 물어오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건 여전히 인성 등급은 F, 유급


난, 언제 집(지구)으로 가나?가 테마가 된다. 내 10년은 보상받지도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하고 동료란 놈들은 인종 차별에 돌다리 놔두고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강 건너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정의라는 사전적 단어를 오해해서 백성들을 도와주는 게 아닌 살육하고 다니는 그들에게 치여 개고생 하고(1회차 이후부터는 상종 안 한다), 교사들은 걸핏하면 재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회귀 시켜서 인생을 리셋해버리니 나라면 어떤 감정을 가질게 될까. 어차피 리셋되는 거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게 되는 건 당연해진다. 사람을 이름은 ABCD가 되고 거슬리는 놈들은 경추 부러지고 허리가 접힌다. 2회차였나 3회차였나 때는 대륙 절반을 초토화 시켜 버리기도 했다. 어차피 리셋되는데 사람 좀 죽었다고 대수가 되지 않는다. 이번에 2권에서는 특히 더 악랄해지는데 용사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최종 3인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을 노리게 되는데 어차피 이세계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주인공 입장에서 용사들이라고 대수랴.


참고로 이세계에서 용사는 주인공만 있는 게 아닌 천치삐까리로 널렸다. 실미도에 관광 온 사람들 마냥 지천에 널린 게 용사고, 특징은 다들 졸업해서 무사히 지구로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한수'는 더욱 배알이 꼬인다. 난 한다고 했는데도 유급이고, 설렁설렁하는 놈들은 금방 지구로 귀환하고 그러니 차별도 이런 차별도 없다. 그런 연놈들이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하하 호호하고 있으니, 게다가 다들 대신전을 통해 초대되는데 나만 동굴에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초대된다면 이건 악의가 개입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무튼 교사들의 본심은 용사들끼리 배틀로얄 찍는 것이다. 말이 페스티벌이고 죽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지만, 그래서 더 악랄한 것이다. 주인공 한수는 죽어도 못 가니까. 그렇담 남은 건 뭐겠는가. 사실 교사들도 한수가 여느 용사들처럼 어리바리하게 대충 살다가 마왕 쓰러트리고 교사들 입맛대로 살았더라면 지구로 갈 수 있었겠지. 그러나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 싫었던 주인공으로서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


교사는 물론이고 이세계로 소환한 신(神)에게 악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지. 그래서 온 을 돌아다니며 스킬이란 스킬은 다 주워 먹고 다니고 성검도 주웠다. 그래서 그런가 회귀하면 원래 능력까지 몽땅 리셋되어야 하나 주인공은 그러지 않는다. 회귀 때마다 무쌍을 찍지만 어째 친구는 생기지 않는다. 동료는 생기지만 리셋되면 동료도 사라진다. 지구로 돌아가는 건 더욱 요원해지기만 한다. 그렇게 살다 당도한 용사 페스티벌에서 조차 드디어 인성 FFF급을 달성하고야 만다. 이제 29살 고교생이다. 패러디가 아니라 10대 고교생일 때 소환되었고 1차 10년에 2차부터 지금까지 1년이 흘렀으니 대충 29살 맞을 거다. 아무튼 FFF를 받았으니 다시 회귀를 해야지? 6회차에 접어든다. 이번엔 현지민이라는 콘셉트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세계는 교사들의 입맛대로 설계되는 세계다. 이제 이세계의 시스템을 알게 되었고, 교사들이 바라는 게 뭔지 알아가는 주인공으로써는 더 이상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야말로 졸업을 해야 하는데... 교사 혹은 신(神)을 만나면 비 오는 날 개 패듯 패려고 스킬 등 능력을 잔뜩 올린 게 화근일까. 회귀 때도 레벨은 리셋 돼도 스킬은 리셋되지 않다 보니(온라인 게임 마X노기가 이런 시스템이었지) 레벨이 받쳐주지 않아도 충분히 괴물이 된다. 그렇담 바로 마왕을 무찌르면 인성이 고과에 반영될 틈도 없이 졸업 커트라인에 성공하는 거 아닐까? 바라는 대로 인성이 C가 되면서 커트라인 통과가 되었다. 4회차 땐가 이렇게 바로 마왕성에 쳐들어가 마왕을 무찔렀고 C를 받았다. 그렇담? 결과는 이렇게 6회차에 접어들었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뭐 어쩌라고?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제 희망은 절망이 된다. 주인공이나 독자들에게나. 


주인공 가는 길을 막을 자는 이제 없다. 스킬을 있는 데로 주워 먹어서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매우 한정적이 된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특징이 위에는 위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인공이 강해져도 위는 반드시 있고, 주인공이 강해지면 적도 강해진다는 시스템이다. 그만큼 떨거지들은 개미만도 못하는 파워 인플레가 일어나지만 주인공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아무리 강해도 주인공이 몇 번 휘두르면 개그물 답지 않게 시리어스적으로 물리적으로 적은 목이 부러진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진짜 적은 교사와 신(神) 뿐이다. 지상에 대적할 상대가 없는 천사조차 상대가 되지 않고 주인공에게 빨대가 꼽혀 마치 드래곤볼의 셀이 사람 빨아먹듯이 쪽쪽 빨릴 뿐이다. 여러 작품 패러디가 들어가 있다더니만 유독 드래곤 볼의 셀처럼 빨대 꼽아 빨아먹는 장면들은 인상에 많이 남는다. 주인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걸까. 


딴말이지만 라누벨이라는 히로인이 나온다. 처음엔 주인공을 소환한 무녀 역을 맡아 몇 회차까지 주인공을 맞이했고, 1회차 때는 주인공 동료가 되어 마왕 퇴치에 나서기도 했다. 주인공에게 늘 듣는 말은 '귀여운 척하지 마', 이후 회귀 때마다 5회차 빼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따라다니게 되면서 얘가 뭔가 복선의 줄기인가 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야 줄곧 소환의 원흉인데다 1회차 때 주인공이 10년 동안 고생한 원인의 90%가 라누벨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제일 먼저 죽여야 될 원수임에도, 이세계에서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주인공이 유독 라누벨 만큼은 어찌하지 못한다는 거다. 걸핏하면 상대의 목을 부러트리는 주인공이 그녀에게 손하나 대지 못한다는 건 뭔가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번엔 동생의 포지션이 되어 졸졸 따라다니게 되는데 역시나 대륙을 또 초토화 시키면서도 라누벨 만큼은 죽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확신에 가까운 뭔가를 느끼게 해준다. 진짜 정체는 아직 모르겠지만...


맺으며: 1권 때보다는 말빨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한글 특유의 말장난이 재미있다. 알게 모르게 여러 작품들의 패러디가 들어가 있어서 찾는 재미도 있고, 가령 드래곤 볼의 셀이 빨대 꼽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거라든지. 영화 불가사리처럼 사람을 잡아먹는다던지, 조금은 섬뜩한 장면이 다수 있다. 개그물이면서 공포물에 먼치킨을 결합하면서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기가 될뻔함에도 작가가 조합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다고 할까. 전혀 위화감이 없다. 거기에 적당한 섹드립도 조미료 역할을 해준다. 한편으로는 먼치킨으로서 대적할 상대가 없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재미있나? 하는 물음을 던지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먼치킨은 주가 아닌 부재료일 뿐이고 부조리한 삶을 강요 당하며 그걸 타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명경시 부분도 사실 주인공이 좋아서 하는 것보다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고. 마지막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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