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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낙원 - JM 노벨
미즈시로 미즈키 지음, 김하연 옮김, 나마니에 일러스트 / 제우미디어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레일란트 대미굴' 이름 그대로 광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던전을 의미한다. 강력한 마수가 서식하고, 각종 약초가 자생하며, 빈곤한 모험가들에게 일확천금을 선사하는 곳이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 동반하고, 언제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 주인공 '윌'은 동료들과 심층에 내려간다. 돈을 벌기보단 모험의 호기심으로 남들은 가지 않은 심층 영역에서 새로운 발견을 꿈꿔 봤을 것이다. 자만이나 오만은 없다. 다들 그만큼 실력이 있기에.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불합리하고 갑작스럽다. 심층에서 맞닥트린 강력한 마수에 의해 하나둘씩 동료들은 유명을 달리하고 주인공 또한 삶의 의지가 꺾인다. 실력이 있는 동료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마수를 맞이해 주인공은 그저 무력하다. 이렇게 한낱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을 거 같던 주인공이 피웅덩이에서 죽어가던 그때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있었으니, 이 작품은 이렇게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이 술에 빠져 지내다 다시 던전에 들어가 과거를 청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재난 영화의 주인공처럼 옛 동료를 그리워하고, 주인공만 살아온 것에 주변의 지탄을 받다가 과거 주인공이 겪었던 것처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게 되는 구국의 영웅을 그리는 거 같다. 근데 사실 아니다. 물론 죽어버린 옛 동료들을 그리워하긴 한다. 하지만 죽어버린 건 죽어버린 것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나 싶다. 이야기는 2년 전 던전에서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준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술집에서 들려오는 탐굴가(모험가 부류)들의 노가리성 이야기에 언뜻 들리는 소문, "상반신은 소녀이고 하반신은 거미"의 목격담이 탐굴가 사이에 회자되면서 주인공 귀에도 들어오게 되는데. 2년 전 죽어가던 자신을 살려준 인물은 누굴까. 사실 이 작품은 인트로부터 그게 누구인지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던전에 다시 내려가고자 했을 때 이미 눈치를 채게 된다. 이 작품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마수 소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냥 내려가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의 앞길을 막고자 교도소에서 탈주한 죄수들이라는 스파이스를 가미한다. 흉악범들의 탈주는 많은 현상범 사냥꾼들을 불러들이고, 현상금에 눈이 멀어버린 탐굴가들의 자만들이 한데 어우러져 피의 바다를 연출하게 된다. 죄수들은 대미굴(던전)에 잠입하게 된다. 대미굴은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다. 그래서 추격자들을 뿌리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많은 죄수들이 대미굴로 잠입하게 되고 주인공의 앞 길을 막게 된다. "마수 소녀, 아라네아"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주인공은 이런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미굴은 강력한 마수로 인해 만만한 곳이 아니다. 거기에 흉악범들까지 득실 거리게 되었으니 난이도는 더욱 높아져만 간다. 결국 누군가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착해빠진 주인공은 그걸 돕겠다고 나섰다가 바짓가랑이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또다시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 '윌'은 교도소의 '개'이자 탈주한 죄인들을 잡아 죽이는 [처형인] '미저리(히로인중 하나)'의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미저리와 그녀를 관리 감독하는 간수 '시스카'와 같이 심층을 향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처형인으로서 죄인을 말살하는 미저리를 안내하는 대미굴 가이드로서. 여기에 등장하는 죄수들은 하나같이 살인에 있어서 국보급 실력을 자랑하는 흉악범들이다. 강력한 마수만해도 벅찬데 죄수까지 득시글 거리는 대미굴에서 주인공은 사실 혼자 행동하기엔 제약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미저리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교도소를 탈주한 죄수들의 구구절절한 과거가 드러나며 누가 죄인이고 누가 선인지 헷갈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애초에 이렇게 강력한 죄수들을 가둬놓은 감옥은 대체 뭐 하는 곳일까.
그리고 죄수들과 주인공이 가고자 하는 길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질문도 생겨난다. 어쩌다 주인공이 대미굴로 내려가는 시기와 죄수들이 탈주한 시기가 겹친 것뿐일까? 미저리와 죄수들을 처리하며 조금식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교도소와 국가가 저질렀던 추악한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죄수들이 왜 탈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하는 현실이 들이밀어지면서 결국 악의 관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 윌은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하고, 이 둘(교도소와 아라네아)의 관계는 이어졌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내포하기 시작한다. 심층 영역에 발을 들인 주인공과 미저리에게 들이닥치는 위기. 그리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1년 전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라네아가 등장한다. 대미굴에서 이들은 1년이나 같이 지냈고, 1년 동안 애달프게 연심을 키워갔던 이들의 만남. 인간과 마수의 애틋한 만남. 그러나 세상은 이들을 시기하고, 미저리의 진실이 들이밀어진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살아왔던 '미저리'와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지키려 애쓰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구해주고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의 만남. 일그러진 이 만남의 결과는 파국뿐이다. 미저리는 교도소의 '개'다. 교도소는 마수 소녀 아라네아를 원한다. 심층에서 홀로 지내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아라네아. 하지만 아라네아는 누구보다도 여리고 순수한 감정을 가졌다. 주인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순진무구한 소녀. 그녀에게 홀딱 빠지게 된 소년은 그녀를 구하기로 한다 한다. 1년 전에는 못했던 일. 그의 앞을 가로막는 미저리는 누구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그녀 또한 순수한 감정을 타고났다. 주인공 윌과 짧은 시간이나마 대미굴을 탐험하며 유대를 쌓았다. 하지만 교도소의 명령을 들어야만 하는 그녀는 주인공 윌에게 칼을 들이밀 수밖에 없다. 과연 주인공은 교도소의 개 미저리를 상대로 마수 소녀 아라네아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에서 포인트는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 주인공 윌의 관계다. 2년 전 심층에서 동료들을 잃고 빈사에 빠진 주인공을 구해준 아라네아와 그로부터 1년간 같이 지내며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삶을 같이 했던 이들이 1년 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 그리고 다시 만나는 애틋한 이야기.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을 깨부수려는 미저리의 난입은 흥미진진하기에 이를 데 없다. 아라네아보다 더 강한 미저리를 상대로 주인공 윌이 아라네아를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미저리와 윌의 관계는 그저 고용인과 피고용인일 뿐이라고 이야기 내내 표현이 된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지고 태어나서도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미저리의 과거는 또 한 명의 '마수 소녀'를 만들게 된다. 즉, 순수함은 아라네아 못지않다. 그런 사람을 죽이는 삶 밖에 없는 길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한 주인공의 또 다른 몸부림은 아라네아와의 관계와 더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맺으며: 작가가 후기에서 다음 권에서 만나요 하는 걸 보면 2권도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표지에 1권이라는 글이 없는 걸로 보아 단권으로 끝 날 거 같다. 아무튼 이 작품은 뼈와 살이 분리되는 호러물이다. 사람 몸이 잘리고 내장이 흩날리는 고어라고 할까. 그런 세계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고 친구가 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의 아라네아를 잊지 못해 다시 대미굴로 발을 들이는 로맨스이기도 하다. 아라네아의 임팩트는 좀 약하지만 작가의 표현력이 좋아 흉악한 마수로서와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어서 기억에 잘 남는 편이다. 주인공은 힘은 없으면서 정의감은 강해 언제나 고생하는 타입이랄까. 하지만 여느 하렘 작품과 다르게 아라네아 일편단심이라는 모습을 보인다. 죄수들과 마수들은 견우와 직녀처럼 이들을 갈라놓은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뛰어넘어 좋아하는 소녀에게 달려가는 주인공이라는 이야기. 감수성이 뛰어난 분들이라면 감정이입하기에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뿐인 조금은 식상하고 클리셰적인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