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제로 4 - L Novel
시라코메 료 지음, 타카야Ki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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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중2병의 진수를 보여준다. 결정판이라고 해도 무난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같은 중2병이라도 본편도 이렇게 진지하게 집필했다면 하차하지 않아도 었을 텐데 하는 씁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필자는 너무 오글거려서 본편은 하차함) 이번 이야기는 신대 마법을 쓰는 동료를 끌어모아 신(神)에게 대항하고자 하는 '밀레디'가 하르치나 수해에서 또 한 명의 신대 마법사 여왕 '류티리스'를 맞이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르치나 수해는 본편에서 세컨드 히로인 '시아'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류티리스를 자기들 멋대로 '신의 자식'이라며 탈환해야 된다는 명분으로 침공하는 교회와 인간족 나라인 연방과의 처절한 전투를 그린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신(神)의 장난감이다. 신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간들끼리 혹은 마족과의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수인족은 사람 취급하지 않는 차별을 부추긴다. 그 결과 순혈주의에 빠진 인간들은 인간들 이외를 부정하고 탄압하기 시작한다. 또한 교회는 신이 그러길 바라니까라는 이념 아래 모든 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내건다. 그 가치 아래는 소수의 행복과 인간성과 자유는 무시된다. 그러함으로 개인의 자유는 억압되고 소수는 인정되지 않으며 인간 이외의 종족은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 혼돈의 세계가 성립된다. 그야말로 이 시대의 인간들은 신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는 광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런 점들을 참으로 적나라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악의 축인 교회는 대의를 위해선 얼마만큼의 피를 흘리든 개의치 않으며, 순교라는 사탕발림으로 인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그걸 명예로 받아들여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하르치나 공화국은 여왕 류티리스의 분전에 힘입어 어떻게든 교회의 기사단과 연방의 인간 군세를 막아내고 있다. 밀레디는 신대 마법을 쓸 수 있는 류티리스를 교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찾아온다. 그리고 교회와의 싸움은 작가가 정신을 차렸는지 참으로 처절하게 그려대는데, 필자는 본편 1권으로 되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사람은 신에게도 저항할 수 있다는걸, 자유로운 의사가 여기에 있다는걸'


밀레디는 이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싸운다. 처형 일족으로서의 삶만을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어린 시절에 자신의 눈을 뜨게 해줬던 '벨타'의 이념을 이어받아 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녀는 싸운다.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중2병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는데, 작가가 중2병의 경계와 현실에서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경계를 절묘하게 잘 섞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싸움에서 몸을 사린다 같은 그런 경향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실력을 최대로 끌어내고 최대의 적을 맞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2병을 쓰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온 작가로서는 어떤 걸 버릴 리가 없다. 그것은 중2병, 간간이가 아니라 자주 보여주는 중2병과 겉과 속이 다른 캐릭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게 어쩌면 이 작품의 스파이스이자 매력이라 하겠다. 그 일부분으로서 여왕 '류티리스'가 보여주는 '마조히스트'는 진지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있긴 있다. 속된 말로 깬다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밀레디가 찾아오기 전에 그녀(류티리스)의 친구는 바x벌레와 독 나비뿐이었다는 설정도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당연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바x벌레를 혐오하기 마련이잖은가. 그걸 백만 단위로 사육하고 있는 여왕을 떠 올려 보라. 거기에 바다의 여왕 '메일'에게 엉겨 붙어 '언니'라고 부르며 게슴츠레한 눈에 질척한 입김과 콧김을 뿌려대는 모습은...


아무튼 인연이란 뜻하지 않게 찾아오기 마련이던가. 밀레디는 자신의 눈을 뜨게 해준 벨타와 인연이 있는 교회 기사를 만나게 된다. 아니 그와는 3권에서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다. 그때 밀레디는 알게 된다. 벨타를 구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이번엔 그 기사다 밀레디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으로 등장한다. 하르치나 수해를 공략하고 여왕 류티리스 탈환(자기들 멋대로)을 목적으로 한 전쟁의 선봉에선 그를 맞아 밀레디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기사는 밀레디에게 밀레디가 품고 있는 이념을 증명해보라고 한다. 증명하라면 증명할 수밖에. 싸움은 종막을 향해 달려간다. 교회는 물량전으로 나오면서 인간들을 갈아 넣기 시작하고 류티리스를 포함한 수인들은 열세에 몰려간다.


맺으며: 건방져 보일 수 있으나 필자는 아무 작품에게나 평점 10점을 주지 않는다. 이 작품 아니 이번 4권은 평점을 주자면 10점 만점을 주겠다. 밀레디의 깐족 거림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는 걸 3권쯤에 알게 된 필자로서는 이제 그녀의 깐족거림에서 어쩐지 서글픈 감정이 들고 말았다. 작가가 이런 것들에 대한 표현이 좋아서 10점 만점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적절한 긴장감과 류티리스의 마조끼의 조합은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일조하기도 하고. 아무튼 끝이 보인다고 할까. 신대 마법을 쓰는 동료를 거의 다 모았고, 이제 신(神)에게 도전하다 던전 파고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그러고 보면 기승전결에 있어서도 시원시원하게 흘러가서 마음에 든다고 할까. 마지막으로 부제목으로 쓴 글귀는 이번 4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는 못 쓰지만, 이것 또한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인물을 투입함으로써 몰입감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작가의 제주가 좋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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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미궁과 이계의 마술사 1 - Novel Engine
오노사키 에이지 지음, 나베시마 테츠히로 그림, 이경인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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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버지는 이성적이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백작가의 서자(첩의 아이)로 태어나 본처와 본처의 자식들에게 괴롭힘을 먹고 자란다. 콩쥐팥쥐의 남자판일 수도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같이 괴롭힘을 당하던 테오드르는 전생의 기억을 되찾는다. 이 작품은 이세계 전생물이다.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된 작품답게 그들만의 리그를 충실히 따른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테오도르는 이복형제들을 혼내주고 아버지와 담판을 지은다. 어차피 서자인 이 몸, 여기 있어봐야 좋을 거 없다며 미궁도시 탐윌즈로 떠나겠다고 한다. 보통 여느 서자 태생 작품이라면 아버지 또한 나 몰라라 할 텐데 이 작품의 아버진 그나마 이성적으로 나온다.


종자 '그레이스'와 길을 떠나는 테오도르, 이렇게 고전 용사물처럼 주인공 테오드르는 시작의 마을에서 여행을 떠나 구국의 용사가 되는 그런 기초적인 클리셰를 선사한다. 다른 이세계물과는 차별을 두는 게 이런 점이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이세계인은 무지렁이라는 듯 신문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르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전생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참고 형식이자 서브 형식으로 메인은 되지 않는다. 다만 마법을 다루는 점에서는 전생의 기억을 조합해서 타인보다 좀 더 우수한 경지에 오르는데, 이건 전형적인 소설가가 되자의 그들만의 리그 형식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길을 떠난 테오도르와 그레이스는 여남작' 애슐리'를 만난다. 여남작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은 건 아니고 주인공과 또래다. 그녀의 영지에서 일어난 마물 습격 사건을 해결하면서 인연이 닿았는데, 뭐 이런 작품이 이런 식의 인연이라는 클리셰니까 이런 만남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덤으로 병약한 그녀를 주인공의 마법을 낫게 해주는 그런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로 인해 주인공을 사모하는 히로인이 추가되는 계속해서 고구마 줄기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드라마의 연속이다. 이것도 있다. 주인공을 깔보고 덤비는 무뢰한을 퇴치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암행어사 같은 그런 이야기도 있다. 솔직히 식상한 부분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애를 주장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태생이 태생이다. 콩쥐의 역할이었던 주인공의 과거는 불운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라기보다 주인공의 엄마는 본처의 느낌이 나는데, 귀족의 사정에 의해 밀려난 느낌 같은) 서자로 태어나 좋은 대접은 못 받았다. 어머니는 그의 나이 5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종자 그레이스(흡혈귀와 혼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긴 했지만 그레이스 또한 인간 대접을 못 받는 하프다 보니 둘이서 인생의 시궁창을 진작부터 맛보아야 했다. 그래서 주인공 테오도르에게 있어서 그레이스 이외엔 전부 타인이다. 그의 울타리는 지극히 작다. 그 작은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성격을 보인다.


이런 점이 전생의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여타 이세계물과의 차이점이다. 주인공은 이 세계의 삶과 기억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그런 그의 성격을 보다 못해, 혹은 아이(13세다)라고 은근히 깔보며 주변은 그를 자신들 마음대로 리모트 컨트롤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점도 꽤 신선하긴 하다. 하지만 그런 걸 반사해가는 주인공 또한 만만찮다. 마치 눈뜨고 코 베인다는 우리네 속담을 알고 있는 거 같은 그런 흐름이 묘하게 끌어당기는 묘미가 있다. 사실 한편으로는 이것도 다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까 가능했을 것이라는 씁쓸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이렇게 주인공은 인연을 쌓아가며 미궁도시 탐윌즈에 도착한다.


미궁도시에 왔으니 던전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이성적인 아버지가 그래도 독립해 나가는 아들을 걱정해서 돈을 쥐여주긴 했지만, 앞으로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한가지 아쉬운 건 전생의 기억이 있다곤 해도 주인공의 실력을 디버프해서 약체화했다면 어땠을까다. 아니 처음부터 성장형으로 했다면 그나마 만점을 줬을 텐데 이런 소설가가 되자 출신의 작품은 그런 경향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실력이 있으니 던전 공략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럼 어떻게 해야 흥미를 끌까 해서 투입한 게 주인공(혹은 그레이스)을 노리는 흑막의 투입이다. 용사물에 대입하자면 마왕을 무찌르기 위한 전초전이랄까.


맺으며: 그래도 나름 차별을 두려는 모습은 보인다. 그 흔한 스테이터스 창은 하나도 안 나오는 게 그나마 마음에 든다. 다만 스킬을 설명하는 거나 상황 설명 등은 역시나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감정이입을 시키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어머니를 회상하고 애슐리에게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보고 그레이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등 인간애와 가족애를 끊임없이 부각 시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이런 감정이입 시키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는 걸까 하는 우려를 느끼게 해주기도 하고. 요컨대 사람으로 치면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랄까? 마지막으로 일러스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일러스트는 정말 아니라는 평을 주고 싶다. 본편의 점수를 10점(예를 들자면이다. 필자는 10점은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주자면 일러스트로 인해 -9점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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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의 까마귀 3 - J Novel Purple
시라카와 코우코 지음, 아유코 그림 / 서울문화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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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설'은 선대 오비에게 주워졌을 때부터 자신의 숙명을, 운명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생을 밖으로 나갈 일 없이 궁에 갇혀 오련낭랑을 위로하는 역할에 충실히 하며 그렇게 살다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질 운명이라는걸. 오비는 이 나라가 건국될 때부터의 이면에 있는 역사를 알고 있다. 이 나라가 숭상하는 신(神) 오련낭랑 따위는 여기로 유배되어 온 죄인이라는 것을. 수설은 오련낭랑을 만나러 온 부엉이와의 사투에서 몸을 날린 황제 고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깃털로 변한 부엉이를 보며 수설이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부엉이는 바다의 거품으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했다. 수설은 자신을 오련낭랑을 가둬놓기 위한 그릇이라고 되뇐다.


외로움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공허함은 사람의 마음을 좀 먹는다. 나의 존재 의의를 고뇌하는 수설의 마음은 애틋하기 짝이 없다. 이 그릇이 깨어진다면 나는 까마귀의 깃털이 되어 버리는 걸까. 표지에서 수설이 들고 있는 흑진주는 부엉이가 수설과의 싸움 끝에 남긴 것이다. 이번 3권을 읽고 표지를 다시 보니 인생의 덧없음을 이보다 잘 표현한 게 있나 싶다. 오비는 이 모든 게 숙명이나 마찬가지다. 오련낭랑을 품고 혼자 살다 혼자 죽어가는 그런 존재가 오비의 역할이다. 사람들은 오련낭랑을 신으로서 숭상한다. 신이 존재함으로써 전란을 피하고 천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오비의 마음은 모른 채.


황제 고준이 찾아오고, 시녀를 들이는 등 사람들과 교류가 늘어난 것을 계기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사람들이 늘었다. 점을 처 달라는 사람도 늘었고, 오비 수설이 거처하는 야명궁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게 되었다. 이로써 수설은 외로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될 터였다. 시녀 '구구'는 허물없이 수설을 상대로 인형놀이하기 바쁘다. 황제 고준은 먹을 것을 들고 와 그녀에게 내맨다.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먹을 것을 꾸역꾸역 입에 넣는 장면은 마치 햄스터를 연상케 한다. 아쉬운 건 일러스트 하나 없다는 것이고. 황제 고준은 오비가 안고 있는 고뇌를 알고 있다. 왜냐면, 황제는 여름의 왕이고 오비는 겨울의 왕이니까.


이번 이야기는 오련낭랑의 신앙이 쇠퇴하고 새로운 종교가 대두하면서 수설에게 위기가 닥치는 걸 그리고 있다. 나라가 흥망성쇠 하는 것처럼 옛 시대의 종교 또한 흥망성쇠의 기로에서 벗어나진 못하는가 보다. 오련낭랑의 사당은 자꾸만 줄어가고, 숭상하는 사람도 줄어 궁에 모신 사당조차 쇠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앙의 힘은 신도에게서 나온다고 했던가. 오련낭랑의 힘은 예전만 못하다. 그러니까 부엉이에게도 고전했으리라. 그 틈을 비집고 옛 시대의 종교가 다시 부활하면서 수설에게 위협으로 다가온다. 저주를 걸어 수설의 힘을 파악하고, 급기야 목숨을 빼앗기 위해 본격적으로 실력을 행사해오는 적으로 인해 수설은 궁지에 몰려간다.


혼자였다면 진작에 꺾였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공허함을 잊게 해주는, 그중에 황제 고준은 벗인 그녀를 구원해주려고 한다. 한낱 비에 지나지 않는 그녀를 구해주려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오비의 몸에서 오련낭랑을 빼낸다는 건 나라의 안녕이 끝난다는 것과 같다. 수설은 자신의 몸에서 오련낭랑을 빼낸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길이 있다면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건 아무리 오비로서의 숙명이자 운명이라도...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특징은 등장인물 간 서로가 엮여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도 한 다리 건너 인연(혹은 악연)으로 묶여 있다는걸, 가령 수설이 거둬들인 의시합이라는 소년 환관의 경우 이번 수설을 주살하려 했던 어떤 인물과 연결이 되어 있다 같은. 그 연결이 연결을 불러 수설의 최대의 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어떤 소녀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다. 혼을 달래며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수설에게 위협이 되는 세력 등 고구마 줄기처럼 여러 이야기가 합쳐지는 묘미가 대단하다고 할까. 그렇게 수설 혼자서는 감당이 되지 않은 일들을 황제 고준도 같이 거들어 주면서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 등은 읽는 이의 마음을 붙잡는데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맺으며: 이 작품은 인간의 시대에 신화적인 이야기를 가미한 판타지다. 신이 존재하고 혼과 주술이 존재한다. 상대에게 주술을 걸어 주살하는 건 예사고, 혼(귀신)이 아무렇지 않게 배회한다. 수설은 그런 혼을 달래 낙토(아마 저제상)로 보내는 일을 한다. 때론 주술도 거는 거 같은데 이건 잘 나오지 않는다. 다들 오비를 기피하는 이유로 주살을 들고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혼을 달래 낙토로 보내며 엮인 이야기들이 때론 수설의 신변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새로운 종교가 대두되면서 그녀를 주살하려는 음모가 드러난다. 수설은 여느 먼치킨과 다르다. 약간의 주술을 쓸 수 있을 뿐, 그러해서 언제나 힘에 부친다. 그럴 때마다 황제 고준은 그녀를 도와주고, 시녀 등 주변인들은 그녀를 돌봐준다. 이런 점들이 사뭇 흐뭇함을 자아내기도 하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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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문 제국 이야기 3 - S Novel+
모치츠키 노조무 지음, Gilse 그림, 현노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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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미래에서 손녀가 찾아왔다. "두유 노 사라 코너?"



겨우 단두대행을 회피하고 이제 좀 다리 펴고 자나 싶었던 '미아'에게 학원 정점 '라피나'의 폭탄이 떨어진다. 혼돈의 뱀인지 뭔지 사교의 암약으로 세계의 위기라나. 소똥을 피했더니 개똥 밭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다. 미래의 지침이 되었던 일기장은 단두대 회피에 성공하면서 없어져 버렸던지라 더 이상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는 미아로서는 전전긍긍. 나아가 라피나는 대 혼돈의 뱀 전선을 구축해서 싸우자고 설레발을 치는데 싫다고도 할 수 없는 일. 여전히 단두대행 트라우마가 있어서 소심의 극치다. 그래서 소원을 빈다. 사람은 함부로 소원을 빌어선 안 되지만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것대로 괜찮은 일일 것이다.


이 작품은 우연이 겹치고 행운이 행운을 불러오고 오해가 오해를 낳아서 평범한 범인이 수재가 되는 그런 이야기다. 사실 미아는 성적 평범하고 친구라고는 별로 없는 아싸의 경계 직전에 있는 그런 희로인이다. 그런 희로인 주변인들은 그녀의 행동에 오해와 착각을 해서 그녀를 성녀로 떠받든다. 매사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주변인들 덕분에 그녀는 죽을 맛이다. 내심은 아버지에게서 집을 상속받으면 팔아서 그 돈으로 띵가띵가 놀고 싶은 게 미아의 본심이다. 단두대 회피 때도 자기 보신을 위해 움직였을 뿐인데 주변이 알아서 그녀를 성녀로 만들어 버린다. 이번엔 그 극치를 향해 달려간다.


어쨌거나 소원을 빌었다. 미래에 대한 지침을 달라고. 이대로 가다간 라피나에게 휘둘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빌었더니 귀신이 나와 버린다. 그쯤 미래의 티어문 제국은 사분오열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껏 힘좀 내서 미아가 기아(굶주림)도 해결하고 정치적으로 어쩌고저쩌고 다 해놨더니 지들(귀족)끼리 치고받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미아의 손녀 '미아벨'은 쫓기는 신세다. 할머니에 이어 손녀도 팔자가 참 기구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쫓기던 손녀가 별안간 빛에 휩싸이는데... 어떻게 보면 미아의 소원은 손녀를 살렸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고난의 행군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놈의 팔자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14살 나이에 졸지에 손녀가 생겨버린 미아는 손녀로부터 미래의 티어문 제국의 운명을 듣게 된다. 이대로는 미아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대전급이다. 티어문 제국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중심에 대 혼돈의 뱀 전선을 구축하자고 했던 학원의 정점 라피나가 있었는데... 이렇게 놓고 보니 라피나는 T-800이고 미아는 사라 코너가 되어서 미래를 지켜라 같은 뭔가 마니악 한 기분이 든다. 여기서 라피나를 골로 보내면 미래는 바뀔까? 미아는 손녀가 미래에서 듣고 보고했던 일들을 들으며 미래에 일어날 전쟁을 회피하기로 하는데, 문제는 혼돈의 뱀이라는 암약하는 사교집단이다.


사실 이 작품은 라노벨이라는 특성에 맞게 굉장히 라이트 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까지 더해서 심각한 건 없고 모두가 오해를 해선 해피한 마인드로 꽃밭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이번에도 라피나를 구워삶든 지지고 볶든 어떻게 처리해야 미래가 바뀌는데 미아만 심각할 뿐 정작 라피나는 오해만 거듭할 뿐이다. 결과 미아만 더욱 성녀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 작품은 이런 식이다. 뭔가 심각한 주제(랄 것도 없지만)를 던져놓고 피해 가보시지?라는 숙제를 던진다. 그런데 미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주변이 알아서 처리해줄 뿐. 이 과정이 개그라든지 독자층에 따라서는 흐뭇하게 보일 것이다. 아마도.


이 작품의 본질은 개고생이다. 모두가 아닌 히로인 '미아'에게만. 그래서 도망가고 싶은데 주변에서 성녀 취급하며 우러러보니 도망도 못 간다. 그래서 라피나가 오해를 해서 그녀(미아)의 절대적 이해자로 태어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뭔가 두리뭉실한데 스포일러 안 하려고 그러는 거니 양해 바랍니다. 아무튼 이렇게 손녀가 들고 온 파국으로 치닫는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를 잘라 냈다. 이쯤에서 생각이 드는 게, 미아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다. 그녀는 사실 아무것도 한 게 없고 그저 주변에서 오해를 한 것뿐이라고 들통났을 때. 만화 엔젤전설의 주인공 '기타노'처럼 주변은 그녀를 용서할까? 필자는 이것이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맺으며: 가볍게 읽기엔 뭣보다 좋다. 다만 냉탕과 온탕의 온도차가 너무 커서 적응이 안 될 수 있다. 미아가 단두대행 때 보여줬던 삶과, 미아벨의 쫓기던 상황 등은 처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교훈도 더러 있고. 근데 그 이외의 장면에서는 너무 가벼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가령 '설렘탱천'같은 요상한 단어를 들먹이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무튼 작가는 이런 단어가 재미있나 싶을 정도로 조금 뭐랄까 저렴함?을 보여준다. 이게 코믹함을 부각 시키는 효과가 있긴 한데 그렇다면 처절함은 좀 빼던가. 아무튼 여전히 일러스트 하나는 좋다. 필자는 왜 3권을 구입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4권도 발매된 거 같은데 어떡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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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 파밀리아 크로니클 episode 프레이야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니리츠 외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고결하게 살아가렴. -영웅처럼"



이번 이야기는 '소드 오라토리아', '에피소드 류'에 이어 세 번째 외전 '에피소드 프레이야'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신 '프레이야'에 관련된 이야기로 뜬금없이 도진 반려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반려란 종합적이라 하겠다. 결혼을 해서 같이 살아가는 그런 반려에 속하기도 하고, '오탈'처럼 옆에 서서 묵묵히 받쳐주는 그런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요컨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냥하러 나간다는 그런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 본편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마음에 드는 남자를 잡아먹는 그런 역할이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런 이야기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반전이 아닐 수 없는 신선함을 보여준다.


그동안 [헤스티아 파밀리아]나 [로키 파밀리아]는 숱하게 다뤄 왔으나 본편에서조차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프레이야'의 진짜 모습과 성격 등이 적나라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그녀가 여행을 하며 보여주는 순수함과 냉혹함 그리고 자상함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선함을 자아낸다. 자신이 선호하는 세상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찾아 밖으로 나온 프레이야는 어떤 노예랑 마주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프레이야의 미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반면에 그 노예는 어찌 된 일인지 프레이야의 매료에 빠지지 않는다. 그것이 프레이야의 눈길을 잡게 된다. 하지만 그 노예의 영혼 색은...


'너의 이름은?'


'알리'


영웅은 달리 태어나지 않는다. 프레이야는 알리에게서, 알리의 영혼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까마득한 삶을 살아온 프레이야에게 있어서 그녀의 흥미를 끄는 알리의 정체는 무엇이고, 알리의 정체를 간파한 그녀가 알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할 것인가는 이 이야기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라는 작품의 본질은 '영웅'이다. 본편의 벨이 그렇고, 소드 오라토리아의 본질도 영웅과 연결이 되어 있다. 류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리를 사들인 프레이야는 그녀(알리는 여자다)에게 길을 제시한다. 이대로 나와 같이 오라리오로 갈 것인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영웅의 길을 갈 것인가.


알리는 왕자다. 사막 귀퉁이의 나라에서 왕녀로 태어나 운명을 비틀듯 그녀는 왕자로 키워졌다. 그녀의 나라는 침공을 받는다. 멸망의 기로에서 알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어쩌면 프레이야를 만난 건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이야는 그녀의 영혼이 순수하고 맑게 자라길 바란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레이야는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오탈을 위시한 파밀리아 간부진이 출전한다면 알리의 나라는 분명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나라에 위기가 닥치고 노예로 전락한 왕녀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고 잡아야만 한다. 나비가 애벌레에서 고치가 되고 고치를 뚫는 아픔을 겪었을 때, 영웅은 달리 태어나지 않는다.



고고하고 색이 넘치는 그동안의 이미지를 벗어던진다. 프레이야의 이면은 이 작품의 또 하나 백미이다. 노예가 보기 싫다고 죄다 사들여서 자기 전리품으로 삼는 장면은 어쩌면 여왕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삶의 의욕을 잃고 눈이 죽고 탁한 영혼은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다. 그래서 사들였다. 하지만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그녀의 마음이 어찌 되었든 삶의 희망을 준 그녀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프레이야의 인맥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녀는 손을 내밀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갈래?라는 자기 스스로 걷게 만들어 삶의 의지를 심어준다. 그러나 그것도 부질없을 때가 있다.


전쟁의 업화는 그녀, 프레이야에게 미친다. 진정으로 화가 난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역린을 건드린다는 게 무엇인지 하는 대목은 소름이 다 돋는다. 때론 자신의 했던 일이 부질없을 때가 있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사람을 지킨다는 것, 백성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리는 알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알리는 프레이야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뜬금없이 백합이라니 작가가 거침이 없다. 그러나 운명은 서로의 길이 다르다는 걸 일깨워 간다. 프레이야는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저 길을 제시할 뿐이다.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 가만히 서 있는 알리에게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맺으며: 본편보다도 소드 오라토리아보다도 200%는 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프레이야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본편과는 180도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실로 여신 다운, 때론 여왕 다운, 때론 인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여행을 하며 소녀처럼 웃고 떠드는 장면 장면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은 에피소드였는데 이렇게 기대하지 않는 작품일수록 당첨이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하는 게 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중반 이후는 좀 질질 끄는 면이 없잖아 있다. 후기에서도 편집부에서는 170페이지로 끝내라고 했는데 작가가 300페이지로 늘렸으니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본편보다는 흥미롭다는 게 필자의 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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