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피크닉 3 - 야마 노케하이, S Novel+
미야자와 이오리 지음, shirakaba 그림, 심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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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주의






제목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는 작품인데, 이 작품의 이세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전생을 통한 다른 세계에서 먼치킨을 찍는 이고깽이 아닌 평행 세계 혹은 뒷세계 일컫는다. 여기서 뒷세계란, 팔척귀신 같은 괴담 혹은 괴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로 게이트를 통해 뒷세계로 들어가게 된 여대생 둘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즉, 이 작품은 공포물이자 고어에 해당한다. 피크닉 또한 놀라간다는 의미가 아닌 나만의 공간을 뜻하는 것으로 히로인중 하나인 소라오가 현실 도피를 위해 찾아 들어간 세계가 뒷세계이고 나만의 세계를 찾았다는 의미에서 피크닉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이번 3권에서 피크닉이 전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나온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공포가 산재한 뒷세계를 탐험한다는 의미에서 이세계(裏世界) 피크닉이라고 할 수 있다.


뒷세계에선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괴이나 괴담에 등장하는 무언가가 뒷세계에 침입한 현실 사람들을 현혹해서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바꿔 버리고, 때론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그런 세계에 소라오와 토리코는 왜 탐험에 나서는가. 토리코는 뒷세계를 조사하러 갔다가 실종된 '사츠키'를 찾기 위해서고, 소라오는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다. 둘의 성격은 상반되어, 토리코는 인싸기질인 반면에 소라오는 아싸 기질이 다분하여 초반엔 충돌을 꽤 자주 보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로 발전했고, 소라오는 토리코를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백합에 눈을 뜨는 등 뒷세계가 전하는 공포와 더불어 이들의 관계 또한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더욱이 소라오는 사츠키를 찾는데 혈안이 된 토리코를 못마땅해 하고 사츠키에게 질투심을 느끼기는 등 인간관계에서 있어도 꽤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첨언해서, 소라오(단발 검은 머리)의 성격은 매우 편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종교에 빠진 집안이 풍비박산 난 사정으로 인해 정서적 불안을 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친구는 없다. 그러해서 늘 혼자였다. 토리코를 만난 이후 투닥 거리면서 자신의 피난처였던 뒷세계에 데려다주는 토리코에게 '집착성' 연정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또 다른 히로인 코자쿠라(로리 할멈, 컴퓨터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소라오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한다. 여담으로 소라오와 토리코가 현실에 체재 중일 때는 이들(특히 소라오)에게 휘말려 코자쿠라는 늘 고생을 한다. 이번에도 엄청 구른다. 사실 이 작품에서 소라오와 토리코의 모험보다 코자쿠라가 구르는 장면이 더 흥미롭다. 울고불고 도망 다녀도 소용없다.


이번 이야기는 뒷세계의 간섭으로 능력을 얻게 된 [우루미 루나]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덤으로 코자쿠라는 더욱 굴러다니게 된다. 원래는 뒷세계와 현실 세계는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종종 인간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괴담이 현실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루나'는 토리코와 소라오처럼 어떤 능력을 얻게된다. 사실 이런 부분을 놓고 보면 이세계 전생물의 한 종류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루나는 토리코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사츠키'에게서 계시를 받았다며 보다 많이 사츠키에 대해 알고자 소라오와 토리코를 노리기 시작하는데, 루나는 꽤 강적으로 다가온다. 뒷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줘서 사람들이 뒷세계로 끌려가는 걸 막아야 하는 소라오와 토리코는 루나에 대항해가지만 루나의 능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쉽지가 않다.


아무튼 토리코에 더욱 집착해가는 소라오는 사실 이전부터 사츠키가 자신들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소라오의 능력은 타인이 못 보는 괴이 같은 걸 볼 수 있다. 또한 인식한 괴이를 현실화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괴이가 되어 버린 사츠키를 인식  수 있게 되었지만, 토리코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사츠키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소라오가 이 사실을 토리코에게 알려주지 않음으로서 그녀(토리코)를 얼마나 집착하는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이 작품은 괴이나 괴담을 통한 공포를 선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안 보고 타인을 바라볼때의 아픔보다 질투를 느껴가는 섬뜩함이 있다고 할까. 그래서 사실 사츠키 찾는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이들의 인간관계에 더 중점을 두고 이 작품을 접한다면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이렇게 자신에게 집착을 보이는 소라오에게 질겁하며 멀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행동을 용서하는 토리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토리코 또한 과거 사츠키를 만나 같이 지내면서 어떤 감정이 생겼고, 그래서 사모하는 사츠키가 뒷세계에서 실종되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뒷세계에 가고자 하는 부분은 소라오의 집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작품에서 인간관계는 매우 꼬여 있다는 게 흥미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사츠키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닐뿐더러,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사츠키가 현실 세계에 간섭하며 현실 사람들을 뒷세계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둘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지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인데 어떻게 보면 소라오가 인식을 현실화하고, 토리코가 현실이 된 인식에 간섭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건 어쩌면 예정된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맺으며: 작가가 뒷세계를 표현하는 장면 장면은 매우 수준급이다.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하면서도 가까이 가면 사람 목숨을 빼앗는 섬특함을 잘 섞는다고 할까. 다만 이번 3권은 '루나'를 상대하면서 이런 부분은 많이 들어가 있지 않다. 소라오와 토리코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동안 애타게 찾고자 했던 사츠키를 정리하게 되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또한 어째서 뒷세계의 능력을 얻는 건 소라오와 토리코 뿐이겠냐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었다고 할까. 참고로 뒷세계는 아무나 못 간다. 게이트를 찾으면 갈 수도 있지만, 일단 일반인이 게이트 찾기란 매우 힘들다. 찾아도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소라오도 사실 이렇게 살아돌아오지 못할 운명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피크닉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뒷세계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인식이 현실이 되어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포가 덮쳐온다는 스릴이 이 작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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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돌아와, 모든 것을 구하고자 최강에 도달한다 1 - L Novel
shiryu 지음, 테시마nari。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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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매전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왠지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이 거의 비슷하게 들어맞았을 때 필자에겐 희열감보다 실망감이 앞선 흔치 않은 작품이다. 웬만해서는 중립적인 시각에서 리뷰를 쓰고 싶지만 필자도 인간인지라 감정에 치우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즉,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지금부터 좋은 소리 안 나오겠다는 걸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본 리뷰를 읽지 않는 걸 추천한다. 아울러 이 작품은 1권 전체가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진짜 이야기는 2권부터 시작되는 걸 감안하면, 2권부터 조금은 흥미롭지 않을까 싶은데 이전에도 필자가 언급했듯이 초반에 선입견이 생겨버리면 뒤로 아무리 좋은 구성이라도 와닿지 않게 된다. 물론 필자 주관적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타임 회귀물이다. 마물떼의 침공으로 인해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임을 당하고 마족에게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게 되자 삶을 리셋하여 새로이 시작하는 주인공 '에릭'의 이야기다. 죽어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뒤 따라 가겠다며 자결을 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 떠보니 아기의 모습이다. 이전 생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에릭은 16년 뒤 마물 떼가 마을로 들이닥친다는 기억을 바탕으로 이번에야말로 모두를 지키겠다는 신념 아래 죽자 살자 수련에 매진하게 된다(1권 내내 이런 이야기다). 그의 나이 16살, 생일날 마물떼는 그의 기억대로 마을로 들이닥치게 된다. 이것이 1권의 주된 이야기다. 에릭은 목도 못 가누는 아기 때부터 오로지 수련에만 정신이 팔리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그의 편협된 사고방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생에서 나름대로 강하다고는 하나, 스템피드라 불릴 만큼 수백 마리의 마물떼가 쳐들어온다. 마을에서 사냥을 주업으로 하는 제법 강한 아버지도, 아버지의 동료들도 어쩌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사태다. 이런 걸 알고 있는 주인공은 자라면서 무얼 선택했느냐가 이번 1권의 주된 포인트다. 그런데 주인공은 혼자서 상대하겠단다. 이번에야말로 모두를 지키겠다며 혼자서 모든 걸 떠 안겠단다. 오만의 극치이고, 그의 바탕엔 타인을 믿지 않는 불신이 깔려 있다. 왜냐면, 내가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한다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미리 마음속에 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에게조차 말을 꺼내 놓으려 하지 않는다. 걱정이 될 테고,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마물떼를 막다가 자신이 죽어버리면? 같은 가능성은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을 단련케 하고, 마을 사람들의 도주로를 확보한다던지, 도보로 몇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왕도(수도)로 피난하게 한다던지 같은 가족과 마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애초부터 논외로 취급된다. 말해도 믿지 않을 거라는 주인공의 생각은 틀렸다는 걸 마을 사람들 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의 아버지의 말에 잘 따르고, 화나면 무서운 주인공 엄마의 말에도 잘 따른다. 주인공이 부모님을 설득해 미리 대비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들 바보인 아버지는 그의 말이라면 믿었을 것이다. 엄격한 어머니는 다른 방안을 제시해줬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런 인간 불신 같은 주인공을 만들었을까. 문제는 이후에 터진다.


그의 생일날 마물떼는 예정대로 쳐들어 왔고, 마을은 페닉에 빠진다. 만약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을 단련 시켜줬다면 피난 길에 적어도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 앞가림 정도는 했을 것이다. 왜 모든 걸 주인공 혼자서 짊어지게 만들었는가 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계속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주인공은 피난하는 마을 사람들이 도망 못 가게 마을 전체를 둘러싸는 담을 만들어 버린다는 거다. 주인공은 제정신인가? 그래놓고 내가 지키면 된다고 한다. 근데 자신이 죽어버리면? 마을 사람들은 갇힌 채 몰살이다. 이런 생각을 주인공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인공은 강한가? 쳐들어오는 마물떼를 맞이해 주인공은 결사적으로 막는다. 하지만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마물도 있다. 주인공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에겐 소꿉친구 히로인 '티나'가 있다. 마을에서 아이라곤 주인공과 히로인 둘 뿐이다. 이 마을의 미래는 괜찮나? 주인공이 16살이 되도록 다른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없다. 작가는 마물떼에 의한 멸족이 아니라 자연적인 인구 소멸을 바라나 보다. 아무튼 티나는 어릴 적부터 주인공과 허물없이 지낸다. 수련하는 주인공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주인공이 가르쳐준 마법을 배우게 되는데 소질이 굉장하다. 우리 말에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고, 어느새 주인공보다 더 강한 마법을 행사하게 이른다. 티나는 이렇게 소질이 있고 잘 해내고 있다. 칭찬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나 싶다. 근데 주인공은 질투심을 보인다. 나보다 더 잘한다고, 애들이 흔히 보이는 시기가 아닌 진짜로 질투심을 보인다는 거다. 주인공은 다름과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마물떼와 싸울 때 티나도 합류 시켜 협동심으로 대처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나가서 둘이 협동해서 마물을 쓰러트린 적이 있다. 이런 걸 경험으로 습득해 미래를 대비했더라면 좀 더 희망적 관측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싸우며 죽어가던 그때도 티나가 지원을 왔는데 '왜 왔냐'라고 지껄인다. 그녀의 회복술과 지원마법이 있다면 마물떼 따위 압승이다. 그런데 단순히 마물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마물떼를 뒤에서 조종하는 누군가의 존재 또한 염두에 두지 않는다. 마물과 싸우면서 이 정도의 마물떼라면 아버지와 아버지의 동료들의 능력으로도 대처가 가능한 수준이다. 근데 전생에서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다면 마물떼 뒤에 뭔가가 있다는 걸 누구라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혼자선 대응이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나 한다.


결국 마족이 연루되어 있었고 주인공 혼자서는 대처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오게 된다. 100보 양보해서 이런 사태를 접했다면 반성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되지 않을까? 16살이 되면서 부모님은 자식의 말이라면 믿었을 거라는 뉘앙스가 있다. 일찌감치 부모님을 설득해 마을의 안전을 도모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를 더욱 수련 시키고 히로인 티나와 삼위일체로 대처했다면? 아들을 도우려 달려온 아버지가 마족에게 두들겨 맞아서 죽기 직전까지 내몰려도 이런 반성은 없다. 아버지를 더욱 강하게 성장시켜 드렸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능력이 된다. 다만 강적을 만나 싸우며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죄를 아들에게서 받게 되어 빈사에 내몰린다. 주인공은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은 없다. 결국 아버지를 살린 건 티나고, 뒤늦게 합류한 티나 덕분에 마족을 이기게 된다. 이런 티나를 주인공은 질투한다.


히로인 티나는 보호받고 싶지 않아 한다. 그저 주인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을 뿐이다. 그녀는 오직 이 일념 하나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녀의 바람은 보답받지 못한다. 왜냐면, 주인공 전생에 이미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이번 생에서도 그녀 앓이를 해댄다. 이게 필자 주관적이지만 상당히 꼴불견이다. 읽다 보면 어떻게 만나고 좋아하게 되었는지 같은 맥락도 없다. 어쨌거나 결국 이 말은 히로인 티나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는 거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그녀(티나)의 마음을 주인공은 몰라준다. 주인공은 언젠가 전생에서 좋아했던 여자를 찾고자 하고, 사랑했다고 떠벌린 만큼 좋아하고 있다. 티나는 주인공의 이런 점을 모른다. 그래서 티나가 마을을 떠나는 주인공을 따라나서면서 파란과 파탄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둔감을 넘어 타인의 감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내 감정을 타인에게 들이미는 것도 민폐이긴 하다.


맺으며: 요약하면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다 보니 주변을 못 보는 주인공이라 하겠다. 혼자서 짊어지다 나자빠지면 주변에 어떤 피해가 일어날지 같은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히로인에게 도움을 받아놓고 감사한 마음은커녕 왜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을까 하는 깨달음도 없다. 시놉시스를 봤을 때 주인공 성격 때문에 주변이 죽어나가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아버지의 분투와 히로인의 개입으로 마물떼와 마족을 쓰러트렸지만, 이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또다시 몰살 코스였을 것이다. 주인공은 이런 점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생에서도 주인공의 성격 때문에 마을이 멸족하고 사랑하는 이가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작가는 뭔 생각으로 이런 주인공을 만들었을까. 옛날이라면 혼자서 모두를 지키는 주인공이 눈부시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평등 사회로 진입하는 세상에서는 혼자보단 모두를 원한다. 성평등 같은 페미적 발상이 아니라 보수적인 걸 지양하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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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 3 - V+
파르나르 지음, 아야미 그림 / 길찾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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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을 무찌른 용사는 공주와 잘 살고 있을까? 이세계로 소환된 지구인은 볼 일이 끝났을 때 지구로 돌아가거나 현지에서 터 잡고 잘 살고 있을까? 필자가 예전에 이런 주제로 한가지 결론을 낸 적이 있다. 바로 마왕을 무찌른 용사는 새로운 마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야 그렇잖은가. 그동안 힘을 모으게 했던 마왕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졌다. 힘이 남아도는 용사가 다음으로 자신들에게 칼날이 들이밀어질지 모르는, 누구도 쓰러트리지 못한 마왕을 무찌른 용사가 만일 일탈을 일삼는다면 누가 제어할 것인가 하는 걱정거리는 위정자들에게 새로운 골칫거리로 다가오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알랑방귀를 언제까지 뀌어야 할지 모르겠고, 없애려니 마왕을 무찌른 놈인데 암살은 턱도 없다. 그렇담 길은 하나뿐이다. 꼬투리 잡아서 마왕으로 몰아넣고 단체로 죽을 때까지 다굴치는 수밖에.


주인공 '강한수'가 죽지도 않고 회귀를 계속할 때부터 눈치 깠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벌써 7회차에 접어들었다. 뭘 어떻게 해도 집으로는 못 가고 마왕을 무찔러도 계속해서 판타지아라는 이세계로 회귀할 뿐이다. 학원 성적제라는 요상한 교직원 시스템에 맞춰 요구한 데로 성적을 냈건만 맨날 눈을 뜨면 고고학자 '라누벨'의 '용사님, 어서 오세요'다. 이미 복선은 처음부터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자꾸 주인공을 집으로 보내지 않고 잡아두려고 하는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마왕을 무찌르려면 매우 강한 용사는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마왕을 무찔렀는데도 시스템은 용사를 필요로 한다. 원초적인 뭔가를 빼먹은 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렇담 판타지의 정석인 그 마왕이 아닌 진짜 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가령 마왕이 된 용사 말이다.


​마왕이 된 용사는 어디까지나 위정자들의 시각이다. 진(眞) 마왕을 무찌르려면 어쭙잖은 용사로는 턱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물음이 위정자들에게 던져진다. 명칭은 까먹었는데 단지(밑빠진 독할 때의 장독대) 안에 각종 독충을 집어넣고 살아남은 놈을 약제로 쓴다는 말이 있다. 이걸 현실로 빗대어 본다면? 애들을 마구 소환해서 용사라는 먹음직한 직함을 던져주고 교육해서 강한 놈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교육하다 보면 인지를 초월한 놈 하나 정도는 나오겠지. 그래서 교육을 목적으로 탄생한 세계가 '다중 판타지아'라는 세계다. 주인공 강한수는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 교육을 당한다. 그리고 힘을 손에 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살려고, 집에 가려고 힘을 손에 넣을수록 단지 안에 하나 밖에 살아남지 않는 독충이 되어 간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교직원 시스템을 좋게 보는 것도 아니다. 제일 먼저 타도해야 될 적으로 간주하고는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을 필자가 높게 보는 건, 그동안 판타지물이든 이세계물이든 마왕을 무찌른 용사가 그 뒤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반면에 이 작품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거다. 마왕이 된 용사가 있고, 이세계에 푹 빠져 본분을 잊어버린 용사도 있다. 그렇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 용사는 어찌하고 있을까.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용사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마왕이 되어버린 용사를 무찌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무개 씨들을 소환 해댔고 쓸모없는 용사는 대충 '교보재 마왕'을 쓰러트리게 하고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이들이 원래의 세계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방구석 폐인이 이세계 갔다 왔다고 폐인 기질에서 탈출했을까? 아싸가 인싸가 되는 일을 결코 없다. 그저 고급 방범대원만 있을 뿐이다. 이런 게 참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강한수는 이러한 이세계 시스템을 알게 된다. 결국 강한수는 교직원 시스템에 반발하면서도,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강한수는 교직원 일동과 판타지아 신(神)을 쓰러트리려면 강해질 수밖에 없고, 강해질수록 교직원 시스템 의도대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강해진 강한수가 마왕이 된 용사를 쓰려트려 줄까는 별개다. 즉, 교직원 시스템은 마왕이 된 용사를 쓰러트릴 때까지 강한수를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마음이 없다면 회귀라는 무한 루프에 빠질지도 모르는, 작가가 설정을 아주 제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교직원 시스템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복선은 나왔다. 강한수는 이번에야말로 지구로 돌아가는데 성공하지만, 지구는 외계인이 침공중이다. 여기서 마왕이 된 용사가 파견한 직원을 만나게 된다. 즉, 마왕이된 용사는 진짜로 마왕이된 게 아니다.


여전히 거리낌 없는 강한수의 행보가 돋보이는 에피소드다. 유독 눈에 띄는 건 남자라고 더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도 아니고,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다는 거다. 현실에서 평등을 주제로 교육을 한다면 이 작품을 교보재로 쓰는 건 어떨까 싶다. 비꼬는 게 아니고, 그만큼 남녀 구분 없이 목숨을 빼앗는데 있어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날조와 선동은 해대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은 아니다. 쳐들어오는 적은 누가 되었든 공평하게 벌을 내린다. 이 말은 사실 악당이 아니어도 강한수에게 칼을 들이밀면 가차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팽이치는 다른 용사를 혼쭐 내주기도 하고, 들어오는 공은 쳐내지 않는다. <- 참고로 이 말은 고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덤으로 멀쩡한 지구를 반파 시키고도 뻔뻔함은 우주 최강급으로 내 탓이  탓이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마왕이 나타나고 시작의 마을을 떠나 동료를 모으고 마왕을 무찌르고 엔딩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단조로운 움직임을 넘어선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모험심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거다. 마왕이라는 틀은 같이하지만, 회귀라는 설정을 통해 주인공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능력치를 모으다 보니 종족이 마왕이 되어 버렸다든지, 특히 이번에 폭사 당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리는 장면들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이세계 전생했더니 말도 못하는 아기 때부터 활약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지구로 돌아가려는 이유 중 하나가 부모님을 뵙고 싶은 건데 이세계에서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존재한다. 그 엄마는 다 죽어가는 망국(망한 나라)의 왕녀고, 쫓기는 중에 주인공을 낳았다. 이러한 설정은 일본 여느 이세계물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작품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맺으며: 1~2권에서 뿌렸던 복선이 제법 회수되었다. 회귀의 진정한 목적과 이세계는 다중 세계라는 얼핏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맞았다고 할까. 그야 수많은 용사들이 한 개의 세계에서 바글바글 거릴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이세계 '판타지아'의 설정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전부터 느낀 거지만 먼치킨의 극을 보여주면서도 왠지 그렇지 않은 느낌을 들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좋다. 이세계물 특유의 스킬 트리를 많이 보여주지만 설명은 짧게 하는 기승전결이 좋다고 할까. 거기에 남녀노소 평등하게 가차 없이 보내는 진행은 깔끔하기까지. 다만 조금은 잔인한 장면이 있어서 눈살이 찌푸려지곤 한다. 어쨌거나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회귀하다 못해 아기로 태어나는 장면을 들 수가 있다. 정말 현실적인 면을 잘 보여준다고 할까. 아무리 강한 주인공이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테고, 엄마의 젖을 빠는 장면은 현실미를 들이민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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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스킬 【지도화】를 손에 넣은 소년은 최강 파티와 함께 던전에 도전한다 1 - L Novel
카모노 우동 지음, 시즈키 히토미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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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입견이란 참 무섭다. 한번 어떠한 마음을 먹어 버리면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건 작가는 왜 독자로 하여금 '선입견'에 빠지게 만들었을까다. 한두 권으로 끝나지 않는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건 비단 소설류만이 아닌 어느 매체를 봐도 당연시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스킬로만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계에서 쓰레기 스킬을 받아 모두에게 괄시를 당하면서도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이거 또 무능력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강한 능력을 손에 넣는 먼치킨 이야기 아닌가 하는 건데 사실 반은 맞다. 나머지 반은 주인공 나름대로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끝에 노력하여 성장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위에서 선입견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노트'의 성격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일단 그는 15세가 되면 누구나 받는 스킬을 그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가 받은 스킬은 [지도화]라는 주변 반경 1킬로 내 지형지물만 알 수 있는, 일상에선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쓰레기라는 것이다. 얼핏 측량에 있어서 군사적으로 도움이라도 될까 싶지만 이미 [세계지도]와 [지도]라는 상위 호환 스킬이 존재해서 사실상 [지도화] 스킬은 세간에선 쓰이지 않는다. 더욱이 [지도화]를 받아버리면 다른 스킬은 받을 수가 없다. 요컨대 무능력자라는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불쌍한지 초반에 집중적으로 부각 시킨다. 이쯤 되면 뭐 어디에나 있는 이세계 무능력 먼치킨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어느 정도 맞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설정이 추가된다. 바로 주인공 '노트'의 성격이다. 노트는 같이 생일을 맞이한 소꿉친구 '미야'와 같이 스킬을 받게 되는데, 미야는 이 세계에선 거의 사기라고 해도 무방할 용사급 스킬을 받아 버린다. 미야는 하프엘프로서 어릴 적부터 주인공과 같이 지내온 이 작품의 히로인이다. 아무튼 여기서 첫 번째 주인공의 성격이 나온다. 원래 다른 사람이 스킬을 받을 땐 참관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개인 정보니까. 그런데 주인공은 신전(다른 명칭이지만 설명하기 쉽게)에서 나가지도 않고 미야가 스킬을 받는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그래놓고 미야가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그녀가 나에게 보내는 신뢰라고 지껄인다. 이미 여기서부터 둘의 파탄은 예정되어 있다는 알기 쉬운 복선이랄까. 


떡줄 사람은 생각도 생각도 안 하는데 미야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그녀는 나를 좋아할거라는 스토커 기질도 보인다. 하지만 미야가 용사급 스킬을 받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약간은 갸륵한 마음도 있다. 이래서 필자에게는 이 작품이 계륵 같은 존재다. 아무튼 그런 미야가 남친을 먹여 살리겠다며 같이 모험을 하자고 한다. 보통 이렇게 여친이 다정하게 나오면 남친이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남친은 떠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노력해서 여친에 어울리는 남친이 된다는 것이다. '용사의 스승님'이라는 작품을 보면 남친은 능력이 없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여친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렇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떠한가. 그때는 어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로 사랑하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여 살리는 건 당연한 걸까? 주인공 노트는 미야의 다정함에 기대어 아무것도 안 한다. 파탄이라는 복선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6개월 뒤 미야는 이별을 선택한다. 모험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미야가 다 하겠다고는 했지만, 정말 여친에게만 모든걸 맡겨두면 '기둥서방'이랑 뭐가 다를까 싶다. 적어도 식사 당번이라도 해야 되지 않나? 주인공 노트는 일찌감치 의욕이 꺾인 상태다. 여친은 세계에서 10여 명 밖에 없다는 스킬을 가졌고, 자기는 노력해도 그녀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니 자괴감도 몰려온다.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중요한 건 알고 있으면서 노력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미야가 6개월이나 참았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의욕을 놓아놓고, 마치 미야가 날 배신했다고 여기는 거다. 거기에 미야가 한마디 해줬다면 개심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잘못을 미야에게 돌리는 남탓은 어이가 털리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렇담 버림받았다면 두고 봐라는 식으로 시궁창을 기듯 노력을 해서 일어서는 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미야가 떠나고 6개월 동안 술이나 퍼마시며 동네방네 미야가 자기를 버렸다는 식으로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꼬라지에선 학을 떼게 한다. 뭐 이딴 쓰레기 주인공이 다 있나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미야가 날 버렸다고 광고하고 다닌다. 뒤끝이 정말 장난 아니다. 이 성격은 후에 [어라이버즈]라는 나름 최강 파티에 주워지고도 바뀌지 않는다. 여기서도 미야가 날 배신했다고 떠벌린다. 이렇게 주인공 성격이라는 선입견이 초반에 생성되어 버린다.


그러니 중후반 주인공이 [어라이버즈]에 주워져 피나는 노력을 해도 쓰레기라는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뭔가 조금이라도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눈살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질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는 초반에 뭔 생각으로 주인공 성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분명히 작품은 쓰레기 스킬을 받아 [어라이버즈]에 주워져 원석이 보석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주인공 성격이 고착화되면서 도저히 빛나는 성장물로 비치지 않는다는 거다. 문제는 [어라이버즈]에 주워졌을 때도 이들이 6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서 자신을 단련 시켜주고 있음에도 거기에 기대어 성장을 게을리한다는 거다. 파티원 '에린'의 지적을 듣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이미지가 바닥인 시점에서 뭘 어떻게 잘못을 깨달아도 와닿지 않게 된다.


불평불만도 많고,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하면 남 탓하기 바쁘고, 뒤끝도 장난 아니고, 날 위해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하는 행동과 자기 때문에 남들이 고생하는데도 안중에도 없는 자기 위주에 잘못을 깨달았으면 고쳐야 하는데도 그 순간만 바뀌어야지 다짐하면서 후에 또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그걸 지적하면 불만스럽다는 마음가짐은 좋게 봐주려야 봐줄 수가 없다. 스킬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계고, 스킬이 모든 걸 말하는 세상이라서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마인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매우 불편하게 한다. [어라이버즈]에 주워져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면 정말 죽을 둥 살 둥 노력이라도 좀 하던가. '에린'에게 정말 가시 돋친 독설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푸념도 전부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성장물이라는 개념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만큼 수작인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야 소꿉친구에게 버림받았고, 스킬이 모든 걸 말하는 세상에서 쓰레기 스킬을 받게 되어 사람들에게 괄시를 당하면서도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시궁창이다. 아무도 나의 가치를 알아주려 하지 않고, 짐꾼으로도 잘 쓰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일이 잘 풀려 임시라지만 파티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인생을 겪는다면 나라도 자포자기하겠지. 날 버리고 간 여친이 원망스럽기도 하겠고. 그러다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는 파티를 만났고 성장이라는 가능성을 알게 되어 단련한 끝에 보석이 되는 이야기니까. 여느 이세계 무능력 먼치킨과는 격을 달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 이 작품이라 하겠다. 문제는 주인공 성격이 다 말아 먹고 있다는 것이고.


맺으며: 이 작품은 무능력자의 클리셰 범주에 들어가긴 하나 한가지 명확히 해야 할 건 주인공 스스로 강해졌다기보다 주변의 단련으로 성장하는 타입이라는 거다. [어라이버즈]에 주워지기 전까진 이런 단련 방법도 있다는 걸 아예 모르고 있었고, 이 세계의 상식에 얽매여 자신은 인생의 패배자라고 여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후부턴 응용 등을 동원해 나름 자기 혼자서도 강해져 나가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라이버즈] 파티원들의 도움으로 강해져 간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아무튼 주인공이 [어라이버즈]에 들어가 단련 끝에 보석이 되면서 주인공을 차버렸던 소꿉친구 '미야'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스킬도 가공하기 나름이라고 무능력의 클리셰 범주이긴 하나 던전에서 매핑과 색적(몹 찾기)과 함정 해체 등 던전 공략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직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던전에서 분명 소꿉친구 미야도 던전에 들락날락할 테고 공략에 애를 먹다가 우연히 주인공의 소문을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시추에이션이 그려진다고 할까.


어쨌거나 중후반 이후는 주인공 노트의 성격도 많이 바뀌어서 모든 방면으로 긍정적이 되고, 나름 책임감도 짊어지려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 초중반 쓰레기 같은 주인공의 성격만 이겨낸다면 이 작품은 꽤 괜찮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초반 선입견이 생겨서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중후반 새로운 파티원 모집하는 내용도 필자와 맞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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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여행 8 - S Novel+
시라이시 죠우기 지음, 아즈루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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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돈이란 기회가 있을 때 벌어두는 게 상책이다. 조화를 동화 한 닢에 사다가 행운을 불러오는 꽃이라 속이고 금화 한 닢에 내다 팔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배짱은 덤이다. 그래서 인스턴트 오믈렛을 데워서 금화 한 닢에 판다고 천벌을 받지는 않는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정처 없이 여행을 하며 고급 숙소에 묵고 싶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얼마나 처량하겠는가. 노숙은 죽어도 싫거든.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일레이나'는 걸핏하면 사람들 등을 처가며 돈을 번다. 근데 그렇게 돈을 벌어도 어째서인지 모이질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담 그녀는 악당인가? 가끔은 천벌도 받는다.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와준답시고 수고료를 삥 뜯는 게 문제지만, 내밀어진 손은 외면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은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그녀가 무료봉사로 도와주게 된다면 사람들 버릇이 나빠지겠지. 더구나 그녀는 마녀다. 판타지의 모험가처럼 의뢰비를 받고 처리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무료봉사를 한다고 소문이 난다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의 삥 뜯는 듯한 수고료는 어쩌면 현실미를 가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이런 부분은 꽤 유쾌하게 풀어낸다. 가령 이쪽 도시에서 저쪽 도시로 옮겨주는데 금화 30개 내놔라고 당당히 말한다.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시세를 부를 만큼 그녀의 배짱은 우주 최강급이다. 의뢰인과 같이 여행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은 했지만 여행을 통한 유대는 개뿔, 의뢰비 내놔라고 당당히 손 내미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번엔 불로불사를 살아가는 여자가 나온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도 반드시 살아나는 사람을 만나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 대한 푸념을 매시간 듣는 것도 고역이다. 그런 불사신과 여행을 하다가 역병이 도는 어느 도시에서 도착한다. 거기서 뜻하지 않게 불로불사자도 쓰기 나름이라는 사용처를 알게 되고, 일레이나는 멋지게 그녀를 이용해 돈을 버는데 성공한다. 


일레이나를 이렇게 놓고 보면 돈에 찌든 악녀 같은 이미지지만 사실은 기브  테이크를 잘 지킨다. 이번을 예로 들면, 불로불사로 살아오며 주변의 시선과 악의적으로 접근하는 악당들을 피해 도망 다니다시피 하는 그녀를 지인에게 소개해줘 해결책을 제시하는 애프터서비스를 잊지 않는 면모도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악당임에도 악당 같지 않은 현실미를 보여준다. 가끔은 진짜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다 천벌도 받지만. 사실 도와주기만 하고 얻는 게 없다면 일레이나가 여행을 이렇게 길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 도와주는데 미친 판타지 용사와는 다르게 받을 건 확실하게 받는 그런 현실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까.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에선 일레이나가 여행을 하며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일레이나에게 영향을 받아 마녀의 길에 들어선 사람도 있고, 도움을 받아 잘 살아가는 사람도 나온다. 운 하나는 정말 좋아서 가짜 마녀 행세를 하면서도 들키지 않는 사람도 나오고, 일레이나와 백합 찍으려고 혈안이 된 여자 애도 나온다. 근데 문제는 죄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현실과 이상을 망각해서 진짜 범죄단체에 쳐들어가 놓고 일반 카페로 착각해서 소란을 일으킨다던지.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근데 또 잘 해결된다. 그래서 약간은 재미가 없다. 이렇듯 이 작품은 가벼운 이야기들로 충만하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지 싶은데, 이 작품은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할까. 앞에선 가벼운 이야기로 이게 뭔 의미가 있나 하는 이야기를 펼쳐 놓고 뒤에선 정말 어두컴컴한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가령 이번에 쌍둥이의 이야기를 예를 들자면,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서 내리사랑은 공평하지 않으면 아이의 정서 발달에 악영향일 끼친다는 교훈을 던진다는 거다. 한 아이에게만 집중적으로 편애를 한다면 남은 한 아이는 어떻게 될까.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고를 치고, 그러다 부모에게 혼나고, 그럴수록 아이는 삐뚤어질 수밖에 없는. 궁극적으로 혼나는 것조차 부모의 관심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대목은 소름이 돋는다. 결과 애정결핍에 걸린 아이는 편애를 받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 간혹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에피소드도 있다.


일레이나는 스승을 만난다. 그동안 그녀의 스승은 간간이 언급되어 왔다. 게으르고 나비나 쫓아다니는 쓰레기 같은 스승이라고 매도하지만 지금의 일레이나로 있게 해준 고마운 인물이다. 일레이나는 과거의 스승을 만난다. 지금은 멸망해버린 어느 도시에서. 홀로 남겨진 소녀를 본 순간 일레이나는 단숨에 알아차린다. 그녀가 자신의 스승이란걸. 이렇게 인연은 갑작스럽게 연결이 된다. 지금의 그 소녀는 아직 마법을 쓰지 못한다. 악연 밖에 없던 지난날의 스승과의 인연도 돌이켜보면 좋은 나날이다. 그래서 일레이나는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치며 여러 뜻깊은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소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 일레이나와 함께했던 기억은... 스승은 일레이나를 가르치며 줄곧 비밀을 지켜왔다. 그리고 지금 소녀는 과거로 돌아가고 일레이나는 현재의 스승과 만난다.


맺으며: 중반 쌍둥이 에피소드는 애정결핍이 불러오는 참극이라는 시리어스가 따로 없다. 부모의 잘못으로 자식은 상처를 받아 가고 삐뚤어져가는 모습을 참으로 적나라하게 그려 놨다. 후반 일레이나가 과거의 스승을 만나는 대목에서는 조금은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이렇게 가끔은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풀어놓곤 해서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다. 앞에서는 고양이 카페라는 의미 없는 이야기를 풀어놓더니 후반엔 이렇다. 그래서 필자는 이 작품은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돈 버는데 혈안이 되기도 하고, 사기도 치고, 그러다 천벌도 받는 현실적이면서 유쾌함이 있는 반면에 앞에선 가볍게 애피타이저를 던져놓고 중후반엔 사람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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