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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17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벨의 나이가 분명 15세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 14세가 되었는지 궁금한 에피소드다. 뜬금없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은 많다면 많은 시간이지만 보통 회사에서는 인턴도 끝나지 않을 시간이다. 1권에서 17권까지 고작 6개월 밖에 흐르지 않았다. 어떤 여자를 혹은 남자를 만나 이 6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 안에 결혼할 만큼 호감도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을 한다면 과연 몇이나 성공할 수 있을까. 순수 마음만 부딪혀서 말이다. 이 작품의 경우 최소 작중 시간이 2년 정도 흘렀더라면 감정 이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러 인연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고작 6개월 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에서 캐릭터들의 성숙함이 부족해 보인다고 할까. 반면에 여신 프레이야의 시각에서 보면 성숙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외전편을 꽤 흥미롭게 읽기도 했고.
이 두 마음이 부딪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조화롭게, 이질적이지 않게 노력한 흔적을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아이와 어른의 사랑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벨은 고작 14세, 여신 프레이야는 수억 년을 살아왔다. 천계에서의 삶을 빼더라도 지상에서도 천년 이상을 살아온 여성이다. 그 긴 삶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왔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힘으로 빼앗아온 그녀다. 주인공 벨도 그중 한 명에 속하게 된다. 순수한 영혼에 눈이 뒤집힌 프레이야는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벨을 원하게 된다. 이것이 처음엔 곁에 있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마음은 아니다. 마을 소녀 [시르]를 역할하면서 그녀는 벨을 만나게 된다. 본편에서 프레이야의 이야기는 진실된 사랑을 바란다는 그녀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빼앗으면 된다. 신(神)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던전 도시 '오라리오'에서 그녀의 파밀리아에 대적할 수 있는 파밀리아는 많지 않다. 그렇기에 힘이 있어 논리적으로 빼앗을 수 있고, 빼앗을 수 있기에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이번 이야기를 표현하라면 이것이다. 프레이야는 [시르]를 그만두게 된다. 벨은 '아이즈'를 동경하고 있다. 프레이야는 수억 년을 살아오면서 진실된 사랑을 한 번도 얻지 못한 불쌍한 여인이다. 있었다면 벨에게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마음이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모르니까 벨에게서 거부당한 것이고, 그걸 이해 못하니까 여느 때처럼 힘으로 나선다. 여신 프레이야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세계를 개변(매료) 하기로 한다. 프레이야는 세계에서 벨을 지워버린다. 벨은 세상 그 누구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방황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나만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프레이야는 집착이라는 광기를 선보인다. 주도면밀하게 세상에서 벨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만약 꿈에서 깨어났을 때 세상 모든 신(神)과 주민들을 적으로 돌리게 될 거라는 현실은 안중에도 없다. 꿈은 꿈으로 끝나야 한다는 진리를 프레이야는 알지 못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과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건 생각지도 않는다. 세상엔 완벽은 없다. 그녀가 세계에 걸은 '매료'는 완벽하지 않다. 벨의 스킬 '리아리스 프레제'를 초반에 무력화 시키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에겐 승기가 없었던 것이다. 벨이 가지고 있는 '리아리스 프레제'는 '아이즈' 일변도 스킬이다. 동경하면 할수록 이 스킬은 빛을 보게 된다. 설사 미(美)에 있어서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하는 프레이야의 매료는 벨에게만은 통하지 않는다. 벨은 '아이즈'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이야에게 있어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승기는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간다. 벨과 지내면서 어린애 같은 집착만을 보여줬던 프레이야의 마음이 벨을 곁에 두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순수한 영혼의 본질은 떼뭍지 않은 영혼을 뜻한다. 그래서 벨의 순수한 마음이 부딪혀오게 되면서 버렸을 [시르]의 감정을 되찾게 된다고 할까. 이것은 작중에서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헤스티아'는 벨을 지키지 못했다. 압도적인 프레이야 파밀리아에 갈려나가 단원들은 몰살 직전까지 가게 된다. 벨을 되찾고 싶어도 단원들이 인질로 잡힌 이상 어떻게 하지도 못한다. '오라리오' 모든 주신과 주민들은 프레이야가 걸은 매료 때문에 벨의 소속은 바뀌어 있다. 이 상황에서 벨을 되찾는 건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은 없다. 틈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은 때를 놓치지 않는다.
벨은 아이즈를 동경하고 있다. 동경에서 오는 '리아리스 프레제'를 붕괴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스킬이 있는 한 매료는 통하지 않는다. 즉, 프레이야는 벨에게 매료를 걸 수 없다. 그래서 그가 동경하고 그 스킬의 존재 의의인 아이즈를 만나게 하면, 아이즈가 벨의 과거를 부정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즈도 프레이야의 매료에 걸려 있다. 아이즈는 벨의 물음에 대답한다. 이것이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키워드가 된다. 분기점을 넘어 반격의 실마리가 된다. 외전 소드오라토리오에서 아이즈는 영웅을 바랐다. 프레이야는 벨을 영웅 후보로 보고 있다. 그야 그동안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왔으니까. 미지를 타파하는 영웅이 있다면 벨이 될 것이라고. 프레이야가 걸어 놓은 시련은 벨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일까. 필자는 영웅이 있다면 벨의 주신인 여신 '헤스티아'라고 하겠다. 스포일러라 언급은 힘들지만, 가장 좋은 장면을 헤스티아가 가져가 버린다. 감동이라는 건 이런 건가 싶은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시작된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 다가온다. 손바닥 위의 물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벨은 프레이야에게서 [시르]를 보게 된다. 자신이 차버린 마을 소녀의 눈동자를, 그리고 그 눈동자 안에 서려있는 마음을... 영웅은 사람을 구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 설령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고 해도 말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영웅의 발자취를 만들어 간다. 소년 영웅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번 이야기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맺으며: 세상에서 잊힌다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나는 기억하는데 다른 사람은 날 기억하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이게 사태를 풀 열쇠가 되지만 당사자는 괴롭기 그지없다. 어제까지 부대끼고 한 솥밥 먹으며 유대를 형성했던 가족들에게서 잊힌다는 공포가 있다. 프레이야는 그런 벨의 마음에 파고들려고 한다. 근데 고자 동정이 이럴 때 빛을 보게 된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고 할까. 수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있으면서 면역은 없는지라 살을 부딪혀오면 도망갈 수밖에 없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만약 프레이야가 다른 수단으로 가령 [시르]로 부딪혀 왔다면 벨은 100% 넘어갔지 않나 싶다. 벨에게 있어서 [시르]는 아픔 그 자체다. 부딪혀오는 마음을 거부했고, 그로 인해 사라진 그녀를 매우 찾게 된다. 그래서 작가가 완급 조절보단 처음부터 답을 정해놓고 그린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애초에 프레이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두 개의 감정이라고 초반에 언급했는데, 솔직히 조금 거부감이 있다. 한쪽은 미성년자이고, 한쪽은 성인 그 이상의 나이를 먹은 여자가 순수한 마음이랍시고 부딪혀오니 애틋하다거나 애잔한 느낌보단 조금 뭐랄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고 할까. 수많은 남자를 만나온 그녀가 사랑에 있어서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모순이라고 해야 할지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그녀의 욕심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사과는 없고 당연시하는 것에서도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작가는 신(神)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만 치부할 뿐이다. 순수한 마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그리고 두려운 건 던전 도시 오라리오 전체를 농락하고 헤스티아 파밀리아를 궤멸로 이끌어 놓은 프레이야를 이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르]로 되돌릴까다. 아닌 게 아니라 후반부에서 그녀는 감정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범죄자를 갱생할 기회를 주는 건 있을 수 있는데, 피해자 같은 식으로 몰아가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