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의 혼잣말 9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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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긴 글 주의






처음엔 그저 따분할 일상을 벗어나게 해줄 새로운 장난감으로 여겨 심술을 좀 부려봤다. 얼굴엔 주근깨 투성이고 피죽도 못 먹었는지 빼빼 마른 몸으로 후궁을 쏘다니고(일이 힘든데 잘도 견딘다는 의미)남녀노소 불문하고 다 자신의 미모와 권력에 반해서 어프로치를 해오는데 저 궁녀는 자신을 소 닭 보듯이 하니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와중에 상급 비(妃)가 낳은 동궁(왕자)이 병으로 죽고 그 상급 비마저 병을 얻었는데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런데 저 궁녀가 대수롭지 않게 해결해버리니 호기심이 충만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쿡쿡 찔러봤다. 돌아온 반응이 재미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과 히로인 '진시'와 '미오마오'의 이야기다. 진시는 후궁 전체를 관할하는 책임자고, 마오마오는 노예로 붙잡혀 황궁에 팔려와 2년을 의무복무해야 되는 궁녀다. 아니 이젠 '였다'라고 해야겠다.


여기서 사족을 좀 쓰자면, 마오마오가 노예로 팔려 왔을 때 그녀의 친아빠가 몰랐길 망정이지 알았다면 내란이 일어나고도 남지 않았나 싶다. 마오마오의 친아빠는 나라의 군사(그러니까 대충 국방 장관을 보좌하는 참모? 그것도 황제의 신임을 얻고 있다)다. 권력은 없지만 군부를 쥐고 있어서 황제도 어찌하지 못하는 게 그녀의 아빠다. 다만 마오마오는 엄마와 어린 자신을 버린(바림 받았다고 오해 중) 아빠를 죽도록 싫어한다. 그러니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마오마오의 집안은 나름대로 잘 나가는 상류층인 반면에 마오마오는 자신을 길러준 양아버지(친아빠의 숙부)과 함께 창관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움막에서 사는 조금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은 진시의 배려로 부녀는 황궁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오마오는 벌써 20세가 되었다.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 마오마오는 궁녀로써 2년 의무복무가 끝이나 창관으로 다시 돌아갔으나 진시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이번엔 의국(병원)의 관녀(간호사 보조)로 황궁에 입궁 시켜버렸다. 진시로서는 처음엔 호기심이었던 게 어느 날부터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볼을 콕콕 찌르면 다들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는데 마오마오는 있는 짜증을 다 내며 질겁을 하니 이보다 신선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야 진시는 황제의 동생이라는, 황제 다음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놓고 인상을 쓴다는 건 내 목을 잘라달라는 거와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궁에 빠질 거 같은 사건을 가져와 던져 놓으면 약사 주제에 탐정처럼 해결해버리니 이보다 유능한 부하도 없다. 근데 문제는 마오마오 그녀 입장에서는 진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죽도록 귀찮다는 것이다.


도망가면 잡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라고 했던가. 보고 있으니 정이 들고, 정이 드니 손을 잡고 싶고, 마음에서 감정이 싹트는데 정작 상대는 도망가기만 하니 미치고 졸도할 일이다. 자신이 가진 권력 때문에 주변은 가식만 가득하고 솔직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마오마오는 허물없이 대해주는데다 가려운 곳(사건 해결)까지 긁어주니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부딪히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된다. 근데 그녀는 일절 대답을 안 해주니 진시로서는 겉몸이 달아갈 수밖에 없다. 마오마오는 자신이 원하는 관심 분야 이외는 그저 귀찮을 뿐이다. 그녀 마오마오가 관심 있는 건, 단 하나다. 약과 독.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녀는 독을 자신의 몸에 주입해 실험할 정도다. 황궁에서는 툭하면 그녀에게 기미 상궁 역할을 맡긴다. 양아버지의 영향으로 약사의 길을 들어섰고 그게 좋아서 약에 환장하게 된, 조금은 어디가 아픈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진시는 이런 괴짜 같은 그녀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이번 이야기는 사랑을 쟁취하려면 모든 걸 포기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단 하나의 사랑을 쟁취하려고 진시는 특단의 조치를 하게 된다. 사실 진시는 자신이 명령만 하면 마오마오는 수청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 거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슬프게 했다고 친아빠가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렇담 대신에 자신이 모든 권력을 버리면 어떨까. 황제의 동생이라는 직함을 말이다. 진시가 선택한 방법은 황족을 버리고, 황후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불에 달궈진 낙인을 스스로 몸에 찍어 버린다. 황제의 동생이라는 간판으로 결혼하게 되면 부인은 황후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사실 마오마오는 황제, 황후, 상급 비등 황궁 실세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진시는 이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황후의 사랑을 독차지 중인 마오마오가 대립은 안 하겠지만 정치적으로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만큼 진시가 얼마만큼 마오마오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어 마오마오가 미치고 졸도할 일이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자신 때문에 진시가 황족이라는 지위를 버렸고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스스로 낙인을 몸에 찍어 버렸으니 그의 인생은 끝장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오마오는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는다. 그것도 황제와 황후가 보는 자리에서 마오마오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겠다는 선언하고 일을 저질렀으니 도망도 못 간다. 결국 진시의 멱살까지 잡는다. 이제 진시가 낙인을 찍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주변에서 엄청난 소란이 일어날 테니 공공연하게 타인(궁녀나 시녀)에게 몸을 보여줄 수도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마오마오만이 그를 보살필 수 있게 되어서 마오마오는 완전히 코가 꿰인 꼴이 되어 버린다. 사람이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올가미를 깔아놓고 도망갈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일을 저지르니 마오마오가 그를 싫어 수밖에 없다. 이제 도망가고 싶어도 못 간다. 진시는 사랑을 쟁취했을까?


그렇담 이제 맺어지는 일만 남았나? 그렇진 않다. 9권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이제야 겨우 마음을 부딪혔는데 이제 와서 일사천리로 진행될 리가 있나. 마오마오는 아직도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하지만 조금은 진시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 거기에 동하는 모습도 보이면서 앞으로 진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마음에 가속도가 붙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공략법은 나와 있다. 하악질 하던 고양이에게 츄르 먹여주면 얌전해지듯 희귀 약재료만 쥐여주면 마오마오도 얌전해진다. 황궁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대파란이 일어났는데, 진시를 치료하며 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약재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에서 그녀의 괴짜 같은 일편단심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마오마오는 목이 달아나도 몇십 번은 달아났을 일이 건만, 평소에 이미지 관리는 현실이나 픽션이나 매우 중요한 게 아닐까도 싶은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마오마오도 진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앞으로 조그만 더...


그 외 자잘한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진시가 그 꼴(낙인 찍기)이 된 후 외과적으로 치료 기술(낙인 치료)이 필요하다고 여긴 마오마오가 외과 의술을 배우려 하나 남존여비인 세상에서 여자가 의관(의사)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약간은 보수적인 이야기도 들어 있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남자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려는 모습에서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오마오는 진시가 싫지만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책임을 지려 한다. 이런 부분에서 가정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다. 양아버지는 상냥하면서도 엄격하게 마오마오를 됨됨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냈다. 그런데 이제 진시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서 한시름 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 생긴다. 진시가 그 꼴이 된 걸 모르는 주변에서 진시에게 장가를 들라며 유력자의 여식을 입궁 시키려 하면서 사태는 이상하게 흘러간다. 둘의 사이를 더욱 단단히 하려는 복선일까. 게다가 서쪽에서 불온한 움직임도 보인다. 또다시 진시가 서쪽으로 시찰을 떠나게 되면서 둘의 이야기는 잠시 미뤄지게 된다.


맺으며: 필자는 웬만해서는 추천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필자가 추천하는 몇 안 되는 추천작이다. 리뷰는 진시와 마오마오 사이의 러브러브 한 이야기를 그려놨지만 이건 결과론일 뿐이다. 그 과정, 가령 진시는 들이대고 마오마오는 욕하는 식이 매우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마오마오는 진시를 소 닭 보듯이 하고, 진시는 약재를 그녀 앞에 살랑살랑 흔들면 거기에 낚여서 마오마오는 홀랑 넘어간다던지. 그녀의 주변 이야기도 흥미롭고, 그녀의 친아빠의 괴짜 같은 행동으로 인해 마오마오가 질려 하는 모습 등도 유쾌하다. 그 아빠의 그 딸이라고 딸도 괴짜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은 몰입도를 높여 준다. 이런 장면들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한다. 이런 요소에 미스터리한 사건을 가미해서 진시와 마오마오 사이에 암운이 걸리게 하는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이 좋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황후의 친가 쪽 가족들이 뭔가 꿍꿍이를 펼치며 둘을 무슨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10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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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스킬 【지도화】를 손에 넣은 소년은 최강 파티와 함께 던전에 도전한다 3 - L Novel
카모노 우동 지음, 시즈키 히토미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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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을 꼽으라면 주인공의 무능력을 관철하고 있다는 걸 들 수 있습니다. 15세가 되면 적성 검사를 통해 그 사람의 능력치가 스킬로 발현되고 그 스킬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죠. 누군 용사 같은 좋은 직업을 얻기도 하지만 주인공처럼 [지도화]라는 별 쓸모없는 스킬을 받기도 해요. 이렇게 이 세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미래는 결정되어 버리죠. 주인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스킬을 가졌어도 살아는 보겠다고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스킬이 곧 그 사람의 능력이 되는 세계에서 아무리 발버둥 처봐야 시궁창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어느 날 주인공을 더욱 시궁창으로 몰아넣는 사건이 터지는데, 같이 적성 검사를 받았던 소꿉친구(히로인)는 세계에서 얼마 없는 희귀 스킬을 받게 되죠. 한동안 같이 지내던 소꿉친구는 별 볼일 없고 보살펴주는데 한계를 느껴 주인공을 차버리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떠나버립니다. 주인공은 인생의 쓴맛을 10대 때 맛 보아야만 했죠.


이번 이야기는 '에린(히로인)'과 20계층에서 두 달여 고생한 보람이 있는지 [지도화], [은밀], [색적]등 비전투 스킬은 극한까지 갈고닦게 되었지만 결국 공격 스킬은 습득하지 못하게 된 주인공이 자신만의 전법으로 파티에서 역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은밀, 색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적에게 들키지 않기와 적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되었죠. 근데 이렇게 은밀하게 적을 찾아내도 처치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보통 여느 무능력물에선 아무리 주인공이 무능력이라도 결국 길을 찾아내 적을 무찌르는 능력을 입수하지만 주인공은 아무리 고생을 해도, 노력을 해도 일절 없는 것이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이죠. 이 짓거리를 1년 넘게 해도, 두 달여간 미답파 던전 계층에서 죽도록 고생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난제가 아닐 수 없어요. 이번에도 주인공은 다른 파티의 사람을 소개받아 공격 스킬을 입수하려 하지만, 작가가 이런 점에서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모습에서 대단히 높은 점수를 줄만해요.


그래서 그럴까, 주인공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게 되죠. 이런 점도 현실적이자 인간미 넘치는 부분이랄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계는 넘을 수 없는 스킬이라는 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을 주워준 [어라이버즈]라는 파티에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이번 3권에서의 주인공이 해야 될 일이 되죠. 근데 소꿉친구에게서 버림받고 현시점까지 근 2년을 보냈는데도 길을 못 찾았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도 싶어요. 사실 주인공은 딱히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센스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마을 사람 A 같은 캐릭터라는 이미지이죠. 그래도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시궁창에서 구르다 보니 조금은 성장하긴 합니다. 비전투쪽이지만요. 결국 공격쪽보단 던전에서 레이더 같은 방법으로 몬스터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몬스터 어그로 끄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딜러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해서 파티에 기여하게 되죠.


사실 필자는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을 꼽으라면, 주인공의 강해지기 위한 고뇌보다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이라 할 수 있어요. 주인공은 인생 어떻게 되겠지 하는 자포자기 성격을 안고 있죠. 그래서 성장도 더디고, 근본이 삐뚤어져 있다 보니 타인과 대화는 시비조로 비치기도 하는데 언젠가 칼 맞지 않을까도 싶어요. 그래도 그나마 상식인이어서 개성이 강해서 제각각으로 놀아나는 사람들로 구성된 파티가 와해되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파티 리더라는 사람은 다 늙도록 동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에 따른 순수함으로 여자들에게 사기나 당하고, 여자 찾아간다고 파티를 멋대로 해산하려 하질 않나, 질투는 얼마나 심한지 주인공이 자기가 마음에 둔 여자랑 같이 있는 꼴을 못 봐요. 마법사 '에린(히로인)'은 근본이 엘리트다 보니 그에 따른 의식수준이 높아 타인과 마찰을 자주 일으켜요. 엘리트답게 실력도 꽤 높죠. 이번에 그녀의 과거 중 하나가 밝혀지는데 자기보다 열 살이나 많은 마법사에게 시비 걸어서 털어준 후 온갖 모욕을 퍼부어주는 바람에 이번 3권에서 그 마법사로부터 못 볼 꼴을 당하게 되죠.


주인공과는 물과 기름이었으나 20계층에서 같이 개고생한 후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 가요. 그러나 이 작품은 하렘은 물론이고 커플도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둘이 맺어지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힐러 '네메(히로인)'는 이 작품에서 귀여움의 대명사랄까요. 주인공보다 6살 많은 연상이지만 드워프인지 뭔지의 계통이라 키가 크지 않아요. 그래서 주인공과 같이 있으면 언제나 주인공은 여아 유괴범으로 오해를 받죠.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는지 누나 행세를 하려고 하고 말끝마다 '거예요!'를 붙이며 자신감에 찬 무모한 말을 내뱉곤 하는 낯가림이 심한 캐릭터죠. 항상 주인공과 붙어 다니며 어쩌면 주인공과 맺어지는 확률이 가장 높은 캐릭터일 수도 있어요. 암살자 '진'은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주인공을 포섭해서 파티에 끼워 넣었고, 이 사람만큼은 개그코드가 없어요. 과거도 뒤숭숭한 이야기들 밖에 없고, 이번에 과거를 비추는데 뒷세계에서 더러운 짓은 좀 했나 봐요. 그러다 파티 리더를 만나 [어라이버즈]를 창립하면서 지금에 이르는데 이 사람 '진'을 한마디로 표현 하라면 돼지고기 등심 같은 캐릭터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성기사 '로즈리아(히로인)'는 파티 브레이커로 남자들 등치며 살아가는 걸 삶의 목표로 해서 수많은 파티가 그녀 때문에 와해되어 버렸어요. 주인공을 한때 유혹하기도 하고, 파티 리더의 눈에 콩깍지를 씌워 파티가 공중분해 직전까지 가게 만든 원흉이죠. 파티 보충원으로 영입했는데 어느새 정식 파티원으로 자리 잡고 동정인 주인공을 뇌살 시키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어요. 에린을 자극해서 은근히 주인공과 엮으려고 하는 중인데 에린은 그럴 마음이 없어요. 주인공이 로즈리아와 꿍짝거리면 질투는 하는데 마음을 밝히지 않는 츤데레성을 엿보이긴 해요. 근데 주인공도 딱히 에린에게 이렇다 할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결국 이들 파티는 동정을 유지한 채 늙어버릴지도 몰라요. 이런 캐릭터들로 이뤄진 파티를 보고 있으면 참 개성 있는 사람들을 잘도 모았구나 하는 걸 느끼게 돼요. 복선을 투하하는 심각한 이야기도 없고, 스킬과 직업 소개로 분량 다 잡아먹는 것도 없고, 전투도 리얼리티를 추구하는지 지루하지가 않아요. 2권을 통해서 시리어스인가 했는데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개그물이라고 보시면 돼요.


맺으며: 사실 주인공이 소꿉친구에게서 버림받은 충격에 죽자 살자 노력하는 이야기일까 했는데 일단 3권까지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어서 아쉬웠어요. 주인공에게 있어서 자극제가 필요한데 그게 없다 보니 주인공이 나아가야 될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번 3권에서 공격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지만 일단 성격이 고생은 싫어요 계열이다 보니 배우는 게 더디다 못해 결국 못 배우게 되고 던전에서 은밀과 살기를 이용해 몹 어그로나 끄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데 이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이겠죠. 거기에 [지도화]로 던전 전체를 부감할 수 있어서 이걸로 파티에 도움이 되고 있으니 전혀 쓸모없지는 않아요. 결국 이번 3권의 요점은 주인공이 있을 자리를 찾게 되었다는 의미가 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네메의 귀여움은 이 작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고요. 어째서 제1 히로인은 에린일 텐데 네메가 더 인상에 남는다고 할까요. '네메'의 대사가 재미있어요. 주인공이 그녀를 이용하려고 살짝 띄우주면 '네메에게 맡겨 주는 거예요!'하며 홀랑 넘어간다던가, '노트(주인공) 따윈 원 펀치로 격침이에요!'라든가, 사차원 같은 대사가 너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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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연의 성자 1 - L Novel
마사미티 지음, 이코모치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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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긴 글 주의






이 작품에서 참 안타까운 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제목이고 두 번째는 남의 여자를 빼앗으려면 좀 확실하게 했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거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가볍게 보는 소설에서 무거운 제목과 무거운 소재를 쓸 수 없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야기 요소를 그렇게 깔아놓고 결국은 주인공의 승리로 귀결 시킴으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쉽게 한다. 물론 1권 만에 결론이 난건 아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추방물을 주제로 한다. 시골 마을에서 '용사'가 탄생하고 용사를 지탱할 '현자'와 '성기사'도 선택된다. 그렇다면 '성녀'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느 판타지에서 보면 이런 직업으로 구성된 파티로 마왕을 잡으러 가곤 하는데, 용사라고 하면 성선설(인간은 근본적으로 착하다)에 미쳐있고 마왕을 무찌르면 평화가 찾아올 거라는 믿어 의심치 않는 올곧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할 것이다. 이런 용사를 지탱하며 현자, 성기사, 성녀도 함께하게 된다. 


그런데 꼭 여성만 성녀가 되란 법은 없다. 성녀의 직책을 남자가 가지게 되면 '성자'가 된다. 성자는 이 작품의 주인공 '러셀(남자)'이다. 성자의 클래스는 신관으로 요컨대 회복술사다. 모 작품의 회복술사처럼 자기 좋을 대로 회복을 쓰는...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그 회복술사에서 19금 요소를 뺀 하위 호환쯤 되지 않을까도 싶다. 아무튼 어릴 때 목검으로 마을에서 주인공을 이길자가 없었는데 어째서 주인공을 성자로 만들었는지 이 세계의 여신은 주먹구구식이다. 그렇게 용사, 현자, 성기사, 성자는 마을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게 되고 던전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용사가 나왔으니 마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작품에서 마왕은 무려 던전을 만드는 던전 메이커(설계자)라고 한다. 마왕은 던전 최하층에서 용사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용사와 유쾌한 파티는 뭐 빠지게 던전 클리어해가면서 최하층에 도달해서 마왕을 무찌르고 던전을 비활성화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어디서 추방 씬이 생기는가 궁금할 것이다. 성자는 회복을 담당한다고 위에서 언급했는데, 그렇다면 다른 클래스 가령 용사나 현자나 성기사도 회복을 쓰게 되면 성자의 입지는 어떻게 될까?라고 이 작품은 묻는다. 성자는 공격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검술이나 체술 등 물리력 행사도 못한다. 회복 밖에 못 쓰는 성자, 다른 클래스에서 회복을 쓴다면 성자는 필요 없게 되는 건 당연해진다. 그래서 주인공은 파티에서 추방된다. 매우 심플한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주인공은 고향 마을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근데 마을로 돌아오니 마물에 습격 당하는 미모의 여성이 있다. 이름은 '시빌라(표지 여성)'라고 한다. 하나의 이별을 겪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만남을, 여신은 천칭이 기울어지지 않게 운명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져서 이제 여신을 믿지 않는다. 아무튼 '시빌라'를 구해주게 된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던전에서 열렙하는 일상을 보내게 되는데....


단순히 이런 이야기였다면 필자는 도서를 집어던졌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NTR 요소와 가스라이팅을 들 수가 있다. 물론 NTR이라고 해서 19금적인 요소는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은 파티에서 짐짝 취급 당하며 쫓겨난 게 아니라고 역설하기 시작한다. NTR 할 때 남자 친구가 있는 여자를 취하려면 남자를 떼어 놓는 게 우선일 것이다. 주인공은 그런 작업을 당한 것이고, 문제는 그런 작업 당한 걸 주인공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동인지 19금 NTR 요소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보통 이런 주제는 가슴을 매우 두근두근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야 여친이 다른 남자에게 농락 당하기 전에 구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과정이 매우 흥미롭고 가슴 졸이게 만드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히로인 '에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줬던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다. '에미'는 성기사다. 그녀는 용사를 따라나서는 주인공을 따라나선다. 작품을 읽다 보면 그녀가 왜 성기사 클래스로 선택되었는지 참으로 구구절절하게 느껴지게 된다.


에미는 용사와 같이 다닌다. 용사는 주인공을 쫓아낸 장본인이고, 에미는 주인공을 도와준다는 게 그만 힘을 너무 쓰는 바람에 쫓겨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NTR에 있어서 엇갈림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용사는 에미를 노리고 있다. 에미는 시종일관 자신 때문에 주인공이 쫓겨났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 죄책감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렇담 주인공은 어떤가? 주인공은 버림받았다는 충격에 에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은 전형적인 둔한 캐릭터다. 그는 시빌라와 함께 마을 근처에 새로 생긴 던전에 들어가 열렙을 하는데, 성자가 아무리 열렙 해봐야 회복술사일 뿐이다. 사람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최강의 직업이 성자라지만 치료할 일이 없다면 길가의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두 번째 포인트인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 시빌라는 왜 주인공의 마을에 왔는가. 시빌라는 왜 주인공과 같이 다니게 되는가. 공격 마법을 쓰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시빌라는 슬슬 가스라이팅으로 자신의 힘을 가르쳐주려 한다.


이제 NTR 요소는 뒷전으로 미뤄지고 가스라이팅이 대두된다. 파티에서 쫓겨나 복수심 비슷한 삐뚤어짐을 가지게 된 주인공의 마음에 침투하기란 누워서 떡 먹기다. 회복술사가 던전에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주인공에게 시빌라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라 한다. 스포일러가 돼서 시빌라의 정체를 밝힐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생각해보니 핵심 스포일러라서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녀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인공에게 접근한다. 세상에서 대가 없는 친절과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미녀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주인공은 거기에 홀랑 넘어간다. 소꿉친구(에미)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주인공은 나이를 헛먹었는지 세상 물정이 매우 어둡다. 그러니 파티에서 쫓겨나지 같은 생각도 들게 하는 게 주인공의 성격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성격이니까 성자로 선택된 게 아닐까도 싶기도 하다. 결국 시빌라에게 휘둘려 가는 주인공, 이 작품의 제목인 흑연의 성자는 이렇게 탄생한다.


아무튼 NTR 요소는 나름대로 쫄깃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전연령가라서 그렇고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별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게 되고, 캐면 캘수록 주인공이 병sin 같다는 느낌이 장난 아니게 된다. 읽다 보면 주인공은 타인의 호감에 둔한 것도 정도가 있지의 표본으로 다가온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용사가 바람둥이라는 걸 들었음에도 에미의 위기를 알아채기는커녕 날 버린 주제에 같은 생각만 가질 뿐이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이거다. NTR 요소로 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점은 작가가 소심해서 일까? NTR 하는 용사는 또 어떤가. 하려면 좀 과감하게 하던가 순진한 어린애 같은 모습만 보일뿐 손댈 생각을 안 한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정작 선을 넘지 않는 NTR이라니 이건 또 무슨 경우일까? 사실 끝까지 읽다 보면 NTR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된다. 진짜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 감정이라고 역설한다.


어쨌거나 용사 파티에도 '케이티'라는 신규 여성 캐릭터가 합류한다. 글이 길어져서 그녀를 언급할까 말까 했는데 나중에 2권 리뷰 하려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케이티도 시빌라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용사 파티에 들어와 선의란 이렇게 무서운가 싶을 정도로 착하게 굴면서 용사 파티를 파멸로 이끌어 가는 장면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에미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서 그녀(에미)를 망가지게 하는 원흉이 된다. 케이티도 시빌라와 마찬가지로 뭔가의 목적을 위해 성자를 찾는 듯한데, 그녀가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같은 복선을 만들면서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해진다. 사실 주인공과 시빌라의 열렙 이야기는 왜 넣어 놨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없다. 아직 1권이라서 그런지 스킬이라던가 렙업 등의 이야기들로 충만할 뿐, 진짜 이야기는 막간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용사 파티의 에미 그리고 케이티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다고 할까. 특히 주인공을 바라보는 에미의 애틋한 감정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맺으며: 이 작품의 키포인트는 시빌라와 케이티다. 그녀들이 성자를 이용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가 이 작품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주인공은 시빌라를 만나 매우 강해지지만 가스라이팅 당하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이게 흥미 포인트라면 흥미 포인트일 수 있다. 주인공과 시빌라의 만담 같은 개그는 볼만하다. 손날 날리며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이 훈훈해지기도 한다. 힘을 합처 던전을 클리어해가고, 마왕을 만나 너 죽을래? 그러며 싸우는 장면들은 무난하게 흘러가는데 역시나 주인공 보정이 있으니 크게 고전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 작품은 전투보다 마왕의 존재, 마왕과 시빌라와 케이티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인공은 시빌라에게 이용당하나? 같은 알기 쉬운 복선은 작가의 배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 인간의 감정을 가미하면서 인간성을 부각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부분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은 수작까진 아니어도 평타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온갖 NTR 요소는 다 집어넣어놓고도 활용하지 않는 점, 용사가 NTR을 위해 많이 분발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스킬과 렙업과 직업 설명이 너무 많다. 학을 뗄 정도라서 NTR이라는 흥미요소가 퇴색해버리고 만다. 주인공으로 하여금 마을 사람들에게서 용사의 성격을 듣게 해놓고도 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전혀 하지 않는 작가의 센스는 빵점을 넘어 마이너스다. 딴에는 주인공을 둔한 캐릭터로 만들고 후반에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 히로인을 좋아하거나 맞아들이는 캐릭터로 만들려고 했나 본데 후반 뜬금없이 진행하는 바람에 완전히 망해버린다. 결정적으로 던전에 들어갈 때 준비는 기본이지만 너무 기본에 충실해서 그에 따른 쓸데없는 분량으로 식상하게 한다. 결론 용사와 에미등 주변 인물로 만 본다면 매우 흥미로운데, 주인공과 시빌라만 놓고 본다면 전혀 흥미롭지 않다. 만담으로 밝게 이끌어 간다고는 하지만. 2권부터 어떻게 전개될지에 따라 작품의 흥미도가 명확히 갈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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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전하는 화가 나셨나 봅니다 3 - L Novel
야츠하시 코우 지음, 나기시로 미토 그림, 이진주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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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레티시엘'이 과거 전쟁에서 사망하고 미래 1천 년 후에 기억을 되찾은 게 우연이 아니었다면? 나아가 누군가가 레티시엘의 정신체든 기억만이든 의도적으로 과거에서 가져와 도로셀이라는 여자 아이에게 주입했다면? 아주 가늘게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3권이라고 하겠다. 사실 이 두 줄만으로 이번 3권을 표현할 수 있고, 리뷰를 끝낼 수 있다. 이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게, 지금 3일 전 코로나 백신 접종 2차 맞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길게 쓸 여력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근데 이러면 재미없을 테니 필자의 아이덴티티인 길게 써볼까 한다. 이번 3권을 보다 자세히 요약해서 써보자면, 왕녀가 새로운 세계에 환생해서 적응하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도보다는 실질적으로는 3권 부제목이기도 한 암약하는 그림자들로 인해 내 인생이 내 인생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그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레티시엘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1천 년 전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눈 떠보니 공작가의 영애 '도로셀'의 몸이었다는 것뿐. 그래도 이왕 제2의 인생을 얻었으니 잘 살아보자고는 하는데 어째서인지 집안 모두가 그녀를 싫어한다. 이전에 필자가 이런 그녀를 두고 미운 오리 새끼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번 3권에서 단순히 그녀의 기행(엉뚱한 행동이나 히스테릭 등등) 때문에 미움받는 게 아니라는 복선이 나왔다. 과거 레티시엘이 아직 기억을 찾기 전의 도로셀을 가리켜 언니 '세리냐'가 그녀에게 살인자라고 매도한 적이 있는 걸로 보아 공작가 가정사에 중대한 사고나 사건이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불운한 가정사가 있다는 복선이 있지 않나 하는 건데, 문제는 이런 복선을 작가가 바로 풀려는 생각 없는지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번 3권을 평하자면 굉장히 불쾌한 부분이 있는데, 대책 없이 깔아대는 복선이다. 작가는 정말로 자신이 뿌린 복선을 잊어먹지 않고 전부 회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깔아댄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페이지 건너 복선이 투하된다. 가장 큰 걸 들라면 역시 레티시엘이 전생하고 1천 년 전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라 하겠다. 사실 이세계물에서도 신(神)의 개입으로 주인공이 환생을 하던 전이를 하던 개연성이 있는데 레티시엘이 기억을 되찾는 점에서도 단순히 우연일 리 없을 것이다. 이것을 여러 사건과 연결하고 레티시엘 본인도 조금식 도로셀때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3권에서 조금식 풀어간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놓고 보면 치밀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복선과 복선이 난무해서 종국에는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는 거고 작가는 3권에서 끝낼 생각도 없다.


좀 더 복선의 종류를 열거하며 치를 떨고 싶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필자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생략하겠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제1왕자를 미치게 했던 '검은 그림자'라는 일종의 마력 덩어리를 풀어 놓는 흑막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11년 전 이웃나라와 전쟁을 하며 레티시엘과 비슷한 용모의 인간병기들의 출몰에 대한 사건을 조사하던 그녀가 이들이 일으키는 소동에 휘말려 간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참, 복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중대한 복선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레티시엘 그러니까 지금의 도로셀의 본가인 공작가가 연루되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이것은 레티시엘이 기억을 되찾은 이유와 겹치지 않을까 하는 건데, 이런 부분까지 복선으로 만들어 놨다. 그래서 필자는 치가 떨린다. 이 복선 때문에 레티시엘은 언니와 동생과의 사이가 억수로 안 좋다는 복선도 있다. 이 정도면 복선에 환장하는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 복선대로 레티시엘의 언니 세리냐와 동생 크리스타는 눈에 띄었다 하면 레티시엘을 괴롭히려 혈안이 되어 있다. 마치 자기들이 피해자인양 하는 것에서 때로는 자기들과 다름에서 오는 괴롭힘이 아닌 과거 어떤 일로 인해 무언가를 잃었고, 그게 레티시엘의 탓임에도 지금의 레티시엘은 과거를 잊고 태평하게 살아가니 부아가 치밀어서 괴롭히는 게 아닐까도 싶은 복선이다. 레티시엘은 그런 기억을 조금식 되찾아간다. 이건 마치 스릴러 영화와 같은 시나리오랄까. 결국 제3자에 의해 과거 레티시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언니 세리냐가 살인자라고 레티시엘을 매도한 점을 보자면 아주 큰 사건이 있었던 듯한데 작가가 찔끔 찔끔 풀어 놓으니 환장하겠다.


맺으며: 이 작품의 제목인 '화가 났다'에서 어떤 점에서 화가 났나요?라고 묻고 싶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은 거다. 괴롭히는 언니와 동생에게 화가 났나? 이건 처세술로 얼마든지 흘려 넘길 수 있는 수준의 치졸한 괴롭힘 뿐이라 여기에 일일이 화를 냈다간 캐릭터가 이상해질 것이다. 그렇담 기어이 레티시엘의 주변을 괴롭히기 시작하는 언니에 대해 화가 났나? 실제로 언니는 그런 움직임을 보여 레티시엘과 그녀의 동료들을 난처하게 만들긴 한다. 하지만 이것도 1천 년 전 전쟁을 치웠던 레티시엘에게 이런 괴롭힘 따위 애들 장난 수준이다. 요컨대 언니와 동생은 흔한 악역 캐릭터일 뿐, 주인공을 화내게 할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검은 안개를 뿌려대는 흑막과 이 시대 사람들은 못 쓴다는 마술을 막 써대는 흑막, 그걸 조종하는 또 다른 흑막 때문에 화가 나나? 뜬금없이 전생의 레티시엘을 아는 사람까지 등장시키는 토나오는 복선을 끝까지 깔아대는 작가에게 필자는 화가 난다. 독자 화나게 하는 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인가?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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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설이 된 영웅의 이세계담 4 - L Novel
타테마츠리 지음, 미유키 루리아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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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이 왜 이세계로 다시 전송되었는지 어렴풋이 드러난다. 1천 년 전, 1대 황제와 대륙을 호령하며 제국을 건국 해놨더니 후손이라는 놈들이 삽질이나 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정령들이 주인공을 다시 불러온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작중에는 이런 언급은 없고, 필자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지금의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는 대륙을 통일한답시고 아무 잘못 없는 옆 나라 '페르젠'을 공격해서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제3황자가 공을 세우려 무리하게 '페르젠'을 침공했고, 자기가 똥을 쌌으면 자기가 닦아야지 이 무능한 아들놈은 군사를 갈아 넣어도 나라 하나 복종 시키지 못한다. 이에 황제와 제1황자가 친히 나서서 '페르젠'을 복속 시킨 거까지는 좋은데, 옛부터 점령전을 쉽게 치르려면 그 고장의 민심을 장악하라고 했다. 근데 제국은 민심 따윈 개나 줘버리고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아녀자를 능욕하고 잡아가서 노예로 팔아버렸다. 이렇게 철저히 제국은 악의 축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놓고 시작한다.


이번 이야기는 준동하는 페르젠 잔당군을 토벌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출전했던 히로인 '리즈'가 적군에 붙잡혀 온갖 능욕을 다 당하고, 또 다른 히로인 '아우라'는 성채에서 농선전을 벌이며 오늘내일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어찌 되긴 이게 다 주인공 잘못이라고 정의하겠다. 3권 리뷰에서 필자는 '리즈'를 자잘한 전투에선 이겨도 큰 전투에선 이기지 못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백성들의 지지가 두텁고 5대 정령검 중 하나인 [염제]의 선택을 받았지만 그것뿐이다. 백성들을 지켜야 될 전장에서 전술이 없으면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전략이 없으면 상대 적장의 목을 취하는 건 불가능하다. 리즈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모두 없다. 주인공은 그녀를 보좌하며 자기가 이걸 다하고 있었을 뿐이고 그 결과가 이번 4권이다. 몇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왜 리즈에게 여러 전술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일까. 언제까지고 자신이 보좌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황제가 둘을 찢어 놓으면서 간단히 무력화되고 만다.


사실 주인공으로서도 억울한 면이 있다. '리즈'는 [군신 소녀]라 불리며 전략, 전술에 있어서 주인공에 버금가는 '아우라'와 합동으로 페르젠 잔당군을 소탕하고 있었는데 아우라의 전술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리즈가 붙잡혀서 고초를 겪진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습적으로 리즈의 군대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드랄 대공국군에 의해 리즈의 군대가 와해되어 버렸으니 천하의 아우라도 어쩔 수가 없었고, 예상도 못한 일이다. 문제는 이들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나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 페르젠을 침공한 건 리즈의 오빠인 제3황자고, 3황자가 삽질하자 황제와 1황자가 나서서 페르젠을 초토화 시켜버린다. 당연히 페르젠은 잔당들을 규합해 제국에 반기를 들게 된다. 즉, 리즈는 아빠와 오빠들이 싼 똥을 치우려다 온갖 고초를 겪게 되었다 할 수 있다. 근데 아우라의 경우는 제3황자가 페르젠을 침공할 때 참모로서 전략을 짜내 페르젠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이렇듯 이 작품에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점이 여러 인물들의 상황을 꼬이고 겹쳐지게 해서 매우 치밀한 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아우라의 경우 제3황자의 명을 받고 리즈를 죽이려 한 일도 있다. 정치란 이런 걸까. 그래도 아우라는 리히타인 공국과 싸울 때 힘을 보태 주었으니 주인공에게 있어서 적은 아니다. 황제는 주인공에게 리즈의 탈환을 명한다. 말하지 않아도 주인공은 당장 달려갈 기세지만 정치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황제는 리즈만 구하고 아우라는 버리라고 한다. 주인공의 기본 이념은 사람을 구하는데 있다. 아무리 리즈를 죽이려 했다곤 해도 아우라를 버린다는 선택지는 주인공에게 없다. 황제와 부딪히는 주인공. 자, 이렇게 위기에 처한 히로인들을 구하는 주인공이라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작가는 그럴 마음이 없다. 이야기는 미적지근하게 흘러간다. 일단 페르젠 잔당군을 지원하는 드랄 대공국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주인공으로서는 이제 [군신]의 진면목을 보여줄 차례이긴 한데...


새로운 히로인이 등장한다. 매 권마다 히로인을 등장시키며 은근히 하렘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하렘이 메인은 아니다. 눈여겨볼 것은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히로인들은 하나같이 기가 세고 한 사람의 몫을 톡톡히 한다는 것에서 상당히 흥미롭다는 거다. 물론 리즈는 좀 더 분발해야겠지만, [군신소녀] 아우라, 리즈의 언니 로자, 레벨링 왕국의 왕녀 등 누구 하나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곤 해도 말이다. 그리고 이번 4권에서의 히로인 '스카아하'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멸망한 페르젠의 왕녀로서 제국을 맞아 잔당군을 이끌고 싸우고 있다. 이 말은 리즈와 주인공에게 있어서 적이라는 소리다. 5대 정령검 중 [빙제]의 선택을 받은 그녀는 성채에서 농성 중인 아우라를 몰아붙일 만큼 실력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롭힘당하는 리즈를 보호해주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히로인이 다 그렇듯 주인공과 일전은 피할 수 없다는 게 흥미 포인트다.


초반에 주인공이 다시 이세계로 불려온 이유가 어렴풋이 드러난다고 했는데, 종합해보자면 1천 년 전에 건국한 나라가 무능한 후손 때문에 망하게 생겼으니 어떻게 좀 해보라며 소환된 게 아닐까 싶다는 거다.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이 소국이라면 망할 정도로 예산을 퍼부어도 페르젠 하나를 굴복 시키지 못하고 있다. 황제와 아들 놈들은 똥만 싸지르지, 점령지 무고한 백성들을 못살게 굴며 악은 우리라는 듯 세계에 광고하고 있으니 1대 황제가 봤으면 화병으로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 속에서 '리즈'라는, 1대 황제만이 가졌다는 [염제]의 선택을 받았음에도 아직 이렇다 할 힘을 못내는 그녀다. 그럼에도 백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그녀를 지키라는 1대 황제의 뜻이 담겨 주인공이 소환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4권이라 하겠다. 주인공은 그런 리즈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리즈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분명 성군이 되겠지. 주인공은 그녀의 앞 길을 막는 귀족들과 전쟁을 준비한다.


맺으며: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드는 분기점이라 하겠다. 히로인들 개고생도 시켰고,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황제와 흑막에 의해 여러 나라가 조종 당하며 전운이 감도는 등 그동안 복선과 떡밥을 충분히 뿌려 두었다. 이제 히로인도 제법 모였고 하니 다음부터는 슬슬 복선과 떡밥이 회수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제1황자의 꿍꿍이가 기대된다. [염제]의 선택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리즈를 없애려 한 치졸한 제1황자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가 관심사다. 그리고 리즈를 황제의 자리에 추대하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본격 가동되는 등 이번 4권은 흥미로운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다만 아쉬웠던 게 이번 4권의 히로인인 '스카아하' 그녀가 망국의 공주로서 어딘가 애틋하거나 애잔한 연출을 해줬다면 몰입도를 상당히 올려 줬을 텐데 복수의 화신으로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히로인들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아이덴티티니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리고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성장한다고 했던가. 고초를 격은 리즈의 성장기가 시작된다. 이것도 상당히 가대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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