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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왕녀와 천재 영애의 마법 혁명 2 - L Novel
카라스 피에로 지음, 키사라기 유리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우리 고전 전례에 고개가 빳빳한 이방에게 돌 삿갓 씌운 사또가 있다.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상하 관계에서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그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교훈이 아닐까 싶은데 검색해봐도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이 교훈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걸 군주제 나라에 빗대보자. 사또가 이방에게 돌 삿갓을 씌운 이유는 이방이 사또 알기를 돌 같이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하가 왕을 돌 같이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아니스'는 그런 나라에서 왕녀로 태어났다. 5살쯤에 현실 지구의 기억을 되찾은 전생자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직까진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마법이 모든 걸 말해주는 나라에서 마법을 가지지 못한 그녀는 주변에게서 손가락질을 당한다. 절대적인 왕권의 나라에서 왕족에게 손가락질한다는 건 불경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녀는 마법을 동경하여 마학(학문)을 연구하고 마력이 깃든 마도구를 만드는 등 이단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알고 보면 그녀가 하는 일은 자신만의 욕구를 채우려는 욕심쟁이가 아니라 나라를 발전시키고, 백성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류는 있기 마련이고, 사사건건 시비를 터는 족속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일을 이단이라 치부하며 괄시를 해댄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주특기가 자기들은 발전할 생각은 안 하고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댄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알력이 발생하고 대립이 발생하게 된다. '아니스'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녀에겐 남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은 마법을 쓸 줄 안다. 주변은 마법을 못 쓰는 누나(아니스)보다 동생을 바라보며 누나에게 마법을 쓸 줄 아는 동생을 시기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뒷담화를 해댄다. 누나는 동생의 앞 길을 생각해 동생과 연을 끊게 된다. 같이 놀러 다니는 것조차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면 누나로서 동생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동생은 누나를 그렇게 내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신을 버린 누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주변은 마법을 쓸 줄 아는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 할 뿐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해주지 않는다. 사람에겐 희로애락이 있고, 자신의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그저 철창일 뿐이고 자신은 철창에 갇힌 새일뿐이다. 그리고 동생의 눈에 누나는 마치 자기 좋을 대로 나다니는 자유인으로 보였을 것이다(그게 아님에도). 동경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주변으로부터 누나가 무시를 당하는 것에서 울분도 생겼을 것이다. 자유롭고 싶은 마음과 울분을 누구에게 풀어야 할까. 나라의 역사가 길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네 역사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게 지금의 '아니스'와 그녀의 동생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누나는 세상을 바꾸려 하고, 동생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동생은 자기 손으로 세상을 변화 시키려고 해본다. 변화를 주지 않으면 나라는 곪을 대로 곪아서 언젠가 터질 테니까. 이게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다.
'아니스'는 동생의 약혼녀 '유필리아'를 조수로 받아들였고 드래곤 토벌을 통해 그녀(유필리아)의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 준다. 한 번의 약혼 파기로 인생의 종착점에 도달한 유필리아는 그렇지 않아도 왕비의 덕목이라며 감정을 죽이라는 교육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더욱 수동적이 되어 버렸다. 그런 그녀가 약혼 파기의 중심이 된 '레이니(히로인)'를 만나 용서와 화해를 통해 홀로서기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자신을 북돋아주는 '아니스'를 통해 사람의 온기가 무엇인지 알아간다. 백합답게 연모하는 마음도 키워 간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해야 될 일이 뭔지 수동적인 모습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발로 걷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이 모든 것은 아니스의 동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걸, 약혼 파기의 전말을 접하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감정을 죽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유필리아와 아니스의 동생은 감정의 희생자다.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하라는 대로 해라 하는 세상이 옳음 것인가 묻는다.
이번 이야기는 만인을 위해서라 쓰고 자신들(귀족)을 위해 감정을 죽이고 살아가라는 억압을 벗어던지는 자유를 그린다. 아니스는 주변 마찰에 개의치 않고 고집스럽게 마학과 마도구 발명을, 유필리아는 약혼 파기 사건을 통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아니스의 동생은 누나의 등을 바라보고 싶었고, 누나와 같이 걷고 싶었을 뿐이다. 이래서 응석꾸러기는 안 된다는 교훈도 있지만 어린애에게 많은 걸 바라는 건 잘못이다. 그래서 이니스의 동생은 잘못된 방법을 쓰게 된다. 누나가 떠난 이후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아 버렸으니까. 그래서 동생은 약혼 파기를 통해 나쁜 길에 들어서게 된다. 누나는 그런 동생이 애달프기만 하다. 자신이 있으면 동생이 위험해져 연을 끊은 것인데, 정작 동생이 나쁜 길로 가버린다. 동생은 유필리아와 달랐던 점은 무얼까. 그것은 왕, 그러니까 동생과 아니스의 아빠 왕의 위엄이 없기 때문이다. 사또는 고개가 빳빳한 이방에게 돌 삿갓 씌워 고개를 숙이게 했다.
만약 아니스의 아버지, 왕이 엄하게 신하들을 단속했다면 미래는 바뀌었을까가 이번 2권에서 느낀 필자의 생각이다. 신하들이 왕족(아니스와 그녀의 동생)을 중상모략하는데 가만히 내버려 둔 책임은 전적으로 왕에게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왕에게 그 어떤 벌도 내리지 않는다. 그 결과로 동생은 잘못된 길을 가게 된다. 누나는 바로잡으려 하고, 유필리아는 몸을 던져 혈족 간 안타까운 싸움을 말리려 한다. 동생에게 유필리아 같은 용기가 있었다면 그의 미래는 바뀌었을까. 아니면 서로 대화를 했다면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까. 이번 이야기는 가족 간 단절되어 가는 현실 세계를 비꼬는 게 아닐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왕족 정도 되면 다른 파벌의 모함 정도는 일상적일 텐데 여기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다. 아니스는 다른 파벌로부터 엄청난 괄시와 시기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마이웨이 성격으로 잘 넘긴다. 그러나 동생은 그렇지 못했고, 누나는 그런 동생을 보며 일말의 책임을 느끼게 된다.
이번 2권은 시사하는 점이 매우 많다. 상대를 위한다는 점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누나(아니스)는 동생의 안전을 위해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동생은 자기를 버린 걸로 오해한다. 재미로 던지는 돌에 개구리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무심코든 악의든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는 동생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동생은 유리 멘탈이었던 게 불행했을 뿐이다. 동생은 제멋대로 구는 귀족을 없애서 세상을 바꾼다는 명분을 들어 해선 안 되는 일을 벌인다. 여기서 시사하는 점은 변화와 발전을 두려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신하들을 묵인하는 군주가 함께하면 이렇게 안타까운 일도 벌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엄한 백성이 된다. '레이니(히로인)'는 좋아서 유필리아의 약혼을 파기 당하게 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속죄하려는 그녀의 마음은 가슴을 매우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녀 덕분에 유필리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수 있게 되었고 아니스와 더 가까워지는 결과가 되었으니 유필리아 입장에서 레이니는 길인(吉人)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결국 백합 다운 작품이라 하겠다.
맺으며: 오랜만에 반말로 쓰려니 자괴감이 엄청나게 몰려온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왠지 이렇게 써야 뜻이 전달될 거 같아 써보았다. 이 작품은 백합으로서 남자 주인공은 고사하고 남자 등장인물이 별로 없다. 동생군은 이번 2권을 기점으로 거의 리타이어 확정이고, 아니스의 아버지는 그냥 들러리에 무능에서 약간 좋은 왕일 뿐이다. 고생은 딸(아니스)이 다 하고, 아들은 사춘기 제대로 겪다가 저 멀리 가버린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망할 왕이라고 되뇌어 본다. 확실히 자식 교육의 중요성을 엿본 듯하다. 엄마(왕비)는 그제서야 눈물 흘려봐야 기차 떠난 지 오래다. 이런 점을 볼 때 진짜 현실성을 띠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자식 망가지기 전에 교육을 잘 시키자. 위정자라면 아랫사람 단속 좀 잘 하자. 현실에서 뒷담화 하는 직원들 가만히 내버려 둬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그 일로 인해 자식까지 잃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마지막으로 사실 히로인 하나 더 나오지만 언급할 타이밍을 못 잡았다. 이 히로인은 3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