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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양피지 5 - 늑대와 향신료의 새로운 이야기,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21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뮤리'가 '콜'을 따라 나선 이유는 그저 사모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랑 '호로'의 딸로서, 엄마 '호로'가 행상인 아빠 '로렌스'의 어리바리한 점을 봤듯이 '뮤리'도 '콜'에게서 그런 점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정 부패 썩어가는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세상 밖으로 나와 '여명의 추기경'이라는 이명을 부여받고 교회 개혁에 앞장선 '콜'은 이제 교황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발밑의 어둠을 못 보는 우를 범하기 일쑤다. 그때마다 그를 구해주는 건 언제나 뮤리다. 로렌스가 장사를 하며 뒤통수를 당하고 정보에 어두워 망할 때마다 그를 구해주었던 건 호로다. 뮤리는 콜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할 때 그의 미래를 봤을 것이다. 현랑 호로는 고대부터 살아온 정령이다. 그 정령의 피를 물려받은 뮤리 또한 정령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뮤리는 걸핏하면 아내가 되고 싶다며 콜에게 들러붙는다. 엄마의 피를 물려받은 뮤리는 콜과 인생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걸 알 텐데도 같이 하려는 이유가 무얼까.
하마터면 교회와 왕국 간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었던 여상인 '에이브'의 음모를 무찌르고 다소 숨통이 트였나 했더니 이번엔 뮤리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 콜은 전전긍긍하게 된다. 교황마저 슬슬 호적수로 보고 있는 콜의 마음을 이리도 뒤숭숭하게 만드는 뮤리의 정체는 뭐냐 싶은 게 이번 이야기의 핵심이다. 엄마를 닮아 먹는 건 오만상 밝히고, 로렌스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았던 엄마를 따라 하듯 콜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으려는 이들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훈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오라버니&동생 관계로 지낼 수는 없다. 뮤리는 콜을 장래 남편감으로 확실하게 찍어 놨지만 콜은 성직자로서 가족은 꾸릴 수 없다. 그럼으로 뮤리의 마음은 받아 줄 수 없다. 그래서 둘의 관계를 나타내는 '문장'을 만들어 둘의 관계에서 연결점을 만들고자 한다. 이 부분은 호로가 로렌스와의 생활을 일기로 남겨서 그가 떠난 후 돌이켜보며 그땐 그랬었지 같은 추억을 만들려는 의미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해서 집필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콜이 뮤리의 마음에 답하기 위해 만들고자 한다. 아마 뮤리는 성장해서 콜을 떠나보내고 그 문장을 가슴에 달고 세상을 여행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느낌이 이번 이야기에 많이 녹아 있다. 뮤리는 옛날 이야기와 기사단 이야기를 좋아하고 동경한다. 그래서 '달을 사냥하는 곰'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새로운 여행은 여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있다. 달을 사냥하는 곰은 엄마 호로에게 있어서 고향을 파괴하고 동료들을 몰살한 철천지 원수다. 그래서 그 딸인 뮤리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 그 달을 사냥하는 곰은 지금 어디에 있나가 뮤리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콜은 먼 곳을 바라보는 뮤리에게서 그녀의 앞날을 예상한다. 보다 넓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만약 콜이 호로와 로렌스와 만나지 않았고 뮤리를 보살피지 않았다면 뮤리는 엄마 호로처럼 일찌감치 뛰쳐나와 세상을 여행하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콜은 자기가 저질렀던 교회 개혁의 대가와 마주한다. 무거운 세금 징수와 부를 축적하며 타락해버린 교회를 개혁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실이 맺어 청렴해진 교회도 다수 생겼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실직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이교도와 전쟁을 위해 파견 나가 있었던 왕국의 정예 기사단이 쫄쫄 굶고 있는 것이다. 기사단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왕국은 여명의 추기경으로 추앙받고 있는 콜을 앞세워 교회와 대립 중이다. 세금만 왕창 뜯어갈 뿐 하는 건 없는 교회를 이뻐할 위정자는 없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 나라의 정예 기사단이라고 해도 교회 앞에 서 있는 기사단도 이쁠 리 없다. 돌이켜보면 이들의 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바로 '콜'이다. 콜이 앞장서서 교회를 개혁해야 된다고 했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교회 소속 기사단에게 지원했다간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콜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만 한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번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뮤리의 마음에 답해주는 것, 쫄쫄 굶고 있는 기사단을 그들의 긍지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방법을 찾는 것. 기사단은 신앙심이 깊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왕국과 교회의 대립 구도 때문에 지원도 끊겨 버렸고, 교회 측에서는 자신들과 대립하는 왕국(+콜)에서 파견된 기사단이 이쁠 리 없다. 기사단은 중간에 붕 떠버렸다. 사실 콜이 나타나기 전부터 쫄쫄 굶고는 있었지만 콜이 나타나면서 더 박차가 가해진 것이다. 그 기사단이 왕국으로 복귀하면서 콜과 왕국은 난처해진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기사단을 내칠 수도 없다. 여기서 그 옛날 난감해하던 로렌스를 도와줬던 호로처럼 뮤리의 지혜를 빌리고, 독수리의 화신(뮤리는 닭이라 부른다)에게서 정보를 얻는 등 콜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간다. 사실 이 부분은 뮤리와 문장 만들기 이야기보다는 약간 덜 흥미롭다. 그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콜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고 성장하느냐를 다룰 뿐이다.
맺으며: 누가 현랑 호로의 딸이 아니랄까 봐 할 때는 하는 뮤리에게서 호로의 편린을 엿보게 된다. 늑대와 향신료를 흥미롭게 본 분들이라면 약간 향수에 빠지지 않을까. 그리고 달을 사냥하는 곰의 정체가 뮤리의 가설에 의해 밝혀지는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엄마 호로도 알아채지 못 했는데 역시 젊은 아이의 발상은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앞으로 이 작품의 방향이 조금 잡혔다고 할까. 다시 여행을 떠난 아빠와 엄마와 만난다면 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지 않을까 한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오래 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삶과 애환 그리고 경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일반적인 라노벨을 생각하고 접했다간 다소 무거운 소재에 놀라게 되는 작품이다. 행동엔 결과가 따르고, 그 결과가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짊어져야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걸 어떻게 풀어갈지, 그로 인해 성장해가는 모습들을 그리며 그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준다면 그것만큼 큰 용기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