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야근! 2 - L Novel
와가하라 사토시 지음, 아리사카 아코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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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사실 길 가다가 봉변을 당하는 사람이 보이면 구해주는 게 인지상정이긴 할 겁니다. 그게 봉변 당하는 사람은 여성이고, 내가 남자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는 게 세상 상식이죠. 거기에 사람 좋은 성격을 가졌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 건 덤이고요.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 '토라키'는 대낮에 봉변 당하는 히로인 '아이리스'를 구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그러나 그 댓가는 참으로 혹독했는데요. 선의를 폄하해선 안 되지만 나중에야 괜한 참견이었다는 걸 알게 되어 땅을 치고, 거기에 사람이 재가 되어 못 볼 꼴 당하며 구해줬더니 예비키까지 만들어서 어느새 내 집에 들어앉아 있는 걸 본다면 내가 왜 그때 구해줬을까 하고 후회를 해봐도 이미 늦은 겁니다. 주인공은 흡혈귀고 그녀는 흡혈귀 등 인간이 아닌 존재의 총칭 [팬텀]을 사냥하는 '성십자 기사단'의 정사원이거든요. 그러니 그녀를 구해준 순간부터 주인공 토라키는 인간으로서 권리를 잃은 것입니다. 이래서 노란머리(?)는 구해주는 게 아니라죠.

이번 이야기는 아이리스로부터 시작된 여난을 더해 여기에 기름 붓듯이 히로인 '리앙 쉬이링'이 주인공을 찾아오면서 그의 인간관계를 파탄 내는 걸 그리고 있습니다. 평범한 면상에 돈 벌어 놓은 건 없고 그렇다고 집안이 좋나, 어디에나 있을 법한 청년에게 어느 날 영국에서 온 노란 머리가 달라붙고,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미하루가 들러붙는 거에 더해 중국에서 온 미녀(리앙)까지 들러붙으니 주인공이 일하는 편의점 점장은 죽은 생선 눈이 되어 인기 많아서 좋겠다?라며 볼 때마다 질척 거리지. 이번엔 '아이리스'가 몸담고 있는 성십자 기사단(전부 여성)에서 주인공 정보 캔다고 편의점에 떼로 몰려와 소란을 피우니, 점장은 너의 스트라이크 존은 어디까지?라며 또 질척거리고. 집은 흡혈귀 조사한다고 성십자 기사단에 의해 초토화되어 버렸고,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해서 재난 블록버스터를 찍는다면 몇 편이나 찍을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게 다 '아이리스'를 구해준 것에서 비롯된...

히로인 '리앙'이 왜 주인공을 찾아왔는가가 이번 2권의 핵심입니다. 그저 여난을 더하기 위해 찾아왔나. 아님 1권에서 '무로이 아이카' 퇴치에 실패한 주인공을 어떻게 해보려고 무로이 아이카가 그녀(리앙)를 붙인 것일까. 주인공은 경계를 하지만, 그녀가 찾아온 이유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으니. '무로이 아이카'는 주인공을 흡혈귀로 만든 '고요 스트리고이(진조, 순혈)'로 주인공이 반드시 쓰러트려야 할 적입니다. 그녀 때문에 주인공은 70년 넘게 청년의 모습으로 살아와야 했어요. 동생은 이미 늙은 할아버지가 되었고, 조카들도 흘쩍 커서 주인공보다 더 늙어버렸죠. 사실 주인공은 인간관계를 중요시하지만 이렇게 혼자 남겨지는 세상이 두려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 제대로 된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려 하고, 아이리스가 흙 발로 들어왔을 때 경기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이번 이야기에서도 주인공과 아이리스는 거의 감정싸움 직전까지 가게 되죠.

사실 필자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도 리뷰 쓰기에 조금은 난도가 높은 편입니다. 처음엔 여난을 주제로 해서 코믹스럽게 흘러가다 본격적인 내막(그러니까 이 작품으로 치면 '리앙'이 주인공을 찾아온 이유)이 밝혀지고 흑막(여기선 무로이 아이카)과 싸움으로 넘어가는 구조를 담고 있는데요. 참고로 '무로이 아이카'는 엄청나게 강한 존재고, 이 작품의 최종 보스가 될 거 같더군요. 이걸 기본 베이스로 깔아두긴 했지만, 본질적인 이야기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주인공)을 양지에서 살아가는 인간(아이리스)이 끌어올려 햇빛을 보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은 흡혈귀라서 햇빛 보면 재가 되죠. 그러나 어딘가 성격에 문제 있어 보이는 아이리스 때문에 쉽게 진행되지는 않아요. 솔직한 성격이 아니라서 마음속에 꿈쳐두고 주인공이 '리앙'을 신경 쓰자 토라져서 막말 쏟아내는 등 조금은 갈 길이 멀기도 한데요.

그렇담 액션 쪽은 어떤가. 이 작품은 다크 판타지의 일종입니다. 시대 배경은 현대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판타지로서, 현대 문명과 중세 시대의 판타지가 양립하고 있죠. 이런 만남에 조금은 괴리감이 있기도 합니다만. 흡혈귀, 강시, 늑대 인간 등 픽션에서 등장하는... 이거 명칭이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나는군요. 아무튼 이런 호러에 등장하는 괴수(이 작품에서는 팬텀)들과 이들 퇴치하는 전문 기관이 있고, 이런 세계관이 다 그렇듯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죠. 주인공은 흡혈귀로서 퇴치 대상이지만 아이리스가 몸담고 있는 성십자 기사단과 협력이라 읽고 착취 당하며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팬텀들을 퇴치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액션은 호들갑스럽지 않고 간결하게, 가령 미하루가 칼 휘두르는 표현은 머리로 그려질 만큼 잘 표현하고 있는데요. 맛으로 표현하면 담백하다고 할까요. 다만 최종 보스가 될 '무로아 아이카'와의 싸움에서 기승전결이 없어 좀 아쉽습니다.

맺으며: 솔직히 히로인 '아이리스' 성격 때문에 하차할까 말까 고민 중이군요. 오직 팬텀만을 퇴치하기 위해 살아와서 그런지 사람의 감정에는 매우 서툴러서 자신의 마음이 어떤 걸 가리키는지 몰라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제법 있는데요. 가령 히로인 리앙이 무로이 아이카가 보낸 자객 같은 거 아닐까 감시하는 데에도 나보다 그뇬 우선? 같은 반응을 보이고, 리앙이 일으킨 어떤 일에 대해 추궁하면서도 하다 하다 의처증까지 보이는 것에서 질려버렸군요. 개연성이 좀 부족하다고 할까요.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연애 감정엔 서툴다 같은, 풋풋함보다는 냉정함이 먼저 오더라고요. 차라리 주인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머리에 꽃 꽂은 광녀처럼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미하루 같은 행동을 했더라면 시원하기라도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런데 엔딩을 보니 작가는 아무래도 그녀(아이리스)를 온화한 주인공과 만나게 함으로서 성격이 고쳐지고 감정을 보다 밝게 변화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감정이 상당히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고요.

사실 히로인 리앙이 찾아온 이유를 리뷰에 언급하고 싶지만 그것만으로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는지라 빼고 쓸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밝힐 수 있는 부분은 주인공이 흡혈귀라는 것이고, 자신의 출신 때문에 주인공(흡혈귀)을 동경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정작 본인(주인공, 흡혈귀)의 고충은 모른 채 말이죠. 그리고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요. 결국 범죄에 이용당하고, 학대를 받아온 캐릭터가 양지를 동경하며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그린다고 할까요. 그런 이야기에서 작가가 마련한 그녀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같은 추리를 하게 하는 부분도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이번 이야기에서 핵심이 되는데 그런 그녀가 사건에 휘말리지 않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그녀는 결과적으로 양지에서 살아갈 것인가 음지에서 살아갈 것인가 같은 조금은 가슴 아픈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왜 의문형이냐면, 정작 정말 중요한 후반에서 작가가 분량 조절을 잘 못했는지 조금 엉뚱하게 흘러가버려요. 리앙에 대해 이야기 잘 하다가 왜 갑자기 주인공 이야기로 선회하는지 이해불가의 일이 벌어져요. 한꺼번에 많은 설정을 집어넣은 폐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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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뉴 게이트 5 - 05. 붉은 섬멸자
카자나미 시노기 지음, 김진환 옮김 / 라루나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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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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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5권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과 비교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설정들이 있어서 이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하는데요. 이 작품의 주된 기반이 되는 건 VRMMORPG <THE NEW GATE>이라는 게임이고, 어느 날 게임은 탈출 불가(로그아웃 불가)가 되어 버립니다. 게임 내에서 사망은 곧 현실의 본인도 사망한다는 것, 그리고 이번 5권에서 밝혀진 바로는 악성 PK 유저가 많이 있다는 것, 최종 보스를 클리어하면 로그아웃이 가능하다는 것, 주인공에게 여친이 있다는 것, 게임 내에서 모종의 사건 때문에 주인공은 미친 듯이 PK 유저들을 살육하고 다녔다는 것, 덤으로 하렘.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같지 않나요. 필자가 설명할 필요도 없이 SAO가 떠오르죠. 이 작품(뉴 게이트)의 주인공도 최종 보스를 클리어하고 다른 유저들이 로그아웃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여기서 SAO와 차이점은 '키리토'는 현실로 돌아간 것과 다르게 이 작품의 주인공은 게임 내 시간으로 500년 후의 판타지 세계로 전생한다는 것이군요.

자, 그럼 여기서 두 작품 중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가 관심사인데 SAO가 2001년쯤부터 넷상에 연재했고, THE NEW GATE는 2013년부터 연재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 5권을 읽으며 참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SAO 따라 한다고 그럴 텐데, 사실 이 정도 소리 들으면 양호한 편이고 아류작이니 베꼈느니 하면 참 감당이 안 되겠더라고요. 주인공 '신'은 '키리토'처럼 미친 듯이 열렙해서 게임 내 최강자의 자리에까지 올라섰어요. 이것만 아니었다면 희망(?)이 좀 있었을 텐데 주인공은 인생의 1/3을 게임에 투자할 정도로 폐인급이었으니 최강자가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는 없었겠죠. 아무튼 리뷰를 어떻게 써야 되나 고심하며 평을 찾아보니 왜인지 그런 악평(?)은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괜히 필자만 손해 봤습니다. 하기야 필자도 이 작품이 있는 줄 최근에야 알았으니 필자보다 라노벨에 관심이 적은 분들은 접할 기회가 더 없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어쨌거나 SAO에서는 '래핑 코핀'이 키리토와 대적했다면, 이 작품에서도 그에 준하는 악성 PK 유저들이 있다는 것이고 주인공 '신'은 그들과 적대하는 관계로 나옵니다. 이번 5권에서는 그 PK 유저들도 환생을 거쳐 이쪽 세계로 넘어왔고 마을을 궤멸 시키는 등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조만간 주인공과 마주해서 처절한 싸움을 펼치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요. SAO가 먼치킨이면서도 이런 점(먼치킨)이 희박했던 건 '래핑 코핀'이라는 PK 집단과의 대립을 그렸기 때문이죠(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과 그런 PK 유저랑 대립 시키면서 주인공의 먼치킨을 희석 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주인공에겐 지킬 것이 많아요. 물론 히로인들도 하나같이 먼치킨이어서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상대는 그런 점도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악질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이 작품이 기대되는 점이기도 하죠.

다만 이런 기대되는 이야기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은 완만해서 한 권에 며칠식 밖에 흐르지 않는 데다 일상생활 이야기를 상당히 디테일 있게 그려 놓으며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지라 떡밥이 흘러나오고 회수되려면 몇 권이 지나야 되더라고요. 이번 5권에서는 PK 유저들이 언급될 뿐이군요. 그보다는 몬스터 범람으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힘을 합쳐 싸워 나가는 걸 그리고 있는데 사실 이건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이 워낙 강해서 그리 중요하지는 않아요. 문제는 누가 몬스터 범람을 일으켰느냐고 주인공은 그 범인을 찾게 되죠. 그리고 PK 유저와 더블어 새로운 적대 세력이 있다는 걸 알아갑니다. 그리고 새롭게 진행되는 이야기로 주인공에겐 여친이 있었고 모종의 사건 때문에 떠나보낸 후 수라의 길을 걸으며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한 적이 있다는 등 상당 부분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하는데요.

그렇다면 과거의 이야기에서 과거의 연인이 언급되는 건 필연적이고 여기서 대두되는 건 '현재의 여친'이 되겠죠. 뉴 게이트 게임 내에서 서포트 캐릭터(NPC)였다가 이쪽 판타지 세계에서는 생명을 가지게 된 '슈니'의 경우. 뉴 게이트 게임 내에서 수라의 길을 걸으며 반미치광이 시절을 보냈던 주인공을 알고 있는 '슈니'가 PK 유저들도 환생했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이 다시 수라의 길을 걷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에서 여타 히로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지고지순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마음에 망설임을 보이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옛여친을 그리워하며 '슈니'의 마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그리고 은근히 신경 쓰기 시작하는 '티에라'도 있고, 주인공과 결혼해서 붙잡아 두려는 왕녀도 있고, 천벌이나 받아 버리지 같은 환경 속에서 뉴 게이트때 같이 어울리던 유저들과 상봉하는 등 이야기가 상당히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맺으며: 메인 히로인 '슈니'가 이쪽 세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같은 소소한 재미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녀(슈니)는 인지를 초월한 능력자(이쪽 세계에서는 선정자)로 여러 난제를 해결해 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죠. 거기다 하이 엘프로서 한 인물도 하고요. 그녀가 발행하는 소개장은 국왕 칙서보다도 더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체불명(주로 주인공)의 사람도 그녀의 소개장만 있으면 절대 신뢰를 받는 등 다소 편집적인 측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그녀의 주인이라고 밝혀지면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 같은 흥미진진한 면도 있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필사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죠. 밝혀지면 당연히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올 테니까요. 지형지물을 바꿔버릴지도 모를 힘을 소유한 주인공을 자신(귀족이나 왕족)의 수하로 둔다면? 이런 이야기도 재미있을 텐데 이 부분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하다고 할까요. 어쨌거나 읽으면 읽을수록 SAO와 유사한 흐름이긴 한데 이걸 차별화해서 어떻게 풀어갈지는 전적으로 작가에게 달렸습니다만, 일본에서 18권까지 나왔다는 건 어느 정도 차별에 성공했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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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먹는 비스코 4 - L Novel
코부쿠보 신지 지음, 아카기시 K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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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사람의 정의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지만 그 정의를 관철하자고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파괴한다면 악(惡)에 지나지 않는다를 보여줬던 3권으로부터 1년 6개월 만에 4권이 나왔습니다. 아마 1분기 때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기념으로 발매된 듯합니다만, 아무렴 어때요. 열혈물 팬으로서 기뻐 마지않는 소식이었습니다. 텍스트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액션과 입은 험해도 사람들을 구하려 불구덩이에도 뛰어드는 주인공들의 활약상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었죠. 서로 의지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든든하고,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용기, 때론 근육으로 꽉 찬 머리를 대변하듯 간간이 터지는 개그 등 개성 강한 캐릭터와 어우러져 재미라는 시너지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3권에서 힘을 너무 준 것일까요. 보통 이전 권에서 스펙터클한 설정을 보여주게 되면 다음 권에서는 거의 쉬어가는 에피소드가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하던데 딱 그런 분위기의 4권입니다.라고 해도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액션신은 좋고, 물불 가리지 않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며 발 담그다 끌려 들어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은 다 하고 다녀요.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식인귀가 되어 있고, 온 세상에 수배 전단지가 붙어 마치 원피스의 루피처럼 상금은 어마 무시. 주인공의 동료 '미로'도 언제부턴가 식인 판다로 불리며 세트로 묶여 다니는 처지죠. 그런 그들이 3권의 주된 이야기였던 [도쿄 대전]을 거치며 영웅으로 올라서고 수배가 풀리나 했습니다만.

그딴 건 모르겠고, 너 님 못생겼으니 징역!! 이번 4권의 이야기는 못생긴 얼굴 때문에 징역 20년을 선고받아 옥에 갇히는 비스코와 로봇 3원칙을 지킬 것인가 그 사슬을 끊고 진화할 것인가의 기로에 선 인조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잡혀간 동족 버섯 지기들을 구하러 [감옥 도시]로 향한 주인공 비스코와 미로는 뜻하지 않게 쫓기고 있던 어떤 소녀와 마주하게 됩니다. 운명은 언제나 갑작스럽게라는 CF가 있을 법한 만남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을 거역할 수 없는 노예로 만들어졌다고 마음대로 해도 되나?' '베니비시'라 불리는 인간이 해야될 노동을 대신할 인조인간과의 만남. 인간의 말은 거역할 수 없으며, 위해도 가 할 수 없는 로봇 3원칙이 적용되는 인조인간의 행복을 위해, 학대받는 동족을 위해 인조인간 소녀는 반란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비스코와 미로는 그녀와 그녀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죠.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베니비시'들은 옥에 갇혀있고, 이들은 곧 처형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감옥에 투옥이 되었고 간수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죠. 소녀는 이들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와 동족들을 구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넘어야 될 산은 많고, 특히 교도소 소장은 매우 강하여 비스코와 미로도 핀치에 몰려가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싸움 속에서 '베니비시'들이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조금씩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베니비시'들은 인간들에게 학대를 당해왔고, 그들(베니비시)은 인간과 똑같은 신체와 감정을 가지고 있죠. 눈앞에서 어린 베니비시(이들에겐 자식)들이 인간들의 여흥에 죽어 나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할 때, 이 감정이 쌓일 대로 쌓였을 때.

그리고 자연계에서 필수로 작용하는 '진화'가 이들 '베니비시'들에게도 적용된다면?라는 주제를 가미하면서 베니비시들이 왜 갇혀 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도출하게 합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감옥 간수들은 '베니비시'들을 그저 죄인이라고 치부하며,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 치부하며 인권은 무시한 채 온갖 고문과 괴롭힘을 일삼고, 베니비시들은 몸으로 견디고 있는 상황이죠. 그럼에도 이들 '베니비시'를 이끄는 왕은 인간들을 해치면 안 된다는, 종족의 안녕은 무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려 합니다. 하지만 비스코에게 구해진 소녀는 진화를 바라며 인간의 손을 벗어나 종족이 행복하기만을 바라죠. 이 말은 무력을 쓸 줄 아는 로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의미이고, 인간을 적대시하는 이들이 풀려나게 된다면? 같은 물음을 던집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 엘리시제이션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들었다고 해서 창조주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베니비시'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나려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풀려나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인간에게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그와 상관없이 학대를 피해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 비스코와 미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아가야만 하죠. 그러나 하나 알 수 있는 건, 폭력엔 폭력으로 맞서선 안 되며 우린(베니비시) 그들(인간)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같은 누가 더 인간적인가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행하는 진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베니비시'들은 진화를 이뤄가고, 인간과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지 같은 조금은 긴박한, 근육 열혈 물 답지 않게 상당히 난해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맺으며: 이번 4권을 크게 보면 못생겼다고 징역 때리고, 버스에서 자리 양보 안 했다고 징역 때리고 법을 무슨 엿가락 늘이듯 마음대로 적용하는 옥장(교도소 소장)과 그에 맞서는 비스코와 미로, 맞서다 보니 죄수들 인권 문제도 얽혀있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죄인 99%가 무고로 들어온 느낌이죠. 인상 돌아간다고 죄지은 거 있냐?며 윽박지르고, 3심제는 갖다 버렸는지 즉결 심판으로 너 님 징역! 근데 이건 블러프에 지나지 않아요. 중후반부터는 만들어진 존재라고,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말살 당해야 하는 노예의 처우를 다루며 조금은 시리어스 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오류가 생기는데요. 위험한 건 인간도 똑같을 텐데 왜 인간은 그냥 두나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만한데 작가가 설정에 구멍을 만들어 버렸는지 아예 언급조차 없군요.

물론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저런 1차원적이 아닌,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뜻이므로 인간들을 해칠 수 없다는 마음에 동족을 말살하려는 어쩌면 가장 인간 다운 건 이들 '베니 비시'가 아닌가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물로 만들어졌다면 그게 무엇이든 진화는 하게 마련이며 그 진화를 거쳐 그들의 마음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습니다. 머리 아프네요. 아무튼 액션은 이전보다 약해졌지만 인간다움은 배가된 느낌이랄까요. 근육 뇌가 뿜어내는 개그도 적절히 들어가 있고요. 다만 입만 열었다 하면 사기 치는 분홍머리 '티롤'은 어디 갔는지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군요.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고자가 아니었습니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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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5부 : 여신의 화신 1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봄 옮김 / 길찾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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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사람이 자기의 취미에 심취하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마인'은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바람에 그녀는 책에 깔려 죽고 싶다는 뜻대로 현실에서 책에 깔려 비명횡사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세계로 전생합니다. 그런데 죽었다고 해서 제 버릇 개주지 못하고, 책에 깔려 죽었다면 그 트라우마로 책을 멀리할 법도 한데 현실 부모에게는 이별의 말도 전하지 못했으면서, 이세계의 부모와는 생이별한 것도 모자라 눈앞에 두고도 부모를 부모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위치에 놓여 있음에도. 되레 출판문화가 없는 이세계에서 맨땅 헤딩으로 인쇄 시스템을 구축해버렸죠. '마인'에게 있어서 책은 가족과 생명을 넘어 그 무엇쯤? 그러니 책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주변에 온갖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고 그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고, 만악의 근원이 있다면 그녀가 아닐까 싶은 그런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죠.

이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운은 '마인'이 이세계로 전생했다는 것일 겁니다. 비단 책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지식(현대 신문물)을 마구 퍼트리는 바람에 그녀를 지켜주는 주변 사람들의 위장을 빵구나게 만들기 일쑤고, 거기에서 오는 이득을 노리고 하이에나가 들러붙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으면 좀 자중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영주의 양녀라는 범에 날개까지 달리게 되니 영지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영주를 적대하는 파벌을 숙청하는 발단까지 이르게 하니 지옥 염라대왕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드는 이 무슨 해괴한 캐릭터가 다 있나 골이 지끈. 그러거나 말거나 '마인'의 책 만들기는 더욱 가속화되어 이제 영지의 특산물이 되어 버렸고, 귀족원(귀족 사관 학교쯤?)에서 특유의 공부법으로 애들 성적 쑥쑥 올리고, 이런 여러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나라(國) 내 여러 영지 중 그녀가 속한 에렌페스트는 졸지에 영지 순위(파워)가 껑충.

그러니 반대 작용으로 납치미수부터 해서 두 번의 독살 미수가 일어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입만 열었다 하면 왕족까지 말려드는 대참사로 이어지니 내가 양부모였다면 진즉에 유폐하거나 암살해버렸을 듯. 자신 때문에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인 '페르디난드'가 마음에도 없는 옆 영지 에렌스바흐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제야 겨우 자신 때문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페르디난드는 에렌페스트에 없어선 안 될 최중요 전력(물리적으로)이죠. 게다가 몇 년이나 같이 부대끼며 있는 정 없는 정 다 나눴으면서 귀족의 사정이 있다곤 해도 데릴사위로 잡혀가는 그에게 연정 하나 없다는 것에서 페르디단드는 의문의 1패. 애초에 잡혀가는 이유가 마인 자신에게 있음에도 반성의 기미가 없으니 더 문제.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적지나 다름없는 에렌스바흐에서 외모와 음악으로 여심을 울리며 입지를 다져가는 페르디난드가 더 무섭게 다가오는 아이러니.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동안 마인의 암살 미수와 더블어 에렌페스트를 접수하려고 수작질 중인 에렌스바흐에 붙었던 귀족들을 숙청하고 그 숙청 대상이었던 귀족들의 아이들을 '마인'이 거두면서 마인은 또다시 성녀 전설에 한 발 더 나아가 되고요. 여전히 귀족원(귀족 사관 학교쯤?)에서 여러 가지 일을 저질러 주는 등 마치 벌집 쑤신 듯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고 이전에 '마인'이 왕의 증거 '구르트리스하이트' 를 어디선가 접하였는데 이게 또 말썽으로 이어지는데요. 지금의 왕은 이걸 소지하고 있지 않아 쭉정이 취급 당하고 있죠. 왕의 자리에 오르려면 이 왕의 증거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의 증거를 혹시나 '마인'이 가지고 있거나 정보를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받으니 그녀의 앞 길은 순탄치 않다는 예고를 하죠. 특히 제3왕자의 경우엔 약혼자가 있는 마인에 푹 빠져서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광기는 참 안타깝게 합니다.

항상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 하죠. 마인이 벌인 사업들로 인해 그녀의 영지 에렌페스트는 나날이 발전하고 나아가 왕족까지 관심을 보이자 다른 영지에서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어 갑니다. 만년 꼴찌 시골 영지가 갑작스레 치고 올라오니 다른 영지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옛날부터 에렌페스트가 마음에 안 들었던 이웃 에렌스바흐는 이제 대놓고 공작질을 하고, 그 덕분에 에렌페스트에서는 피의 숙청이 일어나는 등 이세계 판타지물 치고는 상당히 고어 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에렌스바흐는 이렇게 에렌페스트의 최대 전력인 페르디난드와 마인(마인의 마력은 세계 최강)을 갈라 놓는데 성공하였으니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건만 '마인'은 그저 책만 바라보고, 양부모가 그토록 왕족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는데도(일이 커지니까), 제2왕자의 말재간에 넘어가서 결국 제1왕자 결혼식에까지 참여하게 되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수렁에 빠져만 가죠.

맺으며: 여전히 책 관련 이야기가 절반을 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마인이 온갖 저지래 하는 것보다 그녀를 이성적으로 쟁취하기 위해 맛이 가는 인물들이군요. 눈 돌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귀족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빼앗겠다는, 그런 살벌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특징인데 이걸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페르디난드의 약혼녀는 머리가 비었다는 것과 '마인'의 성녀화에 박차를 가하는 열혈 신도 2호가 등장하는데 이건 좀 재미있었군요. 그리고 나라 전체, 특히 에렌페스트에 전운이 살살 돌기 시작하는데 뭔가 콕 집어서 어디쯤이다라는 건 언급하기 힘들지만 작가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꽤 좋은데요. 다만 의식을 치를 때 등장하는 신(神)들 관련 이야기는 노골적인 게 많아서 거부감이 좀 있었군요. 이전부터 그래왔지만 결국 주인공을 신격화 내지는 그에 준하는 인물이 된다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어쨌거나 이 작품은 마법을 가미한 현실판 중세 시대 같은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왕족 간 왕좌를 두고 피바람이 불고, 귀족 간의 위계질서는 철저히 지켜져야 하고, 평민은 발톱의 떼만도 못한 존재죠. 보통 여느 판타지라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장면들도 이 작품에서는 여지없이 피바람이 불어댑니다. 암살이 횡행하여 보호구는 필수, 음식은 기미 상궁이 반드시 따라붙고, 형제끼리도 때론 호위 기사를 두지 않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친구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정보 캐내려는 첩자. 그래서 이 작품은 개그 같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 제법 묵직한 블랙 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이죠. 역모의 가능성까지 복선으로 나오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를 더해가는데 그 중심에 '마인'이 떠억, 마치 불 난데 기름 끼얹나? 같은. 만악의 근원을 없애 버리면 세상 편할 텐데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나마 조금은 배웠는지 이제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서 그녀의 성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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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연금술사의 점포경영 1 - S Novel
이츠키 미즈호 지음, 후미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장르: 판타지, 백합, 여성향

현실에서 "사"자가 들어간 직업이면 일단 성공한 사람이라고 봐야겠죠?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천하장사 등등... 이걸 판타지에 빗댄다면 어떤 직업이 있을까요. 마법사, 검사, 기사 이런 직종이 있겠지만, 사실 이런 직종은 돈을 많이 번다는 이미지는 아니죠. 뭐 모험가가 되어 일확천금을 노리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날 벌어 그날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직종은 뭘까, 이 작품은 그 대답을 보여주죠. 바로 연금술사 되겠는데요. 서양 판타지에서 연금술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 듯, 보석을 만들고 호문쿨루스를 육성하는 조금은 신비주의라면 일본 판타지에서 연금술사의 이미지는 어찌 된 일인지 골렘이나 지형을 바꾸는 연성과 재료를 모아 포션 만들기가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이 작품도 그런 이미지에 따라 포션이 메인이 돼요.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사라사'가 연금술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시골에 점포를 열고 포션을 팔아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연금술사는 국가에서 엄격히 통제 중으로 아무나 도전은 가능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종이죠. 10명이 도전에서 1명만이 자격을 얻는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연금술사 자격을 얻으면 앞으로의 인생을 탄탄대로나 다름없어요. 마치 현실의 공무원처럼 정년과 노후가 보장되거든요(근데 이젠 아니라는 말도 있긴 합니다). 주인공은 15살 나이에 자격을 취득해서 시골에 내려가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본의가 아닌 스승의 농간에 빠져 희귀 재료 셔틀이 된다는 것이군요. 원래는 왕도에 남아 다른 선배 연금술사의 제자나 직원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더 성장하려고 했어요.

왕도에서 한 달이나 걸려 시골에 도착한 주인공을 반겨준 건 허름한 가게였죠. 이제 이걸 수선해서 번듯한 가게로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서 포션을 팔고, 숲에 채집하러 오는 모험가(채집자)들에게서 재료를 매입하고 포션을 파는 등 현실 의학계에 빗대 보자면 인턴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업의가 된, 어쩌면 15살에 벌써 인생 승리자가 되었죠. 물론 연금술사 자격을 따기 위해 5년이란 시간을 고생이란 단어로는 부족할 만큼 노력했고, 억척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개업하는데 필요한 밑천을 장만해야 했으니 그 과정은 참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기구한 인생이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폐해로 동년배 친구는 하나도 없고, 아는 사람이라곤 아르바이트하며 자신을 가르쳐준 상점 사장이자 스승인 '오필리아' 한 사람뿐이랍니다.

이제 성공한 삶을 살며 느긋한 슬로라이프를 즐기는 걸 보여주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요. 이 작품은 굉장히 현실적인데요. 이제 연금술사가 되었으니 편하게 놀고먹는 인생, 이익률이 높으니까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벌 수 있다 등등 돈 독 오를 대로 오른 주인공이 눈을 희번뜩 부라리고 돈을 긁어모으는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죠.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바라고 이 작품을 접한 독자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려 줍니다. 물론 사업하는 데 있어서 리스크를 감안해야 되는 건 있지만, 가령 포션 한 병에 500 레어(화폐 단위)짜리가 있어요. 여기서 빈병을 가져오면 반값에 판매해 준다고 하니까 250 레어에 판매 중이죠. 근데 마진이 200 레어라는 것입니다. 결국 정상가(500 레어)에 판매하면 마진율은 90%라는 건데요.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 경제관념으로 접근해야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재료 매입해서 가공하고 판매하는데 들어가는 품과 리스크에 따른 손해를 감안해서 이익을 붙여야 하는 동시에 누구나 구입(그래도 누구나 구입 못함)이 가능한 가격을 책정해야 되는 고도의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죠. 이렇게 가격을 책정해도 구입 못하는(가격 때문에)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면 시장이 붕괴(저번엔 공짜로 해주더니? 같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들이라 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다곤 해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생명 중시보다는 이익과 시장을 우선시하는 모습에서 비영리와 영리의 차이를 이 작품이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걸 느꼈군요.

이 작품의 단점은, 아가 자기 한 동화 같은 이야기는 둘째치고 주인공이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공이나 연성하는데 실패하면 매입한 재료가 몽땅 날아가니까 그에 따른 손해가 발생한다는 리스크만 볼 뿐, 그 리스크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만 하죠. 희귀한 재료라면 이해는 가겠는데 재료를 비교적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상처 치료 포션조차 리스크가 있다며 높은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통제 중이라지만 보다 폭넓게 누구나 이용 가능한 포션의 개발은 등한시한 채 말이죠. 1권 이후는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작품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1권에서 이런 모습들은 독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런 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일 수 있을 테니,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이라고 해야겠군요.

맺으며: 초반엔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다고 해놓고, 실제로 그렇게 벌고 있으면서도 정부가 통제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나 나름대로의 성장하기보다는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변화를 바라지 않는 기득권자 같아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건 가지 못한 자에 대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초반에 자신은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 성장하고 싶다는 주인공의 마음에 배치(背馳)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꼬여가다 보니 놀고먹을 수 있다라고 해놓고, 결국 구입할 돈 없는 사람은 죽으란 소리와 같은, 수지 타산이 안 맞다고 말을 바꾸는 설정으로 이어지고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좀 어이가 없어요. 특히 완전히 수전노가 아니라는 듯, 돈 계산만 하는 건 아니라는 듯, 친구가 된 '로레아'에겐 한없이 베풀기도 하는 등 약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둔다는 것에서 질이 더 안 좋게 느껴졌군요.

사실 필자는 벽난로가 있는 서양 판타지인가 했습니다. 주인공이 처음 시골 낡은 가게로 내려와 그 가게를 바라보며 여기서부터 내 인생이 시작된다 같은 부품 마음과 설렘을 보여주지 않을까 했습니다(주인공의 첫마디가 이건 너무하잖아!!).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밤에는 불 피운 벽난로가에 앉아 '로레아(서브 히로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낮에는 만화 '카페 알파(일본명: 요코하마 매물 기행)'처럼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서정적이 되는 그런 판타지인가 했습니다. 대체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군요. 이런 기대가 있었던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뭐 완전 딴판이라고 해서 비판하거나 회의적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마음의 성장과 변화는 하지 않은 채, 가격을 낮출 수 없다면 연구를 하면 좋으련만 그저 자기 합리화하며 그러지 않는 현실 기득권 같은 모습에 약간 실망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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