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의 팔라딘 1 - 망자의 도시에서 자란 소년
야나기노 카나타 지음, 린 쿠스사가 그림, 신우섭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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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무엇 때문에 방구석 폐인이 되었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많은 시간을 컴퓨터에만 의존하여 방에 처박혀 살아가다 모든 기회를 잃은 채 화장터에서 잿가루가 되어가는 부모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주인공은 이세계로 전생하죠. 이 작품은 얼핏 [무직 전생]이라는 작품과 유사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제대로 된 삶을 등한시하고,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변화의 기회마저 놓친 채 인생의 나락을 달리다 겨우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죠. 그래서 이세계로 전생하면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고, 새로운 부모 밑에서 살아가며 이번엔 제대로 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최악의 적을 만나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잡으며 이번에야말로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주인공은 신(神)에게 간청합니다. 이 작품이 [무직 전생]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여기에 있군요. "가족애(愛)". 전생에서 못다 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전생하면서 만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신(神)에게 간청하는 부분은 정말로 눈물 없인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부터 작가의 필력이 좋다고 해서 언젠가 봐야지 했던 것이 이제야 보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의 특징은 흔한 이세계 전생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지만 여느 이세계 전생물처럼 스탯치나 능력치 등 틀에 박힌 단어의 나열이 아닌(전혀 없음) 정통 판타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주인공도 먼치킨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고요. 전생이라는 요소를 빼고 분위기만 놓고 보면 '로도스도 전기'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여기에 아직 신(神)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신화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은 부모와 할아버지에게서 살아가는 법, 싸우는 법 등을 배워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여기서 특이한 점은 부모라고 해서 꼭 인간이라는 법은 없다는 듯이 형태의 틀을 깬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부모는 '언데드' 즉 흔히 판타지에서 몬스터로 나오는 그런 부류인데, 주인공의 부모와 할아버지는 인간일 적에 불사를 관장하는 신과 계약을 맺어 수백 년을 언데드로 살아오고 있었죠.

주인공은 처음부터 훈련과 공부를 체계적으로 받습니다. 상냥한 엄마에게서는 교양을, 약간 까불거리지만 근엄한 아빠에게서는 검술을, 록(rock)한 할아버지에게서는 마법을, 이들은 그 옛날 데몬이 온 세상을 집어삼키려 할 때 분연히 일어나 맞서 싸운 역전의 용사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언데드가 되어 버렸지만요. 이야기는 흘러가면서 주인공의 부모와 할아버지가 왜 언데드가 되면서까지 수백 년 동안 살아 있어야 했는가, 그리고 주인공은 어떻게 이들에게 오게 되었는가를 주인공의 성장에 맞춰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그리고 눈여겨볼 것은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모든 정성을 들여 친부모 보다 더한 애정으로 주인공을 키워가는 대목이군요. 특히 엄마가 주인공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타락한 자로서 이젠 기도드리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선한 신에게 몸을 불살라 가면서까지 기도를 드리는 장면에서 자식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은 위대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이별. 어느덧 주인공의 나이 15세 되던 날. 동시에 주인공의 부모를 언데드로 만들었던 불사를 관장하는 신(神)이 찾아옵니다. 이 신(神)은 악(惡) 신으로 지금도 앞으로도 주인공과는 적대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생일날에 모든 걸 알려주겠다 했던 부모로부터 그들이 왜 언데드가 되면서까지 지상에 남아 있어야 했는가의 이유가 밝혀지는 부분은 이번 1권의 최대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겐 이별의 순간이기도 하죠.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이 작품을 본 독자들이 작가의 필력이 좋다고 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조금 언급해 보자면 1권의 테마이기도 한 가족애(愛)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부모는 아들(주인공)을 진심으로 보살폈고, 아들은 진심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찾아오는 이별을 슬퍼하며, 비온 뒤 땅을 더욱 단단해진다는 진리에 따라 부모는 이제 세상에 발을 내디디려는 주인공에게 악신과 맞서며 마음의 성장이라는 교육을 마지막으로 주인공에게 알려줍니다.

맺으며: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있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럴수록 부모의 마음은 자식 그 이상으로 먼 곳을 보며 가족을 지키려 모든 걸 받친다는. 그리고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는 것.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졌는데요. 특히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주인공 양육하는데 온 힘을 다한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은 정말, 그리고 자신들을 언데드로 만들었던 악신을 만나 이제 이 세상에 미련을 벗어던지는 부모의 결말.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이별, 부모는 이별할 때도 언제나 그랬듯 밝은 모습으로, 마치 천 원 돌파 그렌라간의 '니아'의 마지막 모습과 흡사해서 정말 가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군요. 또한 주인공이 악신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등불을 관장하는 신(神)에게 힘을 원하며 간청하고 가호를 받는 장면들은 이번 1권의 최대 관전 포인트입니다.

아무튼 전생물이면서 먼치킨은 아닌, 체계적으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실전을 겪으며 한 명의 전사로서 성장해가는 주인공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거기에 신화시대의 설명은 알아듣기 쉽게 풀어내놓은 작가의 실력이 좋은데요. 일부 전생물 작품들처럼 난해하고 어렵게 풀어내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을 하는 일부 작가들과는 다르다고 할까요.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큰 스포일러 안 하고 리뷰 쓸려다 보니 두루뭉술해졌군요.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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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언니가 신녀로 거둬지고, 나는 버림받았지만 아마도 내가 신녀다 1 - ROSY
이케나카 오리나 지음, 컷 그림, 송재희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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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마물과 수인들에게 거둬져 살아가는 인간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신(神)에게서 사랑받는 신녀라는 설정을 가미해서 이 소녀를 버린 존재들에게 천벌을 가한다는 권선징악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선악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두고 있는 게 특징이죠. 여기서 악은 소녀의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고 부모는 친딸인 소녀를 학대 수준으로 방임한 끝에 숲에 버리는 만행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저지릅니다. 마을 사람들 또한 소녀의 성장 과정에서 매몰차게 대했으며 부모에게 버림받을 때도 누구 하나 말리는 이가 없었죠. 소녀의 쌍둥이 언니는 부모의 영향과 어화둥둥 받들어 모시는 마을 사람들의 영향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합니다(그러니 동생을 보살필 리가 없죠). 이렇게 선악을 구분 지으면서 부모와 마을 사람들은 왜 소녀를 이렇게나 매물 차게 대했는가는 처음부터 밝히지는 않고 소녀의 독백으로 조금씩 풀어가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그러면 신녀는 누구인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녀의 언니가 신녀로 밝혀지고, 국가에서는 신녀의 존재만으로도 흥망성쇠를 결정지을 수 있다 보니 소녀가 사는 집에 찾아와 이들 가족을 데려가는데요. 여기서 운명은 갈리게 되죠. 부모는 소녀의 언니가 신녀라고 철석같이 믿었으며, 동생인 소녀는 걸림돌이라 여겨 숲에 버립니다. 신녀의 전설이 100년 전 맥이 끊겼다는 것에서 이후 부모와 언니에겐 불운이 아닐 수 없게 되죠. 이 작품에서 신(神)은 이세계 전생물의 약아빠진 신이 아닌 어디까지나 선의 기준을 철저히 지키고 있으며 신녀를 불행하게 하면 천벌을 내려 과거 나라가 쫄딱 망한 사례도 있을 정도로 신녀를 과보호하는데요. 소녀가 버림받은 시점에서 마을은 흉작이 시작되며, 국가는 재앙을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동생이 신녀인가? 이런 작품에서 항상 차별받고 학대받는 쪽이 참 히로인 아니겠습니까. 소녀는 자신이 신녀인지 아직 자각을 못한 채 숲을 떠돌게 되죠.

초점은 소녀가 숲에서 그리폰과 스카이 호스(네이밍 센스 빵점)라는 말을 만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같이 지내며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가족애를 느껴가는 장면들에 맞추기 시작합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계약을 맺으며 가족이 무엇인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죠. 그래서 필자는 인간들에게서 보살핌과 사랑을 일절 받지 못했던 소녀가 인간과 적대하는 마물과 가족이 되어 살아가면서 자신을 버린 부모와 학대한 마을 사람들을 원망하기 보다 앞으로 살아갈 목표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모습들에서 이제 7살인 소녀가 겪어야 될 일인가 하는 느낌에 이 작품은 잔혹동화가 아닐까 싶었군요. 그래서 작가는 소녀의 인간성과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수인들을 투입해 소녀의 세계를 넓혀주려 하는데요. 동년배로 보이는 수인 소년과의 만남은 친구라는 개념을 심어주었고, 수인족의 마을에서 소녀는 자신의 목표를 찾고 마을 사람들과 지내며 비로소 내가 있을 곳을 알아가죠.

일러스트도 한몫해서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립니다. 마을에서 지내는 모습들이라든지, 자기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고, 마법도 배우고, 수인들과 소통을 하며 마을에 있을 때는 몰랐던 행복이 무엇인지, 보살핌을 받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며 행복이 충만한, 소녀의 세계는 나날이 넓어져만 가죠. 그리고 왕도에서 찾아온 학자(히로인)로부터 신녀에 대해 전해 들은 소녀는 신녀로서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하며, 그렇다면 신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라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어 훈훈하기 짝이 없었군요. 하지만 매사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듯, 수인을 사냥하는 인간들을 투입하면서 소녀에게 밝은 미래만 기다리지 않는다는 복선을 깔기 시작합니다. 인간과 수인은 고대부터 사이가 좋지 못했으며, 전쟁에서 수인이 패하면서 수인들은 인간들을 피해 깊은 숲에서만 살아가야만 했죠. 그래서 소녀의 등장은 이들에게 있어서 구세주가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맺으며: 소녀의 나이가 7살이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을 텐데도 어른들 뺨치는 깊은 생각과 행동에서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보통 학대받는 아이들은 일찍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접하니까 이질감은 그렇게 없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에 부모의 방임으로 10살짜리 여자애가 동생들을 부모 없이 3달이나 보살폈다는 뉴스도 있었죠. 그래서 이 작품은 잔혹동화와 이웃하고 있는 파스텔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으로 소녀는 일찍이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까요. 아무튼 초반에 권선징악형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이 부분이 좀 많이 흥미로웠습니다. 자기중심적에 이기적인 언니는 대신전에서 땡깡 부리기를 밥 먹듯이 하고, 정치가들은 그걸 타이르는 저 위에서 언급했던 학자(히로인)와 아직은 등장하지 않는 왕녀를 불경하다며 추방 시켜 버리죠. 그러해서 왕도에 벼락도 떨어지고 날로 천벌이 내려지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지성을 엿보게 해줍니다. 참고로 소녀가 버림받은 이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밝혀지고 있음으로 개연성에 문제는 없는데요. 이건 다음 2권에서 다시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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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먹는 비스코 5 - L Novel
코부쿠보 신지 지음, 아카기시 K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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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대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주의

"28일 후"라는 영화에 보면 사람들이 갇혀서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던 침팬지를 구하려다 침팬지에 물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 딴에는 불쌍한 침팬지를 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영국 전역을 궤멸 시켜버리고 말죠. 이렇듯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결과는 항상 좋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그 뒷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에서는 전부 좀비가 되어 버려 죄에 따른 벌을 받고 자시고 할 게 없었습니다만. 이번 5권에서 위의 상황을 빗대어 보자면, 주인공 '비스코'는 인체실험을 당하고 있던 침팬지 격인 '베니비시'를 구한 인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베니비시'는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진 인조인간이고, 그러해서 인간은 '베니비시'에게 무슨 짓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을뿐더러 '베니비시'는 인간을 공격하지 못하였죠. 그러던 것이 주인공 '비스코'의 등장은 '베니비시'의 가슴에 '용기'를 심어주게 됩니다.

주인공은 4권에서 '베니비시'들이 감옥에 갇혀 있고, 감옥장(관리소장)에 의해 전원 처형된다는 걸 알게 되자 그들을 구하기로 마음먹었었죠. 못생겼다는 이유로 잡혀가 옥살이할 판이었던 주인공은 안 그래도 감옥에 심사가 뒤틀려 있었는데, 기골이 있어 보이는 '시시(베니비시, 히로인)'에게서 갇혀있는 아버지를 구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베니비시'들의 처우(끔찍한 학대)도 알게 되자 세상 정의를 외치며 가는 곳마다 악당을 무찔렀던 주인공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고, 감옥장에게서 베니비시들이 풀려나면 세상 인간들은 멸망할 거라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여 기어이 '베니비시'들을 해방하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에게 학대받던 노예를 해방한 영웅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감옥장의 경고대로 '시시(히로인)'는 주인공을 만나 용기를 얻어 현(現) 베니비시의 왕이었던 아버지를 참살하고 새로운 베니비시의 왕이라 칭하며 베니비시들끼리 대동단결하여 인간들을 몰살한다고 선언해버립니다.

이번 5권은 맛이 가버린 '시시(히로인)'와 동조하는 베니비시들이 일본 전국의 인간들을 세뇌하여 지배하에 두겠다며 '대해수 홋카이도(아귀처럼 생김)'의 힘을 흡수하려는 걸 주인공 '비스코'와 그의 동료 '미로'가 막아선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손으로 베니비시를 풀어준,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 하죠. 그런데 주인공은 '시시'가 걸은 저주 때문에 꼬꼬마가 되어 버렸고, '시시'는 대해수 홋카이도의 힘을 흡수하면서 엄청나게 강해지는 바람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하게 되어 버립니다. 똥 치우러 왔더니 똥차가 전복돼서 온 천지에 똥으로 칠갑이 된 상태라고 할까요. 대해수 홋카이도 내부를 종횡무진하며 사태 해결에 쫓기게 되고, 그 와중에 '책임회피의 제왕 챠이카'라는 꼬마 소녀를 구하면서 인디아나 존스도 찍고... 챠이카 왈: "아버지에게 데려다줘!"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인데? 이제 뭐가 뭔지 모를 인체 대탐험도 하는 등 이 작품이 원래 이런 작품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연출해댑니다.

요컨대 이겁니다. 가련한 히로인(시시)인줄 알고 구했더니 최종 보스라는 시추에이션요. 학대반던 로봇 혹은 침팬지의 반란이 시작된다고 할까요. 그러나 자신들을 학대하던 인간들만 죽이지 인간들은 다 똑같아라는 정신으로 무장하고 핵폭탄 같은 꽃가루로 전부 세뇌하고 말테다하며 으르렁거리는 '시시'는 '대해수 홋카이도(진짜 훗카이도만 함)'의 힘을 흡수해 자신의 힘인 동백꽃을 만발 시켜 가면서 사태는 일촉즉발로 넘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비스코와 미로는 엄청나게 굴러다니죠. 그러다 둘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지고, 주인공 비스코는 대해수 홋카이도 힘까지 받으며 이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신(神)의 영역까지 들어서는 등 용기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정신론과는 다른 용기를 제일 우선으로 하는 열혈이라는 것에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장면들이 펼쳐지는데요. 이대로만 가준다면 분명 천원 돌파 그랜나간 급의 희대의 작품이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더랬습니다.

맺으며: 근데 왜 그러셨어요? 아니 조종 당해서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을 꼭 넣으셔야 했나요. 100보 양보해서 조종 당하고 있었다 칩시다. 그럼 그러한 복선이라도 좀 넣어주던가요. 복선 하나 없이 갑자기 자아가 생긴 내면의 어쩌구가 연약하고 가련한 히로인을 꼬드겨서 악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악당이 된 히로인을 퇴치하는 것에서 선회하여 구해준다. 졸지에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되어버리네요? 무슨 말이냐면, 당연히 '시시(히로인)'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시시'의 복수는 정당한 것으로 인간들은 할 말이 없던 상황이었죠. 그러나 이 작품은 사랑과 용기를 테마로 하고 있어서 용기는 주인공의 몫이고 사랑은 히로인들의 몫이라는 것마냥 히로인들은 사랑으로 감싸줘야 된다는 자다가 이블 킥 할 거 같은, 히로인의 손에 피를 묻히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던 작가의 만행으로 사실은 '시시'는 조종 당하고 있었다는 설정을 중간쯤에 급하게 넣어 놓는 바람에 분위기 다 망쳐버립니다.

그래서 '시시'에게 내면이 속삭이는 장면이 나왔을 때 설마설마했어요. 설마 작가가 클리셰에도 들어가지 않는, 개도 안 물어간다는 설정을 쓸까? 독자를 우롱해도 유분수지. '시시'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만들기 -> 공격자에서 피구호자로 만들기 -> 피구호자가 되자마자 세상 연약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시추에이션. 사랑과 용기로 안 되는 건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했나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필자의 찬사를 한순간에 다 말아 먹어 버리더군요. 아니면 하다못해 내면이 본격 부상해서 '시시'를 조종할 때 거대 마왕 같은 포부와 위엄이라도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온 천지에 꽃을 피우겠다는 둥 너희는 모판이라는 둥 하는 말마다 세상 찌질한 모습은 또 뭔가 싶어요. 왜이리 허망한 마음만 들까... 그나마 남에게 미루기 장인 '챠이카'와 2권에서 등장했던 그로테스크 '암리' 그리고 4권에서는 안 나왔던 사이비 상인 '티롤'이 보여주는 떠들썩함이 그나마 위안이었군요. 어려져버린 주인공 비스코와 원래 어린 챠이카를 돌보느라 등골 휘는 '미로'로 볼만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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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전하는 화가 나셨나 봅니다 6 - L Novel
야츠하시 코우 지음, 나기시로 미토 그림, 이진주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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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대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결국 여주 '도로셀'을 콩쥐 볶듯 했던 가족들은 별다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은 채 리타이어 해버렸습니다. 돈에 환장한 오빠, 명성에 환장한 부모, 언니에게 집착했던 여동생, 어릴 때부터 동생(여주)을 사지로 몰아넣은 언니, 피해 망상에 사로잡혀 금기에까지 손댔다 파멸해버린 약혼자. 전생에서 나라를 팔아먹어도 이런 취급은 안 받겠다 싶은 상황을 여주는 고스란히 다 받아내야만 했죠. 개과천선은 고사하고 끝끝내 정신을 못 차리고 불법을 저질렀던 가족들은 추방되고, 여주는 공작의 신분에서 평민으로 강등되어 버렸습니다. 다행인 건 왕(王)이 그녀(여주)의 능력을 높이사 추방만은 면하게 되었죠. 동시에 여주 주변을 맴돌며 여러 복선을 깔고 어릴 때부터 그녀의 인생에 뭔가 참견을 했던 거 같았던 흑막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여주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이제 가족 관련 에피소드는 끝나고 본격적으로 흑막과의 대립과 대결을 그리기 시작하는데요.

이번 6권은 옆 나라 이리스 제국이 동맹을 파기하고 전쟁을 걸어오자 최전선에서 제국 군을 맞아 싸우는 여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전쟁 씬 자체는 별거 없어요. 왕국(여주가 사는 나라)군 보다 뛰어난 신문물 총으로 무장한 제국 군을 맞아 처음엔 다소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이내 여주가 제국 군의 총을 훔쳐 와 개량하여 되받아치면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죠.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전쟁보다 그 전쟁을 일으키게 한 원흉이 누구이고, 그 원흉이 바라는 점이 뭔지, 여주는 이런 점을 파악하고 있나에 중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그 답을 열거해 보자면 답답할 정도로 여주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왕(王)과 왕자가 시키니까 나가서 싸우고, 사태를 해결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총을 훔쳐 와 개량에 나설 뿐, 자기 스스로 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왕의 부름이 있기 전까지 내가 뭘 해야 될지도 몰라 학원에서 멍 때리고 있었던 게 여주였죠.

여주를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만 듭니다. 가족이 몰락한 이면에는 그렇게 조종한 흑막이 있었고, 그 흑막이 여주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며 하고자 하는 일(마술 절멸)까지 밝혔다면, 그렇다면 이들이 마술이라면 치를 떠는 옆 나라 제국을 조종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인지, 제국을 움직인 존재가 누구인지 조금만 유추해도 알 수 있을 텐데도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는 장면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흑막은 어떤 사고를 계기로 여주에게 증오를 품고 있었고, 그녀가 쓰는 마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알기 쉬운 해답을 직접 들었는데도 알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주는 굉장히 수동적으로서 누군가가 길잡이를 해주지 않으면 마냥 그 자리에 서 있을 인물로 비춰지는데요. 자신을 괴롭힌 언니가 추방되면서 자취를 감췄음에도 찾을 생각도 안 하고(정보가 여주에게 전달되었는지 가물) 그로 인해 언니는 아주 큰일을 터트리면서 여주의 목을 죄게 되죠.


맺으며: 뭔가 좀 신랄하게 비평하고 싶은데 요즘 자중하고 있어서 못 쓰는 게 안타깝군요. 아무튼 읽다 보니 갑갑한 게, 여주는 그냥 수동적인 인물이더라고요. 주어진 정보로 해답을 돌출하긴 하는데 자신이 직접 행동으로 나서서 알아보는 건 거의 없어요. 이번에도 왕(王)이 전장에 나가서 싸워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가지 않았을 테죠. 노파심에서 써보자면, 전쟁에서 총을 주워와 개량하는 이런 거 말고 흑막에 대한 정보를 모아 거기에 대응한다 같은 행동을 말합니다. 흑막이 자신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데도 조사는커녕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들에서 솔직히 암 걸릴 뻔했군요. 전장에서는 임기응변으로 잘 헤쳐나가긴 했는데, 그 이상으로 무엇을 한다는 건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여주 정체도 여전히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호문쿨루스같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무슨 실험에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게 여주가 아닐까 하는 복선만 내놓고, 여주 남친으로 급부상 중인 '지크' 관련도 남편 환생이라는 복선을 일찌감치 내놨다면 회수라도 좀 하던가 긴가민가 같이 어중간한 복선만 깔아대니 몰입에 방해만 됩니다. 이번엔 여주처럼 '지크'도 만들어진 존재인가?라는 듯한 복선을 내놓고 실은 너는 어느 나라의 왕자다라도 하니 필자는 장난해?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고, 개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투신은 흥미진진하기라도 하나. 치트물처럼 종횡무진만 할 뿐. 흑막도 1천 년이나 여주에게 증오를 품을 정도로 1천 년 전에 있었던 그 사고가 그리도 중한가 했더니 단순히 책임 전가를 여주에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어이없는 전개도 그렇고, 진짜 오랜만에 화딱지 나는 작품을 만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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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포 현자의 이세계 생활 일기 10 - L Novel
코토부키 야스키요 지음, John Dee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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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분명, 하던 온라인 게임이 폭발해서 이세계로 날아왔고, 이왕 온 거 시골에서 슬로 라이프 지내는 아저씨의 일상생활을 그리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에 맞게 약초밭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이웃 고아원 수녀랑 눈도 맞고 전투 닭도 몇 마리 키우며 달걀 얻고 가끔 드워프 영감에게 끌려가 공사판 노가다도 하고, 쌀이 그리워 야생 쌀을 구해다 쌀밥 해먹을 궁리도 하고 그러다 탈곡기였던가 만드는 과정에서 빙글빙글 돌며 탄도탄 미사일처럼 날아가 버리는 그런 이야기 아니었나요. 그런데 어쩌다 이세계 멸망 테크를 타게 되었을까요. 세계를 창조한 신(神)이 산하 관리자를 만들려다 실수로 탄생한 사신으로부터 시작된 세계 멸망을 막자고 성격 개차반 4신을 만들어 대응하게 했더니 사신보다 더한 세계 멸망을 불러올 줄이야. 아저씨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나르시시스트의 성격으로 똘똘 뭉친 4신을 없애고 그나마 나은 사신을 부활시켜 세계를 관리하게 하는 프로젝트를 떠맡게 됩니다.

여기서 사신의 '사'자가 죽을 사(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현재 아저씨가 배양기에서 호문쿨루스 만들듯 지금 배양 중인 사신의 모습은 아직 일러스트가 없어서 단정하긴 이르지만 마왕의 느낌이 나는 걸로 보아 死자가 맞지 않나 싶기도 하군요. 아무튼 태초에 신(神)이 만들길 그렇게 만들어 놓고, 만들어진 대로 충실하게 이세계를 부수고 다녔더니 신(神)은 4신을 만들어 자신을 봉인하게 한 것도 모자라 지구에 방기까지 했으니 사신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죠. 거기다 원래 사신이 가지고 있던 이세계 관리 권한까지 4신이 몽땅 가져간 것도 모자라 이 권한으로 용사들을 마구 소환하고 죽든지 말든지 나 몰라라 하고 그러다 보니 용사들은 이물이 되어 이세계 시스템에 버그가 되어버렸고, 그게 쌓이고 쌓여 마치 지금의 기후 변화를 겪는 지구처럼 이상 현상을 일으키며 이세계는 멸망 태크를 타게 되었는데요. 4신은 노는데 바빠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르고 있고, 관심도 없다는 것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더해만 가죠.

아무튼 어디서 주웠는지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열심히 사신을 기르고 있습니다. 개그물답게 알에서 깨어난 새가 처음 보는 존재를 어미로 착각하는 그런 시추에이션을 사신도 보여줄까 했지만 그런 귀염성은 없어요. 다만 아저씨가 배양기 안으로 넣어준 사탕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흐뭇하게는 합니다. 그 옛날 이세계를 멸망 시키려고 했던 그 사신이 맞나 싶기도 하죠. 역시나 올바르게 기르면 인격도 올바르게 형성된다는 걸 보여주려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저씨는 태초의 신(神) 대리로 온 다른 세계의 신(神)의 의뢰로 사신을 길러 4신 타도에 본격적으로 나섭니다. 그전에 사신에게 중2병식 성의 없는 이름도 지어주고요. 정신 링크인지 뭔지로 몬스터 잡고 경험치를 공유하면서 나날이 사신은 튼실하게 잘 자랍니다. 참고로 사신은 여자애의 모습이라는데, 사실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다면 일러스트에 나오는 인물들 모습들이 바키(만화) 형상화라는 것이군요. 사신은 과연?

맺으며: 이 작품은 일본식 개그물입니다. 네이밍 센스도 그에 걸맞게 온통 중2병식에다 [돼지곰나비]같이 궤멸적으로 유치찬란하기만 하죠.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창피한 그런 거 있잖아요. 물론 이런 점들은 이 작품만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으니 작가의 성향 가지고 뭐라 하기엔 좀 그렇긴 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개연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느냐죠. 그런 면에서 감정과 성격에 결함을 보이는 신(神)이 만든 세계가 있고, 그 성격으로 만든 관리자(사신, 이후 4신)에게 세계를 관리하라고 하니 제대로 돌아갈 리 없고, 그 결과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저씨가 휘말려 개고생 하게 되었다. 결국 신(神)이 저지래한 일을 아저씨가 치우게 생겼다 뭐 그런 줄거리인지라 이 줄거리만 놓고 보면 개연성은 충분하긴 합니다. 문제는 10권이나 올 동안 이런 이야기들은 지지부진하다는 것이고, 인간관계에서도 이렇다 할 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그 흔한 메인 히로인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 비밀이라면서 떠벌리고 신문물을 퍼트릴 생각 없다면서 퍼트리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아저씨의 희한한 성격이 좀 그래요. 일기라면서 이런 일기답지 않은 생활은 이 작품만큼이나 제목과 괴리를 일으키는 작품은 없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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