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13 - L Novel
시라코메 료 지음, 타카야Ki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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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최종장입니다. 유에가 잡혀가고 반광란 상태에 빠졌던 주인공은 어찌어찌 준비를 거쳐 신(神) 에히트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 갑니다. 지상에서 인간들과 수인들은 해묵은 감정을 접어두고 대통합을 이뤄 대규모 병력을 꾸렸습니다. 이들은 개떼처럼 몰려오는 사도들을 맞아 죽기 살기로 응전에 임합니다.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주인공이 지원해 준 각종 아티팩트 등으로 백중세를 이루지만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인간 쪽. 이세계로 전이되었던 아이들도 저마다 성장과 각오와 용기로 무장하고 마지막 전장에 섭니다. 하지만 늘 이런 작품에서 나오는 말이 있죠. '질 거 같지가 않다'. 근데 얘들 주인공에게 너무 기대는 거 아닌가 싶은 모습을 보입니다. 주인공이 이지메 당할 때는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아 놓고, 신(神)을 이기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너도나도 주인공을 치켜세우는 게 조금 노골적입니다. 그리고 고기 방패가 되어 죽어나가는 것은 얘들이 아니라 이세계 사람들.

주인공과 신(神) 에히트의 싸움은 이 작품에서 메인이 아닙니다. 몸을 에히트에게 강탈당한 유에를 탈환하고 꽁냥꽁냥 하는 게 목표죠. 어쨌거나 그러려면 에히트와 싸워야 하는데, 처음엔 백중세, 이후 주인공이 밀림, 많이 밀림, 엄청 두들겨 맞음, 주인공이 준비했던 무기들은 죄다 소진되고, 주인공이 품었던 희망을 짓밟아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절망을 안겨 주며 에히트는 희열에 빠짐.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사실 이전 다른 작품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근래 일본 작품들에서 일본만이 가졌던 열혈을 이 작품에서도 볼 수가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작가는 자신만의 중2병식 진행을 할 거라 했고, 그에 맞게 중2병식 진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죠. 스킬 명과 주인공이 개발했던 각종 아티팩트들의 찬란함에서 보여주는 중2병은 유치하다기보단 오히려 후련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번 13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그렇다 보니 암울하거나 위기감, 절망보다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질 거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 느낌대로 작중 진행은 애초에 신(神) 에히트는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는, 그렇게 사전 포석을 깔아 놓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언제부턴가 유에를 제일 우선으로 쳤으며, 그에 따라 에히트를 쓰러트리는 것보단 유에를 되찾는 것을 고집하고 그 고집에 따라 최선을 다해 원래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끔 포석을 깔아둔 것처럼 에히트와의 싸움은 그다지 처절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물론 엄청 두들겨 맞지만, 중요한 것은 유에의 영혼을 느끼는 것이고 아직 영혼이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은 그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이끌어 내면 되는 일. 여기서 한 가지 독자들이 간과한 게 있다면, 오글거리는 꽁냥꽁냥은 얼굴에 철판 깔고 잘만 쓰면서 감동적이고 감격적인 장면은 정작 부끄러웠는지 작가가 쓰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신(神)은 죽었다. 스포일러가 아니라 어떤 도서의 제목이었던 거 같은데, 애초에 신이 인간에게 질리가 없잖아 하는 게 공통의 인식이겠죠. 그래서 본 작품은 신(神)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줍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밀레디'의 출연. 외전 제로의 여주인공으로서 깐족 거리며 사람 허파 다 뒤집어 놓으면서도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아깝지 않게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의 최후도 그립니다. 이 날을 위해 수백 년을 골렘의 모습으로 홀로 살아왔던 그녀,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깔아놓은 레일 위를 달려와준 주인공을 위해 그녀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수백 년 전에는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 수백 년이 흘러 자신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드디어 신(神)에이트와 마주한 주인공을 바라보는 그녀의 심정은. 그리고 마침내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그녀에게 주인공이 건넨 한마디 '세계의 수호자' 이것으로 그녀는 마침내 보답을 받습니다. 사실 필자는 본편의 나구모(주인공)의 엔딩보다는 밀레디의 엔딩에서 그녀의 친구들이 마중 나와주고, 시일이 흘러 윤회를 거쳐 다시 오스카(외전 제로 주인공)와 재회하는 장면은 그 무엇보다 깊은 감명을 느끼게 했습니다.

맺으며: 최종장이면서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 중2병은 최고조를 달립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도 떼의 돌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상황임에도 심각하다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열혈이 없어 아쉽지만, 중2병을 가미하며 분위기가 이완되지 않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군요. 최종 엔딩은 뭐 독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흐름입니다. 이성 간 관계는 풋풋함보다는 저돌적이고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하렘 꾸리는 걸 마다하지 않으며, 손대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걸 또 숨김없이 집필하는 작가의 뻔뻔함도 대단합니다. 어쨌거나 최종장입니다. 주인공 이외의 아이들도 묻히지 않게 분량을 잘 조절했으며, 덩달아 제로(외전)도 완전하게 끝맺음 해줘서 기승전결 면에서는 그 어느 작품보다 낫다고 자부합니다. 뭐 사실 적을 이긴다 집에 간다. 용사가 마왕을 무찌른다와 일맥 상통하여 조금은 클리셰적이긴 합니다만. 그나저나 표지 유에 다리 누가 그렸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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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소녀의 살아가는 길 4 - S Novel+
사토 마토 지음, 니리츠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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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세계에 도착한 지구인, '길 잃은 사람'들은 순수 개념이라는 초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 힘은 도시를 증발 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죠. 여기까지 보면 여느 이세계 전생물에서 볼 수 있는 먼치킨 부류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한 가지 설정을 추가합니다. 모든 행동과 결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능력을 쓰는 지구인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기억입니다. 능력을 쓸 때마다 깎여나가는 건 기억이고, 마모되는 건 마음입니다. 그렇게 능력을 행사할수록 자신이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남게 되는 건 인간형태를 한 순수 개념이라는 마도입니다. 이 마도는 이세계에 재앙을 뿌립니다. 1천 년 전, 이세계에 흘러든 5명의 지구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구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 방법은 이세계를 멸망 시킬 수 있는 거대한 것이었죠.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법을 모으면서 순수 개념을 너무 쓰는 바람에 4대 인재라는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이세계로 흘러드는 지구인은 삭제 대상이 됩니다. 1천 년 전, 4대 인재로 인해 문명이 멸망 직전까지 갔던 이세계인들에게 있어서 지구인은 재앙 그 자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아카리(히로인)'가 이세계로 흘러들었을 때 그녀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순수 개념은 [시간], 죽음을 맞이하면 제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시간대에서 다시 부활을 힐 수 있는 그녀는 불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대륙을 소금으로 바꿔버린 4대 인재 중 하나인 '소금 검'을 쓰는 것. 그녀를 소금 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죽이도록 명령받은 사람은 '메노우(여주인공). 메노우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아카리를 소금 검이 있는 곳으로 대려 가려 합니다. 그녀들의 여정은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여정을 통해 아카리는 메노우를 정말 좋아하게 되죠. 그녀는 메노우를 위해서라면 이세계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아카리의 순수 개념은 [시간], 3권에서 그녀는 시간 회귀 중이라는 사실을 '모모(히로인, 여주 보좌관)에게 털어놓습니다. 메노우는 아직 모르고요. 회귀 발동 조건은 메노우의 목숨. 이 능력이 발동되면 아카리는 이세계로 흘러 들어와 처음 도착한 곳에서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는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숱하게 회귀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순수 개념을 쓸 때마다 깎여나가는 건 기억, 그녀에게 있어서 이제 일본에서 지냈던 기억들은 희미해졌습니다. 어느 분기점으로 가든 죽어버리는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할수록 사람이 아니게 되는 그녀에게서 헌신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4권에서는 여정 중에, 어느 타임라인을 타든 메노우가 왜 죽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세계는 메노우 같이 처형인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며 지켜야 될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아카리는 모모와 같이 메노우 곁을 떠납니다. 자신이 떠나면 그녀가 죽지 않는 분기점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서.

메노우가 죽였을 거라 여겼던 마논과 만마전(새끼 손가락)이 살아 있었군요. 이들과의 재회는 처형인으로서의 가치관을 흔들어댑니다. 그리고 스승의 재등장으로부터 이세계는 그렇게 착하지 않다는 것, 지구인들이 순수 개념화된 후, 그 이용 가치가 밝혀지면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죠. 그리고 지구인들이 순수 개념화되어 인재로 발전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교회 상층부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교회에 대항하는 제4 계급들의 대두는 메노우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합니다. 지구인들을 희생 시키지 않고 공존을 모색할 것인가, 이대로 처형인을 계속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왜 메노우가 여정 중에 죽어야만 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밝혀집니다. 그녀는 아카리를 좋아하게 되어 교회를 배신하는 것도, 자기 일을 내팽개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일을 너무나 충실히 하려는 게 오히려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반전은 이번 4권의 최대 흥미 포인트입니다. 아카리는 메노우 스승에 붙잡혀 소금 검이 있는 대륙으로 압송됩니다.

맺으며: 이번 4권의 포인트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하는 구분을 짓는 것입니다. 이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4대 인재가 일어난 원인을 밝히면서 지구인이라고 마냥 피해자는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이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어도 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죠. 그리고 이세계도 지구인들을 인재화 시켜 무언갈 얻으려 한다는 것에서도 착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래서 본 작품은 권선징악형과는 거리가 먼데, 가령 친족에게서 학대를 당한 마논과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어 힘을 행사했을 뿐인 만마전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목적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물로 받치는 가해자로 등장하죠. 교회는 지구인들을 없애면서 이세계를 인재로부터 지켜 나가는 선(善)이지만, 그 지구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배제(마논도 그 피해자, 엄마가 지구인)하고 이용해 무언갈 만드는 악(惡)의 축이기도 합니다. 메노우는 그런 사실을 알아가며 혼란을 겪어 가죠. 이 4권을 기점으로 죽이기 위한 여행은 근본부터 바뀌어 살리기 위한 여행으로 넘어갑니다.

또 다른 포인트를 꼽으라면, 아카리의 메노우 사랑을 들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여정 중에 좋아하게 된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받치고, 내가 없어져도 내가 있었다는 흔적은 남아 있을 거라는 대목은 심금을 올리죠. 그리고 안타깝게 하는 건 능력을 쓸 때마다 그녀의 기억이 소실된다는 것이고요. 메노우를 지키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고, 스승에게 붙잡혔을 때 따라온 메노우와의 재회에서 더 이상 쫓아오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서 애잔함이 묻어나죠. 그리고 아카리가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 메노우는... 자, 처형인으로서 이세계를 지키기 위한 올곧은 마음을 가진 사상 최강이라는 스승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메노우는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금 메노우가 걷고 있는 길을 이미 걸어왔던 스승은 제자에게서 무엇을 바라게 될까. 장르가 백합이고, 라노벨 다운 가벼운 이야기들이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있지만, 설정만 놓고 본다면 대단히 우수한 작품이죠. 근데 인기를 못 끌다니... 출판사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발매 텀 좀 줄여주세요. 앞에 이야기를 다 까먹어서 다시 읽어야 되는 수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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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치트 스킬을 얻은 나는 현실 세계에서도 무쌍한다 1 - ~레벨업이 인생을 바꿨다~, Novel Engine
미쿠 지음, 쿠와시마 레인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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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작입니다. 올해 애니메이션으로 방영이 되었으며(11월 1일 자로 넷플릭스에서도 방영 시작), 애니메이션 호조에 힘입어 전격적으로 정발을 단행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일본에서는 이미 14권이 나왔음에도 이제 1권). 내용은 심각한 이지메를 당하던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힘을 얻어 현실에서도 무쌍을 찍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권선징악적인 측면이 강하며, 돼지 오크라 불릴 정도로 못생기고 뚱뚱한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얻은 힘 덕분에 미남(이하 이케맨)이 되어 모두의 선망을 한몸에 받고 신분이 상승한다는 신데렐라식 성장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이 돼지 오크 같던 모습일 때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주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도 않고 멸시를 하더니, 주인공이 이케맨이 된 후로는 엄청나게 빨아준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은 외모가 제일이라는 다소 위험한 사상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이 중요하다는 설정도 넣지만 이케맨이 된 후로는 무엇을 말하든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는 방임,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옷도 공원에서 세탁하는 처지에 이르죠. 쌍둥이 동생들은 한술 더 떠서 인간 취급도 안 해줍니다. 학교 친구들은 주인공을 매일 구타하는 것도 모자라 홀딱 벗겨 사진 촬영을 해댑니다. 쌍둥이 동생들도 동조합니다. 나중에 선생도 이지메에 개입했다는 게 밝혀집니다. 돈을 빼앗기고, 얻어맞고 기절하고 눈을 떠보니 달님이 보입니다. 이 일로 어찌어찌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는 잘렸습니다. 이 모든 게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어난 일이죠.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서 양아치에게 능욕 당할 뻔한 히로인1(부잣집 딸내미)을 구해줍니다. 그녀는 못생긴 주인공의 겉모습을 보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일하게 주인공 편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을 물려받았지만 그걸 또 부모가 빼앗으려 합니다. 할아버지 집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문(도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너머엔 주인공을 개변 시켜줄 무언가가 있었죠.

이세계에서 얻은 힘을 현실에서도 쓸 수 있고 이케맨이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이 힘으로 그동안 이지메 했던 나쁜 시키들을 밟아줄 수 있게 되었죠. 또한 빈털터리에 오늘 먹을 양식도 구할 여력이 없었던 주인공에게 이세계에서 얻은 각종 소재는 일본 돈으로 환금도 되어서 며칠 만에 우리 돈으로 억대에 달하는 돈을 손에 넣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분기점이 생기죠. 하나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이세계에서 얻은 힘으로 도시를 장악하는 길. 하나는 갑자기 졸부가 되었지만 소심한 성격에 돈을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고, 얻은 힘도 어떻게 구사해야 될지 몰라 여전히 쭈구리 인생을 사는 길. 작가가 선택한 길은 두 번째 길입니다. 사실 필자가 바랐던 길은 이게 아닌데, 외모가 바뀐다고 성격도 바뀌지 않는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을 보여준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소심한 성격은 그대로죠. 자신감도 없고, 탐험심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선징악형이지만 그렇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만한 통쾌함도 없습니다.

무쌍은 주로 얼굴이 합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하루아침이지만, 어쨌건 이케맨이 되자마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쳐다보죠. 여자들은 100이면 100 다 얼굴 붉히며 꺄악~ 거리고, 남자들도 질투보다는 선망을 보냅니다. 옷 사러 쇼핑몰 갔더니 잡지 촬영 제의를 받습니다. 페어로 촬영할 여자 연기자(히로인3)는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해댑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주인공 누구냐며 왜 이리 잘 생겼냐며 휴대폰 셔터 누르고 난리 났습니다. 성별 역전이라도 된 듯 여자들이 헌팅을 해댑니다. 가는 곳마다 현빈이 나와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같은 열광하며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게 진정 현실이란 말인가. 이 세상 못생긴 남자들이여 어서 이세계로 가세요 같은 공익 캠페인인가? 며칠 전에 편의점에서 구해준 히로인1이 등장합니다. 왜 안 나오나 했습니다. 등굣길에 거대한 리무진을 타고 와 사실 나는 유명한 학원 이사장 딸이고, 우리 아빠가 널 전학 시키려고 하는데 OK? 합니다. 만약 주인공이 아직도 돼지 오크 같은 외모였다면?

전학 갈 예정인 학교에 맛보기로 하루 등교해 봅니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인공만 쳐다봅니다. 세상에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땅바닥을 기며 오물을 씹던 돼지 오크가 오늘은 신데렐라가 되었습니다. 히로인1과 거리에 나갑니다. 사람들이 또 선남선녀 납셨다며 난리를 칩니다. 오! 신이시여 여기가 진정 현실이란 말입니까. 주인공은 이제 내 내면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좋아합니다. 뭔가 전재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외모가 바뀌니까 주변도 180도 바뀝니다. 이제 어딜 가도 돼지 오크는 없습니다. 잡지 촬영으로 이케맨 그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 언급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사실 주인공은 친구들에게 너무 두들겨 맞아 죽어가고 있고, 이 모든 상황은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꾸는 꿈일 아닐까. 사람이 태어나서 모두의 선망과 이성의 호감을 받으며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꿈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주인공이 죽어가며 꾸는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맺으며: 언제부터 일본 작품들에서 다정한 남자가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필자의 기억엔 일본식 이케맨은 호쾌하고 밝으며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이끄는 마성의 소유자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게 다 한류의 영향일까요. 그 왜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일이 많잖아요. 실제로 일본 여성들에게 여론 조사한 거 보면 한국 남자는 다정하다는 인식이 강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라노벨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한국식 다정함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필자의 망상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본 작품의 주인공의 경우도 이 다정함이 묻어나고 있죠. 극한의 방임과 괴롭힘, 세상에서 나 혼자라는 외로움, 어떻게 발버둥 처도 오늘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되는 지지리도 궁상인 생활, 시선의 따가움, 언제나 길바닥을 보며 걸어야 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비참함. 과연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특히 주인공은 지금 한창 사춘기죠.

왜 삐뚤어지지 않는가. 부모와 쌍둥이 동생들은 천하의 개x레기고, 할아버지를 뺀 그 누구 하나 주인공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인공의 다정함은 여자 히로인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듭니다. 이 다정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세계에서? 나도 두들겨 맞으면 다정해질까? 픽션에서 현실을 들이미는 건 어리석다고는 합니다만. 비현실적이기에 주인공 성격을 꼬아 놨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을 괴롭혔던 쓰레기들에 대한 천벌은 이 작품에서 최대의 카타르시스였을 텐데 왜 1회용 엑스타라 악당 처리하듯 해버리는가. 스포일러가 자세히는 못 씁니다만. 주인공에게 깝치다가 허무하게 리타이어는 좀 아니잖아요. 어쨌건 다정함으로 히로인들에게 무쌍을 찍습니다. 이세계에서 히로인2(이세계 왕녀, 히로인3보다 먼저 만남)를 다정함으로 구해주고, 전학 간 학교에서 히로인4(말괄양이)가 들러붙고, 이 작품에서 말하는 무쌍은 이세계에서 얻은 힘이 아니라 얼굴을 뜻합니다. 이넘의 외모지상주의.

이 작품은 돼지 오크 때와 이케맨일때의 사람 반응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1권에서는 돼지 오크 때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케맨의 생활을 극단적으로 끌어내고 있죠. 적어도 주인공이 전학 간 학교에서도 과연 돼지 오크의 모습이라면 반겨줄까, 과연 잡지에 출연할 수 있었을까, TV에서 언급해 주었을까, 히로인들도 반겨줄까 같은 비교하는 철학적인 물음을 던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없습니다. 이게 상당히 아쉽죠. 필자 개인적으로 주인공을 개변 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게 하고, 이걸 뛰어넘어 무쌍 찍는 걸로 해주었으면 좋았지 않나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외모만이 제일이라는 현실 비판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작가가 이걸 노린 듯합니다만, 진실은 모르겠군요. 아무튼 이러해서 열혈 통쾌함이 없습니다. 다정함으로 포장된 비참함이 있다고 할까요. 왜냐면, 주인공은 그동안의 괴롭힘을 대갚음해 주기보단 품어주는 길을 선택하거든요. 즉, 주인공이 희생하면 모두가 평안해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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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울이 세계를 구했다는 것을 나만이 알고 있다 1 - L Books
카토 묘진 지음, 코메시로 카스 그림, 박춘상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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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의 주인공은 구울(좀비)입니다. 판타지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마물로 변질 시키는 안개와 [청안병]이 유행 중입니다. 이로 보아 주인공도 청안병에 감염되어 구울이 되었지 않나 하는 추축을 하게 합니다. 청안병에 걸려 마물로 변질되는 개체는 천차만별로 고블린같이 마물 특유의 본능에 충실히 살아가는 존재부터 주인공처럼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지식을 가진 일명 [적안]까지 다양하나 이들에게 공통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 그중에서 주인공처럼 선(善)의 마음으로 인간들 편에 서서 살아가는 개체는 매우 드문 정도가 아니라 일단 1권에서는 주인공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에게 위협이 되는 건 고블린같이 조무래기가 아니라 주인공처럼 인간의 의식을 가진 개체로서 1권에서는 그 개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주인공은 인간들에게서 멸시를 받으며 교회의 개가 되어 청안병으로 인해 변질된 사람들을 사냥하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일단 기본 플롯은 이와 같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두 가지 설정을 추가합니다. 하나는 주인공이 과거에 지인을 구하지 못해 거기에 얽매어 마음에 병이 들어간다는 것, 또 하나는 그 마음의 병을 치료해 줄 히로인의 투입해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삶의 의지를 되새기게 하는 것. 4년 전 희대의 [적안]으로 인해 도시는 패닉에 빠졌고, 주인공(이때 이미 구울)은 스승과 사형과 파티를 짜고 토벌에 나서죠. [적안]을 거의 다 몰아붙이고 토벌에 성공하나 했으나 주인공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적안]에 인질로 잡힌 사형을 구출하고 대신 내가 죽을 것인가, 아님 [적안]의 말대로 못 본 척 도망갈 것인가. 여기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죠. 왜 내가 대신 죽어야 하는가, 사형은 내가 죽는 걸 바랄까. 대신 죽어주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그로 인해 죽은 사형은 주인공을 원망할 수 있는가, 아님 주인공만이라도 살아주길 바라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주인공은 그로부터 끊임없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내가 대신 죽어야 했었다고, 못 본척한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히로인 '앨리스'는 청안병으로 인해 마물로 변해버린 엄마를 죽인 주인공을 찾아옵니다. 여기서 운명의 갈림길이 생기죠. 비록 마물로 변했다곤 하나 엄마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를 할 것인가, 고통뿐인 미래를 덜어준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낄 것인가. 사람들은 주인공의 본질(왜 살고 있는지)을 보는 것보다 구울이라는 마물이 마을 속을 걸어 다닌다는 것에 엄청난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아군은 그에게 장비를 만들어주는 아멜리아(일거리를 알아봐 주기도 함) 외에는 없습니다. 주인공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에겐 오로지 4년 전에 있었던, 지키기 못했던 스승과 사형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죠. 세간에서도 그 [적안]의 사태도 주인공이 일으킨 일로 각인되어 있고요. 이렇듯 주인공은 스스로 삶의 의지를 잃어가고 속죄만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앨리스'와의 만남은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가 이번 1권의 이야기입니다.

청안병은 블랙 불릿이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가스트레아와 유사합니다. 생물을 마물로 변질 시키고, 마물로 변하면 생전의 집착에 연연하죠. 주인공같이 인간의 의식을 가진 자는 적안으로 불리며 블랙 불릿의 이니시에이터와 유사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지녔지만 결코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 대부분의 존재는 마물로 변해 본능에 따라 인간을 공격합니다. 주인공이 언제 구울로 변했는지 1권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이게 이 작품의 최대 복선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리고 히로인 '앨리스'는 주인공의 사형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주인공을 도망치게 하려 하죠. 이 점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삶의 의지가 되고 정신줄을 잡는 계기가 되어 갑니다. 주인공은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어떻게 사죄하고 죽을지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죠. 그래서 처음엔 쫓아내도 쫓아내도 달라붙는 앨리스가 귀찮아 죽을뻔하였으나 그녀가 흘리는 눈물과 혼자 두지 말라는 호소, 주인공을 지키겠다는 당돌한 선언 등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구원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1권은 주인공의 과거 청산입니다. [적안], 마물로 변질되었으면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지성과 감정을 가진 마물. 주인공에게 있어서 청산 대상자는.... 4년 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형을 구해 냈더라면 사형과 스승은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주인공은 그걸 청산하려 하죠. 히로인 앨리스는 주인공을 스승으로 모시며 배움을 갈구합니다. 첫 만남(과거 말고 1권에서의 첫 만남)은 고블린 슬레이어처럼 던전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하면서 시작됩니다. 겁이 많으면서도 타인을 구하려 하고, 주인공이 부조리한 대우를 받으면 그러지 말라고 나서서 말하는 당돌한 기질을 가졌죠. 타인의 기분을 억수로 살피고, 버림받을까, 미움받을까 상대의 기분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굴함도 가졌습니다. 아마 엄마가 생전에 웃으며 살라는 강박증에 가까운 주입식 교육과 마물로 변해버린 엄마와 그런 엄마를 죽인 주인공으로 인해 성격이 비굴해지지 않았나 하는 추축을 하게 하죠. 작중에서 엄청 굴러다닙니다.

맺으며: 사람 선입견이라는 건 엄청나게 무섭다는 걸 본 작품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리뷰는 거의 중립적+@로 쓰긴 했습니다만. 표지 다음으로 나오는 컬러 일러스트를 봤을 때 딱 느낌이 왔는데, 이거 히로인 때문에 말아 먹겠다고. 히로인 앨리스의 성격이 나무나 이상합니다. 초반 자고 있는 주인공을 찾아가 대뜸 개연성도 없이 저를 제자로 삼아 달라는 것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데, 주인공이 뭐라 하든 말도 드럽게 안 듣고, 작중 내내 자신의 마음만 앞세울 뿐 주인공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보다는 나를 혼자 두지 마세요. 저 상처받았어요 같은 자신을 먼저 챙겨 달라는 모습들은 너무나 어이없게 만듭니다.

시종일관 되레 주인공에게 보호받는 주제에 제가 지켜 줄게요, 해놓고 마물에게 능욕 당할 뻔하지 않나. 물론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면 집착에 가깝게 누군가의 온기를 갈구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이것도 사실 정신병이죠. 난처해지는 건 주인공인데, 아무런 영향력도 없으면서 주변에 대고 주인공에게 험한 말 하지 말라고 하면 비웃음 사는 건 주인공이라는걸. 히로인은 주인공이 사람들에게서 두들겨 맞기를 바라는 사이코 패스인가? 왜 이런 히로인을 기용했는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초반에 한번 선입견이 생겨 버리니까 후반 진정으로 주인공을 사모하고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 퇴색되어 버리더라고요.

앨리스를 적어도 설정이 어느 정도 정착되는 중반쯤에 기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분위기와 동떨어진 높은 텐션과 비굴할 정도로 상대의 기분을 살펴대고, 만약 상대가 배려의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침몰해버릴. 돌려 말하면 엄청 귀찮은 캐릭터죠. 자신의 감정을 왜 타인에게 갈구하는가. 이렇듯 감정이라는 설정을 잘못 배치하는 바람에 약간은 괜찮은 분위기를 다 망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과거(히로인 과거도 포함)와 작중 설정을 초반에 밀어 넣고, 그다음에 히로인을 집어넣어야 했지 않나 합니다. 리뷰를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결국 이렇게 쓰고 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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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망령은 은퇴하고 싶다 4 - ~최약 헌터에 의한 최강 파티 육성술~, S Novel+
츠키카게 지음, 치코 그림, 김정규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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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뭔가 활약 같지도 않은 활약을 했더니 황제께서 모임에 초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헌터들은 어중이떠중이 무뢰배들이나 하는 직업으로 인식된 상황에서 황제가 초대했다는 건 정말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는 일이죠. 영웅적인 헌터라도 극히 일부만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받는 그런 모임에 우리의 주인공이 선택한 길은? 도망가야죠. 갔다간 자신의 실력이 거짓이라는 게 들통 날 테고, 철저하게 방구석 폐인을 자처하는 주인공이 인싸들 밖에 없는 사교장에서 적응 못하고 토할게 뻔하거든요. 게다가 헌터 협회에서 클랜 하우스로 복귀하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쭉정이인 주인공이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이 모이는 사교장에서 배겨날 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선택한 길은 야반도주. 그런데 호위 없이는 클랜 하우스 밖에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주인공으로서는 반드시 누굴 꼬셔서 같이 도주해야만 하죠. 하지만 주인공과 엮여서 좋은 꼴 못 본 클랜 소속 헌터들은 하나같이 외면하는데...

어쨌건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대충 누구라도 주워 출발하려 하지만, 바캉스라 명명된 도주극에 참가한 면면들로부터 재난의 시작이라는 플래그를 세웁니다. 어둠이 깔리고 비까지 쏟아집니다. 헌터 협회는 주인공이 도망갔다는 걸 알아채고, 매번 매번 주인공에게 도발 당했다 여겨 뿔이 난 시골 출신 헌터 '아놀드'의 추격도 받습니다. 이건 바캉스가 아니라 빚을 지고 야반도주하는 빚쟁이를 뛰쫓는 채권자의 구도가 펼쳐지죠. 여기서 작가는 더욱 흥미로운 설정을 쏟아붓습니다. 고생은 주인공 일행이 다 할 거 같은데, 진짜 고생은 쫓아오는 채권자들이 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난은 주인공 일행에게 들이닥치는 게 아니라 쫓는 자에게 들이닥치게 되죠. 사실 쫓는 자들도 나름 비중 있는 인물들입니다. 헌터 협회 직원도 비중 있는 히로인이고, 아놀드는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다고 할까요. 무능력 주인공과 진짜 고생해서 성장한 아놀드, 근데 서로의 인식 차이로 원수가 되어 버렸죠.

분명 바캉스라 했는데 따라온 히로인들 때문에 바캉스가 바캉스 같지가 않습니다. 제노사이드 몬스터라 불릴 정도로 제도에서 재앙으로 취급받는 '리즈'와 사람을 무언가의 생물로 개조하는 걸 취미로 삼고 위법 약물을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시트리의 동행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재난이나 다름없었죠. 시트리가 만든 무언가의 생물과 무언가로 만든 키메라와의 동행은 비현실적의 끝을 달립니다. 어째서 바캉스가 언제부터 호러가 된 것이지? 같은. 설상가상으로 비 오는 한밤중에 평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들다는 번개 속성 정령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 외의 존재 같은 히로인들 때문에 주인공이 마음고생한다면, 물리적으로 고생은 주인공 뒤를 쫓는 헌터 협회 여직원과 아놀드 일행이 한다는 것이군요. 주인공으로부터 헌터 레벨 7도 고전하게 만드는 번개 속성 요정을 떠맡게 되고, 오크 군단이나 이번엔 화속성 정령까지 떠맡게 되자 사람이 돌아버린다는 게 무엇인지, 끈기가 무엇인지 아놀드는 보여주려 하죠.

하지만 주인공 일행에서도 고생하는 이가 있었으니. 본 작품에서 비련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티노'. 처음엔 그저 헌터를 동경했을 뿐인데 언제부턴가 주인공에게 거둬져 제노사이드 몬스터 리즈의 제자가 되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죠. 주인공 대신 아놀드와 대결했다가 깔끔하게 발리고, 주인공이 내린다는 천 개의 시련인가 뭔가로 죽기 직전까지 가고, 리즈에게서 진짜로 소x을 지릴 정도로 수행이라는 명목으로 두들겨 맞고, 주인공은 신(神)이라는 리즈의 주입식 교육으로 그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본 작품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인데요. 사실 이 고생은 주인공이 해야만 하는 것인데, 대신 고생하게 되는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바캉스에 억지로 동행하게 되면서 번개에 지져지는 등 고생을 참 많이 하게 되죠. 하지만 그동안의 고생이 이번 바캉스로 인해 성장이라는 기틀을 잡게 하고, 주인공으로부터 인정받는 등 성장이라는 건 이런 건가 하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맺으며: 여전히 착각과 오해가 난무합니다. 그 착각과 오해는 주인공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효과를 부여한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가령 주인공을 뒤쫓는 아놀드 일행의 평가를 올려주게 한다던가, 주인공이 가진 생각은 일반인을 초월한 무언가라는 등 지레짐작을 해대죠. 황제가 주최하는 모임에 초대된 것도 이 착각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인공은 무능력 먼치킨이 아니라 진짜로 무능하고, 운은 지지리도 없으면서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다 해주는 지인 복은 있어서 고(高) 평가받고 있는 것뿐인 게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4권에서는 황제가 주최하는 모임에서 도망치기 위해 혈안이 된 주인공과 그 모임에 참석 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헌터 협회 여직원, 그리고 도발에 도발을 받아 열받을 대로 받은 아놀드의 추격은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성장은 사람 잘못 만나 고생하는 '티노'가 다 하게 되고요. 자, 바캉스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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