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17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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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에 우리나라에 이런 만화가 있었습니다. 불로장생하는 남자가 싼 똥을 먹은 개를 잡아먹은 여자가 불로장생을 얻어 죽지도 못하고 수백 년을 살면서 남편만 십수 명이고 그들이 죽을 때마다 무덤 만드느라 개고생을 했다는 일화를 이번 17권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이 났군요. 오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위의 구절은 개그 만화에서 풍자식으로 표현한 것뿐이지만 사실 필자가 이 작품의 리뷰를 써 오면서 누차 언급했듯이 불로장생은 할 것이 못됩니다. 물론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필자 같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 불로장생을 얻어볼 만은 합니다만, 대부분은 미쳐버리겠죠.

 

호로도 한때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하도 떠나보내는 사람이 많아서 불로장생의 영약이라는 일각 고래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죠. 이걸 남자에게 먹이고 자기와 같은 시간대에 살게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허황된 짓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누구보다도 똑똑한 현랑이라고 자부하는 그녀가 이걸 모를 리는 없었을 텐데도 그럼에도 이걸 찾아 여행을 하였으니 그녀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것은 떠나가는 자를 붙잡지 않고 배웅하며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리고 남자가 그렇게 떠나가면 다시 여행길에 오르고...

 

로렌스와의 관계에서도 잘 닦인 레일 위를 달리는 것처럼 종착지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녀는 로렌스가 죽은 뒤의 예정을 이미 세워두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다시 여행길에 오를지 종착지로 정한 뇨히라라는 온천 마을에서 그가 세운 온천장을 물려받아 언제까지고 그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지난날을 곱씹을지는 아직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요. 아마 18권이 나오기 전 광고 카피처럼 그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지내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로렌스가 호로와 평생을 지내기로 하고 행상로를 정리한 끝에 뇨히라에 자리 잡은지 어언 6년이 흘렀습니다. 중세 시대를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 30줄에 들어선 그는 이제 중년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호로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고요.

 

이번 17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반드시 헤어짐은 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대비하며 지금에 충실히 하고자 합니다. '헤어질 땐 웃으며'라고 했던 지난 여행길에서의 말을 잊지 않으려는 두 사람, 그것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어렴풋이 느껴가는 로렌스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해도 뭐 그렇게 우중충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발버둥 처봐야 소용없다는 것이기에 이번 17권은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호로는 여행길에 만난 여자들을 죄다 초청해서 내가 인생의 승리자라며 대놓고 염장질을 해대고, 로렌스는 호로가 여행길에 만난 여자들을 초청하자 뭔 일 터지는 거 아닌지 노심초사하면서 좌불안석이 되어 갑니다. 그러다 피날레로 초청한 만인 앞에서 호로가 자신(호로)의 배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본 그는...

 

이런 사랑도 좋겠죠. 시간과 시대를 뛰어넘어 맺어지는 순애보는 언제 봐도 가슴 설레게 합니다. 다만 그녀같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성격까지 드센 여자라면 좀 곤란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선의의 거짓말도 하기 마련인데 호로에겐 잘 통하지가 않으니... 살다 보면 좀 피곤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되려 이걸 빌미로 놀려대는 통에 부아가 치밀지만 로렌스야 워낙 호로에게 콩깍지가 씌워져 있어서 완전 상전 모시듯, 로렌스를 어디 지나가는 개 보 듯하는 주제에 외로움은 얼마나 타는지 잠시라도 그(로렌스)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데다 입만 열었다 하면 독설이고 돌아서면 외롭다고 팔짱을 끼워 오는 통에 그녀의 비위를 맞춰줄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뭐, 이번 17권 외전 에피소드에서 그녀 나름대로 로렌스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랬다고는 하는데 진실은 모르죠.

 

맺으며, 사실 필자는 두 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장르가 이런 작품입니다. 상추쌈에 고기는 한 점만 넣고 고추와 마늘로 탑을 쌓아서 먹는 기분이랄까요. 마늘과 고추의 알싸하고 매운맛 때문에 비위 상해 뱉고는 싶은데 고기 맛이 나서 뱉지도 못하는 그런 기분 알려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부분을 빼고 좀 더 시간이라는 이야기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로는 갯과이지만 고고한 고양이처럼 홀로 앞을 향해 걸어가면서 괜찮아라고 하지만 옆에 같이 걸어가 줄 사람을 절실히 바라는, 하지만 그건 죽어도 내색하기 싫어 독설을 내뱉고 그러다 상대가 그런 자신에게 질려서 떠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치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의 유키노를 보는 듯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늑향이 먼저 나왔으니 반대가 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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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16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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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뇌리에 잊히지 않는 영화 한편이 있습니다. 제목은 이제 와 생각 안 나지만 인간의 남자와 사이보그 여자가 만나 역경을 이겨내고 맺어졌지만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여자는 그의 곁을 언제까지고 지키면서 끝이 납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까지 끝없이 자문하는 게 하나 있는데요. 과연 여자는 행복했을까? 남자는 행복한 마음으로 떠났을까? 불꽃같이 모든 걸 태워 한순간 정열적으로 모든 걸 바쳐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하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 웃으면서 이별을 하고 남겨진 자는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걸 두고 과연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호로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숱한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한때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일각 고래라는 불로의 영약을 찾아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 찰나의 시간을 살고 언제나 배웅하는 입장의 슬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콜을 서적상에 맡겨 떠나보낼 때 호로의 표정을 본 로렌스는 그 슬픔의 무게를 여실히 느껴야만 했고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있어서 과연 이게 행복한 결말일까?

 

이번 이야기는 그 어떤 결말이 기다린다 해도, 그래도 우리는 손을 잡고 걸어간다. 분명 나는(로렌스), 그녀(호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녀(호로)는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별이 확정된 미래라도 지금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가겠다고, 한번 잡은 손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그동안 상인의 길과 그녀라는 선택지에서 갈팡질팡했던 로렌스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녀를 선택합니다. 아무리 괴로운 미래가 기다린다고 해도 지금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치겠노라고, 그녀에겐 또다시 씁쓸한 미래가 기다릴지언정 지금을 소중히 하겠다고...

 

그런데 데바우 상회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또다시 이들의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레스코에서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그녀가 곁에서 같이 가게를 운영해줄 거라는 기대감에 이것이 성공한 인생이지 했던 로렌스를 시기하듯 찾아온 반란은 그를 사지로 내몰고 호로와 뜻하지 않는 이별을 강요합니다.라고 해도 언제나 기승전결인 이 작품에서 그리 심각한 건 없었습니다. 호로는 자신(호로)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언젠가 그랬던 슬프게 이별할 바엔 웃으며 지금 헤어지자고 했던 자신을 버리고 로렌스를 반려로 인정하면서 설사 이별이 확정된 미래라도 지금은 힘껏 그의 곁에서 살아가기로 합니다.

 

어떻게 보면 풋풋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별이 두려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 울면서 이 마음을 전하며 이별을 읊어야만 했던 슬픔, 그러나 이것을 뛰어넘어 결국 손을 잡고 걸어가기로 했을 때의 잔잔한 여운, 사실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상업계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요는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라도 지금은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언젠가 이별을 하고 남겨진다고 해도 지금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때가 찾아왔을 때 미련을 두지 않고 행복했지라며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거지요.

 

정작 본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별거 없습니다. 데바우 상회 내분으로 북방 지역이 전란에 휩싸일 위기에 빠지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로렌스와 호로는 각기 행동하며 동분서주하지만 녹록지가 않고 남편의 위기를 본 호로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고, 이교의 신중 하나인 토끼의 화신 힐데의 귀여움의 이면에 감춰진 중년 수염 아저씨의 괴리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렌스는 상인의 입장과 용병의 입장 그리고 호로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얽혀 양판소 판타지물이었다면 정신이 붕괴되어 최종 보스가 될 처지에 놓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재미? 그런 거 없어요. 그저 상인으로 살아가야 될 마음가짐의 표본 같은 작품이다 보니 솔직히 잘 읽히지가 않죠. 거기다 호로는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아 모든 걸 꿰뚫어 보면서 능글맞게 구는지라 귀여운 구석도 없고요. 뭐 후반부에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씌면서 조금은 귀여워졌지만요. 필자는 이 작품을 표현 하라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만나 시간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맺어지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사실 이것만 눈에 들어온지라 이 작품의 본질을 20%도 이해 못했지 싶군요. 하지만 크게 보면 이걸(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끼리의 맺어짐)로 귀결되어서 다른 건 어떻게 돼도 사실 상관은 없었습니다. 해피엔딩이면 만사 OK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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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환상의 그림갈 10 - 러브 송은 전해지지 않아,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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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식(GOSICK) 애니메이션 후반부에 보면 '코델리아'가 이런 대사를 합니다. '불꽃이여 타오르고 타 올라 그 아이의 미래를 비추어 다오' 이 대사는 필자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대사 중 하나인데요. 자신의 딸이 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때 자신은 불꽃에 사그라지며 했던 말입니다. 필자는 불꽃같은 인생이란 코델리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했군요. 이 작품에서도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스포 당해서 좌절하게 했던 바로 '메리'인데요.

 

파티 브레이커인 자신을 주워 거둬주며 미래로 나아가게 해줬던 하루히로를 바라보던 그녀는 어느새 그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결코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마음이 폐가 되지 않기를, 그로 인해 파티에 균열이 가지 않기를, 찌끄레기들로 모인 파티가 찌부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의 덕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의 덕분, 그가 사라지면 어디로 가야 될지 그것이 무서워 생사를 넘나드는 나날에서 연애는 사치라는 듯 이 마음을 가슴에 묻어둔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그를 돕고 싶었던 그녀...

 

기간 한정이라고는 해도 그의 연인을 자처하는 '세토라'를 의식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며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며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부분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녀(메리)가 하루히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냐면 궈렐라라는 고릴라 비스름한 무리에게 쫓기다 들어간 '제시랜드'라는 마을에서 그 마을을 통솔하고 있던 남자 '제시'에게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고, 이에 그 남자는 '뭐든지? 그것도?'라고 하자 메리는 '바란다면'라는 대사에서 하루히로를 얼마나 소중히 하는지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죠. 이때 하루히로는 제시에게 제압되어 얼굴이 뭉개지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메리가 하루히로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죠. 그럼에도 파티에 누가 될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럼으로 해서 사망 플래그를 완성 시켜버리고 플래그는 회수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던 시절 자신의 미래를 비추어주는 등불이 되어줬던 그에게 제대로 된 이별의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쥐어 짜낸 말 '나.. 당신이..'하는 대목에서는 칠칠치 못하게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마지막까지 어설프고 어설픈,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떠나는 그녀의 이 대사는 또 하나 잊지 못할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웃는 장면은 거의 없었던 거 같습니다. 도서 제목의 재는 잿빛의 재, 그에 어울린다는 듯 온통 회색빛 일색인 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라는 것처럼 줄곧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마나토와 모구조가 그렇게 떠나고 메리마저 떠난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사실 이런 판에 웃음 포인트가 있을 리 없죠. 이 작품을 읽고 있다 보면 우중충하기 짝이 없고 없던 우울증까지 생길 판입니다. 인생이 그렇게 꼬이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풀리지도 않는, 아무리 애써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비참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에서 웃고 있는 메리는 더욱 가슴을 죄어 왔습니다.

 

맺으며, 이번 에피소드는 메리 편이라서 그녀에게 맞춰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하루히로 시각에서 메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대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 거 보니 크게 언급이 되지 않는 듯한데 예전 쿠자크와 썸씽이 있는 거 아닐까 하는 헛다리 짚은 이후 이렇다 할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고 있는 듯한, 그저 등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료? 그보다 파티를 꾸려 가느라 정신을 딴 데 팔 겨를이 없다고도 해야겠죠. 그러해서 더욱 호감을 얻고 있는 거지만요. 사실 하루히로는 찌끄레기 같은 파티 버리고 좀 더 제대로 된 파티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테죠.

 

그건 그렇고, 섹드립이 조금 위험한 수준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메리는 하루히로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칠 뻔도 하였고, 시호루는 란타의 희롱이 애들 수준으로 느껴질 만큼 거의 겁탈 수준으로 희롱을 당하지 않나, 잿빛이라는 분위기에 맞춰 내용도 상당히 시리어스 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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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용생, 어서 와라 인생 2 - L Novel
나가시마 히로아키 지음, 이치마루 키스케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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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션트 드래곤이 용사 집단에게 토벌된 후 인간으로 환생해서 살아가는 이야기 제2탄입니다. 인간의 이름은 '드란' 전생에서 나쁜 짓을 일삼았던 못된 용이 아니라 마계에 쳐들어가서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곤 해도 인간을 위협하는 마족과 고위신들을 토벌하는 등 나름대로 인간들에게 유익한 드래곤이었건만 판타지 세계에서의 정석은 역시 용사가 드래곤을 처치하는 걸로 마무리된다는 것처럼 용사 일행이 잘 살고 있는 주인공 드란의 집에 쳐들어가서 냅다 목을 따버렸으니 주인공 입장에서는 기가 막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원채 주인공이 유약한 성격이다 보니 그런 용사들을 증오한다기보다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명계에서 유구한 잠에 들어야지 했는데 복선이 깔리면서 인간으로 환생해버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신이든 나쁜 신이든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얽힌 세상에서 내 뜻대로 살아가기란 무척이나 힘들죠. 용사들을 이용해 주인공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인간으로 계속 환생 시켜가며 에이션트 드래곤이라는 영혼을 아예 말살 시키려는 어떤 복선에 의해 의도치 않게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 드란, 드래곤일때의 기억과 영혼을 간직한 채 인간으로 환생하고 16살이 되었습니다.

 

변방 촌락의 평범한 농사꾼의 둘째로 태어나 장남에게만 유산이 돌아가는 판타지 세계의 철칙(?)에 따라 제 살길은 알아서 살아가야 되는 현실에서도 부모와 형과 동생과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어느 때 라미아라는 몬스터계 소녀가 그의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름은 '세리나', 일정한 나이가 차면 마을의 규율에 따라 이종족 남편을 찾아야 했던 그녀는 여행 중에 들린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고 드란은 그녀를 도와 인간계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면서 둘의 관계가 점차 발전하는, 이 과정이 좀 달달합니다. 주인공 드란은 전형적인 둔감계이긴한데 조금식 그녀를 의식하면서 처음엔 좋은 여동생 같은 포지션에서 차츰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장면을 표현하는 구절에서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했습니다.

 

방이 어두워서 이불이 때 탄듯한, 여튼 둘의 관계는 이런식입니다. 그냥 살살 녹아요. 물론 여기서 이들의 관계를 시기하거나 끼어드는 히로인도 있을 테지? 같은 진행도 있을 법하나 이 작품은 아직까진 그런 건 없습니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특성에 맞게 여러 히로인들이 나오지만 남자 주인공에 집착한다기보다 제 갈 길을 그냥 걸어가며 주인공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드란과 세리나의 달달함은 더욱 빛이 나는, 두 번째 히로인에 해당하는 '크리스티나(표지 제일 오른쪽)'도 이들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이들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눈꼴시런 연애질보다 담백한 복어탕처럼 진행되는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2권은 이런 달달함 외에 주인공을 인간으로 환생시킨 복선으로 추정되는 존재에 의해 엘프들이 사는 엔테숲에 마족이 쳐들어 오게 되고 주인공 드란과 세리나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이들(엘프)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움에 임하는 자못 비장함이 감돌긴 하지만 주인공이 고위 신들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굉장한(?) 먼치킨이다 보니 그리 심각한 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은 검은 장미의 정령 디아드라와 불장난도 저지르는 등 세리나로 하여금 가슴에 두 방망이질을 하게 해서 이게 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그러나 마족의 침공이라는 위기에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인간과 몬스터 라미아 소녀와의 금단과도 같은 사랑을 시기하듯 찾아오는 또 다른 위기...

 

그리고 '판타지 세계에서 주인공은 태어난 마을을 떠나 모험을 시작했습니다.'의 서막이라는 것처럼 여행을 시작하는 드란과 세리나, 또다시 마을과 숲에 위기가 찾아오지 않게 큼, 자신을 인간으로 환생시킨 장본인을 색출하기 위해,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먼 조상이 자신을 죽인 용사 계보가 아닐까 하는 복선(1)을 되짚기 위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던 그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운명은 자신을 죽인 용사처럼 용사의 길로 들어서게 할 것인가...라고 해도 주인공이 워낙 강하다 보니 대적할 적이 없다는 게 흠이군요. 이 작품도 주인공이 원하면 다 생기는 그런 계통이다 보니 적과 싸우다가도 생뚱맞게 듣도 보도 못한 스킬을 쓴다던지 '내가 힘을 개방하면 말이야' 같은 일이 벌어지니 그리 흥미진진한 장면이 없다는 게 좀 아쉬운 대목이었군요.

 

그래도 세리나를 점차 의식해가며 사랑스럽다는 말까지 하게 된 드란, 이젠 남편 따위 찾지 않아도 되라며 그의 곁에 꼭 붙어서 밤에 잘 땐 그를 뱀 몸통으로 칭칭 감는 등 얘가 아주 부뚜막 몇 개를 올라가는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헤벌쭉하게 된 그녀는 검은 장미 디아드라가 드란에게 기습 키스를 날렸을 때 울음을 터트리는 등 일러스트와 괴리감 생길 정도로 귀여운 구석이 철철 흘러넘칩니다. 맨날천날 드란에게서 용의 기운을 받다 보니(위험한 상상?) 보통 라미아와는 다른 힘을 보여주는 괴력녀로 거듭나면서 엔테숲에 쳐들어온 마족 고위층과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주인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히로인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그녀를 얼마나 띄워 주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1권에서는 그렇게 비중이 없더니만...

 

맺으며, 사실 리뷰는 이렇게 썼지만 상당 부분이 주인공 독백과 과거를 회상하고 그때의 잔재를 만나는 등 고대(에이션트) 드래곤의 일대기 같은 면도 많습니다. 이거 읽는 우리(독자)가 꼭 알아야 돼?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죠. 거기에 적과 싸우며 완급 조절을 하지 않아 적으로 나오는 마족 적장은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이건만 주인공 손에 걸리니 썩은 과일과도 같고, 잡아 찌부러 트리듯 해버리는 통에 흥미진진함은 눈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세리나와의 달달함은 좋았군요. 거기에 이들의 관계를 시기하지 않고 이들의 곁에 있고 싶어 목숨을 마다하지 않으려는 크리스티나의 눈물겨운 모습은 애잔하게 했습니다. 


 

  1. 1, 주인공 드란이 용일때 용사에게 토벌된후 바로 인간으로 환생한게 아닌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 환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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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15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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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그동안 걸핏하면 인용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같이 갈 수 없다.' 이 구절은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가 만나 서로 사랑하지만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관계를 필자가 멋대로 빗댄 것인데요. 이 작품에서는 호로와 로렌스가 그러합니다. 이교의 신(神)으로써 영원을 살아가는 늑대의 화신인 현랑 호로와 인간으로써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로렌스가 만나 여행을 하고 티격태격하고 위기를 맞아하고 사선을 넘나드는 사이에 서로가 호감을 품고 미래를 설계하지만 결코 같은 시간대에 살 수 없다는, 그럼에도 같은 시간대에 살았다는 증거는 여기에 있다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은 애잔하기 그지없습니다.

 

호로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 요이츠를 목전에 두고 도착한 광산 도시 '레스코'에서 자신의 동료의 이름을 딴 '뮤리 용병대'를 만난 호로는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로렌스에게 있어선 연적이 될 동료를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이빨과 발톱이라는 용기를 가진 자부터 죽어간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처럼 운명은 호로를 외면하였습니다. 그 어디에도 동료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없을 때 멸망해버린 고향, 뿔뿔히 흩어진 동료, 세상에 혼자 남겨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로렌스라는 온기에 기대에 여기까지 왔건만, 동료의 유품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그녀가 상당히 애처롭게 다가옵니다.

 

동료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고향이 지척이라는 두근거림에 의지해 여기까지 왔던 그녀, 또다시 세상에 혼자 남겨진 외로움과 슬픔에 망가지기 일보 직전까지 갑니다. 하지만 로렌스의 극진한 보살핌에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면서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 곁에 있는 건 누구인지 새삼 알아가는 대목은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로렌스가 거기에 있는지 확인하는 그녀, 마치 신기루처럼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이 거짓이 아닐까, 자신이 잠들어 버렸을 때 시간이 흘러 그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 그녀는 보리밭 근처에 심어진 나무가 거목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앉아서 지켜본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호로에게 있어서 로렌스는 거목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그야말로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이겠죠.

 

이 모든 과정을 그리는 장면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시적인 구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로렌스가 호로를 생각하며 욾조리는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자신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라서 시간이 없다지만 정작 시간이 없는 건 그녀라고, 무수히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신은 그저 그녀의 기억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렇기에 예전 18권이 언급되기 전의 광고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수명이 다해 죽어버린 로렌스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그와 다시 여행을 하고 싶다.(비슷할 겁니다.)' 이번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이 구절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서로가 다르게 흐르는 시간일지라도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같이 손잡고 미래를 설계하는 장면은 훈훈하다기 보다 애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레스코에서 자신의 가게를 차리려는 로렌스, 그의 곁에서 같이 가게를 도우며 '여긴 내 방, 아이의 이름을 지어야지?' 라는 등 마치 모래성처럼 언제 부서질지 모를 불안한 미래는 읽는 내내 답답함을 자아냈군요. 동료가 없다는 슬픔을 이겨내고 그가 옆에 있기에 외롭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호로, 하지만 언제 이런 애틋한 사랑을 해봤어야 알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입이 샐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나저나 이번 15권 표지는 꽤 잘 나왔지 않나 합니다. 그동안 본편하곤 하등 관계없는 이미지여서 괴리감이 상당했는데 이번 표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호로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달까요. 100년은 동굴에 틀어박힐 자신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런 그녀를 행상인 길을 포기하면서까지 붙잡으려 노력하는 로렌스는 외줄 타기처럼 아슬하기 그지없습니다. 망가져가는 그녀를 이끌어주고 그녀의 기분을 망치는 함정을 밟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에서 과연 연애란 무엇일까 하는 고찰을 되새기게도 합니다. 그것은 신뢰와 끝없는 희생이 아닐까도 싶었군요.

 

맺으며, 물론 이런 가슴 아픈 연애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고 콜을 떠나보내는 장면 또한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이교의 신을 믿는 고향을 교회의 침략에서 구하기 위해 교회의 요직에 앉아 고향을 보살필 목적으로 신학교에 들어갔건만 사기를 당해 학교에서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나왔던 콜을 주워 극진히도 보살폈던 호로였기에, 큰 뜻을 품고 있는 콜을 언제까지고 품고 있을 순 없어 놓아주는, 그 얼굴은 마치 수많은 사람을 배웅하고 또 배웅하는 데에 이력이 난 자의 얼굴이라는 로렌스의 평가에서 머지않아 로렌스와 호로의 관계도 이런 수순으로 헤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에서 초반부터 엄청 먹먹해지기도 했군요.

 

그 외에 레스코에서 일어나는 데바우 상회의 꿍꿍이라든지 뮤리 용병대와의 일화라든지 구구절절한 이야기도 많지만 생략했습니다. 상업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위기를 맞이하다가도 호로의 지혜와 로렌스의 쪼랩 배짱으로 어떻게든 되는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작품이기에 크게 언급할 건 없고요. 다만 후반부 떠나갔던 콜의 물품을 들고 온 어떤 존재에 의해 또다시 이들의 관계를 시기하듯 찾아오는 위기는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다만 이미 완결이 났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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