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의 노기사 2 - J Novel Next
시엔 Bis 지음, 사사이 잇코 그림, 이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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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드 로엔', 나이 58세, 중세 시대를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 58세란 적잖은 나이인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쉬는 것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죽을 자리를 찾아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기사로써 소임을 다하고자 청춘을 받쳐 모셔왔던 테루시아 가(家)를 떠나 유유자적 여행을 하던 중 그의 성품과 검 실력에 매료되어 어느새 동료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하게 되었죠. 못된 영주를 혼내주고, 사람들을 도와주며 여행하길 어언 1년여, 그런 그에게 당도한 슬픈 소식, 젊었을 적엔 사모하였기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고, 늙어서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전해진 그녀의 부고는 그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 하지만 그녀의 아들이 장성하여 한 나라의 왕으로 추대되는 것을 지켜본 그에겐 미련은 없어 보였습니다.

 

젊은 여기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발드에게 또 어떤 여행길로 인도할까. 발드는 고든과 줄챠가와 여행을 하던 중 어느 숲속에서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던 여기사 구해주게 됩니다. 모시는 왕녀에게 자신의 강함을 선물하고 싶었던 그녀는 무리하면서까지 머나먼 변방으로 여행길에 올랐고 동행하던 다른 기사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려던 차에 어떻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는 모면하였으나,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렸군요. 여차여차 그녀를 들어 옮기는 발드와 그의 일행들, 깨어난 그녀는 이들에게 마수를 잡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합니다. 내년 경무회(무술 대회 같은 거)에 나가려면 실적이 필요하고 마수를 쓰러트리면 인정받는다는 그녀의 말에 남존여비인 이 시대에 그녀의 말과 행동은 괴짜로 비칠 수밖에 없었어요.

 

유유자적 여행을 하고 싶었건만 가는 곳마다 어찌 된 일인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여기사를 구해줬더니 이번엔 그녀를 노리는 일단의 기사들과 마주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야만 했고, 그녀를 알면 알수록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빠져 가요. 이것도 인연인가 싶어 발드와 그의 일행은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의 나라를 향해 여행길에 오릅니다. 이 작품은 이런 느낌이 강해요. 길을 가다 인연이 닿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사정에 얽혀 사건으로 이어지고 발드와 그의 일행은 해결을 해가죠. 그 과정에서 나쁜 놈들을 응징하고 백성들을 구해주며 명성을 쌓아가요. 그리고 하나의 인연이 끝나면 또 여행길에 오르고 다시 새로운 인연과 만납니다. 이 과정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자극적이지 않게 정통 판타지를 지향하며 파스텔 분위기를 자아 가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먹방,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먹방이 되겠습니다. 누구는 딱딱한 빵에 말라비틀어진 육포를 씹고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는 반면에 발드는 들판에서 강에서 식자재를 구하는 솜씨가 대단히 좋습니다. 미지의 음식을 두고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이것은 무슨 맛일까 하는 두근거림을 앞세워 한 입 베어 물고 천상의 맛을 표현하죠. 세상사 근심을 다 털어내는 맛, 늘그막 그에게 남은 건 음식 밖에 없다는 것마냥 이야기의 반은 음식으로 소화합니다. 보통 먹방은 처음은 신선해도 비슷한 레퍼토리가 이어지면 지루하기 마련이나 이 작품의 작가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매번 새로운 식자재가 나오고, 맛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죠. 현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공상의 식자재라서 더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여기사를 맞아들여 그녀에게 검을 가르치기 위해 한 곳에서 머무는 발드와 그의 일행, 여기서는 상당히 서정적인 장면들이 흐릅니다. 남자들 3명.. 아니 이후 발드가 양자로 맞아들이는 '커즈'까지 4명이 있는 곳에서 여자 하나라는 분위기가 어색해질 만도 하겠건만, 같이 수련을 하고, 같이 폭포에서 알몸으로 허물없이 수영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해와 요리를 하고, 다 같이 모여 숟가락을 담그는 캠핑 같은 분위기, 며칠이라는 시간은 분명 짧다고 할 수 있으나 지금의 상황은 추억이 될만한 것들이었기에 이후 그 장소에서의 추억을 곱씹는 듯한 여기사의 얼굴은 아련함을 넘어 먹먹하게만 하였군요. 귀족으로써, 기사로써 본분을 위해, 그리고 모시는 왕녀에게 강함을 선물하기 위해 19살이라는 나이에 머나먼 길을 떠나야만 했던 그녀에게 그 장소는 모든 걸 내던지고 모두와 마음 놓고 지낼 수 있었던 장소, 나도 분명 거기에 있었다는 단 하나의 추억... 

 

여기사의 여행은 아직 계속됩니다.

 

맺으며, 위의 리뷰는 3부의 이야기고, 4부의 이야기도 있지만 어려움에 처한 아인(수인)과 동료 고든을 도와준다는 이야기인데 일부로 리뷰에선 뺐습니다. 사실 3부보다 4부가 더 흥미진진합니다만. 아무튼 여느 열혈 라노벨과는 다르게 무리난제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권선징악형에 가깝긴 한데 나이 든 영감에게 뛰라고 하는 건 가혹하다는 걸 아는지 작가는 길을 떠난 노기사의 따뜻한 성품과 검 실력에 매료되어 동료들이 모여들고, 들리는 마을에서는 그의 백성을 위하는 성품을 칭송합니다. 젊었을 적 백성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그의 다짐은 늙어서도 변함이 없었고, 힘들고 괴로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잊고 성을 탈환하는 그의 담력은 늙었다고 해서 쇠하지 않습니다. 영감이라도 할 때는 한다는 이런 것들이 이 작품의 매력이죠.

다만 발드의 연(聯) 하고는 인연이 없어서 언제나 엇갈리기만 하는 것에서는 마음을 짠하게 하죠. 어릴 적부터 보필해왔던 테루시아 가(家)의 영애 '아이드라'를 다른 영지로 시집을 보내야 했을 때, 그녀가 갓난 아이를 안고 1년여 만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안전을 위해 떠나야만 했을 때(연聯부터 여기까지 1권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먹먹하게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번 아이드라의 아들 쥴란의 이야기에선 통쾌함도 있었습니다. 아이드라를 괴롭혔고 발드로 하여금 길을 떠나게 했던 이웃 영주의 최후는 후련함을 선사하죠. 그리고 이번엔 여기사를 만나 다시 옛 감정을 되살리는 발드에게서 애틋함이 엿보였군요. 그래서 3권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설마 3권도 또 2년 뒤에 나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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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1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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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고 보니 돼지(진짜 돼지 말고)이고 주변에서의 나의 평판은 최악으로 치달아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더욱이 그게 좋아하는 여자와 맺어지기 위해 일부러 평판 나쁘게 만들어 놨는데 결과적으로 여자도 빼앗기고 집안에서도 쫓겨난다면? 이 작품은 전생물이긴 한데 이세계가 아닌 애니메이션 속으로의 전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슈야 마리오넷]이라는 애니메이션, 그 속에서의 서브 캐릭터 '데닝'공작가(家)의 3남으로 태어나 전대미문이라 할 정도로 정령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이는 곧 대마법사라는 의미이기도 함)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차기 공작이 될 거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니는 엄친아에 인싸였는데요. 하지만 그의 나이 6살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과 마주합니다.

 

6살에 숲에서 어떤 '경위(이게 이 작품의 포인트)'로 샬롯이라는 히로인을 만나버린 그는 모든 인생을 그녀를 위해 쓰겠다고 마음을 먹어요. 하지만 평민인 그녀가 3남이라고 해도 공작가의 자식인 자신(데닝)과 이어지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 그렇담 6살짜리 꼬마 소년에게 남은 방법은 집안에서 쫓겨나서 평민이 되는 것, 이러면 그녀와 맺어질 수 있겠지? 퍽이나, 얄팍한 생각으로 일을 저질러 주시는 꼬마 소년은 10년 후 돼지 공작이라는 이명과 세계적으로 악동이라고 하면 귀여운 택이고 모두에게 악(惡)의 축이 되어 있었습니다. 온갖 저지래는 다 저질러 주시는데 소원대로 집안은 그를 내처 버리죠. 자, 이제 그녀와 맺어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애니메이션 [슈야 마리오넷]의 진짜 주인공 '슈야'에게 샬롯을 빼앗기는 미래 밖에 없었는데요. 이쯤 현실의 [슈야 마리오넷]은 결말이 난 상태고, 열혈 마니아인지는 모르겠는데 애니메이션을 보던 현실의 주인공(이름 안 나옴, 이하 주인공)은 샬롯을 진짜 주인공(슈야)에게 빼앗기기 1년 전, 위의 돼지 공작으로 전생을 해버려요. 그러니까 현실의 주인공이 애니메이션 속 돼지 공작이 된다는 것이죠. 주인공 입장에서는 뭐 이런 멍멍이 같은 시추에이션이 있나 싶을 테죠. 이제 전대 돼지 공작이 싸질러 놓은 똥을 그가 치워야만 합니다. 사실 치우지 않아도 되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샬롯을 진짜 주인공(슈야)에게서 지키고 그녀와 맺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보다 애니메이션 속으로 전생한 것과 갑자기 돼지가 되었는데 혼란은? 다 개나 줘 버리죠.

 

아무튼 전대 돼지가 집안에서 쫓겨나기 위해 온갖 악한 짓을 다 저질러 놓았고, 몸도 출하 직전 돼지같이 만들어 놨으니 시작 난이도가 장난 아닙니다. 악행을 저질러 평민이 되는 건 포기하고 선행을 베풀어 그녀(샬롯)의 마음을 잡겠다는 그, 진짜 주인공(슈야)에게서 샬롯을 지키고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는 실행 불가능 미션을 부여받아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일단 뛰자. 살부터 빼야 뭘 해도 할 거 같단 말이지. 대답 대신 꿀꿀 거리기도 하고, 운동하다가 관절염 걸릴 거 같고, 유배 당하듯이 마법 학원에 입학은 했는데 주변 모두가 돼지라며 놀린다. 친구는 당연히 없음, 삥 뜯는다는 소문이 돌고, 마음에 안 들면 줘팬다는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지만 그런 경우가 진짜로 있어서 반박을 못하는 어이없는 학원 라이프.

 

대체 전대 돼지는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인가. 그래도 결정된 미래는 거부한다. 애니메이션 [슈야 마리오넷]에서 주인공(데닝)의 악한 짓 때문에 그와 멀어졌던 샬롯,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진짜 주인공(슈야), 그리고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이런 결말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샬롯을 지키고 맺어지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다가 이 작품의 골자입니다. 참고로 진짜 주인공 슈야는 그리 나쁜 놈이 아닙니다. 천연 기질에 누구나 다 호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여느 작품들에 나오는 주인공 포지션이죠. 주인공(데닝)은 이 진짜 주인공과 경쟁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의 악평을 없애고 다이어트를 통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기 시작하죠.

 

자, 주인공의 노력 덕분인지 슬슬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성은 물론 친구하나 없던 그에게 슬슬 친구도 생기고 이성도 생기고 있는 겁니다. 이 부분은 이세계로 가면 돼지든 훈남이든 반드시 붙는 히로인이라는 클리셰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의 경우는 주인공이 눈물 쏘옥 빠지게 노력을 통해서 얻어 가는 것인지라 개연성은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전에 샬롯은 주인공을 좋아하는 히로인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텐데, 시작은 다 그렇듯 호감도 0(제로)이죠. 게다가 시종이면서 주인인 그(주인공 데닝)에게 대놓고 돼지라는 등 독설도 서슴지 않아요. 시종 일 보다 월급에 관심이 더 많고, 일이라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요리는 못해, 매사 사고나 치는 덜렁이에 약 만든답시고 독을 만들어 주인에게 먹으라고 내밀죠. 물론 이런 점은 히로인 특유의 개그 포인트일 뿐 심각한 건 아닙니다.

 

이미지 개선을 해서 샬롯과 맺어진다. 아무것도 못해서 빼앗기기만 했던 미래는 내 쪽에서 거부한다. 방 닦는 걸레는 빨아도 걸레인가 행주가 될 것인가 나아가 수건이 될 것인가. 한번 걸레가 되어버린 수건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란 불가능합니다. 그걸 주인공 데닝은 하려 하죠. 그리고 그 전초전이 시작됩니다. 이웃나라에서 학원으로 숨어든 첩자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진짜 실력, 전설은 지금부터라는 듯 대지에 우뚝 서서 금화 500개나 걸린 실력자(첩자)를 맞이해 그가 보여주는 분투, 모두가 돼지라 부르며 괄시하고 약혼자까지 진짜 주인공(슈야)에게로 가버린 그의 뼈아픈 과거를 곱씹듯, 지금 돼지라는 고치를 뚫고 그는 나비가 되려 합니다.

 

맺으며, 오글오글 거립니다. 중2병은 아닌데 누군가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힘껏 부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주제를 놓고 쓴다면 이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군요. 중반을 넘어서서 주인공이 샬롯을 바라보는 심정과 첩자에게서 전(前) 약혼자를 구해내는 장면은 정말 멋지면서 오글 거립니다. 남자로 태어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대사 순위 10위권에 몇 개나 들어갈만한 것들이 나와요. 아무튼 돼지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든지 히로인의 타산적인 모습이라든지 흥미요소가 꽤 많았습니다. 나아가 1년 후인 지 몇 년 후인지 이웃나라와의 전쟁이라는 복선도 깔아 두면서 샬롯과의 인연은 그리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흥미를 더욱 끌고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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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6 - J Novel Next
후지타카 츠요시 지음, 나루세 치사토 그림, 권미량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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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이상한 이세계, 다른 세계에서 침공해오는 로봇 등을 상대로 이세계를 지키기 위해 현자가 있고, 세계를 지키기 위한 현자들이 정작 지켜야 될 백성들을 괴롭히고, 아무리 천하무적이라도 죽을 땐 죽는 현자들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세계에서 애들을 왕창 불러다 싸우게 해서 한 놈만 키운다며 방임주의로 해놨더니 뜻대로 지들끼리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다가 자멸해버린 끝에 뭐 하러 다른 세계에서 애들을 불러 가지곤 본전도 못 찾나 하는 일들이 벌어졌었죠. 게다가 현자 보충하려 했더니 되려 그놈들에게 죽임 당하는 본말 전도란 건 이런 거다라며 주인공에 의해 현자들이 토벌되는 일이 벌어지는 등 난장판이 되어 갑니다.

 

주인공 요기리와 히로인 토모치카 그리고 토모치카 조상님 모코모코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현자의 돌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는데요. 이번엔 바다 건너 동양의 어느 섬에 현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 일행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현자의 돌은 살아 있는 현자의 몸속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바다 하면 해적이고 약속된 상황이라는 건 이런 거라는 것처럼 해적들이 등장하고 거기에 히로인 '토모치카'를 노리는 마도사까지 등장하면서 상황은 많이 시리어스해져 가죠. 하지만 주인공 '요기리'가 있는 한 무엇이 오든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작품이 나무야 미안해라는 소리를 듣는 원인이기도 해서 씁쓸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를 집중 시키려 하죠. 첫 번째로 이세계는 용사들의 집합소라는 것입니다. 전생을 통해서, 전이를 통해서, 여신에게 부름받고 기타 등등, 몇 권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세계로 전이된 마법소녀도 있었죠. 그리고 이번엔 게임을 통해서도 들어오는데요. 이놈은 용사가 아니지만 상당히 비중 높게 활약을 하죠. 용사들을 포함해서 이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활약을 하고 그러다 주인공에게 나가리 되기도 하고, 때론 마왕과 싸우다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일도 벌어져요. 이 과정에서 몰입도를 높이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신경을 건드리는 점이 있다는 겁니다.

 

신경을 건드린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나만의 정의에 심취해서 내가 주인공이고 내 마음대로 해도 누가 뭐라 할 것이냐 하는 건데요. 이번에 게임을 통해 이세계로 넘어온 '요스케'의 게임 감각으로 이세계 사람들을 대하는 장면들에선 사람의 인식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두 번째 초점이자 또 다른 특징이 할 수 있는, 이 작품엔 용서와 기대가 없습니다. 서브 캐릭터로 활약해주겠지, 얘는 살아서 주인공과 엮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여지없이 박살 내버립니다. 이건 용사라도 예외가 없어요. 우리가 여느 판타지에서 보는 용사들의 활약은 사실 허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심어준다고 할까요. 히로인들과 노닥거리고 마왕을 무찔러 금의환향한다는 걸 비웃듯 이 작품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죠.

 

아무튼 주인공의 '죽어' 한마디 때문에 이 작품이 나무야 미안해로 귀결된다고도 하시는데, 사실 주인공의 죽어 한마디 때문에 악당들이 참회도 없이 픽픽 죽는 것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허무하게 하는 건 사실입니다. 자신만의 정의에 심취해 날뛰거나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다 기고만장해져서 주인공이나 히로인에게 이(빨)를 들이밀었다가 단역 엑스트라 저리 가라 할 만큼 순식간에 리타이어 되는 장면은 좋게 말해서 흥미롭진 않죠.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 흥미 요소를 찾는 건 어떨까 싶은 게 이 작품의 매력인데요. 가령 등장인물들의 주인공이나 타인에게 죽기 직전까지의 행위, 이번에 토모치카를 노리는 마도사가 그녀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한다는 배덕감(라기 보다 변태지만)이라든지, 이 등장인물은 크게 될 인물이고 주인공과는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 시키지 않을까 했던 인물들의 허무한 죽음에서 오는 멍해지는 감각, 속된 말로 뒷통수 맞는 감각은 이 작품만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맺으며, 이번엔 히로인 토모치카의 정체에 대한 복선이 투하되면서 한층 더 흥미로웠군요. 주인공 요기리가 왜 토모치카를 지키려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는 에피소드랄까요. 그리고 예전에 필자가 언급했던 이세계는 만들어진 세계가 아닐까 하는 부분은 이번에 작가가 어물쩍 넘어갔지만 현실미를 띄게 되었고요. 아무튼 필자는 흥미가 동하지 않거나 재미없는 작품은 신랄하게 까는 편인데 어째서인지 이 작품은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있군요. 다른 작품보다 읽는데 시간이 절반 밖에 들지 않을 정도인데 어째서 나무야 미안해 소리를 듣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뭐 사람의 취향이야 제각각이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치부할 사항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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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의 주인님 3 - S Novel
히구레 민토 지음, 팀에스비 옮김, 나포 그림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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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질서가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 제3탄입니다. 아직 사회라는 개념의 이해가 부족한 어린 학생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1천 명이나 이세계로 전이되었습니다. 그래도 문명인답게 어떻게든 질서를 잡고 살아가려 했지만 힘의 논리에 입각해 카스트가 정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요. 카스트는 곧 힘의 질서가 되며, 제일 아래는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건 당연한 것이라는 양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곳. 그러던 어느 날 힘이 있는 자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봉다리 핫바지로 지내던 어중간한 놈들에 의해 쿠데타가 이어지고 질서는 붕괴해버립니다. 카스트 제일 아래에 있던 주인공 '마지마 타카히로'는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죠. 가만히 있는 놈을 두들겨 패는 것도 모자라 죽이려 하니 여기가 지옥이요 기절했다 눈을 뜨니 슬라임이 나를 잡아먹고 있네.

 

아라크네 '거베라'와의 사투는 주인공 타카히로와 릴리 그리고 목각인형 로즈를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날 산장에서 모든 걸 잃고 허무만이 남아 살아도 산 게 아니었던 '카토 마나'의 개입으로 어떻게든 사태는 진정이 되었군요. 그리고 거베라는 그녀(카토)의 사실적인 묘사 한방에 나가떨어지고 실의에 빠진 채(필자의 각색이 조금 들었음)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주인공의 권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이 몬스터라는 든든한 아군을 맞이한 타카히로 일행은 다시 인간들 군대가 보였다는 북쪽으로 여정을 시작하는데요. 거베라와 더불어 여우 몬스터와 씨앗 몬스터도 권속으로 들이는 등 조금식이지만 전력을 늘여가게 되죠. 그리고 인간과 엘프로 이뤄진 기사단에 콜로니 붕괴 때 간신히 살아남은 학생들과 만나고, 그들과 합류해 이세계인들의 요새로 향하는데요.

 

여기서부터 환장 파티가 시작됩니다. 콜로니 붕괴 때 어중이떠중이만 살아남았고, 그럴 그릇도 되지 않는 학생들을 용사라 부추겨 마물을 같이 퇴치하자는 이세계 사람들, 이에 학생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동조하기 시작하고요. 콜로니에서 서로 죽이는 아포칼립스를 연출했던 이들이, 그릇도 되지 않는 주제에 좋다고 떠드는 모습에 기가 차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주인공은 그런 놈들에게 몰매 맞고 죽을뻔하였죠. 주인공 타카히로는 용사가 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인간 불신에 빠져 권속들과 조용히 살아가기만 바랄 뿐이죠. 일단 이세계와 여타 정보를 얻기 위해 요새에 머물지만, 처음부터 그랬는데 나중이라고 달라질까, 어린 엘프 소녀를 겁탈하려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요새의 공기는 불온하게 퍼져 갑니다.

 

 

모든 인간들은 믿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기로 했던 주인공 타카히로, 아라크네 '거베라'와의 일전에서 절체절명의 순간 거베라의 앞을 가로막으며 싸움의 향방을 갈랐던 '카토 마나'의 존재로 인해 주인공이 안고 있었던 신념이 조금식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는 것에서 믿어볼까?로 조금은 마음을 열었지만, 마치 유일 신(神)을 믿는 중세 시대 종교처럼 마물은 인간의 적이라는 믿어 의심치 않는 이세계인들에게 주인공은 그들의 적이나 다름없었어요. 왜냐, 마물을 권속으로 부리고 있으니까요. 정령을 부리고 있는 엘프들조차 마물 편이라며 반역자라고 몰아붙이는 현실에서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었죠. 이렇게 극단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세계인들도 무턱대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마냥 마물과의 전투는 날로 격화일로였는데요.

 

그렇다면 주인공에게 남은 길은 무얼까. 그는 카토 덕분에 인간 불신에서 조금 벗어나기 시작했죠. 콜로니 붕괴 때 살아남은 친구를 만나면서 주인공은 인간들과 조금식 더 어울려갑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권속인 릴리는 주인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품을까. 언젠가 우리와 헤어지고 인간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릴리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그에게 전합니다. 인간들과 떨어져 모든 게 부족한 숲속에서 우리와 생활할 것인가, 다는 못 믿겠지만 그래도 주인공을 위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인간세계도 나쁘지 않으니 이대로 인간들 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여기서 주인공을 위하는 릴리의 내면을 비추는 장면들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무직전생'이라는 작품도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충실히 비추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 않을까 싶군요. 필자가 말주변이 없어서 표현할 길이 없는데 애달픈 게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명, 진히로인(필자 주관적) '카토 마나'가 있습니다. 콜로니가 붕괴되고 어떻게 빠져나와 산장에 몸을 숨겼지만 뒤따라온 남학생들에게 몹쓸 짓을 당해야만 했죠. 사설이지만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의 심리를 카토를 통해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어요(비하 아닙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을 봤다 하면 실신해버릴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절망에 먹혀 마음을 닫아버린 그녀, 오직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에게만 마음을 열었지만 그것도 곧 끝이라는 그녀, 카토는 목각인형 마물 '로즈'와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거베라와의 싸움에서 둘은 마음을 열었죠. 로즈가 주인인 타카히로를 바라보는 마음을 알아버린 카토는 진심으로 그녀(로즈)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로즈를 응원하면서 정작 자신의 행복은 잡지 않는 카토, 모든 걸 불태워 버리고 만지면 바스러질 거 같은 그녀의 내면들을 비추는 대목에선 정말 먹먹해지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군요.

 

세 가지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무지몽매하고, 자기만 알고,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학생들을 용사로 부추겨 마물과 싸우게 하려는 이세계인들, 주인공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릴리의 애틋한 마음, 그리고 카토 마나와 로즈의 애잔한 관계, 특히 세 번째 카토 마나와 로즈의 에피소드는 필자가 적극 추천하는 구간입니다. 카토 마나의 내면과 심리를 정말 리얼리티 있게 표현해놨어요. 그날 산장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마음이 망가지다 못해 그대로 사라져버릴 거 같은 심리 묘사는 릴리 에피소드와 더불어 혀를 내두르게 하죠. 오직 자신을 구원해준 단 한 사람 주인공을 향한 연심만으로 움직이고 그것이 없어졌을 때 그녀에게 있어서 남는 건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인 물음은 라노벨에서 다룰만한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였군요.

 

맺으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주변을 깎아깎아내리고 주인공을 치켜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통 나쁜 놈들 일색인 세상에서 상처받은 주인공이 마음의 문을 닫고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히로인과 만나고 자기를 따라주는 사람(여기선 권속)들과 맺어지는 것, 흔한 클리셰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필력으로 모든 걸 말해줍니다. 필자의 저주스러운 필력이 이럴 때 통탄스러운데, 릴리와 카토와 로즈가 보여주는 심리와 내면은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했습니다. 사실 몬스터와 인간이 맺어지는 건 어떻게 보면 혐오스러운 점도 있는데요. 하지만 작가는 인종차별은 좋지 않다는 것마냥 인간의 마음으로 접근해서 그들도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역설하는 게 아닐까 했군요. 점수를 주자면 일단 3권 기준으로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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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15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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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땐 좋은 추억이었지, 그땐 힘들었지를 회상할 수 있는 것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은 15권입니다. 던전에 처음 내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죽을뻔하고, 개의 귀를 가진 수인 모험가에게 토마토라고 신랄한 조소를 들어만 했고, 오늘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늘 목숨을 걸어야 했고, 망해버린 교회 지하에서 살아도, 그래도 밝은 얼굴을 하며 내일은 좋은 날이 찾아오겠지, 궁상맞고 상처뿐인 용기를 끌어안으며 묵묵히 걸은 끝에 소년이 얻은 건 무엇일까. 다시금 모험을 떠나는 벨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만난 엘프 류와 과거의 망령, 벨에게 있어서 일찍이 없었던 강력한 몬스터와의 전투는 벨과 가련한 엘프를 사지로 몰아넣었고 그곳에서 그와 엘프는 절망을 맛봐야만 했죠.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건만 벨을 기다리는 건...

 

이번 에피소드는 휴식과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소년과 여신이 얻은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37계층에서 그만큼 굴렸는데 바로 또 사지로 몰아넣지는 않겠죠. 이때까지도 큰 모험이 있으면 다음 에피소드는 휴식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렇다 할 큰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초심으로 돌아가 등장인물들이 미궁 도시 오라리오에 오기 전의 상황과 오고 나서 부닥친 상황을 덤덤하게 그리고 있어요. 영웅을 선망하던 벨의 경우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에 심취하여 미궁 도시에 오게 되었다는 건 1권에서도 다뤘지만 오고 나서 헤스티아에게 주워지기 전 무슨 일을 당한지는 알려지지 않았더랬는데요. 모험가를 꿈꾸고 도시에 입성을 하였지만 촌뜨기를 좋다 하고 받아주는 파밀리아는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사기에 가깝게 돈을 뜯기기는 등, 사람 의심할 줄 모르는 시골 꼬맹이가 눈뜨고 코 베이고 꿈이 부서져가는 상황을 꽤나 리얼하게 그려 갑니다.

 

헤스티아도 천계에서 내려와 절친 헤파이스토스에게 빌붙었다가 쫓겨난 후 망해버린 교회 지하에 보금자리를 튼 일은 유명하죠. 이때부터 신이라는 작자가 알바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냥 할 일 없으면 다시 천계로 돌아갈 것이지 괜히 파밀리아를 만든다고 앙숙인 로키에게 큰 소리를 처가지곤 지나가는 모험가들에게 가입 권유했더니 돌아오는 건 무시와 모멸뿐, 집은 다 쓰러져가고 자식(단원)은 한 명도 없고, 사람(신이지만)은 궁하면 통하고, 궁지에 몰리면 길을 찾는다지만 헤스티아에게 길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3개월이나 빌붙어서 방종만 해댄 그녀에게 벌을 내리는 게 아닐까 싶은데 신(神)인 그녀를 누가 벌을 내릴까도 싶지만 그녀 또한 궁상맞은 나날을 보내게 돼요. 그리고 그날 운명의 만남이...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구원받아야 될 두 명의 인물 중 한 명인 릴리가 숙원을 이룹니다. 릴리는 고생과 고통과 발버둥이라는 단어와 무척이나 어울리죠.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벨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2권인가 3권인가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자세히 언급이 되어 있는데요. 이번에도 거기에 나왔던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세상이 상냥하지는 않더라도 내게서 모든 걸 빼앗고 고통을 준다면 과연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주변부터가 빼앗는데만 급급한 것에서 어린 나이에 세상의 부조리를 느껴가야만 하는 부분은 참 사람을 음울하게만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함정에 빠트리면서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한 꿈을 잃지 않는, 발버둥 치는 모습은 애잔하게도 합니다.

 

릴리가 [소마 파밀리아]를 떠났을 때, 비로소 구원받은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레벨 1이었고, 벨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에게 주워졌다곤 해도, 거기에 안주할 그녀가 아니었죠.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는데 [소마 파밀리아]에서 나오고 헤스티아에게 컨버전 되었을 때 폭렙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한 독자들이 더러 있었는데 실상은 참담함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작가 후기에 보니 작가는 그녀를 키워줄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재능이 없는,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이어도 발버둥 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그동안 보여왔던 그녀의 아이덴티티를 작가는 유지하고 싶었나 본데 결국은 담당자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그래서 그런지 작가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겠다는 양 그녀를 기고만장하게 그려대는 통에 분위기가 상당히 유쾌하게 흘러갑니다.

 

벨의 어드바이저 에이나, 벨프, 류, 하루히메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류'가 벨을 대하는 감정이라 하겠군요. 오지 말라는데도 어거지로 따라와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신을 위해 싸워주고, 37계층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준 그에게 어떤 감정이 들어야 올바른 흐름일까라고 묻듯이 이야기는 능글맞게 흘러갑니다. 위에서 가장 구원받아야 될 인물이 두 명 있다고 했는데 그중 하나는 릴리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류라 하겠는데요. 참고로 이건(릴리와 류) 필자의 주관이니 태클은 사양합니다. 아무튼 엘프 이외에 모든 종족을 배척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마을에서 뛰쳐나와 미궁 도시 오라리오에 왔지만 정작 타종족을 배척하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고립되어 가는 류의 정서불안을 참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히메, 순수함은 때론 폭탄이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며 종횡무진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유쾌합니다. 밤에 아무렇지 않게 벨의 방에 찾아간다던지, 벨프를 천하의 못쓸 놈으로 만들어 버린다던지, 그녀의 성장도 꽤나 눈부신데요. 플로어 전체가 온통 불에 잠긴 계층에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결사는 파티가 궤멸되지 않은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할 정도로 그녀의 용기는 대단했었습니다. 벨의 용기를 이어받듯, 무모하지만 누군가를 지킨다는 신념, 고난을 뛰어넘은 그녀에게도 한줄기 빛이 내려옵니다. 후위직 특성상 성장이 더딤에도 릴리에 비해 비교적 쉽게 성장하면서 또 한 번 릴리가 얼마나 발버둥계의 대표인지 새삼 알게 되는 대목이 아닐까도 했군요.

 

맺으며, 후기에 보면 작가는 하렘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래서 벨의 둔함을 부각 시켜놓은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호의에 둔한 벨을 보고 있자니 이래서 히로인들이 속셈과 음흉함이 없는 그에게 모여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동시에 히로인들이 불쌍해지기도 하는 참 씁쓸한 하렘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들이밀어도 보답을 받지 못하니 이보다 불쌍한 건 없지 않을까요. 물론 이성적인면에선만 그렇고 그 외의 부분에서 많은 것을 받고 있으니, 그래서 류의 감정 변화는 더욱 불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거의 사랑의 열병을 앓아버리기 시작하는 엘프의... 과연 류는 [헤스티아 파밀리아]로 컨버전 할 것인가가 이 작품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도 싶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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