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2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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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심각한 스포일러가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글도 좀 길고요.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자, 여러분이 만약 약혼을 하였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은 채 파기해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이 작품의 히로인 '알리시아(표지)'는 서키스타라는 나라의 둘째 공주로 자라나 어릴 때부터 주인공 데닝의 약혼자 포지션으로 지내 왔었죠. 그러나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한 유아시절 때 그 데닝에게 전속 종자 샬롯(메인 히로인)이 붙으면서 일이 틀어지게 됩니다. 이 미친X이 글쎄 느닷없이 파혼을 선언해버린 것인데요. 그리고 온갖 망나니 짓을 저지르는 통에 그렇지 않아도 파혼이라는 굴욕을 겪었건만 알리시아는 이런 인간과 약혼이라는 이력까지 붙어 버렸으니 그녀의 미래는 참담하기 그지없었겠죠. 그렇지 않아도 왕녀라는 프라이드가 있는데 그녀가 느꼈을 분노는 꽤 컸지 않을까요. 자신을 버린 남자, 그런데 집안끼리 정략결혼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그녀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가 다니는 마법학교에 입학을 하게 돼요.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에게 눈길 하나 안 주고 있지 뭡니까. 부아가 치미는건 어쩔 수 없었겠죠. 그래서 여보란 듯 '슈야'라는 남자를 옆에 끼고 데닝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댑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돼지 돼지라고 놀리는 수준이 아니라 비하를 해대고, 인간 취급도 안 해줘요. 여기서 문제는 돼지 데닝이 왜 자기와 파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받은 충격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일단 주인공이 이유를 입 밖에 내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된 거긴 한데, 시종일관 주인공 주위를 맴돌면서 창피를 주는 모습은 참으로 발암 그 자체로 다가옵니다. 주인공 데닝도 지은 죄가 있어서 줄곧 저자세로 나가는데 니 모습은 줏대 없고 배알도 없고 발암적인 게 아주 쌍으로 보는 이를 미치게 만들어요. 이번 2권은 줄곧 이런 발암적 전개가 펼쳐지는데요. 사실 돌이켜보면 다 주인공 때문이라 할 수 있어요. 

 

샬롯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정보를 주며 알리시아를 달랬으면 돼지라 비하 당하는 것에서 최소한 인간으로 승격을 해줬을 거란 말이죠. 모르니까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니까 부아가 치미고, 그런데도 일말의 희망 때문에 버리지는 못하겠고, 알리시아의 폭주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합니다. 이번 왕녀를 수호하는 '가디언 세리온 - 수호기사 선정시련'이라는 시험에 '로열 나이츠(왕실 기사단)'의 기사 두 명이 마법학교 근처 도시에 찾아와요. 그 기사 중 한 명이 알리시아의 알현을 요청하게 되죠. 주인공 데닝은 이미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는지라 기사의 알현 요청에 뭔가 안 좋은 일을 예감합니다. 그래서 말리죠. 가지 말라고, 근데 그 도시에 알리시아가 속한 왕족을 죽인 범인들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면서 애가 눈이 돌아가요. 정말로요. 주인공의 말리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매도당할 뿐입니다.

 

그래도 한때 약혼자였던지라 모른 채는 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자신도 선정시련에 뽑힌 것도 있고 해서 같이는 갑니다. 그게 또 못마땅한 알리시아, 이래저래 지켜주려는 그의 마음을 정말 눈곱만큼도 알아주려 하지도 않죠. 아무튼 도시에 도착해보니 주인공의 안 좋은 예감은 조금식 맞아 들어가고, 그에 따라 알리시아에게 경고를 하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나아가 알현을 신청한 훈남 기사에게 빠져서는 조사하러 나간다는 미명 아래 그 기사와 데이트를 즐기는데 이건 주인공의 질투심을 끌어내려는 걸까. 얼굴까지 붉히며 여보란 듯이 데이트를 즐기는 게 보는 이에겐 그저 발암 그 이상은 아닌 시추에이션이라는 것이군요. 주인공이 무슨 말을 건네면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더욱 심한 매도를 퍼부을 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질 않아요. 근데 여기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 하며 뭔가 하나를 유추하게 만드는데요.

 

이거 분명 알리시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주인공이 구해주면서 마음을 연다.

 

필자는 이걸 유추하고 머릿속에 딱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앙?' 이거 언제 적 시나리오인가. 이젠 개도 물어가지 않을 이야기를 여기서 하겠다고? 읽어가면서 필자의 불안은 점차 현실이 되어 가더군요. 주인공에게 버림받은 과거에 대한 짜증과 일말의 마음을 품고 그를 찾아왔더니 눈길 하나 안 주는 것에서 치미는 부아, 그리고 왕족이라는 입장에서 모범을 보여야 되는 그녀에게 있어서 왕족을 죽인 범인을 눈앞에 놔두고 모른 채 할 수 없다는 프라이드, 근데 이건 알고 있는가? 1권에서 용병에게 붙잡혀 힘 하나 못 썼던 것을, 마법에 뛰어난 왕족을 죽인 범인이 1권에서 나온 용병보다 약할 리가 없잖아요. 그녀에게서 느끼는 발암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가 품고 있는 짜증과 부아는 순정만화에서 흔히 보는 러브 코미디라 치부할 수 있어요. 서투른 연애를 하는 소녀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실제 그렇기도 하고요.

 

근데 이 꽉 막힌 왕녀(알리시아)는 자신의 실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속어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운데요. 아무튼 이미 주인공 데닝이 그녀에게 알현을 신청한 기사가 의심스럽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데닝은 그 기사가 미래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미래의 일을 밝힐 수는 없었고, 그래서 말렸건만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질투하냐는 빈정거림이 돌아오니 이거 참 주인공이 뿌린 씨앗이라지만 참 보살이라는 느낌을 받았군요. 이쯤 되면 난 몰라 하고 가버릴만 하건만, 저자세로 나오는 주인공도 참 발암적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나버리고 위에서 필자가 유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집니다. 발암의 완성이랄까요. 궁극적인 발암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자신(알리시아) 때문에 애꿎은 사람이 죽을뻔하였는데도 반성의 기미는 없고, 그렇게 말렸건만 안중에도 없더니 납치된 자신을 구하러 와준 주인공에게 '구해줘'라니 이건 아니잖아요. 작가님?

 

발암의 완성판에 총체적 난국도 가미되어 있어요. 알리시아가 주인공 데닝에게 쌀쌀맞게 구는 차원을 넘어 인간 취급을해준 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함이었으니 그렇다 쳐요. 아닌 게 아니라 샬롯과 같이 먹고자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에게 얼마나 질투를 해대는지 서투르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애달프게도 하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앞 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우둔함, 아무리 싫어한다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조언하는 것까지 매도하며 거부하는 것에서 서툴다 와 애달픈 연애 감정과는 다른, 글자 그대로의 발암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언을 하고 말리고 했는데도 반발심에 나섰다가 주인공이 예고한 것처럼 된통 당해놓고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데다 '구해줘'라는 정말 최악의 쓰X기 히로인으로 선정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군요. 근데 이것만해도 벅찬데 여기에 메인 히로인 샬롯도 이 발암 전개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발암적 전개에서 주인공도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주인공도 주변에 말하지 않은 것이 있고, 그저 상대가 싫어할 테니 말하지 말아야겠다 행동하지 말아야겠다라며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샬롯과 연관되면 더욱 말을 아껴버리죠. 그래서 샬롯 위주로 생활하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가 보내오는 신호를 수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리시아는 나 좀 봐줘라 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던 것이죠. 그게 돼지라는 비하와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것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관심을 끌기 위한 아이 같은 행동이었음에도 인지를 못하는, 그래서 알리사아는 더욱 나대기 시작했고 사고가 경직되어 일을 저지르고 말아요. 그래서 발암적 전개라고는 했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히로인이랄까요. 그래도 필자는 납득이 되지 않고 있지만요. 샬롯도 주인공 데닝의 곁을 지키려면 지금보다 성장해야 된다며 전장이 될 어느 장소에 가는 주인공을 기어이 따라가려는 모습도 알리사아에 버금가는 발암 캐릭터랄까요.

 

맺으며, 모두가 발암입니다. 서로가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로 인해 짜증을 내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랄까요. 사람은 이유 없이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고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니 시비를 거는 것이고, 그걸 알아내 고쳐야 되는데 이 작품엔 그게 없어요. 그래서 발암이 되어 버리죠. 알리시아가 왜 시비를 거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는 주인공, 주인공이 왜 자기를 버리고 샬롯과 살아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알리시아, 그런 게 부딪히고 감정이 격해지고 그러다 내 마음을 몰라 주니까 짜증이 나네? 현실에서도 간혹 그런 경우 접하잖아요. 내 마음을 몰라 준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 거기에 동참하겠다는 듯이 자신을 지켜 주려는 주인공에 반발하는 식으로 실력은 개뿔도 없으면서 전장이 될 장소에 따라가려는 샬롯,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서 3명(알리시아, 주인공 데닝, 샬롯)이 만나 약속된 전개라는 것마냥 발암은 완성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말이죠.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2권은 프롤로그이고 3권이 본편이 아닐까 하는 왕녀(알리시아 말고)의 등장은 주인공 앞 날에 또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 정말 발암으로 책을 집어던질뻔하다가도 이렇게 흥미를 끄는 통에 하차를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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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7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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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꽤 심각한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글도 좀 길고요.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스포일러에 관해서는 경고 했습니다.

 

 

 

 

꼴보기 싫으면 그냥 도망가 버리면 될 것을, 사실 마오마오의 친아버지는 정식 혼례를 올린 건 아니었지만 와이프와 자식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는 나라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파견 나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가야 되는 입장이었죠. 근데 금방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던 파견은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돌아왔지만 모든 게 파탄이나 있었습니다. 와이프는 버림받았다는 충격과 직업적(기녀)으로 돌림 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 병에 걸려 망가져 있었고, 딸은 약과 독에 미처사는 괴짜가 되어 있었었습니다. 게다가 어미는 남편을 저주한답시고 딸의 새끼손가락까지 잘라 버렸는데다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않았으니 마오마오가 부모를 곱게 볼 수가 없었죠. 뭐 그래도 정은 있어서 병저 누워있는 엄마를 보살피기는 했습니다만.

 

마오마오는 서도와 도성에서 리슈 비를 노린 암살을 막고, 무녀가 곳곳에 뿌리고 다녔던 사건들을 겨우 끝내놓은 지금 이제야 본연의 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궁에서 가오슌이 찾아오면서 평온한 나날은 물 건너 가버리고 맙니다. '진시'가 찾아올 줄 알았더니만 몇 달 전 쿠데타의 여파로 인해 그도 이젠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없게 되었죠. 환관이 아닌 왕의 동생으로써 집무를 보아야 되는 그는 서류에 파묻혀 사는 통에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얼굴을 그리 내비치지 못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짤막한 등장에서 그는 대형 이벤트를 터트려 버리는데요. 이건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고, 아무튼 가오슌에게서 뜻밖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관녀' 시험을 보지 않겠냐고, 예전에 한번 시험 쳤다가 낙방했던 그 시험을 다시 응시해보라고 합니다.

 

갈등, 약과 독이라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미처사는 그녀에게 있어서 궁은 보물고나 다름없어요. 의국에 가면 널린 게 약초이고 거기에 사는 돌팔이 의관은 진즉에 마오마오 편인데다 환자들에게 마음 놓고 임상실험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하지만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덥석 문다면 인생이 파탄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씰룩씰룩, 좋아서 입꼬리는 올라가는데 역시나 미끼가 근사한 이유가 있었다는 듯 가오슌이 꺼낸 다른 말에서 관녀 시험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되어 버립니다. 유능한 것도 이럴 때는 참 고달파요. 그동안 도성에서 많은 일들을 해결했고, 신분을 감췄다고는 하나 황제의 동생(진시)을 구해준데다 황후 마마의 뒷바라지, 황제의 총애를 받던 상급 비(리화 비)를 살려주고, 궁극적으로 왕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쿠데타도 얘가 납치되는 바람에 해결할 수 있기도 했고요. 리슈 비 암살 미수 사건을 해결하고 나라를 어지렵혔던 무녀를 잡아들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죠. 자, 어째서 이런 애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가. 요직에 앉혀 국정을 돌보게 한다면 나라에 얼마나 이익이 될까. 이건 황금을 낳는 오리보다 귀중한 인재이 건만, 왜 기루(창관)에 살도록 내버려 두는가. 그건 그녀의 친아버지 때문, 뭐 진시도 그녀가 새장 속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적극적으로 등용하지 않고 있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샤오'라는 멀고 먼 서쪽의 나라에서 '아이린'이라는 이국의 여성이 중급 비로 궁에 들어오게 되면서 관녀 시험의 진짜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마오마오는 이전부터 '아이린'과 접점이 있었죠. 아이린이 특사로 리국(마오마오가 사는 나라)에 찾아올 때부터, 그리고 서도에서의 여러 사건 등에서...

 

요컨대 그동안 네가 해왔던 것처럼 탐정이 되어 사건의 냄새가 나지 않는지 알아봐 달라 뭐 그런 것입니다. 이전 쿠데타에서도 샤오라는 나라와 연관이 있었고, 서도와 도성에서 리슈 비 암살 미수 사건도 연관이 있었고, 종합적으로 보면 내 나라를 어지럽힌 옆 나라에서 고위직 여성이 중급 비로 궁에 들어왔다. 뭔가 냄새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거죠. 마오마오 입장에서는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황후+황제+진시 3인의 추천장이 도착해 있습니다.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로부터 시험 준비라는 지옥의 행군, 약과 독 밖에 모르는 편향적 돌머리에 교양을 심어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평소엔 먹을 거 하나 제대로 안 주던 녹청관(창관, 마오마오가 살고 있는 곳) 도깨비 할멈까지 나긋나긋한 게 대체 이 할멈에게 뇌물을 얼마나 먹인 거냐고 자조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렇게 궁에 다시 입궐하니. 애초에 시험 볼 필요가 있었나. 친아버지는 궁에서 누구도 터치 못하는 심지어 황제도 손 놔버린 괴짜, 진시(황제 동생)라는 뒷배, 양아버지도 비록 환관이지만 의관으로써 높은 지위, 황후 마마는 열혈한 마오마오 신도, 황제도 그녀를 좋게 보고 있지, 황후 마마와 정적 관계여야 할 상급 비(리화 비)까지 아군이고, 그 외 기타 등등, 연줄로서 이보다 좋은 건 없지만 그래도 그럴수록 시험은 제대로 보고 들어와야겠죠. 뭣보다 마오마오가 그런 걸 싫어하니. 그리고 보물고나 다름없는 궁이긴 한데 어딘가 답답하고, 꼴보기 싫은 친아버지와 그 친아버지와 쌍벽으로 싫은 '진시'가 있는 곳, 하지만 그런 인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오만방자할 수는 없죠. 까라면 까야 되는 천민의 신분이다 보니 시험 치고 들어오라는데 가야죠.

 

그렇게 시험 치고 들어오니 이번엔 관녀들 사이 괴롭힘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오마오는 참 고달풉니다. 관녀라고 해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귀족이나 대상인의 자녀가 들어오는 곳에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가 들어왔나 싶었을 테죠. 아무튼 말이 관녀 시험이지 본직은 의관 보조, 결국 '아이린'의 동향을 캐기 위해 마오마오를 입궐 시키기 위한 임시 편성으로 만든 관직에 지나지 않다는 것, 여기까지는 좋아요. 관녀가 되어 허드렛 일하는 것보다 의국에서 약초를 만진다면 다른 건 다 잊을 수 있으니. 근데 돌팔이 의관이 있는 후궁 쪽이 아니라 무관들이 있는 의국에 배정되면서 마오마오는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입니다. 뭣보다 매일 찾아오는 친아버지의 기행은 정말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이고 급기야 식중독에 걸리면서 마오마오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릅니다.

 

 

마오마오 나이 19세, 이 시대 평균 혼인 나이 20세, 슬슬 나도 결혼해야 될까 하는 생각에 잠기면서 나도 아이를 낳는 것일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쯤은 낳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근데 누가 괴짜의 딸이 아니랄까 봐. 애 낳는 고통과 현실보다 태반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에서 그녀의 성격이 얼마나 편향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했군요. 환자에게 줄 약 바꿔치기하려 하지 않나, 친아버지의 발목에 줄을 매달아 통제를 하고, 코를 킁킁대는 거 보고 개 같다(욕 아님, 비유적)라느니, 여전히 괴짜스러운 면은 아비나 딸이나 씁쓸하면서도 배꼽을 잡게 해줍니다. 그래도 식중독에 걸려 다 죽어가는 친아버지를 보살피는 등 아주 냉혈한은 아닌 것에서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린'과 샤오에서 온 무녀(이때까지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무녀와 다른 무녀)에 관련된 이야기도 짬짬이 들어가 있지만 이건 사실 여느 탐정물처럼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이 되고 하니 일부로 언급은 하지 않았군요. 몇 권에 걸쳐 있어왔던 연속된 사건들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할까요. 사실 그것보다 이 작품의 최대 흥미 포인트는 마오마오를 중심으로 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얽히면서 웃고 떠들고, 알게 모르게 친구들도 늘려가고, 실력을 인정받고, 간간이 약과 독에 미친 괴짜의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섬뜩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시와의 관계, 처음엔 그저 호기심에 시작된 진시의 찝쩍거림은 어느새 호감으로 변했지만 정작 마오마오는 도망가기에 바쁜 것에서 흥미를 돋아 줍니다.

 

맺으며, 진시가 드디어 한 발짝 더 다가섰습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듭니다만. 안 보이면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 안 고 싶고, 그렇게 감정을 키워갔던 진시가 드디어 한 발짝 내디뎠습니다. 보통 이런 분위기면 여자든 남자든 흥분하며 기뻐해야 되잖아요. 아니면 거절하던가. 근데 정작 마오마오는 기쁨보다는 일냈다는 생각뿐, 정말 진시가 불쌍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마오마오가 왜 이런 내색을 보일까. 그건 속박되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들꽃 같은 아이' 이번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딱 이런 느낌입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진시의 대시에도, 황후 마마의 시녀 자리에서도, 관녀 시험도 내 의지가 아닌 타의에서 시작된 것, 그동안 줄곧 이런 성격이었죠.

 

싫은데도 명령이라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 자식을 지켜줘야 될 친아버지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노망나기 일보 직전, 진시는 자꾸만 들이대고,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사건이 일어나고, 개중엔 목숨이 왔다 갔다, 오죽하면 죽을 때 새로운 독을 먹고 죽고 싶다고 할까요. 자위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번엔 양아버지와도 의견이 갈리는 등 마음고생을 참 많이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맥 차원에서 마오마오만큼 좋은 히로인은 없지만, 불행으로 따지면 이보다 더 참혹한 히로인은 없을 테죠. 누구나 기대기만 하고 그녀를 받쳐주는 이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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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탄의 왕과 바나디스 17 - Extreme Novel
카와구치 츠카사 지음, 카타기리 히나타 외 그림, 한신남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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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쪼매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그리고 자세한 설정은 나무위키에서 찾아보면 나옵니다. 초반도 아니고 17권인 시점에서 뭔 소리인지 모를지도 몰라요.

 

 

 

 

꿈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거지. 누군가가 너는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것입니다. 나라를 세우고 싶다 같은 거창한 꿈, 건강하게 오래 살 고 있다는 꿈,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 그리고 수줍게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져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꿈, 여기 그 소소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도 전에 꽃잎을 다 떨어트려버린 친구의 부탁이 있습니다. 병에 몸져 누워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물과 싸우며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불살랐던 친구의 마지막 부탁, 5년 전 양아버지에게서 입이 닳도록 들었던 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라는 말과 친구가 하지 못했던 일의 부탁을 가슴에 품고 '에렌'은 과거의 망령과 마주합니다.

 

아, 표지는 한때 로리라고 말을 들었던 '올가'입니다. 지스터트에서 왕 이외에는 명령을 듣지 않는, 7명 밖에 없다는 '공녀'죠. 공녀의 무력은 일기당천쯤 되고요. 올가도 자기보다 더 큰 도끼를 들고 무표정하게 전장에서 마구 날뛰는 전형적인 피치컬 걸이 되겠습니다. 어쩌다 만난 주인공 티글과 여행하며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티글의 아이를 갖겠다고 공언하면서 주변을 아연실색케 했죠. 지금은 15살이 되어 로리를 졸업해버렸습니다. 이번에 이 작품에서 줄곧 티글을 괴롭혀온 최대 흑막이자 만악의 근원 중 하나인 마물 '가늘롱'을 만나 다른 공녀와 힘을 합쳐 싸웁니다. 그녀의 피치컬이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어째서인지 뜸을 덜 들인 보리밥처럼 입안에서 조금 헛도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잘 싸워줘서 티글에게 도움은 되었군요.

 

에렌은 5년 전 악몽이자 망령 '피그네리아'와 마주합니다. 양아버지를 죽인 원흉, 어째서인지 피그네리아는 사샤의 뒤를 이어 용기 발그렌의 선택을 받아 '공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필연적으로 에렌과 마주치게 되었고, 에렌은 양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그녀를 용서할 수가 없었죠. 거기에 피그네리아가 품고 있는 이념과 사상의 차이로 인해 에렌과는 물과 기름, 사실 양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아니어도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둘은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게다가 피그네리아는 지스터트의 내란에 협조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터라 에렌으로써는 어떻게든 그녀를 막아 세울 수밖에 없게 돼요. 하지만 몇 년을 더 살았고, 용병으로서도 선배인 그녀(피그네리아)의 실력은 압도적이었으니 단숨에 에렌은 궁지에 몰려갈 뿐입니다.

 

사실 부제목으로 조용필 선생님의 노래 '킬리만 자로'에 나오는 가사 중 '불꽃으로 타올라야지'를 쓸려고 했습니다.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이 딱 그래요. 지금은 공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떠받들어주고는 있지만 그 이전엔 들개처럼 온 곳을 돌아다니며 하이에나처럼 전장의 개가 되어 살아왔던 두 공녀(에렌과 피그네리아), 그런 두 공녀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싶다는 열망, 용병으로서 이곳저곳을 떠돌지 않아도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 꿈을 위해서 높은 곳을 오르는 걸 마다하지 않으려는 에렌과 피그네리아, 하지만 둘이 품었던 같은 꿈에서 결정적인 어떤 차이를 드러내며 싸움의 향방이 결정되어 갑니다. 모든 것을 불사른다. 목숨을 걸고 이상을 위해 걷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에렌이든 피그네리아든, 사실은 누가 악이고 정의라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정의란 사람의 수만큼이나 있으니까. 용병으로서 전장에 만나 이기고 졌을 뿐, 그리고 내 이상을 상대가 이해해줄리 없을 터, 그러니까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에렌과 피그네리아를 옳아맵니다. 그런데 용기 발그렌은'피그네리아'를 차기 공녀로 선택하였는가. 이 싸움에서 에렌은 양아버지가 평소에 해왔던 말을 간신히 떠올립니다. 양아버지가 그녀와 그녀의 부관 리무에게 했던 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라는 말, 그리고 죽은 친구 사샤가 했던 말, 용기 발그렌은 어쩌면 전(前) 주인 사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피그네리아를 새로운 주인으로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렌에게 과거의 망령과 마주해서 뛰어넘어 지금 어딘가에 있는 티글을 찾아가라는, 내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슴이 좀 먹먹해진다고 할까요.

 

그런 티글은 어디에 있냐면, 마물 '가늘롱'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브륀을 내란으로 빠트린 장본인, 그리고 예전에 티타의 몸에 현현하여 티글에게 검은 활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했던(아마도) 밤과 어둠과 죽음의 여신 '티르 나 파'를 지상에 현현 시켜 세상을 혼돈으로 물들이려는 장본인, 두 개의 싸움이 종지부를 찍으려 합니다.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 그리고 가늘롱과 세상의 명운을 걸고 싸우려는 티글, 여기서 여신 '티르 나 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면 글이 길어지니까 자세한 건 나무위키 같은 데서 검색해보시기 바라고요. 요점정리를 하자면 주인공 티글은 그동안 흑막이었던 보스를 만나 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티글의 조상도 밝혀지지만 결국은 조상이 숲에서 주워온 활 때문에 후손인 티글이 고생하게 되었다는 것이군요.

 

아무튼 한고비 넘기니까 새로운 고비가 찾아온다고 했던가요.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듯, 공녀 '발렌티나'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세상에 잘 나오지 않았던 부뚜막 고양이 발렌티나가 물밑에서 꾸며왔던 음모가 피폐해진 티글과 에렌을 위시한 다른 공녀에게 들이밀어지는데... 어서 빨리 18권을 보고 싶은데 언제 나올지...

 

맺으며, 뭐랄까 다음 18권이 마지막이다 보니 작가가 서두르는 감이 있군요. 결말을 빨리 내려다보니 감정 표현에 있어서 답답한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에서 모든 걸 불사른다가 무엇인지 보여주긴 하는데 감정이입이 될만한 대사가 거의 없어요. 그저 유추해서 음미하라는 불친절만이 있습니다. 다만 에렌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대목은 사샤와의 인연을 생각나게 해서 좀 먹먹하게는 했습니다만. 그리고 가늘롱과의 전투에서도 '티타'를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음에도 작가가 밀어주고 있다는 말을 무색게 할 정도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은 참... 그건 그렇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에렌의 부관 리무가 되겠군요. 에렌과 피그네리아와의 싸움에서 주군인 에렌을 지키기 위해 분전을 하며 그녀 또한 온몸을 불사르는데... 스포일러라서 더 이상 언급은 힘들고 18권에서 기회가 되면 또 언급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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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10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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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월 참 빠르군요. 여신관이 고블린 슬레이어와 파티를 맺은지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3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15살에서 17살로,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지고신(神) 사원에 맡겨져 자라난 그녀는 '지키고, 치유하고, 구하라'라는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대상이 고블린이라고 하여도 죽음을 애도하는 등 경건하고 마음씨 고운 어른으로 성장은 하였습니다만. 하필이면 고블린 슬레이어와 파티를 맺은 게 그녀에겐 불운이었을까요. 가는 곳마다 개(犬) 똥 밭이었으니 허구한 날 구르는 게 일이고, 옷은 더러워지는 날이 끊이질 않고, 목숨은 남아나질 않고, 그렇다고 그이가 다정하게 대해주기나 하나. 뭐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데도 그녀는 왜 고블린 슬레이어의 뒤를 쫓아다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샘솟죠.

 

처음으로 친구를 소개하는 날, 처음으로 그이를 집으로 초대하는 날,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날, 나의 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이를 바라보는 시점은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증은 누구나 한번 겪어 봤을 겁니다. 평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 그보다 기분 좋은 일이 없고, 낮은 평가를 받으면 어딘가 음울해집니다. 여신관은 처음으로 집이나 다름없는 지고신 사원에 고블린 슬레이어와 동료들을 대리고 가요. 대부분의 고아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모험가의 길에 들어섰고, 잘 해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자기만의 생각이고 타인이 보기엔 어떨까. 어릴 때부터 그녀를 봐온 여승(신관과 비슷)들이라면 더욱, 그녀의 평가가 동료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것은 부정의 말이 아니라 온화하고 어딘가 들뜨게 만드는,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분위기, 그녀는 잘 해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걸 시기하듯 불온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지고신 사원의 어느 여승이 고블린의 자식이라는 소문, 여신관에 있어서 그 여승은 친언니와도 같은 존재,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고 결국 당사자에게까지 도달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란 여신관에게도, 아니라는 건 본인은 물론이고 여신관도 잘 알고 있다. 모험가들 사이에서 안줏거리로, 가십거리로,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말이 진실인양 퍼져 나가는데 반론할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여신관으로써는 미치고 졸도할 일, 분한 마음에 고주망태가 되어 보지만 해결될 리도 없고 마땅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서 악플이 달리는 느낌이 이런 걸까. 이럴 때 어깨를 다독여줘야 할 고블린 슬레이어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그도 그럴게 고블린 슬레이어는 지금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까.

 

자, 느닷없이 왜 지고신 사원에 불온한 소문이 붙은 걸까. 특정 인물을 향한 소문이라지만 집단에 소속된 인물이고, 그 인물은 포도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바로 냄새가 나버리죠. 이익을 위해 어느 못된 상인이 개입한 걸까. 그러하다는 걸 뒷받침하듯 고블린 슬레이어가 머무는 목장에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개발의 여파는 어느 시절이고 있기 마련이라는 듯 목장을 매입하고 싶다는 상인의 말, 그리고 지고신 사원의 소문,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한 고블린 슬레이어는 탐정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내 본직은 고블린 퇴치다만. ​고블린 슬레이어는 문득 자신 속에 망설임이 있다는 걸 자각합니다. 언제부터 내가 고블린 이외의 일을 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남의 일에 개입하게 되었을까. 12년 전 그날 이후 오로지 고블린만을 죽이기 위해 살아온 그가 누군가를 위해 나선다는 것.

 

짜증이 날 정도의 망설임, 여신관이 친언니나 다름없는 여승에 붙은 소문으로 인해 고주망태가 되어 술집에서 진상을 부려도 모른 채 할 정도로의 망설임. 하지만 이건 망설임이 아니라 답답함이었다랄까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 누군가가 등을 밀어주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모르는 일, 그 모르는 일을 해야 되는 답답함과 망설임, 그걸 이끌어줘야 될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다고 역설합니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눈을 높이 들고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마냥 소치기 소녀의 당찬 말 한마디에 마치 길 잃은 어린 양이 다시 원래의 길로 되돌아가듯 고블린 슬레이어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안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심플한 조언에 마음을 정한 고블린 슬레이어.

 

그동안 간간이 용사에 의해 혼돈의 세력이 무력화되는 어딘가 멀리 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를 조금식 가미하던 것이 이젠 대놓고 나날이 혼돈의 세력(판타지 용어로는 마족쯤 되려나요.)이 판을 키워 갑니다. 이미 이전에 고블린 슬레이어 파티는 다크 엘프와의 싸움도 여러 번 있었고, 이번에도 고블린 슬레이어는 혼돈의 세력과 마주합니다. 지고신 사원의 여승에 붙은 소문과 목장을 매입하고 싶다는 상인의 뒤를 캐던 고블린 슬레이어는 어떤 사실에 도달하죠. 목장으로서는 제2의 위기이고, 여신관에게는 고향집 같은 사원이 뭉개질 판입니다. 이럴 때 그는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할까. 이것은 고블린 퇴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되는 상황. 그의 망설임은 여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는 고블린 퇴치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은 미움을 받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가 그동안 모험가를 해온 지도 벌써 7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세상에서 그와 여신관을 돕기 위해 여러 모험가들이 움직여 주면서 결국은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소치기 소녀가 말했던 것처럼 있는 힘껏 살아가면 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리고 또 한 명, 친언니나 다름없는 여승을 고블린 자식이라고 매도하게 만든 장본인을 앞에 두고 그녀(여신관)는 장본인을 매도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17년 동안 타인을 자비로 대하라는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고 여겼던 그녀는 소문의 장본인을 앞에 두고도 자비를 베풀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매도하며 분풀이를 할 것인가. 근데 장본인의 입이 아니라 고블린 슬레이어가 던진 의외의 말은 여신관의 마음에 파장을 불러옵니다.

 

맺으며, 이번엔 고블린은 꼽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블린 퇴치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긴 한데 언제까지고 고블린만 잡고 있어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마냥 이젠 상위 단계인 혼돈의 세력과 싸움을 붙이려나 봅니다. 그래서 그동안 간간이 언급되었고, 언급되면 용사가 나서서 해결해버렸던 혼돈의 세력이 인간의 틈으로 파고들어 암약 하는 이야기인데요. 이번 10권은 용사가 미처 대처하지 못한 혼돈의 세력이 하필이면 목장과 여신관과 인연이 있는 지고신 사원을 노리게 되면서 일어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블린 슬레이어가 파티와 함께하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는 걸 알아가면서 고블린 슬레이어도 나름대로 노력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번엔 이렇다 할 큰 모험은 없어요. 여전히 고블린은 나오고 퇴치는 하지만요. 그리고 혼돈의 세력이라는 큰 복선을 투하하면서 앞으로 이들에게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낳지만 용사가 활약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큰 위기는 닥치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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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전생 7 - 이세계에 갔으면 최선을 다한다, Premium Extreme Novel
리후진 나 마고노테 지음, 한신남 옮김, 시로타카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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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꽤 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비평이 상당히 진하게 들어가 있으니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사실 필자는 이 작품을 안 보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주인공 성격 때문이었죠. 구입 전 조사를 거쳐 정보를 모았고, 필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주인공 성격이 남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해 파탄을 불러올 상이라는 느낌이었군요. 요컨대 상대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전혀 헤아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르게 말하면 이세계에만 가면 히로인의 마음을 헤집고, 정의를 사랑하고, 올바른 길만 가고, 성격이 착하게 교정되는 한마디로 토나올 정도의 클리셰를 전면 반박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죠. 이것은 이전 생에서의 방구석 폐인 기질을 그대로 계승 시킴으로서 주인공이 이세계로 가서 새로 태어난다고 해도 기존 성격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나름대로 작가의 배려(?)가 아니었나 하는 건데요. 물론 이세계에 가서도 방구석에만 처박힌다는 게 아니라 타인을 대할 때의 성격을 말합니다.

 

상대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르니까, 물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전이 사건에 휘말리고 마대륙으로 날아가 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루데우스는 에리스의 무엇을 봤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요. 그는 에리스의 겉모습만 보고 있었을 뿐이죠. 필자의 이 말을 뒷받침 하는게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음도 루데우스는 에리스가 왜 떠났는지 도통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맺어지면서 그 나름대로 책임을 지려 했지만 정작 그녀의 진짜 마음이 어떻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죠. 애초에 그걸 물어보는 장면도 없어요. 결국 주인공은 자기중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놓고 그녀에게 자기는 가치가 없었다는 둥, 특별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둥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대목에서는 정말...

 

두 문단이나 할애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그 여파(상실감)가 이번 7권 내내 따라다닌다는 것이기 때문이군요. 끝까지 에리스가 어떤 마음을 품고 떠났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어요. 여담이자 스포질 좀 하자면, 에리스는 5년 전 마대륙으로 날려가 숱한 고생을 하며 자기를 지켜 주었고, 어른의 계단에 오를 때조차 버거워하는 루데우스를 보다 못해 그의 힘이 되어 주고자 수행을 떠난 것입니다. 결코 루데우스를 버린 게 아니죠. 이렇게 놓고 보면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떠난 에리스에게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만.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엔 이렇게 엇갈림이 좀 들어가 있죠. 주인공이든 히로인이든 매사 모든 걸 꿰뚫어보는 만능은 아니라는 듯,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엇갈리면 이렇게 오해도 부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에리스가 떠난 빈자리, 그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좀 있었는데요. 루데우스는 어머니 '제니스'를 찾기 위해 북방 대지로 떠납니다. 가는 길에 '카운터 애로우'라는 파티명을 가진 5명과 안면을 트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히로인이자 7권 한정인(13권인가에서 또 나오는 모양입니다만.) '사라'를 만납니다. 그녀의 첫인상은 드세다. 에리스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상성을 보이죠. 어쨌건 그 길로 로젠버그라는 도시에서 이들과 혹은 다른 모험가들과 약 1년간 모험을 하며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 가요. 인지도는 어머니를 찾기 위한 것. 각지를 돌아다니는 모험가의 눈과 귀를 빌리면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걸지만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면서 여차여차 시간은 흐르고 사라와 티격태격하는 일도 늘어나고 그러다 삐끗해서 사고를 위장해 가슴도 만지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죠.

 

그리고 새로운 인물 모험가 S등급(참고로 루데우스는 A등급) '졸다트'도 만나 그에게 사사건건 시비도 받으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결국은 둘이 의기 투합하기에 이르는데 그 과정이 참 현실적입니다. 졸다트는 몰랐다곤 해도 처음엔 에리스에게 차였다는 상실감에 젖어 세상 다 잃은 듯한 면상이 마음에 안 들어 시비를 걸어 댑니다. 그러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츰 졸다트는 루데우스의 상실에 젖은 본 마음을 알아 가죠. 그런데 이 과정을 보고 있으면 왜 루데우스는 에리스와 이렇게 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솔직 다감하게 대화를 했더라면 미래는 달라졌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사라를 여자로서 수치심을 들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 봅니다. 무슨 말이냐면 스포일러이긴 한데 사라가 의뢰를 수행하던 중 죽을 위기에 처하죠.

 

'카운터 에로우'의 파티원은 그녀가 죽었을 거라 여기고 철수를 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루데우스는 밤 길을 헤치고 그녀를 구해주게 되죠. 파티원도 포기한 자신을 구해준 것입니다. 실제로 다른 파티원 한 명은 사망해버렸고, 그러니 상성이 안 좋아도 호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래요. 딱히 해코지도 안 하고 그동안 모험하면서 몇 번이나 파티를 위해 목숨을 걸어준 그가 아무리 아니꼽더라도 호감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하죠. 그리고 6개월간 이들은 나름대로 인연을 쌓아가고 종국에 사라는 그에게 마음을 허락합니다. 아랫도리가 아버지 파울로만큼이나 가벼운 루데우스가 그걸 차버리지는 않을 테죠.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은 어떤 트라우마나 굉장한 충격을 받으면 몸 어딘가가 고장이 난다고 하죠. 루데우스는 하필이면 자랑스러운 거기가 말입니다.

 

 

그동안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더러 있긴 했지만 이번처럼 사실적 묘사에선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특히 '사라'가 마물에 붙잡혀 있는 장면은 시리어스가 따로 없어요. '카운터 애로우'의 파티원 중 죽은 한 명을 표현한 장면도 꽤나 시리어스하죠. 밥맛 떨어질까 봐 자세하게 언급은 못하겠습니다만. 여러 작품을 봐온 필자에게 있어서 다소 충격적이었다고 할까요. 표현력에 있어서요. 그리고 이 장면들에서 삶과 죽음은 정말 종이 앞뒤처럼 가깝게 존재하는 구나하는 걸 새삼 알게 해줬군요. 그러고 보면 주인공 루데우스가 현세에서 죽을 때도리얼리티 하게 표현을 해놨죠. 아무튼 몇 개월이나 같이 생활한 동료 같은 사람이 다음날엔 목숨을 다하는 세계, 전세에서 방구석 폐인질이나 하던 주인공에게 다소 짐이 무거운 장면이 아닐까 했는데 이건 또 태연하게 대처하는...

 

어쨌거나 이번 에피소드는 주인공 성격 때문에 눈살이 많이 찌푸려졌군요. 에리스가 왜 떠났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어 불능이 되어 버렸지만 그것조차 이해를 못하는 모습, 사라를 여자로서 수치스럽게 해놓고 사라가 꺼낸 타산적(구해준 것에 대한 빚 청산)이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상대의 진짜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우둔함, 이런 흐름을 보고 있자니 피해 의식에 쩔어있는 전형적인 방구석 폐인 기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끝끝내 졸다트와 '어떤 짓'을 벌이면서 인상은 최악으로 치닫더군요. 거기다 진심을 들으려면 술을 먹여 보라는 말이 있듯이 고주망태가 된 루데우스가 꺼낸 사라의 평가는 정말 본인(사라)에게 싸다구 맞아도 모자를 지경에 이릅니다. 그래놓고 또 피해자 코스프레는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군요.

 

맺으며, 필자는 이래서 이 작품을 안 보려 최대한 저항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럼 지금부터라도 보지 말라는 악플은 참아 주시고요. 이미 8권도 구매해놓은지라, 9권부터 어떡할지는 8권을 마저 보고 판단을 해볼까 합니다. 어쨌거나 루데우스만 죽일 놈이라고 언급은 해놓았습니다만. 사실 에리스나 사라나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명확히 밝히지 않은 죄가 있긴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인데, 문제는 그런 히로인들에게 버림받았다고 자해하는 주인공의 문제가 더 크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군요. 단순히 버림받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히로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비추는 것에 질이 더 나쁘다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소통의 부재임에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전세에서 방구석 폐인으로 지내지 않았을 테지만요.

 

마지막으로 본 리뷰는 필자의 주관적 100%입니다. 다른 분들과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알리며,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악플은 달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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